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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문제점은 짚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번역에 대단히 문제가 많은 책이다.
두 가지 개연성이 있겠다. 역자의 한국어 감각이 정말 형편 없거나, 아니면 역자가 직접 번역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시켜서 번역하게 했거나. 전자라면 학자로서의 역량이 문제이고 후자라면 도덕성이 문제다. (두 번째에 좀더 혐의를 두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심증일 뿐이다.)
Yes24에서 <이기적 유전자>를 검색해 보면 역시 번역의 문제점을 지적한 리뷰가 있다. 그래서 그 책은 번역본을 사지 않고 원서를 사서 보았다. 이 책은 그런 지적이 보이지 않아서 번역본을 샀는데 매우 실망스럽다. 이건 독자들이 단지 좋지 않은 책을 사게 한다는 데 그치지 않고, 원서 읽기가 부담스러운 독자들에게 제대로 된 (다른 사람이 번역한다면) 책을 접할 기회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이중으로 잘못된 일이다. |
| 번역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책이다. 원저 자체가 일반 대중을 위한 것이 아니었던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심각하다. 마치 대학 학부생에게 원서 번역 리포트를 맡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역이 심하다. 너그럽게 받아들여서 오역이라고 하지 않더라도, 번역이라는 것이 번역자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영어를 한국어로 대치하는 수준에서는 결코 독자에게 정확한 뜻이 전달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무시한 번역서다. 리처드 도킨스의 책들은 현대 진화생물학의 주요 논지를 일반 독자들에게 강렬하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현대의 교양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수준 미달의 번역서로 둔갑하여 출판시장에 내 놓아졌다는 것은 매우 유감이다. 동일 역자에 의해 번역된 을유문화사의 <이기적 유전자> 또한 불친절하고, 어색한 번역으로 원작의 명쾌한 충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실망스러웠는데 이번에 출판된 <확장된 표현형> 또한 번역의 문제로 인해 도킨스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 실망감은 일종의 분노가 되는 듯하다 . 외람된 바람일지 모르나 역자는 리처드 도킨스의 번역을 더이상 기획하지 않는 것이 독자와 도킨스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혹시나, 이 책을 읽으면서 어렵다고 느낀 독자가 있다면 그것이 결코 자신의 역량 부족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님을 믿어 의심지 않길 바란다. 도킨스를 좀 더 쉽게 느끼고 싶다면 절판되었지만 두산동아에서 출판했던 이용철 역의 <이기적인 유전자>를 찾아서 읽기를 권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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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책을 읽고 리뷰를 쓴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이번 책은 읽다가 너무 화가 나서 몇 줄 적기로 했다. 제발 을유출판사가 이 글을 보고 재번역을 결심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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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쪽도 읽기 전인데 속에서 천불이 난다.
역자나 출판사가 정말 눈꼽만큼이라도 장인정신이 있다면
이따위 번역으로 책을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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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150자 제한을 두나? 리뷰를 쓰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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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생명군(群)의 유전자[참고로 세포기계의 자연환경에서 '유전자'의 특징은 "복제력이나 잘라내기와 이어맞추기 능력spliceability"(리처드 도킨스, 2004, <확장된 표현형="">, 홍영남 역, 서울: 을유문화사, 309쪽) 등이다]는 이기적이다. 즉 유전자는 자신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종족의 보존을 위해 끊임없이 지배 환경을 정복해나가거나 스스로의 구생(求生) 활동을 전개시켜나간다.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인 유전자》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의 핵심이 이곳에 있다[“(…) 생물체의 DNA량은 확실히 생물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양보다 훨씬 많다. DNA의 상당 부분은 단백질로는 결코 번역되지 않는다. 개개의 생물체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이것은 역설적이다. 만일 DNA의 ‘목적’이 몸의 구축을 지휘하는 것이라면 그와 같은 일을 하지 않는 DNA가 대량으로 발견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생물학자들은 여분이라고 생각되는 이 DNA가 어떤 유익한 일을 하는 것인지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유전자의 이기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모순은 없다. DNA의 참된 ‘목적’은 살아남는 것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여분의 DNA를 가장 간단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기생자, 즉 다른 DNA가 만든 생존기계에 올라타고 있는 무해하지만 쓸모없는 나그네라고 생각하면 된다.”(Dawkins, R. 1976, The Selfish Gen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47쪽)]. 그러한 유전자의 이기성은 생명군 고유의 생존전략임과 동시에 다윈의 진화론에서 미처 살펴보지 못한 개체 내부의 속성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자연선택설에 따른 개체의 생명 유지 가능성은 어디까지나 개체 외부적 환경에 대한 고려에 따른 주장으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설은 개체 내부의 속성에 대한 연구 결과로서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와같은 ‘내부’와 ‘외부’의 경계에 따른 각각의 속성에 대한 연구는 비단 유전공학(혹은 생물학․동물행동학)에 국한된 구분이 아닌, 물리학과 철학에서의 구분법에도 적용 가능하다. 물리학적 내․외부론은 양자역학이라는 학문의 존폐와 그 축적된 연구성과로서 판단가능하며 소립자의 일반적 정의의 내용에 있어서의 지속적인 연구 성과를 토대로 현재까지 밝혀진 물질의 내부힘인 쿼크에 까지 연구결과가 보고되었고 이에 대한 적정 수준의 평가로 최근 노벨 물리학상(혹은 화학상)의 수여로 인해 그 중요성에 대한 환기(喚起)의 효과를 가져왔다. 또한 물리학적 외부론은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전적 뉴턴의 자연법칙에 대한 연구 성과로서 그 메커니즘의 일면이 알려졌으며 그 이후의 우주론적․천체물리학적 시야의 확충에 따른 외부론의 범주 확장이 가능해졌다. 이것이 물리학적 내․외부론의 한 측면이라면, 철학적 내․외부론은 어떠한 형태로 그 연구 성과가 가능해졌는가. 일단 철학적 내부론은 ‘주체’의 문제와 연결된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데까르트의 코기토로부터 이성중심주의 사유의 서구적 측면에 대한 지속적 경과와 그에 대한 데리다를 포함한 후기구조주의자들로부터의 비판은 철학 내부론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예시가 될 것이다. 또한 동양적 사유의 내부론 역시 인간의 몸에 흐르는 기(氣)에 대한 연구로 그 탐구 기간이 매우 지속적인 경과를 보여왔다. 그 메커니즘을 적용한 가장 핵심적인 예가 바로 ‘한의학’이라는 학문의 창출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적 외부론은 현대철학의 중점 화두로서 레비나스의 ‘관계론’이나 쏘쉬르의 언어철학․들뢰즈(+가따리)의 접속의 문제 등이 바로 철학의 외부론과 연결된다. 즉, 한 개체의 ‘주체’는 외부의 다른 개체와의 관계속에서 그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외부의 정신적․물질적 접속에 따른 개체의 변화(반응)의 메커니즘 역시 외부론으로부터 촉발되는 시스템을 형성한다. 이와같이 ‘이기적 유전자’설로부터 파생되는 두 가지 주요한 설정은 전체적으로 유전공학의 외부적 성격이 강하지만 그 가설 자체는 이미 내부적 성격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내․외부론의 담론은 좀더 광범위한 영역으로 파생될 수 있는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갖추고 있다. ‘이기적 유전자’설에서 ‘확장된 표현형(the extended phenotype)'으로 이어지는 도킨스의 연구 경과는 매우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전자가 유전공학에 따른 결과의 내부적 성과라고 한다면, 후자는 내부적 유전자설에서 확장된 외부적 현상에 대한 결과다. 여기서 ’확장된‘의 수식어가 갖는 의미는 매우 다양하면서도 심도깊다고 평가할 수 있는데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개체 내부의 이기적 유전자가 외부 환경에 표현되는 양상이 유전자의 이기적 속성을 변형된 형태로 발현하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보며 그 외부적 환경에 표현된 유전자의 속성은 역시나 공통의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는 생명군의 지속적인 생존을 위한 방편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수식어 ‘확장된’은 특히나 내부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염두해두고 표현된 용어로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확장된 표현형’은 ‘이기적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외부적 환경에서 현현(顯現)하는 시스템을 보여주는 난해한 개념 정의다. 확장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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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킨스의 책이라 아무 의심없이 주문을 했다
근데 번역이 이렇게 엉망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생물전공인 사람도 문장 하나도 이해 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차라리 원서를 읽는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원생도 아니라 학부생들에게 챕터별로 번역 숙제를 내줘
짜집기한 느낌이 너무 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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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히 책 읽기엔 부적합한 계절인가. 옆으로 살짝만 눈을 돌려도 신천지가 펼쳐지는데 굳이 좁은 책장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보겠다고 눈비비고 있을 이유가 있겠는가.....핑계. 이번 책은 꽤 오래 걸렸다. 역시 아침저녁 버스 안에서 읽기엔 무리였던 모양이다. 도킨스 아저씨의 책은 참 오래간 만이다. 예전엔 그냥 뭣도 모르고 읽으면 좋다니까 그냥 읽었는데, 최근 나온 이 책은 눈에 띄는 즉시 읽고 싶어졌다. "이기적 유전자" 이후 과연 도킨스 아저씨의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되는 것인가. "이기적 유전자"가 나온지 거의 30년 가까이 됐고, 이 책도 81년 서문이 붙어 있는 걸 보니 상당히 오래전에 씌여진 얘기들이다. 따라서 요근래에 이루어진 생물학적 발전, 발견들이 반영이 되었을리 없지만, 그래도 도킨스 아저씨의 견해는 여전히 유효하다. 생물학 분야에서 이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문헌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물론 진화 생물학이라는 분야적 특이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기적 유전자"가 처음 나왔을때 상당한 이슈가 되었던 것 같다. 관련 수업마다 필독서 목록에 들어갔고, 사회생물학, 진화생물학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증대되었고, 유전자 중심주의와 환원주의를 경고하기 시작했고,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는 책도 발간되어 그 두 책을 비교하는 리포트까지 제출토록 하게 했으니. 생물체를 위한 유전자가 아닌 유전자를 위한 생물체, 즉 주체의 전환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던졌다. 생물체는 단지 유전자를 효과적이고 영속적으로 다음 세대로 전달하기 위한 운반자에 불과하다, 따라서 생물체의 성장과 안정은 번식 성공도를 높여 유전자의 전달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유전자의 계책일 뿐이다, 자녀나 친족을 보살피는 행위 자체도 결국은 자기와 같은 유전자 집단의 이익을 위한 행위이다, 결국 유전자의 이익을 극대화 하는 방향으로 모든 진화는 이루어졌고, 자연 선택의 대상은 개체나 집단이 아닌 유전자 수준이다... 어찌보면 정말 정 떨어지는 이론이 아닐 수 없는데, 그 말에 수긍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 책은 "이기적 유전자"의 속편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그에 비해 좀더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일반 독자나 나같은 날라리 독자에겐 참 버거운 책이다. 이 책의 초반은 거의 대부분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비판들을 소개하고 그 비판에 반론을 제시하며 그릇된 이해를 바로잡기 위한, 일종의 변호하는 글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후반부 두세 장을 통해서 '확장된 표현형'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표현형'과 '유전자형'은 생물시간에 멘델 아저씨의 완두콩 얘기 나오면서 많이 들어본 말이고. 그렇다면 과연 표현형의 확장이란 무엇인가... 적자 생존과 자연 선택으로 대변되는 다윈의 진화론에서, 적응하여 선택되는 대상이 유전자임을 이전 책에서 이미 제시했는데, 이 책에서는 유전자의 '확장된' 표현형이 그 선택의 대상이 됨을 말하고 있다. 개체에 표출되는 유전자의 표현형 뿐만 아니라, 개체 밖의 다른 개체 혹은 무생물에 영향을 미치는 표현형에도 초점을 맞춰야 하며, 그러한 확장된 표현형이 해당 유전자에게 얼마만큼의 이득을 줄수 있느냐에 따라 최적자가 선택된다는 이야기 이다. 확장된 표현형에 대한 예로 남의 둥지에서 태어난 뻐꾸기가 가짜 엄마를 조종하는 방식, 댐을 쌓아 자신의 활동영역을 확장하는 비버의 행동 등을 이야기 하고 있다. 결국 유전자의 표현형은 한 개체 안에 머무르지 않고 외계로 확장된다는 이야기이다. 중간중간 버벅거리며 읽기도 하였지만 상당한 사고의 전환이다. 물론 이러한 얘기를 도킨스 아저씨가 처음 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새로운 개념을 정리하고 그로부터 또다른 이야기를 도출시키는 능력은 정말 탁월한 것 같다. 그러한 능력은 비단 과학하는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을 아닐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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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과 대조해서 읽어보고 있는데, 번역에 문제가 많군요... 다른 사람들에게 사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원문이 무척 어렵긴 합니다. 아마도 홍영남 교수께서 번역하기 쉽지 않았으리란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애초에 이 책을 번역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하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엉터리 번역이 오히려 도킨스에 대한 실례이며, 더불어 돈을 주고 책을 산 독자들에게도 대단한 실례를 저지른 것이라 생각됩니다. 출판사도 당연히 책임이 있다고 생각되며, 더 이상 이책을 찍어내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더 나은 번역본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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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 전공자가 아닌 입장에서, 그래도 대충 가끔씩 들리는 이야기를 기억하자면, 굴드류의 진화론과 도킨스-윌슨류의 진화론이 서로 상충되었다고 들었다. 윌슨의 제자이자 우리나라에서 나름 날리는 최재천 교수 같은 분은 강의 시간에도 굴드류의 입장에 대한 반감을 강하게 표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도킨스의 책을 몇권 봤지만(어째 이기적 유전자는 아직 안봤다), 굴드의 책을 더 많이 봤고, 난 그냥 정서적으로 그게 더 끌리는게 사실이다. 그리고, 문장의 간결함이나 미려함 역시 굴드의 글이 훨씬 괜찮다. 글의 대상(자연)에 대해 풍겨지는 글쓴이의 애정도 좀 더 우아하고. 더구나, 이 책처럼 번역이 난삽할 경우 도킨스의 글은 격이 한참 떨어지긴 한다. (책 말미에 소개된 어떤 철학자는 도킨스의 문장도 칭찬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책의 한 1/3 정도까지는 두 입장의 본질적인 차이가 뭔지 그다지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아니, 내가 무시했을지도 모르고, 이 책의 성격에서 비롯한 - 이기적 유전자의 후속 저술이라는 것, 그리고 좀 더 생물학도를 대상으로 쓰였다는 거 - 특성이어서 그런지, 자신이 견지하는 입장이 본질적으로('본질'이라는 말을 일단 2중적으로 써야 할 것 같다)는 별다른 차이를 강조하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하물며, 굴드류의 비판에 대한 반박의 문장에서도 말이다.
"이 책이 지지하고 있는 신바이스만주의적 생명관은 설명의 기본 단위로서 유전적 자기복제자를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기능적, 목적론적 설명에 대해 원자와 같은 역할을 달성한다고 믿는다. 우리들이 '~의 이익을 위해서'존재하는 것으로 적응을 말하고자 한다면 그 무엇인가는 생식계열의 능동적 자기복제자이다. 이것은 DNA의 작은 조각, 이 말의 몇 가지 정의에 따르면 단일의 '유전자'이다."
이런 명확한 정리를 총 505페이지 저술 중 224페이지에 가서야 한다. 처음부터 알고 있던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즉, 뭔가 변호/반박하고자 하는 게 많았다. 그리고, 난 반반의 성공이 아닐까 싶다. 문외한적인 입장에서, 굴드류의 풍부한 설명에 대해서, 그의 단속적평형설이 주는 리듬감과 드라마틱함을 비꼬면서도 궁극적으론 그 '배경에 유전자가 있다'라는 것만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유전자때문에 단속평형진화는 거짓이다 또는 불가능하다를 증명하지도 않는다. 단지, 왜 굴드네는 유전자가 그 '본질'에 있음을 강조하지 않느냐? 라는 것만 항변하고 있다.
이런 생각때문에 정말 그 차이에 대한 인식이 어려웠고, 그냥 늙은 학자들의 자기 고집이 그 유명한 대립의 원인일거다라고 나름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도킨스류의 본질주의는 또 이렇게 말한다. "유전자와 게놈의 단편이야말로 참된 자기복제자이다. 서브루틴이나 전략을 특정 목적에 있어서 마치 그것들이 자기복제자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들의 목적이 달성됐을때에는 현실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뭐... 똑같은 얘기다. 하지만, 이런 전개를 읽어가면서, 어떠한 특정유전자의 배열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생명기능/종을 가정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되더라. 흠... 결국 그것의 차이인가?
하지만 저자는 그런 경박한 활용론자는 아닌 듯 하다. 오히려 '본질주의적'으로 굴드류가 말하는 단속평형이나 조화/공생의 가능성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인본주의적 정서의 도덕적인 포장을 벗기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 그 포장이 참된 이해를 저해한다고 강력히 믿나보다. "... 마치 희개미의 유전자가 공생자 유전자들을 봉하고 있는 세포를 넘어서 희개미의 몸 전체에 발생을 조종하는 것은 물론 흰개미 무덤의 발달도 조종하고 있듯이 공생자 유전자가 그 주위에 표현형 산출력을 발휘하도록 선택되어 왔다고 해도 그것은 거의 필연적인 것이 아닐까? .... 이 논의의 논리는 확장된 표현형은 혈연이 먼 개체나 종이 다른 종의 개체 그리고 심지어는 다른 생물계의 유전자에 의해 공동으로 조작된다는 가능성에 대해 숙고하게 만든다."
SF에서 많이 차용할만한 논리고 가능성이다. 그래, 그럴 수 있다. 뭔가 알수 없는(불가지론적인) 존재의 목적(론)에 의해 개체 및 그 주위의 공생과 환경, 표현형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굴드류는 이에 대해 어쩜 더 냉정하게 '무한한 통계의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문체는 개인 차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에게 경외감을 주는 자연과학이 과연 어떠한 조화로운 존재를 가정하는 것이 유리할 지, 아주 냉정한 전제에서 비롯하는 것이 유리할지를 생각해보게하는 구분이 아닐까 싶더라.
맨 막바지에 도킨스는 다세포 생명체의 발생 원리로 이기적인 유전자(자기복제자)의 작용의 가능성을 드러내었다. 이기적이다보니 협력하게 되었다... 는 이전 저술부터 이어지는 논리형식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뭔가 억지구석이 좀 있어보인다. 그 내용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워낙에 개별 사례들에 대한 미소적 시각에 빠져있다보니, 책 제목과 같이 표현형의 확장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을 다세포 생명체의 탄생에 대해 힘을 준 마지막 피날레가 약해졌다는 느낌이다. 내가 빠져있는 굴드의 논리에 의하면,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그리고 여전히 성공하고 있는 생명체는 미생물이다. 절대량(질량, 수량, 부피)에서 명백한 이 사실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억지스럽게 다세포 생물의 발생과 성공/실패에 대해 소설을 쓰지 않아도 되었는데... 그보다 더 작은 유전자를 강조하는 도킨스가 왜 그랬는지, 뭔가 맘약한 학자의 결론짓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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