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이다. 지난 해 초 발령을 받고 1학년 아이들을 맡으면서 많은 고충을 겪었다. 아이를 낳아본 경험도 없고 키워본 경험도 없기에 일부 학부모님들한테 오해도 받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내 나름대로 애썼던 일년이었다. 나도, 아이를 기르는 부모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내가 가장 기대를 걸었던 일은 아이들이 보는 동화책을 탐독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내 수준에서는 그것만이 아이들과의 거리감을 좁히고, 그들이 겪고 있는 세계에 가까워지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행히 내가 맡은 교실 바로 옆에 학교도서관이 위치한 관계로 도서관에 수시로 드나들었고 한번 빌릴 적마다 10권 정도 동화책을 빌려다 읽곤 했다. 그리고 요즘 동화책이 얼마만큼 진화했으며 그 내용적 깊이가 어느 정도로 깊은지에 대해 나는 상당히 놀랐다. 성인의 시선에서도 감동을 얻기에 무리가 없고 또 그 철학적 깊이가 대단한 책도 있으며 독특한 사고와 창조적 발상으로 무장한 책들도 수없이 많다는 점 등에서 나는 동화책에 푹 빠졌던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나도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동화는 나를 꿈과 낭만의 파라다이스로 안내했다. 한없이 따뜻하고 영롱한 꿈에 젖게 하는 책들 속에서 현실을 잊기도 했고 지친 마음을 위로받기도 한 것 같다. 이게 동화의 매력이다. 그러나 동화는 꼭 그같은 역할만을 수행해야 하는 것인가 생각해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물론 어린이 도서는 해당나이에 따른 발달과업이 많이 다르므로 모두를 뭉뚱그려서 얘기할 순 없겠지만, 전체적인 어린이 도서를 바라보는 시각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봤을 때, 사람들은 모든 청소년문학은 소위 말해 그저 달콤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만을 해주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나조차도 그랬다. 엄마 뱃속에 있던 시기를 지나 두 손을 쓰고 두 발로 걷기까지, 또 그 작았던 아이가 한글을 읽고 하루가 다르게 쑥쑥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는 생명의 경이로움에 젖어들게 된다.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찬양하며 그 아이를 이 거친 세상으로부터 보호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가 상처받고 자라지 않아버릴 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아이에게 쓰디쓴 현실얘기는 근처에도 못가게 한 채, 오로지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로만 안내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잠깐의 로움이나 고통을 견디면 영원한 파라다이스로 갈 수 있다는 꿈같은 약속만을 해줘야할까? 어느 여교수가 한 말이 생각이 난다. 자신의 아들이 너무 조숙해서 걱정이라는 것이다. 이미 세상의 추하고 못난 모습을 많이 알아버려서 도무지 어린애답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자신까지 화들짝 놀라게 한다는 그녀의 아들은, 어른처럼 현실감각을 익히고 있고 세상이 그렇게 깨끗한 곳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던 게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녀의 마지막 질문이다. "가급적 나 또한 아름답고 따뜻한 모습만을 보여주고자 하지만 그것이 황금률인가? 자주는 아닐지언정 세상의 비뚤어진 모습을 감추기에 급급한 것이 진실일가?" 하는 질문이었다. '초콜릿전쟁'은 나 역시 청소년문학에 대해 그런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던 나로 하여금 하나의 화두를 던져주었다. 그리고 그같은 질문에 대한 내 나름의 대답은 "꼭 그래야만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초콜릿전쟁에 대한 구구한 스토리는 접어두고 이 소설은 비극으로 끝이 난다. 소설 이후에 대한 상상은 자유겠지만 적어도 작가가 쓴 얘기의 끝은 그리 말랑말랑하지 않다. 또 내용역시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그간 따스하고 달콤한 얘기만을 접해온 나로서는 많이 불편하고 께림칙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일그러진 영웅의 '엄석대'같은 아이의 악마성은 죽지 않고 더 부패한 권력과 야합함으로써 더 강력해진 힘으로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 안의 나약함에 갈등하다가 결국은 고유한 자존심을 선택하고 힘들게 버텨온 주인공은 물리적으로 무너지면서 버텨온 자신을 질책한다. 너무나 불편하기 짝이 없는 결말이다. 유지해온 그간의 갈등을 풀어내고 행복의 세계로 안내하는 게 당연하게 생각됐던 청소년문학에 대한 도전이라고밖에 달리 생각할 길이 없다. 그러나 그게 그릇된 도전인지에 대해서는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나는 선을 믿는다. 진실의 힘을 믿고 그것을 진정 신뢰한다. 하지만 매일매일 우리 눈앞에 펼쳐진 아이들의 현실은 정반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 부끄럽게도 말이다. 집단폭행, 청소년성폭행, 이지매로 인한 자살, 아이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금전갈취와 협박... 이루 말로 다 나열할 수 없을 정도다. 당연히 그렇지 않고 바르고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며 바위처럼 커가는 아이들도 많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반대현상과 어두운 그림자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피하고 싶고 부정하고 싶은 것이 다같은 마음이겠지만 때로는 산적한 문제들을 두 눈 똑바로 뜨고 바라보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일 수도 있을 것이다. 행복한 결말이라면 책을 덮고 망각했을 현실을, 이 책의 부정적인 결말은 외면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것이 '초콜릿전쟁' 최대의 미덕이 아닐는지. 우리가 긴장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선(善)의 승리'만을 철썩같이 믿고 있다면 초콜릿전쟁의 결말과 같은 현실은 여기저기서 독버섯처럼 또 피어나고 번질 것이다. 진실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라는 것은 아니겠으나 때로는 그 믿음이 우리를 배반할 수도 있다는 뼈아프고 고통스런 현실을 직시하고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는 것, 어쩌면 그것이 자라나는 생명에 대한 우리의 의무이자 몫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리 르노의 고귀한 자존심과 치열한 삶의 정신에 대해 찬사를 보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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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집 책상 위에는 종종 낯선 책들이 쌓여 있다. 그것들은 두 주일마다 방문하는 새마을이동도서관과 집 근처에 있는 어린이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이다. 다른 읽을 책이 있기도 했지만 그다지 마음에 확 와 닿는 책이 없어 읽지 않고 있다가 읽게 된 책이 바로 <초콜릿 전쟁>이다. 책의 제목은 어느 추천도서목록에서 들어본 적이 있었다고 기억하는데, 그것 때문인지 왠지 그냥 마음에 강하게 끌렸던 책이다. 무언가 운명과도 같은 책!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래, 바로 내가 찾던, 내가 좋아하는 책이야!”하고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를 만큼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다루고 있는 주제부터 시작해서 인물의 성격을 창조하거나 사건의 긴장감을 유지한 채 예상하지 못한 결말로 이끌어내는 솜씨가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뛰어났다. 여느 청소년소설과는 달리 해피엔딩이 아니어서 좀 우울하기는 했지만,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아니 우리들이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겪고 부딪히고 있는 문제들을 놀라울 만치 적확하게 그려내고 있는 뛰어난 소설이라 생각한다. 제리는 어머니가 병으로 시들다가 결국 세상을 떠날 때,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분노하고, 분노가 사라지자 그 자리에는 공허함이 자리 잡게 된다. 제리는 트리니티 고등학교의 풋볼팀에 들어가 땀을 흘리고 멍들고 터짐으로써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외에 지극히 조용하고 평범한 아이였다. 그러나 트리니티의 비밀 서클인 ‘야경대’가 다음 과제의 대상자로 그를 지목함으로써 작은 평화는 산산조각 깨어지고 만다. 트리니티의 교감인 레온은 야경대의 실질적 리더인 아치를 불러 트리니티의 전통인 초콜릿 판매에 야경대가 협력할 것을 요구하고 둘은 손을 잡는다. 그리고 야경대는 제리에게 처음 열흘간 초콜릿 판매를 거부하다가 이후 받아들일 것을 과제로 지령하는데, 고등학교 전체에서 유일하게 초콜릿을 팔지 않는 제리로 인해 레온의 심기는 점점 불편해지고 학생들은 제리에게 관심을 쏟는다. 마침내 제리의 과제가 끝나는 날, 레온을 포함해 모두들 심지어는 제리마저도 초콜릿 판매를 받아들일 것으로 알고 있던 그날 문제가 발생한다. 마침내 레온 선생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르노.” 그가 다시 말했다. 채찍 같은 목소리로. “아니요. 전 초콜릿 판매를 하지 않을 겁니다.” 도시들이 무너졌다. 땅이 열리고 행성들이 기울었다. 별들이 떨어졌다. 그리고 끔찍한 침묵이 찾아왔다. (164쪽) 제리는 초콜릿 판매를 거부한 일로 트리니티 학생들 사이에서 일약 유명해지지만, 그것은 레온과 야경대 모두를 적으로 돌리는 일이었다. 제리로 인해 판매가 부진하다고 생각한 야경대는, 제리에게 밤낮으로 침묵의 전화를 걸고 사물함의 물건을 훼손하며 주변의 힉생들로 하여금 그를 따돌리게 하는 식으로 압박을 가한다. 그리고 아치가 직접 제리에게 초콜릿 판매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지만 제리는 그것마저 거부한다. 이제 야경대는 초콜릿이 거의 팔린 상태에서 제리를 도발해 운동장으로 불러내서는, 아치가 계획했던 벌칙을 가하는데….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사회의 부당한 압력 앞에서 개인의 자유와 진실이 얼마나 존중받을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그리고 사회의 부당한 요구에 순응하지 않는 개인에 대해 사회가 얼마나 집요하고도 두려운 폭력으로 개인을 길들이려고 하는가에 대해 고등학교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초콜릿 판매를 통해 우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학교의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또는 학교의 보이지 않는 권력인 야경대의 과제라는 이름 아래에서 개인의 자유의지는 여지없이 파괴되고, 그 명령을 내린 사람들은 자신에게 복종하는 존재 위에 군림하며 우월한 자신의 지위를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야경대의 명령에 따라 유진 선생의 교실에 있는 칠판과 책상 그리고 의자의 모든 나사를 풀어야 했던, 그래서 교실이 해체되고 그 충격으로 유진 선생이 학교를 떠나자 괴로워하는 구버는 제리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건 모두 게임이야. 구버. 그냥 기분 전환이라고 생각해. 그들은 자기들끼리 재미를 느끼는 거지. 유진 선생은 이미 경계선에 있었을 거야. 아마….” “그건 게임하고 즐기는 것 이상이야. 제리. 어떤 일 때문에 네가 울어야 하고 선생이 떠나야 한다면, 경계선 너머로 가야 한다면, 그건 그냥 게임을 하고 즐기는 게 아닌 거야.” (220쪽) 어쩌면 야경대나 야경대의 과제란 것이 처음 시작은 게임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게임이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할 정도가 된다면 그것을 더 이상 게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실상 우리 주변의 많은 사건들에서 가해자들은 단지 장난이었을 뿐이라며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하고, 따라서 전혀 뉘우칠 필요도 이유도 없다고 강변하고 있는 우울한 현실을 떠올려보면, <초콜릿 전쟁>은 더 이상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막강한 권력 앞에서 수많은 이들이 침묵하고 또 방관할 때, 그에 대한 작은 반란은 르노의 “아니요.”라는 한 마디로 시작된다. 단지 모든 사람들이 판매에 동원되는 것이 부당하기에 자신은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제리가 초콜릿 판매를 거부한 이유의 전부였지만 그 결과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것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었던, 보이는 권력인 학교와 보이지 않는 권력인 야경대와 맞서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제리는 처음에는 학생들의 영웅으로 떠오르지만, 결국 야경대의 권력에 순응하는 다수의 학생들은 제리를 따돌리는 일에 가담하게 된다. 결국 우주의 질서(기존의 폭력적인 질서)에 반기를 들었던 제리는, 철저하게 파괴되고 무너지면서 초콜릿을 팔아야 했고 그들의 말을 들어야 했다며 의식을 잃는다. 책을 읽으며 구버를 비롯한 아이들이 침묵하지 않았다면 초콜릿 판매는, 야경대의 과제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침묵하는 다수에 속하기를 원한다. 우주의 질서에 도전한다는 것은 제리처럼 산산이 부서질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익명으로 자신을 감추고 무리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당위와 현실적 이익 사이에서 쉽게 자시의 이익을 선택해 버리는 사람들과 그 속에서 파괴되어 버린 제리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모습이 들었지만, 나 역시 그리 다르지 않기에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었다. 다만 앞으로 제리를 만났을 때, 구버보다는 한 발짝 더 제리에게 다가가 손을 잡을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 용기를 발휘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만이 우주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새로운 우주의 질서를 만들 수 있는 일일 테니까…. |
| 호밀밭의 파수꾼과 함께 대표적인 미국의 청소년 문학으로 손꼽힌다고 함. 동시에 금서의 목록에도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고.. 끔찍하리만큼 치밀한 심리묘사가 인상적임. 소설속 배경이 되는 고등학교는 사회의 축약판인 듯 싶다. 권력과 결탁한 소수의 무리. 그들의 대중 선동. 그에 저항하는 개인의 무력함. 주인공은 철저하게 유린당하고 짖밟히지만. 아마도 최종적인 피해자는 폭력의 가해자로 노출된 대중들이 아닐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회적 폭력에 무감각한 이유가 어쩌면 군대문화때문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여전히 그 생각은 크게 변함이 없긴 하지만... 책을 보니.. 어디서건 대중선동 하는 나쁜.. (그러나 영리한) 인간들은 나라를 가리지 않고 있나보군. 청소년 문학서이긴 한데... 어째 섬찟하다. -_- 결말도 예상밖이고... 그래도 강력하게 추천할만한 책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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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쓰인 것은 벌써 3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단숨에 읽어낸 것은 바로 이 작가의 전작 '텐더니스'의 막막함 때문이었다.
책을 읽고 먹먹함을 느낀다는 거.. 인물에 빠져서, 그들이 거친 사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하루 종일 인물이 사건이 그리고 결말이 내 맘을 떠나지 않아서 현실과 거리를 둔 채, 이야기 속에 빠져 잠시 머물 수 있다는 건 책을 읽는 최고의 기쁨이고.. 빌어먹을 황금가지의 번역임에도 불구하고, 텐더니스는 그런 감동을 나에게 줬다. 그 텐더니스보다 작가에게 더 큰 영광을 준 책이라고 하니.. 너무나 반갑게 맞이한 책이고 두군 거리며 읽은 책이다.
자, 네이버에서 찾은 하드보일드란 단어의 뜻이다. 이게 원래 ‘계란을 완숙하다’라는 뜻의 형용사이지만, 전의(轉義)하여 ‘비정 ·냉혹’이란 뜻의 문학용어가 되었다. 개괄적으로 자연주의적인, 또는 폭력적인 테마나 사건을 무감정의 냉혹한 자세로 또는 도덕적 판단을 전면적으로 거부한 비개인적인 시점에서 묘사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수식을 일체 빼버리고, 신속하고 거친 묘사로 사실만을 쌓아 올리는 이 수법은 특히 추리소설에서 추리보다는 행동에 중점을 두는 하나의 유형으로서 ‘하드보일드파’를 낳게 하였고, 코넌 도일파의 ‘계획된 것’과는 명확하게 구별된다. 원래 이 장르는 1920년대 금주령시대의 산물이라고 하며, 헤밍웨이와 도스 파소스 등 미국의 순수문학 작가들의 문학적 교훈을 적용시키려고 한다.
그렇지만 하드보일드 문학은 좀 감상적이다. 챈들러나 가드너나, 감정 없이, 가치관 없이 사건을 중심으로 다룬다고 하지만, 난 하드보일드 소설이 감상적이지 않았던 적이 없다.냉혹하긴 하지만, 왠지 낭만이 있고 폭력적이긴 하지만, 정의가 있어 읽을 만한 책이 ‘하드보일드’가 아니던가? (요즘 나오는 21세기 하드보일드 소설의 최고봉 '데니스 루헤인'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 책은? 성장소설이라는, 트리니티라는 한 기독교 계열의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초콜릿 팔기 위해몸부림치는 선생과 아이들, 그 속에서 스스로를 지켜내는 제리의 이야긴??
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하드보일드다.
폭력적인 테마나 사건을 무감정의 냉혹한 자세로 작가의 주관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비개인적인 시점에서 묘사해버린다. 이 책이 성장소설이라는 것도 난 동의할 수 없었다. 1318소년소녀들에게 이런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현실의 그늘을 한 톨의 가감 없이 고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초콜릿 전쟁'은 현실이다. '제리'처럼 저항을 시작하는 소년은 그 뜻이 크고 깊지 않다. 그렇지만 '아처'나 '레온'과 같은 다른 사람을 뜻대로 움직여 군중심리를 만들어내고 다른 이의 약한 부분을 꿰뚫어 이용하는 사람은 너.무.나. 많다. 그들은 너무나 강하고 포기를 모르기 때문에 제리처럼 자신의 자리나 묵묵히 지켜내는 소년들은 그들을 이.겨.내.지 못한다.
그래.. 우리가 매일 겪고 있는 현실이다. 힘 있고 포기를 모르는 대법관 후보자는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서 재판결과를 조정하려 들었고, 정부에게 불리한 분석을 일삼던 젊은 백수 누리꾼은 황당한 글로 구속까지 당했다. 그들은 너무나 강하고 기다릴 줄 알고, 또 자신의 장점을 다른 이의 약점을 이용하는데 도가 텄다. 그래서 우리들은 늘 그들이 하자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을, 매일 매일 겪지만, 눈 감고 싶은 현실을 멀찍이 떨어져 냉정하게 정리된 활자로 보는 건 정말이지 고문에 가까운 일이다. 겪을 때는 흘러 지나갔던 일들이, 활자로 맺혀 가슴에 남기 때문이다.
오호.. 이런 냉혹하고 무자비하고, 두려운 현실을 과연 청소년들이 읽어도 좋을까? (이 책이 왜 30여년전에 금서가 돼야 했는지 알겠다. ㅠㅠ) 작가의 뒷말처럼... 그래서 더 읽어야 한다면.... 모르겠지만
난... 이 책을 정말이지 아무에게도, 특히나 요즘 같은 때에는 권하고 싶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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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선 모두가 원치 않는 일을 하고 있어.”
“학교가 학생 한 명보다 중요하단 말이...? 하지만 개인도 중요하지 않은가? 그는 학교와 야경대와 모든 사람에 혼자 맞서고 있는 르노를 떠올렸다.”
우수 대학 학생들의 최근 연이은 자살 소식에 “하지만 개인도 중요하지 않은가?”라는 말이 가슴 속 장기 구석구석까지 묵직한 아픔을 전해준다.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부터 잘못된 건지, 왜 우리는 이제 본질 따위는 보려 조차 않는지 , 우리 모두가 너무 멀리 와서 돌아가기를 포기한 건 아닌지..’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을 생각하며 그들도 짓밟혔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러한 생각의 연장선상으로 이 책에 드러난 권력자와 권력집단이 인간이라는 개인을 그것도 청소년이라는 대상조차도 쉽게 짓밟을 수 있음이, 그것의 끔찍함이 나로 하여금 괜한 과민반응까지 보이게 한다. 초콜릿 전쟁 - 청소년 대상 책 치고는 좀 살벌한 느낌이 있다. 전쟁이라니... 초콜릿과 전쟁, 달콤함과 잔인함이 언뜻 조화를 이루지 않아 추천해준 친구에게 무슨 내용인지 귀띔해 달라고 했다. ‘초콜릿을 팔아야 하는 고등학교 학생들 이야기’라는데. 왠지 그 말을 들으니 머릿속엔 물음표가 서너 개쯤 떠다닌다.
책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면서 교육과정 개정으로 학교 수업도 한 단계 더 어려워졌는데 청소년 책마저도 행복이나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음에, 사회의 적나라함을 여실히 보여줌에 ‘요즘 청소년들 좀 버겁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스쳐지나간다. 다수의 인물을 등장시키고, 많은 문제들- 권력을 가진 자들의 강압. 권력과 유착하는 지능형 무리들. 그리고 조종할 수 있다는 그들의 사고. 조종당하지 않는 자를 향한 같은 공간속에서 생활하는 학우들의 시선, 무시, 그들의 폭력성. 인간, 그리고 그들이 사는 사회의 욕심, 잔인함. 한 개인의 무능력 -을 조금은 난해하게 - 물 위로 끄집어내어 도마 위에 올려놓고 이야기 하지 않으나, 바닷물 바로 아래 비추며- 보여주고 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나이만 먹는 건지, 조금씩은 현명해지는 건지, 어른이라고 불리는 나도 기성세대와 우리사회의 심지어 주변 사람들의 부조리를 목도할 때면 적잖은 실망에 힘이 부쳐 어찌해야 할지 몰라 제일 무서운 건 사람이라며 역시 인생은 살아가는게 아니라 살아내는 거라며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싶은 마음인데 아이들은 어떻게 버텨낼까, 그들에겐 버팀목이 있을까... 하고 궁금해진다. 개인 한명 한명보다 학교가 중요했던 한 대학의 학생들에게, 사회에 입문해 치르게 될 전쟁을 미리 경험한 청소년들에게, 그리고 몇 번의 크고 작은 전쟁으로 심신을 복구하고 있는 나를 비롯한 많은 어른들에게 그래도 무조건 일어날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과 올바른 사고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잔인하지만 사실을 말해주는 이 책을 통해 실감한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힘은 개인에겐 너무 버겁고 잔인하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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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그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몸도 없고, 형체도 없는 완전히 투명한 유령이 되어서 벌서 몇 시간째 돌아다니고 있었다. 학교 가는 버스에서 벌써 그랬다. 아이들은 그의 눈길을 피했다.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제리 자체를 피했다. 마치 그가 없다는 듯이 그의 존재를 무시하였다. 그들이 있는 한, 자기는 진짜로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그가 끔찍한 병에 걸린 환자이고 아무도 그에게서 전염되기를 원치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그들은 자기들 눈앞에서 그를 지워서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었다. 학교로 가는 길 내내 그는 상처 난 뺨을 차가운 유리창에 기대고 그렇게 혼자 앉아 있었다. 제리가 복도를 걸어갈 때면 마치 홍해가 갈라지는 것과 같았다. 아무도 그의 옆을 스치려 하지 않았다. 애들은 마치 비밀 신호라도 받은 것처럼 양쪽으로 물러서서 통로를 만들어 주었다. (310 - 311쪽 발췌)
아이들만 그런 게 아닙니다. 교실에선 선생들도 음모에 가담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선생들 또한 눈길을 제리에게 두지 않았습니다. 제리가 선생의 주목을 끌려고 하면 다른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한번은 대답을 하려고 미친 듯이 손을 들었지만 선생은 그를 무시하였습니다. 학교에서 제리 편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친구 구버가 있었지만 드러내놓고 제리 편을 들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오직 혼자입니다. 단지 초콜릿 판매를 거부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교장이 입원해 있는 사이 학교 재정을 호전시켜 교장이 되고 싶은 레온 선생, 학교 지하 서클의 실질적인 리더 아치 코스텔로의 합작입니다. 그들에 의해 보통 학생들마저 제리를 집단 따돌림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학교 체계 안에 자리 잡은 비리와 폭력, 그리고 언제든지 폭력의 편에 설 수 있는 보통 학생들의 폭력성까지 그리고 있는 책은 한때 미국의 금서답게 사실적인 묘사와 성찰이 뛰어납니다. |
| 인간의 악마성을 여과 없이 그대로 내보이는 이 책은 특히 청소년인 고등학생들을 통해 그 악마성이 잔인하게 그려져 있다. 어떤 특별한 특징은 없지만 평화롭게 지내기 원하는 구버, 유진 선생, 그리고 제리 르노와 잘난 두뇌를 자랑하며 최고가 되기를 즐겨 하는 아치, ‘짐승’이라 표현되는 에밀 진저, 아치를 싫어하면서 그의 하수인인 오비, 카터 등이 중심축을 이룬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레온 선생, 그는 어떤 사회에서든지 충분히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같은 사람은 대기업에서 유능한 사람으로, 공직 사회에서는 고위 공직자로, 자영업자라면 카리스마 있는 사람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은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이 유능함을 지녔다거나 회사의 오너라든가 하면 ‘그 자리’가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치부해 버리곤 한다. 레온 선생을 보며 영화 ‘레옹’에서 나왔던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권총을 마구 쏴대는 형사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떻게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면서 저런 짓을 벌일까 하는 생각을 그 당시에도 했는데, 이 책에서도 문학 강의를 하는 사람이 어떻게 학생들을 저런 식으로 피폐하게 만들까 하는 생각이 들며 등골이 오싹해진다. 이 책에서 아치의 입을 통해 수없이 나오는 인간의 속성, 즉 욕심과 잔인함! 우리는 이미 많은 책과 영화를 통해서 이러한 인간의 속성을 보아왔다. 그러나 이는 작품을 극적으로 그려내기 위한 장치라고 보아왔지, 그것이 진짜 인간의 속성이라고 확신해 본 적은 없다. 그리고 우리가 말하는 욕심이, 그리고 잔인함이 청소년들 사이에서 이렇게 심각하게 벌어지리라고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구버와 제리 르노의 모습은 일반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그들은 문제없이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면서도, 한편 학교와 레온 선생 그리고 급우들에게 진저리를 치며 학교와 관련된 모든 것을 거부한 구버, 야경대의 과제가 끝났음에도 자신의 마음, 즉 원칙에 어긋나는 일을 거부한 제리의 모습은 일반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 것이다. 우선 구버와 제리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그들에게 진심 어린 사랑을 보내고 싶다. 그들의 힘이 보잘것없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지켜나가는 자세가 그들이 성장하여 이 사회를 올바르게 이끌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으니까. 이 사회 어디에나 존재할 법한 레온 선생과 아치, 그리고 수많은 에밀 진저와 카터의 아류들, 그들이 밉지만 욕심과 잔인함이 인간의 속성이라면 그들 또한 그 속성을 속이지 않고 그대로 표현하는 인간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 함께 슬퍼하면서 그들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그들을 인정하기란 나의 원칙을 저버리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지만. 중․고등학생들이 이 책을 읽으며 과연 무엇을 느낄 것인지 궁금하다. 이 사회의 더러움을 일찍 알려줘야 하는 것인지, 잔머리 굴리는 선생의 잔인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진저리쳐지는 아치와 에밀 진저 같은 학생들을 어떻게 보는지. 그 모든 것을 떠나서 여러 등장인물들의 사건들, 제리가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소녀를 가슴에 품은 일, 뚱뚱한 텁스 카스퍼가 여자친구의 가슴을 상상한 일, 에밀 진저가 화장실에서 자위행위를 한 일 등을 보며 자신만이 그러한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구나 하며 일체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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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벌어지는 억압적인 사건들을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장소인 학교, 사회로 나아가기 전에 배움을 전하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한 장소에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게 되는데 그 안에서 학생들의 상하관계가 나뉘어지게 되어 약육강식의 환경이 만들어지게 되고 그 안에서 '야경대'라 불리우는 좀 놀아본 아이들과 이를 목도하고 방조하며 나아가서는 야경대를 이용하여 학교의 수익을 채우려는 냉혹한 선생과의 관계로부터 그러한 약육강식의 세계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하는 학생이 고통을 받게되지만 결국에는 선생과 야경대의 관계에 대항하여 먹고 먹히는 사회에 반기를 드는 모습을 보게 되며 우리들은 그 안에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고 서로 뺏고 뺏어야만 하는 사회의 축소판인 '트리니티'학교에서 그 사회에 참여하지 않는 아이의 모습에서 어떠한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를 얻게 됩니다. 주인공인 학생이 반항해서 펼쳐지는 이야기의 결말을 보면 억압되는 환경을 반항해서 극복하는 학생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이던 그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순응하게 되는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이던 간에 결코 쉽게 잊혀지지는 않을 겁니다. 학교를 벗어나 사회에서 생활하시는 분들도 알겁니다, 학교에서 일진이 존재하고 일진들이 지배하는 교실에서 그들과 다른 대다수의 학생들을. 주인공이 다니는 '트리니티'라는 학교는 그런 환경이 역시 존재하며 학교의 자랑거리인 초콜릿 판매 자선 행사에서 학생들의 자발적인 행동으로 얻게되는 아름다운 결실을, '트리니티' 학교의 냉혹한 교사는 '초콜릿 판매 자선행사'를 통해서 학교의 이익을 '야경대'를 이용하여 억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역시 중고등학교를 다녀보신 분들은 반마다 선생에게 반항하는 아이가 한 명쯤은 있다는 사실을 알 겁니다. 학생들을 괴롭히는 모습을 보며 읽는 독자들도 또한 알지 못할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여기서 반항하지 못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분위기 속에서 잡음을 일으키는 행동이 기묘한 흥미를 유발합니다. 거절하고 싶지만 억압되어 모두 '예'라는 대답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혼자 '아니오'라며 거절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응원을 하고 싶은 마음이기 보다는 제발 부디 무사했으면이라는 바람을 하게 되는데 이를 반영하여 독자의 거울이 되는 등장인물이 등장합니다. 지금은 사회 생활을 하면서 봉급을 받으며 살아가시는 분들 혹은 집안일을 하면서 아이를 돌보는 주부님들도 이 소설을 읽을 수록 자신이 학생의 입장이 되어 '스릴러물'이 아닌 스릴을 느끼면서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은 감정을 느끼시면서 사람들이 모여있는 집단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실 겁니다. 이 책은 호밀밭의 파수꾼과 어깨를 견주는, 미국의 청소년 소설 중의 하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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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청소년 문학을 대표하는 책이라고 해서 읽게 되었다. 학교 내 폭력과 비리를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미국에선 ‘금서’로 꼽힌 문제작이며 전미 도서관 협회가 선정한 '청소년을 위한 최고의 책'이고 1974년 뉴욕타임스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단다.
학교 후원금 마련이라는 명목으로 초콜릿을 강제로 팔게 하는 학교, 전통과 질서를 유지한다며 아이들을 괴롭히곤 하는 학생들의 비밀서클, 그리고 그들에 대항하는 신입생 제리 르노. “아니요. 전 초콜릿 판매를 하지 않을 겁니다.” 이 말은 그 후 끔찍한 사건들을 예고한다. 마지막 장의 르노는 권투경기 후 완전히 망가진 상태로 쓰러졌다. 입 밖으로는 결국 하지 못한 말 ‘모든 게 괜찮아 질 거야......사람들은 네가 해야 할 일을 잘하라고 말하지. 하지만 진짜로는 그런 뜻이 아냐. 그들은 네가 너의 일을 하기를 바라지 않아. 네 일이 동시에 그들의 일이 아니라면 말이야 웃기는 일이지만......’ 구급차는 그렇게 르노의 말을 삼키고 운동장을 떠났다. 문화적인 차이가 조금은 있지만 10대 아이들의 행동과 마음을 생각하며 읽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우리 현실과 그리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결말을 많이 궁금하게 만드는 책이다. 당하느냐 당하지 않는냐 , 결말은 그 어떤 선택을 했을까? 해피 엔딩은 아니다. 조금 아쉽다 우리 아이들과 함께 보자고 권하고 싶지가 않다. 잔인하고 폭력적이라기 보다는 심리적으로 잔인한 모습을 보이는 게 싫어서 함께 보기가 꺼려진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청소년 문학을 대표한다고 하니 나만의 편협한 생각일 수 있다. 아니면 우리 아이들에게 좀 더 밝은 책을 권하고 싶은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안다. 부모가 가린다고 가려지는 것이 사회는 아니고 이런 것이 현실일 수 있다고. 지금 그들이 하루의 반 이상을 보내는 학교가 사회라고 말이다. 대신 우리 부모님들과 학부모들과 함께 읽어 보자고 권하고 싶고 의견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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