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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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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심에 한마디 하자면 이 책은 천주교 신자가 아닌 사람이, 혹은 천주교 신자라 하더라도 그저 프란치스코 교종의 한국방문을 계기로 그분 자체에만 관심을 갖고 읽어보려고 한다면 그리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인문학적인 접근으로 프란치스코 교종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그저 저자의 이름만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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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심에 한마디 하자면 이 책은 천주교 신자가 아닌 사람이, 혹은 천주교 신자라 하더라도 그저 프란치스코 교종의 한국방문을 계기로 그분 자체에만 관심을 갖고 읽어보려고 한다면 그리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인문학적인 접근으로 프란치스코 교종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그저 저자의 이름만 보고 조건반사적으로 책에 관심을 가졌을뿐인데 전반적으로 천주교회의 근현대 역사와 신학의 흐름을 꿰뚫으면서 프란치스코 교종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그런지 프란치스코 교종과 관련한 다른 책들과는 달리 이 책은 그리 쉽게 읽히지 않았다. 프란치스코 교종에 관해 더 많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 즈음 그리 낯설지 않은 저자의 이름에 망설임없이 책을 집어들었는데 내가 너무 오랫동안 가벼운 책들만 읽었는가 라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한국천주교회뿐만 아니라 천주교의 전반적인 교리와 신학, 현대에 있어서의 복음과 신앙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조차 없었던 내가 단지 프란치스코 교종의 이름만으로 관심을 갖는다는 것부터가 무리였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 단지 한때 반짝거리며 유행을 타는 유명인사나 연예인에 대한 동경이 아닌것이기에 그분에 대해 알고 싶다는 것은 프란치스코 교종이 어떻게 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 알고자 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는 그분의 행보를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나 자신의 신앙과 실천, 복음의 기쁨이 무엇인지 깨닫고 행하는 것의 의미를 들여다보게 하고 있다.

 

이 책은 프란치스코 교종 개인의 가족사를 통해 그가 어떠한 환경에서 자랐으며 어떠한 영향을 받으며 수도사제의 생활을 하였는지에서부터 시작하여 그가 교종의 이름으로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름을 택하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콘클라베를 통해 교종선출이 확정시 되었을 때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말아달라'는 추기경의 인삿말을 마음에 담고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택하게 된 것은 단지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상과 이념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 어떠한 지위에 있든 프란치스코 교종은 항상 '가난한 이들'을 선택하였고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며 점점 더 가난한 이들과 멀어져만 가는 교회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인 것이다. 군부독재시절을 겪어내며 천주교사제들의 죽임을 당해야하는 것을 봤던 프란치스코 교종의 조국 아르헨티나의 상황과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는 교회가 이념과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이땅의 평화와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한다.

 

처음 강정해군기지공사현장 앞에서 미사를 할 때, 몇몇 신자들이 거룩한 미사를 길거리에서 함부로 한다며 화를 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간혹 그곳에서 미사참례를 하다보면 지나가면서 큰소리로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과연 '거룩함'이 무엇인지, 불의가 판을 치고 있는 그 현장에서 미사를 드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잠깐이라도 생각을 해 봤을까.. 싶어진다. 아니, 과연 그들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본적이 있을까.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는 무조건적인 프란치스코 교종의 추종이 아니라 그 원의를 깨닫고 우리가 무엇을 본받고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갖게 하고 있다.

 

 

 

 

 

r***2 2014.08.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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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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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프란치스코, 파파 프란치스코의 4박 5일 동안의 우리나라의 방문과 그가 보여 준 일거수일투족에 모든 언론과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가 행한 행보 하나하나가 모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천주교회의 수장, 그리고, 그리스도의 대리자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그 분이 우리나라에 오셔서 이용한 차랑은 기아 자동차의 소울이라는 소형차다. 그리고 그 분은 로마교황청 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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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프란치스코, 파파 프란치스코의 4박 5일 동안의 우리나라의 방문과 그가 보여 준 일거수일투족에 모든 언론과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가 행한 행보 하나하나가 모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천주교회의 수장, 그리고, 그리스도의 대리자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그 분이 우리나라에 오셔서 이용한 차랑은 기아 자동차의 소울이라는 소형차다. 그리고 그 분은 로마교황청 대사관저에 숙소를 정하고, 대사가 사용한 방을 이용한 것으로도 화재가 되었다.

내가 사는 곳은 중곡동이다.

그 곳에는 주교회의실는 있는 메리놀 성당이 있다. 교황 입국 첫날의 일정이 이 곳 방문이었다. 아침부터 경비가 배치된 것을 보면서 출근을 했다. 그런데 내가 퇴근할 때까지 그 곳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차가 왕복 차선에서 교통 통제된 상태였고, 양쪽 인도에는 사람들이 도열해 있는 상태였다.

나는 잠시 길에 막혀 멈추었다가 금방 풀릴 것 같지 않아서 집으로 갔다.

그 뒷날 외식을 하는 음식점 주인의 얘기를 들으면, 교황님은 그 곳을 떠나실 때, 걸어가시면서 환영 나온 사람들을 일일이 만나 주셨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연세도 높으신 분이 온 종일 회의를 주제하셨기 때문에 피곤하셨겠지만, 사람들을 향한 관심과 사랑이 특심하셨기에 이런 행동이 나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광화문 광장에서의 124위의 시복 미사 등으로 그의 일정은 비교적 상세히 소개되었다.

그러나, 그가 교황으로 선출된 2013년 3월부터의 그가 보여 준 신앙관과 행적과 발언들, 천주교의 안팎에서 형성된 평가와 교황의 치적에 대한 세세한 내용은 알 길이 없었다.

그런 궁금증을 풀어 주기에 이 책은 안성맞춤이다.

그는 조부 때 이태리에서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간 이민족이며 축구광이다.

그러기에 이민족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의 교황의 역할에 대하여는 교회 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빌라도가 예수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후 ‘자신은 이 선고에 책임이 없다’는 의미로 손을 씻은 것은 잘 못 되었고, ‘좋은 카톨릭 신자라면 정치에 관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또한 죽은 자는 천국으로 인도하고, 고통 받는 이웃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으로 되살려야 복음이라고 정의하는 분이시다.

그러기에 우리나라에 머무는 동안 세월호의 유가족을 만나서 위로하고, 세례를 베풀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 위로하고, 가는 곳마다 어린아이들을 안아주던 이웃집 할아버지와 같은 친근함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교황은 예수님처럼 하나님이지만 죄인 된 사람으로 낮아지신 것처럼, 그 분은 만인지상의 지위와 신분을 가졌지만, 가장 낮은 모습과 위치로 낮아지셨던 것이다.

h*******0 2014.08.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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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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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66대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한지 4일째인 오늘,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를 읽고 서평을 쓴다.이탈리아 이민 가정출신의 아르헨티나 국적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이 바로 교황 프란치스코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와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아 일찍이 노동에 대한 존엄성과 중요성을 깨달았고, 폐렴으로 생사의 기로에서 한쪽 폐를 잘라내야 하는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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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66대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한지 4일째인 오늘,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를 읽고 서평을 쓴다.
이탈리아 이민 가정출신의 아르헨티나 국적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이 바로 교황 프란치스코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와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아 일찍이 노동에 대한 존엄성과 중요성을 깨달았고, 폐렴으로 생사의 기로에서 한쪽 폐를 잘라내야 하는 죽음의 위기까지 겪으면서 생명의 소중함과 신의 축복을 함께 경험하게 되며 우연히 들어선 성당에서의 강한 성소를 느끼게 되어 사제의 길을 가게 되었다.
이 책은 교황 프란치스코의 진정성이 담긴 신념과 그것이 바탕이 되어 행동하는 교황 프란치스코를 비추고 있다.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사랑하고 위로하는 교황의 따뜻함은 현재 우리 시대가 가장 목말라 있는 사랑의 단면과도 같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꽤 젊은 시절부터 예수회의 주요 관리자의 위치에 있게 되면서 자신의 실수를 바탕으로 배워나갈수 밖에 없었기에 그 스스로에 대해 떳떳하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이 저질렀을 지도 모르는 죄와 허물이 아니라 '저지른' 죄와 허물에 대한 용서를 구한다는 말씀도 그러한 맥락이리라.

요즘 서점가에서 교황 프란치스코에 관한 책들을 무척 많이 볼 수 있는데, 이 책은 그중에서도 남다른 매력으로 눈길을 끈다. 
물론 저자는 교황 프란치스코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쓰는데 시간적으로 촉박했노라고 밝히고 있지만 다른 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가톨릭의 최근 역사와 동향들을 꽤 자세하고 심층있게 다루고 있어서 가톨릭역사적 지식도 풍부하게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이후 전임 교황들의 업적과 가톨릭교계의 상황, 바티칸의 실제가 어떤 과정을 겪어왔는지 저자는 알기 쉽고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교황 프란치스코의 생애를 다룬 것이 아니라 가톨릭내에서 그간의 전후사정을 통틀어 전임교황들과의 차이점과 교황 프란치스코만의 청빈한 사상과 관점을 말과 글로써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는 그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폭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 있다.

파파 프란치스코와 가톨릭에 대한 좀 더 폭넓은 최근 역사적 동향들이 궁금하다면 주저말고 이 책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s*******e 2014.08.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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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체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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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이라는 게 그래서 무섭습니다. 가톨릭 교회라고 하면 보수주의, 전통에의 완강한 집착 같은 막연한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현존하는 종교 조직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유지된 실체이니 무리는 아닙니다. 그러나 외부에서 보는 시선이 그렇다는 것이고,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면 그렇게나 긴 시간 동안 마냥 변화를 거부하고 지냈다면, 아마 오늘날까지 교회가 존속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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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이라는 게 그래서 무섭습니다. 가톨릭 교회라고 하면 보수주의, 전통에의 완강한 집착 같은 막연한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현존하는 종교 조직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유지된 실체이니 무리는 아닙니다. 그러나 외부에서 보는 시선이 그렇다는 것이고,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면 그렇게나 긴 시간 동안 마냥 변화를 거부하고 지냈다면, 아마 오늘날까지 교회가 존속하기도 힘들었을 겁니다. 실제, 16세기 초의 로마 대 약탈, 19세기말의 이탈리아 통일 등, 교황청은 아예 그 존폐가 문제될 정도의 위기를 여러 차례 겪었습니다. 그런 시련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이어져 온 건, 끈질긴 생명력 같은 이유라기보다, 변화하는 시대에 (우리 일반이 생각하는 것 훨씬 이상으로) 열심히 적응해 온, 아니 그를 넘어 어쩌면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시대를 이끌어 온, 성직자들의 노력 그 결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마 그 역할은, 보수적이고 고지식한 교황보다는, 진보적이고 열린 생각을 지닌 교황들이 보다 더 비중 높게 맡아 왔을 것 같아요.

이 책의 제목은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입니다만, 이런 비슷한 제목을 달고 있는 다른 책들과는, 그 보는 시야와 취지, 담고 있는 내용이 사뭇 다릅니다. 아마 이 교황, 호르헤 베르골료는, 지금까지 구교가 맞이했던 교황 중 가장 진보적 색채가 짙은 인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이 교황이 어떤 족적을 보이고, 어떤 업적을 남기고 가실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만(뉴스에 의하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임자처럼 생전에 은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기자들에게 시사한 적 있다고 합니다), 이 정도씩이나 진보적인 인사가 교황직에 착좌(이런 용어를 쓰더군요)했다는 자체가, 교회사에 뭔가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저자는 보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 담긴 내용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타원의 초점 중 하나로 놓고, 다른 하나의 초점을 보수 세력에 둔 후, 가톨릭 교회가 그려 나갈 타원의 반경이 앞으로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을지, 혹은 변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하지 못하고 움츠려들지, 최근 한 세기 정도를 주된 범위로 잡아 교회 전반의 형편, 내력을 조명한 책입니다. 물론 교황 개인에 대한 여러 신변 사항,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 그 전임자인 대교황(아직 정식 호칭은 아닙니다만) 요한 바오로 2세 등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신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신변잡기가 아니라 보수-진보의 대립, 혹은 발전적 갈등에 대한 저자 나름의 정리와 해석입니다. (그래서 저는 <보-혁 구도를 축으로 놓고 본 현대 가톨릭 교회사> 정도로 부제를 달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이 책의 저자는 가톨릭계 언론 기관에서 주필로 오래 봉직했던 한상봉 선생입니다. 저자는 사제가 아니지만, 학문적 배경을 구교 관련 영역에서 갖춘 분입니다. 저자는 먼저 "현 교황은 공산주의자인가?"라는 당혹스러운 질문으로 책의 서두를 열고 있습니다. 물론 저자 같은 분이 그런 시각을 가질 리는 없고요, "현 교황처럼 온건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진 인사에 대해서도, '공산주의자'로 손쉽게 매도하려는 세력이 교회 내에 엄존한다."는 논의를 열기 위함입니다. 진보적 분위기, 민중과 호흡을 같이하려는 성직자에 대해 언제나 마뜩지 않은 시선을 주어 왔던 세력이 교회에는 상존해 왔고, 이는 물경,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활약하던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도 잘 나오듯, 가난한 이와 함께 하고 민중의 아픔을 지배층에 알리려는 움직임은, 언제나 이단으로 경원시되어 왔습니다. 아시시의 성인이 활약하던 시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당사자가 세상을 떠난 후 그리 오랜 시간을 끌지 않고 시성함으로써, 교회가 결코 변화의 움직임에 눈을 감고 있지 않다는 걸 증명해 보였습니다. 반면, 교회가 변화를 거부하고 타락한 소수의 책동에 놀아날 때에는, 프로테스탄트와의 대립 등 파국적인 결과를 맞이해 왔다는 점을, 저자는 여러 역사적 사실을 들며 암시하고 있습니다.

결국 저자의 관점은 그것입니다. "예수가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할 때, 그는 언제나 빈민과 억압받는 이들과 함께해 왔다. 지금의 교회가 가져야 할 사명 역시 그것이다. 너무도 단순 명쾌하지 않은가?" 마르크스의 명제 중에 유명한 것으로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다."가 있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쟁쟁한 명성의 해방 신학자들(예: 볼프)은 한결같이 지적합니다. "이 명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무엇이 다른가?"

저자는 (당연한 말이지만) 한국인입니다. 한국인 평신도로서 그는, "용산 참사 등 민중이 억압받고 생존의 위기에 몰렸을 때, 교회 관계자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라고 묻습니다. 한국의 경우 예컨대 정진석 추기경 등은 현장에 몸소 나와 이들의 고충을 묻고 위로를 건넨 일이 전무하다는 게 저자의 지적입니다. 이 이야기를 왜 하는가 하면, 현 교황은 대주교 베르골료이던 시절, 나이트클럽 화재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던 때, 누구보다 먼저 현장을 찾은 사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사가 이제 세계 십 수억 가톨릭 신도를 이끄는 수장이 된 시점에서, 실천과 탈권위의 소통을 보이지 못한 고위 성직자들은 반성해야 하지 않냐는 게 저자의 의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이 책에서도 여러 번 나오는) 강우일 대주교처럼 진보적인 인사도 한국 교회에는 존재합니다. 아니, 주필직 같은 중책을, 이 책의 저자처럼 진보적인 성향의 인사가 오랜 기간 동안 맡아 왔다는 사실부터가 무엇인가를 강력히 시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선입견은 엄연한 현실 앞에 아무 힘을 쓰지 못합니다.

이 책은 편한 마음으로 읽을 수 없습니다. 저는 현 교황을 담은 여러 사진을 보면, 자애롭고 깊은 수양이 담긴 표정이 있는가 하면(저자의 평가로는, 현 교황이 외모 면에서도 아주 출중하다고 하십니다), 뭔가 수심 가득하고, 인간적인 불안이 짙게 배어나오는 모습도 있습니다. 그가 지극히 소탈하고 가식 없는 분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앞으로 교황으로서 그가 교회 내부의 반대 세력, 교회 외부에서 가해져 오는 심각한 위협, 부정 부패 등에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 그 전망이 평탄하지만은 않다는 걸 암시해 주는 것도 같더군요. 앞에서 인용한 "전임 베네딕토 교황처럼 조기 은퇴할 수 있다."는 언급도, 해석하기에 따라선 상당히 무거운 의미로 다가오기도 하고요. 교황이 나에게 무엇인가를 해 주기보다, 내가 교황께 무엇인가 힘을 보태고 싶다는 성숙한 생각이 드는 가톨릭 신자라면, 이 책을 읽고 현 교황이 얼마나 어려운 입지에서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v*****7 2014.08.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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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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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방한하셨던 교황 프란치스코에 대한 관심은 대단히 높다. 물론, 프란치스코 교황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물론 많지만 말이다. 아무튼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이유는 여러 가지겠다. 무엇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기독교 역사상 처음으로(자의적 사임, 그렇지 않은 경우까지는 2번째) 교황직을 사임하고 선출되었다는 이유가 한 몫 했을 것이다.   게다가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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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방한하셨던 교황 프란치스코에 대한 관심은 대단히 높다. 물론, 프란치스코 교황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물론 많지만 말이다. 아무튼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이유는 여러 가지겠다. 무엇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기독교 역사상 처음으로(자의적 사임, 그렇지 않은 경우까지는 2번째) 교황직을 사임하고 선출되었다는 이유가 한 몫 했을 것이다.

 

게다가 선출된 인물이 비유럽권으로는 최초의 교황이라는 점. 아메리카 대륙 출신 최초의 교황이라는 점도 화제집중의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러한 요소들은 시대적 요청에 의한 것일 수 있다. 가톨릭 인구의 대다수는 아메리카 대륙에 있기 때문에 어쩌면 아메리카 대륙의 교황이 선출된 것은 시대적 부응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탈리아 이민자 2세이기에 어쩌면 가장 많은 교황을 배출한 나라 이탈리아 출신이라는 딱지가 붙을 수도 있다.

 

사실, 이러한 요소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인기에 일조함이 없지 않겠지만, 그의 가장 큰 인기 비결은 그의 관심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서,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는 철저하게 이 부분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 본서는 사실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서적이라기보다는 신학적 서적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현재와 같은 신학적 사고를 갖게 된 배경, 그가 교황이 되기 이전에 교회의 신학작업에 끼친 영향, 그리고 그에게 그러한 신학적 영향을 끼친 신학사조와 교회의 작업들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저자가 생각하는 교회의 모습, 교회의 역할, 교회의 목적을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 발견하고 찾아가는 작업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어쩌면 그렇다면, 프란치스코 교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저자가 추구하는 방향, 그 부분의 모습만이 보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자의 관점은 건강하고 옳다. 물론, 교황의 외적 영성부분이 아닌 내적 영성부분에 대해서는 소홀하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을 통해,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그 내용은 대단히 건강하다.

 

교회(가톨릭, 개신교, 동방교회 등 모든 기독교 교회)는 결코 닫혀 있어서는 안 된다. 닫혀 있는 교회를 ‘자기 참조적인 교회’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런 교회는 복음 전파보다는 교회 보존에 열을 올리는 폐쇄적인 교회로 건강한 교회라 말할 수 없다. 아니, 복음 전파 역시 교회 보존의 수단으로 삼는 교회가 있는데, 이를 저자는 ‘영적 세속성’의 늪에 빠진 교회라고 말한다. ‘영적 세속성’이란 신앙심의 외양 뒤에, 교회에 대한 사랑의 겉모습 뒤에 숨어서 주님의 영광이 아니라 인간적인 영광과 개인의 안녕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대다수 교회 인사들의 열정은 바로 이 ‘영적 세속성’에서 출발한다.

 

교회는 이익 창출의 집단이 아니다. 교회는 성공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 역시 아니다. 교회를 위한 교회는 옳지 않다. 교회는 하나님을 위하여야 하며, 세상을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

 

세상을 위한 교회가 되기 위해, 우리는 문을 닫고 안에 평안히 거할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나가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 방향성을 변두리로 본다. 세상의 모든 존재적 변두리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변방이 교회가 갈 곳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그랬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활동하지 않으셨다. 당시 변방 갈릴리에서 활동하셨다.

 

그리고 교회는 약자들의 눈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더 이상 무관심한 채 끼리끼리 모여 거짓 평안을 위안삼아서는 안 된다. 주님은 약자들의 눈물, 아픔을 연민의 마음으로 바라보셨다. 이제 교회 역시 이런 연민의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

 

교황을 통해, 가톨릭이 옳은 방향으로 변혁되어지고, 이 건강한 물결에 개신교 역시 건강한 자극을 받게 되길 바란다. 사실, 중세 시대 가톨릭이 타락하여 종교개혁자들을 통해 교회가 새롭게 시작될 때, 가톨릭교회 내부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에 영향을 받아 교회를 새롭게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것이 바로 예수회의 출발이다(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회 출신 최초 교황이다). 그렇다면, 이제 개신교 역시 누구의 영향을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회가 새로워짐이 중요함을 깨닫고 함께 새로워지는 축복이 있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누가복음이 말하는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에 처음 선포하신 말씀을 살펴봄으로 서평을 마친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누가복음 4:17-19)

h***r 2014.08.2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파파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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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이 많은 것의 가치를 규정하고 세월호 참상으로 많은 목숨을 잃었으면서도그 일의 진실을 찾다보면 경제가 몰락한다는 우습다못해 비참한 논리가 통하는 시기에많은 이들로부터 존경받는 교황 프란치스코의 방한이 있었다.이전의 교황 베네딕도 16세의 저서 '이 땅의 소금"과 '그래도 로마가 중요하다'라는 책에 감명을 받았었고요한 바오로2세의 멋진 행보에 빠져있어 사진을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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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이 많은 것의 가치를 규정하고 세월호 참상으로 많은 목숨을 잃었으면서도
그 일의 진실을 찾다보면 경제가 몰락한다는 우습다못해 비참한 논리가 통하는 시기에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받는 교황 프란치스코의 방한이 있었다.

이전의 교황 베네딕도 16세의 저서 '이 땅의 소금"과 '그래도 로마가 중요하다'라는 책에 감명을 받았었고
요한 바오로2세의 멋진 행보에 빠져있어 사진을 모으기도 하며 교황님의 선종에는 눈물을 짓기도 했고
왕복기차표만 가지고 콘클라베에 참석했던 가난의 교황 비오10세의 책을 집어들고 앉은자리에서
먹는 것도 잊은 채 단숨에 읽어기고, 요한 23세의 영혼의 일기를 이해되지도 않는 어린시절에 감탄하며 읽었던 터라
교황은 남다른 뛰어남을 가진 분일 테지 생각에만 머물고 새로이 선출된 교황 프란치스코에 대해서는
책을 찾아본다거나 기사를 본다거나 하는 어떤 노력도 없이 막연히 대단한 분이시겠지 생각만 해왔었다.

나라 안팎으로 혼란한 시기에 위로처럼 찾아온 교황 프란치스코를 TV를 통해 보면서
뭉클함을 느끼고 좀더 바르게 이웃을 생각하며 살아보자는 다짐을 새롭고 또 새롭게 굳혀보기도 했지만
참으로 어려움을 실감하면서 앎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그건 앎이 아니라 위선을 한층 더 쌓아가는 것이라
자신의 모습을 보며 생각하게 된다.

교황이라는 호칭에 교황님은 몸서리치지 않으실까, 
인자한 아버지 한없이 넓은 어머니로 살아가는 교황 프란치스코에게,
더구나 종중의 종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던 역대 교황들에게 버거운 칭호를 안겨준 건 우리의 욕심이 아닐까 생각을 하며
떠남이 마냥 아쉽기만 했던 그야말로 아빠 같은 파파 프란치스코를 알고 싶어 책을 읽어갔다.
그분에 대한 어린시절이며 그분이 살아오신 세월, 그분을 탄생시킨 아르헨티나를 알고 싶었는데
책장을 아무리 넘겨도 내가 바라던 이야기는 실려있지 않았다.
이 책은 아르헨티나의 정치 상황과 베르골료 추기경의 활동, 가톨릭 교회 안에서의 해방신학,
레오나르도 보프의 견해를 주로 다루고, 한국 천주교의 이제민 신부의 견해, 여성사제운동, 일제 강점기 하의 천주교의 친일행적에 대한 이야기들을 싣고 있는데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면, 천주교 신자라도 신학원 과정을 공부하거나 신학에 관심을 가지고 책들을 찾아보는 이가 아니라면 참으로 어렵고 난하게 읽힐 내용들이었다. 이것 저것 인터넷을 검색하며 책을 읽어내고 다 읽어냈구나 하는 감탄을 스스로에게 쏟아냈다.

자신에 대한 근거없는 지방에도 침묵했던 베르골료 추기경에 대한 이야기는 감히 흉내내지 못할 이야기로
파파 프란치스코에 대한 감명을 불러일으켰고 해방신학의 관점에 몰입해 쓰여진 이야기가 조금은 껄끄러웠지만

교회 안에서도 그 면에 대해서 차차 어떤 모색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소통과 화해, 용서를 몸소 보여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정신과 노력 앞에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요구하는 건 아닐까,
굳이 제목을 파파 프란치스코라고 할 이유가 있었을까, 질주하는 황소 같은 분위기의 이 책은
한쪽에 치우친 관점으로 읽는 이에게 많은 의문 부호를 찍게 하고 넓지 못한 아쉬움 속에 읽혀졌다.
삭막한 이 나라에 훈풍처럼 내내 남아있기를 바라는 파파 프란치스코의 방문이 우리 사회에 변화의 불씨가 되있으면 하는 바람을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지며 우선 나부터 실천적인 노력을 하자는 다짐을 거듭해보았다.

"교회의 사회교리에 따르면 "정치란 가장 높은 형태의 자선"이라는 것이다. 본래 정치는 공공의 선을 위해 봉사하기 때문이다. 교황은 예수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서 '자신은 이 선고에 책임이 없다는 듯이' 손을 씻고 뒤로 물러났던 빌라도처럼처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니 "좋은 가톨릭 신자라면 정치에 관여해야 한다"는 게 교황의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교황은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당부했다. P.123 

b******m 2014.08.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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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 lalil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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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 lalilu   교황이 한국을 다녀갔다. 그동안 교황과 관련된 한국에서 제작된 다큐멘터리는 전부다 봤다. 어디를 가나 교황은 환영받았고 박수와 갈채를 받았으며 교황 역시 그것을 즐기는 것 같다 보였지 힘들어하거나 어색해하거나 그런 칭찬과 영광을 꺼려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어떤 이는 이 글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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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lalilu

 

교황이 한국을 다녀갔다. 그동안 교황과 관련된 한국에서 제작된 다큐멘터리는 전부다 봤다. 어디를 가나 교황은 환영받았고 박수와 갈채를 받았으며 교황 역시 그것을 즐기는 것 같다 보였지 힘들어하거나 어색해하거나 그런 칭찬과 영광을 꺼려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어떤 이는 이 글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저마다 힘든 세상을 사는데 교황의 웃음을 보면 힘이 난다고!” “웃는 것이 사람들의 환호를 기뻐하는 것이 무슨 큰 문제가 되겠냐고...!” 평자 역시 그런 생각에는 동의한다.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친구,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친구가 얼마나 든든한 힘이 될 수 있을까! 또한 책의 제목처럼 아버지같은 교황이라면 아버지의 그 든든함과 보호받는 느낌 플러스 교황의 그 어떤 영적인 능력 또는 파워 같은 것을 동시에 받는 다면 일석이조 이지 않을까? 그러나 개인적으로 교황의 인기와 영광을 보면서 과연 교황은 무엇을 하는 자인가?”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안고 이 책을 보기 시작하였다.

 

 

무엇보다 이 책의 관심은 바로 교황의 행보였다. 교황의 말 한마디로 인해서 일어나게 되는 파장과 교황의 발걸음이 간 곳에서 일어나게 되는 변화에 이 책을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면서 이 책은 교황의 말과 행동이 마치 예수님과 같다고 설명해주고 있다. 그러나 성경의 예수님은 어땠는가? 처음에는 환영을 받는 것 같았고, 사람들의 박수와 갈채를 받는 것 같았지만 결과적으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예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 즉 사람의 손으로 죽임을 당하셨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싫었기 때문이다.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바로 사람들의 죄를 지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교황이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급진적으로 바로잡아 나아가려 하는 모습을 설명해주고 있다.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드러내서 바로 잡아 가려는 교황의 판단과 행보는 파격이라는 단어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교황을 통해서 인간의 죄와 죄 가운데서 구원을 얻을 유일한 이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안타까움을 넘어 교황의 역할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난한 이들을 돕고 어려움 당하는 이들을 대변해주고 굶주린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것은 교황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지 않기 때문에 교황이 이 일에 대해서 언급할 수는 있지만 가난을 돕고 어려움에서 건져주고 빵을 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천주교의 수장이라고 표현하는 교황의 최우선 과제가 아닐까? 그러나 곳곳에서 예수님 보다 더 환호 받고 칭송 받고 영광 받는 교황의 모습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없다는 생각은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인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물론 한 사람의 귀한 모습과 본받을 모습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 모습은 나쁜 조직의 보스가 누구보다 부지런한 삶을 살 때 그 부지런함을 본받을 수 있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그 어떤 이들도 줄 수 없는 구원의 이름과 영생의 이름을 교황은 전 세계 천주교인들과 천주교인들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죄인 된 사람들이 그들의 죄를 발견할 수 있도록 메시지를 전하는 것과 죄 사함의 유일한 이름 예수 그리스도, 다른 이름으로는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는 유일한 죄 사함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하는 것이다.

 

l****u 2014.09.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