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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체=천황, 반공의 방파제 역할을 교환한 일본의 전후체제, 그것은 미일 합작품-1945년 8월 15일 천황~
"국체=천황, 반공의 방파제 역할을 교환한 일본의 전후체제, 그것은 미일 합작품-1945년 8월 15일 천황~" 내용보기
전 세계를 전장의 포화로 몰아넣었던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자살과 총살로 생을 마감했다.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게 만든 전범의 말로가 비극으로 끝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설사 이들이 살아서 패전을 맞이했다해도, 재판에 회부돼 사형을 면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그런데, 이들의 말로와는 대조되는 전범이 있었으니, 일본 천황 히로히토였다. 그는 전범재판에 회부되기는 커녕, 1989년
"국체=천황, 반공의 방파제 역할을 교환한 일본의 전후체제, 그것은 미일 합작품-1945년 8월 15일 천황~" 내용보기

전 세계를 전장의 포화로 몰아넣었던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자살과 총살로 생을 마감했다.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게 만든 전범의 말로가 비극으로 끝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설사 이들이 살아서 패전을 맞이했다해도, 재판에 회부돼 사형을 면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말로와는 대조되는 전범이 있었으니, 일본 천황 히로히토였다. 그는 전범재판에 회부되기는 커녕, 1989년까지 천생을 누렸던 것이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백번, 천번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아시아를  전장의 도가니로 만들었던 그 수뇌가 전쟁 책임에서 면책될 수 있었는지, 여전히 천황으로 대접받을 수 있었던 것일까. 대동아 전쟁에 끌려가 죽어야 했던 사상자와 위안부등 인적 물적 피해가 얼마나 막심했는데.

조선인들은 천황에 대한 충성맹세를 하던 일제 지배 시절인, 그 당시 겪어야 했던 고초를 상기하면 어이가 없을 것이다. 광복 70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감정이 씻어지지 않고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최대한 냉정을 유지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렇지만  감정을 배제하고나서도  전후 일본의 정치체제를 이해하는 것은 정말로 힘들었다. 

 

'1945년 8월 15일 천황 히로히토는 이렇게 말했다'는  1945년 8월 15일 정오 라디오를 통해 '대동아 전쟁 종결에 관한 조서'를 통해, 전후에도 일본 천황제가 어떻게 보존되고, 그가 전쟁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지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분석하고 있는 책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들을 수 있었던 이 방송은 세칭 옥음(玉音)방송이라고도 하는데, 군부와 천황이 방송을 통해 천황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미디어를 활용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방송 내용안에는 단순히 일본 제국이 연합국에 항복을 선언한 것뿐이 아니라, 전후 일본 정치적 체제와 천황의 위상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선언을 들여다보면 일본 국민의 입장에서도 기가 막힐 내용이엇다. 전쟁에 대한 책임과 전쟁에 시달렸을 일본 국민의 생명이나 고난을 위로하는 내용은 전무했다. 전쟁으로 생명을 잃은 피해 국민에 대한 사과도 없었고, 국체 수호를 빌미로 그 책임을 전가하는 내용이 주였던 것으니.

일본에서는 천황은 통치를 하지만 정치를 하지 않기에, 군부들이 건의한 사항을 추인했을 뿐이라는 핑계를 댔는데,이 말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것인지는 대일본제국 헌법을 보면 적나라하게 드러나있다.

무려 제 1조부터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의 통치한다고 분명하게 명문화돼 있고, 4조에도 천황은 국가의 원수로서 통치권을 총람한다.고 규정돼 있음에도 개전의 책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발뺌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의 입장에서도  처음에는 일제의 굴레에서 벗어나 해방의 기쁨에 만세를 불렀지만, 조금만 냉철하게 살펴보면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종전뒤 일본의 전쟁 책임과 배상을 따지는데, 얼마나 큰 문제를 지니게 되는지, 또 조선이 분단에 이르게 되는 데에도 적지 않이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한마디로 옥음(玉音)이 아니라 견음(犬音)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내용이었다.

 

일본 군부와 제국주의 세력의 주관심사는 천황제의 존속이었다. 국체=천황의 공식을 전제로 천왕제의 존속을 밀어붙였고, 여기에 군정 맥아더로 대표되는 미군 측은 천황제가 폐지된다면, 일본을 항복시키기까지 연합군측이 엄청난 피해를 감당해야 한다는 이유로, 천황의 면피를 묵인하게 된 것이다.
이후로 일본은 천황제를 유지하기 위해, 냉전 체제에 기반하는 미국의 세계 전략에 전적으로 협조하며  군사력을 포기하는가 하면, 아시아의 반공 방파제 역할에 발벗고 나섰다. 기꺼이 오키나와를 미국에 제공하면서, 오키나와 주민의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켰고, 오키나와 주민과 일본 정부와의 뿌리 깊은 갈등은  지금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결국 일본의 전후 체제는 미국과 일본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후 천황측은  신성의 존재에서 내려와 인간 선언을 하고, 헌법을 통해 전쟁을 포기하고 군대를 갖지 않은 원칙을 추진하는 것으로 천황제를 존속시키기 위한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전범이 아닌 전쟁을 거부하는 평화의 이미지로 세탁하는 고도의 술책을 선보였다.

 

문제는 천황의 면책과 상당수 전쟁에 책임있는 세력들 사회로 복귀했고, 일부는 여전히 정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지금도 여전히 그 명맥을 잇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지금까지도 여전히 일본이 군국주의적 발상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 그것은 전후에 전쟁세력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탓이 크다. 그러니, 피해국에 대한 배상이나, 사과에 대해 미흡하고 신사 참배 등 여전히 피해국을 의식하지 않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 것이리라.

 

그리고 2003년 이라크 파병을 추진하는 등 다시 재무장을 시도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군국주의의 망령이 부활하는 것이 아닌가, 나아가 전쟁을 벌이지 않고, 군사력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평화헌법에 대한 개헌 움직임이 가시화되는 것은 아닌가 주변국의 경계를 사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이러한 일본의 움직임이 있었다. 

더욱이 일본이 포스담 회담 전에 항복의사를 밝혔더라면.. 조선은 분단되지 않았을텐데, 일본은 조선의 분단에 대한 책임에서 또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천황이라는 말에서부터 거부감을 넘어선 미움을 느끼지만 감정을 자제했고, 거듭 말하지만 최대한 이성을 유지하면서 전후 일본의 체제가 어떻게 구축됐는지를 살펴봤다. 다 읽고 느낀 점은 천황 체제가 유지되고, 그를 대하는 일본인의 정서는 내 이해의 영역 밖 일이라는 것이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구문물을 도입해 근대화를 추진했음에도 일본인은 인권이나 자유, 평등을 추구한 근대적 의식은 싹트지 못했고,여전히 봉건적이었다. 문명수준과 의식 수준의 괴리, 일본인 특유의 복종심 등, 전시 체제에 동원돼 삶이 파괴되고, 전쟁의 도구가 되었음에도 그들은 천황에 저항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전후 일본체제는 미국의 전략적 필요성과 제국주의 세력의 필사적인 국체 수호논리의 교환물이었다. 정의보다는  국제 질서란 명분하에 자국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강자논리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필자는 당시 미국의 정책에 대해 비판 일색이었다.  반면 일본의 책임을 거론했던 소련에 대해선 상당히 우호적으로 언급하고 있었다 소련이 동구권 국가에 대해 저지른 행동을 보면 그렇게 긍정적으로만 보는 것도 시각이 치우진 것이 아닐까. 비단 미국만 악이 아닐텐데, 소련 역시나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영향력하에 있는 약소 국가에 대해선 충분히 갑질에 강자의 횡포를 부렸으니 말이다.

 

 

e****0 2016.10.12. 신고 공감 6 댓글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