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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년 전 85세의 나이로 영면의 세계로 떠난 미국 출신의 작가 커트 보네거트의 출세작인 <고양이 요람>을 읽었다. 지금까지 모두 세 권의 보네거트가 쓴 책을 읽었는데, 그 중에서 제일 먼저 읽었던 <마더 나이트>가 가장 정상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마더 나이트> 역시 만만치 않은 책이긴 하지만 말이다. 1963년에 출간된 <고양이 요람>은 보네거트의 네 번째 소설로 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리는 가상의 인물인 펠릭스 호니커 가족사를 파헤치는 저널리스트 존의 심층취재와 후반부의 산로렌조 공화국에서의 모험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야기는 내내 보코논교라는 산로렌조의 존슨이라는 사람이 만든 사이비 종교의 외경(外經)에 나와 있는 글들을 계속해서 인용하고 있다. 카라스, 듀프라스, 그란팔룬, 웜피터 그리고 포마에 이르기까지 도대체 그 정체들을 알 수 없는 어휘들의 홍수가 쏟아진다. 소설 속의 주인공 존도 보노콘교의 신자였던가? <제5도살장> 첫 머리에 뻔뻔스럽게 정신분열적인 글쓰기를 시도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아마 <고양이 요람>도 비슷한 차원에서 접근을 해야만 했던 걸까. 글 중에서 “역동적 긴장”이라는 표현이 어찌나 이리도 공감이 가던지. 존이 소설 속에서 쫓는 원자폭탄의 아버지이자 노벨상 수상자로 등장하는 펠릭스 호니커 박사의 모델은 실존인물인 1932년에 노벨화학상을 받은 미국 출신의 화학자 어빙 랭뮤어라고 한다. 보네거트는 이 책에서 모든 인간사의 해결책처럼 제시되는 과학과 기술, 동시에 과학기술이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을 파고드는 (사이비) 종교를 전면에 내세운다. 호니커 박사의 자식들을 통해 고인 생존의 모습을 스케치해 나가던 존은 아이스-나인이라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을 단번에 파괴시킬 수 있는 가공할 절대무기의 존재를 알게 된다. 이것은 50-60년대를 휩쓸던 핵무기에 대한 미국인들의 공포와 불안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후반부는 카리브 해에 위치한 가상의 섬나라 산로렌조 공화국으로 떠난 존의 취재여행에 집중된다. 존은 그곳에서 그가 찾아 헤매던 호니커 박사들의 자식들을 모두 만나게 되고, 허무주의적이면서도 자연친화적인 사이비 종교인 보코논교와 맞닥뜨리게 된다. 과연 우리 인류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건지 소설은 뒤죽박죽인 상태로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냉전 시대의 무한군비경쟁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고 있는, 반전 평화주의라는 작가의 뚜렷한 메시지는 곳곳에서 느낄 수가 있었지만, 마치 쥘 베른의 철지난 공상과학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반복해서 등장하는 사이비 보코논교의 이야기들은 작가가 정말 정신분열적인 상태에서 글을 쓴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게 만들고 있었다. 커트 보네거트는 언젠가 자신의 글에 대해 평가를 매긴 적이 있었는데 <제5도살장>과 더불어 <고양이 요람>에 당당하게 A+를 주었다. 소설 중에 나온 절대 자신의 글에 스스로 색인을 달지 말라고 했던 색인전문가의 경고가 떠올랐다. 냉소적인 블랙유머로 무장한 커트 보네거트는 핵폭탄으로 지구를 몇 번이나 날려 버릴 수 있을 정도로 핵무기 경쟁이 치열하던 시대상을 “실뜨기 놀이”(cat's cradle)에 비유하고 있다.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기도 했던 그는 이미 세상을 지배하는 이들을 교화할 것이 아니라, 그전에 학교에서 지배자들에게 좋은 세상을 만들라고 가르쳐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의 주장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생소한 커트 보네거트 특유의 용어들이 낯설어서 책읽기에 집중력이 떨어지긴 했지만 다시 한 번 한 시대를 풍미한 작가의 위트 넘치는 블랙유머들을 맛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
| 우선 제목에 대해 한번 짚고 넘어가야겠다. 고양이 요람Cat''s Cradle은 실뜨기 놀이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말은 이 소설에 병적 인격으로 등장하는 인물, 펠릭스 호니커 박사의 행태를 풍자한다. 호니커는 2차 대전 때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날려버린 원자폭탄의 아버지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실뜨기 놀이를 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원자폭탄과 아이스-나인이라는 무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원자폭탄 실험 중 ''과학이 이제 죄를 알게 되었군'' 하는 한 과학자의 말에 이 미친 과학자 호니커는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묻는다. 죄가 뭐죠? 이 소설은 ''세상이 끝난 날''에 대한 블랙 코미디다. 호니커 박사는 재미삼아 아이스-나인이라는 결정체를 만들어 그의 자식들에게만 그것에 대해 말해주곤 죽는다. 그리고 그의 세 자식들이 그것을 나누어 가진다. 아이스-나인이란 모든 액체를 딱딱하게 결정화시키는 물질이다. 이것을 삼키면 사람이 딱딱하게 굳어 죽는 것은 물론 바다에 떨어뜨릴 경우 바다는 곧 그 자체가 아이스-나인 덩어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세상의 종말을 불러일으키는 길이기도 하다. 커트 보네커트는 이 소설을 통해 펠릭스 호니커 같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조롱한다. 비단 소설 속의 얘기만이 아니다. 여기엔 또 하나의 흥미거리인 ''보코논교''라는 종교가 등장하는데 보코논은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라" 고 한 예수의 말을 "카이사르는 신경 쓸 것 없다. 카이사르는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 라고 바꾸어 놓는다. 이 말은 물론 사회의 최상부층을 비웃는 말이다. 그는 그 자신 역시 미국인임에도 미국을 거침없이 비판해낸다. 그가 병적 인격체라고 부르는 그들은 미 연방정부에서 높은 자리를 꿰차고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미치광이들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펠릭스 호니커 박사와 같은, 또한 이라크를 공격하라고 외치는 부시와 같은. 그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자신이 소설을 쓰는 의도이자 이들에 대한 대책안을 내놓았는데 이것 또한 재밌다. "대통령들, 상원의원들, 장군들, 이런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데 책은 써서 무얼 하나 하고 나는 걱정을 했습니다만, 대학에서 교편을 잡아보니까, 아주 좋은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즉 장성이나 상원의원, 대통령이 되기 전에 사람들을 잡아서 그들의 두뇌를 인간성으로 중독시키자는 것입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라고 격려하는 것이지요." 실뜨기 놀이, 원자 폭탄, 아이스-나인, 보코논교, 거짓말, 이것들이 바로 이 책의 키워드이다. 거기엔 음울한 유머도 뒤섞여 있어 읽는 내내 냉소를 품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자세히 언급은 안했으나 보코논교의 우주적 농담 또한 이 책을 읽는 즐거움 속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보코논서의 첫 문장이기도 한 보코논식 경고를 전하고 끝내겠다. "이제부터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려는 진실은 모두 뻔뻔스런 거짓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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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멸종을 바라면서도 인간은 아무도 다 같이 죽자고 말하지 않는다. 어떤 미치광이 과학자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서 떼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과학의 공을 기리는 상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 상을 받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고 그런 인물은 배출한 국가는 자랑스러워하며 그렇지 못한 국가는 열등감에 빠진다. 또 다른 미치광이 과학자가 원자폭탄을 만들었다. 그래서 전쟁에 이겼고 전쟁을 일으킨 나라는 패망했으며 아무 이유 없이 힘없이 식민 생활을 하던 한 나라는 자유를 얻게 되었다.
작가는 신랄하다. 인간과 과학과 종교와 무수한 삶에 대해... 하지만 그저 신랄할 뿐이다. 그 왜의 어떤 것도 없다. 지구는 망했다. 남은 자들은 있다. 그들은 여전히 깃발을 꽂으려 국기를 만들고 살기 위해 방공호에 몸을 숨긴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냐. 다 똑같은 존재다. 원자폭탄을 투하했던 나라와 지금 그들은 손을 맞잡고 다시 힘으로 밀어붙이려 하고 있고 그들은 그것을 어떤 양심의 가책도 없이 추종할 뿐이다.
이라크에 무기가 있다고 침략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이스라엘에 어떤 무기가 존재하는지, 그들이 팔레스타인 민족에게 어떤 짓을 하는 지는 전혀 관심이 없다. 바로 60여 년 전 자신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잘 알면서도 그들은 똑같은 짓을 서슴지 않고 한다. 이것이 진실이며 역사다.
인간이란 이런 존재다. 우리는 정치인과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우리는 그들과 같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들을 뽑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책의 내용이 무슨 소용이며 신랄함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다 웃기는 소리일 뿐이고 공허한 메아리일 뿐인 것을...
거짓, 그것만이 진실이다. [인상깊은구절] 53p 웜피터란 카라스의 회전축이다. 보코논은 바퀴축이 없는 바퀴는 없듯이 웜피터가 없는 카라스는 없다고 말한다. 무엇이든 웜피터가 될 수 있다. 나무, 바위, 동굴, 어떤 관념, 책,멜로디, 성배(聖杯) 등. 그것이 무엇이든, 그 카라스의 구성원들은 나선형 성운의 장엄한 카오스 속에서 그것을 중심으로 돈다. 공통의 원피터를 도는 카라스 구성원들의 궤도는 당연히 영적(靈的) 궤도다. 도는 것은 영혼이지 육체가 아닌 것이다. 보코논이 우리에게 함께 부르자고 권한 노래처럼. 67p "이따금 그가 죽은 채로 태어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살아 있는 것들에 그렇게 무관심한 사람은 만난 적이 없소. 가끔 나는 그것이 바로 세계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에 돌처럼 차갑게 죽어 있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 말이오.“ 96p 그 글은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게게 돌려라.”고 한 예수의 주장을 바꾸어 놓은 것이었다. 보코논이 바꾸어 놓은 글은 이랬다. “카이사르는 신경 쓸 것 없다. 카이사르는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 157p "인간은 하찮은 존재라서, 만들 가치가 있는 것은 아무 것도 만들지 못하고, 알 가치가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168p 호랑이는 사냥해야 하고 새는 날아야 한다. 인간은 앉아서 “왜, 왜, 왜?” 하고 궁금해해야 한다. 호랑이는 자야 하고 새는 내려앉아야 한다. 인간은 자신에게 알았노라고 말해야 한다. 183p "성숙이란,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겁니다.“ 그가 정의하는 성숙은 보코논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코논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성숙이란, 웃음이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면 혹 모를까, 어떤 치유책도 없는 씁쓸한 실망이다.” 214p "저는 만약에 새 책, 새 연극, 새 역사, 새 시집 등등이 갑자기 중단된다면, 사람들이 진정으로 각성하리라는 생각이 드는 걸 어쩔 수 없군요.“ “그래서 사람들이 파리처럼 죽기 시작하면 당신은 얼마나 자랑스러울까요?” 내가 따지고 들었다. “사람들은 오히려 미친개처럼 죽을 것 같은데요. 서로 으르렁거리며 물어뜯고, 자기 꼬리를 자기가 물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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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니것의 <고양이 요람>을 읽게 된 것은 경제 도서 제임스 리카즈기 쓴 <은행이 멈추는 날> 이다. 책
<은행이 멈추는 날>에는 앞으로 2008년에 일어났던 서브프라임 무기지 사태와 같은 경제 위기가 다시 나타날 것이며,
금융위기 속에서 전세계 자산은 동결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커트 보니것의 <고양의 요람> 속에 등장하는 아이스
나인을 예로 들었다.커트 보니것의 <고양이 요람>을 읽게 된 것은 이 소설이 내포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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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구절>
이따금 그가 죽은 채로 태어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살아 있는 것들에 그렇게 무관심한 사람은 만난적이 없소. 가끔 나는 그것이 바로 세계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에 돌처럼 차갑게 죽어 있다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 말이오. (67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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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네거트 지음. 이 사람의 소설은 메시지가 그렇게나 분명하면서도, 또한 그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집중력을 잃는 순간 어려워져버리고 만다.
원자폭탄보다 더 무서운 '아이스-9'이라는 물질. 마치 아무 생각없이 실뜨기놀이(cat's cradle)를 하듯 그렇게 만들어낸 인류의 과학이 결국 우리에게 되돌아와 고스란히 파멸시켜버리는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담고 있다. 쓴소리도 직접 하는 것보다 돌려 말하고 비틀어 말하는 게 더 아프다는 걸 깨닫는다.
저자 본인이 그랬다던가? 이런 메시지를 담은 소설을 써봐야 정치인들이나 군인들은 읽지 않기 때문에 아무 보람이 없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정치인이나 군인이 될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읽힌다는 것에 희망을 갖고 있다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생각은 없었지만 누군가가 상처를 받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는, 똑똑하다는 사람들에 의해 우리 인류가 희생자가 되지 않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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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네거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고양이 요람"은 세계를 한방에 멸망시킬 수도 있는 무기를 개발한 사람에 대해 추적하고, 그 결과로 그 무기에 대한 사연도 펼쳐 보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고양이 요람"은 커트 보네거트의 다른 소설처럼 그 형식이 재미난 소설이기도 합니다. 소설이 짤막짤막한 장/절로 구분되어 있는데, 그 장 하나하나가 어찌보면 요즘 블로그 포스트 같기도 하고, 요즘 싸이월드 다이어리 같기도한 정도의 분량으로 되어 있어서, 그것 하나하나가 따로 떨어진 이야기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물론 블로그 포스트, 싸이월드 다이어리를 시간 따라서 줄줄이 읽을 때 처럼 이어서 보면 부드럽게 사연이 이어지는 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한 편 한 편 장을 구분해 놓은 것 때문에, 한 "장"마다 그 장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대사, 장면이 특별히 강조되어 보이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의 대사가 더욱 명대사처럼 보이고, 마지막에 배치된 풍자 장면이 더 강렬한 풍자로 보이고 있었습니다. 전체 이야기는 전체 줄거리만 보면 좀 쓸쓸한 이야기 속에서 시종일관 세상사 여러 면면들, 사람 인생 속의 여러 장면들을 가지각색으로 비웃으면서 넘어가는 느낌입니다. 그러면서도 대체로 시치미 떼는 짧은 문장들 때문에 그 비웃는 대상들이 묘하게 불쌍해 보여서 인간적인 느낌이 더 사는 구석도 있었습니다. 다만 저는 이 독특한 분위기가 절묘하기는 하지만, 줄거리에 격정적인 면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웃고 넘어 가는 구절구절도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처럼 시원시원하게 웃긴 것은 아니라서, 반복해서 읽으면서 좋아할만한 소설까지는 아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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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요람 Cat's cradle - 원래의 의미는 실뜨기 놀이. 실을 떠서 고양이의 요람같이 만드는 것인데 아무런 의미나 어려움이 없는 장난이기도 하지만, 여기에서 일어나는 그런 장난 같은 일이 현실에서는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지구의 모든 물을 얼려버리는 아이스-나인이 되기도 한다.
과학자는 특별한 동기나 주어진 과제가 아닌데도 개발한 기술이 결국 지구의 종말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 줄거리이다. 그가 의도한 것은 정부의 상층부에 자리잡은 우매한 병적인격(Psychopathic personality)에 대한 경고이자 각성을 촉구하는 글이다.
정상인들과는 달리 그들은 회의란 것을 전혀 모른다. 예비군을 동원하라! 공립학교를 민영화하라! 이라크를 공격하라!
먼저 읽은 갈라파고스와 유사한 줄거리와 전개로 이루어지는데 그의 생경한 문체에 익숙해지기가 쉽지는 않지만 기왕 산 책이니 어떡하든 다 읽어야 한다. 처음에는 유쾌 상쾌 발랄한 작가로 묘사되었지만 읽다보니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씩 후회하는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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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 된 작가 두 사람. 레이몬드 카버와 커트 보네거트. 첫 하루키를 읽은지가 어언 20년이 되어 가는 것 같은데 커트 보네거트 책은 이제서야 읽었다. 레이몬드 카버를 읽었을 때 만큼의 감명 깊음은 없었다,라고 일단 말해두고. 근데 생각해 보면 나는 하루키 책 중에서도 보네거트식 상상 쪽 얘기보다는 카버식 현실적인 얘기를 더 좋아했으니 처음부터 기대를 달리 했었어야 하는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어쨌든 재밌게 읽긴 했다. 웃겼고, 기발했고 나름 심오했고. 하지만, 난 역시 카버 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