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퇴근 길에 오며 가며 읽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440여 페이지 분량의 책이지만, 어느 한 부분 막힘 없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역사서이기는 하지만, 제가 지금까지 읽어온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책이었습니다. 고고학이라는 학문이 이토록 가깝게 느껴진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한 경험입니다. 고고학자라고 해봐야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해리슨 포드만 생각날 뿐 실제 고고학자의 이름은 단 하나도 알지 못했습니다. 다행히도 이 책을 통해 저자인 조유전을 비롯해, 김원룡, 이병도, 유태용, 이형구 등의 이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저자 조유전은 1971년 무령왕릉 발굴을 시작으로 1977년 경주고적발굴 조사단장을 맡으며 30여년 간 안압지, 황룡사지, 감은사지, 월성 황남대총, 천마총 등 한국사 유물·유적의 주요 발굴 조사를 주도한 명실공히 '한국 고고학의 산 증인'이라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저자가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발굴 현장의 이야기를 30 개의 꼭지로 나눠 다루고 있습니다. 마치 현장의 상황을 생중계하듯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흥분할 때 함께 흥분하고 저자가 안타까워할 때는 함께 가슴이 아파옵니다.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나도 고고학자가 되어 그들의 상상의 세계에 함께 묻힙니다. 그러나 정말 안타까운 것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역사적 지식들을 책을 덮음과 동시에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마치 봄날 꽃가루가 날리듯 훨훨 날아가 버립니다. 이는 순전히 제 머리가 나쁜 탓이요, 일찌기 역사 공부를 게을리한 탓에, 이 방면으로 나의 뇌에 시냅스가 제대로 연결되어 있지 못한 때문일 것입니다. 출근길에 맨날 지나치는 한강 너머 구의동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고구려 최전방 초소이며, 고구려 제국 완성의 상징인 구의동 유적이 1970년대 개발의 미명 아래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한강 남쪽에서 잠실대교 북단으로 건너가다 보면 오른쪽에 한양아파트가 보입니다. 그 한양아파트 24층, 바로 그곳이 구의동 유적입니다." 아파트 숲으로 변해 온데간데없는 유적의 흔적을 애써 찾아보려는 옛 발굴단원의 공허한 말에 가슴이 아파옵니다. 회사 근처에 있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도 시간을 내어 꼭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1971년 무령왕릉 이후 백제 유적 최대의 발견,발굴이라고 일컬어지는 풍납토성. 연인원 4백만명이 동원되어 쌓은 한성 백제의 국운을 건 대역사의 현장이 바로 코 앞에 있었습니다. 눈 앞에 있어도, 모르면 보이지 않습니다. 무분별한 개발 때문에 영영 사라져 버릴 수도 있었던 귀중한 유산을 이름 모를 시민에 의해 극적으로 발견하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게 됩니다. 지나가던 신문배달 소년이 발견한 함안 마갑총, 주류가 아니라는 이유로 배척당했지만 끈질긴 추적으로 끝내 한성백제 500년의 비밀을 파헤친 이형구 교수의 풍납토성 발견 스토리, 개발의 미명 아래 완전히 파괴될 뻔한 완주 갈동 거푸집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금세기 최대의 발굴이자 최악의 발굴 기록으로 남은 무령왕릉 발굴 뒷 얘기와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일본식 장고형 고분 이야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이 외에도 남한산성이 치욕의 성이라는 편견을 버려야 하는 이유와, 일제 시대 포석정이 사적 1호가 된 슬픈 사연을 알 수 있습니다. 어지간해서는 접하기 힘든, 발굴 현장의 생생한 모습과 유적과 유물을 통해 역사를 맍드는 고고학자들의 상상력의 세계에 매료되었습니다. 이를 정말 생동감 있게 그리기 위해 과거의 기억을 짜내고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느라 고생했을 노학자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인디아나> |
| 요즘은 완전히 아들의 역사책 보기에 휘말려 나도 역사책만 보고 있다. 유물과 발굴현장이 생생한 사진으로 매 페이지마다 실려 있다. 마치 유물발굴의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이 작가가 사회교수라고 하는데 발굴될 당시의 모습을 상세히 알려줘서 더욱 재미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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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의 기록은 다 옳을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은 사서의 기록이 옳지만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왕조가 바뀌는 시기의 역사가 그렇다. 궁예는 『삼국사기』나 『고려사』의 기록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았을까. 신라의 경애왕은 왕비와 궁녀 및 왕실의 친척들과 포석정에서 잔치를 베풀며 즐겁게 놀다가 적군이 쳐들어오는 것을 알기 못했던 것일까. 그러한 것을 밝히는 열쇠는 고고학을 통해 가능할 수 있다. 유적의 발굴을 통해 나타난 사실과 사료들을 비교함으로써 역사의 진실이 밝혀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 미스터리』는 고고학자 조유전이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내용들을 수정 보완하여 새롭게 만들어 낸 우리 역사의 발굴기이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의하면 진구황후[神功皇后]가 보낸 왜군이 369년 한반도에 건너와 7국(國)과 4읍(邑)을 점령하였고, 그뒤 임나(任那:伽倻)에 일본부가 설치되었으며, 562년 신라에 멸망하였다고 한다. 즉 일본은 369년부터 562년까지 약 200년 간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으며 중심기관이 가야에 두어진 임나일본부라는 것이다.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도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거론되었다. 비문의 신묘년(391년) 기사를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임나·신라 등을 격파하고 신민(臣民)으로 삼았다"고 해석하여, 당시 왜국의 한반도 남부 지배를 알려주는 결정적 증거라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역사 왜곡의 진실은 고고학에 의한 유적 발굴을 통해 진실을 밝혀 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유물에 대한 조작이 감행되기도 한다.
이러한 역사 왜곡은 잘못된 사서에서 기인되기도 한다. 후한서 동이전을 보면 "마한인은 소나 말을 탈 줄 모른다. 진한인은 소와 말을 타고 부릴 줄 알았다."는 기록은 수레바퀴 부속품과 수레를 끄는 말의 고삐가 연결되는 가로걸이대의 발굴로 인해 사실이 아님이 여지없이 밝혀지고 만다. 고려 충렬왕 때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호도가 들어왔다는 사실은 전남 신창동 유적에서 기원전 1세기 마한인의 유적지에서 호도가 발견됨으로써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고고학은 유적의 발굴을 통해 역사의 진실로 한 걸음씩 다가가는 학문이다. 땅 속에 묻혀 있는 진실을 가지고 우리의 고대 역사가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그대로가 아님을 알 수도 있고, 백가쟁명 격의 주장만 있었던 것들에 대해 명쾌한 답을 얻어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역사적 사실의 발굴에는 항상 어려움이 따른다. 풍납동 현대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돈이 먼저인 건설 회사와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도 '폼페이의 발견'에 비견된다는 풍납토성의 실체를 발견을 했던 이형구 교수, 아파트 건설 현장을 지나던 신문 배달 소년에 의해 되살아난 아라가야의 마갑총, 아파트 존이 되어 버린 고구려 최전방 초소였던 구의동 유적 등은 개발의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우리의 역사가 사라져 가고 있는가를 일깨우는 단초인 것이다.
"한강 남쪽에서 잠실대교 북단으로 건너가다 보면 오른쪽에 한양 아파트가 보입니다. 그 한양 아파트 24층, 바고 그곳이 구의동 유적입니다." 아파트 숲으로 변해 온데간데없는 유적의 흔적을 애써 찾아보려는 옛 발굴 단원의 말이 가슴 쓰리게 전해져 온다.
『한국사 미스터리』는 전부 30편의 발굴사를 정리하고 있다. 각 편의 말미에는 발굴과 관련된 짧은 이야기가 소개된다. 내용마다 펼쳐진 역사 유물의 사진들이 참으로 아름답다. 발굴과 관련된 이야기 중에는 너무도 조급하게 발굴되어 아쉬움이 남았던 발굴 이야기, 실력이 모자라 일본가 미국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광복 후의 유적 발굴 이야기 등이 안타깝게 쓰여 있기도 하고, 명쾌한 역사적 발굴을 시도했지만 또다시 미궁에 빠져 후학의 연구를 기다리는 분야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도 무수히 많은 우리의 역사가 우리의 산하에 묻혀 후손들에 의해 밝은 빛을 맞이하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상깊은구절] "한강 남쪽에서 잠실대교 북단으로 건너가다 보면 오른쪽에 한양 아파트가 보입니다. 그 한양 아파트 24층, 바고 그곳이 구의동 유적입니다." 아파트 숲으로 변해 온데간데없는 유적의 흔적을 애써 찾아보려는 옛 발굴 단원들의 공허한 설명이다. |
| “고고학자들은 무엇을 먹고 사나?”에 대한 해답이 여기 있다. 한국 고고학의 산증인인 조유전씨가 지난 그의 고고학 인생에서 인상에 남는 고고학 발굴의 현장을 30개를 선정해 쓴 글이 이 책이다. 이 책은 유적 발굴의 현장의 숨소리도 들을 만큼 현실감 있게 현장과 발굴의 의의 및 역사적 위치 등에 대해 그 느낌을 적고 있다. 그로부터 고고학자들은 희열을 얻고, 자신의 노력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을 책을 읽은 후에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안압지 발굴에서 남근을 발견하면서 신라인들의 성풍속도를 얘기하는 첫 장에서부터 한국의 고대사의 블랙 박스를 연 무령왕릉 발굴까지 30군데의 발굴 현장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중에는 사회적으로 많이 알려진 현장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많이 있었는데, 19번째의 경주 용강동 고분에서 발굴된 토용 부분과 29번째의 마한인들의 생활공간이었던 신창동 유적은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나조차도 처음으로 보는 그런 발굴이었다. 사회적으로 많이 알려진 발굴현장을 보면 한성백제의 모습을 보여준 풍납토성 발굴, 신라의 금관, 천마총 발굴, 삼국사기의 표현과 틀린 제사지로서의 제 위치와 역할을 찾게 한 포석정, 임신서기석, 칠지도, 백제금동대향로, 경주 호우총, 무령왕릉 등의 발굴로 말미암아 한국의 고대사의 잘못된 부분을 잡을 수 있었고, 문헌사학이 가지고 있는 많은 부족한 점을 채워준 여러 발굴 현장을 확인 할 수 있었다. 1986년 7월 발굴한 경주 용강동고분은 원래 개무덤, 말무덤, 고려장으로 치부했고, 여러 차례 도굴의 흔적이 있을 뿐더러 생활쓰레기까지 버려지고 있던 전형적인 폐고분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발굴역사상 최초로 인물토용이 발굴되었다. 이 토용의 복식과 그 색상을 통해 피장자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었고, 또한 그 통일신라시대의 복식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는 그 실체를 발굴했다는데 그 의의가 있고, 토용중에는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있어, 그 시대에 당을 통해 서역과도 많은 물적, 인적 교류가 있던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土馬의 말안장 안쪽에서는 도공의 지문의 흔적이 발견되어 한국 역사상 최초로 지문을 발견한 성과도 이룬 그러한 발굴이었다. 전라남도 광주의 신창동에서 발견된 마한인들의 생활공간에서 발견된 발굴물들은 역사가들이 복음서와 같이 여기던 중국사서가 틀린 것을 발견한 그러한 의미있는 발굴이었다. 도로공사 현장의 작은 부분인 9평 공간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한국 고대사를 새로 쓰게 할 정도의 충격적인 발굴이었다. 이곳에서 발굴된 것 중 가장 중요한 것 세 개를 빅3라고 하는데 첫째는 현악기이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변진조에는 악기에 대한 소개가 있는데 그를 확인한 것이다. 두 번째는 [바디]로 이것은 섬유를 짜는 베틀부속구인데, 바디와 함께 방추차, 실감개 그리고 실물자료인 천 조각이 세트로 출토된 것이다. 이 바디는 중국과 일본을 포함해서 가장 완벽한 형태로 출토된 국보급 문화재라 한다. 세 번째는 [수레]가 출토된 것이다. 출토 당시에는 의식용 목기로 알고 있었지만 발굴 이후인 2002년 출토물을 정리하여 검토하던 중 수레바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중국측 자료를 면밀하게 검토한 결과 수레의 각 부속품이란 것으로 최종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것은 마한인은 소나 말을 탈줄 모른다는 후한서 동이전 한조의 기록이 틀렸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렇듯 신창동에서는 획기적인 목제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이렇게 2000년 이상이 된 목제 유물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 지역이 습지여서 가능했다고 한다. 이 책은 위에서 소개한 것 처럼 유명한 발굴부터, 우리에게 생소한 유물의 발굴까지 저자인 조유전씨가 평생에 걸쳐 헌신한 한국 고고학 발굴의 현장으로 우리 독자들을 데려다 주고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고고학자들의 기쁨과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2004년 9월에 읽을 만한 책으로 선정되었으며, 책 속에는 많은 사진이 있어 보기에 훨씬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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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귀중하고도 소중한 책이다.
우리가 모두 굶던 시기.
그래서 오로지 '잘 살아 보자'라는 주장 외에는 어떤 것도 의미 없던 그 시절.
그럼에도 우리 문화재 하나하나의 소중함을 알아서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끊임 없는 애정과 탐구가 이루어 졌으니 그저 대견하고 감사하며 다행이라 여긴다.
참으로 그러하여 우리가 겨우겨우 반만년 역사에 빛나는 문화민족이라 여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들의 빛나는 그러나 드러나지 않았던 노고가 없었던들 지금의 우리 박물관은 죄다 텅텅 비어 있지 않을까?
이 책은 굉장히 풍부한 역사적 사료를 지니고 있다.
또한 자칫 딱딱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발굴의 뒷얘기와 함께 매우 흥미로운 사실들을 독자를 위해서 풀어 놓고 있어 읽는 재미도 배가시키고 있다.
저자는 전문가들만을 기리지 않고,
우연히 발견된 유물을 평범히 보지 않고 전문가에게 알려 우리 문화재로 자리매김하게 한 평범한 국민의 수고를 드러내어 이름 석자나마 기록하여 남긴 점은 또한 이 책의 중요한 미덕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내게는 매우 기뻤던 점으로 대부분의 사진들이 칼라사진이다. 물론 흑백사진도 있지만 그것은 칼라사진의 원본이 없어서 이기 때문이다.
글도 읽고 색채풍부한 사진으로 보아서 우리 고고학과 유물의 저변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익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역사적 소양이 어느 정도 되어야 저자의 취지와 설명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역사적 소양은 적어도 이 정도 수준의 책을 읽어 내기 위해서는 사실 당연히 갖추어야 할 사항이며, 이는 저자의 문제가 아니라 독자의 문제라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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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미스터리>라는 제목 때문에 오해하기 쉽지만, 이 책은 역사의 의문점만을 다루고 있는 책이 아니고 음모론을 다루는 책은 더욱 아니다. 한국의 주요 사적과 유물을 꼭지별로 묶어 다루면서, 쟁점이 되는 역사적 논쟁거리 등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역사만큼 널리 알려져 있으면서도 대중과는 거리가 먼 학문도 없다. 역사를 언급하는 책이나 글은 많이 있지만 엄밀하고 정확한 역사적 연구에 바탕한 글은 많지 않다. 특히 한쪽의 입장에 치우치기 쉬운, '논쟁거리'를 다루고 있는 책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얄팍하고 억지 강론 수준의 이야기만을 늘어놓게 되거나, 지나치게 학술적인 논증으로흘러 웬만한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게 되기 일쑤다. 그런 면에서 <한국사 미스터리>처럼 냉철하고 공정하게 역사연구의 쟁점을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은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같이 반갑다.
전체적으로 역사연구 입문서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다. 한 권에서 수십 가지의 문화재를 다루면서도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다. 도판과 사진도 많고, 발굴 때 일어난 에피소드도 충실히 다루고 있다. 특히 주차장 예정지에서 극적으로 발굴된 백제금동대향로 등 말 그대로 생각지 않았던 곳에서 우연히, 아슬아슬하게 발견된 문화재의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눈에 보이듯이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한편으로는 한국 문화재 연구의 어두운 면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도굴과 다름없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무령왕릉을 졸속 발굴한 데 대한 한탄이나, 아파트 주민의 반대 때문에 토성 연구를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산성 유적지가 아파트 단지로 변모하는 바람에 유적이 거의 통째로 사라지는 등의 일 말이다. 보다가 '아이고오!' 하면서 가슴을 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총평하자면, 내실 있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역사교양서로 첫손에 꼽을 만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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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서평을 쓰는 것 같아 약간 설레는 바이다. 방학을 맞이하여 후배들과 함께 고고학 관련 서적들을 읽고 서평이나 독후감을 쓰면서 자유롭게 토론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자그마한 스터디를 시작했고, 그 결과물로 이렇게 첫 번째 책의 서평을 쓰게 되었다. 솔직히 매일 발굴현장에서 일하는 필자에게 있어 방학이라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하루하루가 똑같은 일상으로 끝나기 쉽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대학원 석사과정까지 수료한 마당에 강제적으로 공부를 할 만한 어떠한 장치도 없어서 이처럼 책을 읽고 서평을 쓸 만한 여유(?)가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어찌됐든 스터디를 하게 됨으로써 책도 읽고 서평도 쓰게 됐으니 후배들한테 고맙다고 밥이라도 사야할 것 같다. 오늘 필자가 쓸 서평의 주인공은『고고학자 조유전의 한국사 미스터리 - 발굴로 풀어본 살아 있는 우리 역사 이야기』이다. 필자 생각에 이 책만큼 고고학을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설명한 책이 또 있나 싶을 정도로 이 책은 잘 쓰인 책이다. 필자 역시 ‘고고학을 공부하겠다.’ 고 본격적으로 마음먹고 이 책을 읽었는데, 4년 만에 다시 읽으니 그 역시 느낌이 달랐다. 그때 서평이나 독후감을 남겼으면, 지금 다시 읽어보고 어떻게 다른 느낌이었는지 알 수 있었겠지만 그때는 그런 것까지 생각하지 못 했기에 그저 아쉬움만 남을 따름이다. 아무튼 이제라도 이 책을 읽고 서평을 남겨 차후 이 책에 대한 필자의 생각이 어떠했었는지 알고자 하는 바이다. Ⅰ. 책의 차례와 구성 먼저 이 책의 공저자인 조유전은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너무나 유명한 한국 고고학계의 산 증인이다. 무령왕릉 발굴부터 시작해 안압지, 황룡사지, 감은사지, 황남대총, 천마총 등 초등학교 1학년생들도 다 알만한 너무나 유명한 유적지들을 발굴하고 문화재연구소 미술공예연구실장, 유적조사연구실장, 국립민속박물관장, 국립문화재연구소장 등을 역임한 분이다. 그렇기에 그분의 30여년 현장 경험이 이처럼 좋은 책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다른 공저자 이기환은 현재 경향신문 문화팀장으로서 조유전의 글을 더 잘 이해하고 더 쉽게 다가가기 위해서 각 장마다 부연설명식의 Tip을 정리했는데, 그러한 구성이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1. 신라는 소돔과 고모라 성이었나 - 신국의 도가 있었던 신라 2. 27만 년 전 구석기인의 세계 3. 1,500년 만에 다시 터진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전쟁 4. 되찾은 500년 도읍지, 비운의 한성백제를 깨우다 5. 강아지까지 금목걸이를 찼던 황금나라, 신라의 금관 6. 남한산성이 치욕의 성이라는 편견 뒤엎기 7. ‘대박발굴’을 터뜨린 ‘시험용 발굴’ 8. 고인돌의 천국 한반도 9. 경애왕은 그때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었다 10. 왜 일본식 무덤이 한반도에 있을까 11. 60대 남성과 15세 여성의 비극적인 사랑? 12. 충도를 하늘에 맹세한 화랑들 13. 왜 ‘일제’ 빨갱이 고분이 경남 고성에 있었나 14. 2,300년 전의 최첨단 산업, 거푸집 15. 백제 말 무왕의 행정수도, 익산 16. 칠지도는 근초고왕의 하사품? 17. 물구덩이에서 건진 걸작 백제금동대향로 18. 신라의 심장부 경주에서 발견된 광개토대왕의 흔적 19. 신라 귀족의 무덤으로 부활한 개무덤, 경주 용강동고분 20.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킨 문무대왕의 나라 사랑 21. 고등학생이 찾아낸 아라가야의 편린 함안 마갑총 22. 해상왕 장보고의 야망과 좌절이 깃든 청해진 본영 23. 여말선초의 국찰, 또 하나의 궁궐 양주 회암사 24. 영원한 평등세계를 위하여! 대동방국의 기치를 높이 든 궁예 25. “조선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그는 고려의 충신이다” 26. 지금은 아파트촌이 된 고구려 최전방 초소 27. 고려 광종의 야망, 어머니 사랑이 담긴 국찰 28. 고구려 남침의 통로, 경기 연천 호로고루성 29. 기원전후 마한인들의 생활공간 신창동유적 30. 고대사의 블랙박스를 열다 - 공주 무령왕릉 발굴 이 책의 차례를 보면 총 30장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대표적인 사진과 큼직한 글씨로 이뤄져 있어 마치 인터넷 블로그상의 웹진을 보는 듯 한 느낌을 준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5년 전에 만들어진 책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세련된 디자인으로 이뤄졌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하지만 차례를 보면서 필자가 아쉽게 생각한 것은 구성에 ‘일관성’이 없다는 점이다. 분명 저자는 구석기 유적인 ‘전곡리 유적’부터 시작해서 조선시대 유적인 ‘송은 박익의 벽화무덤’까지 골고루 다루고 있으면서 이를 뒤죽박죽 나열했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유적의 발견년도대로 나열한 것도 아니고, 저자가 현장에 참여한 순서대로 나열한 것도 아니라면 그저 저자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혹은 살면서 중요하게 여겼던) 순서대로 나열한 것에 불과할 텐데 그것이 조금 아쉬웠다. 또한 책의 제일 뒷부분에 보면 각 장을 쓰면서 봤던 참고문헌들을 정리해 놨는데, 이는 이 책이 학술서적이면서도 대중서적의 스타일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음을 알려준 흔적이라고 생각한다. 추후 다른 고고학 서적들에 대한 서평도 계속 쓰겠지만, 우리나라 고고학자들이 쓴 책들 대부분은 이처럼 개인의 경험담을 토대로 한 발굴현장과 관련된 내용이 들어간 대중서적 아니면 자신의 전공분야를 전문적으로 풀어쓴 학술서적 뿐이다. 그 중도(中道)를 지키는 책은 별로 없다. 아니 이 책 말고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아직 고고학 혹은 발굴, 유적, 문화재라고 하는 키워드가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서지 않았기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핫 이슈가 될 만한 문화재(여기서 핫 이슈라 함은 국제적인 관광자원으로 활용할만한 문화 콘텐츠를 의미한다)가 적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이 현장에서 발굴조사에 치중하거나 강단에서 후학 양성에 몰두하다 보니 대중들에게 친밀한 글을 자주 남길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이 갖는 의미는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럼 책의 대략적인 구성에 대한 평(評)은 이만큼만 하고 세부 내용에 대해서 간략하게 언급하도록 하겠다. Ⅱ. 각 장에 대한 비평 1. 역사적 · 사회적인 의미가 큰 유적 소개 저자는 실제로 한국사에 길이 남을 유적들을 많이 발굴했고, 그와 관련된 경험담을 책에 풀어쓰고 있는데 그러한 유적들이 저자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만큼, 우리나라 혹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도 큰 의미가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저자는 세계 고고학계에 한국이라는 이름을 알린 ‘전곡리 유적’부터, 수많은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온 ‘풍납토성’, 전 세계적으로 극찬을 받고 있는 ‘신라 금관과 여러 고분들’, 한-일 양국 간의 뜨거운 감자라고 할 수 있는 ‘칠지도’, 너무나 아름다워 눈이 부실 정도로 정교한 ‘백제금동대향로’ 등 대중들이 친숙하게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자세하고 알기 쉽게 서술하고 있다. 그냥 박물관에 가서 볼 수 있는 유물들, 책에서 볼 수 있는 유적들에 대한 단편적인 암기용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어떻게 발견됐고, 어떤 연구 및 조사를 받아서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저자는 자신의 경험담(신뢰도 100%)을 토대로 재미있게 풀어쓰고 있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독자는 절로 흥미를 느끼고, 저자의 심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고고학계의 대부(大父)라고도 할 수 있는 김원룡 선생님과 김영배 선생님이 무령왕릉 입구에서 ‘寧東大將軍百濟斯 麻王年六十二歲癸’라는 2줄의 명문을 발견하고 가슴이 덜컹했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필자 역시 저런 삼국시대 명문을 발견하면 기분이 어떨까~싶었다. 이처럼 저자는 이 책에서 그간 널리 알려진 유명한 유적, 유물들에 대해 살아있는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게 하고 있다. 2. 대중적이지 않은 유적 소개 그와 더불어 이 책이 갖는 장점은 대중적인 문화재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문화재 역시 소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송학동고분이나 완주 갈동유적, 감은사 금당터의 지하공간, 밀양 송은 박익의 벽화무덤, 예성동호회의 활약으로 확인된 충주 숭선사와 밀봉된 장군 등에 대한 내용은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봤던 내용들이었다. 문헌사학과 달리 고고학은 매일매일 새로운 고고자료가 현장조사를 통해 밝혀짐에 따라 사료가 무한정 늘어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전공분야와 관련된 자료만 따져도 매일매일 업데이트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비전공분야에 대한 정보는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문헌사료가 한정된 것과는 정반대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유적들은 일반 대중들뿐만 아니라 필자와 같은 고고학도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는 자료들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필자는 고분 내부가 전부 빨갛게 채색되어 있는 송학동 제1호분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정말 이건 일본계 고분으로 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안에는 가야, 신라, 백제, 왜계 유물이 가득 들어 있었는데 마치 6세기 이후 백제와 신라를 중심으로 가야, 왜 등이 각축전을 벌이던 당시 상황이 눈에 선한 듯 했다. 무덤이라는 것이 상당히 보수적인 문화적 요소이기 때문에 남의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데(그렇기에 무령왕릉은 한국사에 있어 아주 특수한 경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일본식 장식고분이 한반도에 조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당시 가야-왜의 관계가 아주 밀접했음을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당시 가야와 영산강 세력을 두고 삼국시대가 아닌 오국시대라고 부르자는 주장이 있을 만큼 가야는 백제, 신라 사이에서 독자적인 문화권을 이룬 국가였기 때문에 가야사에 대한 연구가 앞으로 더 활발히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도 들었다. 3. 한국 고고학계의 발전상을 잘 소개 한국 고고학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이 땅에 넘어와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경주에 존재하는 수십 여기에 달하는 왕릉급 무덤들이 일제강점기 시절 어떠한 고통을 겪었는지 잘 소개하고 있었다. 금관 혹은 금동관이라고 하는 돈 되는 보물에 눈이 어두운 자들에 의해 벌어진 가짜 금관 도난 사건이나 스웨덴 구스타프 황태자의 현장 참관 때문에 이름 붙여진 서봉총에 대한 얘기는 씁쓸하게 들렸다. 하지만 해방 이후 천마총을 성공적으로 발굴한 이야기나 저습지 발굴을 하기 위해 2년간 나라문화재연구소에서 저습지 발굴기법을 공부하고 돌아온 조현종의 사례 등은 그간 한국 고고학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발전해왔음을 알려주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 한국 고고학은 기존의 문헌사학이 해낼 수 없었던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을 밝혀낼 수 있었다. 진위 논란이 뜨거웠던『화랑세기』에 묘사된 신라의 지극히 개방적이었던 성문화도 안압지에서 출토된 목제남근과 성적 행위를 묘사한 토우에서 입증이 되었으며, 자세한 성격을 알 수 없었던 풍납토성이 백제의 한성임을 증명하기도 했으며, 제천 황석리 고인돌의 인골을 통해서 청동기시대 인적 자원의 교류에 대해서 새로운 가설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밖에 문헌에서는 알 수 없던 화랑들의 약속이 담긴 ‘임신서기석’이나 고대 백제와 왜 사이의 관계를 알려주는 ‘칠지도’는 물론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를 알려주는 ‘호우총’과 문헌에 나타나지 않는 한강 일대의 ‘고구려 보루’들까지 고고학이 아니고서는 풀 수 없는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밝혀냈는데 이 모든 것이 선학들이 어렵게 쌓아놓은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여 풍납토성에 대한 글을 읽으면 문화재와 땅값이라는 공존할 수 없는 2가지 현안에 대해서 잘 알 수가 있다. 얼마 전만 해도 문화재 신고에 따른 보상이 적다고 남대문을 홀랑 태워먹은 사건이나 큰 빚을 갚기 위해 바다 속에서 잠든 고려청자를 몰래 숨겨놨다가 들킨 잠수부의 사건 등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필자가 보기에 풍납토성만큼 큰 문제가 있었던 유적은 없었으며, 앞으로 풍납토성 내부가 사적지 등으로 보존되기까지는 해결해야만 부분들이 너무나 많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역시 오늘날 한국 고고학계가 떠안고 있는 문제점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더불어 앞으로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나 이를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도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4. 생생한 현장 사진과 진실한 저자의 독백 이 점을 필자는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하는데, 여느 책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고고학 관련 서적들을 보면 도면이나 도판이 많이 실려 있기는 하다. 하지만 유적이나 유물의 실측도면, 수습한 후 복원이 끝나 완벽한 형태로 찍힌 사진들보다는 당시 현장을 어떻게 발굴했고, 어떤 이들이 그 안에서 꿈을 키웠고, 어떤 에피소드들이 있었는지 등 ‘있는 그대로의 고고학’을 소개한 것이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발굴현장이나 지도위원회 전경을 찍은 사진이나 유물이 출토된 당시의 모습을 찍은 사진 등은 고고학에 대한 상상(인디애나 존스 같은)을 갖고 있는 독자들에게 좋은 유희거리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밖에 김원룡 선생님의 유지를 이어받아 구석기 고고학을 전공한 배기동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실은 것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실제 고고학을 전공하면서 같은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끼리 부부의 연을 맺은 경우가 많은데 그러한 사실적인, 그러면서도 고고학을 전공하지 않으면 잘 모르는 에피소드를 소개한 것이 좋았던 것 같다. 고고학자들 중에는 인디애나 존스 같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려주니 말이다. 또한 무령왕릉 발굴에 대한 저자의 독백과 후회를 보고 있노라면 고고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유적, 유물을 대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다시는 이와 같은 불행한 유적 발굴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던 당시 고고학계의 가슴 아픈 현실이 이해되기도 했다. 결론 대략 전술한 점들 때문에 이 책은 중도를 잘 지킨 최고의 고고학 개설서라고 필자는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필자가 고고학 관련된 책을 전부 읽은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책들을 읽어본 결과, 이 책과 같은 책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 책이 나온 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책 수준의 책은 없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고고학이 무엇인지 알고 싶으면 딱딱한 학술서적보다는 이 책을 먼저 읽으라고 권하곤 하다. 굳이 고고학이라고 선을 그을 필요도 없겠다. 단순히 어떤 책에 무슨 기록이 있고,『삼국사기』가 어쩌고 『삼국유사』가 어쩌고 하는 것보다는 이 책의 생생한 기록들을 읽는 것이 우리 역사를 이해하는데 더 적합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렇지만 이 책 역시 사람이 쓴 것이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수많은 생각을 하는 인간인지라 이 책이 장점만 가진 책은 아니라는 말도 해 두고 싶다. 필자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고고학계의 대원로에게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지만 필자가 보기에 틀렸다고 생각하는 부분과, 필자가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들이 있어 여기에 간단하게 소개하고 서평을 마치도록 하겠다. 저자는 고구려에서 10월이 되면 나무로 다듬은 남근을 신좌(申坐) 위에 두고 제사를 지냈다고 했는데(p.18), 이는 나름 고구려사를 공부한 필자가 보기에 잘못된 해석임에 분명했다.『위서(魏書)』와『북사(北史)』열전에는 10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나라의 큰 모임이 있다는 기록이 있으며,『구당서(舊唐書)』열전을 보면 제사를 지내는 장소가 수신(襚神)이라고 하는 큰 굴이라는 기록이 추가되어 있다. 그밖에『주서(周書)』열전을 보면 나라에 신을 모신 곳이 2곳 있는데, 하나는 나무를 새겨 부여신이라 하고 다른 하나는 시조신 혹은 등고신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삼국사기』잡지에는 이 내용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저자는 아마 2곳의 신묘에 마련된 나무로 만든 부여신, 고등신 등을 남근으로 해석하는 듯 했지만『삼국사기』에 분명히 적고 있듯이 그것 중 하나는 부인의 형상을 한 부여신, 즉 하백의 딸 유화이며 나머지 하나는 국가시조인 주몽의 모습을 한 고등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내용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구의동보루에 대한 내용 중에서는 구의동보루가 백제군의 기습에 의해 손 쓸 겨를도 없이 불에 타 전멸했다고 하면서, 아차산 보루 고구려부대는 구의동의 비보를 접하고 철수하기 시작했다고 적고 있다(p.361). 과연 그럴까? 양자는 2시간 정도 거리 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만약 구의동보루가 적의 기습에 의해 전멸한 것이라면, 아차산보루에서는 이를 어떻게 알았을까? 지금처럼 핸드폰이나 무전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2시간 만에 100~150여명이 주둔하는 군사시설이 토기 약간을 제외하고 전부 소개되는 것도 무리가 있고 말이다. 필자는 구의동보루에서 1천점이 넘는 철촉이 발견된 점, 내부에서 찰갑편 하나 발견되지 않은 점, 아차산보루의 단계적 철수가 가능한 점을 근거로 구의동보루의 주둔 병력이 전멸하지 않고 오히려 보루를 버린 채 전략적 후퇴를 했다고 생각한다. 뭐 이 부분은 연구자마다 개인적인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다.
그 밖에 최신 연구 성과가 반영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것은 매일매일 신 자료가 나오는 고고학이라는 학문의 성격상 어쩔 수 없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미 은퇴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추후 2005년 이후의 고고자료를 이처럼 정리해서 한권의 책으로 엮어내는 이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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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역사를 알면 현재가 보이고 이런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지금의 이 때를 살고 있는 내가, 지금의 이 환경이 아닌, 지금과는 전혀 다른 환경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렇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과거를 알 방법은 거의 없다. 타임머신이라도 발명되지 않는 한, 남겨진 유물과 자료로 사실을 정리하고 그 외의 것은 추측을 하는 것 외에는.
이 책은 우리가 과거를 알기 위해서, 그 과거의 유물과 만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발굴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책 자체의 내용도 참 재미있다. 사실 실록과 야사를 통해 과거의 역사를 이야기처럼 구성한 책이야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발굴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다룬 책은 많지 않다고 알고 있으니.
그래도 예전에 발굴 현장에까지 가 보았던 터라 흥미가 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보면, 컬러 페이지가 눈에 많이 들어온다.
재미있다는 생각과는 반대로 왜 이 책을 읽으면 이렇게 허탈해지는지 모르겠다.
진짜 우리나라는 역사에 대한 인식이 참 부족하구나. 를 깨닫게 해 준 책이기도 하며, 내가 지금까지 대충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었던, 유물들이 실제로는 어떻게 다른가를 알게 해 준 책이기도 하다.
고고학은 소설이 아니다는 구절이 정말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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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승자의 역사라는 얘기가 있다.
이 책에서는 그간 일반인들은 접하기 어려웠던 발굴과 역사에 대한 논쟁들에 대한 뒷
얘기 들을 다루고 있다.
승자에 의한 승자의 역사랄까.
역사 자체도 승자에 대한 내용이다. 그리고,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 또한 승자일 경우
에만 그 역사가 신빙성을 가지고 일반인에게 까지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고고학자 조유전님의 연륜과 열정이 녹아있는 이 책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 또는
모르고 있던 역사에 대한 얘기들을 요모조모 다루고 있기에 유용한 내용이고,
항상 모든 사실엔 동전과 같이 양면성이 존재하고 있다는 진리가 역사에 있어서도 그
리 다르지 않다는 걸 실감하게 해준다.
이 책은 총 30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주로 대부분의 내용은 고려시대 이전인 구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를 다루고 있
다.
신문에 연재되었던 내용들이라서 그런지 흥미와 논쟁의 여지가 많은 내용들을 많이
취급한 듯 하고,
특히 맨 앞에 있는 신라의 성문화를 다룸으로써 대중들의 관심을 이끌려고 한 듯 하
다.
또 구석기시대와 고인돌에 대한 내용인 "27만 년 전 구석기인의 세계"와 "고인돌의 천
국 한반도"에선
일본의 구석기조작을 유도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 선사시대의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많다는 것에 뿌듯했고,
"되찾은 500년 도읍지, 비운의 한성백제를 깨우다", "백제 말 무왕의 행정수도, 익
산", "칠지도는 근초고왕의 하사품?", "물구덩이에서 건진 걸작 백제금동대향로", "고
대사의 블랙박스를 열다 -공주 무령왕릉 발굴" 등 백제의 얘기에서는 찬란했던 과거
와 그것을 땅에 묻은채 잊혀져야만 했던 패자의 슬픔이 느껴졌다.
"신라의 심장부 경주에서 발견된 광개토대왕의 흔적", "아파트촌이 되어버린 고구려
최전방 초소", "고구려 남침의 통로, 경기 연천 호로고루성" 등의 고구려 얘기들에서
는 유물을 지키려는 입장과 개발에 따른 이익을 지키려는 입장이 상충되는 문제점과
남한에서의 고구려연구는 아무래도 역부족이라는 생각에 안타까왔고,
또, 제일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신라의 이야기 "신라는 소돔과 고모라 성이었
나 - 신국의 도가 있었던 신라" , "강아지까지 금목걸이를 찼던 황금나라, 신라의 금
관", "'대박발굴'을 터뜨린 '시험용 발굴'", "경애왕은 그때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
었다" 등등 에서는 과연 신라가 삼국통일을 할 만하구나 하는 생각과 그리고, 자주적
이고 독립적이었던 우리나라가 바로 그 근방부터 사대사상이 생기기 시작했었구나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또한, 잘 모르던 마한이나 가야의 유물에 대한 얘기들 "왜 '일제' 빨갱이 고분이 경남
고성에 있었나", "고등학생이 찾아낸 아라가야의 편린 함안 마갑총", "왜 일본식 무덤
이 한반도에 있을까", "기원전후 마한인들의 생활공간 신창동유적" 을 보며, 우리가
모르고 지나치는 사소함 속에도 우리 조상의 정신과 유물이 숨어 있을 수도 있었겠다
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가까운 과거라서 많은 유물이 있기에 따로 발굴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인지
가장 적게 취급된 고려와 조선시대의 이야기 중 특히 "남한산성이 치욕의 성이라는
편견 뒤엎기"에서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던 역사의 사실의 뒷면에도 또 다른
평가와 그에 따른 또 다른 아픔이 존재하는구나 하는 걸 느꼈다.
이 책을 읽고 있던 몇일 동안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아라가야의 장수이기도 하고, 신라의 화랑이 되어서 하늘에 다짐을 하기도 하고, 거
대한 고인돌을 옮기는 인부나 청동기를 제작하는 장인도 되었다가,
칠지도를 왜왕에게 하사하러 가는 사신이나 고구려의 전방기지를 지키는 병사가 되
기도 하고, 화려한 금장식을 한 신라의 여인도 되었다가,
장보고와 함께 청해진에서 제사를 지내기도 하는 등등.
오래된 역사와 문화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자부심을 가지게 만드나 보다.
일본의 구석기 조작을 불러일으킨 우리나라의 숱한 구석기 유물이라든지, 해상왕 장
보고의 기개라든지,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애국심 등을 읽을 때면 가
슴이 뿌듯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고고학자와 역사학자들의 열정이 있어 우리가 이나마라도 우리 조상의 생활
과 유물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함과 동시에 그들의 열정과 자기 일
에 대한 사랑이 정말 부럽다!
[인상깊은구절] "온전하게 발굴해서 향로를 들어내 놓고도 사실 감상할 엄두도 못 냈습니다. 뭔가 위 대한 문화유산을 내 손으로 발굴해냈다는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지요. 작업을 마치고 고개를 들어 바라본 겨울 하늘, 총총한 별들..... 가슴이 얼마나 벅찬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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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동생과 나는 ‘발굴’이라는 것을 꿈꿨다. 역사학자 내지 고고학자가 되어 우리 역사의 중요한 유물을 발굴하는 것이 우리의 꿈이었다. 그래서 산속에서 토기 조각을 발견하면 흥분하여 대단한 물건인 것처럼 집에 들고 오곤 했다. 동생은 아직 어린 시절의 그때를 기억하고 있을까. 요즘은 ‘란(蘭)’에 미쳐 산속을 뒤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대상은 바뀌었지만 여전한 것 같기도 하다. 고고학자 조유전의 <한국사 미스터리="">를 읽으면서 동생 생각을 먼저 하였다.
이 책은 고고학자인 조유전 선생이 평생 동안 고고학자로서 발굴 현장을 뛰어 다닌 흔적을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고, 흥미를 돋굴 수 있도록 서술한 책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알고 있었던 내용은 반가웠고 새로운 내용들은 우리 조상들은 그랬구나 하면서 감탄하며 읽었다. 그의 품성을 공동저자인 이기환 기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조유전 선생의 장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주류니 비주류니, 어느 학교 출신이니, 언제 어디서 고고학을 배웠느니 하는 헛된 편가름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연구 성과를 재단하는 이들을 혐오한다. 대신 늘 발로 뛰고 그 발로 뛴 결과를 연구 성과로 내놓은 올곧은 학자들을 품에 안고, 그들의 울타리가 되어준다. 그러니 그의 주변엔 늘 사람이 모여든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조유전 선생의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p.436) 나도 진정 조유전 선생의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책은 30개의 꼭지로 되어 있다. 그것은 모두 하나의 발굴 현장 또는 그곳에서 발굴한 유물이다(제목에 유적 내지 유물이 적혀 있지 않는 것은 괄호로 넣었다). 매 꼭지 뒤에 붙여 놓은 공동저자인 이기환 기자가 썼을 것으로 생각되는 짧은 정리 글도 흥미롭다.
1. 신라는 소돔과 고모라 성이었나 – 신국의 도가 있었던 신라(안압지 출토 목제남근)
2. 27만 년 전 구석기인의 세계(경기 연천 전곡리 유적)
3. 1,500년 만에 다시 터진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전쟁(경기 하남 이성산성)
4. 되찾은 500년 도읍지, 비운의 한성백제를 깨우다(풍납토성)
5. 강아지까지 금목걸이를 찼던 황금나라, 신라의 금관
6. 남한산성이 치욕의 성이라는 편견 뒤집기
7. ‘대박발굴’을 터뜨린 ‘시험용발굴’(경주 천마총)
8. 고인돌의 천국 한반도(제천 황석리 고인돌)
9. 경애왕은 그때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었다(경주 포석정)
10. 왜 일본식 무덤이 한반도에 있을까(일본식 무덤 장고형 고분)
11. 60대 남성과 15세 여성의 비극적인 사랑?(경주 황남대총)
12. 충도를 하늘에 맹세한 화랑들(임신서기석)
13. 왜 ‘일제’ 빨갱이 고분이 경남 고성에 있었나
14. 2,300년 전의 최첨단 산업, 거푸집(완주 갈동유적)
15. 백제 말 무왕의 행정수도, 익산
16. 칠지도는 근초고왕의 하사품?
17. 물구덩이에서 건진 걸작 백제금동대향로
18. 신라의 심장부 경주에서 발견된 광개토대왕의 흔적(경주 호우총)
19. 신라 귀족의 무덤으로 부활한 개무덤, 경주 용강동고분
20. 죽어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킨 문무대왕의 나라 사랑(감은사터)
21. 고등학생이 찾아낸 아라가야의 편린 함안 마갑총
22. 해상왕 장보고의 야망과 좌절이 깃든 청해진 본영(완도 정좌리 장도유적)
23. 여말선초의 국찰, 또 하나의 궁궐 양주 회암사
24. 영원한 평등세계를 위하여! 대동방국의 기치를 높이 든 궁예(철원 궁예도성)
25. “조선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그는 고려의 충신이다”(밀양 송은 박익의 벽화무덤)
26. 아파트촌이 되어버린 고구려 최전방 초소(구의동유적)
27. 고려 광종의 야망, 어머니 사랑이 담긴 국찰(충주 숭선사)
28. 고구려 남침의 통로, 경기 연천 호로고루성
29. 기원전후 마한인들의 생활공간 신창동유적
30. 고대사의 블랙박스를 열다 – 공주 무령왕릉 발굴
책 여기 저기서(발굴 현장 곳곳에서) 고고학에 대한 조유전 선생의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고고학을 통하여 우리의 역사를 ‘바로’ 이해하려는 그의 노력은 학문의 편협을 질타하게 만든다. 엄연히 물증이 나타났는데도 거부하는 학자들의 고집을 그는 혐오한다. 그리고 곳곳에 고고학을 하는 인력의 부족을 특히나 일본과 비교하여 안타까워 한다. 그러한 질타와 혐오와 안타까움을 같이 느끼면서 발굴 현장을 직접 TV 다큐먼터리로 보듯이 즐겼다. 이런 기록도 하나의 역사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를 통하여 고고학이라는 학문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한다. 국가와 사회가 이에 뒷받침을 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고고학은 소설이 아니다. 머릿 속의 상상만으로 해석해서는 자칫 역사를 왜곡하는 주범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발굴조사는 어디까지나 ‘정확한 발굴’을 통해 ‘정확한 자료’를 학계에 제공하는 것이 가장 큰 덕목이다. 그 유적의 성격은 발굴담당자가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다. 학자는 그 자료를 분석하고 판단해서 논문으로 남기면 된다. 선학들이 남긴 논문을 다시 후학들이 분석하고 비판함으로써 한 단계 학문이 성숙되고 발전되는 것이다. 그래야만 한국 고고학도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p.52 ~ 53)한국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