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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가 우리 곁을 떠난 지 10년이 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의 책들을 꾸준히 찾아 읽어서인지 실감이 나지는 않는다. 정갈하고 따뜻한 그의 글들은 읽는데 아무런 부담이 들지 않아서 좋다. 특히 산문이나 짧은 소설들은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그의 산문 중 대표작만을 모았다는 이 책도 망설임 없이 선택한 것 같다. 이 책은 1970년부터 2010년까지 작가가 생전에 쓴 660여 편의 에세이 중에서 35편을 추려 엮었다고 한다. 당연히 읽은 글도 포함되었으리라 생각했지만 별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좋은 글은 몇 번을 읽어도 그 감동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서다.
처음 산문집의 제목을 보고서 수록된 산문 중에 동명의 글이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목차를 살펴보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다른 산문집들을 꺼내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왜 책 제목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라고 했을까 고민하며 책을 읽어나가다 그 구절을 발견했다. <중년 여인의 허기증>이란 글에 나오는 구절이었다. 이 글은 작가가 여성동아에 [나목]이 당선되어 등단하게 된 과정을 쓴 글이다. 습작기를 거쳐 당선작을 낸 것이 아니라 당선작을 낸 후 습작을 열심히 했다는 작가는, 그 후에 쓴 글에서 ‘자랑할 거라곤 지금도 습작기처럼 열심히라는 것밖에 없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216쪽)라고 했다. 물론 겸손의 말이 포함된 글이지만 글을 쓰는 자세에 대한 자신의 결심과 의지를 밝힌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기에 우리가 작가의 글을 읽을 때 편한 마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실려 있는 작가의 글 중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글은 <잃어버린 여행가방>이었다. 여행 중 잃어버린 가방을 소재로 쓴 글이지만 내가 지닌 모든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나에게만 중요했던 것은, 나의 소멸과 동시에 남은 가족들에게 처치 곤란한 짐만 될 것이다. 될 수 있으면 단순 소박하게 사느라 애썼지만 내가 남길 내 인생의 남루한 여행가방을 생각하면 내 자식들의 입장이 되어 골머리가 아파진다.’(247쪽)면서도, 육신이라는 여행가방 안에 들어있는 영혼을 더 걱정한다. 나 역시도 영혼을 걱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보다는 내가 남기게 될 사물들에 더욱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 이것저것 정리도 해보곤 하지만 아직까지는 가지고 있는 것들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하찮게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추억과 함께 소중한 시간들이 담겨있기에 그렇겠지만, 조만간 정리를 해야지 생각하면서도 시간만을 흘려보내기 일쑤다. 글을 읽으면서 또 다시 마음먹어보지만 제대로 될지는 모르겠다.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작가의 사람에 대한 믿음이나 이웃에 대한 연민 등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리고 가족을 먼저 보낸데 대한 고통이나 가족사를 얘기하는 글에서는 지난한 세월을 살아온 우리나라 여성들의 삶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한 고통을 마음속에 간직하고서도 일상의 아름다움과 타인에 대한 따듯함을 잊지 않는 글들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작가는 ‘시간이 나를 치유해준 것이다.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소중한 체험이 있다면 그건 시간이 해결 못할 악운도 재앙도 없다는 것이다.’(252쪽)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삶의 이야기, 인생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내려가는 작가의 글을 읽다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도 있고, 가슴이 아파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글을 읽으며 따뜻하고 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작가의 삶이 그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지키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올 겨울도 많이 추웠지만 가끔 따스했고, 자주 우울했지만 어쩌다 행복하기도 했다. 올 겨울의 희망은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봄이고, 봄을 믿을 수 있는 건 여기저기서 달콤하게 속삭이는 봄에의 약속 때문이 아니라 하늘의 섭리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라는 작가의 글을 읽으며 나도 봄을 기다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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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가 우리 곁을 떠난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럼에도 산문, 소설 가리지 않고 작가의 글들을 자주 찾아 읽는 편이다. 오래전에 읽은 적이 있더라도 정갈하고 따뜻한 글을 읽다 보면 새롭게 느껴지곤 한다. 이 책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는 작가의 에세이 결정판 두 번째 책이다. 일전에 그녀가 생전에 쓴 에세이 중에서 35편을 추려 뽑은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에 이어, 2002년 개정판으로 출간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재편집하여 엮었다고 한다. 등단 이후인 1971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작가가 쓴 46편의 산문이 이 책에 실려 있다. 첫 번째 에세이 결정판에서도 느꼈지만 책 제목이 마음에 든다. 물론 작가가 정하지는 않았겠지만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는 작가 자신이 글을 쓰는 자세에 대한 결심과 의지를 표현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등단하게 된 과정을 쓴 글에서 작가는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글을 쓴다고 말한 바 있다. 작가의 글을 읽을 때 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는 아이들을 키우는 자신의 생각에 대해 쓴 동명의 산문에서 따왔다. 작가는 부모의 지나친 사랑, 지나친 극성이 혹여 아이들의 어깨를 짓누를까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을 말로 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할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소박하고 간결한 작가의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듯하다. 이처럼 46편의 산문은 그 시대의 평범한 일상과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소망과 마음이 담겨있다. 당시의 사회분위기를 어렴풋이나마 간직하고 있어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과거로의 여행을 한 느낌이다. 작가는 삶의 이야기, 인생 이야기를 항상 담담하게 써 내려간다. 글을 읽다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하고, 가슴이 시리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런 글을 읽으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편안해지는 것은 작가의 삶이 그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모래알 만한 진실이라도 지키면서,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모든 이들을 배려하는 삶이었기 때문일 게다. 작가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우리는 그녀의 글들을 읽을 수 있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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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와 더불어 몇 안 되는 대작을 쓰는 여성 소설가 박완서 씨를 우리는 잘 안다. 학교 다닐 때도 작가의 글을 교과서에서 읽으면서 자랐고, 6.25와 그 시절의 농촌과 도시의 일상들을 통해 시대상과 인간들의 모습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시간도 지녔다. 내가 작가의 글을 기장 먼저 만난 것은 ‘엄마의 말뚝’이다 아마 저자의 최고의 작품이기도 하고, 서울의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이기도 했다. 당시 서울이 성장하면서 시내와 변두리의 갈등, 전쟁이 가져다 준 상흔 등을 알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감명 깊게 읽었던 기억이다. 그 뒤에도 이 책은 더러 읽었다.
참 구수하고 정감이 있는 문체로 글을 썼다.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자연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편안함을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작가의 글을 좋아했던 듯하다. 다시 작가의 새로운 글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이렇게 유고 작품으로 에세이집을 발행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이다. 책이 참 예쁘게 다가온다.
다양한 일상들이 그려져 있다. 주로 인생 전반적인 생활을 중심으로 마음에 다가오는 것들을 써내려간 것이 다시 정리되어 있다. 작가의 글을 이렇게라도 다시 대할 수 있다니 감동적이다. 책이 작가의 전형적인 얼굴이 되는 소박, 진실, 단순, 아름다운 것들을 찾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저자의 글을 대입한다. 하여 행복한 것들을 줍는다. 그것은 바로 소확행이다.
제목 몇 개를 나열해 본다.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생각을 바꾸니> <넉넉하다는 말의 소중함> <다 지나간다> <할머니와 베보자기> <시간은 신이었을까> <나의 문학과 고향의 의미> 등 수수한 이야깃거리들이다 제목이 주로 소재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기에 제목만 봐도 어떤 내용들로 이끌어 나갈 것인가 생각해 볼 수 있다.
집집마다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은 점점 줄어드는 대신 각자가 마음에 맞는 친구들하고 만나는 일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거북하고 의례적인 상하관계보다는 편하고 대등한 인간관계를 즐기고 싶은 건 당연한지도 모르지만 차츰 나이를 먹으니 사라져가는 게 아쉬울 때도 없지 않아 있다. -<수많은 믿음의 교감>
저자가 정초에 친정에 세배를 하러 갔다가 겪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오랜만에 들른 친정은 식사가 끝나고 끼리끼리 모여 놀이를 하거나 여담을 즐기는 분위기가 되었다. 젊은이들은 그들끼리 그렇게 모이고 대화들을 나눈다. 그 얘기들을 듣고 있는 저자의 마음이 쓰린 마음이 된다. 참 달라도 너무나 다른 삶들이 얘기된다. 주로 자신들이 겪는 부정적인 경험들을 얘기하면서 그 내용과 느낌을 공유하고 있다. 정겹고 따스한 얘기들이 별로 없다. 당하고, 아팠던 얘기들만 넘쳐난다.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노모가 그 소란한 와중에 이야기를 한다. 나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고 살았으니 행복한 삶이다. 그 소리가 젊은이들의 큰 소리에 묻힌다. 하지만 저자의 귀에는 생생하게 그 소리가 들려온다. 노모도 그리 순탄한 삶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렇게 타인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비난을 당하진 않았다. 그런 노모가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진다.
저자는 젊은이들이 나누는 부정적이고 감정적인 얘기들이 조금 순화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순화된 삶에 초점이 맞추어졌으면 한다. 하지만 세상에서 모난 것들만 찾으려는 눈들로 가득한 젊은이들의 세계에 아쉬움이 많다.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긍정의 마인드를 가져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긍정과 순수의 마인드는 살아가면서 정말 중요하다. 그것이 삶을 좌우할 수 있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남보다 아이를 많이 낳아 늘 집안이 시끌시끌하고 유쾌한 사건과 잔근심이 그칠 날이 없었다. 늘 그렇게 살줄만 알았더니 하나둘 짝을 찾아 떠나기 시작하고부터 불과 몇 년 사이에 식구가 허룩하게 줄고 슬하가 적막하게 되었다 자식이 제때제때 짝을 만나 부모 곁을 떠나는 것도 큰 복이라고 위로해주는 사람도 있지만 식구가 드는 건 몰라도 나는 건 안다고, 문득문득 허전하고 저녁 밥상머리에서 꼭 누가 더 들어올 사람이 있는 것처럼 멍하니 기다리기도 한다. -<보통 사람>
갑남을녀, 장삼이사, 필부필부 등 보통 사람을 가리키는 성어들도 많다. 그만큼 보통 사람들이 의미가 있다는 말일 게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의 보통 사람이고 그들의 삶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위정자들이다. 보통 사람들의 생활을 보장하는 일이야 말로 세상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일이다. 작가는 지난 세월 속에 다복하다고 할 수 있는 대가족을 이루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 자녀들이 하나 둘씩 떠나고 그 허전함을 표현하고 있다. 아마 자녀들이 많았던 시절, 그리고 어느 정도 이룬 삶이 되면 인지상정에 해당하는 정서이리라. 모두 더불어 살고 싶은 마음이 되는 것이 어른들의 심리이리라. 그러면서 요즘 세태의 한 단면을 그리면서 보통 사람 이야기를 피력하기도 한다. 작가가 보기에 요즘 젊은이들은 특별한 것 같은데, 그들은 보통이라고 한다. 결혼도, 삶도, 나눔도, 사랑도 예전과 다름 모습을 보이는 것이 요즘 젊은이들이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보통 사람에 대한 관점이 흐려지고 있음을 스스로 본다.
나에게 부산에 있는 베네딕트 수녀원은 고향과 같은 곳이다. 마음이 시리고 헛헛할 때, 남의 눈이 아니라 내 눈에 내가 불쌍해 보일 때, 수녀원의 언덕방이나 그 뒷산의 바다가 보이는 의자 생각만 해도 크나큰 위로가 된다. 이 일만 끝마치면 거기 가서 쉬리라 마음먹는 것만으로도 도무지 내키지 않던 일에 새로운 신명이 나기도 한다. 72
어려울 때 지인이 옆에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지인이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 수 있다면 더욱 그렇다. 저자는 해인 스님과 교분이 있었다. 그리고 마음이 어지러울 때 바다가 바라보이는 수녀원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 공간이 그렇게 마음에 다가온 모양이다. 영혼의 쉼터 같은 느낌을 받고 있다.
나도 이런 공간을 무척 좋아한다. 바다가 바라보이는 언덕을 가진 공간, 시간이 나면 그 공간에 올라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모든 시름이 사라질 것 같다. 그런 공간에서 여유의 시간을 영위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저자의 추억과 심신의 피로가 겹치면 마음의 안식처로 삼고 있는 아름다운 공간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풍성한 느낌이 든다.
딸네가 가까이 살아서 외손자를 자주 보게 된다. 매일 봐도 즐거운 것은 매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두 돌이 막 지난 녀석은 요즘 말을 배우느라 한창이다. 일전에는 녀석이 “선물 선물, 민들레 민들레” 하면서 들어오더니 나에게 민들레꽃 한 송이를 주었다. 녀석의 ‘민들레’란 발음은 독특해서 저절로 웃음이 났다. 또 오랜만에 민들레를 봐서 반갑고, 주위의 인공적인 녹지대에서 민들레가 핀다는 것도 반가웠다. -<민들레꽃을 선물로 받은 말>
행복에 겨운 저자의 일상사가 잔잔하게 전해진다. 작은 일에 즐거움과 행복이 있다. 확실히 소확행이다. 외손자가 그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 아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으리라. 지금이 되어서야 내게도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런 감정이 될듯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집의 아이가 말을 배울 때에 참 들은 것을 그대로 얘기하다 보니 색다른 표현이 생기는 것을 보면서 웃었던 적이 있다. ‘선데이’를 ‘선템이’ ‘다희 것’을 ‘다끄’ 등이 그것이다. 참 놀라운 조어다란 생각을 하면서 들었던 기억이 있다. 아이들의 조어력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유희적 요소가 들어 있다. 저자의 자연 사랑도 마음에 와 닿는다. 인공의 공간에 자연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서 따뜻한 사랑을 느끼고 있는 저자가 마음에 넉넉함이 된다. 나도 그럴 듯하다.
서울 역에 내려서 가장 반가웠던 건 모든 아이들이 다 나처럼 뒤통수에 얼굴이 달린 것 같은 머리를 하고 있는 거였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도 나의 시골뜨기 티는 너무도 완연해서 나는 잔뜩 주눅이 들었다. 또 어머니가 세 들어 살고 있는 현저동 꼭대기의 허술한 초가집 문간방도 나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엄마의 말뚝에서 읽었던 내용이다. 이 글은 <환하고 슬픈 얼굴>이란 책의 중간 제목 속에 들어 있는 글이다. 어릴 적 서울로 가던 때의 인상을 적고 있다. 소녀가 서울에 첫발을 디딜 때 어떠했을까? 얼마나 마음이 설레면서도 힘들었을까? 물론 엄마가 그 모든 부분을 감당해 나가지만 소녀의 마음속에도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고는 못하리라.
그것이 이렇게 머리의 형태까지, 집까지 마음에 안도와 아쉬움으로 다가드는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내용들은 우리 독자들도 많이 알고 있는 부분이다. 엄마의 지난했던 삶이 어린 소녀의 눈을 통해서 표현되고 있음이 안쓰럽게 다가들었다.
저자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기쁨이다. 자잘한 것들에서 찾아진 보석 같이 빛나는 아름다운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일 수도 있고 아름다운 동물들일 수도 있고 수려한 강간, 자연들일 수도 있다. 이들이 저자의 따사로운 시선에 잡혀 순수 그 자체로 언어에 녹아들고 있다. 그러기에 저자의 글을 읽는 것은 행복하다. 물론 시대상에 들어갈 때는 진한 아픔이 배어나기도 한다. 그것은 시대가 만들어준 고통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로 잔잔한 마음으로 포근한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고운 언어들의 향연이 펼쳐져 있는 책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는 그러기에 가슴에 맑음으로 남는다. 진실이 가져다주는 기꺼움을 우리는 만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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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마음 그리고 믿음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를 읽고
지난 해 박완서 작가 10주기를 맞아 출간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를 읽고 나서 가장 좋아했던 문장이다. 한 해가 지나 다시 책을 읽으면서 여전히 좋아하는 이유를 그의 문장에 기대어 두 가지 정도로 말해보고자 한다. 하나는 박완서 작가의 글이 여느 산문처럼 '예사로운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음에도 누가 어느 시기에 읽느냐에 따라 그때마다 다른 여운과 깨달음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내가 태어난 해이기도 한 '1982년'에 쓰여진 문장이라는 점이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고리타분하기는커녕 해를 거듭할수록 글에서 잘 삭은 맛과 고색창연한 멋이 풍기는 듯하다.
'40'은 작가의 인생에서도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닌 숫자이다. 결혼 후 전업주부로 살아온 그가 별안간 불타오른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쓴 『나목』이라는 소설로 등단하여 장차 한국문학의 거목이 되는 밑거름을 다진 때가 다름 아닌 40세였던 것이다. 「중년 여인의 허기증」이라는 글에서 소설가로 데뷔한 일을 두고 '중년으로 접어든 여자의 일종의 허기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회고하며 소설가의 책무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하나의 씨앗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데까지는 온갖 지난함을 견디며 성숙시키는 시간이 필요하듯이 작가 역시 반평생을 살며 겪어낸 경험들이 쌓이다가 정점에 이른 순간인 불혹의 나이에 발화된 것은 아닐까. 그 반평생과 여생을 더한 작가의 한 평생이 고스란히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에 담겨 있다. 소녀 박완서에서부터 할머니 박완서까지 다양한 목소리로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그의 눈길과 손길이 가닿은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유년의 박적골 시골집 뒤란에 서처럼 노년의 아치울 노란집 마당에 핀 꽃들을 보며 '마음 붙일 곳'을 찾고, 책가방이 자식들의 어깨를 축 처지게 만들더라도 부모의 지나친 '사랑의 무게로는 그러지 않길' 바라며, 손자가 '선물로 준 민들레꽃'을 보면서 허심한 사랑을 말한다. 또한 어머니와 딸이라는 1인 2역을 맡으며 신여성, 여자다움, 성차별 등 우리 근현대사회의 여성문제에 관한 고민과 생각을 나누고, 남편과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뒤 사무치는 그리움과 절망 속에서도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고 계속해서 글을 쓰면서 '때로는 죽음도 희망이 된다'는 성찰을 보여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박완서 작가도 보통의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독자에게 작지만 큰 위로가 된다. 책 꾸러미가 잘못 배달되는 바람에 애꿎은 소년의 원망을 사게 되어 자신이 '나쁜 사람'인지 '좋은 사람'인지 자문하고, 사윗감은 욕심 없이 '보통 사람'이면 족하다며 바랐던 이상형이 모두 욕심이었음을 깨닫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나 진국인 사람을 만나면 옛날 느낌이 나서 좋다고 말하는 자타공인 '옛날 사람'임을 고백하고, 남편의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 소설을 쓰는 루틴에서 찾은 행복이 오래되길 바라고, 설날에 손주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귀엽게 늙고 싶은 게 새해 소원이라고 말하는 사람. 이제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가 왜 그토록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야기했는지 말이다. 그는 사람을 믿었고, 사람의 마음을 믿었기에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과 사람이 모이면 그 세상 역시 살 맛 나는 곳이 되리라 믿지 않았을까. 몹시 궁핍했던 시절에 어머니가 몸소 보여준 '넉넉한' 말과 행동에 감화를 받은 작가가 우리말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이 바로 '넉넉하다'라고 한다. 물질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부족함 없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함을 안타까워했던 그는 '넉넉한 마음의 부자가 늘어나고 존경받고 사랑받는 세상'이 되기를 소망했다.
책을 덮으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허튼 소리 하지 않고 정직하게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다짐하며 글을 썼던 박완서 작가의 시선을 상상해본다. 어느 겨울의 늦은 저녁 글을 쓰다 무심코 바라본 창 밖에는 한겨울의 냉기로 입김을 뿜으며 오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서둘러 집에 도착해서 입김을 불어가며 따뜻한 밥 한 공기를 비울 테고, 놀다가 다친 아이가 있다면 그 상처난 곳에 약을 발라주고 입김을 불어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사람의 온기가 그립거나 사람과의 마음을 나누고 싶다면, 박완서 작가의 다정하고 따스한 '입김'이 가득히 스며있는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의 책장을 넘겨보기 바란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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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볼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호씨라는 희귀성을 가진 친구가 있었다. 친하지는 않았어도 알고 지냈던 그 친구의 어머님이 작가라 했다.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란 수필집을 쓰신 분이라고... 70년대 말에 고교를 다녔던 우리들에게 그 책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런 작가분이 어머니라니...
40대에 들어서 작가로 데뷔하여 우리들에게 늘 따뜻한 글을 선물해 주었던 우리들의 어머니 같은 박완서님의 책이다.
이 분의 글은 읽기도 전에 늘 따뜻하고 인간적일 생각이 들어 거리감을 느끼기 힘들다. 읽기도 전에 항시 그분의 웃는얼굴이 생각나는 글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쉽게 읽히지만 연운은 오래 남는, 그래서 더 삶의 농밀함까지 느끼게 해주는 그런 글이 아닌가 싶다...
추운 겨울에 마음 따뜻해 지는 글을 만난다는 것은 또다른 행복, 기쁨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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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_008
지은은: 박완서 출판사: 세계사
2021년 1월 22일이 박완서님 타계 10주기였습니다. 저는 박완서님의 소설이나 글을 즐겨있었던 독자는 아니지만 박완서님의 타계소식은 참으로 마음 아팠었습니다. 왠지 모를 공허함에... 그런데.. 살다보니 그렇게 떠난 누군가도 나에 삶안에서는 잊혀진다는거지요.. 그러던 차에 예스24와 또 SNS등을 통해 작가님의 새로운 책 발간 소식과 함께 우리 이웃님들의 리뷰를 통해 다시 한번 작가님의 글들을 읽고 싶어졌습니다.
어제 읽었던 <시간은 신이었을까 p.248~252>라는 에세이에서 소중한것을 잃어버린 후의 그 아픔과 고통은 계속 되는 것이 아닌 잊혀짐 또는 시간의 흐름 뒤에 치유의 시간이 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에세이였습니다.
작가님의 남편이 돌아가신 후 1년정도 후에 친구분이 작가님을 위로한답시고 남편이 생전에 좋아하던(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가족들과 갔던 식당) 장어구이, 쏘가리탕집에 데리고 갔는데 장어를 굽는 냄새도 싫었고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 먹는 시늉만 했어도 결국 얹힌게 오래갔다고 합니다. 그러고 20년이 지난 어느날 K교수란 분이 작가님을 불러 바람쐬러 가자고 하시면서 갔던 곳이 바로 저 기와집 식당이었다고 하네요. 그 교수에게 그 집에 얽힌 옛날 얘기를 한적이 없음에도 순전히 우연의 일치로 찾아갔던 그 식당... 그런데.. 작가님은 장어구이와 쏘가리매운탕을 먹을 수 없으면 어쩔까 걱정을 했는데 그 두가지가 차례로 나오자 건강한 식욕을 느꼈고 그 옛날 남편이 그랬던것 처럼 달게 먹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편을 떠나보낸 고통이 순하게 치유된 자신을 느겼다고 합니다.
저 또한 이런 경험을 해보았지만(저는 남편이 아니고.. 자식도 아니고.. 저는 저의 큰 오빠를 먼저 하늘로 떠나 보냈습니다) 부모님 만큼의 아픔과 (절대 그럴수 없지요) 비교될 수 없지만 제 나름의 아픔과 그리움과 죄책감과 여러 감정들로 오랜 시간 힘들어했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문득문득 떠올라 울고, 가슴 치며 미안해 하고, 보고싶다고 말했었는데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떠올림의 색깔이 달라지고 색이 좀 바래지면서 또다른 미안함이 느껴지더라구요.. 이렇게 잊으면 안되는데 하구요...
그런데 박완서님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제게도 그런 잊혀짐의 시간은 치유의 시간임을 생각하게 해 주었습니다. 시간이 해결 못할 악운도 재앙도 없다는것. 신의 다른 이름은 시간이었다는 마지막 문장을 접하면서 제게는 또다른 홀가분함과 위로와 용기가 되었습니다.
나가며~~
박완서님의 에세이를 읽으면 지금의 젊은 세대와는 다른 배경이라 읽으면서 낯설게 다가오지만 또 옛것에 대한 흥미를 느낄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완서님의 어린시절은 일제치하에 있던 시기였고 전쟁을 겪은 세대였으니말이죠.. 저희 부모님, 또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들어왔던 이야기를 듣는 그런 기분도 좀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도 나는 오늘입니다.
박완서님도 하늘에서 그렇게 그리워하던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친구들... 그리고 먼저 떠나 보내 아픔과 그리움을 안고 살았던 아들과 함께 평안히 보내고 계실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박완서님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는 오늘을 살아가는 제게 평안함과 감사함과 치유의 시간을 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독서습관 _ 오늘 읽은 책 참여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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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완서 작가님의 추모 10주년 기념 에세이라서 바로 구매해서 읽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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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님 추모 10주년을 기념하여 발간한 에세이집 [모래알만한 진실이라도]는 생전 작가의 산문 660여 편 중 가장 주옥같은 에세이 35편을 다시 재구성해서 엮은 것이다. 책의 프롤로그는 작가님 따님의 어머니를 그리워 하는 마음이 깃든 글로 채워져 있었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6.25 동란까지 숱한 질곡의 세월들을 견뎌내신 작가님의 강인한 정신력이 따스하고 담백한 문체로 다듬어진 글속에 내재되어 있음을 생전 작가님이 집필하신 소설과 에세이집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작가님의 여러 에세이들을 읽으면서 그리운 고향 마을 '박적골'에서의 유년 시절을 모티브로 하여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마음을 글로 곱게 담아 마음에 담아 놓으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역시나 이번에 발간한 박완서 작가님 추모 10주년 기념 에세이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운 박적골에서의 조부모님과 가족들의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자란 유년 시절이 있었기에 그 모진 세월들을 견뎌낼 수 있었고, 아픈 상처들을 글로써 승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줄게 아무것도 없어서 이야기를 해준다'라고 하셨던 어머니의 입담을 물려 받아 이야기꾼이 되었다고 하시는 故 박완서 작가님은 훈훈한 사랑이 묻어 있는 어머님의 입김을 "평화"라고 말했다. 어린 날, 내가 누렸던 평화를 생각할 때마다 어린 날의 커다란 상처로부터 일용할 양식, 필요한 물건, 입고 다니던 입성, 그리고 식구들 사이, 집 안 속 가득히 고루 스며 있던 어머니의 입김, 그 따스한 숨결이 어제인 듯 되살아난다. 그것을 빼놓은 평화란 상상도 할 수 없다. <p. 167: 9~13>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종부의 삶을 포기한 체 자식의 학업을 위해서 서울로 무작정 상경하여 삯 바느질로 생계를 이어 나가셨던 작가 어머님의 위대한 모정이 있었기에 박완서 작가님이 오늘날 한국 문학의 거장으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위대한 이름을 남기신 것이 아닌가! 어머니는 그 문간방에서 바느질품을 팔면서 근근이 살고 계셨다. 나는 집에 가고 싶다고 칭얼대기 시작했다. 처음엔 1전에 다섯 개씩 하는 알사라탕으로 달래주시던 어머니가 나중엔 아주 간곡하게 타이르셨다. "넌 서울에서 학교 다니고 공부 많이 해서 신여성이 돼야 한다. 그게 엄마의 소원이란다." <p.191: 14~19>
70대에 접어들면서 박완서 작가님의 글은 더욱더 유년 시절을 회상하며 모든 자연의 아름다움을 박적골의 어린 시절과 결부시켜 놓는다. 그건 이미 단풍이 아니었다. 고향 마을의 청결한 공기, 낮고 부드러운 능선, 그 위에 머물러 있던 몇 송이 구름의 짧고 찬란한 연소의 순간이 거기 있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여태껏 만난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은 나에게 무엇이 되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공상하게 했지만, 살날보다 산 날이 훨씬 더 많은 이 서글픈 나이엔 어릴 적을 공상한다. 이 서글픈 시기를 그렇게 곱디곱게 채색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내가 만난 아름다운 것들이 남기고 간 축복이 아닐까? 예사로운 아름다움도 살날보다 산 날이 많은 어느 시기와 만나면 깜짝 놀란 빼어남으로 빛날 수 있다는 신기한 발견을 올해의 행운으로 꼽으며 1982년이여 안녕. <p. 115-118>
더 많은 이야기들로 가득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를 읽으면서 생전 작가님이 살아오신 삶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고, 따뜻함이 묻어 있는 글을 통해 얼마나 사랑이 많으신 분이셨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생전 작가님의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귓가를 파고 들었다.
작가님이 벌써 이 세상과 결별하신지 10주년이 넘었다고 하니, 흐르는 세월은 어쩔 수 없이 유수와도 같은 빠르기로 우리의 시간을 재단하는 듯 하다.
故박완서 작가님은 비록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셨지만, 작가님의 이름과 작품들은 오래도록 남아 밤 하늘의 별처럼 영원히 빛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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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이름만으로도 눈물나는 그리움입니다. 새 책이 나왔는 소리를 들으니 선생님 살아오신듯 하고 오랫만에 만나는 어머니 품안으로 달려드는 아이의 서러움같은 것이 반가움보다 앞섭니다. 날마다 새롭게 다시 그리운 이들에겐 새로움 만큼이나 그리움에 가까이 다가가는 이름도 드물듯 합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다보면 이순간의 감정온도가 몇 도를 가르키는지 체온이 몇 도에서 오르락내리락 거리고 있는지가 보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 참 따뜻하고 행복합니다. 사랑하고 존경했던 이름들은 하나 둘 별이 되어 어느사이 밤하늘이 총총해져갑니다. 이쪽도 세상나이 제법 먹었다는 소리겠지요. 도리상영 반가움이 앞서다보니 미처 책을 받아보기도 전에 선생님 영전에 인사부터 올립니다. |
너무나 유명한 박완서 작가님이지만부끄럽게도 그녀의 책을거의 읽어본 적이 없었다.그러던 차에 이다혜 작가의<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라는 책에서이런 문장을 마주하게 되었다.
'마흔'을 수집하고 있는40살의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박완서 작가님은 대체,왜 마흔이 되어 등단한 것일까?"그녀의 소설들이 아니라그녀의 삶이 무척 궁금해졌던 것이다.그래서 집어 든 이 에세이집은특히 선생님의 40년 글쓰기 인생 중 쓰신660편의 에세이를 추린 글이기도 하다.(베스트 오브 베스트 인 것이다~짝짝짝)
이 책을 읽다 보면 중간쯤, 내가 궁금해하는박완서 작가님의 등단 이야기가 나온다.
의외였다.왠지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무척좋아하셨을 것 같은데선생님은 미장원에서 <여성동아>를 보다가'여류 장편소설 모집'이란 공고를 보고는갑자기 가슴이 두근대며소설이 쓰고 싶어졌다고 하신다.그전까지 선생님은문학 지망생이었다기 보다는 애호가였다.단 한 번도 신춘문예에 응모해본 적이 없었는데,느닷없이 응모 마감까지 3개월 밖에 안 남은소설 쓰기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그것도 사십이 다 되어서.그녀는 불타올랐다.그것은 가족들 몰래 한 비밀이자,평생 처음 가진 나만의 일이었다.
선생님은 시간이 많이 없어서매일 하루 40장을 쓰셨다고 한다.그렇게 1200장의 원고가 완성되었고,그녀는 너무 허전해 울고 싶었다고 한다.이제부터 집에 가서 나는 도대체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녀는 자신의 원고가 갑자기 너무나소중하게 느껴졌다고 한다.그래서 어딘가 소포 뭉치가 되어 뒹굴고 있을작품에 대한 짙은 연민으로 마음이 애잔했다.심지어 심사위원들이 자신의 작품을대강대강 읽을까 봐 분통을 터뜨렸다 한다.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그녀는 당선 통지를 받게 된다.그리고 책이 나오고 '작가'라는 이름이 붙으면서선생님은 드디어 고민하기 시작한다.
마흔 되어서 하는 인생의 고민.그건 꼭 작가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라도한 번쯤 고심해볼 만한 일이다.선생님은 고백한다.내가 소설을 쓴 것은 작가가 되기 위해,피나는 노력 끝에 쓴 것은 아니다.순전히 중년으로 접어든 여자의일종의 허기증에서였던 것이다.그렇다면 내게 글쓰기란 다른 마흔 살 여인들의춤추기, 여행 같은 취미생활과는 무엇이 다른가.문학이란 절대로 심심풀이 삼아 할 수 있는안이한 게 아니지 않나.-보통 작가들은 이른 나이부터 글을 쓴다.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사람들.특히 문학을 쓰는 사람들은 글을 쓰지 않으면몸과 마음이 아프다고 고백한다.하지만 이렇게 뒤늦은 나이에 열정적으로소설에 뛰어들어 수많은 글들을 쓰시다니.열정이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에게부끄러움을 안겨주는 대목이었다."쓰지 않고 그냥 살았던 시기가있었다는 것을나는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그렇게 당선되어 작가 이름이 붙고선생님은 그제서야 습작을 시작했다고 한다.그 시기는 당선작을 쓴 시기보다도훨씬 더 소중한 시기였다.
그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쌓이면 하나의 아름다운 소설이 된다.우리의 인생도 이와 다르지 않다.모래알만 한 시간은 켜켜이 쌓여나 자신이라는 인생의 스토리를 완성한다.습작의 시기를 통해 소설가가 되는 과정은연습을 통해 자신을 완성시키는 과정과 닮아있다.작가는 태어나기도 하지만이렇게 천천히 만들어지기도 하는 것이다.(모래알만 한 진실과 시간이 쌓여서!)이렇게 선생님의 강렬한 인생 경험을담담하게 고백하는 에세이도 있지만,다른 일상 속 소소함을 담은 글들도 많다.처마 밑에 생긴 말벌을 없애면서 생긴 일,지하철 뚱뚱한 남자에 대한 오해,외손자에 대한 살가운 추억.예전 살았던 곳을 우연히 지나쳐가며 떠오른 것들.우리도 살면서 한 번쯤 해봤던 생각들을선생님은 덤덤한 말투로 풀어놓는다.아주 특별한 이야기들이 담겨있기보다는선생님의 소설처럼 술술 읽히는 글들이다."난 소설이 너무 어려워서는좋지 않다고 봐요.내 소설은 파란만장한 스토리가없는 예가 많아요.그래도 독자들에게 읽히는 것은문장의 맛 때문이 아닐까요."<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중에서
이 말 그대로의 에세이집이다.어렵지도 않고, 파란만장한 스토리는 없지만문장이 맛깔스럽게 담겨있는,소박하고, 진실하고, 단순해서 아름다운,박완서 선생님만이 쓸 수 있는그런 에세이집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