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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소설과 산문집이 출간되면 꼬박꼬박 읽는 편이다. 요즘은 그의 초기 작품들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하도 오래전에 출간된 것들이라 절판된 것이 많은데, 개정판으로 나오는 책이 늘면서 생각이 날 때마다 한권씩 찾아 읽는다. 이 책 [내가 읽은 책과 세상]은 김훈이 신문기자였던 시절 펴낸 첫 책이라 한다. 1980년대에 쓴 기존의 원고에서 시와 관련된 부분들만 모으고, 거기에 다른 시집평들을 추가하여 20년이 지난 2004년에 개정판으로 펴냈다고 한다. ‘김훈의 詩이야기‘란 부제가 말해주듯 내용 전체가 시와 관련된 이야기여서 원래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다. 하긴 초판을 읽어보지 못했기에 이러쿵저러쿵 말 할 필요는 없지만 말이다.
초판이 나오던 1989년 저자는 서문에서 ‘이 글 부스러기들은 대부분 밥을 벌기 위해 허둥지둥 쓴 글’이라 말한다.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그의 저작을 읽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이 글을 두고 저자의 오만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자신이 쓰는 글에 대한 정의를 이처럼 단도직입적으로, 사실적으로 말한 작가가 있었는지에 생각이 미치자 그의 말을 이해할 것도 같았다. 밥은 한,두끼 먹어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하는 것이라서 대책이 없다며 오늘도 밥 벌러 가자고 말하던 그였기에, 아마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은 시로 엮는 가을, 여름과 시, 시집기행의 3부로 나뉘어져 있다. 먼저 ‘시로 엮는 가을‘은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느낀 감정을 그곳을 노래한 시들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서해안의 염전, 동해, 섬진강, 을숙도, 만경평야, 광주, 경주 남산, 제주도 등 각지를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풍경, 그리고 그곳을 노래한 시와 시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내일이 새로울 수 없으리라는 확실한 예감에 사로잡히는 중년의 가을은 난감하다.’(13쪽)는 저자의 말처럼 가을이라는 계절이 관통하고 있다.
‘서해 염전벌판의 가을은 인간의 상처에는 보상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소금밭의 가을은 바래고 바래서 더 이상은 증발될 것이 없는, 하염없는 말라 비트러짐의 가을이다.’(21쪽) 여름의 폭염이 지나간 염전에 남아 있는 것은 말라 비트러진 소금의 찌꺼기이다. 이는 곧 여름의 찌꺼기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저자의 마음너머로 가을의 쓸쓸함이 베어난다. ‘동해의 가을은 안온한 저장과 휴식의 계절이 아니다. 칼날같이 찬 겨울바다에서 투망질로 손금 닳아 없어지는 기나긴 노동의 겨울은 이미 시작되었다.’(22쪽) 차가운 겨울바다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드러난 생존의 무서움을 가을은 잉태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글을 읽어가면서 밥벌이를 향한 인간의 삶에서 가을이 주는 풍요함은 어쩌면 사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읽는다. 그렇게 가라앉은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 만경평야의 가을이다. ‘가을의 김제 만경평야는 수그러진 벼의 지순한 어깨들로 가득하다. 한 포기의 벼야 말할 수 없이 가녀린 풀일 테지만 벼들은 저마다 어깨와 어깨를 비벼 출렁임의 대열을 이루며 마을을 지나고 강을 건너서 아득한 지평선을 넘어간다.’(49쪽)
이처럼 책에는 곳곳마다 그곳이 간직한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는 분노 혹은 절망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희망을 다짐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자신이 성장해온 곳을 노래하는 시인들의 이야기와 그곳에서 느끼는 자신의 감상을 말하는 저자에게 가을이 난감했던 것은 당시 그가 중년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여름과 시’는 시의 소재를 중심으로 그에 해당하는 시인들의 시를 소개한다. 새, 섬, 바다, 산, 강물, 풀, 소 등에 얽힌 시들을 소개하면서 시인들은 왜 그렇게 노래했는지, 또 저자 자신이 그것들을 볼 때 느끼는 소회를 풀어내고 있다. ‘시집기행’은 말 그대로 시인들이 발표한 시와 시집들에 대한 단평들이다. 서정주, 신경림, 기형도, 황지우, 고정희, 허수경, 김용택, 곽재구 등... 20여 편의 시집에 대한 글을 읽어가다 보면 마치 그 시집을 읽어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마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시집 중 읽어본 시집이 단 한 권도 없다는 사실이 그런 마음이 들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20여명의 시인들 중에서 아는 시인의 다른 시집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당시 내가 시를 좋아하지 않았던 탓도 있을게다.
김훈의 초기 글을 읽으면서 내가 왜 김훈이란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지 생각해본다. 나는 그의 글에서 글쓰기의 방법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자시절 기사를 쓸 때에도 육하원칙에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주관에 바탕을 둔 글을 썼고,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글쓰기를 고집한다는 그의 글은, 밥벌이의 고단함이 아닌 글쓰기의 고단함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에게 나만의 글쓰기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라고 하는 듯하다. 당분간 김훈의 글을 계속해서 찾아 읽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