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이 이렇게 실감날 수가 없다. 저자의 화려한 스칼라쉽과 찬란한 경력, 그리고 책을 도배하다시피한 유명 인사들의 찬문. 이것을 보고 책에 손이간 나는, '그것만' 보고 책을 고른 대가를 톡톡히 치뤄야 했다. 내가 보기에는 저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책을 기획한 출판사 측에 잘못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 책은 엄밀한 의미에서 변증론에 관한 책이 아니다. 책 제목을 훨씬 가볍게 지었어야 했다. 기독 변증론이란 한마디로 그리스도교에 관한 숱한 의문들을, 마치 법정에서의 변호사처럼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 변호하는 이론이다. 언뜻 재미있게 보이지만, 매우 어렵고 때로는 위험하며, 상당히 방대하고 깊은 지식과 정확하고 날카로운 시각이 필요한 분야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변증론은, 재판의 판사처럼 또 일반 이론처럼 '결론'을 지향하는 게 아니라는점이다. 공격에 대한 수비의 입장에서 그 입장을 '정리'하는데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형식면에서나 내용면에서 완전히 함량 미달이다. 우선 이 책은 '소피의 세계'와 같이 대화체 소설 형식을 빌어, 대부분 저자가 재직하고 있는 학생들의 질문에 학과 교수인 저자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변증론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아마도 이 책을 내고 나서 저자도 느꼈을 것이다. 이런 형식의 글을 쓰는 것이 끔찍하게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또 이런 형식의 글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차라리 그냥 변증론에 대해 담백한 이론을 전개해 나갔으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그 형식이 너무나 어설프다. 그 신선한 기획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평이한 이론서가 아니라 소설의 형식을 취했다면 그 형식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 못해, 글이 긴장감 없이 평면적으로 흐르기만 해, 마치 학생 상담 일지에 적힌 내용을 대화체로 만들어 전개한 느낌이다. 그 결과 그 안에 담긴 내용을 단순하게 만들어 놓고 말았다. '저자가 전문 글쟁이도 아닌데 그냥 봐주지 별 걸 다 트집 잡는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 형식은 이 책의 내용과 결정적으로 관련이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변증은 '의문'에 대한 '변증'이다. 그런데 일반 신도는 물론 신학자들조차 그것의 최종 목표는 일정한 '결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멀리는 아리스토텔레스 가깝게는 헤겔의 이론에 기댄 변증은 결론을 지향하는 게 아니라 의문 - 변증 - 의문.....의 순환 과정, 앞서 말한 '정리'를 지향한다. 따라서 변증론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그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해서 그것을 적정 지점에서 '정리'하는 것으로 끝을 내야지, 누군가가 재판 현장의 판사처럼 결론을 지어서는 안된다. 끊임없는 순환속에 의문은 더욱 다채로워지고 풍성해져야 한다. 기독 변증론이라면 더 깊은 의문,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논리, 기독인들을 더 난처하게 만드는 질문을 계속 유도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기독교라는 종교가 더 깊어지고 풍성하고 단단해지므로. 그런데 이 책은 그런 과정이 없다. 의문이 제기되고 순환되려는 순간, 마무리된다. 순환은 거의 없다. 대부분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의 '의문'이 제기되면 저자의 '대답'으로 마무리되어,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건 뭐죠? - 이건, 이거란다. - 아 그렇구나. 이제야 알겠어요!'식의 구조여서, '잘 모르는 사람의 질문 - 잘 아는 사람의 대답' 식의 단순한 구조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내용이 단순하다 보니 앞서 설명한 평면적인 구조의 대화체 소설 형식이 편하게 다룰 수 있는 구조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제목과는 달리 변증에 관한 것이 아니라 색다른 형식으로 완성한 저자의 '신학개론'과 같은 느낌이 든다. 저자는 머리말에 더 전문적인 내용을 깊이 있게 못다룬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는데, 정말 아쉬워해야 할 것은 그 내용에 있는 게 아니라 '기법'이라는 점을 모르고 있다. 오히려 저자는 너무 많은 주제와 내용을 말하려는 듯 보인다. 게다가 주제도 평이하며 난이도도 들쑥날쑥이다. 그러나 변증론이 잘 진행되는 글들을 보면 단 하나의 주제를 갖도 계속 의문과 반박과 또다른 의문을 순환시키면서 풍성한 내용을 끌어내고, 사람들로 하여금 논리의 정당성과 헛점 사이의 무수한 충돌 속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깨닫게 한다. 그게 변증론이다. (안셀무스의 멋진 논변의 보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변증론이 지향하는 것은 결론 (결론은 하나님만이 안다) 이 아닌 기법, 즉 그 순환 과정 자체이고, 그 치열한 공방의 최종 판결자, 또는 배심원은 저자가 아니라 독자이다. 저자는 단지 유능한 변호사가 되어, 양적 도약에서 질적 도약으로 가는 그 길을 배심원에게 현명하게 유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형식과 내용에 대한 지적과 함께 정말 하고 싶은 쓴소리가 있다. 이건 출판사 측에 하는 말이다. 책이 왜 이렇게 비싼가? 2백 페이지가 조금 넘는 책, 신국배판으로 치자면 170~180정도가 될 책, 가격이 8천8백원이다! 요즘 이렇게 얄팍하게 책을 내고 약간의 포장을 씌워 비싸게 받는 출판사들이 너무 많다. '책은 양이 아니라 질로 말한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시집이 아닌 이상 그건 멋있자고 하는 말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배를 어느 정도 채워줘야 한다. 더욱이 맛도 없고 배도 채워주지 못한다면 짜증만 난다. 나 역시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책값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출판계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고 또 우리나라의 책값이 다른 나라에 비해 전체적으로 싸다는 점을 고려한다고 해도, 이건 너무하다. 프레미엄이 붙는 유명 해외 작가도 아닌데 왜 이렇게 비싸게 책정됐는지. 출판사 측에서는 독자들은 출판사 사람보다 몇 십배 약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 개인적으로는 어지간하면 책은 돈 주고 사라고 권하고 아니면 내가 몇 권을 사 선물한다. 하지만 이렇게 터무니 없는 가격으로 책정한 책이라면, 사지도 못하게 하고 내가 대표로 사 사람들에게 빌려준다. 이 책이 나온지 얼마 안되지만, 맘 잡고 읽으면 2시간이면 뚝딱 읽을 책, 벌써 20명 가까이나 되는 동료 신자들에게 빌려줘 이 책을 '공짜로' 읽었다. 그리고 아예 공공장소에 비치해 수많은 사람들이 '공짜로' 읽게할 작정이다. 저자에게도 실례가 되는 이런 '짓'은 더 이상 하지 말기를. 차라리 대화체 소설 형식의 책이라면 이 책의 두 배 정도로 만들어 신국배판으로 만들면 저자도 할 말을 다하고 책 읽는 사람도 만족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
| 이 책을 읽고 아직 초신자인 친구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어졌다. 친구는 굉장히 질문이 많다. 아직까지 이 책에 나온 질문을 내게 한 것은 아니지만, 또 지금까지는 대답하기가 어렵지 않았지만 내가 예전에 중고등학교 시절에 질문하였던 선악과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친구가 물어온다면 수려하고도 명확한 말로 얘기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가 똑똑하기 때문일까? 책속의 저자는 너무도 수려하고 예리한 말 날카로운 지적으로 우리의 신앙 궁금증들, 성경속 궁금증들을 풀어나간다. 지금까지 많은 목사님들이 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 주셨지만 저자의 질문으 그 대답을 뛰어넘는 정확함과 즐거움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다 아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설명하기 어러운 것들에 대한 것이 명확해졌고, 또 내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확실해졌으며 성경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에 지적인 욕구가 충만해짐과 동시에 하나님을 믿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대화체의 설명이 나로 하여금 쉽게 이 책을 읽어내도록 하였다. 재밌는 책이다! |
| 기독교변증이라는 용어를 듣는 순간, C. S. 루이스가 떠올랐다. 물샐 틈 없는 논리로 꽉 찬 그의 책을 여럿 읽은 까닭도 있겠지만, 우리 시대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로 인정받는 그의 저서가 기독교인들에게 미친 영향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루이스의 책을 읽노라면 힘이 든다. 논리적인 책읽기에 익숙하지 않는 독자로서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있는 게 사실이다. 이를 극복하고자 여러 번 읽게 되고, 그러면서 그의 필력에 더욱 놀라게 되는 것이다. 정성욱 교수의 《티타임에 나누는 기독교변증》은 달랐다. 제목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티타임'에 나누는 듯한 대화 속에 기독교 원리들을 담고 있다. 책상 앞에 정좌하고 앉아서 숙독할 게 아니라 지하철에서 펼쳐 읽고, 밥상을 치운 자리에서 꺼내 읽어도 충분하다. 그만큼 술술 읽힌다. 그러나 내용은 조밀하여, 차마 안다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는 나의 암담한 지식의 영역을 속시원히 밝혀 주었다. 본문에 등장하는 수많은 학생들, 혹은 교인들이 정성욱 교수에게 던지는 질문들은 곧 나의 질문들이었고, 나는 나의 무지함을 슬쩍 숨긴 채 어깨 너머로 기독교를 알아 갈 수 있었다. 대화 형식의 편집이 주는 묘미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그리고 본문을 두 가지 색으로 인쇄하여, 자칫 따분해질 수 있는 책읽기를 즐겁게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였고, 각 장의 마지막에는 본문에 사용된 중요 용어를 정리해 주고 있어서 유익했다. 똑같은 책읽기에 지친 독자, 자신이 가진 기독교라는 종교가 도대체 어떤 것인지 궁금하고 성경에 대한 의문이 가득한 독자,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기독교를 좀더 조리있게 설명해 주고 싶은 열망이 있는 독자라면 올 여름이 가기 전에 꼭 읽어 보기를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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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그렇게만 봐야할까요.. 님께서 말씀하신걸 보면. 문제는 책제목과 책의 가격에만 있는것 처럼 보입니다만.. 제목은 기독교 변증인데 변증론에 관한 내용은 없다.. 아마도 변증론에 관한 수준 높은 책을 많이 읽어보신 듯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은 '티타임에 나누는 기독교 변증' 입니다. 티타임이 뭔지는 아시죠? 저만 그렇게 느끼고 있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이책의 제목을 처음 보고 조금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동안 기독교 변증에 관한 책이 많이 나왔지만 저로서는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거든요. 역시 이책은 저에게 상당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저같은 초보에게는요. 세상에는 수많은 독자가 있고 각자의 수준도 다 다르다는 지극히 당연한 생각을 갖고 있는 한 사람입니다만.. 아마도 님께서는 상당한 수준의 관련 지식과 수준을 갖고 계신듯 합니다. 님의 기준으로 볼 때 이 책이 이토록 형편없는 책으로 몰락한 다는 사실에 좀 놀랍구요. 아마도 님의 구미에 맞게하려면 책 제목을 '티타임에 나누는 기독교 이야기' 이렇게만 정했다면 님께서 그렇게까지 신랄한 비판을 했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책의 가격도 님께서 말씀하신게 이해가 안될정도로 기타 수많은 다른 책들과 비교해봐도 전혀 비싼거 같지 않습니다만.. 책의 가격은 양보다 질이라는게 멋있자고 하는 말이라구요? 웃음만 나옵니다. 그럼 어린이 동화책은 얇디 얇은것이 왜이리 비싼걸까요? 천원주기도 아까운 페이지수인데.. 님께서는 아마도 무조건 비싼 책은 두꺼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계신것 같네요. 책을 좋아하시는 분이란 말이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주위 2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에게 공짜로 읽게 해주셨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 부분에 박수를 보냅니다. 책을 펴내는 저자가 목적이 여러가지겠지만.. 물론 모든 판매 수입이 저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저는 이 책은 판매 수입을 올리기 위한 책이라고 생각 안합니다. 적어도 저자의 입장에서는.. 그보다 이 책을 통해 그 동안 몰랐던 하나님에 대한 그리고 성경에 대한 지식을 새롭게 알고 더욱 신앙에 대한 열정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된 한 사람으로써 몇자 적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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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하버드와 옥스퍼드에서 학위를 마친 저자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교에서,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제자들과 한 대화를 책으로 엮었다(대부분은 사실이나 일부 윤색은 있었던 듯). 질문과 답변의 내용은 대체로 기독교 교리의 타당성과 유효성에 대한 변호들인데, 책 제목처럼 그리 무겁지 않은 선에서 대화들이 오고간다.
2. 감상평 。。。。。。。
제목은 참 잘 뺐다. 그런데 책의 내용이 제목이 가진 무게를 제대로 지탱해내지 못하는 듯하다.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서평을 봐도 이런 부분을 지적하는 글들이 몇 개 보인다. 제목을 보고 현대의 젊은이들에게 편하게 기독교의 진리를 전하는 탁월한 책인가 싶어 읽기 시작했다면(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 약간 실망을 할지도 모르겠다.
책의 내용과 형식 자체는 기독교 진리를 전달하는 데 두고 있다는 건 맞지만, 책 뒷표지에 실려 있는 추천사들처럼 ‘시원하게 정리해 줄 해갈의 답변서’(김삼환)나 ‘사막 한 가운데서 만난 오아시스’(김진홍), ‘복음주의 지성계의 차세대 리더 정성욱 박사가 온몸으로 쓴 포스트기독교시대의 사도행전!’(유종성, 두란노출판본부장) 까지는 전혀 아니다. 책의 내용에 큰 문제가 있다고 까진 할 수 없지만, 탁월한 수준이라고는 말을 못하겠다.
책의 스타일은 약간 변주를 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올드(old)하다. 물론 진리의 내용이야 시대에 따라서 변개시킬 수 있는 게 아니긴 하지만, 그 전달 방식은 좀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이 저자가 쓴 다른 책들을 읽어 보지는 못했지만, 왜 이분이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복음주의 신학자’라고 불리는 지 이 책을 통해서는 감이 잘 오지 않는다.(하버드와 옥스퍼드에서 공부한 복음주의 진영의 신학자라는 이유에서라면 좀 슬플 것 같다.) 무엇보다 요새 사람들은 이 책에 실린 정도의 머리 아픈 내용도 읽기 싫어하지 않던가.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변증보다는, 기독교회 안에 있는 신자들의 기본적인 소양을 쌓는 데 좀 더 유용할 것 같은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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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타임에 나누기’도 아까운 이야기들. 본서의 저자는 옥스퍼드의 유명한 복음주의 신학자인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제자로 하버드-옥스퍼드를 졸업한 소장 신학자이다. 이 책의 뒤편에는 ‘혼란의 시대를 시원하게 정리해 줄 해갈의 답변서’라는 문구와 함께 장신대학교 총장 등 기독교계 저명인사들의 추천사가 실려있다. 난 이 책의 주요 논점들을 모조리 논박하려고 한다. 난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에서 크게 쓰임 받을 발군의 실력 가진 귀한 인재(
먼저 챕터 2를 보자.
성경의 해석과 적용의 관계에서
다음으로 나는 챕터 5와 9를 함께 묶어 논의하겠다. 이 두 챕터에서 내가 제기하는 문제는 악의 문제이다. 이 세계의 모든 사건들을 자신의 의도로 주관하는 이가 신이라면 이 세계의 악마저, 아담과 하와의 타락마저 신이 의도한 것이 아닐까? 선악과를 주었을 때 이미 신은 아담과 하와가 그 열매를 취하도록 의도한 것이 아닌가?
그 다음은 챕터 8이다. 이 챕터의 앞 부분은 사실상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초월적 변증론 부분을 간략히 추린 것이므로 그냥 넘어가기로 하겠다. 내가 공격하고자 하는 부분은 ‘불신자와 신자의 접촉점’ 파트다. 첫째, 둘째는 언급할 가치마저 없으므로 넘어가도록 하자 (만약 니체에게 이런 내용을 이야기 한다면 그는 ‘마지막 인간’이라 비난하지 않을까?) 내가 겨냥하는 것은 3번째,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규범의 보편성과 그것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 의식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의식의 기원이 신에게 있다는 것이다.
챕터 11에서
챕터 12와 13장에서 나는 좀 다른 지점에 서서 이 책을 비판하고자 한다. 13장에서
이것으로 나는 이 책의 서평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간단히 말해서 나는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은 ‘티타임에 나누기’도 시간이 아까운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맥그래스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신학도들 사이에 상당한 추종자를 가지고 있는 저명한 신학자의 신학적 사유가 이토록 저급한 것인지 나는 당황스럽기까지 하였다. 나는 누구에게도 이 책을 권하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