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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는 어떻게 자유를 얻었을까? - 전경린, 『황진이 2권』
그래도 사랑은 시작되고
진은 뭇 사내의 정인이 되는 길에서 가부장제를 벗어나는 길을 찾으려고 한다. 가부장제는 여자를 한 사내의 정인으로 자꾸만 묶으려 한다. 여인이 뭇 사내의 정인이 되면 가부장제를 세우는 틀은 뿌리부터 흔들린다. 진을 마음에 품은 사내들은 그래서 진을 독점하려고 한다. 가부장제의 바깥으로 뛰쳐나가기 위해 기생을 선택한 진은 사내들의 이러한 독점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욕망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녀는 더 이상 가부장제의 바깥에 있을 수 없게 된다. 아무 남자에게도 얽매이지 않아야 비로소 가부장제에 매이지 않는 이 상황을 진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내에게로 향하는 마음을 그녀 스스로 억제하기는 힘들다는 점에 있다. 양반가 서자로 태어나 방랑을 하는 이사종을 진은 바로 이런 마음으로 대한다. 한 사내에게 얽매일 수는 없다는 데서 진은 이사종을 뭇 사내와 같이 대해야 한다. 그와 즐기는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지 않고 그와 다른 삶을 사는 시간=미래를 꿈꾸면 기생이라는 신분은 진에게 속박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한 사내를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어떻게 다른 사내의 품에 안길 수 있을까? 게다가 마음에 품은 사내를 기생인 진은 언제든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 한다. “진은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이사종이 떠날 것이 두려웠고 자신이 길가의 꽃인 것이, 아무도 잡아둘 수 없는 길가의 꽃인 것이 두려웠다.”(2권, 57쪽)
두렵기는 진을 마음에 품은 이사종도 마찬가지다. 그는 기생인 진을 사랑하는 게 아니다. 뭇 사내와 연인을 공유하고 싶은 남자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 그러면서도 그는 야밤에 다른 사내의 품에 안기는 연인을 두 눈 뜨고 바라봐야만 한다. 겉으로는 한없이 정답고 평온해 보이지만, 두 사람은 언제 터질지 모를 한 아름의 폭탄을 안고 사랑에 빠져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 부임한 송도 유수가 조정 대신의 접대를 부탁한다. 진은 망설인다. 연인인 이사종이 신경 쓰이는 것이다. 진이 사랑 놀음에 빠진 사이 명월관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진은 기생이 된 이유를 잊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려면 이사종에 대한 마음을 어떻게든 정리해야 한다. 진은 단호하게 관계를 끊는 방법을 선택한다.
진은 연인 관계는 끊되 이사종이 객사에 머물길 바랐지만, 진의 마음이 뜬 마당에 이사종이 객사에 머물 이유가 없다. 애초부터 객사에 머물라는 진의 말이 어불성설인지도 모른다. 사실 진은 이사종을 떠나보낼 마음이 없다. 그저 연인 관계만 끊어지길 바란다. 연인이었던 사람들이 연인 관계가 끊어져서도 같은 집에 사는 게 가당키나 한가. 진이 처한 상황을 잘 아는 이사종이 집을 떠나자 진은 아득한 절벽에 누운 심정이 되어버렸다. 한 유수와 헤어질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슬픔이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밀려온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도 사그라질 줄 알았다. 아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사종을 잃은 마음은 칼이 되어 진의 몸을 쳤다. 시간이 약이라고 하지만, 길고도 긴 그 시간을 견딘 사람에게만 통할 말이었다.
명월관을 떠난 지 닷새 만에 이사종은 돌아왔다. 그는 진이 만 사람의 연인이라는 것을 인정한다고 했고, 진은 그와 함께라면 지옥이라고 마다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오랫동안 아팠던 몸은 그의 몸에 안기는 순간 씻은 듯이 나았다. 하지만 여전히 불씨는 남아 있다. 진을 만인의 연인으로 인정한다고 외쳤지만, 진이 다른 사내와 동침을 할 때마다 이사종은 술로 마음을 달래야 했다. 화를 참지 못하고 손님방에 뛰어들어 상을 엎기도 했고, 진을 끌어내 대문 밖에 팽개치기도 했다. 말이 사랑이지 사실은 집착과 다르지 않았다. 진은 다시 선택을 해야 했다. 이전처럼 아무 조건이 없는 이별을 하기는 싫었다. 진은 이사종에게 5년 후에 만나자고 말했다. 기생 신분을 벗고 자유로이 만나고 싶다고 했다.
5년 후면 현재를 사는 게 아니라 미래를 사는 것이다. 현재를 살기로 다짐했던 진은 왜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그녀는 그것만이 서로를 잃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대로라면 두 사람은 서로에게 지쳐 누구든 이별을 통보할지도 모른다. 그러느니 멀리 떨어져 현재를 충실히 사는 게 낫다고 진은 판단한다. 현재를 위해 미래를 버리는 게 아니라, 미래를 위해 현실을 충실히 살자는 계획인 셈이다. 진의 이 선택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진은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 기생이 된다고 했다. 한데, 지금 진은 이사종을 얻기 위해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그녀가 그토록 부정했던 한 남자의 소실이 되는 길이 아닌가?
자유로운 인간으로 사는 길
이사종이 떠난 자리에 양곡 소세양이 들어선다. 마흔다섯에 이조판서에 오른 이 인물은 시와 서화에서도 명성을 얻은 풍류객이다. 그는 아무리 절세가인이 있는 곳이라고 해도 한 달 이상 머물지 않는 것을 자기 기율로 삼고 있다. 그런 그가 진이 있는 송도에는 얼마나 머물지 내기까지 걸렸다. 수많은 기생들과 어울리면서도 언제나 거리를 지키던 소세양도 진 앞에서는 결국 거리를 허물려고 했다. 그는 거리를 허물려고 했지만 진은 끊임없이 거리를 두려고 했다. 소세양이 거리를 두는 이유를 묻자 진은 아득한 우주 가운데 있는 저마다의 자리를 이야기한다. 그 자리를 버리고 흔들리는 마음을 한곳에 의지하면, 남는 것은 흘러버린 시간밖에 없다. 진은 그 시간에 매이느니 그 시간을 뚫고 가려고 한다.
진은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이 마음을 화담 서경덕을 만나면서 비로소 체험한다. “진은 화담이 자신을 바라볼 때 그 눈빛의 새로움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어떤 색깔도 닿은 적이 없는 듯 순결한 흰빛의 시선이었다. 그가 진을 직시하는 순간 진 자신도 모든 색을 넘어 하얗게 남는 듯했다.”(2권, 132쪽) ‘순결한 흰 빛의 시선’은 감정이 묻지 않은 시선을 가리킨다. 이사종이 진을 바라보고, 진이 이사종을 바라볼 때는 이런 시선이 개입할 수 없다. 욕망에 물든 시선이니까. 화담은 진을 격물(格物)하듯 바라본다. 젊은 여자라는 선입견이 없이 그저 한 사물로서 그녀를 대한 것. 지금까지 진은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들의 시선에서 숱한 욕망을 보아온 터였다. 화담은 무엇보다 욕망에 물들지 않은 시선으로 자신을 봐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담담하고 편안하게 다만 진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화담의 시선은 처음으로 진의 존재를 긍정하고 있었다. 피해 의식도 없고 가해의 죄책감도 없는 화평을 느낀 것이다. 심지어 여자들조차 그녀 앞에서는 비굴해지거나 시기하며 외면하지 않았던가. 진은 화담의 공활하고 따뜻하고 명쾌하고 자유로운 시선으로부터 구원의 가능성을 감지했다. 그러나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그는 화곡의 초당에 은둔하는 학자였고, 진은 저자거리의 꽃인 기생이었다. 이틀을 지내는 동안 이따금 진의 눈이 반짝 빛을 발했을 뿐이었다. 진은 오직 예를 다할 뿐, 어떤 표정이나 말이나 몸의 교태로 화담을 향한 공경심을 내색하지 않았다. (2권, 137쪽)
소세양에게 거리를 둔 것처럼, 진은 화담에게도 거리를 두었다. 거리를 두지 않으면 상대에게 얽매이게 된다. 진과 거리를 두려 하지 않는 소세양이 진을 욕망에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면, 진과 거리를 두는 화담은 욕망이 없는 눈으로 진을 바라본다. 상대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눈으로 바라보는데, 어떻게 그 앞에서 어떤 표정이나 말이나 몸의 교태로 반응을 보일까. 진은 그저 스승을 기리는 마음으로 화담을 대우한다. 그녀는 화담의 시선에서 자신을 그 자체로 긍정하는 마음을 느낀다. 아름다운 몸을 욕정이 그득한 시선으로 탐하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몸 자체를 관조하는 시선을 화담은 내보이고 있다. 저 시선을 지닌 이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보면, 이 세상과도 자연 거리를 둘 수 있지 않을까
사내의 몸을 받아들이되 그 사내에게 예속되지 않는 마음을 진은 화담의 시선에 담긴 무욕에서 이끌어낸다. 진은 이 마음으로 이사종과 헤어진 5년을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관아에 종을 하나 사 넣고 기적에서 이름을 뺐다. 5년 전 그녀는 기생이 아닌 신분으로 이사종과 만나기로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킨 것이다. 기생의 신분을 벗던 바로 그날 진을 돌보던 옥섬이 명을 달리한다. 죽음을 피해갈 수 있는 생명은 없다. 진 또한 언젠가는 죽음이라는 절대 타자와 마주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새로운 인생을 함께 한 옥섬의 죽음을 쉬이 받아들일 수는 없다.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몸이 내버려두지 않는다. 시간이 약이라는 것은 이럴 때도 쓴다. 시간이 흐르면 몸에 새겨진 기억이 흐려질 테고, 그러면 자연히 마음 또한 제자리를 잡을 것이다.
풍덕 군수가 되어 돌아온 이사종을 진은 바로 이런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무예가 뛰어났던 그는 무과 시험을 거쳐 선전관이 되었다가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외직으로 나왔다. 진은 진대로 그녀의 삶을 살았고, 이사종은 이사종대로 그의 삶을 산 것이다. 다만 어머니가 정한 혼처를 물리지 못해 그는 3년 전에 혼인을 했다. 그 말을 듣고 진은 통곡을 했다. 그리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통곡을 했다. 이사종에 매이는 눈물이 아니라,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눈물이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탐을 낸 사내를 진은 그렇게 떠나보냈다. 그녀는 풍덕에서 3년, 한양 본가에서 3년, 도합 6년을 이사종과 살기로 했다. 아무리 이사종의 품이더라도 담 안에 묶여 생을 마치고 싶지는 않았다. 기생이 됐을 때 스스로 서약한 일이기도 했다.
풍덕 3년을 보내고 한양 본가로 올라간 진은 이사종의 부인이 지정한 부엌 곁방으로 들었다. 사랑채에서 심정적으로 가장 먼 곳이었다. 이사종은 당장 사랑채 손님방으로 진의 처소를 옮기려 했지만, 진 스스로 부인이 내준 방으로 들어갔다. 집안에서 쓸데없이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를 낮추어 집안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싶었다. 딱 한 번 위기가 있었다. 소세양이 보낸 편지가 사람들 손을 거쳐 본가로 온 것이다. 이를 문제 삼는 부인에게 진은 자신은 이 세상 무엇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다.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으니 평생을 두고 이어갈 귀한 인연들과 교류를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것. 다행히 부인은 진의 진심을 받아들였다. 더불어 3년 뒤에 이 집을 떠날 여자라는 사실을 굳게 믿었다.
다시 송도로 돌아온 진은 이사종에 대한 그리움을 춤과 노래로 풀어냈다. 거문고가 바깥에 있는 사물이었다면, 춤과 노래는 몸속에서 저절로 나오는 마음이었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은 몸으로 진은 춤을 추었고, 그로써 어디든지 당장 떠날 수 있는 몸을 만들었다. 화담 선생을 찾아 배움을 청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송도의 거상인 백고정의 정실 자리도 마다했다. 화담의 말마따나, 진은 전 생애를 걸고 자신의 절대고독을 지키려고 했다. 절대고독이란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는 자리를 의미한다. 인연에 매이고, 돈에 매이고, 권력에 매이면 절대고독의 경지에는 결코 이를 수 없다. 진은 몸으로 들어오는 그 숱한 욕망들을 춤으로 녹여내고, 노래로 녹여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온몸으로 길을 만든 여인
몇 해 동안 세상을 떠돌고 송도로 돌아온 진에게 스승인 화담이 “네게서 몸은 무엇이더냐?”라고 묻는다. 그동안 전쟁터에 나간 이사종이 죽었고, 아버지인 황 진사가 죽었다. 남편과 아이를 잃은 동생 난을 명월관으로 데려오기도 했다. 중국으로 떠난 줄 알았던 수근이 지족사에서 등신불이 되는 사건을 겪기도 했다. 수근을 그 길로 내몬 지족선사가 진의 미모에 반해 세속으로 흘러들어 진을 찾아 여기저기를 들쑤시기도 했다. 벗으로 지낸 이생과 금강산 여행을 떠나서는 온몸으로 세상을 떠돌았다. 문둥이 가족의 배를 채우기 위해 몸을 팔아 곡식을 사기도 했다. 하루를 기약한 삶이 석 달 동안 이어졌다. 온몸으로 세상을 어루만진 여인에게 스승은 몸에 대해 묻는다. 진은 어떤 대답을 했을까
진은 몸은 곧 길이라고 말한다. 걸어온 길을 버려야 새 길을 걷는다. 지나온 길에 집착하면 새 길로 들어설 수 없다. 몸도 그렇다. 지나온 몸에 집착하면 새 몸을 얻을 수 없다. 사내들이 진의 몸을 지나 제 길로 갔듯, 진 또한 제 몸을 지나 자기 길로 끊임없이 왔다. 길은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받아들인다. 권력이 높은 사람이 걷는 길을 권력이 없는 사람 또한 걸을 수 있다. 길을 가기 위해 그녀는 기꺼이 제 몸을 팔았다. 제 몸을 팔아 더 많은 길을 만들어냈다. 화담은 진이 걸은 이 길을 인정한다. 그러면서 그는 올 여름이 되면 하늘로 돌아갈 것이라며 줄이 없는 거문고를 보여준다. 줄이 없는 거문고가 소리를 낸다. 그 소리를 들으려면 소리를 들으려는 그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몸을 버려야 비로소 몸길이 보이듯이.
온몸으로 길을 만든 여인이 있다. 그 길은 가부장제의 바깥으로 나가는 길이면서, 동시에 가부장제를 만든 남자들을 맞아들이는 길이었다. 가부장제의 안과 밖을 유유히 오가며 황진이는 바람처럼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려고 했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삶을 욕망처럼 붙들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려면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으려는 마음까지도 놓아야 한다. 화담이 ‘순결한 흰 빛의 시선’으로 젊은 진을 바라보았듯, 사욕이 없이 사물을 바라보는 마음을 길러야 한다. 진은 온몸의 욕망을 내려놓음으로써 이 마음에 이른다. 진흙탕 연못 위에서 꽃을 피우는 연꽃처럼 온몸을 세속의 진흙탕 속에 기꺼이 내던졌다. 그것뿐이다. 바로 그것으로 진은 온몸으로 난 길을 서슴없이 걸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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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5 "어머니께서 여자의 가장 깊은 사랑은 다만 공경하는 마음이라 했지. 실제로 부부들이 어떤 사랑을 나누고 사는지 모를 일이지만, 너같이 사대부가와 혼인할 규수는 사랑을 동경하기보다는 사람을 공경하고 덕을 갖추어야지. 시집이란 처음엔 온통 낯설고 다 남이나 마찬가진 데다 칠거지악이 엄연하니, 어머니 말대로 그 집 식구가 되어 뿌리를 내릴 때까지 공손히 견디고 또 견뎌야 할 거야. 공경심과 덕으로 하늘을 감복시키면 사랑도 온천히 너의 것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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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를 낳은 어른이고, 당신이 또한 내가 낳은 아이입니다. 저는 이제 당신을 사랑하기보다 당신의 행복을 더 사랑합니다." p.202 이 말은 황진이가 사랑하던 이사종에게 한 말이다. 풍류로 한세상을 살다갔지만 그녀에게도 순정은 있었다. 사랑 그자체를 귀하게 여길 줄 아는여인! 명예보다는 사랑에 목숨 걸줄 아는 그런 여인이다. 예전에 읽었던 황진이를 다시 읽게되며 그녀가 조선 여류 시인 중 한명이었다는 것도 기억하고 싶었다. 신사임당, 허난설헌, 황진이 두 여인은 양반가의 아낙이었으되 황진이만이 기녀 출신이다. 황진이, 이름 그 자체 만으로도 아름다운 여인이다. 바람처럼 물처럼 살다간 그런 여인이다. 서른살 나이에 홀로 세상을 떠나갔지만 그녀를 그리던 많은 사람들에 아직도 살아숨쉬는 그런 여인이다. 황진이의 일생을 더듬어 가본다. 송도의 유력자인 황진사의 서녀로 자신의 신분을 모른채 어머니 신씨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오다 그 어머니 돌아가시고, 자신의 신분을 알게 되면서 아버지인 황진사의 냉대가 이해가 되었고, 원망스러웠으며 떠나간 친어미를 그리는 그런 아이였다. 혼약을 맺었던 한양 양반가의 집안으로 동생 난이 대신 출가를 했고, 여러가지 상처가 겹쳐 병을 얻고 눈이 멀게 되며 죽어간다. 그런 그녀를 구한것이 의원 홍경화이며 그녀를 소실로 원하여 그녀가 기생의 길을 가게 만든것도 홍경화였다 한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병마를 물리치고는 기생으로 기적에 이름을 올린다. 그녀는 유명해지고, 조선 팔도의 한량들과 권력자들이 찾아오면서 재물이 쌓이기 시작하지만, 그녀는 그 무렵 첫번째 사랑을 하게 된다. 서얼양반인 이사종 가진것없고 방탕한 그이지만 둘의 사랑은 진심이었고, 깊어져만 가지만, 기생의 본래 신분인 손님을 맞기위해 5년후를 기약하며 헤어진다. 5년이라는 시간에 그녀는 많은 인연을 만들었다. 권력자들도 그녀의 치마폭을 벗어나지 못하고 한결같이 그녀에게 소실이 될것을 청하지만 그녀는 거절한다. 오년후 이사종은 돌아왔고, 그녀는 그와 함게 육년의 세월을 보낸다. 꿈결같은 육년이 지나고 다시 돌아온 송도! 그곳에서 그녀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그녀를 반기고 죽음을 목전에 둔 황진사 또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춤추기를 싫어하던 그녀가 춤을 추기 시작한다. 춤을 추면 출수록 그녀는 이세상 사람이 아니양 그렇게 보여졌다. 하늘나라 선녀인양 이승에 한많은 영혼들을 위로하는양 보이는 그녀의 춤에 학이 따라와 울고 온갖 짐승들이 곁에 다가와 함께 노닌다. 화담 서경덕의 문하에 들어 황홀의 경지에 대한 의문을 풀고, 그녀는 나름의 절개를 지키며 송도 삼절로 인정 된다. 화담 서경덕, 박연폭포, 황진이 이렇게 송도 삼절이란다. 그녀의 기개와 이름 높음에 많은 유혹을 거절하고 홀로 살아가는것에 자유를 갈구하던 그녀 답다고 여겼다. 한잔 술로 황진이를 위로하고 싶다. 지금은 자유롭게 훨훨 원하는대로 날아다니고 계십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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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별, 다시 만남을 되풀이하며 살아가는 진. 사랑하여도 끝까지 함께 할 수 없는 처지였기에 산다는 것이 더 허무하게 느껴진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누구보다도 시대보다 앞서는 삶을 살지 않았나 싶다. 타고난 운명으로 기생이 되었지만 시를 쓰고 금강산 여행도 하였다. 여행이 편안하지는 않았겠지만 거기에서 얻은 것은 많을 것이다. 다른 데서는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전경린이 쓴 황진이에서 서경덕은 진을 가르치는 스승으로 나온다. 다른 사람들처럼 진에게 빠지지 않고 그저 한 사람으로 보았기 때문에 스승으로 모셨을 것이다. 뒤로 갈수록 진은 꼭 도를 닦는 사람처럼 나온다. 삶이 무엇인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 대해……. 늘 자신을 비우고자 한다. 깨달음을 얻었을까? 황진이가 옛날이 아닌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렇게 힘들게 살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렇다고 시대 탓을 하거나, 신분을 탓하며 살지 않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할 텐데……. 희선 [인상깊은구절] "잘못한 일일 수도 있으나 후회하지 않습니다. 어떤 길을 택하였던 이제 와서 무엇이 크게 달랐겠습니까? 어떤 길이든 뜻대로, 예상대로 편편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잘못된 길이라 해도 내 의지대로 선택했기에 세상에 책임을 전가하지 않으며, 지극히 진지하게 몰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길에서 벗어난다 해도 남의 힘으로 나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리를 옮기는 일에 불과하니까요. 이곳에서 나가면 나는 오직 나 자신에게로 옮겨갈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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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처럼 살다간 행복한 여인 황진이. (비련의 여주인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당당한 그녀였기에 곰군은 이 책을 읽은 후 황진이를 행복했던 여인으로 기억하기로 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어김없는 스토커적 마인드로 "황진이"를 검색했다. 영화 황진이 드라마 황진이 그리고 다수의 책 황진이 그녀의 이름은 세살 아이들마저도 다 알만큼 곳곳에 자신의 존재를 흘리고 있었다.
최근 MBC 드라마 "일지매"를 보고 있다. 드라마 "일지매" 또한 고우영 만화를 원작으로 하여 만든 드라인데, 그 기초를 튼튼히 다지고 있어 독특하고 신선한 맛으로 잘~ 보고 있는데.. 여기서 이런 내레이션이 나온다. "처음부터 역사라는 것은 없다. 누군가에 의해 역사는 만들어 지는 것이다." 황진이도 그렇지 않았을까.. 그녀 역시 역사라는 이름 하에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의 기록 때문 일것이다.
그녀가 남긴 단 몇 편의 시조. 그리고 그 시조 속에 담긴 애잔한 사랑의 진한 향기.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불꽃처럼 살다 갔으며, 참 많은 남정네의 가슴을 흔들어놓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내용이 "소설"로 탄생했다. 원래 곰군은 지독하게~ 지리나 역사를 금기시 한다.... (그 이유는 너무 여럽고 재미있지 않아서라고나 할까?) 그런 곰군이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은 단순히 영화 "황진이"때문이었다. 곰군의 특징 중 하나! 책이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는 보기 전이나 보고 난 후에 꼭! 책이나 만화를 찾아 읽어본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고 나서 책은 대체 어떻기에라는 심정으로 전경린 작가의 황진이를 읽게 되었다.
영화와 비교하면 소설이 백배 천배 낫다. 영화는 사실~ 누가봐도 "황진이"가 아니라, "수근이"가 주인공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왜 그렇게 되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감독은 유지태의 분량을 참으로 많이 넣어주시고, 황진이는 살포시 얹어주셨다. 마치.. 기생은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것 처럼.. 그러나 소설은 당연! 제목처럼 황진이에 주목한다. 게다가 수근이는 첫사랑이자 그녀의 마지막 사랑이지만 끝내 이뤄지지 않는 안타까운 사랑으로 긴~ 여운을 준다. 게다가 "난이"라는 동생의 이야기까지 맞물려 황진이의 인간적인 면에 책은 주목한다.
또한 너무나 당연하게 이 소설 속 황진이는 참 강한 여성상을 보여준다. 돈이 궁해 기생이 된 것도 아니요, 남자가 좋아 기생이 된 것도 아니요. 단지 세상을 한 번 휘두르고 싶어서 천하일색 명기가 된 황진이. 그 품은 뜻도 장대하거니와 진. 선. 미. 두루갖춘.. 기생만 아니었다면 그야말로 엄친딸!이 되고도 남았을 여성이었다.
어떤 여성이 되고 싶습니까? - 신사임당같은 현모양처요 라고~ 대답해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더랬다. 하지만, 지금 이 질문을 던진다면 - 황진이 같이 남자에 의해 휘둘림을 당하는 게 아니라 당당히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휘두를 수 있는 여성이 되고 싶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시절이지 않을까? 그렇기에 오늘 날 더욱 더 황진이에 대한 조명의 빛이 켜지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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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의 울준비는 되어 있다를 읽고 너무나 분노한 나머지 우리나라 여류작가의 책을 사서 사죄해야 겠단 생각으로 서점가를 찾았다 끝끝내 망설였던 책인 횡진이를 꺼내 들었다. 그저 그러고 그런 통속 소설이었구나란 기억으로 남을 책이다. 2004.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