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조한혜정과 일본의 우에노 치즈코.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페미니스트이자 실천적 지식인으로 살아온 두 사람이 - 근대와 탈근대, - 국가와 개인, - 남성과 여성 등을 주제로 편지를 주고 받았다. 책에는 이론의 언어와 현장의 언어를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성찰하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가는 이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저자가 서있는 자리는 근대와 탈근대, 남성과 여성, 서구와 비서구, 중심과 주변 사이... ‘전략상 바이링궐이 되라!’라고 말하는 저자 (우에노 치즈코) ‘바이링궐’이란 (우에노 치즈코가 쓰고 있듯) “남성의 언어와 여성의 언어, 학문의 언어와 현실의 언어, 근대의 언어와 탈근대의 언어 모두를 사용해 이야기 하는 것”. 딴지를 걸어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받지 못 할 언어로 계속 떠드는 것은 침묵과 다를 바 없고, 그렇다고 그들의 언어로 떠드는 것 역시 대화는 아니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방법론이다. 경계에 서서 양쪽을 두루 살피며 설득보다는 차이의 드러냄과 생산을 목적으로 말하고, 단단한 중심을 흐트리고 다중심으로 나가아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말한다는 것이 이들의 전략이다. ‘하나의 중심에서 다중심으로 나아가며, 차이가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어 간다는...목표를 가지고 아이를 키우는 조한혜정은 교육문제에 접근해 건강한 학교만들기에 노력을 기울였고 비혼이자 곧 노년기에 접어들 우에노 치즈코는 노령화 사회의 문제에 접근해 개호보험의 입법을 위해 일하는 이론을 현실화 시키는... 구체적 필요로부터 나온 것인 만큼 현실에 맞닿아 있었고 그만큼 성과도 분명했다. “도구가 현실에 맞지 않는다면 변해야 할 것은 현실이 아니라 도구다”는 말이 너무나도 분명함에도, 우리의 이론은 이를 쉽게 간과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 책에는 그러한 타성을 가뿐하게 뛰어 넘은 이론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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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경계에서 말한다(talking at the edge)"란 제목으로 일본의 월간지 <세카이(世界)>와 한국의 계간지 <당대비평>에 연재되었던 "우에노 치즈코 - 조한혜정 서신교환"을 묶어서 낸 책이다. 조한혜정은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하자센터"에서 활동하면서 여성문화와 청소년문화에 대해 실천적 담론을 생산해 내고 있으며 우에노 치즈코는 도쿄 대학 사회학과 교수이며 주로 사회학과 여성학 연구에 집중하면서 새롭게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을 모색하고 있다. 이렇게 두 명의 글쓴이의 약력을 보고 있으면 두 분 편지의 주제가 주로 "페미니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모름지기 책을 읽기 전에 미리 책의 제목과 차례를 읽어보고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책을 보아야 하는데 이 책의 제목과 차례에서는 전혀 "페미니즘"이 주제라는 것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가드를 내린 무방비의 상태에서 크게 한 방 맞았다고나 해야할까… 책의 내용이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왔음을 고백해야겠다. 특히 기존에 여성학 강의를 통해 페미니즘에 대해 배우지 못한 상황에서 이 책에서 나오는 여러가지 단어나 주제가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으며 두 분의 거침없이 솔직한 말에는 조금은 "질리게" 되었다. 원래 한 번 책을 잡으면 도중에 잠시 접는 경우가 거의 없으나 이 책은 절반 정도 읽은 후에 잠시 커피 한 잔 하면서 쉬는 것이 필요할 정도로 일종의 문화적 충격을 받게 되었으나 잠시 쉬면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런 거침 없는 말에 대해 "여자 답지 못하다"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남자의 입장에서 여성의 정의하는 것 같아서 반성을 하고 마음의 평정을 찾으면서 다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일단 첫 번째 편지인 "적의 무기로 싸우는 것에 대해"에서는 일본과 한국의 대학 연구의 차이에 대해 잘 알 수 있었다. 일본의 경우 학위나 교직 자격이 없어도 강단에 설 수 있기 때문에 일본어라는 비관세 진입장벽의 보호를 받으면서 일본 대학은 지금가지 국산품 우위를 지켜왔다(p.56)고 하는데 비해 한국의 경우 미국 박사 학위증은 성차별을 상쇄할 정도로 막강한 위력을 가진 '증서'였음(p.74)을 고백하는 조한혜정 교수의 글을 읽으면서 한국에서 여성운동이 생각보다 잘 먹혀들었던 것도 이런 사대주의적 토양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다. 내 후배 중에 조한혜정 교수가 센터장으로 있는 "하자센터"의 캠프에 자신이 봉사활동 하는 포이동 판자촌 동생들을 데리고 참가한 친구가 있는데 그 후배 말로는 하자센터 역시 일종의 문화 엘리트들을 위한 장소며 그들을 키우기 위한 장소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리면서 조한혜정 교수도 미국 사대주의, 특히 엘리트주의에 기대서 페미니즘 운동을 진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재 편지 "선택할 수 없는 조국, 그 근대화의 역사 속에서"에서는 조한혜정 교수가 요즘도 386세대를 보면 너무 규범적이거나 상대주의적 사고 훈련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한국 사회를 바꾸어 낼 또 한 번의 기회를 얻은 지금의 386세대들이 가장 고심해야 할 괴제는 바로 상대주의적 사고력과 심미적 감수성을 길러가는 일(p.111)이라고 지적하는데 이 책에서는 한국 386세대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으로 조한혜정 교수나 우에노 치즈코 교수는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올해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한국의 386세대는 결국 몰락하고 말았는데 이런 결과가 바로 386세대의 상대주의적 사고력과 심미적 감수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세 번째 편지인 "여성의 급진성으로 다른 세상 만들기"에서는 한국 페미니즘의 역사에 대해 알 수 있었는데 이건 나름 유익했지만 이 부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해야 했을 정도로 많이 거북했다. 특히 남자가 여자를 평가하는 것과 비슷하게 여자가 남자를 평가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우에노 치즈코(p.143)와 조한혜정 교수의 글(p.131)은 이것이 과연 남자가 여자를 비교하는 것과 과연 무엇이 다른 것인지 궁금하게 한다. 만약 술자리에서 어떤 남자가 여자 둘을 비교하는 발언을 하면 기분이 나쁘고 성희롱으로 고소당할 수도 있는데 비해 이렇게 남자를 여성이 비교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나머지 절반에서는 주로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른바 "개호 보험"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된다. "개호 보험"이란 지금까지 정당한 평가나 댓가를 받지 못하고 주로 며느리가 해왔던 노인 봉양을 국가에서 보험을 통해 이런 여성의 노력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해주고 좀 더 질 좋은 봉양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아직 가부장적인 사고가 남아있으며 자식을 일종의 노후 대책으로 생각하는 상황에서는 시기상조라는 생각도 들지만 분명 의미있는 제도로서 한국에서도 토론할 가치가 있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이 책은 주로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기존에 여성학 강의들을 통해 페미니즘을 접하지 못했던 남자들로서는 이런 담론이 있다는 것이 대해 굉장히 놀라우면서도 거북하겠지만 이런 책을 통해 좀 더 양성 평등에 다가갈 수 있으며 한 국가 내에서만 진행되었던 여성운동이 국가라는 틀을 넘어서 어떤 연대가 가능한지 알게 해주는 좋은 책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조금 거북했던 것도 사실이니 차마 만점은 주지 못하지만 이것은 내 취향으로 존중해 주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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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져 나오는 인문학서 중에서 좋은 책을 가려읽기란 쉽지 않다. 이미 양서로 검증된 많은 글들은 오래전 학자들에 의해 쓰여진 것들이 많으므로 역사적 괴리감이 또 있기때문에 현대의 생활에 맞게 본인이 재 해석 해야 참 맛을 알수 있는 경우도 많이 있고..모두의 사상과 철학이 다양하니 만큼 매우 제한적 촛점에서 쓰여진 글들은 내 생각과 맞지 않거나 때로는 억측이라고 느껴질 때로 있고, 너무 넓은 주제에 다루고 있는 경우 그 깊이가 너무 얕아서 겉돌기식인 경우가 허다하며 또 때로는 인문학자들의 재미 없는 현학적인 이야기만 듣다가 책을 덮어야 하는 경우도 있게 마련이다.
내가 이 책은 읽게 된것은 정몽준 씨의 추천글을 어디에선가 보고서 였다. 개인적으로 정몽준씨가 어떤 사람이지에 대한 견해는 별로 없으나(큰 관심이 없어서이기도 하겠고, 언론이나 일반적으로 비추어 지는 그의 모습이 늘 그의 진짜 모습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거란 편견도 있고해서...) 그는 한권의 양서를 권함에 있어 어떤책은 권했나 라는 궁금함이 들기도 했다.
이책은 짧은 지문에 비해서 많은 것들에 대해서 가감없이 그러나 그 깊이는 상당하게 저자들의 생각을 편지를 통해 펼치고 있는 글이다. 30대에게는 30대 대로, 40-50대에게는 40-50대대로 시사하는 바가 클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경제,역사,여성과 남성, 전쟁, 근대와 현대, 등등에 대해 두루 깊이있게 언급하고 있는 이 책은 나도 언젠가 다른사람들에게 양서를 권할 기회가 생긴다면 꼭 권하고 싶다. 또 나도 이런 나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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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성 특유의 응석이라는 표현을 접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응석은 일본남성의 전매특허라고 여겨져 왔던 것입니다. 여성에게서 어머니를 찾고 언제까지나 또 하나의 제멋대로 노는 어린아이로서, 아내에게 무한의 허용을 구하는 것이 일본 남성의 이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성에게는 그러한 남성을 떠받들면서 잘한다고 띄워주는 자존심 지켜주기 역할이 배당됩니다. 그런 것을 할 수 없다고 하며, 남성이 부여한 여성용 지정석에서 내려오라고 말한 것이 페미니즘이었습니다." - 조한혜정, 우에노 치즈코 지음, ‘경계에서 말한다’에서 - 요즘 ‘드센 여자들’이 왜 이렇게 많으냐고 투덜대는 당신에게 조금 해명이 되었나요? 페미니즘이란, 모성의 희생을 모두 여성에게 짐지우고, 남자는 어느 것도 손을 대려하지 않는 ‘응석’을 거부할 뿐이라고 하네요. 자녀양육이나 가사노동, 노인 봉양이 모조리 여자 몫이었습니다. 교육과 기회, 문화의 세례를 받은 현대여성이 어머니 세대의 삶을 물려받기에는 무리가 있을수밖에요. 생각해 보십시오. 직장과 가정을 병행하는 어머니를 둔 딸들은, 수퍼우먼을 강요하는 그렇게 힘든 인생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을겁니다. 전업주부의 딸들은 으스대는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며 그림자로 사는 일을 평생의 목표로 삼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세상이 많이 좋아졌는데 왜 그렇게 요구사항이 많으냐, 혹은 전통적인 여자로 사는 것도 의미있다고 말하는 당신에게 저는 조용히 묻고 싶습니다. 평생동안 당신의 배우자와 역할을 바꾸어서 살아갈 수 있으신지요? 이 책의 저자 두 사람은 소문난 페미니스트입니다. 제각기 연세대와 도쿄대의 사회학과에 재직하며, 학문과 실천으로 일가를 이룬 사람들입니다. 이 책은 여성운동은 물론, 국가와 근대같은 어려운 주제에 대한 접근을 도와줍니다.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시야와 명쾌한 글솜씨가 기가 막힙니다. 짧은 편지글 형식에, 정치와 가족과 여성을 중층적으로 꾸려넣은 조감도에 감탄합니다. 학문이라는 것, 공부한다는 것의 매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그것은 내가 속해있는 사회와 시대를 무한대로 확장시켜 읽을 수 있는 안경입니다. 또한 이들은 관심사의 변천에 따라 끊임없이 경계를 허물어가며, 실천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의 문화’에 이어 ‘하자센터’로 대안문화의 수장 역할을 해온 조한혜정은 요즘 들어 공동체건설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글쟁이가 산파에 교장을 하더니, 족장까지 할 모양입니다. ^^ 우에노 치즈코도 만만치 않습니다. 젊어서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였으나, 시민주권과 장애인운동을 거쳐 고령사회에 대한 대비책에 푹 빠져있으니까요. 일찍이 ‘우에노세미나’를 통해 자신의 학생들에게 ‘오리지널’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는 그녀가 말합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 만큼 완고해진다는 것은 틀린 말이다, 반 세기 이상 살아보면 이 세상에는 별별 일이 다 있다는 것이 뼛속까지 사무치기 때문에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고령이라는 미지의 경험에 접어들어 스스로 열어가는 변혁의 실천에 가슴이 뛴다구요. 연장을 바꿔가며 능란하게 싸움을 주도하는 조직패처럼 그들에게는 국경이 없습니다. 경계를 가로지르는 그들의 현란한 발걸음이 마치 춤사위처럼 매혹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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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 치즈코 교수님을 알게된 건 페미니즘저널 [인상깊은구절] p21 연대를 위한 '차이의 정치학'에 대한 감각, '분배의 정의'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보살핌의 정의'를 이야기하는 시공간을 열어갈 양면 전략들 - 조한혜정 교수의 마지막 편지에서 p61 그 학생들에게 내가 전하는 것도 "바이링궐이 되어라"는 생존 전략입니다. 일본어와 외국어뿐만 아니라 남성 언어와 여성 언어, 학문의 언어와 현실의 언어, 이론의 언어와 실천의 언어 등.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요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해받지도 못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니, 복종으로 보이면서 그 언어를 거꾸로 사용해 지금까지 누구도 알지 못했던 현실을 읽어내고 만들어가는 것, 만일 그것을 할 수 없다면, 젠더 연구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우에노 치즈코의 첫 번째 편지에서 p78 '모던'한 시계가 지배하는 시간대와는 무관하게 살아가고 있는 내 딸애가 말했습니다. "엄마, 아무리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라도 억지로는 하지 말아요. 그냥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좋은 에너지 상태로 있는 것이 세상을 좋게 하는 일이에요." 치즈코, 우리 둘은 '근대'를 성공적으로 살아낸, 자기 통제력이 뛰어난 부류에 속하지 않나요? 현실을 언어화하는 '도구'가 되기 위해, 자신의 머리 부분만을 극도로 발달시킨 기형아들. 하하하. 시대가 변하고 있습니다. 일하도록 길들여진 몸을 슬슬 놀이하는 몸으로 바꾸어 가봅시다. 늘 좋은 에너지 상태를 유지하도록 해요. 일중독에 빠지지 말고요.- 조한혜정 교수의 첫 번째 편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