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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어디에. 그런 물음은 어리석다. 네 마음에 있다. 진부하고 공허한 답변이 삶과 앎의 배경음악처럼 늘 울리지만 구체적인 행복은 좀처럼 손 안에 쥐어지지 않는다. 행복에 대한 담론 쯤이라고 해두자. 그게 더 맞다. 답이 없다.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직접 답을 구하지도, 주지도 않았다. 행복이란 그런 것이다. 쉽게 이게 행복이다 저기에 행복이 있다 라고 말하면 사기가 되는 것. 그게 행복이다. 대신 상처와 치유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상처와 치유를 떠나지 않고는 행복이란 단어가 있을 수 없는 걸까? 존 부룩만의 에지 재단에서는 전세계 여러 분야의 많은 대표 석학들에게 한 가지 주제 하나의 문장으로 된 질문을 주고 글짓기 숙제를 내준다. 그걸 다 모아다가 책을 낸다. 그렇게 각 분야에서 가장 선두에 선 석학들이 내놓은 대답을 따라가면 그 답들의 교집합이 진리를 향해 뻗어간다고 존 부룩만은 믿는 듯하다. 그러나, 각 분야의 가장 뛰어난 석학들이 자신이 가진 최고 지식을 반영해 내놓은 대답은 모두 제각각이고 하나로 수렴되지 못한다. 그 제각각의 답들 중 무엇을 얼만큼 취해 어떤 방식으로 조함할 지는 독자의 몫이다. 이 책 역시 '17명의 대표인문학자가 꾸려낸 삶의 프레임'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어 에지 재단의 책처럼 그들에게 '행복'이라는 주제의 에세이를 걷어들여 묶은 것일 거라 생각했다. 그 경우 모 아니면 도다. 숙제하듯 마지못해 쓴 글들이 있을 수 있고 세계 최고 석학 최고의 글들도 만날 수 있다. 오판이었다. 저자가 직접 쓴 책이었다. 언론인 백성호님은 행복이라는 화두를 들고 직접 한국의 대표 인문학자 17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나서 서로 이질적인 17인들의 생각들을 자신의 언어로 모아, 독자 사이에 푹신한 쿠션을 만들었다. 학자들이 제시하는 길을 따라 작가가 리드하고 독자와 함께 걷는다. 그들은 음악, 미술, 심리, 철학, 미학, 동양신학, 뇌과학, 건축, 천문학, 시인, 등 온갖 종류의 필드에서 대표적인 전문가들이었다. 저자는 자신이 만난 인문학자들이 그들의 학문 경계 내에서 통용되는 조금 일반적이지 않은 단어를 쓰면, 독자가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그 경계를 허물어 내고 전문적인 말의 개념과 뜻을 쉽게 풀이했고, 그들의 생각에 자신의 해석을 보태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다듬었다. 이해해야 하는 개념을 공감할 수 있는 문장으로 바꾸었다. 그래서 과학도, 신학도, 철학도, 종교도, 심리학도 저자를 통해 산문이 되었다. 그는 서문에 '각 분야에서 자기 나무 한구르를 꿰뚫은 그들은 그 나무를 통해 전공 분야를 넘어 더 큰 세상을 조망하고 있었으며 이 책은 그들이 바라보는 풍경을 이어붙인 삶의 지도'라고 썼다. 백성호가 만난 사람들 이들은 한국 대표 인문학자지만, 내가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다재다능한 미학자 진중권,역사연구가 이덕일, 통섭을 추구하는 동물학자 최재천, 가야금 명인 황병기, 기생충 학자 서민, 과학철학자 장하석 정도다. 진중권과의 대화는, 그의 다른 책이나 에세이에서도 했던 말의 반복이지만, 언제나 명쾌하고 쾌활했다. 힐링 이데올로기에는 상처와 근원을 외면하려는 얄팍함이 숨어있음과 함께 예술이 감동과 함께 힐링에만 의존하게 될 경우 상처를 부르는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게 되고, 모든 문제를 개인적 차원으로 귀결시키면서 패비주의로 전락할 우려가 있음을 지적했다. 예술의 시각에서 행복에 대한 담론애 접근해가는 과정에 소수자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본질을 꿰뚫는다.
그렇다. 그는 행복을 말하는 여정에 소수자의 아픔과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 안에서 예술의 역할을 역설했다. 또한 삶이 게임이 될 때, 우리는 상처와 고통 속으로 깊이 빠져들지 않는다며, 영화를 보면서 빠져드는 고통과 상처에 허구라는 울타리가 지켜주듯, 삶을 살아가는 데에도 적절한 가벼움과 적절한 즐거움을 비벼가면서 삶을 놀 필요성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바로 이러한 태도가 변씨와의 언어 유희, 옳고 그름을 떠나 다수라는 폭력적 인터넷 답글에 맞서는 소신있는 자세를 설명한다. 중요한 것은 남의 욕망이 아니라 자기의 욕망을 추구하는 데 있으며 살다가 삶이 자기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에는 삶의 노선을 수정할 것을 권유한다.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가 바라보는 상처와 치유에 대한 통찰이 인상 깊었다. 그는 내가 스스로 만든 불일치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행복이라고 했다. 대뇌피질이 자신의 예측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때 상처를 받으며 내가 어떤 일에 대해 특정한 기대나 바람을 가질 때, 그게 어긋나면 고통이 시작되는데, 가끔 신체 기관들이 전해 준 정보를 전기적 신호로 바뀐 것을 잘못 해석해 뇌가 속임수를 당하는 일이 벌어지므로, 진짜로 아픈 건지 돌이켜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건축가 김개천은 자신의 작품 <한칸집>을 소개하며, 자기 것이 많으면 지키려 하고, 지키려다 보면 바깥을 향해 닫히기 일쑤라는 말과 함께, 비어있는 것들은 손에 잡히지 않지만 그 비어 있음으로 인해 자연이 흐르고 생명이 흐른다고 답하였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나미는 불행 없이 행복이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자기 안의 행복과 불행을 잘 볼 수 있느냐를 물어봐야 한다고 말한다. 상처와 치유에 대해서는, 환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본인을 객관화시키는 과정이 치유의 과정이라고 했다. 나는 <온도계의 철학> 캠브리지대의 석좌 교수 장하석의 말이 가장 좋았다. 그는 <과학 혁명의 구조>를 쓴 토머스 쿤의 말을 빌어, 과학은 빅뱅 이전의 문제와 같은 심오하고 답이 안나오는 뿌리 깊은 문제들을 접어 놓고 나서야 비로서 접근할 수 있다며 한 후, 과학과 철학, 혹은 과학과 종교 그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 건 결국 인간이라며, 당대 과학이 생각하고 바라보는 틀 '파라다임'이라는 용어를 되짚었다. 그 파러다임의 틀 안에서 어떤 현상이 설명될 수 있으면 과학이고, 그렇지 않으면 과학 밖의 영역이 된다. 그래서 과학이란 전쟁과 함께 국경이 바뀌듯 그 경계가 계속 바뀌는 것이며, 절대적인 철학, 절대적인 과학 이란 것은 없다, 아 이렇게 하면 풀리겠네 하고 과학적으로 방법을 찾으면 신의 영역이었던 부분이 그 때부터 과학으로 바뀐다, 그러니 우리가 과학으로 알고 있는 것들도 언젠가는 선조들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던 믿음처럼 한순간 허물어질 지 모르는 것이다. 그의 요지는 이 점이다. 인간의 삶에도 패러다임이 있다. 그것은 각자가 세상을 보는 틀에서 만들어진다. 세상은 우리가 만든 틀 안에서 벗어나기 일쑤이며 그럴 때마다 우리는 불행해진다고 했다.
역사학자 이덕일은 시간은 직선이 아닌 순환의 고리라는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미래에 대한 선택은 현실이 되고, 다시 과거가 된다. 과거는 또 미래를 선택하는 중요한 단초가 된다. 다시 시간이 흐르고 우리 시대의 삶이 100년 전, 200년 전, 500년 전의 역사가 됐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떤 거울로 기억될까. 라고 물으며 인간은 돈과 권력이 아니라 가치를 추구할 때 행복하다는 답을 전한다. 동양철학과 고전에 능통한 한형조는 유교에서 행복을 찾는다. 자신에 대한 비난이 정당하면 자기 발전의 밑걸음으로 삼고 부당하면 무시하면 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유교는 성찰의 학문이지 위로의 학문이 아니다. 라는 말로 행복에 대한 자신의 가치를 이야기 한다. 그 역시 우리사회가 위로라는 설탕을 과잉 투여해서 당뇨병에 걸릴 지경이라고 말하며 힐링 산업의 얄팍한 속성을 주지시킨다. 주어지는 운명에 순응하되 그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능동성도 지니라고 말한다. 어설픈 위로에 대한 기대를 접는 일,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 길, 상처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일, 그것이 유교적 방식의 행복으로 향하는 길이다. 저자가 만난 거의 모든 학자들이 상처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답을 하는 과정에서 자기 이야기를 경험을 늘어 놓는다. 상처를 말할 때 자신의 경험 없이는 이야기가 안되는 것처럼. 내놓으라 하는 학자들도 상처를 이야기하는 도중 본인을 객관화하고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는 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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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는 자신의 시에서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 그저 행복이라는 한 가지 의무뿐.” 이라고 노래했다. 헤세는 행복이라는 것이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의 의무라고 했다. 권리도 아니고 의무. 하지만 길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당신은 행복합니까?’라고 물어보면 몇 사람이나 행복하다고 답을 할까. 아마도 불행하다고 답을 하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답을 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행복이라는 의무를 가지고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은 왜 행복하지 못할까. 행복하지 못하는 우리네 삶은 어디에 문제가 있을까.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이라는 것이 과연 실체는 있는 것인가. 그건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을까. 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이 책은 찾아 나선다.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나름의 성취를 이룬 대표적인 인문학자 17인에게 물었다. 행복은 어디에 있는지 철학, 문학, 음악, 건축, 종교, 신화, 심리학, 의학, 과학 등의 분야에서 그들은 자신만의 나무 한그루를 키워냈다. 그 나무를 통해 그들은 세상을 꿰뚫어 본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의 분야를 넘어 더 큰 세상을 바라본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견을 이룬 이들이 말하는 행복에 대한 정의는 묘하게 닮았다. 서로 다른 분야의 17명의 인문학자들이 그려낸 행복의 지도는 17장의 조각들을 모자이크 했지만, 이질감 없이 애초에 하나의 지도를 찢어놓은 것처럼 서로 잘 어울린다. 이 조각들이 모여져 행복에 이르는 하나의 지도가 완성됐다. 이제 그 지도를 따라 가보자. 현대인은 불행하다. 그래서 행복의 원인을 찾기보다는 역설적으로 불행의 이유를 찾는 것이 더 빠를지도 모른다. 불행은 원하는 바가 성취되지 않음으로 인해 가지게 된 불만이다. 현대인은 끊임없이 자신을 누군가와 비교한다. 자신의 삶을 살면서 그 삶을 전혀 상관이 없는 남과 비교한다. ‘나’를 살면서 ‘너’를 추구하는 것이다. ‘나’와 ‘너’는 근본적으로 다른데 끊임없이 ‘너’를 통해 ‘나’를 조망한다. ‘나’는 ‘너’보다 가진 것도 없고, 잘나지도 않고, 능력도 없고 등의 다양한 이유를 들어 스스로 상처받는다. 비교로 인한 상대적인 박탈감도 갖는다. 그 박탈감은 상처로 남는다.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아물어간다. 한데 현대인은 끊임없이 그 상처를 후빈다. 그러니 흉터가 될 수밖에. 현대인이 불행의 이유는 그 흉터 때문이다. 그럼 반대로 그 상처를 해소하면 불행도 해소되고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저자는 물었다. 17명의 인문학자들에게. 상처가 무엇인지? 그들은 상처란 틀, 규율, 형식이라고 한다. 때로는 도덕과 온갖 계명이라고 한다. 세상적인 틀도 ‘나’가 아니 ‘너’가 만든 것이다. 난 ‘나’의 틀대로 살면 된다. 하지만 우린 ‘너’가 만든 그 틀과 규율, 행복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해야 되고, 무엇을 가져야 된다는 그 틀에 얽매여 스스로의 삶에 생채기를 낸다. 그 틀에서 벗어나는 것,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상처로부터 벗어나는 길이고,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의 논리이다. 행복하기 위해선 먼저 상처의 치유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즉 상처가 없으면 아픔도 없다. 아픔이 없으면 불행도 없다. 불행이 없어야 행복할 수 있다. 상처가 없으면 근원적으로 행복한 존재라는 것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라고 묻는 것 자체가 하나의 틀과 형식을 만드는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돈이 많아야 하고, 이런 저런 조건을 갖추어야 하고, 이런 저런 모습을 가져야된다고 현대인이 생각하는 그 자체가 하나의 틀과 형식을 만드는 것이다. 그 틀을 채우기 위해, 그 형식을 만족시키기 위해 ‘나’를 버리고 ‘너’로 살아간다. 오늘의 행복을 뒤로하고 내일의 행복을 추구한다. 그 틀을 채울 때까지 불행하다. 어떻게 해서 그 틀을 만족시켰다고 해도 만족해버린 틀은 더 큰 틀을 만들어낸다. 또다시 새로 만들어진 그 틀을 쫒아 자신의 현재를 포기하고 확정되지 않은 미래를 갈구하며 달려 나간다. 그러니 지금 살고 있는 현재가 행복하지 않다. 현재가 행복하지 않는 이가 내일이 행복할까? 인문학자들은 참된 행복이란 ‘틀이 없는 것이다’고 한다. 틀을 무시하고 자아(ego)의 부름대로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한목소리로 이야기 한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세상적인 기준과 틀에서 벗어나더라도 자아의 목소리에 응답하는 것, 그게 행복의 시작이란다. 여기에 소개된 17명의 인문학자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견을 이뤘다. 하지만 그들은 그 성취를 위해 ‘너’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그저 ‘나’의 시선으로 ‘나’의 삶을 살았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전문가의 반열에 올랐다고 고백한다. 자고로 좋은 책이란 사색꺼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이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은 좋은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한 인문학자들은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이 살아왔던 삶의 이야기를 반추하면서 그 속에서 사색을 통해 진실을 캐기를 원한다. 현대인은 보이지 않는 행복을 보이는 물질로 대체한다. 하지만 물질은 인간에게 순간의 만족은 줄지언정 행복을 준적은 없다. 현대인이 주고받는 인사처럼 “행복 하세요”가 무슨 의무라도 되는 듯 모두에게 강요된 시기는 없었다. 행복하지 않으면 마치 커다란 죄악을 짓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모두가 행복한데 나만 불행한 것처럼 상대적인 박탈감에도 허덕인다. 행복하려고 애를 쓰는 것도 하나의 틀을 만드는 것이고 하나의 욕망을 만드는 것이다. 이루어지지 못한 욕망은 우리에게 상처로 남는다. 채워지지 못한 원願은 우리를 행복과 멀어지게 만든다. 인문학자들은 말한다. 행복이란 만족을 아는 것 그리고 멈추는 일. 그건 ‘내게 없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게 있는 것’을 찾는 일이다. (203쪽)고.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 둘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게 뭘까. 무엇을 보느냐다. ‘내게 이미 있는 것’을 볼 줄 아는 사람과 ‘내게 없는 것’만 보는 사람. 이 둘의 차이다.(160쪽) 고.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벨기에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가 쓴 아동극인 〈파랑새〉에 보면 동일한 소재의 이야기가 나온다. 행복이라는 파랑새를 찾아 남매는 먼 길을 떠나 많은 모험을 한다. 하지만 끝내 파랑새를 찾지 못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그들은 집에 돌아온다. 하지만 결국 그들이 찾는 파랑새는 집안의 새장에 있었다는 이야기처럼 행복은 먼 곳이 아닌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와 같이 생활한다. 그 파랑새를 발견하고 못하고는 바로 우리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가에 있다. 톨스토이는 〈세 개의 의문〉이란 글에서 행복론에 대해 세 가지 질문에 자문자답했다. 첫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둘째는 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셋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그렇게 먼저 물었다. 그러고서 “현재다, 현재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현재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에게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일이다”라고 차례로 답했다. 현재라는 중요한 시간 속에 만나고 있는 사람이 내게 필요한 사람이고, 그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일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이게 ‘톨스토이의 행복론’이다. 현재를 놓치지 말고 필요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그 사람이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일, 이타적(利他的)인 삶을 행복, 곧 자신의 삶의 가치라 한 것이다. 행복은 바로 우리가 사는 우리의 일상에 있다. 지금 이 순간 내 삶이 머무는 곳에 있다. 단지 우린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아니 그게 행복인지를 모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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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의 벚꽃 나무 아래에서 단체 사진을 찍으며 5월에 떠날 수학여행 생각에 설렘을 유보하고 학업에 전념하던 중 접한 세월호 침몰 사건은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동년배가 겪었던 불행이 나의 아픔으로 깊숙이 자리한다는 것을 나이 들어서 뼈저리게 느끼며 지낸다. 생면부지의 사람이지만 같은 나이의 사람이 고초를 겪으면 그 고통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어쩌면 동시대를 관통하는 습성에 기대어 살아와서 인지도 모른다. 재난 공화국이라는 오명(汚名)이 따라다닐 때마다 인간을 중심에 두고 유기체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인문학적 고찰이 시대의 화두처럼 떠오른다.
인간을 중심에 두고 추구하려는 가치를 탐구하고 표현하는 활동 속으로 들어가는 길에 열일곱 명의 인문학자가 함께 하여 행복한 삶의 프레임을 찾아가는 조력자로 나섰다. 세속적인 잣대로 자신의 삶을 규정하고 타인과 비교하여 열패감을 안고 사는 이들에게 행복은 자리할 여지가 없어진다. 욕망하는 것을 소유하지 못하여 괴로워하고 가진 자를 시기하며 상처 받고 반목하는 생활에 앙금처럼 남아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자연을 통해 조절하고 치유하는 방법을 택할 수 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 햇살 아래 나설 수 있는 건강이 허락된 시간이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은 나이 듦에 따라 이미 내게 있는 것을 누릴 수 있는 현실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만족을 알고 멈출 때를 알아 멈출 때 행복은 가까이에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고 동양신화 전문가는 말하였다.
가르치는 일에 종사한 지 25년째이지만 교단에서 학생들과 수업하는 시간이 축복으로 여겨진다. 지금하고 있는 일이 내가 원하던 일이었기에 교단에서 삶의 에너지를 얻으며 지낸다. 아름다운 방황을 지속하는 청소년들을 역동성을 중시하는 최재천 교수의 글은 편안함을 추구하며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게 최상이 아님을 일깨운다. 제자들과 소통하면서 자식 농사를 말할 때면 위축되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는데 근시안적인시선으로 자식의 잠재성을 고려하지 않고 등급만으로 아이를 재단하며 가슴에 상처를 준 것은 아닌지 성찰한다.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이 세대가 자신의 가능성을 스스로 탐색하도록 돕는 이로 자리할 때 성숙한 성인으로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더불어 행복한 삶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부모 곁을 떠날 자식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집중하는 가운데 그 일에 책임을 지며 살 수 있게 가정에서 훈육할 필요가 있음을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명확히 하였다.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고 한 몸을 눕힐 공간도 마땅치 않은 유배지에서 18년 동안 생활한 다산 정약용은 강진으로 귀양을 왔을 때 이제야 겨를을 얻었다며 하늘이 기회를 준 것이라 반기며 절망의 순간을 환희의 순간으로 바꿔버린 일화는 긍정의 힘을 생각게 한다. 긍정적인 생각은 내적 근육을 키워 너머의 세상을 들여다볼 줄 아는 개방성을 길러준다. 생각하는 영화를 만드는 대해 스님은 아무런 잣대나 선입견을 미리 세우지 않을 때 우리는 열린 채로 행복을 연출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였다. 욕심 부리지 않고 가야금 소리를 더 낫게 만들어야겠다는 간절함으로 벽을 넘어서는 예술가로 몸과 마음에 힘을 빼고 악기를 연주함으로써 가야금 대가의 위상을 잇는 황병기 명인은 때때로 가야금을 연주하며 즐거움을 찾고 있었다. 기생충 박사로 저명한 서민 교수는 낮은 자존감으로 방황이 깊었던 시절 적성 검사에서 나온 결과 하나를 믿고 안간힘을 써서 공부하여 서울대 의대를 진학해 어린 시절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인생의 전환점을 찾았다고 회고하였다. 기생충에 대한 편견으로 무용지물로 여기며 퇴치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과욕하지 않는 가운데 기생충 연구로 면역체계의 균형을 잡아가는 연구 속에 행복이 깃들어 있었다.
27년간 영어(囹圄)의 몸으로 살게 한 이들을 용서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넉넉한 힘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외부의 공격이 야기하는 고통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차이가 있음을 밝히며 고통을 성장의 양분으로 삼은 사람들의 태도는 자신의 벽을 허물고 다시 일어서는 힘을 얻을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게 한다. 알게 모르게 겪는 성장통은 온전한 나를 찾아가는 길에 고통 역시 행복 자리를 마련해주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며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집을 벗어나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답을 찾아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갈 때 나도 모르게 즐거움으로 물드는 행복한 인생으로 화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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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돈을 벌고 싶은 욕망 등등 에는 결국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간절히 원하는 행복... 주위를 둘러보아도 겨우 현상 유지를 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생활이 나아졌다는 사람들은 없고 더 힘들고 어렵다고 하소연 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행복한 것은 아닌데도 이상하게 행복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기반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는 뿌리 깊은 인식이 나 자신에게 존재한다. 행복의 기준이 진정 무엇이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이야기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17명이나 되는 우리나라의 대표 인문학자들이 들려주는 행복한 삶을 위한 프레임을 통해서 내가 추구하는 행복한 삶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책에 나오신 분들 중에는 아는 분들보다는 모르는 분들이 더 많았다. 각 분야의 전문가가 들려주는 행복에 대한 이야기가 더 궁금했다. 건축가 김개천씨는 처음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는 것도 많지만 행복은 아니다. 각자가 추구하는 행복에는 정답이 없다. 갖고 있는 것이 많으면 지키려고 한다. 지키려는 마음으로 인해 바깥을 향해 닫히게 된다고... 비어 있어야 새로운 것이 들어오고 다시 자연으로 흘러 나간다. 불편함이 느껴지는 한옥을 열린 공간을 바라보며 아파트가 가진 획일화된 모습에 대한 이야기는 나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정답은 없지만 누구나 갖고 있는 비슷한 행복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하고 곧 그것이 행복이다.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이신 홍삼수 교수님.. 교수님은 항상 운명적인 터닝 포인트를 맞아 지금의 자리에 계시다. 이렇게 운이 딱딱 맞게 좋을 수가 있을까 싶지만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크기에 그 마음이 하늘에 닿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인기 없는 학과에 엎친데 덮친 격인 집안 사정에도 대책 없이 미국 유학을 생각한다. 친구의 도움으로 무작정 유학길에 오르고 어렵다던 장학금을 받게 된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 나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별이다. 어떤 모습으로 빛을 내느냐는 결국 자신의 몫이다. 원하는 삶을 위해 가치 있는 간절함을 품어야 한다.
요즘 뉴스를 통해 연일 시끄러운 사건들이 몇 개 있다. 유병언 사인규명과 김수창 제주지검장의 성추문... 특히나 유병언 세모그룹 회장을 둘러싼 국과수 사인규명에 의문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 국과수는 그 수준이 세계적이라고 한다. 헌데 국과수의 초대 원장이 여자였다니... 바로 정희선 전 국과수 원장이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화학분야을 좋아하고 당시의 일반적인 여성의 삶이 아닌 국과수에 들어간다. 일 같은 일을 주지 않는 것에 불만을 갖기 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고 당당히 말한다. 첫 번째 가짜꿀을 가려내는 1년의 시간을 실험에서 보낸다. 그녀의 노력은 곧 대형 사건을 통해서 매번 확인받게 된다. 나아가 선진국의 과학 수사 기법을 배우기 위해 남자가 아니면 뽑히지도 않고 힘들다는 장기 유학생으로 가게 된다. 우리가 익히 아는 굵직한 사건들의 진실을 밝혀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낸다. 한마디로 대단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다. 자신이 선택한 일을 사랑하는 마음이 곧 행복이라는 그녀의 당당함이 멋지다.
이외에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최재천 교수님, 영화를 사랑하는 대해 스님, 진중권 교수, 얼마 전 강의를 통해서 역사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이덕일 교수 등등 많은 분들의 이야기는 행복한 삶의 모습이 본인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을 향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국가 위상이나 경제적으로 이렇게 짧은 기간에 놀라운 모습을 보인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을 정도로 세계인이 놀라는 대한민국.. 허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OECD 국가 중에서 그리 높지 않다고 알고 있다. 나라의 모습과 달리 일반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삶의 만족도나 행복은 왜 이렇게 낮은 것일까? 이런 현상이 한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으로 갖고 있는 우리 교육, 사회전반에 걸친 문제라고 한다. 공부만을 최고로 치고 공부를 잘해야 좋은 대학, 일류 기업 또는 의대, 로스쿨과 같은 사람들 특히나 어른들이 선호하는 직업만을 좋은 직업으로 생각하고 거기에 끼기 위해 다른 것들은 무시되고 오로지 과중한 공부에 내 몰린 교육현실...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막상 내 자식이 다른 자식보다 뒤처지면 어떡하나 하는 조바심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했는지... 지금 다시 자식을 키운다면 자신이 잘 할 수 있으며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인데 여전히 나는 아들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하는 이중적인 엄마의 모습을 다 버리지 못했었다. 책을 읽으며 내 자신을 자꾸만 반성하게 된다. 세상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여기는 몇몇 모습의 삶도 분명 중요하다. 허나 진정 행복은 온전히 개인적인 영역이다. 아들의 행복을 위해... 좋아하고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좀 더 귀 기울이며 그 길을 향해 잘 나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복돋아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조건이 충족되어야 행복할 수 있는 게 아닌데도 행동은 그렇지 못하다. 17명의 석학들이 들려주는 행복... 고통스런 힘겨운 시간을 이겨냈기에 지금 현재의 자리에 그들이 있다. 책장 맨 뒷장에 17인의 인문학자들은 자신들의 인생을 바꾼 '내 인생을 바꾼 책'이 수록되어 있는데 관심 있는 석학들이 감동 받은 책을 찾아서 읽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
17명의 대표 인문학자가 꾸려낸 새로운 삶의 프레임 인문학이라는 건 인간과 학문의 존재론적인 가치와 이유를 제공하는 것이라야 해요 사람들은 지식을 쌓아서 입신양명하는 것을 공부라고 생각해요 틀렸어요 공부는 다른 입장에서 나를 보는 연습 중요한 것은 내삶의 이유를 나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거예요 행복은 어디에 있나,어떻게 행복을 만드냐의 질문에 대한 답을 이 한권에 모아졌다 한그루의 나무를 알아야 숲을 알 수 있듯 여기 만난 17인의 고수가 철학,문학,음악,건축,종교,신화,심리학,의학,과학등의 분야에서 자기 나무 한 그루를 그들은 꿰뚫고 있었다 사람들은 외관상의 아픔과 불편은 바로 고칠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마음의 굽어져 있는 것은 왜 고치려하지 않은지 자기를 모른다는 것과 굽은(병든) 마음이 고착되고 서로 유착된 상태 상처의 근원은 무엇인가,,,상처의 시대 현대는 직장 내의 스트레스 경재으이 압박이 가져오는 부담속에서 매일매일 먹고 살기 위해 경쟁속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항상 허우적거리면서 짜증과 온갖 두려움 불평 불만으로 가득히 만족이라는 것 없이 마음의 병만 깊어만 가는 세상속에서 갈등과 상처로 괴로워하고 있다 퇴계 이황이 완고함을 바로잡다 라는 뜻으로 그 완고함이 고집과 편견의 토대이자 동인이 되는 사적인 자아 모든 사태를 자기 중심적으로 판단하고 해석하는 인간의 오래된 습성을 말하고 있다 이것이 굳어져 퇴계는 "돌처럼 경화된 이 완곤함을 풀어 나가야 소통이 된다"라고 그는 뿌리를 말한다. 첫 단추다 나와 세상이 어긋나기 시작하는 출발점 상처와 고통의 시작점 우리는 대부분 상처의 바다 고통의 광야에서 출렁이고 허덕대며 길을 잃고 출발점을 상실하고 살아가고 있다 자기 중심적이라는 속성이 상처를 만드는 공장 어떤 사람이 상처 될만 한 비난을 직면하며 과연 이비난이 정당한가,아닌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그 비난이 정당하면 자기 발전의 거름으로 삼고 정당하지 않으면 무시하면 된다 하지만 사적 자아가 강한 사람은 성찰해 보기도 전에 감정적으로 튀는 반응을 보여 성처를 더 증폭시키게 된다 상처 받은 자들에게 위로를 주고 힐링으로 많은 단체에선 유도한다 하지만 모든 문제가 나로부터 오고 나로 인해 일어난다고 말한다 상처를 있는 그대로 신랄하게 바라본다 어떤 이에게 일어난 문제는 그가 어려서부터 사람을 대하는 습관이며 ,태도며 이런것들이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 이걸 바꿔야 한다 바꾸려면 뭐가 문제인지부터 파악해야한다 자식 교육문제로 끙끙대는 세상 모든 부모가 두고두고 새길 만한 메세지 아이를 더 크게 성장시키려면 부모가 모든 걸 갖춰 주지 말아야 한다 그런 배려는 독이 될 수 있다 어느 정도 결핍을 허용하고 그속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걸어갈 수 있게끔 해야한다 인류사의 모든 문명은 결핍에서 성장하고 풍요에서 쇠퇴해 간다 결국 나를 우선으로 보는 것이 맞는 말씀 어설픈 위로에 대한 기대를 접는 일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 일 상처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일 특히 자신의 상처가 시작되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이 필수 상처로부터 배우고 고전으로부터 배워라 자기것이 많으면 지키려하고 지키려다보면 바깥을 향해 닫히기 일쑤 내 것에 대한 집착이 적은 사람은 다르다 그게 적으면 적을수록 바깥을 향해 열리게 된다 내안에 있는 건만 내것이 아니라 내밖에 있는 거도 내것이 된다 지혜로운 사람이란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포용력이 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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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논한다는 것만큼이나 복잡하고 심오한 것은 없다.그 카타고리안에 벌어지는 천태 만상의 일들은 많은 철학자와 고뇌하는 인생들을 만들어냈다.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들의 행간을 살펴보는 것이 오늘의 이 책 인문학에 묻다이다. 혹자는 인생은 모순덩어리다라고 이야기 했듯이 저자의 이야기 속에 풀어가는 인문학은 어떤 것인지 이 책속에서 답이 있는지 차근하게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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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행복, 요즘 많이 볼 수 있는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삶은 어떤 형태든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일 텐데, 단지 먹고 놀고 자고 하는 기본적 욕구 충족에서 벗어나 '행복'이라는 형이상학적 덕목을 추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내 나름의 행복을 찾아 지금 직업을 찾았지만 행복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고,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조차 없어졌다.
그래서 인문학에 묻고 싶었다, 행복은 어디에 있느냐고. 그에 대한 답이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2014, 백성호 쓰고 권혁재 찍다, 판미동 펴냄)다.
우선 저자의 이력이 범상하지 않다. 책 날개에 있는 저자 소개에 따르면 저자는 한국기독언론상 대상과 불교언론문화상 특별상이라는 전혀 대조적인 상을 받았다. 행복은 철학적인 덕목이고, 종교만큼 행복에 가까이 다가가 있는 학문도 없겠으니, 책에 대한 기대가 커진다.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는 우리나라의 다양한 학문을 이끄는 대가들 17분을 모셔서, 그분들이 생각하는 행복에 대한 의미를 듣는다. 소제목들을 보면 공자와 노자, 뇌과학, 전통 건축, 천문학, 심리학 등 참 다양하다. 각 꼭지는 학자들의 사진과 소개로 시작되어, 인터뷰에 대한 인터뷰어의 설명이 이어지고, 본문으로 들어간다. 본문에서는 인터뷰이의 삶이 펼쳐지고 그들의 학문이 펼쳐지며, 그 안에는 현대 사회에서 이분들의 학문이 행복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로 이어진다.
대학자들이 평생을 품어온 의문들, 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학문적으로 파고든 기록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홍승수 교수님을 따라 빅뱅의 현장에 가고, 요즘 핫한 미학자인 진중권 교수님을 따라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한 구절, '인간은 노력하는 한 실수하게 마련이다'(154쪽)을 만날 수 있다.
내게 가장 와 닿는 소제목은 '정말 사랑하는 일을 하고 계십니까'였다. 그런데 그 질문을 던진 사람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초대 원장 정희선 님이었다. 화려한 학력에 화려한 경력까지, 이분의 이야기는 대한민국에서 여성이 직업인으로 발전하게 된 역사와 같았다. '일에 대한 사랑'(351쪽)이 넘치는 이 글에서 나는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 열정을 본다.
나가는 말은 인도의 시인 '잘랄루딘 루미'의 시로 대신해 있고, 책에 실린 석학들이 추천하는 '내 인생을 바꾼 책'으로 마무리된다.
400쪽 가까운 이 두툼한 책을 덮고 나서도 나는 행복에 대한 감을 잡지 못했다. 이분들의 이야기는 이분들의 삶이고, 내 삶은 또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 멀리 바라보는 여유, 계속해서 배우는 열정, 다양한 학문적 배경 등에 대해 많이 배웠다. 열심히 살아낸 하루가 모여 행복한 삶을 만들어내니, 열심히 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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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백성호 저 / 판미동]
저자 백성호는 <그리스도교 성지순례기-예수의 숨결을 찾아서>로 제1회 한국기독언론상(2008년) 대상을, <우문현답>으로 제19회 불교언론문화상(2011년) 특별상을 수상한 저자는 종교와 세상에 대한 그 시선이 깊다. 소설가 故최인호는 "나는 백성호 기자의 애독자다. 그의 책이 나온다니 벌써 가슴이 두근거린다. 누구보다 가장 먼저 읽을 것이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는 각기 다른 분야에 대가를 이룬 17명의 인문학 고수들을 만나 행복이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 백성호는 철학박사 한형조 교수, 천체물리학자의 권위자인 홍승수 교수, 건축가 김개천 교수, 신경정신과 의사 이나미 박사, 교양학과 진중권 교수,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원장, 시인 고진하 목사, 다산연구소 박석무 이사장, 대해 스님, 가야금의 황병기 명인, 정희선 전 국과수 원장 등 17명의 인물들을 만나 각 분야에 해당되는 행복과 가치에 대해 질문하고 그들이 생각하는 각기 다른 생각들을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꿈꾸고 갈망하기 마련인데 정작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과연 행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행복을 추구하고 갈망만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더 피곤하게 하지는 않을까? 인류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인간들은 수많은 질문들을 하게 되었는데 그 중 인생에서 행복과 가치에 대한 질문은 살면서 끊임없이 하게 되는 질문인 것 같다. 매일매일 경쟁하느라 바쁘고 항상 시간에 쫓기고 돈에 쫓기기 바쁜 현대인들에게 행복이란 것은 어쩌면 지금은 생각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하며 나중으로 미루고 미루며 한없이 갈망하기만 바쁜 요소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없는 행복이 나중에는 있을까?
이 책은 한 분야에 빠져서 대가가 된 17명의 귀중하고 소중한 생각과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책이고, 나보다 인생 선배들의 생각과 말씀들이라 조언과 충고를 듣는 기분으로 접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행복과 삶의 가치, 사상들을 접하면서 또 한 번 개개인들마다 바라보는 시각과 추구하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행복이 무엇이고 어디있고 삶의 가치는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의 수많은 질문에 17명이 각기 다른 자신만의 상황과 환경 속에서 정의를 내린 진실된 대답들을 접하고 있자니, 역시 삶의 질문에는 딱 들어맞는 정답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관점에 따라 각자 자신만이 추구하는 생각과 철학이 다르기 때문에 스스로 판단하고 정의하고 행동하는 것이 삶에서 중요한 것이다. 역시 이게 내가 인문학을 좋아하는 이유이고 인문학만이 가진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17인을 만나면서 참 유익한 시간을 보냈는데 맨 뒷 부분에는 이 책 17인의 석학들이 뽑은 '내 인생을 바꾼 책'을 각각 3권씩 추천해 주는 부록이 준비되어 있다. 이들의 인생을 바꾼 책들에는 어떤 책들이 있는지도 궁금했고 몇 권의 읽고싶은 책들도 꼽아놨다.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에 깊은 사색에 빠지는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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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란 질문은 인간들의 삶이 시작되면서 항상 던져진 질문이고 탐구해온 일이다. 이것을 연구하고 다듬은 것이 철학이다. 이 질문은 인문학의 근간이 되기도 했고, 질문의 다양한 양태는 이 학문을 이끌어온 요소가 되기도 했다. 이 책은 인문학을 통해서 우리 사회에서 추구하는 행복의 공식을 재발견해 보고 있다. 17 사람의 다양한 생각과 정서를 통해 잘 사는 방법을 모색해 보고 어떠한 노력을 경주해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다. 우리의 생각을 찾아가면서 책을 따라가 볼 때 의미 있는 우리들의 삶을 만날 수가 있으리라 여겨진다.
유학의 재발견을 통해 진정한 삶의 방법을 모색해 보고 있는 한국학 중앙연구원 교수로 있는 한형조 씨를 소개한다. 흔히 탁상공론, 경직된 예법으로 규정지어 지는 유학의 부정적인 면을 극복하는 유학의 본질인 심학을 거론하면서 유학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바르게 이끄는가를 말한다. 인간의 부정적인 속성인 자기중심적인 마음을 버려나갈 때, 그 뿌리를 제거해 나갈 때 기쁨의 삶을 만날 수 있음을 들려준다. 그리고 그런 기쁨을 극대화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것에서 찾고 있다. 배워서 자신을 깨끗하게 가꾸어나갈 때 행복은 가까이 있음을 말한다.
자신의 뇌 속에서 만든 세계와 세상의 일치에서 만족을 느끼고, 스스로 주도하여 만드는 불일치를 통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하는 뇌과학자 김대식의 얘기, 어떤 집을 지을까를 늘 생각하면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을 느끼는 삶인가를 궁구해 나가는 건축가 김개천의 삶, 생의 도도한 흐름 속에 멈추지 말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삶을 살라고 권하는 천문학자의 이야기 등이 이야기를 만든다. 모두가 긍정적인 시선으로 인생을 바라보고 찾아가는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머무름과 나태다. 그것은 불안과 무의미를 낳고 목적성을 잃는 삶이 된다. 방향타를 잃어버린 삶은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 수가 없다. 앞이 보이는 자만이, 거시안을 가진 자만이 새로운 것들에 대한 안목을 가지게 되고 길을 열어갈 수 있다. 그 길속에 참된 희열이 존재한다. 우리는 담대해야 하고,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 그럴 때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되고, 행복이라는 단어도 만나게 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상처를 받는 것을 성숙의 과정으로 인식하는 신경정신과 이나미 박사, 과학과 철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 경계를 무너뜨린 그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장하석 교수, 예술의 주술성을 논하는 우리 시대의 논객 진중권 교수, 역사 속에서 삶의 지혜를 찾는 역사학자 김덕일 교수 등이 소재로 제시되고 있다. 모두가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 속에서 삶의 목적을 찾고 기쁨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는 독자들은 그 속에서도 기쁨을 느낄 수가 있다. 자신의 일에 열정을 가진 자는 참으로 아름답고 감동을 준다.
일이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고 힘들게 만들기도 하는 요소다. 글을 읽어가다 보면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행복과 직결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흔히 만난다. 그 일의 성취가 자신감으로 이어지고, 자신감은 다른 일들을 이루는데 큰 자산이 되고 결국 그 자산이 개인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일은 사람들 묶는 기능도 하지만 참된 기쁨을 느끼는 요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일이 가지는 속성이 놀이의 성격을 많이 지니고 있기 때문인 듯도 하다.
놀이는 모두가 즐겁다. 이 놀이에 지속성을 부여하면 기쁨으로 진화한다. 놀이가 주는 기쁨이 지속될 때 그 속에서 참된 기쁨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물질적인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차원으로 나아갈 때 변치 않는 기쁨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 기쁨은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요인이 되고. 행복은 그렇게 마음속에서 늘 찾아지는 것이다.
생물학자, 생태학자, 시인, 디자이너, 종교인, 예술인, 방송인 등 동시대에 타인들에게 성공적인 삶이라고 인정받고 있는 사람들과의 대담을 실었다. 그들이 하나 같이 말하는 내용이 마음이다. 마음을 잘 다스리고 지혜로운 눈을 가질 때 성공적인 삶과 가까울 수 있다는 말이다. 인간들의 삶이 모두 개별성을 띠겠지만 절대다수의 행복이 우리가 제세할 수 있도록 언급할 수 있는 자료이리라. 모두가 개인적인 삶 속에서 느끼고 바라본 내용이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독자들의 마음가짐이다. 모두 우리가 느껴가면서 배울 수 있는 지혜들이 담겨져 있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너머 어떻게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가 생각해 벌 수 있게 만든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행복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만날 수 있다. 바람 한 줄기에도 감사할 수 있는 삶, 따뜻한 인사 한 마디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 삶, 작은 것이라도 나누면서 행복해할 수 있는 삶 등을 발견하고 함께할 수 있다. 이것들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들의 주변에 있고, 늘 함께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마음이 문제가 된다. 마음 다스림을 잘 할 수 있는 삶, 찾아가고 나눌 수 있는 삶이 우리들에게 깊은 기쁨을 준다는 것을 만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신념을 가진 삶도, 그것을 성취해 나가는 삶도 우리가 추구해야할 일이라 여겨진다.
다양한 삶을 만났지만 다양하지 않은 인생들의 길을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었다. 17인을 통해 행복함을 찾아가는 길은 궁극적으로 상처와 고통을 끌어안고 자라가면서 치유해 나가는 과정 이다. 그 속에 행복이 있다. 그 행복은 보는 자의 눈에 보인다. 그 행복을 보는 자들이 되는 눈을 이 책은 찾게 만들고 있다. 감사함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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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 이야기 2014-184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백성호 쓰고 권혁재 찍다 / 판미동 1. 세상에 많이 돌아다니는 단어 중에 ‘행복’이라는 단어는 도대체 얼굴이 몇이나 될까? 나에겐 행복이 그대에겐 불행이요, 그 반대인 경우도 있으니 이를 어찌 설명해야하나 2. 행복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17개의 목소리, 울림을 모았다.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자리를 굳힌 17인의 면모는 익숙한 사람도 낯선 사람도 있지만 각기 그 학문과 심성의 깊이는 측량할 길이 없다. 그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힘과 혼이 담겨 있다. 3. 행복을 만나기 전에 만나봐야 할 존재가 있다. 행복의 반대편엔 불행이라는 이름 대신 ‘상처’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그 ‘상처’란 존재는 ‘내가 뭘?’ 하는 뻔뻔스런 표정이다. 그 이유는 그 상처를 만든 이의 심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상처는 마음의 병으로 자리 잡는다. 4.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상처에 대해 이런 조언을 해준다. “(단순한)위로는 ‘따뜻한 속임수’일 수도 있는 거죠. 유교는 ‘무엇을 하라’고 얘기하지, ‘너 힘들지?’하고 위로하진 않습니다. 『중용』이나 『대학』에 이런 말들이 나와요. ‘화살이 과녁을 빗나가면 과녁을 탓할 게 아니라 자기를 탓해야 한다.’ 바깥에 대고 징징대지 말라는 얘기죠. 문제의 근원이 자기였으니 이 때 ‘무엇을 하라’라는 말은 자기를 혁신하라는 말과 동의어가 됩니다. 어차피 시련이나 상처는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것들이죠. 원망만 하고 있으면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안 돼요.” 5. 시인 도종환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했다. 시인 랭보는‘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했다. ‘오히려 상처를 모른다는 사람이 무섭다.’ 이나미(신경정신과 전문의)의 말이다. ‘나는 여태껏 상처받은 적이 없어’라고 한다면 심각한 정신질환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그만큼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줬다는 이야기다. 이나미는 이렇게 마무리 한다. “우리가 태어나서 세상에 나오면 당연히 행복한 존재가 돼야 할까요? 헛소리죠! 사르트르식으로 얘기하면 인간은 그냥 세상에 던져진 존재고, 불교식으로는 연기(緣起)에 의해 이 땅에 온 인연일 뿐이에요.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낮이 있으면 밤도 있어요. 불행 없이 행복이 성립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아요. 오히려 ‘자기 안의 행복과 불행을 잘 볼 수 있느냐’를 물어봐야 하는 것이죠.” 말이 쉽다. 실제론 어렵다. 내가 남을 보는 것은 참 세밀히 보는데, 나를 보는 것은 거의 눈을 감는다. 다 아는 척한다. 그러나 남이 나를 바라보는 것의 반쪽이라도 나를 제대로 보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6. 이제 보니 나는 매일 저녁 을람(乙覽)을 했다. 을람은 제왕의 독서시간이다. 밤9시에서 11시까지다. 이 시간을 제일 충실하게 지킨 왕은 정조이다. 그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정국을 파행으로 몰고 가지 않으면서도 노론(사도세자를 죽인 그 노론집단)을 이기려면 그들보다 높은 가치와 탄탄한 논리를 갖춰야 했다.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당시에는 왕이라고 시간이 남아도는 것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왕은 제대로 업무를 보기 위해서 빠듯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오후 9시나 돼야 겨우 책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고 한다. 나의 독서시간은 왕보다 길다. 밤9시부터 12시까지다. 7. 이덕일(역사학자)을 통해 정조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들어본다. 정조는 치열했다고 한다. “그는 분초를 쪼개어 책을 읽었다. 단지 지식을 쌓기 위함이 아니었다. 세상을 다스리는 군주이니, 세상에 대한 이치를 터득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치를 궤고 있어야 세상을 굴릴 수 있다.” 정치가가 될 것도 아니고,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든 상관없다는 생각은 버리자. 책을 멀리하고 공부를 게을리 하는 정치가들이 득실거리다 보니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다. 이덕일은 행복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런 말을 들려준다. “역사학자로서 제가 보는 행복이란 올바른 길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추구하는 겁니다. 좌파다, 우파다 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 사회 공동체 전체를 위해 올바른 길인 거죠. 그리고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비판적 견지를 유지하며 ‘불평지명(不平之鳴)’을 하는 겁니다. 돈과 권력이 아니라 그런 ‘가치’를 추구할 때 인간은 행복합니다.” 8. 이덕일은 다른 글에서 ‘불평지명(不平之鳴)’을 이렇게 설명한다. “세상이 평(平)의 세상이 돼야 하는데 아닌 거다. 그래서 울음을 우는 거다. 그게 불평지명이다. 개인을 위해서 우는 작은 울음이 아니고, 천하를 위해서 우는 큰 울음이다. 그게 역사학이고 인문학이다.” 9. 느닷없이 내 손을 쳐다본다. 만약에 우리 손가락이 모두 같은 길이, 같은 굵기였다면 쓰기가 편했을까? 내 생각은 아니다. 젓가락 두 짝은 길이가 같으면 편하지만 손가락은 아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리 생겼으면 적응하고 지냈겠지만, 어쨌든 효율적인 디자인은 아니다. 각기 다른 전문 분야에서 축적된 지식과 지혜의 향기가 다르지만, 행복과 상처라는 화두에 아름다운 화음을 들려주고 있다. 10.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인문학에서 보물찾기 하듯 행복을 찾으려 애쓰지 말자. 무엇보다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관점, 상처와 불행과 고통을 바라보는 위치를 바꿀 일이다. 상대방을 바꾸려고 열을 내는 그 에너지를 내 안으로 돌려서 나를 바꾸는 동력으로 쓸 일이다. 그 자원은 인문학에 있다. 11. 책 말미엔 이 책에 등장한 17명의 게스트들이 뽑은 ‘내 인생을 바꾼 책’을 각기 3권씩 추천해주고 있다. 귀한 북 리스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