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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아침 올라가야겠어요."(P.9) 소설의 시작부터 '나'는 '노인'(어머니)에게 하루도 채 머물지 않고 서울로 떠날 것이라 이야기한다. '노인'은 믿기지 않는 듯 숟가락을 상 위로 내려놓으며 더 쉬었다가라고 말하지만, '나'는 매정하게 그럴 여유가 없음을 내비치며 대화의 매듭을 짓는다. "그래, 일이 그리 바쁘다면 가 봐야 하기는 하겠구나, 바쁜 일을 받아 놓고 온 사람을 붙잡는다고 들을 일이겄나." (P.15) '노인'의 단념은 너무나 간단한 체념이었고, '나'는 너무도 간단한 노인의 체념에 오히려 짜증이 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형의 주벽(酒癖)으로 가계는 파산했고, 어머니와 형의 아이들, 그리고 장남의 책임을 '내'가 떠맡아야 했다. 그런 삶 가운데 '노인'과 '나'는 서로 주고받는 것 없는 처지로 살게 된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인은 내게 대해서 소망도 원망도 있을 수가 없었다."(P.25) 어린시절부터 무너진 가계의 장남역할을 담당하며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런 환경에서 살 수 밖에 없었던 설움과 '노인'을 향한 원망을 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노인'에게 빚진 것이 없으며, 설사 '빚'이 있다 하더라도 장남으로써 살아온 세월이 그 빚을 모두 청산한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노인에 대해 빚이 없다는 사실만이 내게는 중요했다. 염치가 없어져서건 노망을 해서건 노인에 대해 내가 갚아야 할 빚만 없으면 그만인 것이었다."(P.53) "한데 웬일인지 노인의 눈치가 이상했다."(P.25) '나'는 '노인'이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으며, 자신에게 무엇을 부탁할 엄두를 낼 수 없으리라는 확신함에도 불구하고 소망하는 무언가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 소망이라는 것은 바로 '지붕 개량 사업'으로, 지금 살고 있는 초가지붕을 벗기고 기와나 도단을 얹는, 국가적으로 시행하던 사업이었다. '나'에게 자신의 속내를 비춘것이 좋은 집에 살고자 하는 소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노인' 자신의 죽음을 염두해 둔 소망이었음을 아내와 '노인'과의 대화에서 알게 된다. "숨 끊어지는 날 바로 못 내가 묻으면 주검하고 산 사람들이 방 하나뿐 아니냐, 먼 데서 온 느그들도 그렇고......그래서 꼭 찬바람이나 막고 궁둥이 붙여 앉을 방 한 칸만 어떻게 늘여 봤으면 했더리라마는..."(P.63) 소설의 시점은 17, 8 년전 '나'의 고등학교 시절로 되돌아간다. 형의 술버릇이 나빠져 전답을 팔고 선산을 팔고, 마침내 아버지 때부터 살아 온 집까지 팔아넘겼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K시에 고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텅텅 빈 집 앞에서 서성이고 있자니, "여기가 어디냐. 네가 누군데 내 집 앞 골목을 이렇게 서성대고 있어야 하더란 말이냐."(P.75) 아들이 왔다는 소식을 동네 사람들에게 전해듣고 달려온 노인이 다짜고짜 나를 나무라며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집이 팔린 것은 분명해보였으나 집을 판 주인에게 부탁해 둘째아들이 다녀갈 때까지만 시간을 달라는 부탁을 받아내고 아들이 오기까지 매일 마당을 쓸고 길을 쓸고 마루를 닦아냈던 노인이었던 것이다. 집이 팔린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방안에 옷장 한 궤짝을 남겨두었던 노인은 여전히 그 옷장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시점은 팔려 버린 집에서 하루밤을 묵고 떠나는 '아들'과 '어머니'의 이별의 장면으로 옮겨간다. "처지가 떳떳했으면 날이라도 좀 밝은 다음에 길을 나설수도 있었으련만, 그땐 아직도 그리 처지가 부끄럽고 저주스럽기만 했던지......그래 할 수 없이 새벽 눈길을 둘이서 나섰지만, 시오리나 되는 장터 차부까지 산길이 멀기는 또 얼마나 멀더라냐."(P.106)
"내가 미끄러지면 노인이 나를 부축해 일으키고, 노인이 넘어지면 내가 당신을 부축해 가면서, 그렇게 말없이 신작로까지 나섰다. 그러고도 아직 그 면소 차부까지는 길이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나는 겨구 그 면소 차부까지도 노인과 함께 신작로를 걸었다."(P.115) 멀고도 힘든 길을 함께 걸어 갔으나 나와 노인의 이별은 순식간에 일어나게 된다. "나는 차를 타고 떠나가 버렸고, 노인은 다시 그 어둠 속의 눈길을 되돌아선 것이다."(P.115) 노인이 그 후로 어떻게 다시 마을로 되돌아갔는지 '나'는 알 수 없었고 노인을 길가에 혼자 남겨 두고 차로 올라서 버린 그 순간부터 노인을 생각하기 싫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의 이야기를 17, 8년이 지난 오늘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 직접 들을 수 있게 된다. "운전수란 사람들은 어찌 그리 길이급하고 매정하기만 한 사람들이더냐. 차를 미처 세우지도 덜하고 덜크렁 덜크렁 눈 깜짝할 사이에 저 아그를 훌쩍 실어 담고 가버리는구나."(P.117) "넋이 나간 사람마냥 어둠 속에서 한참이나 찻길만 바라보고 서 있으 수밖에야...그 허망한 마음을 어떻게다 말 할 수가 있을 거나......" ![]() "눈길을 혼자 돌아가다 보니 그 길엔 아직도 우리 둘 말고는 아무도 지나간 사람이 없지 않았겄냐...그 몹쓸 발자국들에 아직도 도란도란 저 아그의 목소리나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듯만 싶었제...금세 저 아그 모습이 뛰어나올 것만 싶었지야. 하다 보니 나는 굽이굽이 외지기만 한 ㅡ 산길을 저 아그 발자국만 따라 밟고 왔더니라.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너하고 나하고 둘이 온 길을 이제는 이 몹쓸 늙은 것 혼자서 너를보내고 돌아가고 있구나!" 아들을 향한 마음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하고,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애써 속으로 삼켜내야 했던 어머니의 사랑은, 아들을 보내고 되돌아오던 길에 쌓인 눈과 같이, 너무나 시리고 저려, 읽는 이로 하여금 그저, 지긋이 눈을 감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오목 오목 디뎌 논 그 아그 발자국마다 한도 없는 눈물을 뿌리며 돌아왔제. 내 자석아, 부디 몸이나 성하게 지내거라. 부디 부디 너라도 좋은 운 타서 복 받고 살거라......눈앞이 가리도록 눈물을 떨구면서 눈물로 저 아그 앞길을 빌고 왔제......."(P.123) 소설의 시작부터 거리를 느끼게 만들던 '나'와 '노인'으로 묘사되던 인물들의 과거시점을 보여주면서 아들과 어머니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모자의 가슴아픈 사랑이 드러나게 된다. 사랑을 받지 못하며 살았던 설움으로 어머니가 70노인이 될 때까지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던 아들. 그런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소망할 것도, 기대하기도 미안한 마음으로 한 평생을 살아온 어머니. 소설은 가난한 삶으로 인해 모자의 사이가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가슴시린 삶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내 인생의 단편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을 수 없는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을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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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제 - The Snowy Road 작가 - 이청준 그림 - 최재은
표지에 그려진 할머니의 얼굴이 너무도 슬퍼 보인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눈과 뭔가 할 말이 있지만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말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꾹 다문 입 그리고 볕에 탄 주름진 얼굴. 분명히 손도 거칠거칠할 것이다. 그리고 눈이 하얗게 머리에 내려앉았지만, 모자나 귀마개 하나 쓰지 못했다. 분명히 그리 넉넉한 살림은 아닐 것이다. 왜 이 할머니는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덮이는 날씨에, 어째서 이런 슬픈 얼굴을 하고 있을까?
이야기는 한 남자의 입을 통해 전개된다. 알코올 중독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조카들만 남기고 죽은 형 때문에 학창 시절부터 집안을 떠맡아야했던 주인공. 그가 입버릇처럼 생각하는 말이 있다. 어머니와 자기 사이에는 빚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그는 자기가 해야 하는 정도의 일만 어머니에게 하고, 그 이상은 해줄 마음이 없었다. 그에게 어머니나 형이 남긴 조카들, 형수는 그리 살가운 상대가 아니었다.
어머니 역시 작은 아들에게 변변하게 해준 것이 없다는 미안함으로 가능하면 부탁 같은 걸 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마을에 새마을 운동 바람이 불면서, 어머니는 아들에게 난생처음 부탁 비슷한 것을 말한다. 바로 집을 고쳤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친 것이다. 당신님이 돌아가시면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지금 방한 칸밖에 없는 초가집은 그럴 수가 없으니, 증개축을 했으면 하는 소원을 조심스레 말한다.
주인공은 그에 뿔이 나서 시골집에 온 지 하루 만에 돌아가겠다고 한다. 이에 상심한 노모를 달랜 것은 주인공의 부인이었다. 그녀는 모자 사이의 앙금을 해소하기 위해, 어머니에게 과거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며느리와의 대화에서 노모는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아들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 같은 여러 가지 감정을 하나둘씩 내비치는데…….
마지막 장까지 읽으면, 표지에 그려진 할머니가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큰아들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길에 나앉았지만 타향에서 공부하는 작은 아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지어주고 뜨끈한 방에서 하룻밤 재우고 싶었던, 도시로 돌아가는 어린 아들 밤길에 혼자 가면 위험할까 그 먼 눈길을 같이 왔다가 혼자 돌아가야 하는 먹먹함, 조금이나마 자식과 같이 있고 싶었던, 먼 곳에서나마 아들의 안전을 염려하고 기원하는, 아들에게서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들으면 힘이 나겠지만 어린 자식에게 그런 짐을 지울 수 없기에 혼자 참아내야 했던, 자식의 앞길을 막지 않겠다는 단호함과 그리움이 범벅이 된 얼굴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어머니'라는 존재를 떠올리면 연상되는, 희생의 대명사로 대변되는 그런 이미지였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는가? 자식은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하나도 알지 못하는데…….
책을 읽으면서 안쓰러웠다. 아들도 그렇고 어머니도 그렇고. 그래도 다행인 건, 이 어머니가 자식 복은 없지만 며느리 복은 있는 것 같았다. 큰아들은 재산을 탕진하고 일찍 죽었고, 작은 아들은 어머니가 해준 게 뭐가 있냐며 냉담하게 군다. 하지만 큰며느리는 시골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아이들을 키우고, 작은 며느리는 남편과 달리 사근사근하니 시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고 남편과 화해시키려고 한다. 아들보다 훨씬 나았다.
모자가 화해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뭔가 변화는 생길 것 같다. 주인공이 아주 냉정한 사람이 아니라, 단지 보지 않으려고 했었기 때문이다. 이후 제대로 보려고 했으면, 아마 조금은 서로에게 다가서지 않았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책의 구성이 그런 감동 느끼는데 여러 번 방해했다. 이 책이 한국 단편을 영어로 번역해서 내놓은 시리즈 중의 하나인데, 편집이 좀 아쉬웠다. 한 쪽은 한글로, 다른 쪽은 영어로 구성해놓았는데, 두 언어의 문장 길이가 다르기 때문에 연달아 영어로 된 페이지가 나온다거나, 그림과 글 내용이 살짝 어긋나기도 했다. 그래서 감동이 반감된다거나 중간에 툭 끊어졌다. 차라리 앞은 한글, 뒤는 영어로 나누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할머니의 표정이 살아있었고, 심경을 나타내는 배경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다만 편집이…….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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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참 각박해져가고 있습니다. 그런 사회적인 환경이 가족 간에 불신의 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서로가 아끼고 사랑해야 할 가족이 물질 때문에 생각하기도 싫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부모는 자식에 대해 내리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자식은 당연히 부모를 공경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조건 없는 사랑은 바로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일진데 이제 그 사랑이 변색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청준의 단편소설 <눈길>을 읽다보면 다시 원래의 색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이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경제대국이라고 불릴 만큼 경제가 성장하였지만 불과 50년 전 만해도 대부분 국민들은 어려운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당시 가난은 누구에게만 해당하는 사항이 아니고 거의 어려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 시절을 배경으로 이 소설은 쓰여 졌습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깊었지만 가난 때문에 아무것도 나누어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머니와 아들의 아픈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큰 아들이 재산을 탕진하여 죽고 고향에서 머물 집조차 없던 어머니, 도회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둘째 아들이 고향에 온다기에 새집주인에게 부탁을 해서 밥을 지어 먹이고, 잠자리를 마련해주고 다음날 새벽 다시 아들을 도회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간밤에 내린 눈 때문에 길은 하얀 눈길이 되어 버렸습니다. 모자는 버스를 타기위해 차부 까지 길을 걷습니다. 눈물을 참으며 아무 말 없이 발자국만을 남긴 채 걷습니다. 헤어짐의 여운조차 허락하지 않는 버스의 등장은 야속하기만 합니다. 그렇게 아들은 떠났습니다. 돌아오는 길 두 사람의 발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언제 만날지 모르는 아들의 온기를 느끼기 위해 아들의 발자국 위를 밟고 걷습니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다시 뛰어 올 것만 같은 자식을 생각하며 한 맺힌 눈물을 그 눈길에 뿌려놓습니다.
“신작로를 지나고 산길을 들어서도 굽이굽이 돌아온 그 몹쓸 발자국들에 아직도 도란도란 저 아그의 목소리나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듯만 싶었제.”
“울기만 했겄냐. 오목 오목 디뎌 논 그 아그 발자국마다 한도 없는 눈물을 뿌리며 돌아왔제. 내 자석아, 부디 몸이나 성하게 지내거라. 부디 부디 너라도 좋은 운 타서 복 받고 살거라. … 눈앞이 가리도록 눈물을 떨구면서 눈물로 저 아그 앞길에 빌고 왔제.”
어머니의 사랑은 이렇습니다. 모든 잘못은 자신의 죄로 하고 자식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바로 자식을 위해서는 언제라도 희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소설을 읽다가 참 많이도 울컥거렸습니다. 시골에 계시는 어머니 생각이 나서 말이지요. 매일 아침 미륵 할머니께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를 떠올리니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아들의 성격처럼 마음과 다르게 따뜻한 말 한마디 전해 드리지 못하는 무뚝뚝한 모습이 저의 모습인 것만 같아 가슴이 아팠습니다. <눈길>은 짧은 단편이지만 어머니의 사랑을 애절하게 잘 표현한 소설입니다. 제 마음이 이렇게 움직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증명된 셈이네요. 어머니의 그대로의 사랑을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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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눈길 The Snowy Road, 2004 지음 : 이청준 그림 : 최재은 펴냄 : 한림출판사 작성 : 2014.02.16. “제 점수는요.” -즉흥 감상- 네?! 감히 이청준님 작품에다가 점수타령을 하다니! 팬의 입장에서 용서할 수 없다구요? 으흠. 간추림을 시작하기도 전에 보여주시는 뜨거운 관심, 감사합니다. 아무튼, 위의 즉흥 감상은 이야기를 향한 것이 아니라 책의 구성에 대한 저의 느낌을 적은 것이니, 오해가 없었으면 하는데요. 내용은 다음과 같겠습니다.
점심을 먹다말고 내일 아침에 다시 도시로 돌아가겠다는 아들의 말에 놀라는 아내와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차마 가지 말라는 말을 못하는 어머니에 대해, 아들은 ‘빚이 없음’을 속으로 곱씹는데요. 그런 묘한 긴장감이 도는 분위기에, 아내는 남편과 시어머니 사이에 있었던 지난 일에 대해 대화를 시도하는데…….
네? 이거 스릴러나 미스터리냐구요? 간추림에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는 것은, 제가 그동안 그쪽 장르의 작품들을 많이 만나 감상문을 적어왔다는 것을 암시할 수도 있겠군요. 아무튼, 이 작품은 전혀 그런 내용이 아닌, 어미와 자식 간의 암묵적인 사랑과 증오를 조심스럽게 풀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책으로 만나시어 감상과 생각의 시간을 가져주셨으면 하는군요.
내용만 보면 단편소설에 해당하지만 표시된 것만 149쪽으로, 딱딱한 표지와 함께 작으면서도 제법 무게감이 느끼지는 책이었습니다. 네? 아아. ‘내용만 보면 단편’이라는 말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시다구요? 그게 말입니다. 이 책을 만나보신 분들 중에 영문이 적힌 표지에 이어 무심결에 펼친 면에서 영어가 나와 움찔 하신 분들이 있을 것이라 감히 장담하는데요. 내용의 반은 영어로, 남은 반은 지면을 가득 채우는 그림과 한글로 구성되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구성에서 위의 즉흥 감상을 적게 된 것인데요. 뭐랄까요? 정말 읽기 힘들었습니다. 영어와 한글이 페이지마다 번갈아가며 펼쳐지는 구성에 적응되신 분들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반은 영문으로 반은 원서인 한글로 구획을 나눴으면 했습니다. 아니면 번역과 한글이 교차가 되더라도 왼쪽 면은 한글로 오른쪽 면은 영어로 하는 방법으로 분량을 일정하게 구성해도 좋았을 것인데요. 한창 집중에서 읽다가 이어지는 부분에서 영어가 튀어나오며 흐름이 끊어지자, 몇 번이나 다시 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크핫핫핫핫핫핫!!
투정과 흥분을 진정시키고 손가락의 춤을 이어봅니다. 그리고 다음 질문에 대해 생각의 시간을 가져볼까 하는데요. 이 이야기의 제목인 ‘눈길’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함입니다. 제 기록을 읽어주시는 분들은 제목을 처음 보는 순간 무엇을 떠올리셨을까나요?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애니메이션 ‘겨울 왕국’? 아니면 작가가 이청준이라고 하니 ‘서편제 시리즈의 또 다른 이야기’? 그것도 아니라면 대자연을 배경으로 펼치는 부모와 자식 간의 애절한 사랑이야기? 저는 열림원 출판사본의 단편집을 통해 먼저 내용을 알게 되었다보니 상상력을 발동할 여유가 없었는데요. 비록 감상문을 적지 않았었지만 ‘눈과 관련된 한국의 한이 어린 이야기’로 예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에게 이청준이라는 분은 ‘한恨’을 먼저 떠올리게 하기 때문인데요. 이밖에도 다른 의견 있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럼 책이 왜 한글과 영문으로 구성되어져있는지 알려달라구요? 본문이 시작되기 전에 적어있기도 하지만 ‘우리의 ‘한글’과 더불어 세계인과 소통할 수 있는 ‘영어’와의 이중주를 통해 세계의 무대 위에 서서 우리의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합니다.’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수많은 작품들이 번역 출판되어 서점가에 자리하고 있는데, 우리의 작품은 과연 얼마나 외국어로 번역되어 세계로 나가고 있을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도 답을 알고계시는 분 있으면 살짝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도서 ‘캐릭터 공작소-베스트셀러 작가 오슨 스콧 카드의 소설 창작 노트 Elements of fiction writing: Characters&Viewpoint, 2010’를 마저 읽어보겠다는 것으로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칠까 하는데요. 저는 살짝 감기몸살인거 같은데, 다른 분들은 괜찮으신 가 모르겠습니다. TEXT No. 216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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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이청준 <부모가 되는 것을 쉬울지 언정, 부모 노릇은 쉽지 않다.> 고3때, 나는 이 소설을 읽기에 바빴다. 엄밀히 말하면 ‘읽고 생각하고 느끼기’보다 1분 30초 안에 지문을 읽고, 객관식문제에서 정답을 선택하느라 바빴다. 이 소설의 주제는 다음 중 무엇인지? 밑줄 친 눈길의 상징적 의미는 무엇인지? 이 소설의 시점은 무엇인지? 등. 고3시절, 나는 문제의도 맞게 지문을 읽고, 추론하고, 정답을 찾는 방식을 읽히려고 애썼다. 즉, 본문의 일부를 발췌한 1500자인 보기 지문을 읽고 3-4개 문제를 5분 안에 풀어야 한다. 이청준의 <눈길>도 그때 나에게 아무런 감흥을 불러 일으키지도 않았다. 단지 문제일 뿐이었다. 나는 단순히 ‘눈길의 줄거리와 요약정리’를 읽고 암기하느라 바빴다.
지금에서야 <눈길>을 읽었다. 예전에 이 소설을 요약정리로 본 내 자신이 부끄럽고, 안타까웠다. 소설 속 주인공 ‘나’는 가족으로 도움을 받지 않고 자라왔다. 주인공 ‘나’가 고등학생인 시절, 자신의 큰 형이 술과 도박에 빠져 집을 거덜냈다.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주인공 ‘나’는 힘겹게 성장했다. 그는 이제 청년이 되었고, 어머니는 노인이 되었다. 다 쓰러져 가는 집에서 노인과 큰 며느리, 그 조카들이 어렵게 살아갔다. 그들을 보며 ‘나’는 안쓰럽게 여기기보다 일부러 외면한다. 노인을 보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되뇐다. ‘지금까지 나한테 해준 것도 없고, 그 사실을 노인네도 알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지금 노인네를 도와 드려야 하는지(금전적, 노동적)? 도와줄 필요도 없어.’ 노인도 아들과 대화를 하려고 해도 주저했다. 지붕개량 공사에 대해 아들과 얘기하려고 해도 그녀는 아들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 못했다. 그녀는 그에게 큰 소리로 말하지 않고, 혼잣말 하듯, 흘리듯이 말을 했다. 어색한 모자 사이를 연결해 주려고 하는 자가 ‘나’의 아내였다. 그녀는 남편이 노인의 목소리를 들을 정도의 거리에서 옛날이야기를 했다. 그녀를 통해 그(‘나’)는 ‘나’가 놓친 이야기,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것은 혼자서 돌아오는 길이였다. 집을 잃은 노인은 새로운 집주인에게 양해를 구해 그 곳에서 어린 아들(주인공 ‘나’)에게 따스한 밥을 먹이고 같이 잤다. 그 다음날 새벽에 그녀는 어린 아들과 면소 차부까지 걸어갔다. 눈발이 휘몰아치는 새벽, 도로에 눈이 쌓인 그 곳을 모자는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갔다. 그들이 면소 차부에 거의 도달할 쯤에, 차부에서 버스가 나왔다. 그녀는 버스를 멈춰서 세워 아들을 태웠다. 모자가 인사말을 나눌 세도 없이 버스는 휭하니 달렸다. 갈 곳이 없어진 그녀는 온 길을 되돌아 걸었다. 눈길 위에 자신과 아들이 남긴 발자국을 따라 걸어갔다. 아들이 남긴 발자국을 보며, ‘너만은 꼭 잘 살아라, 불쌍한 부모 만나 고생하는 내 새끼, 너만은 잘 되어야 한다.’라고 빌며 걸었다. 그렇게 햇살이 비출 쯤에 그녀는 동네에 도착했다. 그녀는 마을로 들어가지 않고 뒷동산으로 올라갔다. 눈이 실릴 정도로 아침 햇살을 받으며, 그녀는 집집마다 아침밥을 먹으려고 연기가 피어오른 것을 보았다. 그녀는 그 곳에서 그 모습을 바라 보았다. 집도 없어 오갈 데도 없는 처지가 된 어머니는 슬퍼하지만 않았다. 그녀는 어린 아들에게 그것을 보이지 않으려고 슬픔을 참아냈다. ‘불쌍한 내 새끼’를 생각하며, 그녀는 아들 앞에서 평소처럼 행동했다. 아들이 떠나자, 그녀는 힘겹게 되돌아 갔다. 갈 곳이 없는 자가 갈 수 있는 곳인 마을 뒷동산으로 갔다. 그녀는 아침 동네 모습을 보았다. 따스한 밥을 먹으려고 집집마다 굴뚝에는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웠다. 노인은 그 모습을 보며 햇살이 따가워서 뒷동산에서 잠시 있어다고 말했지만 아마도 눈물이 나서 그럴 것이다. 앞이 막막한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를 때, 표출할 수 있는 건 눈물 뿐. 그 눈물 때문에 그녀는 햇살이 따가웠다고 표현한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ps 부모가 되는 것을 쉬울지 언정, 부모 노릇은 쉽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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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thanksgive의 이벤트를 통해 얻게 된 책입니다. 어머니와 관련된 추억을 남기는게 이벤트 신청 방법이었습니다. 전 어머니와의 기억을 떠올렸고 어머니 라는 존재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사실 전 어머니라 안하고 엄마라 부릅니다. 아직까진 엄마의 품에서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엄마와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전 참 못된 딸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일에 매번 고집부리며 엄마를 괴롭게 했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엄마 아빠도 못가본 해외를 나가고 싶다며 떼를 쓰거나, 잘못해놓고 뻔뻔스럽게 아무렇지 않은 척 하거나, 때론 남자친구와 놀다 밤늦게 귀가하곤 친구랑 놀았다고 거짓말 하거나요. 허나 부모님이 모르실리 있나요, 항상 감싸안고 이해해주실뿐이었죠. 이 책은 이런 부모의 마음, 특히 어머니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가난한 한 집, 형이 술버릇에 선산과 집 등 모든걸 팔아버리고 남은 어머니와 작은아들. 얼떨결에 한 가정을 지키게 된 작은아들은 나가서 돈을 벌게 된다. 허나 집이 팔린 후라 어머니는 돌아올 자식을 위해 남의 집이 된 그 집에 얹혀살며 자식을 기다린다. 자식이 소식을 듣고 돌아왔고,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밥 한 끼 지어준다. 다음 날 눈이 새하얗게 쌓인, 자식을 바래다 주러 나간 그 길에서 매정하게 돌아가버린 차를 보며 어머니는 자식이 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본다. 돌아오는 길은 어머니에겐 아픔과 한이 서린 길이 된다. 이 책을 보며 자식이 참 매정하단 생각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도 됐습니다. 이 책을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저려왔습니다. 우리 엄마도 그럴테지, 우리 엄마도 그렇게 아파할테지.. 항상 자식을 위해 희생하지만 그것마저도 부족하다고 여기는 엄마.. 자식인 저는 항상 그런 엄마가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았음 싶습니다. 아빠랑 단둘이 여행도 가고 일에 치이지 않고 자식 걱정없이.. p.123 굽이굽이 외지기만 한 그 산길을 저 아그 발자국만 따라 밟고 왔더니라... p. 123 내 자석아, 부디 몸이나 성하게 지내거라. 부디 부디 너라도 좋은 운 타서 복 받고 살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