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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음악 한곡 듣고 시작하자! 얼핏 <대장간의 합창>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 음악이다. 베르디 초기 오페라의 걸작이라 할 수 있는 [일 트로바토레] 제2막 1장에 등장하는 '안빌 코러스'이다. 트로바토레에 대한 설명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 본 블로그 메뉴중 [궁극의 오페라 대본]에 들어가 보면 트루베르와 트루바두르의 음악세계를 정리해 놓았다. 그 내용인즉 프랑스 중세 음유시인들의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해 놓은 것으로 베르디의 트로바토레가 바로 그 음유시인을 말함이다. 오페라 배경이 15세기초 스페인 아라곤이라는 것이 예외적이다. 초기 음악의 세계가 프랑스에서 시작하여 전유럽으로 퍼져 나갔음을 감안한다면 오페라의 공간도 그 정도로 이해하며 들으면 될 것 같다. 베르디의 초기 오페라들은 좀 거친 측면이 있었다. 실제로는 있을 법하지 않을 것 같은 등장인물들이 출연했고, 내용 전개에 있어 납득할 수 없는 우연의 일치가 있었다. 음악은 격렬하고 열정적인 선율과 리듬이 많이 나타났는데 베르디의 이러한 초기 양식적 특징을 잘 담고 있는 오페라가 바로 [일 트로바토레]이다. 총 4막의 오페라는 <결투> <집시> <집시의 아들> <처형>이라는 각각의 테마를 갖추고 줄거리를 형성해가고 있다. 루나 백작의 귀환을 기다리는 병사들의 이야기속에는 선대 백작 가문의 두 아들 중 한 아이를 불속에 집어 넣어 죽인 집시 할머니의 무서운 저주 이야기가 오고 간다. 아라곤 공작부인의 시녀인 여주인공 레오노라는 검은 말의 검은 갑옷을 입은 이름모를 기사가 던진 승리의 화환을 잊지 못하며 언젠가 자신을 향한 사랑을 읊은 그 트로바토레(음유시인)를 사랑하게 되었노라며 뜬구름잡는 이야기를 그녀의 시녀인 이네즈에게 전한다. 불길한 예감을 직감한 이네즈는 그 사랑을 멈출 것을 충고하지만 어디 눈먼 사랑이 그런 충고를 들을만한 여유가 있겠는가. 무대안밖의 공간에 지속적으로 울리는 트로바토레의 노래, 베르디의 음악이 간질나면서도 맛깔스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주인공은 무대위에 있는데 어디선가 은근하게 울려퍼지는 테너의 음성, 신비롭고 은근하면서 애간장을 태우는 그런 맛! 서서히 그 음성은 사라지고 루나백작은 레오노라에게 사랑을 고백하려 그녀를 찾아간다. 백작이 시녀를 사랑한다고? 왜? 바로 중세적 분위기를 찾아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모짜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서 귀족가문의 시녀가 결혼을 하게 되는 경우 첫날밤을 주인과 보내야하는 잔인하고도 야비한 '초야권'의 그것처럼 상대는 맘에도 없는데 권력을 남용하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심사말이다. 다시 트로바토레의 음성이 벽뒤에서 들려오자 레오노라는 발걸음을 그에게로 향한다. 어둠속에 선 남자, 그는 루나백작임에도 그녀는 그를 트로바토레로 착각한다. 일명 '오페라의 관례'라 하는 차원에서 이해 가능한 연출이다. 간단한 치장만으로도 모습을 감춘다고 하는, 이는 음악적으로, 노래로써 분명하게 보여주고 들려주어야 할 오페라의 가치가 있기에 이를 바라보는 관객은 다음 장면을 기대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남자로 착각하고 달려나가는 레오노라를 보며 진짜 트로바토레가 모습을 드러낸다. 레오노라의 행실을 힐책하며 삐친 남자에게 레오노라는 급사과를 한다. 어두워서 몰랐노라고...그 소리를 들은 루나 백작, 참기 힘들지 않겠는가. 한 여자를 두고 두 남자의 결투가 시작된다. 이렇게 오페라 한 막의 내용만 가지고도 시대적 분위기, 주인공의 심리, 오페라만이 갖춘 특성, 결말로 이르는 과정을 추측하는 지성적 체험을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음악과 아리아로 연주되며 한번쯤 아니 아무렇지 않게 귀를 열어두고 들려오는 멜로디와 하모니를 듣게 되면 그 동안 감춰졌던 감성의 엑기스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게 되며 온몸으로 체화되는 오페라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음악 선정은 보다 신중해져야 한다. 베르디는 낭만주의 시대에 홀로 고고한 고전주의 음악을 선호하며 옛것의 미덕과 가치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은 음악적 보수주의자였다고 생각한다. 보수의 최고가치는 품격과 기품, 흔들리지 않는 줄거리의 기반을 공간에 배치하고 현실에 위배되는 비현실적 주제를 중세라는 분위기에 조화롭게 연출하는데 있다. 바로 이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속에서 그런 베르디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뒤에 연이어 작곡한 [라 트라비아타]도 그런 맥락에서 베르디의 음악적 가치가 눈부시게 피어난 오페라이다. 그래서 감히 제안한다. [일 트로바토레] 두어번 듣고 [라 트라비아타]로 이어서 듣기를 간절히 제안하는 바이다. 그러면 서로 비슷한 음악적 연출을 발견하게 된다. 한 오페라에서 종종 활용되는 동기음(주제음)까지 들린다면 이미 오페라 듣기에 절정을 경험한 거라 할 수 있다. (이런게 바로 베르디스럽다고 하는구나 하는 등등의 내면에서 울리는 내 소리에 귀기울이게 된다는..) <Stride la vampa> 제2막 안빌 코러스에 이어지는 집시 노파 아주체나의 아리아 '불꽃은 타오르고' 메조 소프라노의 로망이라 불리는 아리아이다. 가문의 저주에 얽혀 오래전에 불에 타 죽은 짚시 노파에 대한 노래이다. 집시, 화형, 마녀사냥, 들으면 스페인 전통 춤곡의 느낌이 흐르는 음악적 요소가 절절하다. 착하고 좋은 주인공보다 나쁘고 추악한 그러면서도 웬지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에 매혹되는 심리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음악이다. 비제의 [카르멘]에서도 그런 느낌 지울 수 없지 않은가. 메조 소프라노의 전형적인 악역을 주인공으로 몰아부친 작품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말로 하는 사랑의 고백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오페라의 탁월한 사랑의 아리아에 비길 수 없듯이 말만으로는 음악이 나타내는 공포와 서스펜스의 위력을 따라갈 수 없다. 이런 강력한 표현력을 드러내는 메조소프라노의 아리아라 말 할 수 있다. 소프라노 레온타인 프라이스를 듣게 된 최초의 기회는 고등학교 음악감상시간 그 때도 베르디였다. [운명의 힘] 주인공의 이름이 거기서도 레오노라였다. 빠체, 빠체, 빠체 미오... 나는 세상에 그렇게 힘좋고 시원한 음색의 소프라노 목소리는 처음 들었다. 최고의 음향시설을 구비한 음악실의 쩡쩡거리는 스피커에서 불타는 듯한 음성에 훅 갔다고 해야할 것이다. 흑인의 음색이라는 느낌 전혀 없다. 발성이란 애초에 살색깔과 상관없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소프라노 바바라 핸드릭스나 알토 마리안 앤더슨, 또 소프라노 제시 노만 그리고 캐서린 배틀을 들어도 그렇다. 차라리 더 아름답고 절절하고 화려하고 강렬하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일 트로바토레] 제4막의 레오노라와 만리코의 듀엣과 피날레 곡이다. 레온타인 프라이스, 테너는 프랑코 코렐리, 예전에 종종 기차 화통을 끓여드셨을 것 같은 성량을 자랑하는 세기의 미남 테너, 바로 그 코렐리이다. 플라시도 도밍고와 카를로 베르곤지의 만리코도 들어보면 좋겠다. 그들은 정말 최고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그런, 그런 연주가들이다. 음악성과 음색과 섬세한 기술이 압도적인 연주가들... 나는 베르곤지가 항상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