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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치마 권여선 지음 이룸
<토우의 집>을 통해서 알게된 작가 권여선 1. 처녀치마 내게는 공부를 잘하는 작가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던 권여선 작가의 단편들은 살짝 어렵다는 느낌을 받는다. 묘사나 비유가 수준이 높은 탓인지, 평범한 문장같아 보이면서도 그 문장에 내포된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첫 단편, 「처녀치마」에서부터 이런 의구심은 꼬리를 물고 달려간다. 이 글을 풀어내는 화자이자 주인공이 누구인지, 어떤 과거를 갖고 있는지,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 채, 그저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기에, 당혹스럽기도 하다. 도대체 '처녀치마'가 무슨 의미인가? 했더니, 처녀치마 두 번째 이야기인「트라우마」에서는 등장인물을 그저 성으로 구분하고 있어서 그 인물에 대한 파악이 쉽지 않다. 세 번째 소설인 「12월 31일」에 가서야 흐름을 파악할 수가 있다. 도서관도 조용해지고, 나 역시 몰입이 수월해지고, 등장인물에 대한 파악도 용이해진 탓이리라. 안영준과 민혜원이 나누는 대화가 그저 우리 주변의 누군가와 누군가처럼 젖어들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우유부단함의 진수를 보여주는 안영준으로 인하여 읽는 동안만큼은 속이 터지기도 한다. 이어서 「두리번거리다」와 「수업 시대」에서도 역시 등장인물의 이름을 생략하고 나 또는 그와 그녀, 여자 등으로 지칭하고 있다. 작가가 조금만 독자들에게 친절해졌으면 싶은 생각이 든다. 시간 역시 빈번하게 작가 편한대로 왔다갔다하는 것 같아서 불편하다. 2014.12.2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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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처녀치마
■ 작가의 말
그렇게만 읽어준다면, 내가 쓴 것은 연애소설이라 믿고 싶다. 사랑이 아니라 연애다.
연애라는 말, 참 좋다. 사랑이란 말처럼 상대방 면전에서 남발되거나 소모될 수 없는, 매우 촌스럽고 고전적인 맛을 풍기는 3인칭 여인과 사내의 의뭉스런 교감 같은 말이다. 그러나 연애소설만큼 무서운 형식이 없다. 피투성이 된 유년이 성장소설의 담보물이듯, 연애의 학살이 연애소설의 조건이다. - 생략 -
작가의 바람처럼, 연애소설로 읽었는데
몽글몽글 피어나는 핑크빛 구름같은 연애가 아니다.
"수업 시대" 글에 나왔던 아래 표현이 딱 이 소설집의 느낌을 대신 말해주고 있다.
¶ 그때 나는 그와 더불어 청결하지 않은 몸으로 하루 종일, 아니 일주일, 한 달, 일 년을 뒹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해진 속옷을 입고 고춧가루가 말라붙은공기에 보리차를 따라 마시며 서로의 살비듬을 비비는 세월을 하염없이 살아내고 싶었다. ¶
쿨하게 헤어질 수 있는 사랑은 연애의 밑바닥과 천상을 두루 오가며 동시에 나와 너란 사람의 밑바닥과 착한 척의 절정을 맛보지 못한, 김빠진 맥주와 같다고 생각한다. 물론 치열하게 사랑해야만 사랑이라 칭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적어도 연애(愛)라는 말을 쓰려면 처절하지는 못해도 인생의 떨떠름한 맛 정도는 맛보아야 이 촌스러운 어감의 단어를 쓰기에 손색없지 않을까. 사랑, 연애에 대한 한담은 늘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집에서
[12월 31일]이 가장 재밌었고, [수업 시대]가 가장 아팠고, [그것은 아니다]가 가장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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