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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한일 월드컵은 스포츠를 통해 온 국민이 한데 뭉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서울 한복판을 수놓았던 붉은 물결, 어느 누구도 쉽사리 예상할 수 없었던 결과까지. 축구에 전혀 관심 없던 이들까지 잠시나마 축구 팬이 되도록 했던 게 사실이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저 멀리 그리스에서 날아오는 승전보에 목 말라하고, 세상이 캄캄하게 변해버린 시간대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두 손뼉 마주치며 ‘대한민국’을 외쳤던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새삼스레 축구가 지닌 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하지만 이를 긍정적으로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를 묻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수많은 기제들은 분명 사회학적으로 충분히 연구할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다분히 유럽 리그를 중심적으로 기술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흥미롭게 다가오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특정 지역에 연고를 두고 있는 혹은 국가 대표팀을 응원하는 순수한 서포터즈? 물론 스포츠를 사랑하는 그 마음의 순수함, 절실함에 대해 폄하하고픈 것은 아니지만,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이토록 단순한 문구로 해석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흔히 영국에서 시작되었다고 이야기되는 축구. 하지만 그 기원을 따지다 보면 우리는 고대 동양에서도 축구와 비슷한 무언가가 행해졌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과거의 축구가 지금과 같은 세련된 규칙을 지녔던 것은 결코 아니지만, 어떻게 본다면 축구라는 운동은 동서양 모두에 걸쳐 넓은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일종의 바탕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일종의 난투극과도 같이 폭력이 자행되고, 공격수를 7-8명씩 두는 등, 현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전술이 운용되기도 하였지만, 이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일종의 규율화, 규제화 과정을 겪게 된다. 선수들은 각자 자신의 포지션에 어울리는 신체, 기술을 습득해야 되고, 때론 특정 위치를 고수해야 하는 등, 축구 경기 규칙은 선수들의 신체에 일정한 제한을 가하게 되었다. 이는 현대로 오면서 좀더 세련화되어, 부상에도 불구하고 높은 몸값을 감당하기 위해 경기에 참여해야 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때론 평생을 짊어져야 하는 신체적 장해로 이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훌리건과 카니발로 대표되는 서포터즈(?)들에 대해, 지역에 연고를 두고 있는 클럽들이 지닌 성향에 대해 자세히 분석한다. 지역과의 깊은 유대감을 기반으로 한 클럽들은 각각 특정 계층에 의해 옹호되어지는 정도에 있어서의 차이를 보인다. 특정 클럽을 지지하는 이들은 다른 클럽을 지지하는 이들과의 연대 혹은 적대관계를 형성하기도 하는 등, 자신의 계급적 기반을 보다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축구를 받아들인다. 서포터즈들은 특정 클럽을 응원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그 클럽, 경기하는 선수들을 동일시하는 과정을 경험한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경기 관전과 관련된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활동을 하기도 하고, 때론 자신이 지지하는 클럽을 이용하여 자신의 정치적 색채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러한 활동들은 훌리건, 카니발을 단순한 응원이나 폭력적 문화로 바라볼 수 없게 한다 하겠다.
모 통신 업체에서는 지난 2002년 월드컵이 자신들의 전략에 의해 기획되어진 작품이었노라고 평하기도 했다. 물론 광화문에 모인 모든 이들이 그 업체에 의해 이끌린 것은 결코 아니지만, 이는 지난 월드컵에서 상업적인 부분이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전통적으로 좌파를 상징하던 붉은 색, 그 금기를 깨뜨린 문화로 주요 언론들이 평하기도 했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부분 역시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저자가 언급했듯이 이들 평가들이 다소 피상적으로 느껴지는 까닭은 직접 훌리건을 인터뷰하고 연구하지 아니한 연구가 다분히 이론적일 수 밖에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실질적인 거리 응원전에 참여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 현실에 바탕을 둔 연구가 아니라는 점에 있지 않을까 싶다. 붉은 색 옷을 즐겨 입는다는 것을 좌파에 대한 금기의 붕괴로 해석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융통성이 뛰어나지 못하다. (친일과 용공을 비교하며, 그 둘을 같은 선상에서 해석하는 모 국회의원의 태도는 이를 여실히 증명해주는 게 아닐지.)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대한민국’을 외치다가도 경기 결과가 시원찮을 때면 어김없이 냉소적으로 돌변하는 이들을 일컬어 애국심의 발로라고 평할 수 없는 것을 보면서,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대한민국만이 지니는 축구의 특수성을 사회학적으로 연구해보는 것도 흥미롭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거리 응원전에 참여하지 않는 이를 이상하게 여기고, 방송 3사가 축구 중계에 목매다는 현실은 스포츠와 정치의 유착이라는, 다분히 후진국적(?!)인 현상이 아닐지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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