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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거 부러워하지마.
애들이 공부하기 힘들다며 자기가 천재면 좋겠다고 푸념할 때 가끔 정색을 하고 말한다. 주책이라고 느끼면서도. 또 얘가 뭔말인지 알까, 싶으면서도.
천재는, 그저 남들보다 단어 좀 잘 외우고, 한번 보면 다 기억하고, 머리 빨리 돌아가는 그런 게 아니다. 그거는 수재도 할 수 있는 거고, 요령 좀 있으면 할 수 있는 거다.
천재는, 말그대로 하늘이 내린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 보통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기 어렵다. 아마 모르긴 해도, 그의 눈에도 보통 사람들이 보통이라고 하는 게 왜 보통인지 이해하기 어렵긴 마찬가지일지도. 서로 다르게 보이는 건 마찬가지인데 그냥 이쪽이 더 수가 많으니까 이쪽이 보통 혹은 정상이라고 매겨지는 걸거다.
그런 이유로 쪼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종종 일어나게 된다. 그러니까 생각같아서는 천재면 막 존중받고 가르침을 청하는 사람들한테 떠받들릴 거 같은데, 오히려 이해 못할 사람이라면서 시대착오적이라거나 정신나간 사람으로 무시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그 가능성을 어렴풋이 본 수재가 오히려 경계하기 위해 폄하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천재는 절망끝에 빛을 못 본 채 죽어버리고, 사후 한참 후에야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는..
구시대적인 비극영화 줄거리 같지만, 화가 이중섭은 너무나 철저히 이 길을 밟아갔다.
일제시대 때 평안남도 부잣집에서 태어나 아쉬운 것 없이 그림만 그리다 일본 유학도 다녀오고 프랑스 유학까지 생각했으나 정세 때문에 결국 포기하고, 유학 때 만난 일본 여성 후배와 결혼하고, 해방, 연이은 한국전쟁, 월남, 그 이후 겪은 처절한 가난, 후일을 기약하고 잠시 헤어진 가족과 끝내 만나지 못한 채 정신병환자 취급 받다 결국 아무도 지켜보지 못한 채 죽은지 3일만에야 우연히 문병온 지인에 의해 죽음이 알려진 인생.
더구나 그림도 살아 생전에 마구 소실되고, 사기당해 잃어버리고, 좋은 평도 못 받고, 이북에선 퇴폐적이라고 비판받고, 이남에선 이북출신에다 월남을 뒤늦게 한 것이 알게모르게 작용해 제대로 된 평가는커녕 한참 동안 잊혀지다시피 했다.
그 모든 환란을 겪으면서도 오직 그림 그리는 일에만 몰두하며 언젠간 좋은 날이 올거라고, 가족이 함께 모여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가, 모든 것을 바쳐 연 개인전 후 존재의 이유마저 놓치고 죽어갔다는 걸 보며, 마음이 많이 복잡했다. 속이고 사기친 나쁜 인간들도 많았지만, 좋은 지인들도 많이 살펴주었는데, 조금만 더 보통사람 같았으면 그렇게 힘들진 않았을텐데..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들고.
이 책은 사놓은 지 몇 년 된 듯하다. 처음에 읽으려고 하다가 잘 안 읽혀서 놓았다가 이번에 문득 다시 보게 됐다. 발행된 지는 10년 됐고. 사람을 만날 때도 그렇고 책을 볼 때도 그렇고, 감정이 잘 전염되는 편이라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내내 힘들었지만, 그래도 역시 읽게되어 잘됐다는 생각과, 또..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책에도 인연이란 게 있는지, 못 볼 거 같다가도 언젠간 꼭 보게되는 책이 있는 거 같다는 묘한 느낌..
<봄의 어린이> 분청사기 같은 질감을 내기 위해 세심한 작업을 했다고 한다. 어린이는 순수한 존재로 그가 특히 즐겨 그렸던 소재.
<봉황>, <부부> 혹은 <애정>이란 제목으로 알려지기도 한 작품. 보통은 헤어진 이중섭-이남덕 부부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두 새가 각각 위 아래 어딘가에 구속된 듯 힘겹게 닿으려 하나 닿지 않는 모습이 민족적 상황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이 책의 저자 최석태는 보기도 한다.
<흰소>, 얼마나 많은 시도를 했는지 위 세 작품만 봐도 알 수 있다. 다 너무나 개성적이지 않은가. 선, 획, 면, 색 등을 일일이 이리저리 시험해보지 않고서야 이렇게 강한 인상이 나올 수가 없다. 흰소는 그가 바란 이상향이었을 수도 있다. 공격적이진 않으나 누가 감히 건드릴 순 없는 위용. 평화로운 강자.
천재는.. 재능만 타고난다고 되는 게 아니라, 타고난 재능을 깨닫고 자신이 납득할 때까지 추구하는 자, 쯤 되는 거 같다. 남들을 납득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맘만 먹으면 쉬운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더 잘 보이고 더 잘 느껴져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면 만족스럽지 못할 테니까, 참 힘들 거 같다.
그래서 난 천재가 부럽진 않다. 이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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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간에 별 흥미를 갖지 못했던 사람에게도 이중섭의 '흰소'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을 것이다. 그 강렬한 인상에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자신의 집에 기르는 소를 한번쯤 생각했을 것이며, 나처럼 젊은 시절의 왕성한 혈기를 '흰소'에 비유해본 사람도 있을 듯하다. 그러나 그의 그림이 갖는 의미를 알게된 지금 한 인간의 존재와 그림의 의미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이 책은 이중섭의 생애와 작품을 시대순으로 발굴 복원해 놓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유년시절과 오산학교시절 은사 임용련·백남순에게서 받은 영향을 증언을 통해 입증하고 있으며, 일본에서의 발자취도 상세히 전해주고 있다. 특히 '소'그림이 종교화가인 루오-강한선과 동양적 수묵화의 기법사용-의 화풍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의 그림을 이해하는 하나의 단서를 제공한다. 그러나 더 의미있는 것은 일제와 한국전쟁등 고난의 역사를 살아야 했던 한 화가의 진지한 예술정신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사실을 통해 우리는 그의 그림이 갖는 시대적 의미와 개인적인 의미를 동시에 살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이 던져주고 있는 다음과 같은 질문은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 어려웠던 시절에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작품활동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 그리고 그를 죽음으로 몰고간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에 명확한 답변을 전해주고 있지는 못하지만 이중섭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한가지 더 첨언하자면 저자의 평가처럼 그의 그림을 마치 민족의식의 발로로 환원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의 그림에 고난했던 시대의식이 나타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중요한 것은 새롭게 도입되는 근대 서구화와 전통적인 것을 그림속에 조화시켜 담아내려 했던 이중섭의 예술정신을 더 깊이 있게 평가하지 못한듯 하다. 그의 그림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로는 시대와 자신의 그림에 대한 독창성과 순수성 사이에서 갈등의 산물로 보고자 하는 것이다.
우선 우리는 그의 그림에서 한 사람의 내면심리를 읽을 수 있다. 그의 작품의 특징과 소재를 살펴보면 게와 아이와 물고기 그리고 소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이런 소재의 전통적인 면을 차치한다면, 우리는 이것을 중심으로 그의 그림에 나타나는 두개의 뚜렷한 내면 심리를 분석해 볼 수 있다. 게와 아이들과 물고기등을 소재로한 그림은 그 토속성에서 볼 수 있듯 시대의 고난을 잠시라도 잊고자 싶은 아이의 순박함이 보인다. 그러나 그가 일제시대때 부터 습작을 통해 완성한 소의 그림은 자신의 내면을 때로는 울분으로, 지침으로 그리고 힘찬 기운의 생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일반적인 평가처럼 이 소를 민족적 상징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그림들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자신이 처한 시대상황에서 오는 갈등과 예술의 순수성에 대한 갈망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에 대한 저항성을 그림의 상징보다는 한글이름 서명으로 했던 이중섭, 이것은 예술 자체의 순수성을 빼앗기지 않으려 했던 이중섭의 결의처럼 보인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듯 그와 그의 그림은 근현대 한국회화에 가장 독창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대의 고뇌를 뛰어 넘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대적 부자유, 그리고 자신의 예술에 대한 순수한 열정간의 갈등은 그의 자유로움을 점점 조여왔을 것이다. 좌아니면 우로 선택을 강요받던 시절, 이중섭은 스스로 예술의 중립성을 위해 고뇌한 흔적들을 자신의 작품속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북쪽태생이란 이유로, 그리고 해방직후가 아닌 한국전쟁 발발초기에 월남했다는 이유로 사상의 의심을 받아야 했던 이중섭, 또한 그림에 대해서는 그의 전통적 소재가 중화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야 했던 이중섭.
그는 고난한 시대의 핍박속에서 살아야 했던 우리시대의 지식인의 한 초상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이런 시대상황속에서 그에게 예술적 자유란 공허한 내면의 외침에 불과했을 지도 모른다. 자신의 순수한 예술적 열정이 정치적 수사에 의해 평가절하되었을때 그의 삶이란 그 평가만큼이나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물론 지금에 우리가 그를 기억하고 그 독창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아직 미미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의 많은 작품이 아직 발굴되지 못했으며, 그의 아들과 부인에게 보낸 그림엽서는 거의 예술작품으로 인정을 받고있지 못하다. 크기가 작아서 일까. 아직 우리의 예술적 인식지평이 좁아서일까. 아니면 아직 그 시대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까. 또는 완성도 높은 그림에만 가치를 부여하고, 그 과정에 대해서는 폄하하는 예술품의 시장성때문에 그러할까. 그에 대한 여운이 오히려 슬픔으로 다가온다. [인상깊은구절] p.10. 그가 살다간 시대는 세계사에서도 보기 드물정도로 불행과 혼란이 극데 달했던 때였다...그러나 그 어려웠던 고난의 시절은 그의 창작 의욕을 꺽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열정적이고 격정적인 삶과 예술을 낳았다. 이중섭의 창작에 대한 열정은 도대체 어디에서 솟아났으며, 그 결과물이 이토록 찬란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저자의 문제의식) p.213.<흰소>는 범접하지 못할 위엄을 띠고 있다. 이 그림 속의 소는 아무도 공격하지 않지만, 건드리면 즉각 반격하며 분노를 토할 듯 하다.(흰소에 대한 저자의 평) p.65. 약간의 지식과 이해로도 문학수나 이중섭의 작업이 이 민족의 특성을 훌륭히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구근대 미술양식에 의해 자라나고 겨우 여기까지의 미로에 도착한 일본작가들에게는 역으로 문학수나 이중섭의 작업성격이 하나의 큰 반성의 쐐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1941년 4월 일본의 미술잡지 {비노쿠니}에 실린 한 평론) p.267.그(이중섭)은 누구에게나 애착을 주는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한국의 서양화 도입기에 있어서 가장 먼저 후진성을 탈피한 근대화의 선구자로서 비록 서구적인 자료로 그림을 그렸을 망정 그것 |
| 중학교 미술선생님께서 한 화가에 대해 말씀하셨다. 천재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시대와 물질적 결핍이 정신적 황폐로 이어진 우리나라의 반 고흐라 불릴만한 화가가 있다고...그가 바로 흰소의 눈망울을 닮은 이중섭이었다. 그렇게 나의 머리속에 반고흐와 겹쳐진 이중섭은 미술의 문외한인 내가 유일하게 관심을 갖게된 화가였다. 그 화가에 대한 절망과 순수의 자화상으로 이뤄진 이책은 그가 천재성을 가지고도 그 나래를 펼치지 못한채 나라 잃은 식민지 국민으로서 울분을 간직하고 안으로 곰삭아버렸고 해방후에는 남 북으로 갈라진 조국의 이데올로기 어느 한쪽으로도 발 붙이지 못한채 철저히 소외당해야했다. 이 나라 이 민족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기에 더욱 힘겨웠던 그의 생에는 그나마 아내와 자식이란 영혼의 안식처가 있었기에 적지만 불후의 걸작을 남길 수 있었던것 같다. 왜 다른이 보다 앞선간 이들은 그토록 힘든 생을 걸었어야 할까..하긴 그렇기에 지금 우리들에게 더욱 깊이 각인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의 것을 더욱 사랑해야 할 것이다. 책의 말미에 붙인 말처럼 반 고흐를 아끼는 아를 지방의 사람들처럼 우리는 우리의 예술에 대한 긍지를 더욱 높이고 아껴야 할 것이다. |
| 이중섭이란 작가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었던가? 단지 그가 소에 관한 작품을, 한국적인상이 강하게 남긴 사람이었다고 피상적으로만 느낄 뿐이었다. 이중섭이 젊은 나이에 가난으로 힘들어 하다가 죽었다는 것. 하지만 그의 집안은 그 당시에 비추어 보아 부유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힘들게 산건 시대적 상황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원산이 원래 고향이던 이중섭은 해방이후 월남을 하게 된다. 월남 이후 북에서 활동했던 이중섭은 우리나라의 미군정 상황 및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 등의 정치적 상화으로 이중섭은 미술활동에 대해 많은 간섭을 받게 된다. 이는 월남전에 북에서도 그의 그림이 정치적으로 불순한 것이라고 비판을 받아, 이북과 이남에서도 그의 예술 활동은 시련을 맞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내가 일본인(이남덕, 마사코)이라는 이유도 그의 활동상에 의심을 가게 하는 것이었다. 일제시대와 해방이후 근현대사를 살아온 이중섭이라는 예술가도 또한 그 시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 시대를 살아온 이들이 그랬을 것이지만, 많은 이들이 상처, 쉽게 말로 할 수 없는 시련들을 격었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과거의 역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들은 누가 있는 것일까? 그들의 시련과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는 것은 또한 무엇인가? 자꾸 왜 라는 질문을 던져 보게 된다. 그들이 힘겹게 살아온 과거를 거쳐 현재의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이가에 대한 질문과 함께. 그리고 또한 이중섭이 마사코, 남덕을 사랑하는 것 사람이 사랑하는 것에 대한 신뢰를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사랑과 사랑이 이중섭에게 살아갈 의지를 부여해 주었고, 그 에게 그림에 대한 창작 의욕까지도 불어 넣어 준 것이다. 소위 말하는 사랑의 힘인가? 내게 사랑에 대한 믿음을 심어 주었다. |
| 예술가와 당대의 역사는 미묘한 관계인듯 싶다. 아니 어쩌면 짓굿고 냉정하다고 해야 맞는 표현이 될지 모르겠다. 네덜란드의 고흐가 그랬듯이 우리는 이중섭을 비운으로 내몰아 화가의 삶과 영혼을 짓밟고 비통한 죽음을 맞이하겠금 한 우리 모두가 공범이아닐까? 이중섭은 대작보다는 습작에 가까운 그림이 많이 남아있다고 할 수 있는 화가다. 젊은 시절 연인에게 보낸 엽서 그림과 알루미늄 은박지에 그린 그림들에 대한 소개와 해설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이책은 이중섭의 출생부터 피난시절, 부산, 일본에서의 생활, 고뇌하고 외로워하는 인간의 모습, 그림에 대한 갈증을 느끼던 화가 로서의 모습, 아무도 없는 병실에서 쓸쓸하고 처연이 식어 갈때 까지의 모습을 시기순으로 서술하고 있다. <미래가 예약된 천재>라는 평가를 받았던 중등생 이중섭은 화가로서의 평가뿐 아니라 동물과 어린아이의 사랑도 남달랐으며 사람 됨됨이로 인해 모든이의 사랑을 받아왔다고 한다. 증명이라도 하듯이 제주도 서귀포 시절의 그림들이 대작으로 인정을 받고 있으며 대부분 소와 어린아이의 모습을 소재로 화폭 가득이 담고있다. 전쟁과 격동의시대, 혼돈된 사회를 살다간 화가 이중섭은 강한 필치로 이런 격동과 혼돈을 동시대의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표현하는데 성공한 화가이며 엽서와 편지를 통해 볼때 전통적인 서예문화 계승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린 화가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가 남기고간 흔적들이 사라지기 전에 제대로 볼 수 있는 작업과 관심을 갖고 바라보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바램처럼 사라져 가는 예인들에 대한 일연의 작업들이 이루어 지기를 바란다. 가장 한국적인 화가 이중섭. 가족과 오래 헤어져 지냄으로 그리움의 마음을, 동화적이고 우화적인 그림을 그렸던 불운의 화가 이중섭. 이제서야 우리는 그를 위해 서귀포에 작은 기념관 하나 덩그라니 세워 놓았다니 부끄럽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