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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삶을 단 30분만에 이해하려 드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 것이다. 게다가 융은 거의 한 세기에 걸친 시간동안 심리학계에선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다. 그런 그를 30분 동안 만나기 위해선 적지 않은 준비운동이 필요하다. 가볍게 쓰여진 만큼 술술 읽을 수 있지만, 읽고 나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기억할 수 있느냐는 이 준비운동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리학'하면 으레 우리는 프로이트를 떠올린다. 지난 20세기, 정신분석학이 인류에 끼친 어마어마한 영향을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프로이트를 향한 비판 역시 존재했다. 그의 이론은 모든 것을 생의 초기로 환원시켜 버렸다. 과거 어느 한 시점, 해결되지 못한 갈등이 남아 있어 현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그의 이론은 현재의 중요성을 반감시켜 버린다. 게다가 그의 이론은 지나치게 성에 집착한 나머지, 인류의 절반을 구성하고 있는 여성은 실로 어설프게(?) 다루었다. 모든 여성은 잃어버린 남근을 선망하는, 남성이 되길 갈망하는 존재이다. 게다가 인간의 모든 행위는 성과 연결되어 있다. 내가 지금 여드름을 짜내는 행위마저도, 여드름이 빠져나간 후 생기는 분화구(?)를 프로이트는 남성의 성기를 받아들이기 위한 구멍으로 해석한다. 너무도 좋은 피부를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나머지 여드름과 자주 사투를 벌이는 나는 프로이트가 볼 때 섹스를 하고픈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_-
융의 이론은 프로이트로부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인간의 발달단계를 생각하고, 잠재된 무의식의 영역마저도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등의, 이론의 뿌리는 거의 프로이트로부터 왔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융은 앞서 내가 언급한 프로이트 이론이 갖는 단점들에 주목했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닌 현재였다. 그는 인간은 삶 전반을 통하여 자신의 자아를 형성하며, 프로이트처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현재의 갈등을 다룰 수 있다고 믿었다. 모든 에너지가 성과 관련되는 것 역시 아니라고 보았다. 처음에는 프로이트의 '리비도'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했지만, 머지 않아 그는 '정신적 에너지'라는 자신만의 용어로 이를 부르기 시작했다. 프로이트에 기반한 듯했던 그의 이론은 점차적으로 프로이트로부터 멀어졌다. 그는 프로이트를 부정함으로써 프로이트보다 좀더 앞으로 나아갔으며, 정신분석 이론의 기본을 비판함으로써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는 다른 분석심리학을 탄생시켰다. 진보를 위해 필요한 변증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여전히 융보다는 프로이트에 익숙하다. 하지만 융은 인간의 성격을 내향적/외향적으로 구분했고, 아니마, 아니무스, 페르소나 등 한 번 정도는 들어보았을 법한 용어를 사용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 MBTI 검사는 하면서도, 검사에서 성격을 나누는 기준을 만든 사람이 융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융의 (집단무의식에 관한) 이론은 서양과는 다른 문화를 가진 우리에게도 잘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융의 이론이 과학적이기보다는 사변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실제로 연금술, 점성술 등 신비주의적인 분야에 관한 그의 관심은 한평생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짐으로서 그는 과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이 소유한 다채로움(?)마저도 자신의 이론을 통한 증명을 시도하였다. 후대 사람들에게는 비과학적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넘치는 에너지로 인해 그는 과학의 영역을 벗어난 부분까지도 과학 안으로 포섭하려는 노력을 그칠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 읽고 나니 30분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융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대충 이해할만 하다는 생각과 함께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어제 내가 꾼 꿈의 의미가 궁금해졌고,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나고 싶어졌다. 의문이 그치지 않아 괴로워하는 찰나에 책의 앞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캐리커처와 눈이 마주쳤다. 입이 살짝 위로 올라간, 마치 '쌤통이다' 고소해하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평생을 연구했지만 그의 긴 삶도 모든 것을 밝혀내는데는 짧았음을 잘 알고 있기에, 나의 물음 역시 해결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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