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지금 예루살렘에 있죠. 어느 사막에 아내와 세 아이들과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읽었어요. 부럽군요. 당신 창에서는 사막이 보이나요? 그런 곳을 보면서 이글을 생각해 냈나요? 마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분이었겠죠. 난 당신의 책 두 권을 읽었어요. 나의 미카엘과 블랙박스. 여자를 안다는 것도 읽었지만 별루였어요. 당신은 남자이지만 여자를 더 잘 써요. 앞으로 남자는 주인공으로 쓰지 마세요. 지루해서 죽는 줄 알았어요.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솔직하게 말할 께요. 여자를 안다는 것은 중간까지 읽다가 말았어요.) 블랙박스는 대부분이 편지로 이루어져있죠. 그래서 이렇게 된 거에요. 내가 당신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된 거죠. 사실 많이 망설였어요. 삼일을 망설였죠. 내가 이걸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당신은 읽지도 못할 텐데... 그치만 그냥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별은 이야기를 듣지 못하지만 사람들은 별의 모양(정말 이상하게 모양들을 만들어내죠. 솔직히 전 그 모양들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아직도 모르겠어요.)을 가지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후대에게 전하죠. 그런 심정이에요. 나의 미카엘을 읽고, 조금 지루했지만 나름대로 감동받았어요. 나중에는 지루해서 감동하지 않았나 싶기도 했죠. 삶이 원래 지루하잖아요. 지루하지 않은 책은 삼류수준의 베스트 셀러 뿐이죠. 숨 가쁘게 조여 오는 상황과 섹스장면들...... 그런 것에 마취될 만큼 난 타락하진 않았어요. 그러니 힘내요. 아모스. 패기만만한 이십대 후반의 책과 지금의 책인 블랙박스. 당신에 대해서 말하게 만들더군요. 당신의 감수성을 뭐라고 할까요? 왜 끌린다고 할까요? 내가 지금 이글을 왜 쓴다고 말하면 합리적일까요? 솔직히 모르겠군요. 알렉과 일라나, 그리고 솜모, 보아즈. 이들이 서로 주고받는 편지글로 되어있는 블랙박스는 처음에는 집중하기가 좀 힘들더군요. 요새말로 처음부터 너무 들이대는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일라나의 말투는 뭔가 잡아당기는 면이 있어요. 아모스. 당신 아내의 느낌인가요? 당신은 남자잖아요. 근데 어쩌면 그렇게 여자의 맘을 잘 알죠? 왜 당신의 책을 읽으면 내 마음에 빗질을 하는 느낌이 드는 거죠? 왜 정리가 되죠? 혹시 당신 양성인가요? 그런가요? 아니에요. 미안해요. 흥분했네요. 당신의 남자들을 보세요. 알렉. 냉혹하고, 한편으론 약하죠. 열정이 없어요. 솜모는 전형적인 작은 남자죠. 열광에 휩싸였지만 우스꽝스럽죠. 당신은 남자를 싫어하나요? 그렇죠? 보아즈는 아마 당신의 이상향인가 봐요. 하지만 현실성은 없죠. 어딘지 유토피아를 사람으로 뭉쳐 놓은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하지만 보아즈의 생활은 좋아요. 괜찮았어요. 하지만 여기 내가 살고 있는 나라에서는 불가능할 거에요. 사람들이 현실에 굉장히 집착하는 곳이거든요. 이렇게 길게 써 봤는데도 내가 왜 이글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어쩌면 일라나의 글을 흉내 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전 작가 지망생이거든요. 여긴 한국이에요. 놀랐죠? 이스라엘에서 당신이 쓴 글은 여기 한국독자에게도 닿아서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어요. 자랑스럽나요? 즐겁나요? 의기양양한가요? 힘내세요. 더 쓰세요. 더 밀어 부쳐보세요. 유토피아를 만들지 말고, 끝까지 현실적이 되세요. 여기 한국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로 기운을 내세요. 기다릴 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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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교수로 있는 알렉과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알리나는 7년 전에 이혼한 사이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그녀가 편지를 보내오고 내용인 즉슨 그들 사이에 난 아들인 보아즈가 집을 나간 사건이 발생이 되고 퇴학 당하기 전에 아들이 원하는 농업학교에 보내기위한 돈이 필요하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녀는 이미 미카엘 솜모란 남성과 결혼을 했으며 그들 사이에 마들렌이파트란 딸이 있음을, 보아즈는 자신을 창녀로 불른단 내용까지 적어보낸다. 그런 그녀에게 알렉은 돈을 보내게되면서 그들 사이에 쌓였던, 결혼을 하기까지의 과정과 이혼을 할 당시에 있었던 일까지를 전부 편지의 형식으로 만든 내용으로 이루어져있다. 하지만 이 일은 곧이어서 그녀가 정작 편지를 보낸 진심은 아직도 알렉의 그림자가 자신의 결혼생활 내내 머물고 있단 사실, 아직도 그를 그리워하고 있단 솔직한 맘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정작 알렉은 그 편지를 받고서도 냉정함을 잃지않는 태도를 보이고 법적인 판결로 서로에게 아무런 짐이 되지않는단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원하는대로 그의 변호사인 차크하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돈을 연이어 보내줌으로서 그간의 자신의 행동에 대한 속죄의 일부를 면죄받고자하는 행동을 보인다. 그런 가운데 철저한 이스라엘 건국의 활동을 위한 행동을 하는 그녀의 남편인 미셸은 알렉의 과거행동을 비판하고 그에 대한 응당의 보상으로서 돈을 받아야한단 논리를 내세우면서 알렉에게 건설에 필요한 돈을 요구하는 행동까지 하게되고 점차 자신의 행동에 변화가 오고 있음을 알지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 책은 그런점에서 편지란 형식을 취하고 있기에 어쩌면 면전에대고 서로에 대한 불만사항들, 그간 알고싶었지만 이미 끝나버린 과거에 대한 궁금증을 쉽게 풀어내고 화해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내고 있으면서 이스라엘 작가답게 자신의 나라가 처한 상황에서 부딪치는 아랍인들과의 정세유지같은 현 상황에 대한 비유도 각 인물을 통해서 각기 다른 주장을 펼쳐보인다. 시온주의자니, 안식일이니, 유대인이란 관념이 없이 한 학자로서 비판의 자세로 일관하는 알렉의 자세, 이민자의 출신으로 이스라엘에 정착한 미셸의 철저한 애국주의자를 선봉하고 그에 따른 행동과 유대인의 의식을 갖고있는 모습, 아랍인이나 이스라엘인이나 어느 선이 반드시 옳고 나쁘다고 선을 긋지않는 것에서 서로의 다름을 존중해서 공동된 생활을 주장하는 보아즈의 행동들은 현 이스라엘이 갖고있는 정치적인 주장을 내세우는 대표격을 내세웠단 점에서 작가가 지향해 온 주장을 쉽게 알 수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궁금증을 어느정도는 해소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신장암으로 인해 얼마 남지않은 삶을 이스라엘에 돌아와서 옛 집에 보아즈가 살고 있는 곳으로 와서 삶의 마지막을 마치려는 알렉이 미셸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나 알리나가 딸을 데리고 간 현 남편인 미셸에게 보낸 알렉을 간호하는 일상의 모습을 담은 내용들은 자기주도로 사랑을 이뤘고 결혼하고 부정을 저질러서 이혼까지 이른 여인이 아들의 아버지이자 한 때는 남편이란 이름으로 불렸던 옛 남자를 인간대 인간으로서 간호하는 과정은 새삼 이혼이 다 무슨소용이 있으랴 싶은 맘이 들게도 한다. "우리는 비행기가 추락 한 뒤에 편지를 주고 받으며 블랙박스의 내용을 분석했소.-p129 결국은 알렉이 쓴 내용처럼 이 소설은 상처가 긁고 지나간 자리에 왜 우리가 이래야만 했는지에대한 반성내지는 회한, 그리고 화해와 용서를 담아가는 과정을 담았다고 할 수 있다. 각 인물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드러난 인간들이 지닌 각기의 모습을 투영해 본 심리묘사와 성서의 내용을 인용해서 철저한 시온주의자를 주장하는 미셸의 순수하고 순종적인 모습이 돈에 취해 점차 달리 변해가는 모습은 꼭 이 사람만이 그렇다고 할 순 없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비쳐주는 것 같아 씁씁하기도 하다. 이스라엘의 작가 작품은 처음이라서 그런가, 영미와 불어권, 스페인어권의 문학과는 전혀 다른 맛을 풍기고 있다. 더군다나 이혼한 부부간의 원망, 용서, 화해란 점을 화두로 내세우면서 작가가 지향하고있는 정치적인 색채를 느낄 수있단 점에서, 또 현재 절판된 책이란 점에서 두루두루 이색적인 면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