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대 초반 H.P. 러브크래프트를 알고 이런 소설이 다 있구나하고 심장이 튀어나오도록 놀란 적이 있었는데 그 후에 러브크래프트에게 영향을 준 선배작가들의 국역소설(몬터규 로즈 제임스, 로드 던세이니, 아서 메켄, 앰브로즈 비어스, 엘저넌 블랙우드)을 차례로 알아가면서 이 놀라움은 더욱 커졌습니다. 요즘은 러브크래프트보다 이 분들 책을 더 흥미롭게, 가슴 졸이며 탐독하는 중입니다. 나이가 들고 점점 소멸된다고 느꼈던 '소설 읽는 맛'을 고스란히 회복시켜준 거장들인데, 그 소설들에는 그냥 코스믹 호러니 오컬트니 포크호러니 쉽게 단정짓는 말로 정의할 수 없는 '그 작가만이 축조할 수 있는 새로운 소설의 설계법'이 들어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분들의 매니아라면, 이 분들 책을 읽기 전의 나는 없고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황금가지판 <버드나무>를 읽고 엘저넌 블랙우드라는 작가에게 한겨울에 온수 소나기를 맞는 듯한 감명을 받아 다른 작품을 더 보고 싶다고 SNS에 토로한 적이 있었습니다. 동료 작가이신 김설아 선생님이 <웬디고>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셨고 품절된 책을 헌책방을 뒤져 기어이 구했습니다. <버드나무>나 <웬디고>나 복잡한 플롯과 숨돌릴 틈 없는 재미를 추구하는 현대 상업 소설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보다는 쓴 것의 에너지 만큼 쓰지 않은 것의 상상력까지 저절로 끌어내어 공포라는 감정을 미학적으로 음미하게끔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고전이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번에 새로 번역된 <버드나무>를 구입하고 표지만 계속 보고 있습니다. 처음의 재미가 반감될까 봐 아껴 읽으려고 하는 무용한 몸짓이자 유용한 낙입니다. 엘저넌 블랙우드의 모음집이 나오다니 꿈만 같고, 한 가지 흠답지 않은 흠을 잡자면 책의 폰트가 신문글씨체 같아 조금 제 마음엔 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존경하는 작가의 책을 발행했다는 사실 자체가 훈장 수여감이라 크게 거부감이 들진 않습니다. 시생의 영어 실력이 전무하니, 아무쪼록 이런 고전이 더 많이 국역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원작 대신 영화로만 본 <데블스 라이드 아웃> 데니스 휘틀리(Dennis Wheatley)의 오컬트 소설도 우리나라에 소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박해로(소설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