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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고, 예전에 읽었던 <한국민의 생각>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그 책이랑 이 책이 하고 싶은 말과 수준이 똑같거든.
그 책을 쓴 저자는 가명을 썼는데, 이 책의 저자는 실명을 썼다는 게 다른 점이지.
하지만 내용은 차이가 없다.
<한국민의 생각>이 부제가 안철수 교수님에게 묻습니다, 라고 나와서 사실은 한국의 모든 면을 철저하게 욕하고 헐뜯는 내용이었다면, 이 책도 "일본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들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라는 요란한 선전 문구를 달았지만, 사실은 그냥 한국 까대기다.
"일본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들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이런 주제를 가진 책들은 이미 수십, 수백권은 족히 나왔다.
일본 문화 찬양하면서 그들의 강점을 알아야 하고, 그들을 얕보면 안 된다고 하고, 그들을 배워야 비로소 일본을 이길 수 있다, 지일만이 극일이다... 이런 내용의 책들은 이미 시중에 차고 넘친다.
내가 중학교, 고등학교 때 그런 책들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쓴 저자는 마치 그런 내용의 책을 자기가 처음 쓴 것인양 말하고 있다.
식견이 부족하다고 해야 하나?
또, 저자는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저런 식의 핑계를 대며 교묘하게 숨기고 있다.
"한국 너네들은 일본보다 잘난 거 하나도 없어! 그러니까 너희보다 훌륭한 나라인 일본을 욕하지 마!"
이게 이 책을 쓴 저자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했다가는 쏟아질 비난이 두려웠던지, 뜬금없이 극일을 둘러댄다.
저자는 한국의 반일 민족주의에 대해 극도의 증오와 혐오감을 보이면서도, 막상 자기 책에는 한국인들의 반일 민족주의 정서에 편승하기 위해, '극일'이라는 선전 문구를 갖다 붙인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저자 본인이 그렇게 쓴 건지, 아니면 출판사에서 대중들의 비난을 숨기기 위해서 그렇게 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저자는 일본이 한국과 다른 점은 결코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서 원전 사고가 엄청난 재앙을 불러 일으킨다는 점이 세상에 공개되고, 그래서 일본 시민들이 총리 관저 앞에서 원전 반대 시위를 벌였지만, 그러나 아베 총리는 원전 재가동을 밀어붙이고 있다. 일본인들은 결코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는데, 왜 이러는 걸까?
아울러 저자는 박유하 교수의 문제작 <제국의 위안부>가 그저 연구 결과의 성과물일 뿐이니 비난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조작이라는 책을 썼던 어느 유럽인 교수의 책도 연구 결과의 성과물일 뿐이었다.
또, 저자는 책에서 일본에 대해 지나친 애정과 그에 반비례해서 한국과 중국에 대한 깊은 혐오감을 드러내는데, 그러다보니 곳곳에서 자기가 한 말과 서로 충돌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나는 당신들이 지난 수천 년 동안 우리를 괴롭힌 것, 세계를 유린한 것, 그것을 탓할 마음은 없다. 그것은 그 당시 세계 질서였다. 그 질서에서 외국을 침략하지 않았던 것은, 평화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럴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은 없다. 크메르족이나 몽골족 또는 잉카나 티베트 사람들, 그들의 현재는 아주 빈약하여 세계인의 동정 대상이 되고 있지만, 과거의 그들은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침략자였다. 그들은 지금 단지 힘이 없어 착한 척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신들의 제국주의적 침략 근성을 바락바락 욕할 때, 나는 심한 모순을 느낀다. 왜냐하면 우리는 광개토 대왕의 중국 정벌을 자랑삼고 있으며, 베트남에서 그곳 사람들에게 우리가 저지른 엄청난 죄악에 대한 반성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336쪽)
위의 지문이 이 책 본문 내용인데, 다음의 지문을 보자.(224~225쪽)
<"두 차례에 호란 시절을 제쳐 두고 본다 할지라도 중국의 사실상 속국이었던 세월은 일본의 가해 기간보다도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훨씬 길었다. 남북 분단은 중국의 참전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중국에 대해 적의나 원한을 느끼지 않고, 그들을 미워하는 목소리도 기껏 동북공정 때 뿐이다.>
두 지문을 함께 비교하면 심각한 모순이 발생한다.
저자는 일본에 대해서는 "당신들이 우리를 괴롭힌 것을 탓할 마음이 없다. 그것은 당시 세계 질서였"기 때문이라고 관대하게 넘어간다. 그러나 중국에 대해서는 "두 차례에 걸친 호란을 제쳐 둔다 할지라도, 중국의 사실상 속국이었던 세월은 일본의 가해 기간보다도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훨씬 길었다. 남북 분단은 중국의 참전 때문이다."라면서 왜 일본에 한 것처럼 사과나 반성을 요구하지 않느냐고 딴지를 걸고 있다.
??????????????????????
아니, 일본의 조선 침략이 당시 세계 질서이니 어쩔 수 없었다면 중국이 병자호란이나 한국을 속국으로 삼은 것 역시 당시의 세계 질서이니까 그것을 탓해서는 안 되지 않나? 말이야 나왔으니 말이지,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속국이 아니었던 나라가 몇이나 되나? 일본도 중국 명나라한테 조공 열심히 바치고, 스스로를 신 일본국왕 어쩌고 했는데.
그런데 왜 저자는 일본의 범죄는 넘어가면서 중국한테는 저렇게 핏대를 세울까? 답은 간단하다. 저자가 일본을 좋아하고, 중국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또, "베트남에서 그곳 사람들에게 우리가 저지른 엄청난 죄악에 대한 반성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라는 책 본문의 내용도 동의할 수 없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를 처음 부각시킨 쪽은 베트남 본인이나 외국인이 아니라, 1990년대 초반 한국의 한겨레를 비롯한 진보 언론이었다. 그리고 베트남에 가서 학살에 관련된 증오비를 세워주고, 그쪽 사람들에 대한 사과나 지원을 해준 쪽도 한국인 인권 계열 운동가들이었고, 지금도 한겨레나 시사인 등 진보 계열 시사잡지에서 꾸준히 베트남 학살 이야기 하고 있는데 말이다.
아울러 김대중 전 대통령이 베트남에 가서 학살 관련 문제를 사과했는데, 베트남 총리가 "우리가 승전국인데 왜 사과를 하느냐? 필요없다."라고 말한 사실을 저자는 알기나 할까?
베트남에서 저지른 죄악 운운하니 말인데, 베트남에 가서 가장 많은 사람들은 죽인 나라는 어딜까? 미국과 일본이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폭격을 통해 자그마치 3백만의 베트남인들을 학살했고, 일본군은 2차 대전 중에 베트남을 점령하고 있으면서 식량을 강제로 빼앗아가서 무려 2백만의 베트남인들을 굶겨 죽였다.
그런데 미국은 제쳐두고라도, 일본이 베트남인 2백만을 굶겨 죽인 "엄청난 죄악"에 대해 제대로 사과나 반성을 하던가? 있으면 어디 들려주기 바란다. 나는 그런 얘기를 통 못 들었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당신들(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 근성을 바락바락 욕할 때, 나는 심한 모순을 느낀다. 그것을 탓할 마음은 없다. 그것은 그 당시 세계 질서였다. " "두 차례에 호란 시절을 제쳐 두고 본다 할지라도 중국의 사실상 속국이었던 세월은 일본의 가해 기간보다도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훨씬 길었다. 남북 분단은 중국의 참전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중국에 대해 적의나 원한을 느끼지 않고, 그들을 미워하는 목소리도 기껏 동북공정 때 뿐이다."
이 두 문장이,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 싶은 핵심 내용이다.
1. 일본을 욕하면 안 된다. 그건 그 때 상황이 그랬으니까 어쩔 수 없다. 2. 중국은 일본보다 훨씬 나쁜 놈들인데, 왜 미워하지 않는 거야? 욕할려면 중국한테나 해!
저자는 자기 말의 논리를 자기 스스로 뒤엎어버렸다는 사실이나 알까? 알면 저런 식의 문장을 썼을 리는 없고... 일본에 대한 사랑과 이해가 넘쳐나다 보니 별로 개의치 않았나 보다.
그리고 저자는 책에서 "두 차례에 호란 시절을 제쳐 두고 본다 할지라도 중국의 사실상 속국이었던 세월은 일본의 가해 기간보다도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훨씬 길었다. 남북 분단은 중국의 참전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중국에 대해 적의나 원한을 느끼지 않고, 그들을 미워하는 목소리도 기껏 동북공정 때 뿐이다."라고 하는데, 이 문장에서 말하고 싶은 바는 이렇다. 중국은 나쁜 나라니까 절대 손잡으면 안 된다...
이거 꼭 <기누가와>란 소설 같다. 그 책 앞머리에도 한국은 일본과 손잡고 중국에 맞서야 한다고 나왔는데... 혹시 저자가 같은 사람인가, 아니면 둘이서 영향을 받은 건가?
그런데 한국이 역사적으로 가장 중시했던 나라는 중국이고, 또 가장 친근하게 여겼던 나라도 중국이니까. 아, 저자에게 중국은 다 지난 옛날 일을 끄집어내서 훌륭한 선진국 일본을 괴롭히는 못된 나라이니, 그런 건 상관없겠지.
지금 중국은 미국에 다음가는 세계 2위의 강대국이고, 앞으로 20년 후면 경제력에서 미국을 능가할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대국이 될 나라다. 실제로 19세기 이전까지 중국은 2천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번성한 나라였다. 괜히 우리 선조들이 중국에 사대했던 게 아니다. 중국이 지금 미국만큼 막강한 나라이니까 그랬던 거다.
헌데 이런 중국에 맞서서 일본과 손잡고 대결해야 할까? 아무래도 저자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듯한데, 그러면 안 된다. 지금 한국 경제가 버티고 있는 이유는 한류를 좋아하는 일본이 한국 상품 열심히 사줘서가 아니라, 중국을 상대로 한 무역 흑자 때문이다. 막말로 중국인들이 한국 물건을 사주지 않으면 한국 경제는 그 날로 망한다. 한국의 대외 무역 흑자 중 90%가 대중국 무역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데 이런 판국에서 한국이 일본과 손잡고 중국에 맞서야 할까? 왜, 저자가 사랑하는 훌륭한 선진국 일본을 보호하기 위해서? 일본에 대한 저자의 사랑과 빠심은 알겠지만, 개인적인 감정으로 나라를 망하게 한다면 그건 범죄다.
저자는 자기 책에서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착한 민족은 없고, 힘만 있으면 다 똑같다고 했다. 그 말은 모두가 나쁘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어차피 죄다 나쁜놈들 세상인데, 그나마 제일 힘센 놈과 손을 잡아야 안전하지 않을까? 이미 중국의 경제력은 일본을 능가했는데, 그럼 중국과 우호 관계를 쌓는 것이 우리에게 더 좋지 않을까?
리뷰를 끝내며, 나는 이런 의문에 사로잡힌다. 왜 저자는 일본을 찬양하고 한국을 깎아내리기 위해서 구태여 352쪽이나 되는 책을 써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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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1. " 당신들이 지난 수천 년 동안 우리를 괴롭힌 것, 세계를 유린한 것, (중략) 그것은 그 당시 세계 질서였다." "이 세상에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은 없다." "과거의 그들은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침략자였다. 그들은 지금 단지 힘이 없어 착한 척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신들의 제국주의적 침략 근성을 바락바락 욕할 때, 나는 심한 모순을 느낀다. 왜냐하면 우리는 광개토 대왕의 중국 정벌을 자랑삼고 있으며, 베트남에서 그곳 사람들에게 우리가 저지른 엄청난 죄악에 대한 반성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저자의 역사적 인식이 하도 부실하고 미약해서 몇 마디 좀 해야겠다. 우선 저자가 언급한 베트남은 결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은 아니었다. 베트남은 남쪽의 인도계 민족인 참파족을 수백년 동안 "괴롭히고, 유린했던" "무시무시한 침략자"였다. 단지 미국이나 중국 같은 외세들에 비해 "힘이 없어 착한 척하고 있을 뿐이다." 베트남이 자국내 소수민족들을 얼마나 집요하게 탄압했는지, 또 공산주의 정권이 통일을 할 때 반공 인사들을 강제로 집단 수용소에 가두고 잔인한 인권 유린을 했다는 사실을 저자는 알기나 할까? 그런데 이런 베트남은 자신들이 "저지른 엄청난 죄악에 대한 반성"을 하던가? 내가 알기로는 전혀 없다.
"이 세상에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은 없다." "지금 단지 힘이 없어 착한 척하고 있을 뿐이다." : 그럼 힘이 있으면 얼마든지 못된 짓을 해도 된다는 얘기일까?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런 건가? 만약 그렇다면 저자는 한국이 베트남한테 못된 짓을 했다고 비난할 자격이 없다. 어차피 그 때, 한국은 베트남보다 강국이었으니 말이다.
"베트남에서 그곳 사람들에게 우리가 저지른 엄청난 죄악에 대한 반성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 베트남 전쟁 당시에 파병을 했던 나라는 한국만이 아니었다. 미국, 태국, 호주 등 여러 나라가 파병을 했다. 그것은 자유 진영의 맹주인 미국이 주도하는 "그 당시 세계 질서였다." 민간인 학살? 한국군만 했나? 미군은 더 심했다. 또, 한국이 도왔던 남베트남 정부와 소수민족 게릴라들도 민간인 학살에 앞장섰다. 그 또한 "그 당시 세계 질서였다." 그렇지 않나? 그러니 "지난"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이 베트남을 "괴롭힌 것", "유린한 것, 그것을 탓"해서는 안 된다. 한국은 "그 당시 세계 질서"에 충실히 따랐을 뿐이니까.
"우리는 광개토 대왕의 중국 정벌을 자랑삼고 있으며," : 엄밀히 말하면 광개토 대왕은 중국을 정벌한 것이 아니다. 광개토 대왕이 전쟁을 벌인 지역은 당시 중국 땅이 아니라, 몽골-만주 계통의 유목민들이 점령했던 만주 지역이었다. 또한 광개토 대왕이 다스린 고구려는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나라인데, 부여는 본래부터 만주에 있던 나라였다. 그리고 부여 이전의 나라인 고조선은 본래 요서 지역에 있었다. 따라서 광개토 대왕의 전쟁은 고토회복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쯤되면 무척 궁금해진다. 저자는 논리적인 글쓰기 공부를 전혀 안 했던 것일까? 그냥 생각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쓴 것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같은 사람이 쓴 글의 앞뒤에 어떻게 이런 모순이 발생할까? 일본을 쉴드치기 위해서 생각나는 대로 온갖 구실을 댔는데, 그것들을 모아놓고 나니 치명적인 모순이 생겼다는 사실은 염두에 두지도 않았던 걸까?
2. 그리고 저자는 일본이 결코 "호락호락하거나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라고 강변한다. 한국에 비하면 무사 정신이 사회 전반에 가득한, 신과 같이 철두철미한 나라라는 건데... 그렇다면 아래와 같은 사건들은 왜 발생했을까? 저자의 고견이 궁금하다.
http://jpnews.kr/sub_read.html?uid=1454§ion=sc1 현역 여성자위대원 '성매매 알바' 파문
밤의 교사에 얼룩복 차림으로 침입 자위 대원 체포(오이타현) 여성 육사장을 징계 면직 동료 지갑에서 현금 훔친 혐의
육상 자위대 2조를 체포 케이요 선차 안에서 여고생의 치마 속 몰래 용의 전차 내에서 여성의 엉덩이 만지는 1등 륙조을 불구속 입건 720만 횡령으로 정직 5만 5천엔 훔치면 징계 파면 부하에게 신용 카드를 만들게 하고 720만원을 횡령 1등 륙좌를 정직 처분 여자 화장실에서 1년 이상 도촬, 해상 자위대 직원을 징계 면직 무단 결근으로 남성 육사장을 정직 처분
음주 운전으로 자위대를 정직 50일의 징계 처분
해자대 직원이 제복 분실, 세탁소에 반년이 넘게 방치 현금 절도 혐의로 자위대 3명을 징계 처분 속옷 절도 혐의로 해상 자위관을 체포 중학생과 매춘한 혐의로 육상 자위대 3등 륙조(하사)를 체포 해사장(병장)을 정직 5일의 징계... 여성용 샤워실을 들여다봐 한밤중에 초등학교에 위장복 차림으로 침투한 자위대원 체포(오이타 현)
일본의 자위대는 죄다 정신이 이상한 환자들만 뽑는 것일까?
3. 저자는 야스쿠니 신사가 일본을 지킨 애국자들을 참배하는 곳이라고 소리높여 항변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2차 대전을 일으킨 전범들이 함께 합사되어 있어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사정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일본은 전범국이 아닌,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4. "선린은 없다. 힘의 위계가 있을 뿐이다. 약한 쪽은 밟힐 수밖에 없다. 그것이 국제 질서다." 저자는 이런 말을 하면서, 일본의 침략을 두둔한다. 그런데 우습게도 한국과 중국에 대해서는 정 반대의 잣대를 들이댄다.
"베트남에서 그곳 사람들에게 우리가 저지른 엄청난 죄악에 대한 반성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두 차례에 호란 시절을 제쳐 두고 본다 할지라도 중국의 사실상 속국이었던 세월은 일본의 가해 기간보다도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훨씬 길었다. 남북 분단은 중국의 참전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중국에 대해 적의나 원한을 느끼지 않고, 그들을 미워하는 목소리도 기껏 동북공정 때 뿐이다."
저자는 자신이 세운 논리를 스스로 배신하고 있다. "선린은 없다. 힘의 위계가 있을 뿐이다. 약한 쪽은 밟힐 수밖에 없다. 그것이 국제 질서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한국군이 베트남에 가서 "엄청난 죄악"을 저지른 것에 대해서 반성이 없다고 뭐라고 해서는 안 된다. 또, 중국이 한국에 대해 저지른 "두 차례에 걸친 호란"이나 한국을 속국으로 삼은 것에 대해, 중국을 비난하거나 한국인들이 중국을 비난하지 않는다고 문제를 삼아서도 안 된다. 다 "약한 쪽이 밟힐 수밖에 없었던 국제 질서"의 연장선에서 벌어진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이 베트남보다 강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 것이고, 중국이 한국보다 강했기 때문에 두 차례에 걸친 호란이나 속국을 삼은 일이 있었지 않나?
이 자리를 빌어 저자에게 충고한다. 만약 "선린은 없다. 힘의 위계가 있을 뿐이다. 약한 쪽은 밟힐 수밖에 없다. 그것이 국제 질서다."란 논지를 책에서 계속 싣고 가러면 한국군이 베트남가서 죄악을 저질렀다는 대목이나, 중국의 병자호란 및 한국 속국 관련 문장은 지우라. 반대로 베트남 운운이나 중국 속국 관련 논지를 계속 유지하려면 힘의 위계 운운하는 내용 대신, "보편적 인권과 도덕은 시대를 초월해 있기 마련이다."라고 수정하라. 그래야 책의 내용이 일관성 있게 흘러가지 않겠나?
5. 저자는 황우석과 후지무라 신이치를 비교하면서, 후지무라 신이치는 학계에서 철저히 매장되었지만, 황우석은 그렇지 않다면서 일본을 칭찬하며 한국을 폄하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것이, 범죄는 처벌보다 예방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만약 A라는 사람이 강간죄를 저질러서 감옥에 갔는데, 그 후에도 B와 C와 D라는 사람들이 계속 강간죄를 저지른다면, 단순히 처벌을 했다고 자랑할 일일까? 애초에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후지무라 신이치가 철저하게 매장당했다고? 하지만 그로부터 세월이 지나자 또 비슷한 일이 터졌다.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newsview?newsid=20130726030911080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저자의 말대로라면 일본인들은 같은 실수를 결코 반복하지 않는다는데, 왜 이런 일이 터졌는지 궁금하다.
덧붙여 후지무라 신이치는 정식 학위를 가진 교수도 아니고, 본업은 전기 기사인데 취미삼아 고고학을 연구하던 자였다. 그런 자한테 휘둘리며 날조한 자료들을 그대로 믿었던 일본 학계야말로 진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6. 내가 이 책에 정말 넌더리가 나는 이유는 도무지 같은 사람이 쓴 책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책 내용의 곳곳이 모순 투성이이기 때문이다. 같은 사람이 썼다면, 적어도 책 내용의 일관성은 있어야 할 텐데, 도대체가 이 책은 그런 점이 전혀 없다.
18페이지에서 "선린은 없다. 힘의 위계가 있을 뿐, 약한 쪽은 밟힐 수밖에 없다. 그것이 국제 질서다."라고 해놓고선, 갑자기 298쪽과 347쪽에 가서는 일본과의 선린 우호를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게 뭥미? 왜 한 사람의 입에서 서로 정반대되는 목소리가 나올까?
그리고 296~297쪽에서는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에 가서 무릎을 꿇고 나치가 저지른 전쟁 범죄에 대한 용서를 구한 일을 두고 칭송하더니, 336쪽에서는 일본인들을 향해 당신들에게 과거를 사과하라 그런 소리도 하지 않겠다, 이제 와서 그 사과가 무슨 소용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라면서 정 반대의 잣대를 들이댄다. 이쯤되면 이거 오락가락에 횡설수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독일이 지난 잘못에 대해 사과를 하는 것은 좋은데, 일본은 할 필요가 없다?
337쪽에서는 정말 사과받고 싶으면 힘을 키워라 그러면 사과하라 하지 않아도 사과한다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라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고, 나는 그따위 소리하는 자들을 경멸한다, 라고 한다. 그런데 빌리 브란트가 서독 총리로 있던 무렵에 폴란드가 서독보다 더 강한 나라였나? 서독보다 더 못살고 약한 나라였는데? 헌데 왜 빌리 브란트는 폴란드인들에게 사과를 했을까?
또, 앞부분에 가서는 한국인은 세계에서 욕이 제일 많고(이거 무슨 근거로 하는 소리인가? 그냥 개인적인 느낌 뿐인데...), 예의범절도 없고 악다구니만 쓰는 저질 족속이라는 뉘앙스로 마구 꾸짖더니, 뜬금없이 316쪽에 가서는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다, 선천적으로 어진 백성 운운하며 자기가 앞에서 했던 얘기를 몽땅 뒤엎는다. 도대체 이 책은 한 사람이 쓴 건가, 두 사람이 쓴 건가?
7. 밑도 끝도 없는 저자의 무지.
45쪽에서 저자는 한국이 세계에서 욕이 제일 많은 나라라고, 반대로 일본은 욕이 별로 없으니, 한국인들은 부끄러워 해야 한다는 뜻을 담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과연 얼마나 근거가 있는 얘기일까?
https://mirror.enha.kr/wiki/%EC%9A%95%EC%84%A4
한국내에서는 욕에 관해서 한국을 따라올 나라가 없다 는 통념이 있다. 한국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아랍어나 히브리어, 힌디어 등의 언어를 살펴봐도 한국에서 고강도 욕에 속하는 부모 욕과 성적 욕설이 섞인 고강도 욕설이 일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잘만 쓰인다. 물론 한국의 욕은 된소리 때문에 억양이 좀 더 강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그건 해외도 어느정도 마찬가지다. 사실 욕이란건 단어보단 억양이 더 강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외국어를 몰라서 욕을 하는 건지 그냥 말을 하는 건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예시로 중동사람이 우리나라 사람한테 욕을 한다고 해도 알아듣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고 반대의 경우도 거의 그럴것이다. 그리고 욕설은 그 자체의 뜻보다는 그 단어가 품고 있는 부정적 뉘앙스가 상대에게 미치는 정신적 피해를 크게 좌우하기 때문에 단순히 욕설 수가 많다고 욕 강국(?)이라 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한국에서 제일 많이 쓰이는 욕은 '씨팔!' 이지만 제일 상처를 많이 주는 욕은 '네 부모님 좀 만나고 싶다', '가정 교육을 어떻게 받았냐'...
일본어 욕설도 알고 보면 만만치 않다.
욕설 문제는 저기 링크 건 위키에 들어가 보면 될 것이고, 다음 문제로 넘어가자. 저자는 220쪽에서 일본이나 일본인을 아예 구경도 해 보지 못한 요즘 젊은이들이 맹목적 반일 풍조에 사로잡혀 있다고 운운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이 일본과 국교를 단절해서 서로 오고갈 수 없는 사이도 아닌데, 일본이나 일본인을 젊은이들이 아예 구경도 못 해봤다고 단정짓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해외 여행을 가는 나라가 일본이고, 한국 젊은이들이 제일 많이 해외 취업을 하러 가는 나라가 일본이다. 또, 일본과 무비자 협정이 체결되어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나라가 일본인데, 한국 젊은이들이 일본이나 일본인을 아예 구경도 못 해봤다? 도대체 저자는 신문이나 TV를 안 보고 사는 것일까?
208~209쪽에서 저자는 빨갱이로 몰려도 살 수 있지만, 친일파로 몰리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썼다. 하지만 이 역시 틀린 말이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 하에서 권력을 잡았던 주요 인사들은 대부분 친일파였다. 그러나 그들이 친일파였다고 누군가에게 과거를 공격당해서 부와 권력과 생명을 잃은 경우는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반면 한국에서 빨갱이로 몰리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었다. 진보당 당수인 조봉암이나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수지김은 졸지에 빨갱이 누명을 써서 억울하게 죽었다. 저자에게 묻고 싶다. 이 나라 대한민국이 건국한 이래로, 빨갱이로 몰려서 재산과 권력과 생명을 잃고 억울하게 죽은 경우가 많았던가, 아니면 친일파로 몰려서 그랬던 경우가 많았던가? 당연히 전자가 후자보다 훨씬, 그리고 거의 유일하게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 무슨 친일파 딱지가 빨갱이보다 더 위험하고 잔인하다 운운 하는가?
일본 자위대 창설 행사에 갔다고 해서 친일파 소리를 들은 나경원 씨도 이번 선거에서 당당하게 당선되었다. 저자의 말로는 한국에서 친일파 소리를 들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데,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해명을 부탁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
8. 저자의 맹목적인 반중 감정 조장
저자는 책에서 자기 입으로 일본과 일본인을 모든 외국과 외국인들 중에서 제일 사랑한다고 했다. (솔직해서 좋다) 반면, 중국에 대해서는 완전히 맹목적인 증오와 혐오감을 드러낸다. 343~346쪽에서는 중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육 만두를 먹을 정도로 저질적이고 야만적인 족속이며, 그런 중국이 돈을 벌어 힘을 키우고 있으니, 한국과 일본이 똘똘 뭉쳐 중국에 맞서 싸우자고 말한다.
그러나 인육만두 운운은 다분히 괴담적 성격이 강한 유언비어에 가깝다. 그런 식의 괴담을 그대로 믿고서 중국을 폄하하는 것이야말로 무지와 어리석은 짓이 아닐까? 인육만두 운운한다면, 유학생인 사가와 잇세이가 1981년 6월 11일, 학급 동료였던 네덜란드 여성 유학생 르네 하르테벨트(Renée Hartevelt)를 집으로 불러 총으로 죽이고 그 시체를 먹었는데, 오히려 일본 본토에서는 각종 CF와 영화에 출연하고 자서전을 써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점을 가리켜서, 일본인은 저렇게 야만적이고 패륜적이며 잔인무도한 족속이라고 단언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아울러 한국과 일본의 문화 대부분은 어디에서 왔는가? 다 중국이다. 한자, 종이, 화약, 나침반, 불경, 불교, 유교... 전부 중국이 한국과 일본에 전해준 문화가 아닌가? 그런데 저자는 이런 문화의 근원지인 중국에 대해 야만 국가 운운하며 일본과 손을 잡고 중국에 맞서잔다. 이미 중국의 국력은 한국은 물론 일본을 추월했는데, 중국에 맞서자고? 그러다 중국에 한국이 짓밟히면 그땐 뭐라고 할텐가? 아, 18쪽에서 한 것처럼 국제 질서에 선린은 없고 힘의 위계만 있을 뿐이다, 운운 할텐가?
뭐, 일본을 좋아하든 한국과 중국을 혐오하든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정의 자유다. 단, 그런 개인적 감정의 잔재들을 가져다가 무슨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여야 하는 절대 진리나 되는 것처럼 "바락바락 악을 쓰면" 조금 곤란하지 말입니다.
9. 저자는 책 앞부분에서 일본이 한국을 조롱하고 모욕한다고 해서 화를 내거나 사과를 요구하면 안 되며, 묵묵히 힘을 길러 그들을 능가하는 '극일'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난 심각한 의문점을 느꼈다. 대체 저자가 주장하는 극일의 개념은 무엇일까? 한국 군대가 일본에 쳐들어가서 일본인들을 죽이고 일본을 파괴하는 일? 아니면 일본보다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앞서는 일? 한국인 스포츠 선수가 일본인 선수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눈 일? 아무리 생각해도 다 아닌 것 같다. 저자는 분명히 자기 입으로 모든 외국과 외국인들 중에서 "일본과 일본인을 가장 좋아한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한국인 스포츠 선수가 일본인 선수와 대결하는 시합을 요란하게 보도하는 것 자체가 촌스럽다며 싫어했으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싸워서 이긴다? 이거 도무지 말의 문맥이 안 맞는다, 대체 무슨 소리인지... 하고 나는 의문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나는 의문이 풀렸다. 저자가 생각하는 극일의 개념은 이거다. 한국인들이 일본인보다 더 깨끗하게, 예의바르게, 친절하게, 겸손하게,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민족이 되자는 것. (이 책을 다 읽다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 밖에 답이 안 나온다.)
근데, 내가 앞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이런 식의 주제를 담은 책들은 이미 20년 전에도 수두룩하게 나와 있었다. 시중에 가보면 거의 수백 권은 넘을 거다. 내가 그런 책들을 읽으며 중학교, 고교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헌데 20년이 넘은 지금에 와서도 또 똑같은 소리들을 계속 들어야 하나? 이거야말로 짜증나고 진부한 일이 아닌가?
그럴거면 차라리 일본을 더 이상 미워하지 말고, 그들의 좋은 점을 본받아서 훌륭한 선진국 국민이 되자! 라고 말하는 편이 더 솔직했을 텐데. 도대체 저자가 왜 이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비비 꼬아서 표현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 그냥 직역을 했다가는 관심에 파묻힐 까봐 그랬던가?
밥도 돈도 안 되는 일에 너무 시간과 정성을 쏟은 점이 후회된다. 이 책이 많이 팔리든 적게 팔리든 그건 내 알바 아니다. 잉여짓도 여기서 끝내야겠다. 나도 먹고 살 일이 바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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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또 하고 말았네.
이 책은 보면 볼수록 정말이지 짜증이 나오는데...
저자는 기본적인 자료 조사도 안 했거나, 아니면 그냥 자기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감정대로 마구 휘갈겨 쓴 것이 분명하다. 나는 그런 확신을 강하게 굳혔다.
뭐냐고?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있게 악플 자살자는 전 세계에서 한국에서만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내가 그 말을 반증할 증거를 금방, 아주 쉽게 찾았는데?
악플로 인한 자살자가 한국에서밖에 안 생긴다고?
http://news.donga.com/BestClick/3/all/20130806/56872106/1 “못생겼으니 자살 추천” 14세 女, 악플 못 견디고 자살
저 외국인들은 다 뭘까?
그리고 저자가 그토록 찬양해 마지 않던 일본인들은 과연 악플을 안 달까?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2/20/2014022002936.html
http://m.seoul.co.kr/news/newsView.php?id=20140221500006
http://star.mt.co.kr/stview.php?no=2008082315583748898&type=&SVEC
http://www.new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054
저자 양반, 이게 대체 어찌된거요...
그리고 뭐? 일본에서 사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차별을 안 받는다고?
과연 그럴까?
http://asahikorean.com/article/asia_now/views/AJ201406300084 |社說|외국인 노동자, 짜깁기식 정책은 한계다 지나치게 즉흥적인 짜깁기 대응에 질리기만 할 뿐이다. 기능실습제도는 저임금과 잔업수당의 미지급, 불법 노동, 폭행 등 문제가 산더미다. 미 국무부 보고서에서도 “강제노동 사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정부는 감시를 강화하고 우수한 업체에 한해서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문제 해결이 먼저다. 그런 한편으로 아베 정권은 “이민은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반복하고 있다.
저자 양반, 다음부터 책을 쓸 때는 인터넷 자료 검색이라도 제대로 해주기 바랍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 책의 틀린 점을 인터넷 검색 몇 분만으로 찾아낸단 말입니까? 이렇게 허술한 책을 내면서 부끄럽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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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저자. 문인으로 등단을 하여 많은 문학작품들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기업에서 일하면서 일본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곳에서의 생활을 경험한 노련한 사람이다. 오랜 세월동안 넓은 세상을 바라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문인의 예리한 시선으로 그런 것들을 포착하고, 곱씹고, 저장하고 있다가, 이제 우리들 앞에 이 책 당신들의 일본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책의 서두에서부터 저자의 말에 깊은 공감을 한다. 우리들에게 일본은 애증의 대상이었다. 우리들 속에는 일본문화에 대한 선망이 분명히 존재한다. 캐논과 니콘 카메라를 한국사람들만큼 많이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세계에서도 드물다고 한다. 일본의 화장품, 일본의 전기밥솥, 일본의 전자제품... 지난 세월 우리나라를 가득채우고 있던 '쪽발이'나라 일본의 제품들이다.
사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위에서 예로 든 것은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선진국 일본의 제품들이었다. 그러나 그토록 원수처럼 생각하는 일본의 상품들이 우리나라에서 나른 나라에 못지 않게, 아니 다른 나라보다 더 많이 팔리고 애호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우연한 일일까. 단순한 지리적 근접성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혐한시위가 극도로 악화되고 있는 요즘 한국에서 우후죽순으로 퍼져가는 일본식 식당, 주점과 사꼐의 열풍은 어떻게 어우러지는 것일까.
일본의 식민지 시절과 6.25를 겪은 세대들이 이제 은퇴하고 사회에서의 목소리가 줄어가는 요즈음. 일본을 잘 아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이 문제이다. 우리의 윗세대들은 일본 강점기들 살아가면서 하는수 없이 일본말을 배웠었고 바라지 않았지만 일본인들을 접하면서 살아야 했다. 일본인의 삶과 그들의 생태와 습속에 관해서 젊은 우리들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안다.
물론 우리의 젊은 세대도 일본을 접하는 창구가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일본 드라마, 서점의 소설부분을 장악한 일본문학작품, 우리들 젊은 세대에게 일본은 낮설지 않다. 비행기를 타면 한시간이면 도착하는 일본에 금요일 밤에 출발하여 일요일에 돌아오는 여행은 큰 비용도 큰 용기도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들은 일본을 잘 안나고 생각한다.
과연 우리는 일본을 잘 아는 것일까. 일본을 극복하고 청산하려면, 일본과 화해하거나, 일본을 비난하려면, 일본의 진정한 모습. 일본인이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 일본인이 역사와 세계와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시선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일본을 이길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고, 일본과의 공존의 조건을 찾아낼 수가 있다. 점점 일본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사라져가고, 서점에서 겉으로 보이는 일본의 겉모습이 아니라 진정한 일본의 모습을 담은 책을 찾기 어려운 요즘 만나게 된 반가운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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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몽상가의 체험적 한,일간의 비교 문화론이라는 다소 거창한 느낌을 준다고 할 수 있는 표제어에 '당신들의 일본'이란 어감의 떨떠름함은 뭔가 마음에 닿지 않는 현상을 보고 비웃듯이 조소하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고 하겠다. 문화의 비교 우위론을 제시한다기 보다는 현실의 상황을 분석하고 판별하는 과정으로 저자는 일본의 상대적인 대상으로서의 우리가 가진 문제점들을 더욱 설득력있게 제시하고자 이런 비교를 했을 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말하는 단견 투성이고 오류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함에 괘념치 않는다고 한다. 자신의 집필 목적이 정답 제시에 있는것이 아니라 문제 제기에 그 목적이 있음을 밝히고 있으며 그의 문제제기,단견, 그의 오류가 우리와의 대화를 위한 여백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담고 있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 우리에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나라이자 잊어서도 안되는 나라 임을 우리 국민들은 사무치도록 깨우치고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 백승이라는 문장처럼 일본에 대해, 일본인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들을 아는것 보다 그들이 우리를 아는것이 더 많고 다양하며 자세하다는 사실이 아연실색 할 일이지만 차분히 정신을 가다듬고 그들에 대해 전체적으로 알아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일본이란, 일본인이란 단어, 말,사람들만 듣고 보아도 온몸의 피가 역류하듯 부르르하는 과민 반응을 보이곤 하는데 이젠 정말 달라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자성론에 가까운 것이지만 다혈질적인 것이 우리를 대표하는 성향으로 기록된다는 것은 커다란 문제를 껴 안고 사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세계의 여러 나라 사람들이 우리를 그렇게 알고 폄하하는 상황이 된다면 우리는 우리의 본 모습을 보여 주지도 못한채 가면을 쓴 우리를 보게 될것이다. 한국 음식과 일본 음식을 통한 비교를 통해 저자가 말하는 것의 비교가 우리의 단점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의식을 바꿔 장점으로 인식 할 수 있는 사고를 갖어 보는것은 어떨지 개인적인 사견을 제시도 해본다. 선비정신과 사무라이 정신의 비교를 통해서 충과 효의 시각적 차이를 느껴보며 존숭되어야 할 인간의 가치를 어느곳에 두어야 할지를 스스로 질문하고 그 답을 얻어보는 귀한 시간이 되기도 했다. 몽상가라고 했지만 사실 그는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한국인이다. 그런 연고로 과거와 현재의 일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그의 단견이 모두 옳다고 할 수는 없다. 비록 그가 비교를 통해 일본문화의 우월성을 드러 내놓고 말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 뉘앙스는 풍겨 나고 있기에 더더욱 조심스럽게 그의 말을 되새겨 봄직 하다고 하겠다. 일본의 잔수, 잔머리에 부회뇌동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고 언젠가 한칼에 보내 버릴 칼을 갈아야한다는 그의 마지막 말에 힘을 실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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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관심 때문에 한/일 문화비교에 대해서 국내에 출판된 책은 거의 다 읽어봤다고 생각했다. 기본 중의 기본인 '국화의 칼' 같은 학술서부터 대표적인 극우 한국인 교수/작가로 악명높은 오선화 씨의 '스카트의 바람'같은 책도 (아마 오선화 씨 욕하는 사람들 중 97%는 그녀의 책 한번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욕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하지만. 절대 그녀의 책 내용에 동의한다는 건 아니고 대체 무슨 내용을 썼는지 궁금해서 읽었다) 봤고, 여튼 한국/일본 비교기에 해당하는 책은 거의 다 찾아서 본 것 같다. 90년대 후반에 출판된 책들 ㅡ에즈라 보겔의 Japan As No.1을 필두로 ㅡ 이 일본의 경제성장 흥망성쇠를 주로 다루고 있다면, 2000년대 이후에는 일본문화가 개방되고 어느 정도 일본에 자유여행 혹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건너가본 사람들이 늘어서인지, 재일교포와는 또다른 시각에서 일본문화를 한국과 비교하는 책들이 쏟아져나왔던 듯 하다. 그 중 상당수는 사실 전여옥 씨의 책처럼 '일본은 없다'며 한국인 부심을 내세우기만 한 책도 있고, 조영남의 친일선언처럼 일본국제교류기금의 후원을 받고 다소 자극적인 제목을 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뭇매를 맞은 책도 있기도 했다. 혹은 일부 학자들의 체험담 비슷한 책도 있었고, 일본 특파원을 지낸 기자들의 시사 이슈를 둘러싼 비교기도 있었고.
각자 목적과 성향은 달랐지만 대부분 국내에 출판된 한일문화 비교기는 비슷한 맥락을 띤다. 이런이런 사건이 있고 이런이런 것이 있는데 한국이라면 이렇겠지만 일본에서는 이렇더라. 한국 사람 입장에서는 이해가 잘 안되겠지만 일본인 사고방식은 이렇다. 신기하지? 근데 한국이 더 좋은 것도 많아. 일본이 선진국이긴 한데 결국 한국이 짱짱. 일본에게서 배울 건 배워보자. 이런 것들.
그 진부한 레퍼토리가 지겨워지기도 하고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 하면 후쿠시마 원전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일본 문화론이 고개를 들지 못하던 작년 8월, 소리없이 등장한 이 책은 꽤나 신선했다. 왜냐면, 일본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읽는다면 '이건 무슨 대놓고 찬양하는 일빠 책이야'하고 집어 던질만한 내용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따로 일본문화를 학술적으로 공부한 사람은 아니고, 40년대에 교토에서 출생해서 일본어를 배웠고 그 후 무역회사 등에서 일본 회사들과 일하며 간접적으로 일본 문화에 대해 체험을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전업 작가로 글을 쓰고 있는데 (딱히 성공한 건 없어보인다) 이 책을 쓴 이유는 한국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일본에 대해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 라는 목적이었다고 한다.
정치/경제/사회 등 전방위로 자신이 경험한 것에 의거해서 일본 문화의 특성을 쓰고 있는데, 상당히 내용이 구체적이고 공감가는 내용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부정하고 싶어하지만 일본인들은 한국에 대해 별 관심이 없이 그들만의 사회를 잘 구축해서 제대로 굴려가고 있고, 다소 답답하고 느리고 융통성이 없는 부분도 존재하지만 철저하고 그만큼 기록을 중시하며 업무적인 측면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많다. 변화를 쫓는다면 느려 터진 사회 변화에 적응하기 힘들 곳이지만, 한 개인으로서 돈을 지불한 만큼의 대접을 받고 그만한 물건을 살 수 있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조리한 일이 적은 사회, 그런 사회를 만들어나가고자 구성원들이 대부분 열심히 노력하는 희한한 사회.
이 책의 구구절절한 내용의 결론으로는 '일본은 우리 나라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그런 이상한 사회가 아니라, 오히려 배울 점이 훨씬 많은 선진국인 점은 인정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내셔날리즘 때문에 눈을 가리고 일본에 대해 무조건 배척하는 분위기가 있다. 이런 점은 반성해야 한다' 정도가 되겠다.
물론 특정 민족이나 사회에 대해 뭉뚱그려 모두가 그렇다, 라고 얘기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또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인만 해도 세대별로 그 특징이 너무나 다르고, 같은 세대라 해도 자라온 환경이나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더욱 한국보다 더욱 개성이 다양하고 지역별 차이도 크며 인구만 해도 2배가 넘는 일본에 대해 포괄적으로 얘기하는 건, 제대로 일본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잘못된 선입관을 심어줄 수 있는 (그것이 좋은 내용이든 나쁜 내용이든) 여지가 커서 위험천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는 위험한 줄타기가 가득한 책이긴 하지만, 오랫동안 일본을 경험한 사람일수록 싫지만 공감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 가득하다는 점에서는 나름 예리한 분석들이 가득 있는 책이기도 하다.
다소 문체가 과격하긴 하고 주장이 확실해서 호불호가 갈릴 내용들이 많지만, 격한 공감을 이끌어낼 만한 내용이 많다는 점을 우선삼아 이해하면 좋을 듯 하다. 그리고 '일본인론'과 같은 포괄적인 내용보다는 '작가가 경험한 일본'은 이렇다는 식으로 순화해서 이해하는 것이 맞을 듯 하고.
한국에서 일본 이야기를 하는 것 만큼 민감하면서도 조심스러운 부분도 또 없을 듯 한데, 아무쪼록 좀더 많은 사람들이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그리고 역사관과 정치인식, 문화 모든 부분에 있어서 내셔날리즘 대신 '세계 중 한 나라'라는 객관적 인식 앞에 서로를 대했으면 좋겠다. 일본인도 한국에 대해 한류 연예인과 김치 이상의, 국가 차원에 대한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고, 한국인들도 일본에 대해 무분별한 감정 이전에 객관적으로 그들을 볼 수 있는 시선이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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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기를 연상하게 하는 책의 표지처럼 이 책은 다분히 친일적이다. 한국의 것 하나와 그와 상응하는 일본의 것 하나씩을 짝을 지어 제목을 달고 둘을 서로 비교하는데, 저자의 입장이 문화적 상대주의라기 보다 일본에 대한 '문화 사대주의적'이다. '한 몽상가의 체험적 한일 비교문화론'이라는 책의 부제가 의미하듯 개인의 경험에 의거한 것이라 씌여진 내용을 완전히 일반화하기는 어렵겠다.
책의 구성은 세 가름으로 나누어있다. 무궁화와 사쿠라, 태극기와 히노마루, 가야금과 사미센이다. 가름의 기준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다. 내용은 양국의 의식주를 비롯한 문화의 비교이다. 이를테면, 한국음식과 일본음식, 아줌마와 오바상, 선비와 사무라이, 조영남과 이케하라 마모루이다.
여행지에서 한국의 아줌마는 멀리서 봐도 빨간 입술에 치장이 요란하고 시끌벅적하고 무질서한데, 일본의 오바상은 조용조용하며, 차분하고 비교적 질서정연하다. 한국의 선비는 일제 강점기 의병 이인영을 예로 들어 효를 앞세우다 충을 놓쳤기에 일본군에 패배하였고, 조선의 선비들은 자기 배만 부르는 탐관오리의 불필요한 악적 존재이다. 반면, 일본의 사무라이는 충이 효에 앞서기 때문에 천하제일의 정신으로 지금의 앞선 일본을 만들었고, 일본의 무사단은 필요악이다.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1999)>이라는 책을 쓴 이케하라 마모루는 멀쩡한데, 왜 조영남은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친일 선언(2005)>으로 활동정지를 당한 것인지, 왜 일본인이 비판하고 지적한 점을 우리는 개선하지 않고 되풀이하고 심화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한다.
이 책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아하, 그렇구나'가 아니라 '왜 우리 것은 전부 문제가 있는 것이지?'라는 의문이 들며 저자의 이야기가 설득을 잃는다. 왜 그럴까? 내 아이를 혼내고자 할 때 아이의 행동에 대하여 옳고 그름의 기준을 가지고 꾸짖어야하는데, 옆집의 누구는 이렇다고 하더라 식의 비교는 상처만 남기는 것과 같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이 책의 한계는 잘못된 '비교'에 있는 것이다. 두 나라의 문화는 서로 존중되어야지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우수하거나 열등하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관점으로 씌여진 책이라 읽으며 몰입되기 보다 저자의 의도에 자꾸 의아해진다.
재미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저자의 관점에 의해 퇴색되어진 많이 아쉬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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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퍼져 있는 이런저런 주장들, 의견 표명들을 보면 우려스러운 게 많죠. 예전에 어느 중국인은 한국의 특정 사이트에 올려져 있는 아주 극단적인 주장 몇을 미국 사이트에 퍼 가서는, 한국인 전체를 매도하곤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일부 혐한들이 즐겨 쓰는 모략 역시 아주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일부의 모습을 두고 과도한 일반화로 치닫는 건, 그 방법상의 오류만 노출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오류를 범하는 사람의 인식 능력, 지각 과정 자체가, 일부를 전체로 쉽사리 단정하는 미숙함을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자체 폭로이기도 합니다.
타인이 나를 두고 "쉽사리 단정"하는 행태에만 억울해하고 분개할 일은 아닙니다. 나 역시, 타인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 습관이 몸에 밴 사람이라야, 그런 호소를 할 최소한의 자격이 있습니다. 인터넷에 퍼져 있는 일부 극단적인 주장이나 행태를 두고, 우리 민족 일반의 행태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자기 변호의 편한 태도가 아니라, 실제로 일상에서 많은 사람들을 대해 보면, 무작정 반일 스탠스로 치닫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회사에서 주된 거래선을 일본 쪽에 대고 있는 사람들도 많고, 유학이나 개인적 교분 따위의 경험으로 인해 일본을 적대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이들도 많습니다. 아니, 일본이나 일본 사람들과 업무상으로건 개인사로건 전혀 접촉할 일이 없는 사람이라 해도, 눈 감고 반일 같은 막무가내식 태도를 보이는 사람은 좀처럼 만나기 힘듭니다.
저자는 원로 소설가입니다. 한국 문학에 겨우 어제오늘 취미를 붙인 독자가 아니라면, 구체적인 작품 명까지는 기억을 못 해도, 이분의 함자 정도는 귀에 낯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전 지식의 도움이 아니라도, 이 책의 문장은 물 흐르듯 유려합니다. 주장 자체의 찬반과 무관하게, 문장의 아름다운 매력 만으로도 결론에 휩쓸릴 만큼 매력적입니다.
한국인은 과연 자기 정체성을 "반일" 하나에만 목을 매고 유지하는 미개한 민족인가?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이 책에 나오는 한 가지 예(일본인 저자의 책으로부터 저자가 재인용한 대목입니다)만 들어도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면 일본 아가씨들처럼 우리 점원들도 친절이 몸에 배게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을 일본인에게 던진 한국인이 있다는 자체가, 저는 "배울 게 있으면 그 누구로부터도 배워야 한다"는 열린 생각을 가진 태도의 한 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질문에 대해 "그건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안 됩니다."라고 대답하는 모습이야말로, 개별 사안을 민족성과 불필요하게 일일이 결부시켜 생각하는 병적인 우월감에 사로잡힌 저열한 인간성의 자기 고백이라고 오히려 봐 줄 만합니다. 이런 예는 우리 민족의 열등성을 드러내는 증거가 아니라, 차라리 반대쪽 주장에 대한 논거로 쓰일 만한 성질입니다.
저자는 노무현 대통령을 책 곳곳에서 예로 거론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 책의 취지와 노 대통령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저자분이 다나카 가쿠에이와 노 전 대통령을 연관시킨 것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마 정치인의 중요한 배경이 되는 요소인 "학력"의 팩터에서, 두 사람 다 소속 집단의 평균에 미달하였다는 사실, 여기서 굳이 공통점을 찾으신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노 대통령의 경우는 사법시험(요즘하고는 다르죠. 100명도 채 안 뽑던 시절이고,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판사 임용까지 되었으니) 페스라는 사항이 있기 때문에, 말 그대로 국졸이었던 다나카와 비교할 건 아닙니다. 노 대통령에 대한 반대자들이 그를 비난하고 조롱했던 건. 학력의 부족에 주된 초점이 맞추어졌던 건 아닙니다(그런 사람들도 분명 있었지만. 자기 진영에서조차 다수는 아니었죠). 다나카는 일본 주류층, 기득권층의 평균을 훨씬 넘을 정도로 체제 옹호적인 사상("사상"이라는 게 있었다면)을 가진 인물이었고, 야당이 아니라 집권 여당에서 최대 계파의 보스로 내내 군림한 사람이었습니다. 공통점이 있는 게 아니라, 극과 극의 인생을 살아 왔다고 봐도 되겟습니다.
학력이라는 배경이 없음에도 그런 높은 자리에까지 출세할 수 있었던 게, 다나카가 과연 노 대통령처럼 좌파 스탠스였으면 그 폐쇄적인 일본 사회에서 가능한 일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일본은 더군다나 수상을 의회가 뽑는 내각첵임제입니다. 우리처럼 국민이 최고 지도자를 직접 뽑는 시스템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직접 국민의 손으로, 고졸 대통령을 만들어 낸 사례가, 열린 국민성의 더 전형적 증거로 원용되기 적합하지, 그 반대의 경우가 더 설득력이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다나카는, 권력형 비리 때문에 자민당 소수파와 야당으로부터 탄핵되어 물러난 자 아닙니까? 저자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이 둘은 나란히 놓고 비교 선상에 오를 일이 애초에 아닙니다.
황우석 등의 인사가, 연구에 허위를 개입시키고도 버젓이 화제에 오르고 미디어를 타는 모습을 두고, 죄인이 깨끗이 물러나지 않고 대중의 주목을 받는 한국 사회의 미숙하고 병든 모습이라며 저자는 질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황의 드러난 비리 이전에, 그가 부분적이나마 동물 복제 분야에서 이룬 업적을 대중이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공정한 모습을 유지하는 한국인들의 태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나마 황이 공직이나 기타 어떠한 포스트에 복귀한다고 하면, 비난의 여론이 봇물을 이룰 것임은 우리 뿐 아니라 황 자신도 알고 있기에, 당사자 역시 저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죄인이 완전한 단죄를 받지 않고 계속 제 자리를 지키는 예로, 이 황씨의 경우를 드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후지무라 신이치는 변변한 학자도 아닌 아마츄어였다는 점에서 이 건과 비교될 게 아닙니다.
오히려, 저자분이 그토록 모범적인 예로 보시는 다나카 가쿠에이야말로 록히드 사건 유죄가 확정되고 나서도 계속 정계에 일정 영향력을 유지했다가, 다케시다 노보루의 배신 행위, 하극상이 있은 후에야 최종적으로 정계 퇴출이 가능했지 않습니까? 다케시다는 그 대가로 다나카로부터 정치 보복까지 철저히 당하기까지 했고 말입니다. 이런 점은 일본이 우리보고 뭐라 할 자격이 있는 게 결코 아닙니다. 한국에서 대통령의 아들 신분으로 온갖 비리에 개입했다가, 현재까지도 여당은커녕 야당의 공천도 못 얻어서 야인으로 남아 있는 어떤 사람을 보십시오. 우리가 차라리 그들보다 나은 모습이네요.
일본인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에게 가업을 물려 주곤 하는 모습을 보고, 혈연에 무관하게 사람의 능력을 보고 대사를 결정하는 태도를 칭송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당장 현대 그룹 창업자 정주영의 청년 시절 그 됨됨이 하나만 보고 총애했던 그 고용주의 일화에서도 확인이 가능하죠. 감동적인 일화 하나만으로 민족성 전체를 재단하는 건, 저 위에 제가 적은 대로 인터넷 일각에서의 극악스런 덧글 몇으로 민족성을 평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위험합니다. 과연 돈 한 푼 없는 자가 제 힘으로 일어서기에, 한국과 일본 중 어느 나라가 더 열린 구조를 가진 사회겟습니까? 한국은 계층 이동이 이제는 대단히 힘듭니다. 그러나 일본은, 이미 신분제가 고착된 사회입니다. 한국도 요즘은 지역구 세습이 어느 정도 고정화된 모습을 보이는 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오기傲氣와 参(まい)った의 구별 역시 마찬가지. 저자의 논리를 조금만 연장하면, 승자에 깨끗이 승복하고 현실을 인정하는 자세로, 1910년에 일체의 항일을 중단하고 그저 내선일체를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결론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도 않아 보입니다. 일본은 원폭 투하 직후에 미국에게 당장은 철저한 굴복을 했지만, 살만해진 지금은 오히려 평화 헌법을 훼손하려 들지 않습니까? 이게 더 더러운 뒤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시는지요? 이런 논리대로라면 일본과 굴욕의 외교 협상을 하려 들었던 박정희는 대단한 세계시민으로서 저자분께 칭송을 들어 마땅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저자분이 책에서 칭송하는 분은, 웬걸 <친일 인명 사전>을 국책으로 추진했던 노 대통령이니, 독자는 이 혼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무작정 반일"은 무지하고 혐오스러운 태도고, 그런 일차원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은 현대 한국처럼 복잡다단하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초보적 적응조차 쉽지 않습니다.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인은, 그런 원시적인 태도를 갖고 싶어도 자신이 처한 현실이 이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저자께서 지목하는 그런 무지몽매한 "그들"의 정체가 궁금합니다. 만약 이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전체를 지칭한다면, 이런 주장을 하시는 1인칭 화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오히려 궁금해집니다. 이런 제목과 내용은, 구로다 가쓰히로 같은 일본인의 입장에서 쓰여졌으면 딱 어울릴 것입니다. 그런 분이 만약 이런 주장을 한다면, 그 외국인의 입장에서야 당연한 발상이겠으므로, 겸허하게 귀 기울이고 배울 건 배운다는 자세로 읽어 나가겠습니다. 저자는 "주장"이 아닌 "진술"을 하고 있다고까지 서두에서 말씀하십니다만, 저는 이런 "진술"부터가 실망스러웠습니다. 초인, 도인이 아니고서야 "진술"과 "주장"의 준별이. 기술서적도 아닌 이런 긴 수상록에서 과연 가능하다고 생각하셨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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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호불호가 갈릴만한 책이다. 저자는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재일교포로 이제 원로작가로 한국과 일본이 가진 문화적 차이를 30가지 주제로 비교하였다. 결론적으로는 비교라는 잣대에 과연 공정함과 치밀한 분석이 포함되었는지의 여부다. 그 비교라는 잣대로 읽다보면 한국이 가진 문화는 소모적이고 무계획적이고 낭비적이라는 느낌이 들고 일본은 체계적이고 합리적이며 깔끔하다는 느낌이 받았다는 뉘앙스가 전체에 깔려있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특성을 제대로 알아보자하는 마음으로 읽었지만 줄기차게 궐기대회를 하는 이유가 무엇때문인지 저자는 모르는걸까? 현재 일본은 아베노믹스로 불리며 극단적인 극우적인 성향이 정치권을 휘어잡는 것도 모잘라 사회 전체에 퍼져나가는 중이다. 그렇게 사리분별을 잘하고 합리적인 일본인인데 독일이나 다른 지배국가들처럼 과거를 반성할 줄 모르고 오히려 그런 일이 없다며 부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엄연한 역사적인 사실이 남아있는데도 여전히 독도 영유권의 분쟁을 조장하고 일본백서나 교과서에 독도를 다케시마라 하여 자기네 영토에 포함시키며 역사까지 조작하는 뻔뻔함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두 나라의 역사적인 줄기와 과정이 매우 다르다. 즉, 문화를 비교함에 있어서 장단점이 존재하며, 한쪽이 꼭 우위를 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저자의 통찰과 깊이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고,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인냥 일반화시킨 것도 거부감이 들게 한다. 일적입혼(술 한 방울에도 혼을 집어 넣는다)의 장인정신으로 사케를 제조한다는 일본의 술은 시장에서 매우 비싼 값으로 팔리고 우리나라의 전통주인 막걸리는 슈퍼 어디서나 값싸게 먹을 수 있다는데 이걸 일괄적으로 비교해서 누가 더 나은지를 판가름낼 수 있을까? 어느 나라의 문화라고 장점만 있고 단점이 없을 수 없다. 저자는 그 점을 간과한 듯 싶다. 제대로 비교할려고 했으면 너희는 일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투로 깍아내리지 말고 그 차이점에 대해서 오랫동안 연구한 뒤에 왜 그런지에 대해서 근원적인 질문으로부터 출발해서 썼어야 했다. 한국이 왜 일본이라는 나라에 반감을 갖고 있는지. 계속된 정치인과 극우청년단의 망언을 듣고 분개하는지에 대해서 소개했어야 한다. 차라리 일본의 그 문화가 정착하게 된 역사적인 줄기부터 내려왔다면 오히려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과정을 생략한 채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문제제기로 쓸데없는 논란에 부채질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소개한 일본의 모습이 전부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몰랐던 부분을 알게된 점도 있다. 굳이 일본을 비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일본과 일본인들의 장점을 우리가 배워나가야 하기 때문인가? 저자는 과연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으며, 한국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나서 이 책을 쓰기로 한 것인가? 본인이 직접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서술하고는 있지만 본인이 주장하고 싶은대로만 밀고나갈 뿐이다. 한국만이 가진 장점을 더욱 살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한국와 일본을 비교하면서 배우라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일본을 모르겠다. 당신들의 일본이라는 제목이 가져다주는 오만함은 혼란스러움만 가중시켜줄 뿐이다. 여전히 한국과 일본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정신대 위안부 할머니 문제나 독도 문제도 풀리지 않았다.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일본의 탐욕과 제국주의 정신이 내면 깊숙히 자리잡았기 때문이 아닌가?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건 과거에 대한 참회한 진정한 반성, 올바른 역사의식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굳이 일본의 잘난 부분을 위해 한국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을텐데 과연 무엇을 위한 비교 문화론인지 당최 분간이 가지 않았던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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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순 하 /문이당
책을 읽는중에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물이 2명 있었다. 가장 높은 위치에서 가장 낮은자들을 이해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이라는 신선한 울림이 있었고,, 김수창이란 이름도 올리기 싫은 철면피한 검사장이란 신분이 있었다. 저자는 황우석이란 인물의 현재를 살아가는 모습과 일본고고학자의 잘못을 뉘우치고 사라지는 모습을 대비하면서 앗싸리... 라는 단어의 뉴앙스를 소개한다. 우리에게 위정자들이란 무엇인가? 철면피한이고,, 반성을 모른다... 이시절 정치인들은 더욱 그렇다. 조선 후기 양반은 약 8%정도였다는데,, 그들은 주자학이란 미명아래서 체면의 문화만 키운 듯 하다. 효를 으뜸으로 알아서, 나라의 큰 위기에도 부모의 상이 있으면 몰라라.. 했던 양반층도 있다. 그에 비해서 일본의 주자학은 충을 전제로 한 사무라이 문화. 일반 서민의 생사여탈권까지도 쥐고 있어서,, 현장에서 바로 참수도 가능했단다. 그대신, 판단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 못하면 사무라이도 마찬가지로 참수형에 처해진다. 그러니 남에 대한 배려와 조심하는 문화가 이어져 온 듯 하다. 그에 반해서 선비의 입은 잘못 놀려도 반론하는 입씨름으로만 이어져 간다., 그런 상황속에 피어난 이기이원론, 이기일원론.. 하는 사상적 체계는 돋보이긴 한데,,, 실사구시의 정신은 부족함이 조선이란 나라의 국력이 약해진 원인이기도 했겠다..
현대사는 더욱 더 그렇다. 미국이란 절대 강자에 덤비면 바로 끝장이다. 과거 100년전에 우리에게 있어서 일본은 절대악이었지만,, 현대사로 보면 별 거 아니다.. 미국처럼 그냥 힘있는 놈이 약소국 하나 점령한 것이다. 마침 명량이란 영화가 대단한 몰이를 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이란 위대한 인물을 재조명함이니, 반가운 현상이지만,, 이런 통쾌한 역사때문에 우리가 일본에 대한 증오가 극명하게 남아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일제치하라는 근대사를 가졌기에 일본에 대해서 욕하고 폄하하고 싫어하는 감정을 무의식적이고 반사적으로 드러내곤 하는데,, 조신이 건국되어서 명나라가 인정하는 국쇄를 받아오는데 10년 세월..이런 한심한 역사가 있다. 중국으로 부터는 수나라 침입, 당나라 속박, 청나라 왜란 등등 수천년 괴롭힘을 당했지만,, 역사는 그것에 대한 증오나 반대의 교육은 없이, 오로지 일제의 침탈에 대한 증오만 강조해온 점이 있는 것 같다. 명량... 이라는 세계 대전사가 없었다면,, 우리는 힘이 없어서 일본에 굴복할 수 밖에 없다.. 하고 할 수 없이 그냥 넘어칠 역사가 명량해전처럼 힘이 없어도 이겨낸 정신이 있기에 우리가 일본을 얕보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일본은 임진왜란 전 1400년대까지는 우리가 문물을 전수해 주었던 열등 국가 이기에..
현장의 교육은 이렇게 과거에만 얽매이고, 일본이 1500년대 들어서 얼마나 발전했는가는 우리에게 교육시키지 않았다.. 열등한 왜놈에게 당한 분풀이 역사만을 강조하라는 위정자들의 지시 때문이기도 했으리라.. 그래서 열등의식 속에서 일본을 향한 저주, 비난, 조롱을 우리나라 국민만이 할 수 있는 것 같다. 일본의 우리 나라에 대한 침탈은 분명 약오르고 잊지 못한 한이다.. 그렇지만 거기에 얽매여서 아직까지 한탄만 하고 있을 순 없다... 자격지심만 가져서 마냥 일본에 대한 시각을 펼쳐서는 안된다. 그런 자세라면 현대의 미국의 다른 나라들에 대한 침탈에 대해서도 우리는 크게 문제 삼아야 한다.
힘이 없으면 당한다. 약육강식은 자연의 절대적 법칙이다. 일본이 악랄하다.. 했지만,, 분명 우리도 베트남전에서 악랄함을 보여 주었다.. 5000년 역사속에서 광개토대왕 시절 처럼 남을 억누르는 역사를 가졌으면 하는 생각이다. 어찌 위정자들이 이렇게 힘없는 나라로만 이끌었던가?.. 한심하기만 하다. 사실,, 어쩌면 일본에 대한 비아냥은 우리 양반층 사대부가 다 짊어져야 한다.
일본의 정치의식,, 그리고 자족을 아는 국민적 정서,,질서.. 남에 대한 배려.. 앗싸리한 풍토.. 10여년 전 일본 방문 길에 어느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데, 아이들이 찬 공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간다. 공이 스쳐 지나갔는데,, 공을 주우러 가는 아이는 나에게 깍듯이 절을 하면서 <스미마센> 한다.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금 이땅의 한명만 낳은 풍토 속의 아이들은 어떠한가? 예절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심지어 캥거루족으로 키워지고 있다.. 이땅의 여자들의 특별한(?) 교육 덕분인 것 같다... 남을 배려한다...는 예절 의식이 절대로 사라졌다..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남을 알고 나를 제대로 알면서,, 남에게 배울 것은 분명 배워야 한다. 그래야 그들을 이길 수 있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 한다.. 우리는 과거 중국의 침략, 일본의 침략 등에 절대로 무너지진 않았던 역사적 전통과 국민적 자질은 있기에,, 일본의 배울 점을 배운다면 다시 1400년대 이전의 일본에게 한수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시대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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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일본 - 한 몽상가의 체험적 한일비교문화론 유순하 / 문이당 / 347
일본. 정말 가깝고도 먼나라임에 틀림없다. 이책의 광고글에는 최초의 한일비교문화론이라는 수식이 달려있으나 본문에서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한일간 문화를 비교한 글은 제법 많고 개중 이어령, 김용운 등의 책은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런 책들은 다분히 학술적이거나 전문적인 글임에 반해 유순하의 이 책은 부제가 가리키듯 체험적 비교문화 라는 점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마치 우리 언론의 일본특파원들이 짧지않은 일본 생활을 마치면서 느낌을 펴낸 책들과 미슷하다. 다른 점이라면 좀더 솔직하고 좀더 과감하다. 저자는 1943년 생으로 일본에서 태어나고 직장생활동안 일본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이어온 사람이다. 여러편의 소설을 발표한 문학가이기도 하다.
책은 반 이상의 내용이 일본문화나 저력에 대한 긍정적 평가다. 나머지 반은 한국의 실상에 대한 통열한 비판이다. 언뜻 보기에 일본이 대단한 나라니 욕만 하지말고 좀 배우자는 글이다. 그런데 전체를 읽고나면 좀 배우자 정도가 아니고 우리가 거듭나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저자가 지일파를 넘어 친일파는 결코 아니다. 왜 이런 글을 썼는지에 대해 저자의 소회가 있다. 일본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고 실체도 모르면서 허구헌날 궐기대회만 하는 한심한 한국사람들 때문이다. 심정적 반일감정인데 실제로 반일행동은 못하면서 쪽발이 왜놈이라 욕만하고 혼자 흥분하는 한국사람들 내면에는 뿌리깊은 자격지심이 있다는 것이다.
독도문제나 위안부문제만 나오면 데모하고 일본을 욕하고, 한일간 경기라도 벌어지면 생사결이라도 난 듯 응원하고, 불매운동 벌이자 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아무것도 일본에 불이익을 끼치지 못하는 한국사람들 때문이다. 고대에 문화를 전해주었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을 천년넘게 간직하면서 일본의 실상이나 저력을 파악하는 일본연구에는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기현상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가장 싫어하는 나라에 항상 1위로 올라있지만 우리 한류가 일본에 미치는 영향보다 우리경제에 우리 젊은층에 미치는 일류(日流)나 일본문화, 경제영향이 훨씬 더 크다는게 저자의 지적이다. 다 맞는 소리다.
적지않은 기간동안의 일본경험이 밑바탕이 되었지만 이글을 쓰기위해 한일관계를 다룬 100여권의 저서를 읽어보았는데 정작 읽을만한 수준의 책은 11권 정도였고 그중 8권만 참고할정도의 수준이고 나머지는 읽지 말았어야할 저급한 수준의 책이었다고 한다. 그동안 일본에 대해 공부한다고 하면 친일파 등등의 시각으로 보아온 눈초리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일본문화에 대한 학계의 저서가 거의 없는 편이라고 한다. 반면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전문가는 한국사분야를 비롯해 수백명이 넘는 수준이니 우리는 일본을 잘 모르면서 감정적인 비난만 하고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무조건 일본을 배우자고 하지는 않는다. 지피지기 매전불태(每戰不殆)의 입장에서 일본을 알고 우리의 저력을 살려 강한 나라가 되자고 한다. 현재 한국의 처지는 뱃사공에게 목줄이 매달려 물고기를 잡는대로 사공에게 바치고 힘들게 일만하는 가마우지의 신세나 다를바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본제품 불매(不買)운동을 한다고 해서 될턱도 없지만 그게 아니라 오히려 일본이 우리에게 제품을 안파는 불매(不賣)운동을 걱정해야 할 상태라는 것이다. 우리가 제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극일의 길은 요원하다고 본다. 더 나아가 저자는 우리의 저력을 국민의 힘으로 본다. 의병이나 근래 IMF사태때 금모으기 운동등 우리가 제대로된 나라로 도약할 길은 분명히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최근 지방선거에서 깨끗한 선거로 당선된 박원순서울시장의 경우를 들어 변화의 큰 조짐이라 말한다. 사실 박원순은 호오가 갈리는 인물이니 한국정치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을 하기에는 아직은 아닌 듯 하고 그런 취지라면 박원순보다는 노무현이 먼저 등장해야겠지만 이 부분은 문화와 관계없는 정치적 입장이므로 사족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어쨌든 이 책을 위해 저자가 예로든 여러 상황은 절대 공감한다. 그동안 일본역사나 문화에 대해 여러권의 책을 읽었는데 우리나라 사람은 일본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 그저 무시하는게 다다. 저자의 입장에 확실하게 공감하는 것중 하나는 앞으로 우리의 경쟁상대 또는 적국이 될 가능성은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에 끼친 악영향 또한 일본과는 비교도 안되게 중국이 더 많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에 넘치도록 관대하고 일본에 지나치게 박하다. 그렇다고 일본을 알고 이용하는 수준도 아니고 경제적 문화적으로 의존하고 본받고 베끼면서도 심정적으로는 무시하고 욕한다. 독도망언했다고 궐기대회 백년 해보았자 일본에 아무런 자극도 못준다는 것이다. 일본은 무관심 그자체라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가 힘이 있으면 궐기대회같은 것 안해도 알아서 사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현대의 실학이고 현대의 허생이 되자는 논리다. 지금 현실에서 벌어지는 국가혁신이라는 것도 말뿐인데 가능할지...
책은 가름이라 부르는 세 개의 꼭지로 크게 나누어졌고 각 꼭지마다 10개의 에피소드로 한일의 문화현상을 비교하고 있다. 예를들어 일본은 욕이 별로 없는 독특한 문화권인데 한국은 세계적으로 풍부한 욕을 가진 나라라고 한다. 일반인들의 친절도를 비교하면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친절한 국민에 속한다고 한다. 일본의 오바상과 한국의 아줌마부대에 대해서는 익히 알려진 부분이다. 황우석이 국제적인 사기로 유명인사가 되고도 아직도 공개적으로 일을 하고 있는데 반해 일본에서 비슷하게 고고유적 발굴을 조작해서 사기를 쳤던 후지무라 신이치는 그후로 종적이 없다고 한다. 2006년 여기자를 성추행했던 한나라당 국회의원 최연희는 무죄판결을 받고 의원을 한번 더하고 현재 재벌기업 회장으로 영입되었다. 같은해 역시 일본 여기자를 성추행한 도쿄지바현 의원 오카다 게이스케는 결국 여론에 말려 의원직을 사퇴했다. 재벌과 정치인들이 대개 감옥에 한번이상 갔다오고도 멀쩡한 한국에 비해 일본에서는 거의 그런 일이 없다.
일본에는 ‘마잇다’라는 승복의 문화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결과에 지고도 마음으로 승복하지 못하거나 후에 정치보복하는 오기문화가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는 일본특유의 “습합”이라는 정서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본다. 메이지유신이후 존왕양이에서 갑자기 서양이적을 환영한다거나, 2차대전 패배후 귀축미영이라 부르며 증오하던 미군이 들어오자 고관들의 부인들이 미군 장교들의 섹스파트너로 몸과 마음을 다해 봉사했다는 이야기들은 일반적인 관념으론 이해하기 어렵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론이나 일본의 가업전통, 한 분야의 제일주의 등은 일본의 역사와 문화전통을 알지 못하면 이해할수 없다. 저자가 보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성리학이 아닌 양명학을 받아들인 때문이다. 곧 이념, 명분 보다는 실리를 택한 것이 일본의 정치경제사정과 결합하여 일본적 전통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선비정신이란게 있는데 저자는 이를 하등 쓸데없는 명분주의로 본다. 원래부터 성리학이란게 가진자 치자의 학문이니 명분이 우선되는건 당연하다. 일본은 양명학의 사민평등사상과 실질숭상이, 살아남는 강한 일본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런 힘을 갖추지는 못한채 근거없는 우월감으로 일본을 비하하고 그렇다고 역사왜곡이나 독도문제에 대해 대책도 없으면서 비난만 일삼는 우리나라가 과연 일본을 이길수 있을까 하는 것이 저자의 걱정이다.
저자는 말미에서 자신만의 대책을 마련해서 합심하자고 주장한다. 충분히 근거있는 주장이다. 물론 그에대한 생각 역시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한국은 무엇이 문제인지 일본은 대체 왜 맨날 그러는지 궁금하면 이 책을 한번 보는 것이 좋겠다. 해결까지는 아니더라도 반성은 할수 있으니까. 저자가 읽은 참고문헌을 밝혀주었으면 한일문화비교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더 도움이 되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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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일본/유순하/문이당] 일본과 한국 비교문화, 30가지 테마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이다. 좋다가도 미워지는 일본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본에 대해서 잘 모른다. 예전에 <국화와 칼>을 읽은 적이 있기만 어렵기만 했다. 지금은 그저 피상적인 것 몇 가지 정도만 알까. 축소 지형 일본, 담백하고 간소한 식단, 법질서를 준수하는 시민의식, 깔끔한 거리, 독서를 많이 하고 배우기를 즐기는 국민성, 자기보다 뛰어나면 존경하지만 반대의 경우엔 얕잡아보는 국민성…….맞는지 틀는지 잘 모르지만 지금까지 일본에 대한 나의 단상이다.
아베 신조 총리가 등장하면서 극우파가 득세하고 혐한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는 보도를 접할 때마다 일본인들이 이해되지 않는다. 아무리 인간본성이 이기적이라지만 역사를 왜곡하고 오도하는 태도, 전혀 지식을 좋아하는 일본인답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한국인 소설가 유순하의 글이다. 일본을 알고 덤비자는 책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의 전략이다. 때로는 시위도 필요하지만 일본, 일본인에 대한 기본적인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에 동감이다. 일본을 이기기 위해, 혐한주의를 이겨 내기위해서 말이다.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고 있기에 이해하기가 훨씬 쉽다. 한국과 일본의 비교문화론이다.
한식과 일식. 간단하고 깔끔하게 나와서 먹어도 배고픈 일본식 식단과 푸짐하고 넘쳐서 남기게 되는 한국식 식단은 많은 차이가 난다. 관습의 차이겠지만 일본은 남기지 않도록 짜인 간단 식사법이 특징이고, 한국은 넘쳐야 예의바른 행동이고 인정이 넘친다고 생각하기에 배부르게 먹고도 남기는 식단이다.
요즘엔 한국식단도 많이 바뀌고 있다. 음식물 남기지 않기 운동,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 환경운동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다. 대개 일본인들이 한국인보다 음식을 더 천천히, 더 오래 씹는다고 한다. 건강한 식습관이다. 요즘엔 한국에서도 건강을 위해 오래 씹기를 강조하는 분위기다.
선비(士)정신과 사무라이(侍) 정신. 한국은 문을 중시하고 일본은 무를 중시한다. 조선은 붓이 지배했고 왜는 칼이 지배했다. 유교적 입장에서 사무라이들을 보면 예의 없고 무례하고 야만적이고 잔혹하기까지 하다.
붓은 글자 하나를 쓰는 데도 몇 숨 쉴 시간이 필요하지만, 칼은 같은 시간에 몇 사람의 목을 벨 수도 있다. 칼 찬 사무라이와 붓 쥔 선비가 같을 수 없고, 칼이 지배한 사회와 붓이 지배한 사회가 같을 수 없다. 붓의 승부는 유장하지만 칼의 승부는 찰나적이다. 사무라이는 바로 그 찰나적 승부에 언제나 직면해 있는 존재였다. (본문에서)
조선의 선비들이 벼슬 거부나 사퇴 이유로 자주 내세웠던 것이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조선의 선비들에겐 충보다 孝가 우선이었다. 일제 강점기 의병사에 보면 13도 창의군 창의 대장(총사령관)은 선비 이인영이었다. 하지만 공격 바로 전날(1907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를 치르고 시묘살이를 하느라 의병 대장 복귀를 거부했다고 한다. 대장을 잃은 의병은 패배했고 대규모 의병 활동도 끝을 맺었다. 실속보단 명분을 내세운 성리학의 영향이었다.
반면 사무라이에게는 忠이 전부다. 주군에게 충성하기 위해 목숨도 버렸고 가족도 버렸다. 사무라이는 지행합일을 실천하는 양명학을 따랐다. '천하제일'은 역대 무가의 정책적 지향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시 오다 노부나가의 하인시절 '천하제일의 하인'이 되고자 했다. 자신의 생업에 열중하지 않으면 칼에 베임을 받았다. 소소한 음식이라도 천하제일의 명품이길 노력하는 일본인들. 대장장이, 거울장이, 도자기장이, 기와장이, 솥장이, 술의 장인 등에게 천하제일의 칭호를 내려줄 정도였다. 모든 분야에서 천하제일을 노리는 전통은 사무라이 정신이었고, 현재 일본인들에게도 전해오고 있다. 공동체 우선도 집단사회였던 사무라이 정신이다.
미운 일본이지만 알고 미워하고 싶었다. 일본의 속내를 알고 싶었다. 영화 <명량>을 보면서도 일본을 알고 대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본을 알아야 전략을 세울 수 있는 법이다. 상대의 장단점을 알아야 문제해결이 쉬운 법이니까.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읽고 싶었던 책이다. 한국과 일본의 단면들을 30가지 주제별로 비교 설명하기에 이해가 쉬운 책이다. 한국과 일본 비교문화론이랄까. 일본에 대해 더 알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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