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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를 어린 내가 읽었던가 읽지 않았던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수능 언어영역 문제집에서 보고는 안봤던가. 에이, 아무려면 어떤가. 기말고사가 끝난 후 가르쳐야 할 고등학교 2학년 문학 단원이 <어린왕자>라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정독해 보고자 학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렸다. 다 읽고 나서야 내가 가르칠 단원이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가 아니라 조세희의 패러디 작품인 어린왕자였다는 것을 알고는 순간 허탈해서 혼자 낄낄거리긴 했지만 말이다.
최근에 대안교실 담당자 연수를 1박 2일로 대구에 다녀왔는데 그 때 들었던 조벽 교수님의 강연 가운데 참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청소년기의 뇌는 전두엽이 리모델링 되는 중이기 때문에 어른들이 보기에는 비이성적이거나 비정상적으로 보이더라도 그게 오히려 정상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청소년기에는 뉴런을 연결하는 시냅스와 신경 세포가 굉장히 많이 늘어나기 때문에 말하자면 정보 전달의 교통 체증이 일어나서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어떤 엄마가 고등학교 다니는 딸에게 세탁기를 돌리는 방법을 가르쳤는데 나갔다가 돌아와서 보니 딸내미가 운동화 끈 달랑 두개를 돌려서 하얗게 빨아놓고 자랑스러워 하기에 어이가 없어서 야단을 쳤더니 딸은 당최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지를 못하더라는 식이다.
<어린왕자>의 어린왕자 또한 딱 그렇지 않은가. 사막에 불시착해서 죽을 지경인 비행사에게 양을 그려달라질 않나, 그렇다고 양을 그려주었더니 다 싫다고 마다할 땐 언제고 구멍 세 개 뚫린 상자를 그려줬더니 그제서야 양을 찾았다고 만족한다. 참 대단한 등장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른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물론, 우의적이고 상징적인 해석을 하면 다른 의미들을 읽어낼 수 있겠지만 질풍노도의 청소년 자식들을 데리고 매일매일 좌충우돌하는 나로서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딱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인 것만 같다. 세상 물정 모르는 것도, 눈치 없이 질문하는 것도, 가끔은 깜짝 놀랄 만한 통찰을 보여주는 것도 말이다. 내가 학생 때 읽었을 때는 뭐 이런 얼빠진 녀석이 있나 생각했었다. 누가 그랬다. <어린 왕자>는 읽는 시간, 시점, 나이에 따라 각기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소설이라고.(사실 소설이 안 그런게 있나.) 선생인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정답으로 강요하면서 색다른 생각과 창의적인 의견을 묵살해 오지는 않았는지 새삼 반성이 되었다.
늘 욕하고 떠들고 뛰어다니고 오토바이 타고 담배 피우고 서로 싸우고 헐뜯고 선생님한테 대들고 이 인간들이 인간인가 싶다가도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디엔가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라는 어린 왕자의 말 때문에 속이 터져도 꾹꾹 눌러참고 애써 웃으려고 노력해본다. 그래, 내가 열받는다고 이 인간들을 구박하고 욕하고 하기 보단 그래 막연하지만 이 녀석들의 속에, 또는 이 녀석들의 인생 어느 지점엔가에는 반드시 우물을 감추고 있을 거란 희망을 갖게 되기도 한다.
내 직업적인 견지에서 바라본 어린 왕자가 나의 학생들 같았다면, 이 책을 읽은 시점이 아내의 생일 일주일 전이었다. 이 시점에 참 잘 들어맞는 부분이 있어 생일 축하 편지에도 이 구절을 적어넣어 아내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어린 왕자는 장미꽃들을 다시 보러 갔다. "너희들은 내 장미꽃과 하나도 닮지 않았어. 나에게 너희들은 아무것도 아니거든. 아무도 너희를 길들이지 않았고 너희들 역시 아무도 길들이지 않았어. 너희들은 예전의 내 여우와 같아. 처음에는 내 여우도 수많은 다른 여우들과 다를 게 없었지. 하지만 내가 그를 친구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제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된 거야." 장미들은 몹시 당황했다. 어린 왕자는 말을 이었다. "너희들은 아름다워. 하지만 텅 비어 있어. 아무도 너희를 위해 죽어 주지 않을테니까. 물론 내 꽃도 지나가는 사람이 본다면 너희들과 똑같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나에게 그 꽃은 너희들 전부보다도 더 소중해. 내가 그 꽃에 물을 뿌려 주었기 때문이야. 또 내가 유리 덮개를 씌워 주었기 때문이야. 내가 바람막이로 보호해 주었기 때문이야. 나비를 위해 두세 마리 남겨 놓은 걸 빼고는 내가 벌레를 다 잡아 주었기 때문이야. 그 꽃이 불평을 하거나 자랑을 늘어놓는 것을, 또 때로 말없이 침묵을 지키는 것을 내가 귀 기울여 들어 주었기 때문이야. 그건 바로, 내 꽃이기 때문이야." 어린 왕자는 여우에게로 가서 작별 인사를 했다. "잘 있어." "잘가. 내 비밀은 이거야. 아주 간단한 건데...... 그건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어린 왕자는 기억해 두려는 듯 따라 말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네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네가 그 꽃을 위해 사용한 시간들이야." "내가 내 장미를 위해 사용한 시간들이야." 어린 왕자는 또 한 번 중얼거렸다. "사람들은 그 진실을 잊어버렸어. 그래도 너는 잊지 마.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넌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는 거야. 너는 네 장미에게 책임이 있어......" "나는 내 장미에게 책임이 있어......" 결코 잊지 않으려는 듯 어린 왕자는 되풀이 했다.
여우의 말을 빌자면 길들인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김춘수의 꽃에서도 내가 그에게로 가서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가 나에게 꽃이 되었던 것처럼, 내 장미꽃도, 내 아내도, 내 학생들도 내가 길들인 것만큼, 또 내가 그들을 위해 사용한 시간 만큼 스스로 그들을 소중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것이 내가 해 준만큼 그들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집착이나 소유욕이 아니라, 내가 길들인 것들에 대한 책임으로 그들을 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랑하는 내 아내와, 징그럽지만 이쁜 내 학생들을 얻는 대가일 것이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