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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들을 매혹한 길과 풍경 '철학자의 길'이라 불리는 곳은 많다. 과거 프러시아의 쾨니히스베르크에는 더 유명한 철학자의 길이 있었다. 임마누엘 칸트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5시 정각에 산책하기 시작해서 주부들이 그를 보고 세계를 맞추었다는 일화로 유명한 길이다. 나는 "생각하기"가 철학적 추론뿐만 아니라 감각 지각, 기억, 그리고 상상까지 포함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나는 이러한 정신적인 현상들을 연구하는 데 걷기를 활용해, 우리의 정신적 삶과 신체적 실존 사이의 관계 또한 이른바 "정신-신체 문제"를 살펴보려 한다. 나의 감각이 나의 지성보다 더 신뢰할 만한 현실의 안내자 이므로, 나는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결론보다 걷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결론을 더 확신할 수 있다. 이 주장에 대해 데카르트는 내가 걷는다고 '생각'하는 것만 확실할 뿐 내가 걷는다고 꿈꾸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내 몸이 실제로 걷는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가상디에 따르면, 걷기가 신체의 비자발적인 감각 지각과 관련되는 한, 걷기는 데카르트처럼 방에 앉아 사색하는 것보다 자연의 진리를 찾는 데 더 믿을 만한 방법이다. 같은 길을 다시 걸으며 우리는 자연에 새겨진 경험(생각, 욕망, 상상)을 떠올리고, 과거의 흔적을 되살리고, 그곳에 살았던 옛 사람들과 우리를 다시 연결하는 방식으로 그 장소에 얽혀 있는 옛 이야기를 되살린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정신은 모든 다른 역사적 시대와 지층이 동시에 존재하는 도시-"한번 존재한 것은 어느 것도 사라지지 않는 존재물"-와 유사하다. 정신적 삶에서 한번 형성된 것은 소멸하지 않으며, 모든것은 어떻게든 보존되고 적절한 상황을 만나면 다시 한번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 살아 있는 현재에서 반짝이는 과거의 빛은 이미 과거와 현재, 죽음과 삶 사이의 장벽을 허물고 있었고, 죽은 이들이 나라는 매개체를 통해 말할 수 있게 해주었다. [실존주의적] 정신분석학의 원칙은, 인간은 집합체가 아니라 총체서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가장 사소하고 피상적인 행동에서도 자신을 총체적으로 표현한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모든 취향, 독특한 버릇, 행동은 결국 전부 '드러나게' 된다. 보들레드처럼 사르트르는 "삶이라는 완고하고 무정형적인 우연성"에 반기를 들었다. <구토>의 거의 대부분은 우연성과 자연, 즉 계획이나 설계의 결과가 아니라 우발적으로 우연히 존재하는 것에 대한 사르트르의 혐오에 대한 사색이다.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많은 철학자들에게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은 "자유의지"의 특징이다. 다르게 행동할 수 없었다면 그 사람은 그렇게 행동하거나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자유가 없었다는 것이고, 그 행동은 필요에 의해 좌우되었을 뿐이다. 보브아르에게 하이킹은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수단 이었다. 보부아르는 시골길 걷기를 즐겨했는데, 그녀에게 그것은 영혼의 탄산수이자 치료제였다. 보브아르는 처음에는 보행 시간을 5~6시간 정도로 제한했지만, 나중에는 9~10시간을 걷기도 했고 때로 40km 이상을 걷기도 했다. 세계적 경험적 종합에서 핵심은 요소는 경험을 하나의 전체로 통일하는 초월적 상상력이라는 힘이다. 초월적 상상력은(한 인간의) 감수성과 지식을 하나의 통일된 주체성으로 통합니다. 산책자는 낭만주의자들처럼 숲과 산비탈에서 고독을 추구하는 대신, 차이를 식별할 수 없는 수많은 도시 군중 속에 숨은, 관찰되지 않는 관찰자로서 고독을 찾는다. "세속에서의 지위와 인정"은 키르케고르가 원하지 않던 것들이었다. 그의 공적 페르소나는 위장이었다. 모든 이들에게 알려졌고, 축복의 날들이면 언제가 거리에서 보였던 산책자의 면모는 그의 익명성, 진정한 자기의 자아를 숨기는 그의 방식 이었다. 홀로, 두 발로 여행할 때보다 내가 더 많이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때보다 더 많이 존재하고, 살고, 만일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나 자신이었던 적은 없다. 루소 만큼이나 니체에게도 행복의 비결은 자연이 주는 자극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걷기가 그들의 사색에 준 자율이었다. 고독한 보행자는 자족적이고, 자신이 선택한 속도로 자신이 좋아하는 곳으로 갈 수 있고, 자유롭게 시를 쓰고 상상하고 지각할 수 있다. 즉, 그는 자유롭게 '몽상'에 참여할 수 있다. "우리의 대도시에 부족한 것은 조용하고 광활한, 성찰을 위한 장소"라고, "잠시 물러남, 명상의 장엄함을 위한 장소"라고 니체는 썼다. 니체에게 자기 극복은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인간"이 만물의 "영원회귀"를 의지할 수 있는 초인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서 도서를 '협찬' 받았습니다. @wisdom.shelter @chae_seongmo #플라뇌르산책자 #브루스보 #산현글방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 #플라뇌르 #산책자 #철학자 #철학 #산책 #생각하기 #걷기 #사색 #행복 #경험 #상상 #몽상 #고독 #관찰자 #주체성 #질문 #책 #도서 #독서 #철부지아빠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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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뇌르, 산책자_ 철학자들을 매혹한 길과 풍경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은 도서입니다.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으로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고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예찬’에서 말했습니다. 이 책은 도보 여행 중독자이기도 한 저자 브루스 보는 걷기와 도보 여행에 관한 사색을 펼쳤던 사상가들의 이야기입니다. 걸으며 자신의 사상을 구축했던 사상가, 작가들을 두루 섭렵한 채 이 책에서 걷기론을 총정리한 책으로 이 책은 걷기 철학에 관한 책일 듯하나 그는 그 사상가들 가운데 일부가 걸었던 길과 풍경을 직접 찾아 나서서 그곳을 자신의 두 발로 직접 재경험한 특별한 책으로 기대가 됩니다.
학문적인 관점에서 들여다 보면 플라뇌르는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라는 사람에 의해 창안된 개념으로 플라뇌르는 ‘산책자’라는 뜻입니다. 벤야민이 파리를 생각하다 라는 책에서도 실제로 도시를 산책하면서 전성기 자본주의를 성찰하기도 했습니다.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철학자의 걷기는 각기 종류가 다릅니다. 르네 데카르트, 장 폴 샤르틀, 시몬 드 보루아드 등은 철학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걷기와 그들 사상의 연관성은 언급된 적이 없었고 저자는 철학적 추론뿐만 아니라 감각 지각, 기억, 그리고 상상 까지 포함하여 가장 지적인 사고라고 할 수 있는 걷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보통 누군가가 걸었던 길을 따라 걷는 행위는 일종의 성지순례이고,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는 방법이며 그 사람을 더욱 가깝게 느끼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특히 4장에서는 실존주의 철학자 샤르트르의 존재와 무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어서 관심있게 읽었습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사르트르를 힘내요! km 만 더 가면 된다고 다그치는 부분에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보부아르에게 하이킹은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수단이었다고 합니다. 그 시절 많은 낭만주의자들처럼 그녀에게 그것은 영혼의 탄산수라고 했습니다. 9-10시간 정도를 걷기도 했다는 보루아르의 강한 의지와 정신력은 높이 살만 합니다.
걷기란 대체 무엇일까요? 걷기는 단순해 보이지만 이 책에서는 의미가는 바가 큽니다. 걷기가 어떻게 공간과 장소를 드러내며, 신체화된 인지에 관해 알려줄지 그리고 길과 도시는 그저 물리 공간의 일부에 불과하지 앙드레 브르통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면, 그의 경험을 ‘기억’할 수 있을까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에 관한 장에서 저자는 자유, 무, 불안, 자연, 반-자연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자연 속 걷기를, 하이킹을 탐구합니다. 영국의 콴톡스Quantocks를 걸으며 저자는 콜리지의 걷기와 시적 상상력 사이의 관계를 추적합니다. 또 루소와 니체는 고독한 산행과 위대한 사상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보게 됩니다.
자신과 다른 의지와 계획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녀가 걸었던 세계가 그녀에게만이 아니라 다른 보행자들에게도 비밀을 알려준다는 것, 그 세계에 대한 그녀만의 의미를 변화시켜 그녀의 독점적 소유권을 박탈한다는 것을 뜻한다. ---p.107
혈액 순환의 증가와 스트레스 완화, 면역 기능의 증진, 근력 증가 등 걷기의 중요성은 두 말 할 것 없습니다. 걷기는 단순히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 뿐 아니라 명상적이 사고를 자극하기에 위대한 철학, 사상가들이 열정적인 보행자였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의 깊이는 속도에 반비례한다고 합니다. 생각의 속도와 영혼의 속도가 우리 몸의 공명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건조하게 황폐해 질것입니다. 어지럽고 복잡한 세상 걸으면서 주변도 살펴보고 하늘도 한번 보고 생각을 정화하기에도 좋은 일입니다. 비록 내가 가는 길이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이라도 한 발 한발 내딛여 보면서 작은 행복을 누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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