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머릿속에 천재라고 남겨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사람이 그 중 한 사람인 바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일 것이다. 살아가면서 어느 정도까지는 칭찬받는데 있어 우리 자신의 재능을 적당히 포장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느 사람의 경우 재능이 너무 특별한 나머지 그것이 선물로 받은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하다. 살리에르가 죽기 직전 자신이 모차르트를 독살했다고 주장한 이야기는 사실은 아니라고 한다. 그렇지만 피터쉐퍼의 희곡으로 '모차르트와 살리에르'는 다시 살아나고, 그 극이 '밀로스 포먼' 감독을 만나서 동일한 영화로 작품화 되어 아카데미상까지 쥐어지게 되는 그러한 위대한 영화로 탄생한다. 살리에르는 어린시절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시골아이었지만 결국 그는 궁중악사가 되었다. 그는 모차르트보다 5살 연상이었으며, 어릴적 모차르트처럼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지아래 성장하지는 못하였지만 그는 7년간 궁중악사로 있으면서 인정을 받고 지낸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가 괴팍하고 음탕하기까지 한 모차르트를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지지아래 7살 때에 이미 음악계에 등장한 모차르트는 자신의 고향 찰쯔브르크에서는 그다지 환영을 받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비엔나로 오게 되고 황제 앞에서 연주를 하게 된다. 그리고 또한 그 당시 이태리어로만 공연되던 오페라를 대중들에게도 확산시킬 수 있도록 '독일어'로 곡을 쓰고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이때가지만 하여도 살리에르는 모차르트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표면적으로 자신에게 다시 돌아올 그 무엇은 느끼지 못하였다. 그러나 황제가 모차르트에 대하여 인정하고 어느 날 모차르트의 부인이 모차르트의 원본악보를 가지고 찾아왔던 날,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질투에 휩싸이게 된다. 그는 어린시절 신에게 신을 찬양하고, 신을 위하여 영원한 음악을 바칠 수 있는 재능을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지금껏 그렇게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느꼈지만 도저히 따라갈 수도 없고, 절대적 미의 단계와 같은 음악을 만드는 모차르트의 가히 천부적이라 밖에 할 수 없는 그 재능 앞에서 자신에게는 욕망만 있을 뿐, 재능은 주어지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모차르트가 작곡한 음악들은 단 한번의 수정도 없고, 이미 머릿속에서 완성된 것을 그저 악보에 옮겨놓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살리에르는 그 악보가 들어있는 리본을 열기를 두려워하였다. 그 속에 무엇이 있을지 그는 두려웠고 자신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곡과는 차원이 다른 모차르트의 작품에 지레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그는 왜 신이 자신을 찬양하는데 신이 모차르트를 택하였으며 자신에게 비교 불가능한 것을 인정할 수 있는 능력-보통사람은 잘 알지 못하는-을 주시고 그로 인하여 그가 보통의 재능을 가진 사람임을 알게 한 것을 알게 된다. 영화에서는 십자가상을 불에 던져 넣음으로서 신에 대한 원망과 모차르트를 향한 그의 질투가 가져올 파멸을 보게 된다. (질투라는 것은 우리가 그저 가볍게,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내면에서 표면화된 것만 타인이 본다는 점에서는 가벼운 것으로 여길 수도 있겠으나, 영화에서처럼 살리에르를 파멸과 고통에 이끌고, 내면세계의 그 불같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만드는 비교와 경쟁으로 인한 자존심의 상처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질투와는 차원이 다르며, 누구나 가벼이 넘길 수도 있으나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이 바로 질투일 것이다.) 결국 살리에르는 모차르트가 궁중에서 생활하는데 있어 불리한 쪽으로 유도해 나갔고, 그 자신은 그 자리를 지켰다. 누가 보아도 살리에르가 이 어린 모차르트에게 질투를 느끼고 있으리라는 것은 잘 몰랐을 것이다. 결국 영화에는 모차르트가 '레퀴엠'을 작곡한 후에 죽었으며, 죽고 난 후 공동묘지에 묻혀 그의 비석하나 찾아보기 어려운 그런 말년의 인생을 보여준다. 이 위대한 천재에게는 영화에서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그의 재능에 걸맞는 의무감-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과 현실에 메이도록 강요한 그녀의 아내, 아버지의 지나치다 싶을 훈련,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는 청중들과 궁중음악가들 사이에서 외로운 인생을 보냈음이 틀림없다. 영화는 모차르트가 죽은 뒤, 파멸속에서 살아가던 살리에르가 정신병동과 비슷한 곳에서 한 신부를 만나 젊은 날 자신의 성장과 모차르트와의 만남, 그리고 겉잡을 수 없이 암세포처럼 퍼져나간 질투와 자신의 보통재능의 인정할 수밖에 없음으로 인한 신을 향한 분노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면서 진행이 된다. 신부조차도 그가 작곡한 노래는 기억하지 못하나 모차르트가 작곡한 노래를 아는 장면에서, 모차르트는 죽어도 살아있고 자신이 그토록 바랬던 자신의 사후에도 불려지기 원했던 살리에르의 음악은 살아남지 못하였다. 영화는 보는 동안 잠깐잠깐이지만 모차르트의 음악세계를 접할 수 있도록 하여주고, 모차르트가 탈진할 정도로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들, 그리고 그의 기괴한 웃음, 살리에르의 모차르트를 향한 질투는 재능을 부여받은 사람, 그리고 인간의 욕망-자신의 욕망을 신을 향한 찬양으로 포장하기에도 이르는-그리고 질투에 관하여 사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여준다. 비록 이 영화가 그 부분에 대하여 단편적으로 다루었고 시대를 살아간 '모차르트와 살리에르'를 영화한 것이지만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속에서 그 부분을 보지 못한채 지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타인의 성공이나 재능이 자신의 행복의 잣대로 자리를 잡아가는 이 시대, 특별한 재능, 앞에서는 도저히 노력도 통하지 않을 것 같은 삶-거세된 희망이라는 책에서는 성공으로 향한 그 줄이 이미 끊어져 도저히 올라가려고 해도 올라갈 수 없는 삶-이 보이는 시대이다. 살리에르가 분명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그에게 붙여질 수는 없겠으나 어쩌면 인간에게는 '비교와 경쟁의식'이 사라질수는 없겠으나 삶은 우리에게 그것에 사로잡혀 자신에게 주어진 생과 나름의 비교불가능한 능력, 삶을 비교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다시 우리에게 향하여 있으며 그 질문에 대한 대답도 우리가 해야 한다. 시대가 우리를 가두고 우리를 제한한다. 가끔 내가 스스로 제한하는 생각속에는 나도 어쩔 수 없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고 그 시대에 광고되어지고 포장되어진 사상속에 함께 흘러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게 된다. 선이골 마을에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는 그것을 다름아닌 자본주의 사회의 '노예'로 표현을 하여준다. 오늘 마음속에 작은 마을 하나 그려본다. 영화는 1985년에 개봉이 되었다고 하고 언제 학교 다닐 때 단체관람을 간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있지만 20년이 지나서 만난 영화의 주제는 여전히 오늘에도 유효하다. 영원히 그럴 것이다. |
| 나는 이 영화를 가족과 함께 보았다. 그 중 한 분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다. 바로 아버지다. 평소 영화를 즐겨 보지 않는 아버지셨지만 이 영화를 보시고 나서는 한마디하셨다. '거 참 잘만든 영화구만' 나중에 들어보니 아버지는 모짜르트보다는 살리에리에게 더 끌리셨다고 한다. 그 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왜냐하면 살리에리가 영화에서는 나쁘게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아버지 심정이 이해가 단다. 세상에는 너무 뛰어나면 남들 눈밖에 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짜르트가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런 좋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물론 영화의 내용이 실제와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영화 자체로는 별 다섯개를 주고 싶지만 dvd는 좀 아니다. 많은 내용을 담다보니 한 디스크를 양면으로 나눈 것 같은데 조금 불편하다. 그리고 영화 도입부에는 잡음도 심하고. 아무래도 보급판이 갖고 있는 한계이겠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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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다닐 때 극장에서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것이다. 모짜르트와 살리에르, 천재와 보통 사람의 이야기로 수업을 했던 기억도 조금 난다. 그때 교수님께서 들려주신 영화평은 내게 충격이었다. 줄거리로만 영화를 보던 내 눈을 약간, 아주 약간 띄워 주셨는데 그것만으로도 이후 내가 영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 주셨던 것이다.
사실 나는 영화도 잘 모르고 음악도 잘 모른다. 그냥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덩달아 보고 그러다 내 마음이 울리니까 좋은가 보다 한다. 이 영화를 볼 때도 그러했다.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좋다고 해야 하나 보다 하고.
시간이 흘러 집에 디브디 플레이어가 생기고 디브디를 하나둘 구입하게 되면서 이것을 샀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과 볼륨을 크게 해 놓고 보았다. 다시 보니 어릴 적 보았던 것보다 더 큰 감동이 일어났다. 그런 나보다 애들이 더 좋아했다. 영화와 음악의 장점을 한꺼번에 누릴 수 있는 디브디를 얻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리고 오늘 오랜만에 이 영화를 본다. 다시 보아도 또 좋다. 내가 천재가 아닌 것, 보통 사람인 것, 보통 사람이면서 천재에게 질투를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것에 감사한다. 모짜르트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
| 일단 재미있다. 고풍스런 모짜르트 당시의 시대상황을 세트나 의상을 통해서 멋드러지게 재현했고 너무나 환상적인 음악이 압권이다. 영화를 관람하는 시간 내내 다음이 궁금해 지는 영화이다. 아이들도 쏙 빠져드는 영화였다. 참고로 전 이 영화를 세번 봤습니다. 극장에서 1번 + DVD로 2번 모두 좋았습니다. 영화 도중에 모짜르트의 부인이 남편을 위해서 살리에르에게 몸을 허락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주 야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보면서 그 장면은 대략 난ㄱ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첨언 한다면 "Best" |
| 너무 보고 싶은 영화인데 파는 곳은 다 품절이어서 듀얼레이어인줄 알면서도 할 수 없이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정도 인줄은 정말 몰랐어요. 영화 중간중간에 멈추기도 하고 심지어는 재생시키면 저작권에 등록되지 않았다고 재생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작품은 나무랄데가 없으나 제품 품질이 정말 최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