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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벅차고, 쉴 틈 없고 ,그러다 다치고, 다친 것을 무시하고 또 일을 하고 뉴스를 통해 주변을 통해 그렇게 일을 하다 쓰러진 사건들을 남의 일처럼 흘려듣고 지나가는 일상들. 너무 고된 일도 계속 일거리를 받기 위해 참고 일해야 하는 사람들의 땀과 신음, 그렇게 고통에 무감각해지고,인내심이 암묵적 계약 조건이라 믿고 버티는 사람들. 그렇게 20대 젊은 남성이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현실이 한국 사회의 노동이 갖는 이미지이다. (-15-) 2023년 6월 23일. 27세의 노동자가 홀로 엘리베이터 수리 작업을 진행하다 20미터 아래 바닥으로 추락해 사망했다. 그는 동료에게 "혼자선 작업이 힘들어서 못하겠어요. 도와주세요." 라고 전화한 지 14분 뒤 추락했다고 전해진다. (-98-)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몇 번의 참사가 발생했지만 프랑스와 같은 전환기를 맞고 있는가.'진짜' 책임자는 없고 꼬리 자르기를 위한 희생양만 찾고 있지는 않았는가. 그저 반복된 참사 앞에 똑같은 매뉴얼을 앵무새 마냥 읊조리고 잇는 것은 아닐까 우려스럽다. (-145-) 기업이 주문과 동시에 빠른 물류 준비와 배송까지 이어질 수 있는 데에는 첨단 디지털 기술이 개입된다.물류센터에는 '랜텀 스토우(상품을 인공지능에 의해 주문 빈도,물품 특성, 재고량 등에 따라 수시로 보관할 위치를 정해주는 시스템)' 방식과 '라스트마일(물건이 소비자에게 제공되는 마지막 동선을 소비자에 따라 최적화하는 시스템)' 방식을 활용하여 노동자의 동선을 최소화하고 쉴 틈 없이 빠르게 업무가 진행되게 만들며, 소비자가 요청하는 시간 및 장소(새벽, 집 문앞)까지 착오 없이 전달하게 만든다.(-228-) 핀란드의 과로사에 대한 미국인류학자 대나 후나하기의 민족지 연구는 왜 복지국가로 손곱히는 나라에서 2000년 후반 과로사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게 되었는지를 추적한다. 후나하시는 50대 과로사 직원에 대한 동료들의 평판 속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단어를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untimely'였다. (-264-)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발생했고,502명이 사망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으며,304명이 사망 또는 실종자가 되었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압사사고가 일어났으며,159명의 안타까운 목숨이 사라졌다.대한민국 사회는 30년 사이에 수백 명이 죽은 사고가 여러 건 일어났음에도, 프랑스처럼 재난에 대한 전환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어떤 사고가 발생하면,그 책임자를 문책하겠다는 정치적 발언만 있다. 사회가 만든 구조적인 문제는 등한시하였으며, 숨가쁜 대한민국 사회의 현주소를 보고 있다. 책 『지불되지 않는 사회』은 대한민국 사회의 뼈아픈 사회적 문제들을 놓치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가 근로자에 대한 처우가 열악하며, 플랫폼 노동자, 알고리듬 노동자, 정체성 노동의 현주소를 읽을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사고가 발생하여 , 죽어간다 하더라도,인간은 무덤덤하게 죽음을 바라보고 일상을 살아간다. 삶 속에 불안이 잠재되어 있는 이유다. 쿠팡 물류 사고는 우리 사회 곳곳에 위험이 노출되어 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최근 모 기상캐스터의 죽음에 대해서, 책임지지 않는MBC 이들이 눈에 보인다.이런 모습은 남의 일이 아닌, 내 가까운 곳에도 존재했다. 작년에 지역 시청 공무원이 사망하였을 때,그 공무원이 죽은 원인보다 그 사람이 공무원으로서의 불성실을 평가하는 모습이 노출되었다. 남의 일에 매우 엄격하게 바라고, 평가하려는 버릇이 우리 사회가 지불되지 않는 사회로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특히 산업재해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우리 사회는 기업에서,산재를 회피하려는 모습이 잘 나타나고 있다. 산업재해 관련 보험을 들고 있음에도,정작 사업장에서,산재가 발생하면,보험이 아닌, 돈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그건 산재 건수에 따라서, 지자체 관급 공사 수주하는데 감점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제도가 있음에도,그 제도에 발목 잡힐 수 있기 때문에 ,서로가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려는 사회적인 경향이 강하다. 특히 육아 휴직 문제는 우리 사회가 자신이 일하지 않음으로서, 그것이 조직에 피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개인의 권리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그 보상으로 승진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흔하다. 생리 휴가 육아휴직 뿐만 아니라, 대한밍국 복지 제도가 정착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으며, 여성의 가사노동, 돌봄 노동, 재생산 노동은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 ,지불되지 않는 사회의 한 단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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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로 이 땅에 살면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밥벌이의 힘듦을 여실히 느끼는 나는 저자가 생각하는 한국 노동 일면은 어떨지 궁금했다. 그리고 다들 나처럼 힘들게 돈 버는가? 도 궁금하고 ㅋ 의사이자 인류학자인 그의 독특한 이력이 낯설었고, 나름 기득권으로 누리고 살았을 그가 왜 이런 의구심과 고뇌에 빠지게 되었는지도 궁금했다. 첫 장부터 나를 사로잡는다. '주옥같은'을 여기에 쓰긴 안 맞지만.. 하나같이 다 중요한, 의미 있는 말들을 하셔서 밑줄 친 곳이 너무 많다. 뭐랄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딱 알맞은 표현으로 정리해 준 기분이랄까? -어떨 땐 임금이란, 실적의 총량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견뎌낸 고통의 총량에 대한 위로금이 아닐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성실했던 그도 어머니께 평소 자신의 '도구'로 전략했다고 말했다. 일단 9만 원을 입금하면 무조건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할 도구 말이다. 작업장에서 그는 '버튼을 누르면 움직이는, 피치를 올리면 더 빨리 일하는 게 당연한 기계'였다. 이 또한 기업의 선택일 테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처럼 고된 업무라 할지라도 그것이 생계를 위한 '밥줄'일 수 있다. 절망스러운 건 그곳 말고 더 안전하고 편안한 좋은 직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일 것이다. 그의 선택지에는 애초에 모욕적 상황을 회피할 대안이 희소했을지 모른다. . 그가 고된 일을 그만두지 못했던 또 다른 이유 말이다. 그는 휴식을 권하는 가족의 만류에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안 나가면 다른 사람이 고생한다" -전주희 연구원(서교인문사회연구실)은 회사가 총알 배송을 위해 최적의 동선을 설계할 때 "노동자들이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고 다시 회복된 신체로 다음 날 일할 수 있는 상태"가 될 수 있는 작업량은 계산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들끼리 알아서 감수해야 할 손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임금이 지불되지 않는 노동이 있었다. 이를 통상 부불 노동이라 부르는데, 가장 대표적 예로 여성의 가사노동, 돌봄 노동, 재생산 노동을 꼽는다. 즉, 남성 노동자의 원활한 노동을 위해서는 그를 뒷받침하는 여성의 '숨은 노동'이 필수적이지만, 그러한 여성의 노력은 지불되기는커녕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도 못한 채 마치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규율로서의 무금임 상태"로 여겨져 왔다. -노동이 지불 받아야 할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로 그것이 '타인 중심성'을 지녔기 때문이라 지적한다. 즉, 타인을 배려하고, 스스로 헌신하며 동료에 대한 애정을 지켜가는 것은 지불 받아야 할 가치로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소위 돈이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기업을 고 장덕준 씨처럼 이런 타인 중심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으면서 성실한 사람을 고용하길 원하지 않던가, 그들도 동료애 등 이런 보이지 않은 배려가 노동생산성과 직결됨을 알고 있기 때문일 테다. 그리고 그 능력이 아주 오랜 기간 공짜로 사용되어왔다는 사실도 말이다. -자본가들은 애초에 공짜였던 공유재를 빼앗아 자신의 사유재로 삶고, 평민들의 사유재였던 노동력을 마치 공유재인 양 제값을 치르지 않고 마음껏 사용한 셈이다. -여성에게 청소 노동이란 언제나 마음껏 써도 되는 공유재라 생각해서일까? -김영선은 과거 직장에서 오로지 근면 성실한 노동자를 원했다면, 오늘날은 성과를 경쟁적으로 '뽑아낼' 노동자를 요구한다고 지적한다. 성실함은 기본이고, 남보다 뛰어난 실적을 보여줘야 한다. 이런 시스템 안에서는 동료애가 아닌 철저한 동료 간 경쟁이 노동의 원칙으로 자리 잡는다고 본 것이다. -노동자가 어떠한 고통을 인내하며 실적을 맞추고 있는지 모른 채 높은 성과에만 주목 -얼마나 아프면 유급휴가, 병가를 받을 수 있을까.... 중략... 병가를 허락받는 것 자체가 힘든 현실이었다. 어렵사리 아픈 몸을 인정받아도 거의 예외 없이 무급휴가였다. 정말로 노동자는 바쁜 업무 앞에서는 아파선 안 되는 존재일까. -이미 많은 노동자가 아픈데도 불구하고 출근해서 상사의 눈치를 보며 참고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을 꼬집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프리젠터즘'이라 불리는 현상이다. 아파도 출근해야 하는 것이 디폴트인 현실의 부당함을 지적한 용어다. '타인 중심성'을 가진 노동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그러나 그 타인 중심성을 가져야지 회사가 돌아간다. 내가 자주 답답하게 여겼던 것을 여기에서 답을 찾았다. 후배는 나에 비해 약았고, 일을 덜 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미뤄두는데 익숙하지 않은 내가 그의 몫일 될 수 있는 것까지 하고 말 것이란 것을 알았던 거다. 나는 좋게 말하면 너무 성실하고 열정적이라서, 나쁘게 말하자면 덜해도 되는데 구태여 하는 사람인 것이다. 결국 내가 더 하고 마는 상황은 내가 원하지 않았지만 '타인 중심성'을 가진 노동이었던 것이다.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나는 내가 더 많이 하는 것 같아서 답답하고 억울하고.. .샌드위치 날마다 휴가를 쓰는 그가 얄미웠다. 그는 내가 아이들 일정에 맞추어 휴가를 써야 하는 것을 알았기에 샌드위치 날 휴가는 당연히 제 것인 양 사용한 것이다. 그날의 일은 공유제로 자신의 일할 게 아니라 내가 해야 한다는 것인 거다. 이제 노동자는 성과를 경쟁적으로 '뽑아낼'수 있기까지 해야 한다. 노동자의 고통은 안중에 없다. 그저 성공적인 성과만 있으면 될 뿐. 하지 않아도 될 동료 간 경쟁을 하고 마음을 다친다. 더 약은 자가, 더 못된 자가 승리자다. 그렇지 못하면 이용당하고, 남용될 뿐이다. 감기로 근 한 달을 골골골 하고 있는 내게 어느 날 동료가 휴가를 쓰는 게 어때?라고 했다. "난 독감도 아닌데 어떻게 휴가를 써~" 하고 내가 대답했다. 차라리 '독감'이라면 대놓고 휴가를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말 얼마나 아파야 휴가를 쓸 수 있을까? 프리젠터즘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상황, 아파도 출근해야하는 것이 디폴트인데 어떻게 몸이 아프다고 휴가를 쓸 수 있나 말이다. 여기에서 도덕적 해이는 누구의 것인가? 몸이 아픈 노동자일까, 몸이 아플 때까지 실적을 종용한 회사일까, 병든 시민들보다 재정상태만 신경 쓰는 정부일까. 도대체 정말 얼마나 아파야 휴가를 쓸 수 있을까? 언제쯤이 되어야 내 휴가가 진짜 내 휴가로서의 역할을 할까? 내게 일이 '소명의식을 갖고, 내 삶의 가치를 더욱 빛내줄 무언가!'라고만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현실적으로 볼 때 밥벌이의 역할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일에 매달릴 수 밖에 없지 않나 말이다. -한국의 노동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밀려오는 느낌은 '숨가쁨'이다. 벅차고, 쉴 틈 없고, 그러다 다시고, 다친 것을 무시하고 또 일을 하고, 뉴스를 통해 주변을 통해 그렇게 일을 하다 쓰러진 사건들을 남의 일처럼 흘려듣고 지나가는 일상들, 너무 고된 일도 계속 일거리를 받기 위해 참고 일해야 하는 사람들의 땀과 신음. 그렇게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인내심이 암묵적 계약 조건이라 믿고 버티는 사람들. 저자의 말처럼 우리 나라는 노동이 다수의 사람에게 노력의 대가가 제대로 지불되는 사회는 아닌 것 같다. 어려운 문제이지만, 일의 가치나 소명만큼이나 밥벌이라는 문제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어서 노력의 대가가 좀 더 제대로 매겨지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하고 쉴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이땅에서 일하는 모든이에게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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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부터 굉장히 의미심장한 [지불되지 않는 사회] 뭔가 씁씁하지만 너무나 적나라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책이라 참 좋았다. 이 책은 현재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혹은 노동법과 우리의 노동의 대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현실적으로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딱 맞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다소 어려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현안을 굉장히 잘 반영하여 흥미롭게 읽었다. 무엇보다 격하게 공감하고 나의 삶에 접목시키고자 한 이유가 있다. 이유라기 보다는 하나의 계기가 있었다. 현재는 그 회사를 퇴사하여 이직을 한 상태였지만 유독 여성노동자에게 너무나 감정적으로 속상하게 하는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남성중심의 회사문화가 강하기에 여성이 회사에 기대할 수 있는 복지혜택은 굉장히 제한되어 있었다. 당시 나는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였고 가장 친한 동료는 결혼 후 바로 아이가 생겨서 출산휴가를 앞두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과 나의 동료는 사내에서 만나서 결혼까지 한 부부였기에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출산이 한참이나 먼 시점에 타부서로 이동을 하라는 일방적인 회사의 요구가 있었다. 그 이유는 부부가 같은 부서에서 일을 하면 감정적으로 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도 안되는 의견으로 말이다. 물론 부부사이에 어떠한 사적인 감정이 섞이지 않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나의 동료는 본인의 일이 천직이라고 할만큼 너무나 일을 즐기며 하고 있었고 출산 후 육아는 친정부모님께 맡기고 계속 일을 하리라는 계획도 갖고 있었다. 하고 있던 일이 적성이 맞지 않거나 본인의 의지로 부서이동을 원했더라면 이렇게까지 화가 나진 않았을 텐데 너무나 터무니없는 이유로 부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 너무 화가 났다. 결국 회사의 지침에 실망한 두 사람은 모두 회사를 퇴사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 전까지 어떠한 노동자의 권리, 회사내의 복지에 대하여 별 관심이 없었던 나에게 이 사건은 큰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회사내 고용이 되는 동시에 지침을 따르는 것은 마땅하나 정당치 않고 설득이 되지 않는 이유로 강제 부서이동을 당하는 등의 부당함은 고용된 직원으로써가 아니라 한명의 인간으로써 경험하지 말아야 하는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이후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하여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고 나 또한 그 회사를 퇴사하게 되었다. 그들이 겪은 말도 되지 않는 일들이 나의 일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었다. 전화위복이었는지 더 나은 조건과 노동자를 배려하는 현재의 직장에 10년 이상 근속하고 있고 아주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 나의 경우는 직간접적인 경험이 있기에 더 관심이 갔을 테지만, 한 회사에 고용되었다면 적어도 복지에 대하여, 노동법에 대하여는 필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만 겪지 않으면 돼’라는 마인드는 결코 나만이 겪지 않을 문제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이 책이 나에게는 더 간절하고 반가웠다. 법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다소 어려웠지만 어려운대로 사전과 인터넷 검색을 병행하며 정보를 찾았다. 비로소 나의 지식과 간접경험으로 쌓이는 일종의 단단한 근육이 되기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읽고 또 읽으며 터특 하였던 것이다. 책을 읽으며 느낀점은 이론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례를 추가하여 보다 쉽게 이해될 수 있도록 배려한 책이라는 생각이었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있어서 일부 발췌하여 수록해본다. 이제는 보다 국민들이 사회를 보는 시각이 더 다채로워지고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시대이다. 그에 맞게 제도와 법률을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한 사람의 노동자로써 굉장히 중요하다고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던 주제뿐만 아니라 몰랐던 지식을 알게된 계기가 되어 좋았고 지금보다 더 많은 제도에 관심을 갖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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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매년 연말이 되면 다음 해의 최저임금이 결정된다. 2025년 최저임금은 전년 대비 1.7%가 인상되었다. 하지만 이 최저임금은 노동자들 노동의 적당한 대가일까? 노동자의 죽음은 업무상 재해로 판정받을 수 있을까? 한 물류센터의 노동자의 죽음은 업무상 재해로 판정을 받았지만 회사가 산업재해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 회사는 모든 업무가 강요가 아닌 노동자의 자발적인 선택임을 강조한다. 전통적으로 임금이 지불되지 않는 노동이 있었다. 부불노동이라 부르는데 가장 대표적 예가 여성의 가사노동, 돌봄 노동, 재생산노동을 꼽을 수 있다. 남성 노동의 원활한 노동을 위해 뒷받침하는 여성의 숨은 노동이 필수적이지만 그런 여성의 노력은 지불되기는커녕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도 못한 채 당연한 것으로 여기거나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불되지 않는 노동의 특징은 사랑이나 돌봄, 연대, 애정, 헌신, 배려가 동반되는 영역이고 오랜 기간 여성성을 연상시키는 것들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소위 돈이 되지 않는다. 그 배려가 나의 이익과 직결되었을 때만 미소와 배려를 사용한다.
시대가 변해가면서 노동도 변화한다.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에 새로운 노동자들이 생겨났다. 바로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들이다. 플랫폼 노동 현실이 보여주는 디지털 자본주의의 미래는 경쟁의 가시화, 노동시간의 불명확화로 특징지어지는 극단적인 노동의 형태일 것이다. 문제는 고용 형태의 변화를 넘어 노동 통제 양식까지 변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자동화를 중심으로 한 알고리즘 중심의 업무 통제이다. 알로기즘 통치로 불리는 노동의 특징은 노동의 모든 과정을 수치화하며 임금으로 인센티브로 책정하고 높은 수치를 쫓도록 게임화시킨다. 디지털 생태계 안에서 생산과 소비, 노동의 경계선이 이제 무의미해 보인다.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소비자를 넘어 직접 상품화되는 생산소비자로 디지털 노동에 연루되고 있다.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 노동의 성격은 플랫폼 노동, 알고리즘 노동, 정체성 노동으로 진화 중이다. 이런 디지털 자본주의에 대한 성찰이 단지 스마트폰 앱을 열고 실시간 일감을 찾는 소수의 노동자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세계는 팬데믹을 거치면서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의 변화된 사회상이 더욱 명료해진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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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직장에서 혹은 자신의 가게에서 허리가 휠 만큼 고된 노동에 시달리며 생계를 이어가고 더 나은 미래를 꿈꿉니다. 그런데 이런 고귀한 노동이 과연 그에 합당한 대가가 치러지며 지속되는 걸까요? 지금 당장은 지불이 유예되더라도 언젠가는 정당한 반대급부가 내 계좌에 입금되려니 하는 기대를 갖고 우리는 고된 일상을 이어갑니다. 그런데 이런 기대(p88. 로렌 벌렌트의 <잔인한 낙관>)가 종국에 가서는 배반되고 만다면, 우리는 시스템에다 더이상 헌신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북뉴스 카페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저자는 p32에서 김영선 박사의 2022년작 <존버 씨의 죽음> 일부를 인용합니다. 여기서 존버는 물론 우리가 인터넷 등에서 쓰는 속어 존버를 가리킵니다. 1990년대에는 파트릭 쥐스킨트가 지은 소설의, "그러니 제발날 좀 가만 내버려 두시오!"라 했던 좀머 씨(Herr Sommer)가 시대정신 일부를 대변했다면, 지금은 존버 씨가 우리들의 고달픈 삶을 상징합니다. 존버해서 우리가 기다리던 고도를 만날 수만 있다면 좀 늦어지는 정도야 참겠는데, 이게 체제가 개인들에게 벌이는 거대한 사기극의 일부라면 우리는 더 이상 분노를 참을 수 없습니다. 술 권하는 사회를 넘어 과로사를 부추기는 기업과 정부라면, 뉴저지 소재 룻거스 대 교수 줄리 리빙스턴의 연구 결과(p37)를 읽고 크게 반성해야 합니다. 저자 김관욱 교수는 영국 더럼에서 박사를 한 분이어서인지 책 곳곳에 영국의 사례가 인용됩니다. 당시 인도계 수낙 총리(지금은 선거에서 져서 노동당에 정권이 넘어갔습니다)가 NHS 재정 파탄 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한 여러 조치들이, 기실은 시스템의 온갖 썩은 문제들을 미봉하기 위해 내세운 편법이며 그 폐해는 기층 민중이 그대로 뒤집어쓴다는 끔찍한 결론을 대중도 어렵지 않게 간파했습니다. 수낙은 그래서 실각했지만, 한국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나를 지워버리면 좋은 본보기, 나를 지키면 나쁜 본보기(p74)"를 은근히, 아니 대놓고 강요하지는 않습니까? 모든 노동은 상처만 남기고, 하다못해 여성들이 꾸밈노동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던 마스크 착용 시기가 그리워졌다(p75)는 말이 나오는데, 이 와중에도 현장에서의 과로사, 사고사 뉴스는 그치지 않고 이어집니다(p99). 나치에 저항했던 백장미단 관련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란 고전이 있었습니다. 2009년 한국에선 노무현 대통령의 불상사를 추념하는 책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 니왔었고, 지금 김관욱 박사의 이 책에서는 p99에서, 2022년에 출간된 <2136, 529>의 일부를 인용합니다. 그 책의 부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노동자의 죽음"입니다. 문구 사이에 찍힌 쉼표가 의미심장하게도 느껴지는데, 대체 우리 사회는 얼마나 더 많은 제물을 제단에 더 바쳐야 올바른 공감과 각성이 확산되겠습니까. 벌렌트가 말한 감각중추의 마비가 언제쯤 원상으로 돌아오겠습니까. p153을 보면, 정신과 의사 오카다 다카시는 <심리조작의 비밀>이란 책에서, 누군가가 특정한 목적을 위해 큰 규모의 재난을 일으켜 그간 누적된 사회 성원들의 조건반사가 한번에 리셋되는 효과를 노린다는, 이른바 집단세뇌 패턴을 분석했다고 나옵니다. 이는 소련의 천재 생리학자 이반 파블로프의 성과에 기반한 논의인데 저자는 2022년 이후 이어진 자연재해로 인해 한국인이 겪는 트라우마의 도미노가 혹시 이와 관련된 건 아닌지 의혹을 제기합니다. "도덕이 초기화한 사회에서 냉소와 외면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면 이와 같은 비극이 또 없다"는 게 저자의 결론입니다. partial truth와 인포데믹의 병폐에 대해서도 저자는 p173 이하에서 논의합니다. 짧은 책이지만 다양한 르포, 고전, 학술논문, 문학작품 등이 향연을 이루듯 인용되며 독자에게 생각할 숙제를 던져 줍니다. 우리의 노동, 이웃의 노동이 과연 얼마나 올바르게 보상되는지 깊이 성찰해 볼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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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인류학자가 바라보는 '노동'의 사회란 무엇일까요? 지금의 한국의 사회의 모습이 그대로 그려진 탓에 한 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 그리고 현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 중 한 명으로서 아쉬운 마음이 생겼던 도서, #지불되지않는사회 입니다. 여러분은 '노동'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요? 저자는 '노동'이라는 단어에 대해 '헬 조선' 혹은 '흙 수저'라는 이미지를 연상시켰고, 현재는 '능력주의', '공정'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고 표현했는데요. 그 어떠한 단어로도 '노동'이라는 의미를 정확하게 설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자가 시도했던 것은 지난 2년 동안 한국 사회의 노동을 생각하면서 떠오른 25개의 임지를 짧은 글로 기록하려 했고, 그 이미지에 대한 이유를 간략하게 덧붙이기 시작하는데요. 그 계기가 오늘의 도서 출간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크게 5개의 챕터로, 1장, 지불되지 않는 노동 2장, 가치를 상실해가는 노동 3장, 상처가 되어가는 노동 4장, 아물지 않은 노동 5장, 상처가 치유되기 위한 조건들 로 구성이 되었고 2023년 두 개의 챕터가 더 추가되었습니다. 6장,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 노동, 그 끝의 정동 7장, 공정한 노동 끝 우울: 공정의 정동 병리학 이번 책은 제목에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듯이, 노동에 대해서 다소 부정적인 면이 많이 비추어졌어요. 학창 시절 많이 들으며 커왔던 말씀들이 있죠. 공부 잘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요. 하지만,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모두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헬 조선', '흙 수저'라는 단어가 왜 오랜 시간 대두되었을까요? 우리의 노동의 가치가 현저히 낮게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나라의 년간 노동 시간은 OECD 국가 중에서도 최상위권입니다. 하지만 정부나 기업에서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법정근로시간 40시간에 연장근무시간 12시간을 더해 52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는 주당 근로시간을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일을 하다가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데 제대로 된 처벌을 하지 않다보니 후진국형 사고가 반복되고 있네요.우리나라는 지난 수십년 동안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지금은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입니다. 이러한 규모에 비하면 노동 현실은 무척 열악합니다. '지불되지 않는 사회' 에서는 우리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사람들이 외출을 꺼리면서 온라인 주문이 크게 증가하였습니다. 주문을 하면 1~2일 내에 집앞에 갖다주니 무척 편리하였네요. 물건을 받을 때까지 사람을 보지 못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단계마다 사람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물류센터에서 일하거나 배달을 하는 사람들은 밤늦게까지, 때로는 주말에도 일을 해도 물량을 소화하기 어려웠는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일이 많아서 죽을것 같다는 메세지를 보내고 실제로 며칠후 과로로 사망한 사람의 사연은 정말 가슴이 아팠네요.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 얼마만큼의 일을 처리할 수 있는지 기계로 보기 때문인데 처벌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보니 출근을 했다가 영원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통계를 보면서 무척 놀랐습니다.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 노동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파업입니다. 기업에 비해 노동자는 약자이기 때문에 불합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같이 힘을 합쳐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하지만 파업을 하면 언론에서는 시민들에게 불편함을 초래한다면서 비판하고 노동자와 노동자 사이에도 계층을 나누어 서로간에 갈등과 분열을 부추깁니다. 과거에는 최루탄이 등장하거나 폭력 사태도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파업하면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파업으로 자신의 생활이 조금 불편해져도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네요. 기업에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정규직이라고 하더라도 정년까지 근무하기 쉽지 않으며 그전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나가게 되네요.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다보니 우울증에 걸리거나 무력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특히 과로로 인한 사망,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한 자살 등 연일 같은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한 뉴스를 접하다보면 더 마음에 상처를 받게 되네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면 쉽지 않아 보이네요.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겠으나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인 데에는 사람들이 이러한 현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는 것을 꺼리게 되지 않았을까요. 형식적인 위원회가 아니라 정말 노와 사, 정이 머리를 맞대고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방안들을 마련하는게 필요한것 같아요. 우리나라의 노동 현실에 대해 읽어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 #지불되지않는사회 #김관욱 #인물과사상사 #컬처블룸 #컬처블룸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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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지불되지 않은 사회 김관욱의 <지불되지 않은 사회>는 재독학자 한병철의 피로 사회의 시리즈를 읽는 듯한 느낌이다. 의사로 의료인류학을 연구해 온 학자가 말하는 “노동의 의미”와 “노동의 세계”는 지금까지 노동이란 무엇인가라는 거대 담론을 한 권으로 정리해 놓은 수작이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경향신문의 칼럼을 새로 쓰고 잡지에 기고한 글을 기웠다. 지은이의 책을 읽으면서 적이 헤맸다. 읽다가 다시 앞으로 각주를 찾아 맨 뒤로 책의 여백에는 참고문헌의 책명과 출판사까지 메모해가면서, 읽었다. 정독이란 표현보다는 탐독이라고 해야 할 만큼이다. “지불되지 않는 사회”라는 문구의 함의는 헬조선, 흙수저를 지나, 능력주의, 공정의 화두가 왜곡됐다는 말이다. OECD의 가입국, 세계 경제 8위의 대한민국은 아직도 여유가 없다. 마치 16세기의 영국, 양을 풀어주고 사람을 가둔다는 인클로저라는 말, 공유재가 사유재가 되고, 의회 인클로저를 지나, AI 시대의 데이터 인클로저는 필수노동이면서 그림자처럼 가려졌던 가치 있는 일은 무가치하게 하찮은 일로 여겨지는 경제적 가치가 사회적 가치로 환원되어야 함을 지은이는 주장한다.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1958년에 쓴 <인간의 조건>(한길사, 2020)에서는 일(work)과 노동(labor), 행동(행위)을 구분한다. 유럽 사회에서 일과 노동의 구분은 있었지만, 철학자들이 이를 지워버렸다고, 노동은 끝이 없이 사라지는데, 인간의 욕구가 그러하다고, 하지만 일은 시작과 끝이 있으며 일하는 자(worker)로 묘사하는 것이 모든 것을 목적을 위해 잠재적 수단으로 여기도록 만든다고 했다. 이 책은 아렌트 저작의 서문 격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지은이는 지난 2년 동안 매달 한국 사회의 노동을 생각하면서 25개의 떠오른 이미지를 짧은 글로 포착, 1장에서 5장까지- 1장 지불되지 않는 노동, 2장 가치를 상실해가는 노동, 3장 상처가 되는 노동, 4장 아물지 못한 노동, 5장 상처가 치유되기 위한 조건들로 정리했다. 1~5장까지의 노동은 그야말로 아렌트에 따라 노동(labor)로 봐야 한다. 끝이 없이 사라지는 것은 곧 목적을 위한 잠재적 수단이 아니라는 말이다. 내일 과로사로 죽기 위해 오늘은 일하라는 말처럼, 공동체의 연대와 돌봄을 여성의 영역으로 가치 없는 일로 여기는 가부장적 권위주의 사회에서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능력주의를 위한 희생이 아니라 모두의 희생을 강요하는 체제다. 비정규직은 임금으로, 정규직은 능력, 성과주의로 경쟁으로 내몬다. 그 끝에 있는 것은 허탈감이다. 그리고 6장과 7장 이 두 장으로 현재 사회를 설명한다. 6장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의 노동, 그 끝의 정동을, 디지털 자본주의는 노동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가, 이른바 프롤레타리아트는 사이버타리아트로 모습이 변했고, 산업혁명으로 공장 로봇이 일하는 사람을 쫓아냈지만, AI는 지식노동자들을 대거 몰아낼 것이다. 데이터 인클로저다. 이런 의미에서 “노동” “일”은 상대적이란 말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물론 여기에는 논쟁거리도 있다. 7장. 공정한 노동 끝 우울:공정의 정동 병리학,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와이즈 베리, 2020) 물음,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이미 답은 나와 있다. 25개의 이미지 속에는 쿠팡 청년노동자,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좀 더 일하면서 배려하는 공동체적 연대는 자본주의 사회의 가치가 아니라고, 영화<다음 소희>처럼 고객을 위해 친절함으로 만들고 폭언과 욕설 앞에 자신의 수치심을 참아야 했고, 결국 높은 실적을 위해 그 어떤 상황에서도 무감각해지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이것이 오늘날 직업계고 학생들의 현장실습 단면이다. 진로선택과 탐색의 과정이 아닌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정글만리를 헤쳐나가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나를 지워 버리면 좋은 본보기인 사회라고 일러준다. 일할 “때”를 정해주는 이중 빈곤의 사회 노동의 진정한 의미란 자유의지로 시작과 끝을 정할 수 있느냐로 정해질 수 있다. 아렌트가 말한 일(작업)이다. 끝도 없이 쌓여 있는 업무와 아무리 해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은 노역(奴役)이다. 아렌트가 말한 노동의 속성과 같다. 지은이의 “노역”이란 표현이 아마도 한국 사회의 노동을 적확하게 드러내 주는 게 아닐까 싶다. 화이트칼라 든 블루칼라든 이중의 구별법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자식 졸업식장에 못 가볼 만큼 일에 치여 사는 데 누구의 때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있는 것인가를 묻는다. 공정한 노동 끝 우울: 공정의 정동 병리학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과 낱말이 등장한다. 디지털 자본주의(금융자본주의 포함)는 “공정”을 강조한다. 공정을 화두를 중심으로 노동이 어떠한 정동(일상을 지배하는 마음 상태) 속에서 구체적 질환으로 바뀌는지를 본다. 정동은 끊임없는 마주침과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하는 느낌의 뭉치다. 특정한 감정으로 이름표가 붙기 전의 느낌이자 원재료다. 노동 끝에 마주하는 우울, 정동적 마주침이 혐오, 모멸, 수치 등을 교환하는 부대낌이 어떻게 정신적 아픔을 초래하는지, 한국의 산업현장에서 일어난 재해사고 대부분은 50인 미만의 영세 소규모사업장에서 일어난다. 대기업의 위험 외주화가 주요 원인이다. 업무에 기인한 정신질환 또한 산재다. 이른바 일본에서 80년대 사회적 문제가 됐고, 과로 자살이라는 개념이 생겨날 정도였다. 국제적으로 KAROSI(과로사의 일본어 발음)로 표기할 정도다. 일하다 자살한 사람들,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과도한 직무 스트레스로, 즉 높은 직무요구도, 낮은 사회적 지지, 노력과 일치하지 않는 보상, 직무불안정성, 위험 및 폭력 등 이른바 ‘정신건강’을 해치는 환경이다. 지은이는 인류학을 비롯하여 사회학, 심리학 등 수많은 문헌과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많지 않은 분량 속에 “노동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일하는 사람을 위한 화두이자 질문들이다. |
* 서평이벤트로,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 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근로빈곤층이란 말이 있습니다. 노동해도 가난한 사람들을 일컫습니다. 노동을 한다는 것은 소득을 창출한다는 소리고, 그 소득의 창출은 부로 이어져야 맞습니다. 최소한 부자는 되지 못할지언정 먹고 사는 것에 문제는 없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최소 8시간 이상을 노동하며 사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습니다. 부익부 빈익빈인 세상이 된 지 오래 되었고, 아무리 근로해도 자산 1억 모으는 것은 의외로 쉽지 않습니다. 매스컴에서는 월 3000만 원도 쉽게 쉽게 벌던데, 현실로는 상당히 요원한 이야기고,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으니 내 몸 하나 뉘우기 힘들거든요. 거기에 AI(인공지능)이 개발되면서 사람의 노동도 참 점점 요원해지고 있습니다. AI로 갈 것도 없이 그냥 키오스크 하나만 봐도 이제 기계가 사람의 노동을 대신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제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땀 흘려 하는 노동보다는 카메라 앞에서 무언가를 하고, 업로드를 하여 얻는 수익이 훨씬 더 많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노동하지만 무언가가 풀리지 않는 것들. 앞서 말한 이것은 노동에 대한 부정적인 단면 중 하나일 것입니다.저자는 노동에 대한 부분들에 있어서 가장 어둡고 부정적인 부분들을 들추어냅니다. 그리고 저자는 왜 이렇게 노동을 해도 삶이 펴지지 않고, 헬조선, 흙수저라는 말들이 사회에 도는지에 대한 답을 '지불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봅니다. 노동의 가치가 하락하고, 내가 한 노동만큼 무언가가 대가를 받지 못하게 됨에 따라 결국 이러한 악숙환을 걸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고찰하고 있습니다. 이 쪽에 관심 있는 분들은 보면 좋을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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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카페 책과콩나무의 지원으로 개인적 의견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국의 노동 현실은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비단 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 · 소 기업들의 노동 현장에서의 실태는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현실에 있어 넘어야 할 산이 많고도 많음을 깨닫게 된다. '숨가쁨'이라는 표현이 어디 달리기를 해서 숨가쁘다는 말일까? 한국의 노동 현실이 바로 그 숨가쁨을 느낄 수 있는 현실이라는 사실이다. 그만큼 산업 사회에서의 노동의 현실이 어떠한지를 쉽게 가늠할 수 있는 표현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더구나 산업재해로의 안전사고는 얼마나 많이 발생하고 있는지 그로 인한 고통은 오롯이 노동자에게만 전가되는 아픔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노동에 대해 합당한 임금을 받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 쉽게 답할 수 있는가? 노동이 삶의 방편이자 질병으로 나아가는 존재라면 과연 우리는 노동을 통해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해 통찰적 시각을 고민해 볼 수 있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지불되지 않는 사회" 는 우리의 노동 현장이 쉴 틈이 없고, 다치거나, 다쳐도 무시하고 또 일을 해야 하는 일상과 같은 오늘날의 현실을 통해 우리는 노동에 무감각해지고 암묵적으로 자신에게 해악을 가하는 조건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밝히고 그러한 상황을 인내하고 묵묵히 일하는 우리의 의식을 돞아보고자 하는 의미를 전해주는 책이다. 지금 되돌아 보자. 나, 우리는 지금의 노동을 통해 받는 임금이 합당한지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저자가 말하는 이 책의 핵심은 아마도 숨까쁨과 무감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노동이 갖는 본질적인 가치를 통해 우리는 노동자의 현실을 성찰하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방향성을 제시하는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노동 현실의 모습은 여전히 암담한 현실로 느껴지는 것이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의 주 52시간을 뛰어 넘는 노동에 대한 인식을 생각하면 한국의 노동 현실의 개선이나 혁신은 한참 멀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한 끊임없는 노동은 노동자들에게 노동이 상처를 주는 존재임과 대상임을 각인시켜 준다. 쉴 권리는 제도적으로 명확히 지켜져야 하지만 유야무야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그럼으로 해서 과로하게 되고 결국 과로사로 사회적 병페로 귀결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합당한 노동으로의 임금이 지불되지 않고 있다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기득권자들에 의해 형성된 노동사회에서 공정과 평등은 이루어질 수 없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공정한 노동의 조건과 사회적 치유에서 공정성의 병리학적 현상을 스트레스를 낳는 현상으로 말한다. 스트레스로 인한 고통과 아픔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일은 우리가 노동을 통해 지향해야 하는 방향성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즉 인간적인 삶의 방향성을 위한 노동 제도의 변화와 사회적 조건들의 탐구에 대해 논의하는 일은 우리가 노동에서 가치를 찾고자 하는 의미 이상의 바람직한 의의를 갖는다 할 수 있다. 노동이 갖는 본질적 의미를 이해하고 현실적 노동이 드러내는 문제를 파헤쳐 노동의 본질적 가치를 재정의 하고자 하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판단할 수 있다. 인류학자가 던지는 노동의 현재와 미래를 통해 우리 삶과 긴밀한 관련성을 가진 의미를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라 생각된다. 노동의 문제에 날카롭게 의식을 갖는 이들에게 꼭 접해 보아야 할 책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