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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 아홉 번째 시집이라니. ‘누구나 밤엔 명작을 쓰잖아요’가. 대단하다. 하기야 25년 여를 시인으로 활동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여행은 틀렸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고, 그렇게 끝나지 않는 것이니 그러니 친구여, 길게 가보자는 그의 시어들은 명랑하고 그러면서도 날카롭다. 어느 평론가 말처럼 매혹과 참혹 사이의 그 어디에서 명작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입양이나 새어머니 등 변방에 머무는 단어들을 보듬는 그의 시 세계는 사실 처음 만난다. 당장 김이듬의 시 속에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 중 에밀리가 가장 그러하다.
눈발은 눈이었을 때 아름답다 (중략)
아침, 눈, 엄마 에밀리가 좋아하는 단어들을 나도 좋아한다
엄마 빼고는 여기 다 있다 (중략)
이 친구는 포틀랜드에서 입양 기록 갖고 엄마 찾으러 한국에 왔다
어제는 에밀리가 내민 지번 주소 들고 그의 부모 댁을 찾아갔지만 삼미시장으로 변한 거리만 확인했을 뿐 우리는 40여 년 전의 시간을 찾을 수 없었다
난생처음 한국에 온 에밀리와 난생처음 시흥에 온 나는 을씨년스러운 시내를 온종일 돌아다녔다 (중략)
- <블랙 아이스> 中에서 입양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슬프고 짠한데, 40년 만에 한국을 찾은 에밀리가 찾아간 옛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더구나 40년 전의 시간 마저 찾을 수 없다니. 그렇다고 절망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을씨년스러운 세월 탓이라도 하면 조금 위로가 되려나! 그런데다가 작중 화자인 ‘나’에게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철이 들어 나의 엄마를 찾아갔을 때 엄마는 새엄마보다 낯선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까 딸을 버리고도 그리움이나 죄책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 <블랙 아이스> 中에서
만나 봐야 좋을 게 없을망정, 한 번 더 버려질지 모를망정, 찾아가 봐야 하겠기에 무작정, 아니 수십 번의 망설임 끝에 찾아가 보지만, 모든 건 까마득히 모를 곳으로 사라졌다. 기억 속의 옛집도 엄마도 사라졌다.
극장에서 돌아와 글을 써요 나는 지저분하며 조그마한 구역에 살아요 (중략)
미안하지만 당신을 위로하러 글을 쓰진 않아요 이어링을 만지작거리며 명작을 써요 누구나 밤엔 명작을 쓰잖아요 은밀하고 거칠며 쓰라린 글쓰기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죠 (중략)
- <밤엔 명작을 쓰지> 中에서”
항상 떠날 궁리를 하지만 나를 여기다 데려다 놓고 데리러 오지 않는 사람이 혹시 들를지도 몰라서, 떠나지도, 떠날 수도 없는 사람은 아름다운 걸까, 슬픈 걸까. ‘그래도 너는 순정을 가졌잖니 대표님 순정부품 같은 말씀 마세요 너무 비싸거든요’ 하며 ‘욱’ 하여 치받는 작중 화자의 유머러스한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기도 해서 ‘픽’ 웃긴 하였다.
(중략) 무수한 별들은 서로 부딪치지 않으려고 빛을 발한다 이 밤이 지나면 신념을 가지고 거리에서 신년을 맞은 멍청한 정치인들처럼 다투지는 않을 것이다 (중략) 그 여인이 새어머니라고 말했던가? 새어머니를 가진 이는 무수하다 새어머니와 적대적이지 않은 이도 무수하다 엄마 를 자살로 몰아간 새어머니를 나를 상습 학대한 여인을 > (중략)
아,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이 쓸데없는 부사를 남용하며 나는 큰소리로 웃어댈 것인가 - <마지막으로> 中에서”
별은 ‘멍청한 정치인들처럼“ 다투지는 않을 것이라는 통렬한 풍자를 읽으면 짜릿하다. 감히 별과 정치인을 비교할 수 없는 거고, 당연히 별들만도 못한 건 사실이니까, 인간이 원래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비통해진다. ’엄마를 자살로 몰아간 새어머니를 나를 상습 학대한 여인을‘ 작가는 결국 용서하고 있었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 적대감마저 포기하였는가? 그래서 다시 김이듬의 시가 비통한 이유이지 싶다. 그런데 시의 중간, 중간마다 가끔 등장하는 >(홑화살괄호)란 녀석은 무엇을 위한 함정, 혹은 쉼터일까? 그의 시는 허락된, 그저 흔하게 제공될 수 있는 <>(홑화살괄호) 같은 안식처 마저 없다는 절망감이 그의 시를 낳는 감정이라고 잠깐 보여주나보다. 그럼으로써 좋아하는 시인은 시를 쓸 때 제목부터 적는다든지, 또는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들은 모두 한두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든가 비유하면서 모든 것이 내 곁에서 제자리로 돌아갈 궁리를, 아니면 호수로 추락할 것 같은 내 바지에 시선을 집중해야 한다면서, 날것 그대로 희고 따뜻한 알을 찾아내고 마는 예견을 연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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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감성을 아는 사람에게는 이 시집이 딱입니다 누구나 밤에 명작을 쓰잖아요 김이듬 시인의 시를 추천합니다 크기가 너무 크지 않은 시집이라 가방에 쏙 넣고 다니기 참 좋아요 겨울에 읽기 좋은 시들로 가득합니다. 추천하고 싶은 시집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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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에 나는 안락의자를 샀다고 말했던가? 이 의자에 눕다시피 앉아 나는 열 권의 책을 쓰고 서른 한 번의 겨울을 보냈다. 2020년 『히스테리아』의 영미 번역본이 전미번역상과 루시엔스트릭번역상을 동시 수상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 김이듬의 『누구나 밤엔 명작을 쓰잖아요』 시집에서 시인은 안전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얼어붙은 길목 앞에서 파쇄한 백지가 눈보라처럼 흩날리는 길 위에 서 있다. 비애와 불운의 배낭을 메고 길을 떠나는 시인의 고독은 세상과 엇물리는 자의 일방통행로를 따라 이어진 시어들이 누구에게도 사랑받거나 이해받지 못했던 이들과 함께 동행을 하듯, 정처없이 떠돈다. 어제는 에밀리가 내민 지번 주소 들고 그의 부모 댁을 찾아갔지만 삼미시장으로 변한 거리만 확인했을 뿐 우리는 40여 년 전의 시간을 찾을 수 없었다 ―?블랙 아이스? 중에서 2월의 강추위에 전국이 꽁꽁 얼어 붙었다. 서울을 벗어나면 “희고 부드러운 눈발”이 날리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모든 것들의 가격이 치솟고 불안한 살얼음판 위를 걸어 간다. 우리는 지난 시절의 무엇을 잊고 무엇을 새로이 맞을 것인가.... 방 모서리엔 낡은 회색 슬리핑 백이 있어요 오늘은 자지 않고 명작을 써요 반투명한 해파리처럼 생긴 전등을 켜요 미안하지만 당신을 위로하러 글을 쓰진 않아요 이어링을 만지작거리며 명작을 써요 누구나 밤엔 명작을 쓰잖아요 은밀하고 거칠며 쓰라린 글쓰기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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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만 되면 감수성이 풍부해지는 저에게 이 책은 마치 단비 같아요. 타이피스트 출판사 특유의 감각적인 편집과 문장들이 어우러져서 읽는 내내 감탄했답니다. 제목처럼 혼자 남겨진 밤에 이 책을 펼치면, 저도 모르게 저만의 명작을 써 내려가고 싶어지는 용기가 생겨요.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글귀가 많아서 머리맡에 두고 매일 조금씩 아껴 읽고 있습니다. 감성 에세이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무조건 추천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