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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클베리 핀이란 이름을 알게 된 것은 톰 소여의 모험이란 티비 만화 영화를 보면서였다. 물론 톰 소여의 모험 역시도 책으로 읽었으면 좋았으련만, 그러지 못하였지만 톰의 친구인 허클베리 핀은 기쁘게도 책으로 만나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북로드 세계문학 컬렉션 중의 하나로 마크 트웨인이라는 세계적 유명 작가의 글이다. 그는 [톰 소여의 모험]과 [왕자와 거지] 등의 익숙한 책의 작가이기도 한데, 미국 현대문학의 효시라 불리기도 한다. 톰과 함께 강도들이 동굴에 숨겨놓은 돈을 찾아냈고, 그로인해 막대한 부를 거머쥐게 되었는데, 그 거금은 대처 판사에게 맡겨 1년 동안 매일 1달러씩 받는다. 그리고 과부인 더글러스 아주머니가 허클베리 핀을 교양 있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양자로 삼았다. 더글러스 아주머니의 동생 노처녀 왓슨 아주머니와도 함께 살았는데, 자유롭게 살던 허클베리 핀에게는 지루한 시간이기도 했다. 아버지에게 심하게 매를 맞았던 허클베리 핀은 더글러스 아주머니의 집을 어슬렁거리는 아버지가 무서웠는데, 그가 나룻배에 가서 싣고 온 물건을 갖고 오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허클베리 핀은 이제 아버지에게서도, 더글러스 아주머니에게서도 떠나 도망쳐 살기로 결심을 하게 된다. 우연히 만난 도망친 노예 짐을 만나 뗏목을 타고 모험을 시작하는 허클베리 핀. 난파선에 갇힌 신세가 된 허클베리 핀이었지만 보트를 찾아 타고 나왔다. 그리고 보트엔 악당들이 난파선에서 훔친 약탈품이 있었는데, 그것을 뗏목에 옮겨 담았다. 그런 후, 난파선에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전하며 구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하는데... 톰을 찾아간 허클베리 핀은 그 자신이 사람들을 속이고 모험을 떠나 온 것이라는 걸 모르고 있는 톰에게서 자신이 살해된줄 알았다는 말을 듣는다. 허클베리 핀의 아버지도 사라지고, 짐도 달아나는 등의 소동 속에서 그렇게 생각했다고 말이다. 허클베리 핀은 두 건달들의 이야기와 뗏목을 타고 여행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고, 톰은 짐의 노예 신분을 벗어나게 해주고 싶어한다. 톰 소여의 친구로 더 유명하게 알고 있었던 허클베리 핀이었지만, 이 책 허클베리 핀을 읽으면서 그가 경험하게 되는 모험 속에서 짐과의 우정을 엿보게 되는 이야기이다. 책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뒷머리에 덧붙이고 있어 쉽게 작품을 대할 수 있도록 해준다. 마크 트웨인의 대표작이라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함께 다닌 이 시간은 역시 명작의 가치를 수긍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기도 한다.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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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고전을 접하면 느끼는 건 이미 다 앍고 있는 이야기라고 여겼는데 막상 읽고 나면 새롭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여러 가지 버전으로 만났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한 권의 산뜻한 양장본으로 만나니 감회가 새로왔다.
사람들이 보통, 고전을 언급하게 되면 '이미 다 앍고 있는 이야기'라고 하지만 막상 읽다 보면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허클베리 핀의 모험보다 더 서프라이즈하고 다른 차원의 스토리였다. 당시 미국 사회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위트를 유지하면서 그 시대상을 철저하게 반영이 된 작가의 예리한 통찰력과 유머로 읽는 연령에 따라서 느낌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 작품은 그동안 애니메이션의 허클베리핀의 이미지가 깊게 심어진 내게는 원조를 알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허클베리 핀의 아버지는 술주정뱅이 (알코올중독 정신착란 증상도 심각하다.) 노름꾼에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은 눈꼽만큼도 없는 부량자이자, 심지어 허클베리핀을 수시로 학대를 한다. 하지만, 허클베리 핀은 이런 불행한 상황에 굴하지 않고 긍정적이고 유쾌하며 기지도 뛰어난 소년이다. 전편인 톰 소여의 모험에서 두 소년은 보물을 발견하고 고아나 다름없던 허클베리 핀은 관습을 중요시 여기는 미망인 더글라스 부인의 양자로 입양이 되어있지만 그곳은 딱딱하고 엄숙한 훈육방식이 자유분방한 성격인 허클베리 핀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
이 소설의 큰 줄거리는 아버지에게서 탈출을 시도한 허클베리 핀이 우연히 만난 도망친 흑인 노예'짐'과 뗏목을 따고 미시시피강을 떠내려가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우러지면서 사건에 휘말리는 어드벤터지 모험담이자 흑인 노예 짐과의 우정 라인이다. 허클베리 핀이 아버지에게서 탈출 설정은 자신의 운명에 맞선 용기로 상징화된다. 허클베리 핀이 만나게 되는 사람은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기꾼들도 있고 허클베리 핀을 따스하게 맞아주는 상류계급의 가족들도 있다. 하지만, 내가 놀랬던 이 시대에 아무렇지도 않게 총싸움이 일어났다는 것인데 졸지에 한 가족이 총싸움으로 인해서 불행을 맞는 장면은 슬프고 충격적이었다.
한가지 재미있는 장면이 있는데 우여곡절 끝에 친구인 톰으로 행동하게 된 허클베리 핀이 절묘하게 친구인 톰과 맞딱트리는 장면에서는 마크 트웨인이 몇 년 후에 발표하는 유명한 고전인 '왕자과 거지'의 시놉시스가 연상이 된다. 내가 그동안 내 의식속의 허클베리 핀보다 더 다양하고 강한 이야기였다. 백인 우월주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들리지만 아이들에게는 용기와 남를 배려하는 정을 배우게 해 주고 어른들에게는 그 시대를 어우르는 통찰력과 위트를 선사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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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허클베리 핀의 모험 아마도 MBC였던거 같은데… 기억은 가물가물하고…. 초등학교 다닐 때 일요일 아침이면 - 세계명작동화(?), 세계명작만화(?), 어린이명작만화(?) – 만화를 방영해주었죠. 아마 저 3가지 이름 중에 하나가 프로그램명이 아닐까 합니다. 톰 소여의 모험을 처음 본 게 이때였을 겁니다. 흑인소년과 백인소년이 나오고 강을 따라 여행을 하는데, 증기선이 나오는 그런 만화였습니다. 이때는 작가가 누군지도 모르고 아침부터 만화영화를 상영하니까 그냥 시청을 했었죠. 나중에 작가가 마크 트웨인인걸 알았고, 흑인 노예해방이라는 주제가 있는 것도 알았습니다. 어렸을 적을 생각해보면 그냥 만화로 본 작품을 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삼총사, 제인에어, 돈키호테 등등 만화로 본 작품을 읽었다고 생각했었죠. 왜냐구요? 줄거리를 알기 때문이죠^^ 요즘 들어서 고전읽기를 다시 시작하고 있는데 때마침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게 되었네요. 구니스를 기억하시나요? 어린이들이 나와서 탐험을 하는 내용인데 이 영화를 볼 당시에는 정말 거대한 어드벤쳐 영화를 보는 듯 했습니다. 실상 다시 보면 블록버스터급 영화는 아니었죠. 허클베리 핀의 모험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미시시피 강을 따라 떠나는 여행이죠. 흑인인 짐이 자유인이 되기 위해 도와주는(?) 여행입니다. 뭐 작품에는 노예해방이란 그런 거창한 표현은 아닌 것 같습니다. 헉은 아버지에게 구타를 당하는 불쌍한 아이고, 짐은 노예로 팔려가기 전에 도망친 아이니까요. 여행하면서 어려움도 있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작품입니다. 문학 작품은 어쩔 수 없이 시대상을 반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니면 작가의 경험을 밑바탕으로 만들어지게 되죠. 시대상을 반영하지 않는 작품은 그 시기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죠. SF 작품이라 하더라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글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작가 자신만의 만족으로 글을 쓴다면 모를까 대중적인 작가가 그러 수는 없으리라 봅니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이 중요한 것은 노예해방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예라는 말 자체가 웃기는 말이죠. 사람이 사람을 소유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중국에서는 황제가 죽으면 신하들까지 생매장했다고 합니다. 다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했기 때문이죠. 인간은 자유 의지를 갖고 있는데 이 자유의지를 무시하고 “너는 내 소유다.”라고 정의한다면 동등한 인간이길 거부하는 현상이니까요. 흑인과 백인. 피부만 다를 뿐 인간입니다. “너는 나와 다르다.”라는 전제 조건에도 “너와 나는 사람이다.”라는 대전제가 있습니다. ‘같은 사람인데 피부색이 다르다.’라는 것이지 ‘내가 너보다 월등한 인종이다.’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인간을 생물 분류 단위인 종(種)으로 구분하면 흑인, 백인, 황인 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이 작품에는 백인우월주의가 있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흑인인 짐을 도와주는 것이 백인인 헉입니다. 결국 흑인은 백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밑바탕에 깔려 있지 않나 싶습니다. 만약 이 작품을 흑인 작가가 썼다면 인종에 대한 정의가 어떨지 궁금하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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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클베리 핀의 모험
고전의 이야기속에 많은 어휘력과 문간의 비판적 사고를 읽힐 수 있는 책으로 많은 교훈을 줍니다,그 고전을 읽히는 방법을 처음부터 원전으로 읽히면 어린 나이에 힘들기에 다양한 읽기법이 필요로 합니다.
우리나라의 고전이 아닌 미국의 명작이기에 아이가 미국배경지식도 없는 상황에서 읽기는 무리더군요
“미국의 모든 현대문학은《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라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미국을 이해하기 위한 관건이 되는 책이다.”_W. H. 오든
이러한 많은 사람들의 추천으로 많은 대학들이 필독서라고 한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 의 작품으로 미국 남북 전쟁 시대 당시의 노예 제도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아이들이 접해보지 않은 것을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함께 동참할수 있는 과정을 느끼게 할수 있는 매력적인 소설입니다.
작가의 힘이 느껴지는 모험이야기를 통해 즐겁게 상상할수 있는 느낌이 섞여서 읽는 내내 흥분하도록 몰입도를 높인다.
원서에 가까운 분량인 듯한 소설 구성이다.
허클 베리 핀의 모험은 개구쟁이 소년 허클베리와 도망친 노예 짐이 미시시피 강을 따라 모험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며 두 사람은 이렇게 해서 자유를 찾아 모험을 떠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로서 노예에 대한 생각을 인간적으로 다가가서 느껴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이 책을 통해 미국사를 좀 더 이해하기가 쉬운 소설입니다.
아이가 성자을 하면서 단순한 모험이야기속에서 그들의 인종차별과 시대적인 역사를 알고 다시 본다면 조금은 달라지게 해 줄수 있는 밑밥이 되는 책과 같습니다. "해당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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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라는 계시일까^^ 권장도서 목록에 있는 책들을 맹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에 주의깊게 보는 편이다.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있어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을 선정해 함께 읽는다. 어느 목록에나 빠지지 않는 것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다. 이 책보다는 작가의 '톰 소여의 모험'이 더 많이 알려졌다고 생각했지만 이 작품이 훨씬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이 책을 읽기전 '톰 소여의모험'을 읽으려고 준비해 두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이 책을 먼저 읽는다. '톰 소여의 모험'의 속편 형식이라 톰 소여의 모험을 읽지 않고 이 책을 읽는 것이 마음에 걸려지만 어릴 적 읽은 내용의 기억을 되살리며 먼저 읽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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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동화로 만나고 정말 오랜만에 읽게 되는 책이다. 책의 내용을 이야기 하기 전에 작가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없다. 이 책의 주 배경이 되는 미시시피강은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작가는 미시시피 강에 면한 항구도시 해니벌에 살았는데 그곳이 이 작품에 나오는 세인트피터스버그의 모델이 되는 곳이라고 한다. 작품을 만날때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지 않을수 없다. 그들의 어린 시절이나 경험들은 결국 작품속에 녹아들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을 안다면 작품을 조금더 재미있게 볼수 있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을까한다. '마크 트웨인'의 본명은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이다. '두 길 깊이(약 3.7미터)'라는 뜻의 '마크 트웨인'은 증기선이 안심하게 지날수 있는 깊이라고 한다. '마크 트웨인'이라는 필명의 정확한 의미도 알아가는 시간이 된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톰 소여의 모험>의 속편 형식을 띠고있는 작품이다. 톰을 만나지 못했더라도 허클베리 핀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읽는데 있어 재미를 놓치는 일은 거의 없다. 다만 이야기에 톰이 등장을 하는데 전 상황을 안다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고 읽어나가는데 걸림이 되지는 않는다. 이 책의 첫 문장도 읽어보지 않아도 상관없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톰 소여의 모험>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나에 대해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 본문 11쪽
물론 허클베리 핀이 상관없다라는 말은 조금은 다른 의미이지만 우리들이 읽어나가는데도 상관없다.
과부인 더글러스 아주머니의 양자가 된 헉. 더글러스 아주머니는 헉을 교양있는 아이로 키우겠다며 교육을 시킨다. 이런 생활에 익숙치 않은 헉은 종종 그 집에서 나와 버린다. 그래도 더글러스 아주머니와 있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늘 술에 취해 있으며 헉을 학대하는 아버지. 못본지 1년이 넘었는데 다시 헉 앞에 나타난다. 자신을 때리는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헉. 유일한 가족이지만 아버지와 함께 있고 싶지 않은 것이다. 달라진 것이 없다.오랜만에 헉 앞에 나타난 아버지는 여전히 술에 취해 폭언을 하고 구타를 한다. 결국 헉은 몰래 미시시피 강에 있는 잭슨 섬으로 도망을 간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다 왓슨 아주머니네 검둥이 짐을 만난다. 책에서는 검둥이라는 표현을 쓰기에 나또한 어쩔수없이. 노예 매매상에게 팔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망친 짐. 이제 헉은 혼자가 아니라 흑인 노예 짐과의 모험을 시작한다.
인간은 나쁜 짓을 했다 하더라도 마땅히 대가를 치르려고 하지 않는다. 숨길 수 있는 동안은 부끄럽게 생각지 않는다. 숨길 수 있는 동안은 부끄럽게 생각지 않는다. 내 심정이 바로 그랬다. 이 문제를 생각할수록 나의 양심은 괴로웠고, 나 자신이 비열하게 느껴졌다. - 본문 359쪽
제목 그대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만날수 있다. 거기에 흑인 노예 짐과의 우정도 만날수 있는 이야기이다. 둘다 자신들이 살던 곳을 떠날수 밖에 없었고 돌아갈 곳이 없다는 점 때문일까. 서로를 의지하며 친구처럼 지낸다. 한때 금서로 분류되었던 이 작품은 미국 최초로 흑인이 차별받는 현실의 모습을 다루었다고 한다. 책을 읽다보면 흑인이 아닌 '검둥이'라 표현하고 헉의 모습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때가 있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벗어나려 떠났지만 그 아이가 하는 말의 반 이상은 거짓말이 아닐까 할 정도로 눈 하나 깜짝안하고 거짓말을 잘 하는 아이다. 그런 행동이나 말을 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때가 많으니 읽으면서 이야기가 주는 흥미만큼 그런 상황들도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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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의 대표작인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아마도 대략 초등학교 1~2학년때 쯤에 동화책으로 모두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중에서도 톰 소여의 모험은 여러 번 읽었고, 두 작품 모두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으로도 여러 차례 방영되어 시그널 송의 일부가 아직 기억나지도 한다. 이번에 읽은 책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 그러니까 대략 30여년 만에 '제대로 된' 책으로 읽게 된 것이다. 이처럼 장난스럽고 용감한 아이가 또 있을까. 한편으로 정상적이지 못한 행동들로 인해 주변사람들을 괴롭히지만 결말은 노예 짐에게 자유를 주는데 앞장서는, 노예의 친구로 포지셔닝한다. 물론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갈 나이의 주인공이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훔치고, 또 담배를 피우며 여행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눈에 거슬린다. 하지만 그 시대의 상황에 비추어 애교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소설의 배경이 된 곳들을 상상해 본다. 허클베리 핀과 짐의 이동수단이었던 십수명이 탈 수 있을 것 같은 뗏목은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들이 다녔던 미시시피 강이 얼마나 큰 강인지 가보고 싶다. 물론 소설의 배경이 된 그때 그 시절로. 불가능하겠지. 아마도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거 애들이 보는 책 아닌가?' 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 장난스럽고 유치해 보이는 이 책은 다음과 같은 경고문으로 시작한다. 경고문 이 이야기의 계기가 무엇인지 알려고 하는 자는 사형에 처할 것이며, 도덕적 교훈이 무엇인지 밝혀내려는 자는 추방될 것이며, 플롯을 찾으려는 자는 총살에 처해질 것이다. 작자의 명령에 따라 군사령관 G.G 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사형'이나 '총살'을 운운하며 경고하는 것일까. 어린이용 동화에는 포함되지 않았을 뭔가가 있겠지 하는 생각이 금새 몰입하게 되었다. 이쯤해서 솔직히 이 책에 대해서 솔직한 평가를 하고 싶다. 한마디로 '재미있다.' 어린이용 동화책 수준이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물론 그동안 허클베리 핀의 번역본이 여러 출판사에서 나왔지만 이 책을 처음 읽다보니 출판사별 번역의 수준을 논하기는 힘들다는 점은 미리 밝혀둔다. 책은 허클베리 핀이 1인칭 화자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쓴 형태로 기술된다. 군데군데 작가가 숨겨놓은 잔재미로 인해 웃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먼저 자신의 이름을 속이고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소개했다가 바꾼 이름이 기억이 안나 난감해 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가장 긴장되고 흥미로웠던 부분은 자칭 왕과 공작을 만나 사기행각을 벌이는 장면이었다. 40대가 넘어도 마음 속에는 장난끼가 숨어있는지 이 스토리를 보고 너무 재미있어 화장실 가기도 미룬 채 읽었던 부분이다. 마지막에 짐을 탈출시키는 장면을 처음 읽을 때는 이해가 잘 안되고, 톰 소여가 바보스러워 보였다. 짐이 숨어있는 오두막에 탈출구를 다 만들어 놓았으면 빨리 탈출을 시켜야되는데, 쥐나 거미를 잡아서 넣는다든지, 맷돌을 가져다가 글씨를 새긴다든지 하는 장면이 이어질 때마다 톰 소여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물론 짐이 이미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것을 톰 소여가 미리 알고 모험을 즐기기 위해 그리했다는 사실은 결말을 통해 알게 되었고, 그동안의 장난스러운 상황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톰 소여의 모험을 어릴 때 읽고 나도 이렇게 친구들과 떠돌면서 모험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40대 초반이 되어 아이들을 기르다보니 우리 아이들은 톰 소여나 허클베리 핀 같은 생활은 하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는 도덕적인 아버지가 되었다. 진짜 모험이 필요한 것은 나인데 말이다. 어렸을 때 읽으며 모험을 꿈꾸게 되었던 것 이상으로 지금 이 책을 덮고 나니 허클베리 핀이 미시시피강을 뗏목으로 모험했던 것처럼 내 인생에 모험의 승부수를 던져야겠다는 마음에 가슴이 뛴다. 쿵쾅쿵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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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클베리 핀의 모험/마크 트웨인/북로드]마크 트웨인의 위트와 풍자, 시대묘사가 돋보이는 동화!
예전에 읽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동화가 몇 편 있다. 그 중에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도 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미국 미시시피 강을 따라 펼쳐지는 십대 소년 허클베리의 모험담이다. 미국 남부 사회의 도덕과 관습, 세태와 생활상까지 보여주는 시대고발 동화랄까. 읽으면서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가 생각나기도 했다. 허클베리의 미시시피 강에서 살아남기, 생존 게임, 서바이벌 대모험이었으니까. <톰 소여의 모험>의 속편 형식을 띠고 있기에 간간히 반가운 톰 소여도 등장한다.
초반에 나오는 '톰 소여의 갱단' 조직은 서글픈 그 시대의 민낯이어서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기묘한 심정이었다. 폭력을 통해 자란 아이들, 종교적 속박과 모순된 어른들의 생활을 보며 자란 소년들이 생각할 수 있을 놀이 같아서 말이다. 병정놀이가 갱단놀이로 바뀌었을 뿐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을 보고, 그 사회를 보고 자라니까.
허클베리는 폭력과 폭언을 행사하는 친아버지를 피해 과부 더글라스 아주머니의 양자로 들어가게 된다. 거지같은 생활에서 벗어나 먹거리 걱정 없는 생활이지만 허클베리는 답답함을 느낀다. 지나치게 엄격한 가정교육, 종교교육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더구나 더글러스 아주머니의 여동생인 노처녀 왓슨의 잔소리는 갈수록 정도가 심해진다.
어느 날 아들이 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온 친아버지에게 헉(허클베리)은 강제로 끌려가게 된다. 섬의 외진 곳에서 갇혀 살며 폭력을 견뎌야 했던 헉은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탈출하게 된다. 카누를 타고 잭슨 섬에 숨어 있다가 왓슨의 노예인 짐을 만나게 된다.
짐도 올리언스 지방으로 팔려 갈 위기를 피해 도망을 오게 되었다고 한다. 자유로운 신세가 되어 돈을 모아 가족을 되찾고 싶다는 짐. 백인 소년과 흑인 노예 아저씨의 동행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어른이었던 짐의 지혜와 소년의 용기가 더해져 두 사람의 도망은 흥미진진한 서바이벌 게임처럼 흘러간다.
강을 따라 뗏목을 타고, 난파선을 만나기도 한다. 물고기를 잡고 동물을 잡고 모닥불에 구워 먹는 캠핑에서나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이들에게는 미시시피 강에서 살아내기 위한 생존투쟁이었다. 무엇보다도 겁 없이 물살을 가르며 뗏목을 타고 카누를 타고, 난파선을 뒤지는 모습이 유쾌, 상쾌, 통쾌하다.
짐이 말하는 미신과 징조를 따르는 모습에서 그 시절의 관습을 보기도 한다. 사기꾼인 왕과 공작을 만나 짐은 펠프스 농장에 팔리는 위기를 당하면서 법률에 따를 것이냐, 양심에 따를 것이냐를 고민하는 헉의 모습은 트웨인이 말하고 싶었던 주제이리라.
노예제도로 자유로운 이동이 불가능했던 흑인 짐, 아이는 어른의 소유라고 생각했던 시절의 소년 헉을 통해 참된 우정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도망자 신세지만 집보다 뗏목이 더 좋고 편하다며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두 사람의 영혼에서 진정한 자유를 느끼게 된다.
피부색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지만 도망자 신세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던 걸까. 묘하게 형성된 우정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그려져 있다. 가정폭력을 피해 달아나는 백인 소년, 노예제라는 사회적인 폭력을 피해 달아나는 어른 노예가 힘을 합해 자유를 찾아가는 모험담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다.
백인 소년과 흑인 아저씨의 눈에 비친 남북전쟁 직전의 미국사회의 세태를 고발한 동화답다. 갱단, 강도와 살인, 거짓말, 욕설, 상스런 말이 있어 한 때 금서로 정했다는 동화다. 청소년이나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풍자와 위트가 있는 동화다.
<톰 소여의 모험>의 속편 형식을 띠지만 그보다 훨씬 뛰어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마크 트웨인이 정식 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책을 통해 스스로 지식을 쌓았기에 동화 속 그만의 표현법은 정말 신선하고 독특하다. 마크 트웨인은 문학작품을 통해 미국인의 정신을 깨운 작가, 19세기 말~20세기 초까지 미국 사회의 변화를 상징한 작가, 가장 미국적인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해당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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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가리켜 미국 현대문학의 효시라고 할 정도로 그 문학적 위상과 가치에 대해 극찬한 바 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경우 오래전 학창 시절에 읽었던 기억을 더듬어 본다면, 책 페이지가 언제 넘어갔을까 싶은 정도로 흥미롭게 전개되는 이야기에 푹 빠졌었던 것과, 마치 내가 작품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다양한 상상력을 품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그 이후로 오랜 만에 다시 이 작품을 접하게 되었는데, 작품 줄거리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헉과 흑인노예이던 짐이 우연하게 만나면서 이런 저런 모험담을 펼쳐가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이입되는 감성의 흐름과 함께 느껴지는 재미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한듯하다. 사실 책의 내용을 현대적인 시각에서 냉정하게 이를 바라보자면, 일부에서는 지나친 가정폭력으로 견딜 수 없는 고통 때문에 가출을 감행하게 되는 한 소년의 좌충우돌하는 철부지 같은 모험담으로 치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노예제도가 엄격하게 시행되었던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을 감안해 본다면, 이 소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생각해 볼 거리가 많은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알다시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오늘날 누구나 한번 쯤 읽어봐야 하는 필독서로 알려져 있지만, 미국에서는 한때 걸핏하면 거짓말과 욕설을 일삼는 주인공 헉의 결코 도덕적이지 못한 행동이 작품 속에 수시로 드러나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교육적인 차원에서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에 의해 거의 금서에 가까운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은 아직까지도 논란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그러한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고착화 되어버린 인종차별에 대한 편견의 극복이라는 새로운 가치관을 추구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그 감상의 포인트를 맞춰 한번 읽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작품 속 이야기는 주인공 허클베리 핀이 더글러스의 아주머니의 집으로 양자로 들어가 생활을 하게 되지만 결국 적응을 하지 못하고, 한편 양육에 아무런 책임을 가지지 않는 주정뱅이 아버지로부터 보호는커녕 무차별적인 학대를 피하고자 무작정 집을 나오게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다행히도 며칠 전 늦여름 집 근처 미시시피 강물에 떠내려 오게 된 주인을 알 수 없는 카누를 손에 넣게 되었던 헉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지만 카누를 이용해 사람들의 발걸음이 거의 없는 미시시피 강가의 무인도로 건너가, 전에는 결코 누리지 못했던 그만의 평화롭고 자유로운 생활을 만끽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생활도 잠시,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무인도에 누군가의 흔적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 행적의 주인은 다름 아닌 자신의 마을에서 노예의 삶을 살아가던 짐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반가움을 표하며 이후 험난한 여정을 함께 하는 계기를 맞는다. 한편으로 마을은 헉과 짐이 동시에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접하고, 이에 대해 누군가에 의한 납치인 것인지 아니면 살해된 것인지 하는 의혹과 함께 주변을 수색하는 소동을 벌인다. 이러한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헉은, 그렇지 않아도 마음 한 구석에 마을풍경이 그립기도 했고, 또한 마을을 떠난 후 어떤 새로운 소식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마을 근처에서 몰래 잠입했다가 우연하게도 자신들이 머무는 무인도에도 조만간 수색이 펼쳐질 것이라는 소문을 듣는다. 그리고는 서둘러서 살림도구를 챙겨 짐과 함께 또 다른 곳으로 정처 없는 여행길을 재촉한다. 이후 이들은 뗏목과 카누를 이용해 미시시피의 강줄기를 따라 이동하면서 낮선 이방인들을 만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결코 잊히지 않을 만큼의 놀라운 경험을 하기에 이른다. 이 소설은 미국 현대문학의 문호이자 풍자문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마크 트웨인에 의해 1884년에 발표되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줄거리의 내용이나 등장인물에서 보듯, 10년 전 즈음에 이미 발표된 톰 소여의 모험의 후속 작품이기도 하다. 그런데 작품에 대한 작가의 서문을 찾아보면 소설 속에 그려진 대부분의 내용은, 자신이 실제로 경험을 했거나 혹은 그의 주변 친구들이 겪었던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아울러 작품의 내용을 조금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기 위해 언급하자면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마크 트웨인은 자유주의자이면서 인종차별과 제국주의를 혐오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런 연유인지는 몰라도 독자들이 작품 속 줄거리를 읽어 가다보면 그 이면에 그의 그러한 사상적 관념이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은연 중 의식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작품 속 이야기는 미주리 주의 미시시피 강의 강변을 따라 낮선 지역으로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나게 되는 주인공 헉과 짐이, 필연적으로 맞닥트려야 하는 다양한 상황들이 흥미롭게 전개되어 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사실 중심인물에 대한 백인과 흑인의 우정적인 형태의 조합은 다소 이례적인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내용 속에서 이들은 때로 갈등을 일으킬만한 소지가 충분한 상황에서도, 결코 불협화음을 내지 않고 끝까지 서로를 신뢰하며 협력하면서 수차례의 위기를 모면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상대적으로 위선적인 어른들의 모습과 대비되는 교훈적인 메시지는 물론이고 사회고발적인 성격이 드러나 있어 의외의 시사점을 독자들에게 제공해 주지 않나 싶다. 따라서 필독서로 여겨질 만큼 워낙 지명도가 높은 작품이어서 누구나 한 번 쯤은 읽었을 만한 소설로 여겨지지만, 혹시라도 아직까지 이 작품을 접하지 않은 독자들이 있다면, 관심을 가지고 평등하고 자유로움을 지향하고자 했던 마크 트웨인의 지나온 생애와 관련하여, 이 작품이 지닌 문학적 위트와 풍자를 즐겨보는 유익한 시간을 마련해 보면 어떨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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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로드 출판사에서 나온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아름다운 표지부터 끌린다. 미국 소설가인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제목은 무척 유명하다. 어릴때부터 익히 들어왔던 소설이지만, 이 책을 읽어본것은 성인이 된 지금이 처음이었다. 매일 술에 취해있는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미시시피 강에 있는 잭슨 아일랜드로 도망간다. 그곳에서 도망친 흑인 노예 짐을 우연히 만나 두 사람은 함께 뗏목을 타고 미시시피 강을 여행하면서 여러 가지 사건에 휘말리고 다양한 모험을 겪게 된다. 백인 소년 허클베리 핀과 흑인 노예 짐의 모험담은 19세기 미국의 노예제대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과 함께 백인 소년과 흑인 노예의 우정을 담아낸다. 또한 자신의 굴곡진 삶에서 안주하지 않고 변화를 바라는 소년의 성장기로도 볼 수 있다. "나는 나쁜 뜻으로 그런 게 아니라 그저 어디론가 가고 싶었을 뿐이다. 사실 꼭 어디로 가고 싶다기보다는 무언가 변화가 필요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작가 마크 트웨인은 기독교적 관습에 대해 반항하는 내용을 표현하여 인상적이다. "간혹 더글러스 아주머니는 나를 구석으로 데려가 하느님의 섭리에 대해 들려주기도 했다. 제법 마음이 끌리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왓슨 아주머니가 모든 것을 망쳐놓았다. 결국 나는 하느님의 섭리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다시 말해 더글러스 아주머니 쪽 하느님의 섭리로는 못난 사람들도 구제될 수 있지만, 왓슨 아주머니 쪽 하느님의 섭리에 의하면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할 것 같았다. 오랜 생각 끝에 나는 더글러스 아주머니 쪽 섭리를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이렇게 무식하고 변변치 못한 내가 하느님의 섭리를 따른다고 해서 어떤 혜택을 얻을 수 있을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미국 최초로 인종문제를 다룬 작품이라고 하니 더욱 뜻깊은 소설이 아닐까. 양심의 가책 속에서도 흑인 노혜 짐을 도와주는 허클베리 핀의 우정과 모험담이 생생하게 그려진 작품으로 추천하고 싶다. "강을 내려가며 여행하던 때의 짐의 모습이 떠올랐다. 낮이나 밤이나 달밤에도 폭풍우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노래하고 웃으면서 뗏목을 타고 내려왔다. 생각해보니 나는 짐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했던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곤히 잠든 나를 깨우지 않고 내 몫까지 불침범을 서던 짐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이었다. 내가 안개 속에서 돌아왔을 때 그렇게도 반가워하던 짐. 두 집안이 서로 반목하던 북쪽 마을의 늪지에서 재회했을 때의 모습. 그리고 늘 나를 착한 아이라고 부르며 귀여워해주었고, 나를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주었던 짐, 항상 선량하던 짐, 마지막으로 뗏목 위해 천연두 환자가 있다고 둘러대며 짐을 구해주었던 일이 생각났다. 짐은 굉장히 기뻐하며 나에게 이 세상에서 사귄 친구 중 가장 훌륭하고 둘도 없는 친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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