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장을 펼치기도 전에 제목부터 가슴을 뭉클하게 두드린다. 겉표지에 그려진 해맑은 흑인 소녀의 얼굴, 하지만 그 두 눈에는 보는 이의 마음을 꿰뚫는 결연한 의지와 삶의 녹록치 않음에 다시 한번 다짐하는 듯한 결심이 빛나고 있었다. 소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사실적인 묘사와 생생한 문체에 놀라고 노예해방이 이루어진 이후에 오히려 더욱 잔인해지고 심해진 인종차별의 실상에 한번 더 놀라게 된다. 대부분이 백인들의 소작농이었던 다른 흑인들과 달리 목화밭, 땅을 소유한 캐시네 가족은 백인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받지만 다른 소작농들이 결코 내세울 수 없는 자존감과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추구할 수 있는 기반을 가진 행복한 가정이었다. 캐시와 오빠 스테이시 남동생 크리스토퍼 존과 리틀맨은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모험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왕성하다. 엄격하지만 다정한 아빠와 엄마 그리고 할머니와 단란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면 백인 아이들만이 타고 다니는 스쿨버스의 먼지바람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뒤집어 쓰면서 먼 길을 걸어 흑인 아이들만 다니는 낡아빠진 학교로 간다. 백인이 운영하는 상점에서는 아무리 일찍와도 다른 백인 손님이 물건을 다 산 이후에만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 게다가 무슨 꼬투리라도 잡히면 쥐도 새도 모르게 백인들이 집행하는 처벌을 받게 된다. 이웃집 아저씨의 몸도 석유를 덮어쓰고 불에 심하게 타는 화상을 입어 말도 할 수 없고 움직일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구나 백인들이 그랬다는 걸 알지만 입 밖에 꺼낼 수도 없고 그들에게 죄값을 치르게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흑인이 당했기 때문에 아니 깜둥이가 다쳤기 때문이다. 캐시에겐 너무나 불공평한 세상이다. 모든 것이 백인들 위주로 되어있고 이에 항거하다가는 밤중에 무슨 일을 당할 지 모른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고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아무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되고 잘못된 일이라는 것 만이 확실하게 가슴 속에 자리잡을 뿐이다. 옆 집에 살던 티제이 그 녀석을 결코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백인 아이들과 비굴하게 어울려 지내다 이용만 실컷 당하고 결국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가게 된 티제이. 캐시와 가족들은 티제이의 슬픈 현실에 주먹을 불끈 쥐고 눈물 흘린다. 이 소설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떤 희망이나 안도감을 안겨 주지도 않는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세상 어느 곳에서 현재도 소수에 대한 차별, 인종의 차별, 빈부의 차별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이 책은 소수의 입장에서 약자의 편에서, 무작정 당해야 했던 밑바닥에 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쓴 소설이다. 풀과 같은 민초들의 이야기로도 통한다. 바람이 오기도 전에 먼저 눕고 먼저 일어나던 그 민초들의 삶이다. 하지만 천둥이 치고 비바람이 불어도 결코 꺽이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그들의 인생은 앞으로도 모진 세파에 흔들리겠지만 그 뿌리는 뽑히지 않을 것이다. 흙을, 땅을 굳게 내딛고 결국 일어설 것이다. ' 천둥아 내 외침을 들어라 저 강 너머 머지 않아 한 남자가 채찍을 들고 달려온다 이제는 맞서리 굴복하지 않으리' 캐시의 두 눈에는 이런 외침이 담겨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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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태어날 때 피부색을 선택하거나 부모를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이 우리에겐 없다. 그렇기에 세상에 태어나면 삶을 무엇으로 채울까 하는 선택만이 주어져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세계에서 가장 평등을 많이 외치는 미국에서 인종차별에 의한 노예를 사고파는 등 흑인은 더 이상의 사람이 아니었다. 언제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서라면 죽일 수도 있었으니까... 노예해방이 선언되고도 한참이나 지난 1933년 당시에도 흑인은 부당한 대우를 받았으니 인종차별은 최근까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만큼 지독했다. 소설이라고 밝히고는 있지만 실제와 같은 사실적인 생생함과 현실적이고 치열한 그들의 삶은 놀랍다는 말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공평’이란 말은 사전에나 나와 있을 법한 단어지 흑인들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았다. 흙먼지 뒤집어쓰며 한 시간 이상을 걸어가야 하는 등굣길, 백인은 버젓이 스쿨버스를 타고 이들의 곁을 위험천만하게 달리는데 들이받으면 정말 죽는지 시험이라도 하듯 질주하였고 교과서는 애당초 없었으나 리틀맨이 입학하는 해에 백인들이 쓰던 낡아빠진 교과서가 배당되는데 책의 앞쪽엔 흑인을 비하한 깜둥이라고 쓰인 종이를 붙여두었다. 단지 백인만이 사람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깊이 박혀있기에 아이의 옷에 기름을 부어 불을 붙이는 일을 한 것도 아무런 처벌이 되지 않는다. 이런 차별은 빙산에 일각에 불과하리라. 그동안 흑인이 받아온 눈물겨운 차별은 다 쏟아내기가 어려울 것이란 것을 안다. 단지 백인은 두려운 존재로 피하고 싶었던 대다수의 흑인들에 비해 캐시 가족은 당연히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찾고자 한다. 주인공 캐시는 자신들이 받는 불평등을 흥분하지 않고 차분히 이야기하고 있다. 천둥 같은 외침에서 말하고자 하는 평등이나 인간존중에 대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아직도 곳곳에서 차별이란 또 다른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이 존재하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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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초등4,6학년이 되니 전집도 없고 책 고르기가 쉽지않은데.. 뉴베리수상작 검색하다 장바구니에 담아서 중고로 산책이에요 스무권정도 사면 둘이 소유권을 정하고는 바꿔읽기도하고 그러다 아빠엄마도 책을 같이 읽고 이야기나눠보눈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습니다 둘째아이가 추천한 책이 바로 이 천둥아' 였습니다. 제가 여태 읽은 책 중에 최고입니다. 인간이 왜 그럴 수 밖에 없는지를 선생님처럼 부모님처럼 차근차근 이야기해줍니다 흑인백인 인종문제도 어떤 프레임을 갖고 해석하고 그러지 않고 인간이 갖는 어떤 것때문이라고 중요한 건 인간의 의지라고 말하고 있어서 참 좋았어요 우리도 일제강점기가 있었습니다 그 때 캐시 아빠엄마 할머니 같은분이 계셨다면..선생님 중에 캐시 엄마같은 분이 계셨다면..참 좋았겠다 싶어요 우리집 화장실 벽에 캐시 엄마와 할머니 대사를 대자보에 적어놓았습니다 부모가 되어서 먹이고 입히고 놀아주고ㅡㅡ초등고학년이 되면서부터는 뭔가 중심을 갖고 있어야하는게 많아졌어요 인생선배로써 말이죠 (그 뭔가가 너무 없어서 문제죠^^) 같이 읽고 같이 분노하고 웃고 이야기 나누고 나온지는 몇해지났지만.. 올해 제가 만난 참 고마운 책입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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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들에 대한 차별을 다룬 이야기
흑인들이 이렇게 심한 차별을 받았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한장 한장 책장을 넘길때마다 너무 가슴 아팠으며 이야기의 흐름이 박진감있게 진행되어 읽는 도중 조마조마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흑인들을 차별하는 백인. 흑인들은 백인이 쓰다 남은 교과서를 써야 할 뿐만 아니라 마트에서도 백인들에게 순서를 양보해야 하고, 버스도 탈 수 없는 등 그들의 가슴아팠던 현실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들은 그냥 백인들이 하는대로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것이 비록 힘이 들고, 그들의 가정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어도 말이다. 백인들의 탄압이 계속되었지만 그들은 결코 그들의 옳은 생각을 저버리지 않았다.
“이 일을 그냥 내버려두면 내 삶을 야금야금 파고들다가 결국 나를 파멸시킨단다. 네 경우에도 마찬가지야. 물러서야 할 상대가 있고 맞서 싸워야 할 상대가 있어. 하지만 상대가 어느 쪽인지는 네 스스로 판단해야 해. 너는 이 세상이 너를 존중해 주기를 바라지만 아무도 공짜로 존중해 주지는 않는단다. 네가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세상으로부터 존중을 받을 수도, 못 받을 수도 있단다. 꼬마 숙녀님, 세상은 꼭 너의 가치만큼만 존중한다는 것 잊지 말아. 알아듣겠니?”
이 책을 읽다 보면 엉클 톰하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링컨 대통령은 엉글 톰스 캐빈이라는 소설을 보고 노예해방을 결심하였다는데 정작 흑인들은 이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첨 알았다. 엉클톰하다- '헤리엇 비처 스토'의 소설 <얼클 톰스 캐빈>은 노예해방을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흑인들은 이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톰 아저씨의 성격 때문이다. 톰 아저씨는 백인들에게 지나치게 순종적이었고 친절했다. 그래서 흑인들은 백인들에게 아부하고, 알랑거리는 행동을 '엉클톰하다'고 말하며, 백인들에게 빌붙어 성공한 흑인들을 '세련된 엉클 톰'이라 부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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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하면 자유와 평등을 바탕으로 한 인권존중이 가장 잘 실현되고있는 나라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불과 75년전에 일어난 인권적 불평등의 상황들을 만나며 과연 어떤것이 미국의 실체인가 싶어진다. 우리의 입장에선 힘의 논리앞에 나약한 존재일수 밖에 없었기에 결코 우방일수만은 없는나라 그래서 마냥 곱게만 볼수 없었던 나라이기도 하다.
남북전쟁의 패배로 노예해방이 선언되고도 70년의 시간이 흐른 1930년대의 미국 그들의 노예정책은 법률적으로는 해방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관습과 생활속에서는 여전한 불평등을 겪어야만했다. 아니 인간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되찾은 흑인들이 좀더 발전된 미래의 모습을 꿈꾸며 발전해나가는 모습에 자신들의 권리를 뺏어가기라도 한듯 우월하다는 그들만의 하찮은 자존심을 지키기위해 해방전보다도 더욱 비열하고 잔인한모습으로 바껴간듯하다.
그리고 75년의 시간이 흐른지금 그 땅에서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느냐 마느냐하는 문제로 들썩이고 있다.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되며 이런 상황을 이끌어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흑인들이 희생을 감수해내고 인고의 시간속에 피땀어린 노고의 결실일까 숙연해진다.
억압된 생활에 놓여있던 사람들이 그 억압속에서 풀려나기만하면 모든것이 순탄해지리라 생각한다. 우리의 36년 세월이 그러했고 흑인들의 노예생활이 그러했을것이다. 그렇게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 인권을 부르짖던 전쟁이 끝난후 모든 흑인들은 이제 정당한 권리를 찾을수 있을거라 생각했을것이다. 하지만 해방은 되었건만 가진것없는 흑인들에겐 선택의 폭이 아주 한정적이었다.
가진자인 백인들의 소작농으로 또다른 노예생활의 연장선이었던시절 캐시네 가족은 선구자적 모습을 보여준 할아버지의 노고에 의해 그들만의 땅을 가질수 있었다. 비록 다달이 다가오는 대출금의 압박을 견뎌내야했지만 언제 떼이게될지모를 평범한 소작농인 다른가족의 삶에 비하면 너무도 안정적인 삶이었던것이다.
자신들의 땅을 바탕으로 철도공사현장에서 땀을 흘리는 아빠, 학교 선생님으로 흑인들의 자존심을 지켜나가는 엄마 그리고 의지가 강한 할머니까지 그 든든한 가정의 울타리에서 캐시는 하나의 인격체로 올바른 성장을 하게된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고 사회를 알아갈수록 캐시의 눈에비친 사회의 현실은 그 조그마하고 자존심 강한 소녀가 감당하고 인내하기엔 너무도 불평등했다.
그들이 인종적 우월감을 내세운 흰피부와 검은피부는 지식과 정신에 바탕을 둔것이 아니라 단지 가난과 부의 상징일뿐이었는데 혹시나 자신들의 권리를 빼앗길까 책도 못보게 했던 그들의 비열함을 무엇으로 변명할수 있을까 ! 생존을 담보로삼아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고 지켜온 자존심앞에 그들은 과연 떳떳한 마음이었을까 ?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불평등을 겪어야만했던 캐시의 눈에 비친 흑인들의 인권침해의 모습은 과연 그들이 21세기를 주도하고 있다 자부하는 그들이란 말인가 싶어진다.
하지만 이건 비단 그들만의 모습은 아닐것이다. 좁은 땅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가진자의 특권을 이용 약한자를 짓밟으려 하는사람이 있을것이고 남보다 우월하다는 착각속에 소수를 하찮게 여기는 사람도 나라도 있을것이다. 똑같은 사람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대하고 살아가야 하는것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을 해보며 인권은 그누구가 대신해주는것이 아닌 스스로 지켜내야하는것임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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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를 보면 할 말이 많은 듯 하면서, 무엇인가 결연한 의지를 담고 있는 듯한 흑인 소녀의 얼굴이 시선을 사로 잡는다. 그 소녀는 바로 이 책의 주인공 캐시이다.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모험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왕성한 캐시와 오빠 스테이시 남동생 크리스토퍼 존과 리틀맨, 엄격하지만 다정한 아빠와 엄마 그리고 할머니와 단란하게 살아간다.
대부분이 백인들의 소작농이었던 다른 흑인들과 달리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노력으로 목화밭, 땅을 소유하게 된 캐시네 가족은 백인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받지만 다른 소작농들이 결코 내세울 수 없는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 가정이다.
하지만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백인처럼 학교 가는 버스를 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백인학교 기사는 버스로 이들을 위협하여 미시시피 강의 흙먼지 속으로 가두고, 붉은 진흙탕 속에 빠뜨리는 일은 예사로 당하고 산다. 노예해방이 선언 되었지만 그들의 삶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살 수 밖에 없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의 주변을 돌아 보면 어떤가? 다문화 가정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 요즈음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을 던져 주는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단순히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류 인간이 되어 대접을 받는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이야기 아닐까?
캐시 가족에게서 제일 인상적인 점은 주관이 뚜렷한 어머니와 땅을 지키려 노력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들 수 있다. 만일 내가 그 지경에 처해 있다면 비관하는 태도만 보여 주는 어머니가 아니었을까?
' 천둥아 내 외침을 들어라저 강 너머 머지 않아 한 남자가 채찍을 들고 달려온다
나의 딸과 같은 캐시의 결연한 외침을 마음 속에 새기며 지금도 계속 되고 있는 부당한 인간 대우의 모습은 언제나 사라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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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에 관한 차별 그리고 그에 따르는 인권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너무도 당연한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갈망을 투쟁이라는 것을 통해 얻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우습기도 하다. 남북전쟁의 결과로 인해 그들의 입장이 단박에 달라지길 바라는 것은 그리 쉽지가 않다. 사람들의 생각과 습성을 고쳐 나가기 힘든 것처럼, 그동안 등한시 하던 이들을 동등하게 대한다는 것은 단지 바뀌어진 규정사항일 뿐이라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자신의 능력과 권리에 따른 당당함을 누리는 것이 마치 잘못된 것처럼 여겨야 한다면,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 되고 말것인데....... 법률상의 권리는 실질적으로는 무의미한 것이 되어 있는 듯하게 느껴진다. 오히려 그러한 것을 빌미로 하는 장난과 같은 가벼움 아니면 그 반대의 가혹하고 비열함이 난무하게 되었으니....... 그러나 할아버지는 자신들의 땅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때엔 그보다도 확실한 것이 있을 수 없었으니까. 그러한 디딤의 터전이 있어서 조심스럽게 가꾸어가는 삶의 현실은 늘상 불안하다. 그러나 그 어떤 동요나 불안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은 부모의 노력으로 평범한 일상을 맞이하는 날들만이 될 수 없기도 한다. 아이들도 나름의 생각과 가치관이 있기에 부당하고 불평등한 처사에 눈을 떠가게 된다.
왜 아버지를 비롯한 이들이 힘겨워 하면서도 맞서야 하는지를 알게 되어 가는 것처럼, 케시는 다부진 다짐을 하지 않았을까. 비록 지금은 약자로, 피해를 보는 입장이지만 그들처럼 행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으로....., 인간의 권리는 보여지는 피부의 색깔, 가진 것의 유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중요한 사실을. 한 때 우리들도 그러한 신분의 차별로 인한 갈등을 겪었던 것처럼, 쉽사리 동화되지는 못했지만 꾸준한 노력함이 있었기에 안정적 균형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잣대의 기준이 무용지물이 되는 인간적 차별은 없어져야 한다는 것에 동감하면서.......
그들 모두가 바라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고 의미 심장한 것이란 사실을 느껴 갔으면 한다.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 없었기에 가벼이 행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담담히 전하고 있는 캐시의 말에 우리 모두 큰 울림을 전해 들은듯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까닭을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맞서서 굴복하지 않았기에 이제는 힘겨운 과정들의 골은 메워가고 있는 상황이라지만 혹여라도 한켠에서 그러한 구분을 해 나가려는 탐욕스런 마음이 생겨 있다면 다시금 반성하고 되돌려 어우러져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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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내내 몇번이나 앞표지의 그림을 보고 또 보고하였다. 표지 가득 당찬 표정을 하고 있는 주인공 캐시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시시때때로 가슴 한구석을 찌르르하게 찔러댄 탓일까.......
저자 밀드레드 D. 테일러의 또다른 작품 <대지여 꿈을 노래하라>에서 인종차별로 인한 유색인 폴의 성장을 통해 의지로도 결코 넘을 수없는 가혹한 현실과 그럼에도불구하고 꺾일줄 모르는 폴의 집념이 보여주는 인간의 의지를 읽으며 가슴뭉클했던 감동이 아직도 남아서인지 당찬 소녀 캐시가 폴을 떠오르게하였다.
인종차별의 종지부가 될 것만 같던 남북전쟁에서 북군의 승리는 캐시를 비롯한 당시 흑인들에게 아직은 현실로 느끼기엔 멀기만 하다. 아직은 백인들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땅 한 조각 가지지 못해 이른바 소작을 하는 흑인들과 달리 캐시의 할아버지가 구입한 땅이 있어 그나마 겉으로는 백인들과 다를 것없어보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게, 더욱 두려운 백인들의 화풀이와 같은 횡포는 미개한 동물들보다도 더 잔인하게 다가왔다.
땅을 가진 덕분에, 그리고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엄마의 조심스런 보살핌으로 아직은 집밖의 냉혹한 현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오빠 스테이시와 캐시 그리고 동생들.
나이를 먹고 철이 들어가고 생각이 깊어지는 만큼 보이는 것도 판단하는 것도 커지는 탓일까......캐시는 어느새 마주치는 현실 하나하나가 머릿속의 생각과는 달리 공평하지도 정당하지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임을 알기시작한다.
백인 아이들이 보고 또 보아서 마치 걸레조각이 된듯한 헌 책들을 은혜로운 선물인양 감사히 받으라는 학교측의 태도나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릴리안 진에게 알 수없는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나 흰 피부를 가진 마을사람들이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대하며 같은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잔인함을 서슴치않는 행동과 같은 것들이 하나둘 커가는 캐시에게 감지되기 시작한다.
어린 캐시에게 아직은 이해할 수 없는 바깥 세상의 두려운 현실에 당당히 그리고 용감히 맞서고자하는 아버지와 삼촌, 모리슨씨의 모습은 점점더 명확하게 현실을 마주하게 하는 것 같다.
단순히 백인들의 인종차별이나 그에 맞선 흑인들의 저항이라는 주제로 단정하기엔 캐시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너무 사실적이고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문득, 잔인한 인간의 우월성이나 차별성은 과연 백인들의 인종차별에만 국한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겨난다. 그 정도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다르지만 우리 사회에서 빈번히 야기되고 있는 왕따문제 또한 인간의 우월성이나 차별성에 기인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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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자애롭지만, 강직하며 자신이 세운 원칙을 결코 굽히지 않았고, 또한 강한 의지를 갖고 있어서 가족들을 비롯하여 조언을 구하거나, 지혜를 빌리고자 하는 모든이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신 모습, 딸에게 책에 나오는 역사보다는 자신의 증조부모님의 이야기, 노예제도의 역사이야기, 그리고 노예제도 이후의 역사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는 작가의 아버지의 모습이 책속에 고스란이 담겨져 있는것같아 캐시의 미래모습이 밀드레드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삶은 자유롭지 못하지만, 정신만은 자유롭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노예해방이 된지 70년이 지난 미시시피주 스포케인 카운티의 흑인가족이야기. 할아버지가 사놓은 땅덕분에 남의 소작농을 하지는 않을정도의 여유는 있었지만, 목화농사만으로는 은행대출금과 세금을 낼수 없어서 아빠는 철도공사장일을 하고, 엄마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리키고 계신다.
태어날때 피부색을 선택할수도 없고, 부모를 선택할수도 없어 일단 세상에 태어나면 삶을 무엇으로 채울까 하는 선택이 주어지는데, 그 선택속에서 자신의 삶을 멋지게 가꾸어 나가는것은 자신이며,누군가가 자신의 것을 빼앗고, 끌어내리려고 할때 내버려두느냐, 마느냐 역시도 스스로에게 달려있다는것을 자식들에게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삼촌 할머니의 용기있는 행동들이 오빠 스테이시, 캐시, 크리스토퍼 존 그리고 리틀맨의 사고에 커다란 영향력을 준다.
피부색의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백인들이 출입하는 상점에 마음대로 출입할수가 없고, 백인들이 사용하던 교과서를 10년이 넘어 너덜더널해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야하고, 그들과는 친구가 될수없고, 백인에게 잘보이려고 애썼던 티제이의 비굴한 행동과 안타까운 감옥행..책을 읽는동안 캐시가 되어 함께 분노하고, 불안에 떨었다.
이름만 달리할뿐 아직도 피부색으로 인한 차별은 남아있다. 용기가 없어서 티제이처럼 쉽게 포기하고 현실에 순응해버리는 많은 사람들속에서도 캐시처럼 물러서야 할 상대와 맞서 싸워야할 상대를 스스로 판단하고,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존경받는 사람들이 있다. 티제이와 대지를 위해 눈물을 흘릴줄 아는 캐시의 앞날이 순탄하지는 않겠지만, 부당함에 맞서싸우는 캐시의 모습에서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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