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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자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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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김자야다저자이동순출판일송북발매2024.10.28.백석 시인은 1912년 평북 정주 태생으로 일본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1935년에 귀국하여 조선일보사 기자로, 1936년에 함흥 영생여고보에서 교편을 잡아 근무했다.1935년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고,이듬 해인 1936년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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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백석 시인은 1912년 평북 정주 태생으로 일본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1935년에 귀국하여 조선일보사 기자로, 1936년에 함흥 영생여고보에서 교편을 잡아 근무했다.

1935년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고,

이듬 해인 1936년 시집 '사슴'을 간행했다.

1930년대 후반 일제의 압박이 가중될 때 등단한 백석은, 

실감 나는 농촌의 정서를 특유의 평안도 사투리로 형상화했다.

광복 후에는 북한의 고향에 남아서 문필 활동을 계속하다

1996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석은 당시의 경향이었던 모더니즘의 성격을 발전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사투리로 형상화한 토속적향토적인 서정시는 지방적.민족적 성향을 보여주며

일제 치하에서 고통을 겪던 민중들의 애환과 삶을 그려내었던 

개성이 강하고 독특한 매력을 지닌 고상한 기품의 시인이었다.



김자야는 1917년 서울 태생으로 17세 때 조선 권번에 들어가 기생이 된다.

1935년 해관 신윤국의 후원으로 일본에서 학업 중, 해관의 투옥으로 귀국하나 

면회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함경남도 함흥 땅에 머물게 되면서 

1936년 함흥에서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와 있던 시인 백석과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백석은 일생에 네 번의 결혼을 하게 되는데 

기자야 와 사랑에 빠져 있던 기간 중 두 차례의 혼례를 치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8년 조선일보 기자로 

다시 서울로 온 백석과 재회하여 청진동에서 살림을 차렸지만

이듬 해에 백석이 만주로 떠나게 되면서 

시인 백석과 기생 자야의 짧은 사랑은 막을 내리게 된다.

6.25 전쟁이 끝난 후, 자야는 서울 성북동에 ‘대원각’이라는 요정을 지어 

경영하여 막대한 부를 쌓게 되었다고 한다.

스승 하규일 명인과 연인 백석을 추모하는 사업에 평생 매진했다.





'나는 김자야다'는 고향인 평북 정주에 남아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던 백석 시인과

짧은 사랑을 나누었고 그 사랑을 잊지 못해 평생을 그리며 살았던

조선권번 출신 기생의 삶을 이동순 시인이 백석의 연인 김자야와의 오랜 만남으로

취재하며 쓴 도서이다.





백석 시인과의 사랑을 김자야의 시각에서 일방향적이지만 전설 같은 사랑이야기와

황금만능주의가 만연한 세태에 막대한 재산을 기증한 그녀의 삶과 

그 내막도 잘 드러내고 있다.



k*****e 2024.12.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