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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배경청년의 일, 배움, 성장에 관하여 신붓감을 찾아 해외까지 진출한 농촌 총각들. 결혼 주선 단체를 통해 얼굴도 모르고 말도 통하지 않는 남성과 하루 만에 혼인신고를 하고 낯선 타국으로 건너온 외국 처녀들. 나의 부모처럼 자연스럽지 않은 결혼으로 맺어진 수많은 남녀는 다 어디에서 가정을 꾸렸을까.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나 같은 아이는 지금 어린 어른이 되었을까. 나와 내 동생들의 삶을 생각하다 보면 늘 이런 질문에 이른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나의 이야기를 쓰기로 한 것 같다. 16p 이주여성이 일터에서 겪는 가장 문제는 서툰 한국어에서 온다. 이주 초반에는 지역 사회복지관 등 에서 한국어 교육을 받지만, 집안일과 바깥일로 바쁜이들이 한국어를 공부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읍내에만 있는 사회복지관에 꼬박꼬박 다니기 쉽지 않다. 교육을 꾸준히 받지 못하고, 만나는 사람도 대화의 주제도 한정적이기에 한국어 실력이 일정 수준에서 더 이상 늘지 않는다.59p 엄마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졌타고말하지만 사실은 이 일들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다. 이주 결혼의 뒤에는 한국 정부와 통일교가 있었다. 잉여 남성 및 노인 부양과 기피되는 지방의 일자리를 채우기 위해서였다. 나는 엄마가 한국에서 더 나은 생활은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할머니가 엄마를 한국인 며느리처럼 대했더라면, 아빠가 엄마에게 더 살가웠더라면, 시골과 도시의 접근성이 더 좋았더라면, 사회가 가사 노동과 농사의 가치를 알아줬더라면, 결혼이주여성을 존중했더라면, 엄마는 상처받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나는 엄마의 안녕을 바란다. 20년 넘는 시간 동안 타지에서 겪은 수고를 보상할 만큼의 휴식을 취하고 새로운 행복을 찾기를 바란다. 엄마 그 자체로 존중받는 곳에서.94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