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디트마어 엘거의 『게르하르트 리히터: 영원한 불확실성』은 단순한 예술가의 전기가 아니라, 게르하르트 리히터라는 인물의 삶과 그의 예술 세계를 심층적으로 탐구한 책이다. 방대한 정보와 세부적인 내용이 처음에는 다소 압도적으로 느껴질 수 있으나, 책을 읽어 나가면서 리히터가 왜 현대 미술의 거장으로 평가받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리히터가 동독에서 서독으로 이주한 이야기는 단순히 국가 간의 이동을 넘어선다. 이는 분단된 시대 속에서 개인이 겪었을 혼란과 그가 이를 예술로 풀어내기 위해 시도했던 노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리히터의 작품에 일관되게 담긴 ‘모호함’은 바로 이러한 삶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독자는 깨닫게 된다. 리히터가 사진을 회화로 변환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은 특히 흥미로웠다. 사진의 사실성과 회화의 주관성을 한 화면에 결합한다는 발상은 매우 독창적이며, 단순히 시각적 실험을 넘어 기억과 진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탐구하는 철학적 시도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10월 18일, 1977 시리즈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의 재현이 아니라,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이 책의 큰 매력 중 하나는 저자인 엘거가 리히터를 설명하면서도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 점이다. 리히터의 작품이 늘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것처럼, 엘거의 글 역시 독자가 스스로 리히터의 작품 세계를 탐구하도록 유도한다. 책 속에는 학술적이고 다소 난해한 부분도 존재하지만, 이러한 요소는 오히려 리히터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예술 세계를 깊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리히터의 추상 작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된 점이었다. 이전에는 그의 구상 작품에만 매료되었으나, 이 책을 통해 그의 추상 작업이 지닌 우연성과 즉흥성이야말로 리히터가 추구한 ‘완전한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철학을 가장 잘 드러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추상 작품은 혼돈처럼 보이는 겹겹의 색채와 형태 속에 리히터의 끊임없는 탐구와 질문이 담겨 있다.게르하르트 리히터: 영원한 불확실성은 리히터라는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넘어, 복잡한 현대 사회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고자 했던 한 인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을 읽은 후에는 리히터의 작품 앞에서 더 오래 머물게 되고, 그의 작품을 통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싶어진다. 리히터와 그의 작품 세계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그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데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 |
|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현대 미술의 전설로, 그의 작품은 삶과 존재에 대한 깊은 물음이 담겨 있습니다. 디트마어 엘거의 『게르하르트 리히터: 영원한 불확실성』은 리히터의 작품 세계와 그의 복잡다단한 삶을 따라가며 예술가의 전기 그 이상으로, 존재와 표현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록입니다. 드레스덴-나는 항상 폭발하는 것들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리히터의 고향 드레스덴은 그의 예술적 기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입니다. 동독에서 자란 그는 전쟁의 흔적과 억압된 환경 속에서 독창성을 갈망했습니다. 그에게 있어 불확실성은 두려움이 아닌 창조의 자극제였습니다. 드레스덴 시절 그의 초기 작품은 현실과 초현실, 전통과 파괴의 경계를 넘나들며, 후에 그의 예술 철학이 될 ‘경계 허물기’의 첫 단계를 보여줍니다 스타일 원칙으로서 스타일 깨부수기 리히터는 ‘스타일’을 특정 방향으로 규정짓는 것을 거부하며, 스타일 자체를 깨뜨리는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추상과 구상의 혼합, 사진적 사실주의와 모호한 표현주의를 자유롭게 넘나듭니다. 이 과정은 특정한 틀이나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그의 예술적 철학을 보여주는 상징적 과정이었습니다. 디트마어 엘거는 리히터의 고정된 진리를 부정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그의 실험적 시도를 세밀히 조명합니다. 비르케나우-연작이 완성된 후에는 자유를 느꼈습니다. 더 이상 어떤 것도 고려할 필요가 없었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했으니까요. 리히터의 작품 중 가장 주목받는 연작, '비르케나우'는 역사와 기억, 그리고 불확실성이 어떻게 예술로 승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아우슈비츠의 사진을 캔버스에 옮기고 이를 다시 덮어버리는 방식으로, 과거의 기억을 지우는 동시에 새롭게 창조합니다. 이를 통해 리히터는 진리의 고정된 형태를 부정하며, 관람자에게 직접 진실을 탐구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p617 리히터는 이러한 무한히 대안적인 회화적 결과물을 통해 어떤 진리도 절대적인 것으로 제시하지 않고 관람객에게 현실을 경험하게 하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보여 준다.#도서제공 #게르하르트리히터 #영원한불확실성 #을유문화사 #디트마어엘거 #서평 #현대미술 |
|
* 출판사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 <작가 미상>을 보았었다. 그때의 난 미술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이 영화의 실제 인물인 게르하르트 리히터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었는데 영화 덕분에 이름을 알게 되었었다. 그러나 사실 지금에 와선 이 영화의 후반부는 거의 기억에 없다. (3시간이 넘는 영화였는데, .... 잤나....?) 전반부 어린 주인공의 이모 엘리자베스가 그 역겨운 '인종 개량'(우생학)의 희생자로 목숨을 잃는 장면, 그리고 주인공이 미술대학에 진학한 후 선전미술을 그리는 장면 같은 것만 유난히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그러니까 정작 중요한 그 이후의 리히터의 작품과 삶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영화를 본 직후엔 리히터에 대해서 더 공부해 보아야지,라고 생각했었지만 영화의 내용이 흐릿해지는 속도보다도 더 빠르게 그 생각은 스러져갔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이름이 다시 내 머릿속에 소환된 것은 몇 년 후 곽아람 작가님의 책 <공부의 위로>덕분이었다. 표지의 이 '사진'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읽는 사람>) 누구 작품이지? 하고 앞날개를 펼쳤을 때 사진이 아닌 그림이라고 해서 놀라 작가의 이름을 검색하니 함께 검색된 영화가 있었고, 영화의 시놉시스를 읽다 보니 왜 내용이 익숙하지, 하고 곰곰이 기억을 되짚어보다가 영화 <작가 미상>을 생각해 냈다. 두 번째 만남으로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이름이 드디어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그러나 그때에도 '이름 기억'까지가 끝이었다. ![]() 지난해 12월, 인스타그램 피드를 넘기던 중 을유문화사의 피드에서 그렇게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던 미술가의 이름을 보았다. 영화를 보았던 2018년과는 다르게, 코로나 시절 동안 미술에 급격하게 빠져들어있었던지라 드디어 때가 왔다, 싶어 서둘러 서평단 신청을 했고 감사하게도 6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을 손에 쥐게 되었다. 작년 말에 '아마도 2024년의 마지막 책'일 것이라고 성급하게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데 2024년의 마지막 책도, 2025년의 첫 책도 아니지만 어쨌든 디트마어 엘거가 성실하게 탐구하고 기록한 리히터의 '거의 모든 것'을 꽤 오랜 시간을 할애해 읽어내었다. 그가 기록한 리히터의 작품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확장하고, 그러나 다시 되돌아갔다가 다시 나아가기를 반복한다. 구상과 추상을 오가고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흐릿하게 문지른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모호한 태도를 관철하는 리히터의 일화들을 읽으며 혹시 이 분 회피형인가? 하고 잠시 장난스러운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난 뒤, 그는 어쩌면 오히려 하나의 사조,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노선'을 정하는 것을 온 삶을 다해 거부하며 오히려 명료하게 '확증편향'의 위험을 스스로에게, 또 우리에게 경고해온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책 거의 초반 부의 "내가 그림으로 표현한 건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자 함이 아니라 나 자신도 이 어려운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라는 리히터의 말은,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서야 겨우 이해되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자마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사실 처음 읽을 땐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윤혜정 작가님의 추천의 글을 다시 되짚어 읽었다. "절대적 그림도, 아름다운 이상향도, 명확한 진실도 존재할 수 없는 현실에서 그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흡수해 도로 뱉어 내길 반복하며 세상을 보는 예술 공식을 만들어 냈다. 사실 작금의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숱한 비극적 상황들 역시 지나치게 확고한 신념과 신성불가침한 이념, 결연한 태도와 정형화된 정체성 등 모든 게 압도적으로 분명해서 생긴 문제가 아닐까. 그러므로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말을 역사와 예술의 과오에 맞서며 명예를 지켜온 리히터에게서 듣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소 불친절한 책이었다. 120개에 달하는 도판이 실려있긴 하지만 리히터의 작품을 잘 알지 못하는 나에게 120점은 너무나도 부족했다. 하지만 이 성실한 예술가는 너무나도 성실하게 자신의 작품을 아카이빙 해 왔기에 그의 홈페이지에서 그가 작품 뒤에 붙인 숫자만으로 간단하게 작품을 검색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모든 작품을 검색하며 읽지는 못했지만 중요하게 언급되는 작품들을 홈페이지의 도움을 받아 이미지를 확인하며 읽을 수 있었다. (https://www.gerhard-richter.com/en) 사진회화, 추상화, 풍경화 등 다양한 스타일을 오가는 리히터의 예술 세계를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친 삶의 경로, 그 경로 위에서 만난 예술가들, 컬렉터들, 갤러리스트들과의 관계들, 당대의 평론들까지 방대한 이야기 꾸러미를 펼쳐놓은 이 책은 왜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예술가인지를 납득시킨다. 책을 다 읽고 영화 <작가 미상>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영화의 시작이 나치 독일의 퇴폐미술전이었다는 것이, 소년이 바라본 불타는 드레스덴 위로 날아가는 전투기들이 나오는 장면이 그의 그림 <폭격기(13)> 와 겹쳐진다는 것이, 이제야 새삼 눈에 보인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선택의 부재, 구성의 부재, 스타일의 부재, 내용의 부재와 같은 용어가 리히터 작품의 특징이다. - 주자네 에렌프리트의 리히터의 초상화에 관한 논문 <특성없이> 중" 책을 다 읽고 나니 이 '부재'야말로 리히터가 끝없는 고민 끝에 어렵게 선택한 답이었음을 알겠다. 언젠가 꼭, 그의 작품 <October 18, 1977 (1977년 10월 18일)> 연작과 <Birkenau(937/1~4)(비르케나우)>를 직접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영화를 마저 보러 가야겠다. |
|
#게르하르트리히터 #디트마어엘거 #윤혜정 #을유문화사 #백남준 #베를린 #독일미술 #현대미술 #영원한불확실성 #사진예술 #회화 지난 2024년 12월. 을유문화사에서 현대 예술의 거장 시리즈로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출간되었다. 그 무렵 한창 리히터에 관심이 생겼던터라 반가운 마음에 600여페이지의 두께가 부담이 아닌 반가움으로 다가왔다. 관심의 출발은 백남준의 ’일어나 2024년이야!‘ 전시회 해설 준비를 위해 관련 자료를 찾다가 박사학위 논문 중 리히터와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 작품을 ’하이브리디제이션 양식‘으로 비교한 논문을 접하면서 였다. (덧붙이자면 앞서 언급한 2024년 전시가 바로 해당 작품에서 주제를 끌어왔기에 관련 논문을 찾아보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같은 해(1932년)에 태어난 아티스트이자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 받은 작가들이며, 백남준의 첫 전시 또한 독일이었기 때문에 겹치는 부분이 조금 있다는 정도였는데 해당 논문을 읽으면서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또 우연이 겹치면 운명처럼 느껴진다고 그럴만한 사연이 또 있는데 그건 나중으로 미루고 리히터에 대해 책을 통해 알게 된 부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메체적 균형이 완벽하고 설득력 있게 작동하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기술적 단점을 차용하지 않고, 주로 아마추어가 주도한 인상주의 사진의 문체적 요소를 사진적 블러링의 형태로 적절히 차용한 때문이다. (...) 그의 그림은 사진을 모방하고, 이는 다시 회화의 선택적 시각을 모방한다. 따라서 리히터는 자신의 그림이 회화와 사진에 똑같이 속한다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다. (190-191쪽) 리히터가 시대적으로나 작품세계의 주류가 변화되는 양쪽 모두를 경험한 작가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있다. 그래서 리히터의 회화작품과 사진작품을 별개로 감상한 사람들은 어색하다거나 낯설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중요한 사실은 바로 그런 부분이 작가로서는 괴로울 수 있지만 작품을 표한하는 방식이나 활동 자체에 있어서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에 있어 어떤 방해도 되지 않았다는 점이 작가적 역량을 짐작케 한다. 그런가하면 동독에서 예술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도 서독에서 역시 자본주의에 의해 소비화 되는 사회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내게 리히터의 작품 중 가장 맘에 드는 것을 고르라면 1960년대 후반에 작업한 풍경화, ’후벨라트 근처의 풍경(1969)‘이다. 얼마전 읽었던 배리 로페즈의 ’호라이즌‘을 읽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수평선‘이 이토록 아련했던가 싶을만큼 맘에 들었다. 당시의 리시터의 방식이나 살아온 배경이 프리드리히와 유사하다고 하여 비교되었다고 하니 해당 글도 찾아서 읽고 싶어졌다. 이어지는 ’아틀라스‘ 전시와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위한 ’48점의 초상‘ 전시도 사진 속 작은 사진들로 보고 있자니 현장에서 보았을 사람들이 부러워질 정도였다. 이후 과감하게 표현된 색 만큼이나 무거운 주제등이 거친 느낌으로 다가왔지만 개인사를 함께 읽으면서 그런지 나중에는 별다른 감상이 남아있지 않아 신기하기도 했다. 사실 의외였던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정도로 그의 그림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었고, 또 그런 진중한 내용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언제 전시를 볼 수 있게 될지 기대가 자꾸만 커졌다. "다른 사람은 수집할 수 없는 특별한 작품들을 수집할 수 있었다는 것이 행운이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있어도 리히터의 작업실을 통째로 수집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리히터가직접 작품을 선택하고 순서까지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독특한작품을 만나면 수집가는 행복할 수밖에 없지요." 419쪽 타이틀에 ’영원한 불확실성‘이란 문구가 쓰여진 이유를 읽는 내내 납득할 수 있었다. 리히터만을 위한 책을 찾기가 쉽지 않은 이때, 이런 귀한 책을 만나게 된 건 정말 행운이란 생각이 든다. 행운이 기대하는 이들이라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
|
서평: 을유문화사 신간 『게르하르트 리히터: 영원한 불확실성』 『게르하르트 리히터: 영원한 불확실성』은 현대 미술의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삶과 작품 세계를 깊이 있게 탐구한 평전이다. 디트마어 엘거는 리히터의 친구이자 비서, 그리고 전시기획자이자 평론가로서의 독특한 위치를 활용해, 그의 개인적 삶과 작품을 입체적으로 조명해냈다. 이 평전은 화가 본인은 물론 갤러리스트, 언론인 및 비평가, 그리고 동료 예술가들과 나눈 심도 깊은 인터뷰와 리히터 아카이브에 있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작가와 그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국내에서의 리히터와 이 책의 의미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b. 1932)는 생존 작가 중 작품 가격이 가장 높은 화가로, 데이비드 호크니나 제프 쿤스와 함께 언급되는 현대미술의 거장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그의 전시가 드물어 대중적으로는 다소 생소한 인물이다. 이 책은 리히터의 예술 세계를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평전으로, 그의 대표작은 물론, 잘 알려지지 않은 개인사와 미공개 작품들을 풍부한 도판과 함께 담고 있다. 65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본문은 리히터의 삶과 작품을 심도 있게 탐구하며, 그가 현대미술의 방향성에 끼친 영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리히터의 웹사이트(https://www.gerhard-richter.com/en)와 함께 활용하면 더욱 유익하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 세계 그의 작품은 특정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고, 사진과 회화, 추상과 구상, 채색과 단색을 넘나든다. 특히 사진과 회화를 융합한 독특한 양식은 현대미술의 경계를 확장하며, "끝없는 불확실성"이라는 그의 철학을 구현한다. 개인적 경험과 역사적 맥락이 담긴 작품들 이 책을 통해 이 작품들이 단순한 가족의 초상이 아니라, 리히터의 개인사와 독일 현대사의 상흔이 녹아든 깊은 서사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리안느 이모>는 나치 독일의 정책에 희생된 이모가 소녀일 때 아직 어린 리히터와 찍은 사진을, <루디 삼촌>은 나치로 활동하다가 전사한 삼촌이 군복을 입고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된 회화다. 이 두 작품은 내막을 모르고 보면 그냥 초점을 흐린 사진 회화이지만 그 속에 역사적·개인적 복합성을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작품이었다. 미술사적 통찰과 현대 미술의 질문 사진과 회화의 융합: 리히터의 대표적 기법인 '사진회화'는 사진의 객관성과 회화의 주관성을 결합해, 재현과 추상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미학을 창조했다. 사진회화는 사진의 객관성과 회화의 주관성을 결합하며, 재현과 추상의 경계를 허문다. 그의 대표적인 '블러' 기법은 현실과 환영을 동시에 드러내는 혁신적 접근이다. 이 평전을 통해서 그가 왜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그의 작품에 대한 보다 심도있는 이해를 돕는다. 결론: 기억과 불확실성 속에서 탄생한 독창성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전통을 재해석하며 현대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개척한 예술가다. 『게르하르트 리히터: 영원한 불확실성』은 그의 작품 세계를 치밀하게 분석하며, 현대미술의 지속적 대화와 확장을 보여준다. 리히터의 작업은 단순한 예술적 표현을 넘어 관람자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예술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다. 현대미술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은 리히터를 이해하는 데 훌륭한 가이드가 될 것이다.『게르하르트 리히터: 영원한 불확실성』은 단순한 평전을 넘어, 현대미술의 복잡성과 가능성을 탐구하는 이들에게 깊은 통찰과 영감을 제공한다. |
|
본 저서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에 대한 첫 번째 전기 『Gerhard Richter: A Life in Painting』(2002 초판)이 『게르하르트 리히터 : 영원한 불확실성』(2024)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것이다. 국문 번역서는 2018년에 수정, 보완 발행된 3판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리히터의 2017년 작품까지 수록되어 있다. 저자인 디트마어 엘거(Dietmar Eleger)는 리히터의 친구이자 조력자로서 그와 함께하며 신뢰를 쌓았다. 때문에 본문에는 단순히 아카이브 자료를 손에 쥔 연구자의 건조한 분석과는 다른, 대상과 오랜 시간을 공유한 관찰자만이 지닐 수 있는 애정 어린 시선이 묻어난다.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저자가 자칫 자의적 서술로 어긋날 수 있는 경계를 능숙히 다루며, 객관적이고 전기적인 서술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전의 형식을 따르되 인과관계의 순리에 따라 직관적인 추론이 가능한 수준에서의 분석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리히터에 관해 보다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가치있는 자료로 다가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문 번역본에서는 리히터의 인터뷰를 따라 책 제목이 "영원한 불확실성"으로 바뀌었다.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관련 분야 관계자들에게는 더없이 친숙한 작가이다. 그러나 실상 국내에서 작품이 전시를 통해 소개된 적은 드물었기 때문에, 이 같은 책 제목은 작가 자체에 대한 친숙성과 이해도를 높이기에 매우 용이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불확실성을 좋아한다"라는 리히터의 인터뷰에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특히나 책을 다 읽고 난 뒤의 감상이 그러했다. 그의 전체적인 작업 스타일이 변화하는 과정과, 작품 자체가 시사하는 바들을 놓고 보자면 불확실성을 좋아한다는 리히터의 말이 얼추 맞는 듯 보이나, 대중과의 상호작용 측면에서 보자면 그는 누구보다 명확한 지향성을 지닌 듯 보였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저자인 디트마어 엘거가 지목하듯 리히터는 대중의 인정과 상업적 성공을 적극적으로 추구했다. 이는 작가가 꾸준히 공공 공간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작품의 형식과 주제의 궤적은 그의 삶을 따라 유연하게 흐르되, 모든 작업의 저변에는 작가의 열망과 얽힌 강력한 경향성이 존재했던 셈이다. 동시대 미술을 다루다 보면, 상업적인 방향의 추구를 배척하는 움직임을 종종 볼 수 있다. 마치 '진정하고 순수한 예술'이라면 탐하지 말아야 할 영역을 넘보고 있다는 듯한 뉘앙스마저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리히터의 평전을 읽다 보면, 상업성은 작품이 나아가야 할 길 혹은 그것의 형식이나 주제의 차원을 떠나 보다 원초적인 인간의 영역과 연결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업을 주도하는 인간 주체의 어떠한 부분을 강력히 내보이길 원하고, 이로 하여금 타인의 이해를, 혹은 집단의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강한 열망과 의지가 있을 때 이것이 대중과 밀착하며 '상업성'으로도 발전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는 보다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관계지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모쪼록 리히터의 평전은 작가와 그의 작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에 기여하는 한편, '예술'을 다룸에 있어 은연중 저항해왔던 '상업성'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듯 하다. |
![]() ![]() 어떻게 보면 현대 예술에서 다양한 소재를 발굴하고 이를 자신만의 창의성을 통해 새로운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과정이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늘 새로움과 예전 작품 사이를 오고 가며 감상할 수 있는 것 외에도 독특하게 시도한 결과물은 이런 작품들을 볼 때면 여전히 설렌다. ![]() ![]() 특히 저자가 다룬 구성들이 단순함의 문장을 넘어 한 예술가가 지나온 인생의 면들을 생각해 가며 그 시대에 어떤 생각으로 작품을 다뤘는가에 대해 독자들 스스로 작품 세계를 생각해 볼 수 있게 엮은 점은 그가 왜 현대 예술의 거장으로 불리는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