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나는 지렁이에게 안부를 묻는다' 오래전에 사 놓고 이제서야 읽었습니다. 그 읽음도 띄엄띄엄 며칠을 보내서야 끝을 보았군요. 아내처럼 잘 읽는 사람들은 마음 먹으면 반나절이면 읽을 수 있을 것을 말이죠. 농촌으로 귀농한 초보 농부들의 이야기. 다양한 삶을 도시에서 살던 사람들이 자기 참 모습으로 다시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보긴 어려울 이름 석자 대면 다 아는 유명인사들이기에 그럴 수 있겠지 하며 대충 그들의 선택한 삶을 큰 고민 없었겠지 하며 넘겨버렸습니다. 그러나, 다시 거꾸로 보았습니다. 그렇게 삶을 부정하고 다시 시작하는 성찰, 비우고 또 비워내고 다시 채우는 정진을 일상에서 실천하니 큰사람 되었겠구나 싶습니다. 인간은 자연에 맞게 만들어져 있으므로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야합니다. 그 자연이라는 것은 녹색자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 인위적이지 않고 순리대로의 삶인 자연을 말하는 것이지요. 지금의 많은 도시문제, 사회문제가 그러한 자연의 순리를 거꾸로 살아가려 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만큼, 그 해답 역시 처음 속에서 찾아야 함이 옳겠습니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온몸으로 사는 농부의 삶은 존경받아야 하고 높이 평가되어야 하겠습니다. 도시를 먹여살리고, 세상의 밑바탕을 이루는 농촌이야말로 마땅히 존중받아야하고 사회 전체가 농촌지향적인 삶을 살아야겠구나 싶었습니다. (*도시에서도 그렇게 생태적으로 살아갈 수 있답니다.) 물질의 가난보다 정신의 가난이 더 삶을 힘들게 만든다 합니다. 농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자녀는 키우는 분들이 자식 만큼은 농사를 짓게하지 않으려 애쓰는 안타까움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아이들이 희망을 가지고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있도록 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에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농촌가 도시, 모두가 서로를 있게함인데, 한 곳이 무너지면 다른 곳도 자연히 무너지는 어깨동무인데 말입니다. 농촌을 살리는 일. 본문에 양희귀님의 글이 정의내립니다. '나의 생각으론 자녀 교육이나 경제문제의 해결보다도 농촌사람들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그것을 도시인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즉 땀흘려 성실히 살아가는 것이 가장 가치있고 고귀한 삶이란 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정책이, 도시중심의 정책이 농촌에 계시는 분둘이 묵묵히 제 할일 다할 수 있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윤정모님은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농약 문제는 농경정책을 바꾸지 않는 한에는 농민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렇죠. 도시지향적 사회 정책에서는 생산은 없고 대량의 소비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 수요을 감당하기 위해 농촌에선 약을 뿌려가며 키울 수 밖에 없다 하십니다. 그분들에게 유기농, 배부른 소리일지 모르지요. 배운사람들의 여유로운 사치로 보일 수 있습니다. 다른 분들의 글은 자신의 농촌 속에서의 목가적 삶을 담았다면 윤정모님의 글 속에서는 이런 농촌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유기농을 하는 사람이 땅을 사랑하는 사람이요 그렇지 못한 사람은 땅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란 말입니다. 각자 자기 방식대로 땅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약뿌려 농사짓는 사람도 그 수고로 자녀들 학교보냈고 늙은 부모 섬겨왔습니다. 매일아침 땅에 감사하며 농약과 함께 땀도 뿌렸습니다. 도시빈민의 문제가 빈민 자신의 개인문제가 아니라 도시화, 산업화라는 사회구조가 도시빈민을 그렇게 만들어간것이라는 허병섭 목사님의 말처럼 농촌에 대한 사회구조가 바뀌어야 합니다. 농촌과 도시가 서로 얽혀있는 운명적 순환구조를 몸으로 느껴야겠습니다. 어려운 일인 것 같았습니다. 농촌에 대한 국가적 정책변화, 사회구조변화라니 말이죠. 항상 책을 읽을며 새로운 지식을 얻었을 때, 귀한 느낌이 남았을 때 그 다음 중요한 것은 나의 변화, 작은 실천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현주 목사님을 글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제도가 그 곳에는 없기에 자연스레 쓰레기를 만들지 않게 되었다 합니다. 나부터의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농촌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으면서 생태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나를 훈련시키는 일이 놓여진 과제입니다. 언젠가 존경하는 스승님은 제게 그러셨습니다. '한해 만이라도 새옷을 사지 않고 보낼 수는 없을까? 그런 내삶속에서의 운동이 세상을 바꾼다네..' 차를 팔아버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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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자발적 가난'으로 살아가다 박용범 독서작가(2022)
민중은 돈을 벌기 위해 노동력을 상품으로 내놓아야 하며, 노동력을 팔아서 잘 살아보려는 시장경제 논리는 경매장의 아수라장 속에서 인간을 초라한 상품으로 전락시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오직 자본으로만 이윤을 창출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노동력을 제공하여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이 돈을 버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노동은 돈이나 명예나 인기, 지배와 쾌락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생명과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먹을 것이 생기고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노동량이 적으면 적게 먹으면 된다. 적게 먹는다고 해서 일찍 죽는 것도 아니다. 더 오래 살 수도 있다. 오늘 못한 일은 내일 하면 되고 누구의 지시를 받을 일도 없다. 자율성과 독창성이 있을 뿐이다. 이런 노동을 통해 끊임없이 사고하고 탐구하며 명상하고 상상한다. 기존 지식과 경험을 말끔히 지워버리고 노동을 통해 새로운 사고를 하고자 한다.
생명농업은 농사의 방법이나 이윤 동기에 집착하지 않고 생명을 살린다는 목적과 생명 사랑이라는 가치관에 바탕을 둔 이름이다. 생명농업은 풀을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풀들은 작물들을 위한 가장 좋은 거름이 되어 준다. 한번 잘려지고도 풀들은 이내 잘 자란다. 생명농업에서는 5부 농법(무농약, 아무 제초제, 무비로, 무경운, 무비일 멀칭)을 기본으로 생각하며 실천하고 있다. 농사를 시작한 후 지금까지, 농사는 망할지라도 사람의 생명도 죽이고 땅과 그 위의 생명도 무자비하게 죽이는 농약과 제초제는 쓰지 않겠다는 단호한 신념으로 농사를 지어왔다. 요즘은 농사를 짓는 데 미량원소의 공급원이 되는 미네랄이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 미네랄은 대부분 각종 암석을 물에 담가두어 얻어내는 것이다. 그러니 비싼 돈 들여 남들이 만들어낸 미네랄을 사서 사용하느니 밭에서 나온 돌들을 과일나무들 근처에 흩어두고 풀로 덮어놓으면 비가 올 때마다 빗물을 머금었다 흩어두고 풀로 덮어놓으면 비가 올 때마다 빗물을 조금씩 내어놓으니 이것이 바로 최고의 미네랄 농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요즘은 돌들에게도 고맙다고 자주 인사를 한다. 물질의 가난보다 정신의 가난은 사람을 더욱더 불쌍하게 만든다. 비록 가난하게 살아야 하고많은 노동이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그런 자연의 무한한 은혜를 버리고 편리한, 그러나 깊이 병든 문명을 택하고 싶지는 않았다. 도시 중심은 공기가 나쁘고 시끄럽고 복잡하기 때문에 정말 가난한 사람들이나 도시 한가운데의 아파트 같은 데 살고 있지 웬만큼 사는 사람들은 도시에서 벗어나 근교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P121 또한 우리는 '자발적 가난'이라는 삶을 향해 차츰 생활을 간소화해가면서 경제문제의 짐을 가볍게 하고자 한다. 소박한 삶은 돈을 많이 벌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정신적 노이로제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고, 적은 수입으로도 저축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소박한 삶을 단지 경제적 해결책의 차원으로만 보지 않는다. 자발적 가난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가져야 할 의무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소박한 삶이야말로 우리의 터전과 환경을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깨끗한 물과 공기가 참으로 귀한 시대이다. 이대로 계속 나갈 수는 없다. 이대로 가다간 비록 우리야 당장 죽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의 아들딸 혹은 우리의 손자 손녀들이 이 지구에 더 이상 살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더 이상 부끄러움과 수치가 아니라 다음 세기를 위한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될 것이다. 사실상 우리의 성현들은 이미 이런 지혜를 실천하고 계셨다.
《오늘도 나는 지렁이에게 안부를 묻는다(권정생 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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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지렁이에게 안부를 묻는다 /저자 권정생/출판 옹기장이/발매 2004.08.10.
그렇다. 나에게는 살아가는 일이 성공하는 일보다 훨씬 더 소중하다. 살다 보면 무엇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지 무엇을 이루려고 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P26~27 귀농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인간적 삶의 모범을 만들어보겠다고 '생태마을'을 세우기 위해 산을 '개간'하여 집을 짓고 밭을 만들기도 했다. 생태마을을 조성한답시고 자연의 생명체를 괴롭힌 죄를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을까
노동량이 적으면 적게 먹으면 된다. 적게 먹는다고 해서 일찍 죽는 것도 아니다. 더 오래 살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일찍 죽는다고 무엇이 문제이던가. 살아있는 동안의 의미가 없는 생활은 가치가 없는 것이다. 오늘 못한 일은 내일 하면 되고 누구의 지시를 받을 일도 없다. 자율성과 독창성이 있을 뿐이다.
이런 노동을 통해 끊임없이 사고하고 탐구하며 명상하고 상상한다. 기존 지식과 경험을 말끔히 지워버리고 노동을 통해 새로운 사고를 하고자 한다. 땅을 살리고 환경을 살리는 삶이 21세기에 필요한 삶의 모범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의 모범을 세우려면 자연에서 생명체들과 함께 노동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고 세상을 향해 속삭이고 싶다.
생명농업은 본인 소유의 땅에서 실천해야 한다. 땅을 어느 정도 살려놓으면 다시 돌려주고 떠나야 하는 처지는 서글프다. '텃밭 숲 가드닝'을 위한 부지를 매입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산을 구입을 하자. 산에는 숲이 있고 숲은 자연이 만들어낸 기적의 작품이다. 맨땅에 숲을 만들려고 하지 말고 있는 숲에 살포시 안겨 들어가는 형상으로 턴을 하면 된다. 농사의 8할은 자연이 짓는 것이다. 인간은 그저 옆에서 2할 정도 거들 뿐.
일단 새집을 짓는 것을 원칙으로 삼지 않고 기존 농가 주택에 살면서 생활하고 고치는 것에서 살아가는 여유와 의미를 찾을 필요성이 있다. 기존 농가 주택을 구입한 후 업체에 견적을 본 후 일괄 수리하는 것은 귀촌하려는 의도와 부합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
P120~121 농촌에서의 경제 문제를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이 문제에 관한한 누구도 자신 있는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 우선 유기농을 해서 최소한 먹을 것은 자급자족하도록 할 것이다. 수확량이 점차 늘어나 잉여생산물이 생기면 도시인들에게 직거래 형식으로 판매하고자 한다. 이러한 수준에 이르려면 아마 삼 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또 자본이 거의 들지 않는 방식으로 식품가공도 해보려고 한다. 올해에는 우리 밀 빵과 우리 콩 메주를 만들어볼 생각을 하고 있다. 사람들과의 내면 소통을 한 공간의 장으로 2칸짜리 민박 사랑채를 운영한다.
또한 우리는 '자발적 가난'이라는 삶을 향해 차츰 생활을 간소화해가면서 경제문제의 짐을 가볍게 하고자 한다. 소박한 삶은 돈을 많이 벌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정신적 노이로제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고, 적은 수입으로도 저축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소박한 삶을 단지 경제적 해결책의 차원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자발적 가난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가져야 할 의무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소박한 삶이야말로 우리의 터전과 환경을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깨끗한 물과 공기가 참으로 귀한 시대이다. 이대로 계속 나아갈 수는 없다. 이대로 가다간 비록 우리야 당장 죽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의 아들딸 혹은 우리의 손자 손녀들이 이 지구에 더 이상 살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더 이상 부끄러움과 수치가 아니라 다음 세기를 위한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될 것이다. 사실상 우리의 성현들은 이미 이런 지혜를 실천하고 계셨다.
우주의 운행과 자연의 이치에 따라 순리대로 농사지으면 산다. 힘든 농사일을 넉넉한 마음으로 줄기차게 할 수 있는가? 너무 늙기 전에 노동을 할 건강이 있을 때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짓고 살다가 죽도록 하자.
《오늘도 나는 지렁이에게 안부를 묻는다(권정생 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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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지렁이에게 안부를 묻는다》에서 발췌하여 필사한 내용입니다.
우리 농장에서는 혼자 외롭게 자라는 작물을 보기 어렵다. 정부에서 권장하는 단일작물의 대규모 재배를 거부하고 같은 밭에 두둑을 달리하여 갖가지 작목을 심는 혼작은 기본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벼포기 사이사이에서 배추가 사이좋게 자라던 때가 있었고, 지금은 들깨와 고구마, 고추와 고구마, 고추와 배추, 벼와 자운영이 정답게 잘 자란다. 지금 열거한 작물들은 같은 밭에서 두둑을 달리하여 혼작을 한다는 말이 아니라, 같은 두둑에서 공생한다는 말이다.
한 작물을 다량으로 심을 경우에는 그 작물을 좋아하는 각종 병해충들이 발생하지만 여러 작물을 혼작하거나 공생체계를 형성하면 작물세계가 건강해질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농약이나 비료를 한 번도 준 적 없는 우리 고추는 병충해를 입은 흔적이 거의 없고, 같은 모종을 심은 다른 집들이 진작 끝물고추를 따버린 지금도 우리 고추는 초기와 비슷할 정도로 고추꽃이 왕성하게 피어나고 있다.
또한 기계로는 아무리 해도 20cm 이상 깊이 갈 수 없지만 풀이나 작물의 뿌리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30cm~1m를 들어갈 수 있으므로, 풀과 미생물이야말로 최고의 땅갈이 선수이며 땅을 기름지게 만드는 주체임을 인정하고 기계경운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올해도 고추밭에 파종한 배추나 벼가 심겨진 땅에 뿌린 자운영은, 전혀 땅갈이를 하지 않았는데고 잘 잘 자라고 있다.
거친 땅을 새로 사서 경작지를 만들어가는 데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돌이었다. 골라내도 골라내도, 밭갈이를 하다 보면 언제 골라 냈느냐는 듯이 끝도 없이 튀어나오는 돌덩이들이 참 성가신 존재였다. 그러나 생각이 바뀌고 나면 오히려 돌들이 반갑고 고맙기까지 하다. 요즘은 농사를 짓는 데 미량요소의 공급원이 되는 미네랄이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그런데 미네랄은 대부분 각종 암석을 물에 담가두어 얻어내는 것이다. 그러니 비싼 돈 들여 남들이 만들어낸 미네랄을 사서 사용하느니 밭에서 나온 돌들을 과일나무들 근처에 흩어두고 풀로 덮어놓으면 비가 올 때마다 빗물을 머금었다 조금씩 내어놓으니 이것이 바로 최고의 미네랄 농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요즘은 돌들에게도 고맙다고 자주 인사를 한다.
또한 우리는 '자발적 가난'이라는 삶을 향해 차츰 생활을 간소화해가면서 경제문제의 짐을 가볍게 하고자 한다. 소박한 삶은 돈을 많이 벌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정신적 노이로제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고, 적은 수입으로도 저축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소박한 삶을 단지 경제적 해결책의 차원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자발적 가난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가져야 할 의무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소박한 삶이야말로 우리의 터전과 환경을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깨끗한 물과 공기가 참으로 귀한 시대이다. 이대로 계속 나갈 수는 없다. 이대로 가다간 비록 우리야 당장 죽지 않더라도 우리의 아들딸 혹은 우리의 손자손녀들이 이 지구에 더 이상 살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더 이상 부끄러움과 수치가 아니라 다음 세기를 위한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될 것이다. 사실상 우리의 성현들은 이미 이런 지혜를 실천하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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