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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로 빠른 차는 버금이예요. 우리가 공정하지도 않았는데 버금이는 빨랐고, 이제 버금이에게 공평한 기회를 줘야 해요.” 『으뜸이 버금이 이끔이』를 읽으며 가장 마음에 와닿은 것은 이끔이의 이 말이었다. 으뜸이와 버금이는 둘도 없는 친구다. 으뜸이는 하얀색 경주용 자동차이고 버금이는 까만색 경주용 자동차다. 둘은 서로 이기려고 질투하기보다 함께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 어느 날 버금이가 경주에서 우승한다. 그런데 경주 대회를 운영하는 위원회 사람들은 기뻐하지 않는다. 그동안 좋은 등수는 거의 하얀 차들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결국 위원회는 하얀 차들이 더 쉽게 이길 수 있도록 규칙을 바꾸기 시작한다. 다리에는 하얀 차만 건널 수 있다는 표지판이 생긴다. 버금이가 산꼭대기에 도착했을 때는 심판이 버금이만 멈춰 세워 확인한다. 하얀 차들은 그냥 지나간다. 나는 버금이가 너무 억울했을 것 같다. 만약 내가 버금이였다면 ‘내가 검은색이라는 이유로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슬프고 화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더 오래 생각한 사람은 버금이가 아니라 이끔이였다. 위원회가 처음 이상한 규칙을 만들려고 했을 때 다른 위원들은 모두 찬성했다. 이끔이만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한 명이 틀렸다고 말하고 열 명이 맞다고 말한다면 나도 ‘내가 잘못 생각한 건가?’ 하고 자신이 없어질 것 같다. 친한 사람들이 모두 찬성한다면 혼자 반대하기는 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 물어봤다. 모두가 찬성해도 나는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쁜 말을 직접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누군가를 차별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끔이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나중에 으뜸이가 길을 잃자 위원회는 가장 빠른 차를 보내려고 한다. 그때 이끔이는 가장 빠른 차가 버금이라고 말한다. 위원회가 버금이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사실도 분명하게 말한다. 나는 이끔이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버금이는 자신이 차별을 받고 있으니 억울하다고 말할 수 있다. 으뜸이는 버금이의 친구이니 화가 날 수 있다. 하지만 이끔이는 직접 경주에서 피해를 본 차가 아니다. 그런데도 잘못된 것을 보고 모른 척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 책을 읽고 ‘차별은 나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알고 있던 말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한 가지가 더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별이 나쁘다는 것을 아는 것과 차별을 보았을 때 말하는 것은 다르다. 친구들이 한 사람을 놀릴 때 웃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해.”라고 말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모두가 한 친구를 빼고 놀려고 할 때 그 친구를 부르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나도 그런 순간을 만나면 이끔이처럼 할 수 있을지 아직 자신은 없다. 그래도 이끔이의 말을 기억하고 싶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괜찮아.”라고 할 때도 정말 괜찮은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 그리고 아무리 나 혼자라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면 말해 보는 것. “잠깐만요. 이건 공평하지 않아요.” 나도 이끔이처럼 그 한마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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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규칙을 잘 지키는 편이다. 선생님이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고, 하라고 하면 되도록 그대로 하려고 한다. 규칙은 지키라고 만든 것이고,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이 옳은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으뜸이 버금이 이끔이』를 읽으면서 버금이가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버금이는 아주 빠른 까만색 경주용 자동차다. 경주 대회에서 버금이가 우승하자 위원회 사람들은 기뻐하지 않았다. 아주 오랫동안 하얀 차들이 좋은 등수를 차지해 왔기 때문이다. 위원회는 버금이가 다시 우승하지 못하도록 규칙을 바꾸기 시작했다. 하얀 차만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고, 버금이가 달릴 때는 심판이 멈춰 세웠다. 그래도 버금이는 규칙을 지켰다. 가지 말라는 길로 가지 않았고 심판이 멈추라고 하면 멈췄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답답했다. ‘버금아, 이건 너한테만 불리하잖아. 왜 아무 말도 안 해?’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도 버금이와 비슷하다. 나도 누군가 “이게 규칙이야.”라고 말하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일단 지키려고 할 것 같다. 규칙을 어기면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궁금해졌다. 규칙은 언제나 옳을까? 버금이는 규칙을 잘 지켰지만 점점 경주에서 불리해졌다. 결국 등수에 들지 못했고 다음 경주에도 나갈 수 없게 되었다. 버금이는 위원회의 규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보다 자기가 다른 차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더 열심히 연습했다. 나는 그 부분이 가장 속상했다. 버금이에게 부족했던 것은 속도가 아니었다. 버금이는 이미 아주 빠른 차였다. 버금이가 아무리 열심히 연습해도 하얀 차에게만 좋은 길을 만들어 주고 버금이만 중간에 세운다면 공평하게 겨룰 수 없다. 그런데 버금이는 자꾸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이런 일을 만난다면 어떨까? 아마 처음에는 규칙을 지킬 것 같다. 나는 원래 그런 아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규칙을 지키기 전에 한 가지를 더 생각해야겠다고 느꼈다. ‘이 규칙은 모두에게 공평한가?’ 규칙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누군가를 괴롭히기 위해 만든 규칙이라면 아무 말 없이 따르는 것이 항상 옳은 행동은 아닐 것 같다. 나는 그동안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하나를 더 붙이고 싶다. 좋은 규칙은 잘 지키고, 이상한 규칙에는 왜 그런지 질문할 수 있는 사람. 나는 버금이처럼 규칙을 잘 지키는 아이다. 그래서 버금이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어쩌면 나 자신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인지도 모른다. “규칙을 어기는 것만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니야. 잘못된 규칙에 ‘왜요?’라고 묻는 것도 용기가 필요해.” |
내가 버금이라면 심판에게 당장 달려갔을 것 같다.“왜 나한테만 이래요? 이게 무슨 규칙이에요?”아마 화가 나서 이렇게 따졌을 것이다. 『으뜸이 버금이 이끔이』에는 둘도 없는 친구인 두 경주용 자동차가 나온다. 으뜸이는 하얀 차이고 버금이는 까만 차다. 버금이는 아주 빠른 자동차라서 대회에서 1등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버금이가 우승하자 위원회는 기뻐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하얀 차들이 좋은 등수를 차지했는데 까만 차인 버금이가 1등을 했기 때문이다. 위원회는 이상한 규칙을 만들기 시작한다. 경주를 하던 버금이 앞에는 ‘하얀 차만 건널 수 있음’이라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심판들이 버금이를 멈춰 세우기도 한다. 버금이는 더 열심히 연습하고 더 빠르게 달리지만 규칙은 점점 버금이에게 불리해진다. 결국 등수 안에 들지 못한 차는 다음 경기에 나갈 수 없다는 규칙까지 생기고 버금이는 경주에 나갈 수 없게 된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화가 났다. 버금이가 느려서 진 것이라면 억울하지 않았을 것이다. 연습해서 다음 경기에서 더 빨리 달리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빨리 달려도 나에게만 장애물이 생긴다면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처음에는 나도 ‘규칙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교에도 규칙이 있고 운동 경기에도 규칙이 있다. 모두가 규칙을 지켜야 공평하다고 배웠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새로운 질문이 생겼다. 규칙 자체가 불공평하다면 그래도 지켜야 할까? 버금이는 규칙을 어기지 않았다. 오히려 열심히 지켰다. 하얀 차만 건널 수 있다는 표지판이 나오자 다른 길로 갔고, 심판이 멈추라고 하면 멈췄다. 그럴수록 버금이만 손해를 보았다. 더 속상한 것은 버금이가 자신을 탓했다는 것이다. 자기가 다른 차들보다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더 열심히 연습한다. 나는 버금이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버금아, 네가 느려서 그런 게 아니야. 네가 부족해서 그런 것도 아니야. 규칙이 이상한 거야.” 그런데 으뜸이는 처음에 그 사실을 잘 모른다. 자신이 달리는 길에는 그런 장애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으뜸이가 버금이가 달리던 길을 직접 가 보고 나서야 알게 된다. 자신에게는 쉬웠던 경주가 버금이에게는 전혀 같은 경주가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이 장면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불편하지 않다고 해서 모두에게 공평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나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규칙이 다른 친구에게는 힘들 수도 있다. 그때 “원래 규칙이잖아.”라고만 말한다면 버금이 앞에 표지판을 세운 위원회와 비슷해질 수도 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이 친구를 놀리지 않고 똑같이 대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만 계속 불리한 규칙이 있다면 그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버금이라면 심판에게 따질 것이다. 하지만 내가 으뜸이라면 더 어려울 것 같다. 나는 좋은 길로 편하게 달리고 있고, 그 규칙 덕분에 1등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말할 수 있을까? “잠깐만요. 이 규칙은 불공평해요.” 나는 버금이처럼 억울할 때만 차별에 화내는 사람이 아니라, 으뜸이처럼 내가 손해를 보지 않을 때에도 잘못된 규칙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이끔이처럼 다른 사람들이 모두 찬성할 때에도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요. 저는 이 규칙에 찬성하지 않아요.” 어쩌면 차별을 없애는 일은 그 한마디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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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뜸이 버금이 이끔이』에는 경주용 자동차들이 나온다. 으뜸이는 하얀 차이고 버금이는 까만 차다. 버금이는 아주 빠르고 실력도 좋지만 경주에서 늘 으뜸이가 유리하다. 처음에는 단순히 으뜸이가 운이 좋은 줄 알았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경주 규칙부터 공평하지 않았다. 하얀 차들로 이루어진 위원회는 으뜸이에게 좋은 엔진과 빠른 바퀴를 주고, 으뜸이가 달리는 길에는 방해물도 거의 없게 만들었다. 반대로 까만 차인 버금이에게는 불리한 규칙이 계속 생겼다. 나는 가장 빨리 달리는 차가 우승하는 것이 경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력보다 차의 색깔 때문에 결과가 달라진다면 그 경주는 공평하지 않다.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버금이가 우승했을 때 위원회 사람들이 기뻐하지 않는 장면이다. 버금이는 자기 힘으로 잘 달렸는데도 까만 차라는 이유만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속상했다. 열심히 노력해도 처음부터 규칙이 나에게 불리하게 만들어져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아무리 빨리 달려도 다른 사람에게 더 좋은 바퀴를 주고, 나에게만 장애물을 놓는다면 나도 화가 날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가장 멋지다고 생각한 차는 으뜸이나 버금이보다 이끔이다. 이끔이는 하얀 차다. 그래서 가만히 있으면 자신도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끔이는 위원회의 규칙이 이상하다고 말한다. 자기에게 불리한 일이 아닌데도 “이건 공평하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나는 그게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보통 자신에게 손해가 생기면 불공평하다고 말하기 쉽다. 하지만 자신은 이익을 얻고 있을 때도 “이건 잘못됐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도 학교에서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면 어떨지 생각해 보았다. 내가 특별히 좋은 자리를 받거나 나만 쉬운 문제를 받는다면 처음에는 기분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다른 친구가 그 때문에 손해를 본다면 그냥 좋아하고만 있어도 되는 걸까? 이끔이를 보며 나는 공평하다는 것은 모두를 똑같이 대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누구는 좋은 바퀴를 가지고 누구는 불리한 길에서 달린다면 똑같이 “출발!”을 외친다고 공평한 경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책의 마지막에는 잘못된 규칙을 고치려는 움직임이 생긴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차별을 없애려면 차별받는 사람만 목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버금이만 계속 “불공평해!”라고 외치면 사람들은 버금이가 자기 이익만 챙긴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끔이처럼 유리한 쪽에 있는 사람도 함께 “이 규칙은 이상해.”라고 말하면 세상이 조금씩 바뀔 수 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차별하지 않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한 가지를 더 알게 되었다. 차별하지 않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누군가 차별받고 있을 때 “이건 불공평해.”라고 말하는 것도 필요하다. 나도 이끔이처럼 되고 싶다. 내가 손해를 볼 때만 화내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불공평한 일을 당할 때도 용기 내어 말할 수 있는 사람. “그건 공평하지 않아.” 이 한마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