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을 오랜만에 딸과 함께 보냈습니다. 학교도 아닌데 방학이 있어 그 동안 외가에 가서 외할머니와 함께 지내다 오랜만에 돌아왔습니다. 그 사이 또 큰 것 같고 말도 더 많이 는 것 같습니다. 하는 행동 하나 하나가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즐거워집니다. 제 딸 이름은 동주입니다. 정본 윤동주 전집을 샀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그의 시 전부였다고 알고 있었는데, '정본' 윤동주 전집이 나왔다길래 샀습니다. 1948년, 1955년, 1976년 세 차례에 걸쳐 편집 발간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윤동주 자신에 의해 출간된 것이 아니라 검증의 과정을 거쳐야 했음에도 그러지 못했는데, 1999년 유가족의 용단으로 드디어 윤동주의 육필 원고를 그대로 실은 《(사진판) 윤동주 자필 시고 전집》이 나왔습니다. 《정본 윤동주 전집》은 이를 토대로 한 원전 '확정' 작업의 결과물이라 합니다. 이 작업을 통해 <창구멍>, <가슴2>,<개2>,<울적>,<야행>,<비 뒤="">,<어머니> 등 7편이 추가되고, <오줌싸개 지도="">,<곡간>,<참새>,<둘 다="">,<산림>,<삶과 죽음="">,<벌 헤는="" 밤="">,<아침>,<내일은 없다="">,<양지쪽>,<무얼 먹고="" 사나="">,<만돌이>,<아우의 인상화="">,<이별>,<한난계>,<자화상>,<눈 오는="" 지도="">,<흐르는 거리="">,<사랑스런 추억=""> 등의 시는 새로운 연이 추가되거나 연의 배치가 달라지거나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텍스트를 원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 외에 잘못 옮겨진 어휘나 어구도 바로잡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연의 배치를 바꾸고 새로운 연을 추가하고, 심지어 <별 헤는="" 밤="">의 마지막 연을 삭제했다고 해도 저에게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습니다. 사실 엮은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면 전 바뀐 사실조차 몰랐을테니까요. 원본 확정 작업이 문학사적으로 분명히 의미가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저처럼 문학을 업業으로 하지 않는 사람에게 윤동주는 그저 윤동주로 기억될 뿐입니다. 언제 읽어도 숙연해질 수밖에 없는 진실성을 지닌 불멸의 작가로 말입니다. 내 자신이 부끄러워질 때 <자화상>이 생각나고 <참회록>이 생각나고 <별 헤는="" 밤="">이 생각나도록 만드는 그런 시인으로 말입니다. 하여, 제 맘 속에 영원히 기억남을 이름으로 삼기 위해 제 딸의 이름에 윤동주의 이름을 빌어왔던 것입니다. 새벽에 일어나 다시 윤동주를 읽었습니다. <해바라기 얼굴="">을 읽다가 예전에 슬기둥이 불렀던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흔히 이 시를 동시로 분류를 하는데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동시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슬프기 때문입니다. 사실 시집을 리뷰한다는 것도 좀 그렇고, 게다가 윤동주의 시를 리뷰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해서, 다시 읽다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 시 한 편을 골라 옮겨 적는 것으로 리뷰 아닌 리뷰를 마칠까 합니다. 내일은 없다 - 어린 마음이 물은 내일 내일 하기에 물었더니 밤을 자고 동틀 때 내일이라고 새날을 찾던 나도 잠을 자고 돌보니, 그때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더라. 무리여! 내일은 없나니 …… 1934.12.24해바라기>별>참회록>자화상>별>사랑스런>흐르는>눈>자화상>한난계>이별>아우의>만돌이>무얼>양지쪽>내일은>아침>벌>삶과>산림>둘>참새>곡간>오줌싸개>어머니>비>야행>울적>개2>가슴2>창구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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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간만에 윤동주의 시를 읽었다. 가끔 다른 책들이 잘 읽혀지지 않고 머리가 아프면 시를 읽는다. 그 중 가장 즐겨 읽는 책이 바로 그의 시다. 또 내가 닮고 싶으며 배우고 싶은 형태의 글을 쓴 사람도 윤동주다. 그의 시는 매번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절대 물리는 일이 없다. 그래서 곱씹어 자꾸만 읽게 된다. 그의 시를 읽다보면 내면의 거울을 보고 있는 듯하다. 마치 손으로 직접 사물을 만지는 느낌이 가슴에 와 닿는다. 우울한 듯 보이면서 그리움이 담겨 있고 또 한편으로는 희망을 말한다. 다른 이에 대한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에 충실함 그의 모습에 언젠가 나도 모르게 매료당했다.
중학교 때 처음 그의 시를 만났다. 제목도 잊혀 지지 않는다. '십자가' 아직도 이 시가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고 있는 모르겠다. 당시 기독교를 믿고 있지는 않았지만,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가 그에게 있음을 느꼈다. 그의 시에는 시대의 아픔이 있고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고민이 담겨 있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십자가'의 일부분이다. 그가 정확히 어떤 의미에서 이 시를 써는지는 모르겠다. 나라를 잃은 시대 상황 속에 민족적 사명을 위한 시인지, 아니면 이상적으로 모든 이들을 위해 헌신한 예수라는 이에 대한 존경심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반어적인 의미에서 예수의 부활에 대한 죽음을 부러워 한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의 순수성이다. 그의 가장 대표적 시인 '서시'(원래는 제목이 없다고 한다.)를 보면 그가 어떠한 성품을 지니고 있는지 충분히 볼 수 있다. 정직하면서 순수한 그의 모습을 통해 올곧음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자화상'이란 시 중 한 부분이다. 어떤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자기 내면에 대해 너무 자세히 묘사하고 있지 않은가? 대부분 사람들은 때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싫어질 때도 있고 가끔은 그래도 나란 사람 조금은 괜찮은 사람인데 생각하면서 위안을 얻고는 한다. 이런 부분을 글로써 옮기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아주 자연스럽고 꾸밈없이 글로 그림을 그리는 스스로의 모습에 대해 옮겨 놓았다. 그런 그의 글을 보면 나도 모르게 동의하는 마음이 들게 된다.
아쉽게도 그는 해방 바로 직전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들리는 설에 의하면 생체 실험에 간접적으로 이용당해 죽었다고 한다. 이러니 일본이란 나라를 쉽게 좋아할 수가 없다. 그 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그의 시는 아직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나 같은 이에게도 읽히고 또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줘 삶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윤동주, 지금의 내 나이보다도 세상을 살지 못하고 먼저 가 버린 사람. 이십대 젊은이의 고뇌와 번민이 느껴지는 그의 글들을 통해 내 이십대를 돌아보고 반성을 한다. 그리고 비록 그는 내 나이만큼 살지 못했지만, 그 순수했던 이상을 통해 내가 가야할 길을 점검해 본다. 그가 꿈꿔왔던 것, 그리고 하고자 했던 것들, 비록 그는 할 수 없었으나 할 수만 있다면 대신 그 짐을 짊어지고 그의 가지 못했던 그 길을 가보고 싶다. 괴로웠지만 행복했던 예수의 길을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윤동주. 그는 충분히 그 길을 갔다. 이제는 내가 그 끈을 이어 잡고 그가 마저 가지 못했던 길을 가야겠다. 내 남은 생애 동안에 최선을 다해 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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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올려다보니 푸른 새벽이 산빛을 깨우고 있었습니다
또 아름다운 세상이 하루를 시작하나 봅니다
세상은 이토록 아름다운데 그 안에 있는 나는 못난 모습으로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려고만 합니다
세상과 대화를 나눌 준비도 하지 않고 귀찮아 하는 투로 행동하지만 사실 두려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빌딩 앞을 지나칠 때면 늘 보게되는 건물벽에 내걸린 큰 걸개그림에 씌여진 글이 자꾸 마음에 와 닿습니다
희망하라! 삶을 두려워 하지 마라! 그런 나날인가 봅니다
세상을 향해 크게 기지개를 펼치고 일어설 그런 날인데 말입니다
나는 스스로 움추려들고만 싶어합니다
그렇게 세상에 나서기 보다는 안으로 나에게만으로 향하는 목소리를 되뇌입니다
그 소리들은 늘 이래서 할 수 없고 그러니 이만큼에서 멈추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정진하지 못하고 후퇴하는 길을 선택하는 말들이 내 발목을 비끄러매어 붙잡습니다
모처럼 윤동주의 시를 읽는 날입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윤동주의 시집을 언제 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1948년 정음사에서 나온 책이 1982년 중판으로 책꽂이 꽂혀있습니다
동생의 이름 중 한자가 한 자로 적혀 있는걸 보니 동생이 사놓았나 봅니다
1999년 윤동주 시인의 자필 원고를 가족들이 내어놓으며 사진판 자필 시고가 민음사에서 간행되며
그동안 정음사판에 실린 시들의 재해석이 이루어졌나 봅니다
잘못 옮겨진 것들을 바르게 하고 새로운 해석으로 시를 홀쳐내기도 하며 정본이란 이름을 단 전집을 문지에서 간행하였는데
그동안 문외한의 모습 그대로 이러한 책들이 언제 나왔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이제서야 만나게 되었습니다
민음사간 사진판 자필 시고전집은 절판이 되어 있어 안타깝게도 시인의 자필 원고를 볼 수 없습니다
정말 지니게 된다면 뜻깊은 기념이 될 듯한데 ..,
욕심이 부랴 부랴 살아납니다
시인의 전집을 받아들자 말자 제일 먼저 서시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차례 어디서도 서시라는 제목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까까머리 시절 읽은 시의 첫 구절은 젊은 날의 표상으로 받아들이고 말 정도로 정신을 깨쳐 놓았는데
십대 시절의 애틋함과 순수를 그만큼 잘 읽어낸 시가 또 있을까요?
그리하여 윤동주 하면 서시가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데 서시가 없는 전집이라니 ..,
다시 처음부터 차근 차근 보니 분명 시인이 생전에 남기 모든 글을 실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차례의 어디에서도 서시라는 이름의 시는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자필 원고가 세상에 알려지며 서시가 윤동주 시인의 시가 아니임이 밝혀져 빠진건 아닐까 하는 얼토당토 않은 생각에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힘이 빠진 눈길로 맨 처음부터 시를 하나 하나 읽어 나가다 보니 뒤쪽에 가서야 서시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제목은 무제였습니다
'서시'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는 설명까지 달려 있더군요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너무나 반가우면서도 무제라는 생경스런 제목이 서시에 붙어 있으니 참으로 고약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몇몇 시를 쓴답시고 펜촉을 사각거리다가
괜한 멋스러움을 부리고 싶을 때, 명확한 뜻도 없는 시에다가 곧잘 붙이곤 하였던 이름이 무제였는데
제목없음이란 그 제목이 너무나 멋스러워 시인들의 제목을 달며 한껏 멋을 부리던 시절의 그 제목 .., 제목없음
아무튼 서시는 그렇게 무제라는 이름을 달고 반듯하게 놓여져 있더군요
시인의 시를 읽노라면
우릿말의 아름다움을 가슴으로 느낄 수가 있습니다
어느 시인이 모국어를 아름다이 표현하지 못할까요
윤동주 시인의 시어들은 싱싱하고 순수해보여 더더욱 가슴에, 젊은이들의 가슴에 쉽게 표착되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오래 그의 시와 글을 만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짧은 생을 살다간 그의 삶에 많지 않은 그의 언어들이 세상에 남겨져 그를 대신하여 오늘도 밤마다 바람에 스치우는 별빛으로 하늘에 있습니다
전집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나 얇은 그의 책을 조금씩 조금씩 아끼듯이 읽어나가야 할 듯합니다
다 읽고나면 어딘지 서운한 마음에 시인의 곁을 서성일 듯하여 ..,
그 시절 그 무서운 시절에도 우릿말을 정갈하게 짓고 살뜰하게 다듬었던 이가 있어
지금 이렇게 무딘 세월 속에서도 아름다운 낱말들을 길어 올릴 수 있게 된 것이겠지요
세월을 이겨내고 늘 곁에 남아 있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존재들을 생각해야 할 그런 즈음입니다
삶을 두려워 하지 않아야 할 그런 가을로 성큼 한 걸음 디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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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개관한 윤동주 문학관을 둘러보다가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글귀 속에 담겨 있는 그의 생각과 감정들이 나를 숙연하게 했다. 어쩜 그렇게 깊을 수가 있을까...조화로울 수가 있을까... 문학관 밖의 산책로를 걸으면서 내내 그의 마음을 헤아려보게 되었다. 그는 새벽마다 이 길을 어떤 생각을 하며 걸었을까.
윤동주의 시는 읽는 시기에 따라서 늘 그 의미가 달리 읽혀진다. 내 삶의 마지막 날에 단 한 권의 책을 읽는다면 그의 시를 또 다시 음미하고 싶다. 내 삶도 한 점 부끄럼이 없게될런지...과연 어떤 의미로 읽혀지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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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의 나이로 생을 마친 윤동주의 17살부터 25살까지의 시들과 서너편의 산문이 묶인 그의 일대의 작품 전집이다. 윤동주의 시는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어리고 단순하고 사랑스럽다. 서시나 별헤는 밤, 자화상의 그가 아닌 사과, 거짓부리, 애기의 새벽, 봄의 그는 내가 알던 윤동주가 아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텐데... 나는 28이 지나고부터 점점 동주의 모습에서 멀어져만 가는것만 같다. 나는 내가 아닌 사람으로 자꾸 나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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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딤돌 (김종철 외)> 중학교 국어 1학기 교과서와 <미래엔 컬쳐 그룹 (이남호 외)> 2학기 생활국어에 실린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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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 윤동주
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몽긔몽긔 웬 내굴 대낮에 솟나.
감자를 굽는 게지 총각 얘들이 깜박깜박 검은 눈이 모여 앉아서 입술이 꺼멓게 숯을 바르고 옛이야기 한 커리에 감자 하나씩
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살랑살랑 솟아나네 감자 굽는 내.
* 내굴 : 내. 연기. 몽긔몽긔 : 뭉게뭉게 커리 : 이야기를 헤아리는 단위로 쓰인 듯함. ------------------------------
* 목연 생각 : 많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시의 하나인 <서시>의 작가
윤동주의 작품입니다. 지금도 이런 풍경이 있을까요? 동리 총각들이 어느 친구네 집에 모여서 감자를 구워 먹으면서 흥겹게 정담을 나누는 모습…. 지금은 사라진 풍경입니다. 시골에 그런 청년들도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게임방에 가거나 등산을 가겠지요. 친구집에 모여서 감자를 구우면서 한담을 나눌 만큼 여유 있는 젊은이는 거의 없을 테니까요. 어디 청년뿐입니까? 시골에서는 아가씨들도 찾아보기 힘들더군요. 모두 꿈을 찾아 도시로 나왔겠지요. 나의 학창 시절에는 이런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집에서 일손을 돕는 청년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겨울밤이면 친구네 집에 모여서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했고요. 내가 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그런 친구나 선후배가 많았답니다. 겨울이면 라면 내기 고스톱도 쳤고, 막걸리 잔을 나누기도 했지요. 그 무렵에는 시골의 내 고향에는 아가씨들도 많았습니다. 단오 그네대회나 추석맞이 콩클대회 등 마을에 어떤 행사가 있을 때는 곱게 단장을 하고 나오곤 했지요. 지금이야 집집마다 아이를 낳지 않으니 청소년도 드물고, 있다고 해도 공부하기에 바쁘니 여유가 없겠지요. 그냥 옛 생각이 나면서 무엇인가 사무치게 그립기만 하네요. * 윤동주(1902~1934) : 시인. 만주 북간도 명동에서 태어남.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시샤(同志社) 대학 영문과 재학 중 항일 운동을 했다는 혐으로 체포되어 1945년 2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함. 그의 시는 식민지 치하의 괴로운 시대를 살아아가면서 양심에 출실하고자 끊임없이 번민하는 젊은이의 순결한 내면을 투명하게 보여 줌.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자료 출처 : <디딤돌>과 <미래엔 컬쳐 그룹>에서 펴낸 2010학년도 중학교 1학년 국어와 생활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으며, 시에 대한 느낌은 저의 생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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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의 시는 아름답다.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는 하늘, 바람과 별과 시외에도 아름다운 서정시가 많은데 이 책은 그동안 윤동주 시인의 시 중에서 잘못된 해석으로 쓰여진 시들을 최대한 복원해서 남긴 시가 담겨있다. 특히 시인이 어린시절부터 쓰기 시작한 시와 학창시절, 일본에서 쓴 시까지 나눠서 적혀 있어서 시인의 시와 시를 쓰는 시인의 감성이 어떻게 흘러왔는 지 알 수 있게 쓰여진 시집이다. 시 모임에서 사람들은 각자 다른 시가 마음에 들었고 나는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 인생이 항상 새로운 길을 갈 수 없지만, 매일 걷는 이 길이 새로워질 수 있도록, 매일 걷는 이 일상이 새로워 질 수 있도록 마음이 변하면 되지 않겠냐는 느낌이었다. 세밀한 감성, 인간의 감정들을 어떻게 잃게 묘사해 낼 수 있는지, 너무나 아름다운 시 덕분에 오늘 나의 마음도 위로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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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본 윤동주 전집 기존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오류를 바로 잡고 새로 원전을 확정하여 엮었다. 그 중에서 네 편의 시를 선택하여 감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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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윤동주의 시집이다. 민족주의 정신, 자연과 별을 노래한 시인이다. 시를 읽으면서 그는 고뇌하는 청년이었으며, 자기 희생을 통해, 혹은 자기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자 노력한 그런 청년이었다. 다행히 48년에 유고집이 나와 우리에게 알려져서 다행이다. <참회록>을 보면 녹이 낀 거울을 보면서 현재의 모습을 참회하고, 녹을 지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이고, <자화상>을 보면 자기 연민과 자기의 이상의 모습이 보이고, <십자가>를 보면 십자가를 지고 피를 흘리려는 희생 정신을 볼 수 있다. 고뇌하는 청년의 모습이다. 한편으로는 <별 헤는 밤> 서정적이다. 고향을 떠나 왔지만 언덕에 올라가 별을 쳐다본다. 별 하나에 추억과 / 별 하나에 사랑과 / 별 하나에 쓸쓸함과 / 별 하나에 동경과 / 별 하나에 시 / 그리고 별 하나에 어머니, 제일 생각나는 분은 어머니이다. 그리고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과, 별 하나에 친구들의 이름과, 별 하나에 토끼, 강아지 이름을 붙여본다. 비록 이 땅에서는 이 아름다운 말과 친구들의 이름을 사용할 수 없고, 나의 이름조차 땅에 한번 써보고, 지워버리지만 결국 봄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팔복> 같은 시를 보면 마태복음을 변용한 시인데, 절망 같은 것이 느껴진다. 복이 있어서 천국이 와야 하는데, 영원히 슬플 것이라는 슬픔을 가지고 있다. 이 시집은 아마 윤동주의 전체 시를 싣고 있을 것이다. 초기 시집에는 31편이였다고 하니 많이 발견돼서 수록되었다. 시대순으로 실려 있어 시간이 갈수록 시가 좋아진다는 느낌을 버릴 수 가 없다. 그래서 이분이 감옥에서 옥사하지 않고 해방을 맞았다면 더 좋은 시를 만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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