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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들마루에 사는 여덟살 은우는 어느 봄날 아빠에게 자전거를 선물로 받았다. 혼자 배우는 자전거는 쉽게 은우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누가 잡아주기만 하면 탈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마음으로 넘어진 자전거를 일으켜 세우는데 도깨비처럼 깨비 형이 나타나 주었다. 둘은 그렇게 말없이 마음의 길을 열어 소통하기 시작했다. 은우는 자기의 마음을 읽어주는 깨비형과 시간을 보내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즐거웠다. 청설모와도 마음의 길을 열준 아는 깨비형. 그러나 은우네 식구들은 깨비형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기에 몰래 거짓말을 하며 만날 수밖에 없다. 은우는 거짓말이 쌓여 더 큰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꼬리가 자라고 뿔이 났다고 생각하게 된다. 은우는 지금까지의 거짓말들을 엄마에게 모두 털어놓고 용서를 빈다. 그리고는 깨비형과 다시는 놀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느라 우연히 만나도 모른척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방학식을 하고 돌아온 은우는 깨비형이 엄마를 찾아 떠났다는 말을 할머니를 통해 전해들었다. 깨비형과 함께 놀던 그때 은우는 돌탑을 쌓아 소원을 빌며 자신이 방학을 하면 깨비형의 엄마를 찾으러 같이 가자고 약속했었던 일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그러던 봄이 오는 어느날 도깨비처럼 깨비형은 나타났다. 온몸으로 웃고 있는 깨비형이 정말 은우에게로 돌아왔다.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굴러가는게 신기한 자전거를 끌고 말이다. 깨비도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위해 은우에게 잠깐 돌아왔단다. 이 순간 내 가슴은 왜 먹먹해지고 눈물이 앞을 가리는지 모르겠다. 세상 밖으로 보내준 은우에게, 깨비의 마음을 읽어주고 통해준 은우에게, 엄마를 영원히 찾게 해준 은우에게 고마움을 자기식으로 보여주려고 그 먼 길을 다시 돌아왔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여러갈래의 길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땅 위뿐 아니라 하늘과 바다의 길. 그 길들은 하루가 다르게 빠르고 편해져간다. 우리는 항상 빠르고 편한 길만을 찾아 앞만 보며 달려간다. 하지만 깨비는 옆도 보고 뒤도 보며 모든 이와 소통하려고하며 마음의 길을 만들어간다. 깨비의 마음의 길을 동네사람들은 찾지 못하나 은우만은 찾아서 걸어간다. 수많은 편견과 오해로 쌓여있는 어른들과 깨비형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마음의 길 위에서 불편한 행복을 느끼는 은우의 이야기가 나를 눈물나게 만든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또는 스쳐지나가며 살아간다. 하지만 쉽게 마음의 길을 열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부터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생각하고 남을 생각하면 좀 더 쉽게 열릴 텐데라고 말하면서도 나 자신도 내 욕심 채우기 바쁘다. 경쟁사회, 이기주의, 적자생존 뭐 이런 것 들을 핑계 삼으면서 말이다. 책속에 이런 글이 나온다 “헌터가 용맹스러운 사냥개가 되길 바라는 건 욕심이라고 했다. 무엇이든 있는 그래도 봐 줄 수 있으면 우선 나 자신이 행복해진다고 했다” 내가 행복해진다면 무얼 욕심내고 탐내겠는가.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니 숨은 뜻을 찾을 일도 없고 왜 그랬을까 고민하지도 않고 쉽게 마음의 길을 열수 있을 것이다. 오늘부터 당장 그렇게 살아보려고 노력해봐야겠다. 은우, 깨비, 막내삼촌처럼... |
| 마음에 길을 내는일은 그리 쉽지 않다. 어떤 사람은 불도저를 끌고 다니며 하룻밤만에도 쉽사리 고속도로를 뚫어 버리지만 나같은 사람은 몇날 몇일이 걸려도 쉽사리 마음주지 못하고 돌맹이 하나씩 치워가며 길을 내곤한다. 물론 불도저로 길을 낸 사람들은 쉽게 닫아 버리기도 하지만 손으로 돌맹이 하나 하나 치워가며길낸 나같은 사람은 또 그 길을 쉽게 저버리지 못해서 목적잃어버린 그 길위에서 서성대기도 하지만 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길을 내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것은 작은 도움이다. 내가 간절히 원할때 누군가 예상치 않은 곳에서 내밀어주는 손은 천겹 놓여져있던 벽돌장들도 여름철 아이스크림처럼 녹여낼 수 있다. 살면서 그런 경험 한두번 안해본 사람은 아마도 없을것이다. 은우도 그랬다. 엄마가 자리를 비운사이 구멍이 뻥뚫린 은우 마음속에 살며시 올려놔준 그 힘없고 보잘것없는 손덕분에 그만 덜컥 빗장이 열려 버렸다. 모자라서 모질이라 불리는 깨비형은 열린 빗장 사이로 곧장 길을 내버렸다. 은우는 이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깨비형의 마음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생긴것이다. 그렇지만 깨비형의 마음을 볼 수 없는 어른들을 이해시킬 수 있을만큼 자라지는 못한 은우다. 덕분에 잠시 은우가 마음의 동그라미를 벗어나는 혹독한 시련을 겪지만 그것은 언제 까지나 은우 생각일뿐이다. 여전히 은우를 보살피는 그 동그라미는 더 크게 팔을 벌려 보살펴준다.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도 은우가 동그라미를 벗어났다고 싶으면 아마도 힘닿는대로 더 크게 팔을 벌려 동그라미를 넓히려 애쓰실거다. 지난번에 '아주작은 학교'를 읽을때도 느낀거지만 이금이 선생님의 동화쓰기는 마음주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곁에 항상 있어서 보잘것 없게만 느껴지는 사소한 것들을 손안에 잡고 선생님이 입김을 불어 넣어주면 마치 흑백화면이 컬러로 변하듯 화사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곤 한다. 버려진 학교나, 장애아 청년이나 가장 낮은 자리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생명을 넣어 어린이들 품에 안겨주는 일을 하고 계신 선생님의 작업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아이들이 세상을 향해 마음의 길을 내는데 주저함이 없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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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 시끄러운 비가 그치고 허수아비 아저씨가 참새떼들 쫓아내기 바빠질무렵이면 내 얼굴같은 예쁜 사과들이 우리동네 과일가게 진열대에도 수북히 쌓여가겠지.. (돌 맞을라..)
푸릇한 청사과맛은 보았었는데 이금이선생님은 때 맞춰 예쁜사과나무 꽃과 한 번도 가본적없는 주렁주렁 사과가 열린 과수원길을 거니는 상상을 책 속에서 맛보게 해주셨다.
시골동네든 도시든 좀 모자란 친구들은 있게 마련인데 깨비도 그런 아이다.(아이라고 하기엔 좀 크지만, 생각이 아이니까..) 아버지한텐 무서운 엄마셨다는 은우할머니는 세상을 둥글둥글게 바라보시는 눈을 가지셨고, 사내녀석의 씩씩함을 강조하시는 은우아버지는 글쎄.. 은우에게는 큰 영향력을 가지신 것 같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아버지의 위치에 계신듯하고 시골생활에 갑갑함을 느끼며 언제고 도시로 떠날 생각만 하시는 엄마는 보통 요즘엄마들을 그려놓았다고나 할까? (친구가 너무 없어서 안타까워 하시는 것하며..)
내가 맘에 들었던 사람은 은우 막내 삼촌이다. 은우의 생각을 아이들의 생각이려니 하고 무시하지 않고 은우의 눈높이에 맞춰서 세상을 그려내서 은우에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였다. 모두들 모질이라고 무시하는 깨비의 이야기조차도 은우에게 삼촌은 은우생각을 읽어낸것처럼 조용히 들어주고 얘기해주고 하는 부분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으로 책제목의 깨비.. 은우가 유일하게 불러주는 이름이다.
물론 은우의 막내삼촌은 조연급이고 은우와 깨비가 그려낸 마음의 길은 이 책안에서의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책 안에 꽉채워진 깨비와 은우의 예쁜마음은 어떻게 표현해 내기가 어렵다. 너무 예뻐서.. 다만, 초등학교 갓입학한 은우의 생각은 내맘속에 충분히 적셨다가 내 아이도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넓은 종이에 수수한 색채의 수채화로 꼭 그려보리라 마음 먹었다.
밤티마을 블로그안에서 도들마루동네의 그림 작업해놓은 원화 몇 장을 보고 너무 맘에 들어서 내 블로그에다 옮겨놓기도 했었는데 내용을 보고 그림도 그리셨을터니이 아마도 맘에 들 거라고 맘대로 생각했던 내생각이 틀리지 않았다.
작은 아이낳기전에 두 세개 골랐던 이름중에 은우가 있었는데 이 책의 꼬마주인공이 은우다. 은우 할머니랑 깨비가 우누야~우누야~ 하고 부르는 것도 발음이 안될 때 작은 아이이름 현수를 현슈~현슈~ 라고 불렀던 큰 아이 생각도 곱게 겹쳐그린 수채화처럼 가슴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릴적 동화책 속의 양 면 넓게 예쁘게 펼쳐진 그림을 보고 그려다가 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교실 뒤편에 걸려준 내 그림들은 매번 학기가 바뀔 때마다 걸려주니 보통으로 생각하고있던 차에 처음 상장으로 받고 예쁜액자에 넣어져서 학교 복도에 아주 오랫동안 걸려있었던게 까맣게 잊혀졌다가 이 책을 읽는 동안 접혀있던 기억이 점 점 커져서 예쁘게 부풀려질 동그란 풍선을 떠올리며 훅훅 불어대는 것처럼 가슴속에 쑥쑥 차올랐다.
너무 오랫만에 가슴이 푹 적셔져서 인지 읽고 난 뒤에도 자꾸만 눈길이 가는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p. 10 진짜 만난다는 건 서로의 마음과 마음 사이에 길을 내는 거라고 막내 삼촌은 이야기했다. 그 길을 통해 서로의 마음 속으로, 생각속으로 편안히 드나들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p. 39 두엄은 땅이 먹을 음식이라고 했다. 우리가 밥을 먹고 사는 것처럼 땅도 거름을 먹어야 튼튼해져서 곡식들을 잘 키울 수 있다고 할머니가 말해 주었다. 그 뒤로 나는 코를 틀어막지 않고도 두엄 옆을 지날 수 있게 되었다. p. 39 작은아버지는 할머니를 꼭 엄니라고 불렀다. 아마 아이들이 어머니를 '엄마'라고 하는 것처럼, 어른들도 아이 적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 '엄니'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p. 168 "우누야,우누야." 할머니가 부르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그 때서야 나는 깨비형에게 사과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사과하지 못한 것은 다행이었다. 나는 사과하기 위해 깨비 형을 또 기다려도 되니까. 나는 깨비 형에게로 난 마음의 길에 환한 등불을 내걸었다. 불빛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깨비 형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비춰 주었다. 처음에, 깨비 형 이야기를 참는 것은 뱃속 가득한 방귀를 참는 것보다 힘든 일이라 했던가? 고쳐말하고 싶다. 깨비 형 이야기를 참는 것은 내게 들이쉰 숨을 내쉬지 말라는 말과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