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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의 두 번째 소설집 『명랑』(문학과지성사/2004년 8월)은 독자들의 기대를 두 번씩이나 배반한다. 전작 <바늘>에서 보여준 피가 튀고 뼈가 으깨지는 듯한 ‘섬뜩함’과 ‘강렬함’에 대한 기대를 배반했고, 또한 표제작의 제목 <명랑>이 일반의 상식을 깨뜨리는 전혀 뜻밖의 의미로 쓰였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배반하고 있다.
그 배반의 미학 혹은 중의적 상징을 예견했을 리 없는 나는 책의 표제작 <명랑>이 주는 느낌, 즉 ‘그러저러한 신세대풍의 가벼운 소설’이려니 하는 오해를 풀 생각도 없이 그저 흘려보내고 말았었다. (사실 연초 신춘문예에서 평론 ‘천운영론’이 3개지의 당선작으로 결정되었다는 가십을 접하지 못했더라면 이책은 절대 읽지 않았을지 모른다.)
UN팔각성냥, 한산도, 은하수, 달고나, 쫄쫄이, 명랑... 얼핏 떠올려 봐도 유년의 기억 속에 담긴 낱말들은 정겹고 슬프다. 새삼 의문도 생긴다. 왜 하필 성냥이름에 국제기구(UN)가 들어있는지, 몸에 안 좋은 담배이름(한산도, 은하수)은 왜 또 그리 고풍스럽고 낭만적이었던지, ‘엄마 십원만 줘.’ 소리를 입에 달고 다니게 했던 쫄쫄이, 달고나에 대한 추억 등등. 그러나 유년의 기억 속엔 안타까운 느낌으로 남아있는 것도 있다. 특히 온종일 엄마의 이불 옆에 너저분하게 놓여있던 약봉지들, 그것과 짝으로 떠오르는 스댕(스테인레스) 그릇 속에 담긴 자리끼(냉수)의 몸서리처지는 적요寂寥.
혹시 그때 엄마의 이불 옆에 놓여있던 약 이름이 ‘명랑’은 아니었을까. 육신의 고통을 덜어보려는 엄마의 발버둥이 가공해 낸 - 그래서 약이라기보다 부적에 가까웠던 - ‘명랑’봉지를 떠올리는 일은 여전히 스산하다. 일찍 남편을 잃은 데다 고작 당신의 허기를 참으며 자식들 입에 한술이라도 더 들어가게 하는 것이 최선의 생활능력이라 믿으며 배를 곯고 마음을 졸였던 나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랬던 어머니가 어느덧 팔순을 바라본다는 사실조차 믿어지지 않지만 한편 그것은 오래전에 상복했던‘명랑’덕분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소설 <명랑>은 썩어가는 육신에 방부제를 뿌리기라도 하듯 골방에 누워 오로지 ‘명랑’에 의지해 삶을 연명해가고 있는 할머니와 그런 시어머니를 짐스러워하면서도 어쩌지 못한 채 모시고 살며 변두리 유원지의 무허가 식당에서 닭백숙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억척스런 엄마, 발맛사지 기술을 배우고도 여전히 엄마에게 빌붙어 살고 있는 손녀, 그렇게 3대가 함께 살아가는 얘기를 그리고 있다.
화자인 손녀는 엄마의 무망한 삶도 할머니의 ‘명랑’에 의지한 삶도 그저 벗어나고 싶은 지겨움의 대상을 뿐이다. 그러나 훌쩍 떠나버릴 생각도 없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게. 할머니의 채념인 듯 관조인 듯한 늙은이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이 차라리 더 편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과거의 회한과 곧 닥쳐올 죽음에 대한 공포가 함께 침묵하고 있는 늙은이의 눈동자. 나는 늙은이의 눈을 갖고 싶다”거나 물난리 통에 죽은 할머니의 뼈를 곱게 빻아 “작은 상자 안에 담아”두고, 그녀의 발이 생각날 때마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 그녀의 뼛가루를 묻힌 다음 혓바닥으로 맛을 보곤 했다”는 대목을 보면 손녀의 마음 속에 이미 삶을 지배하는 것은 죽음이며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기려는 작가의 의식이 투사된 듯 보인다.
이어 나오는 <멍게 뒷맛>이나 <늑대가 온다>에서 역시 독자들은 상처받은 영혼들의 시선을 통해 과연 삶과 죽음이란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를 자문하고 있는 작가 천운영을 만나게 된다.
그 물음의 답은 <세 번째 유방>에 그려진 대로 ‘몸’에 대한 집착으로 귀착된다. <멍게 뒷맛>에 등장하는 어려서 엄마에게 버림받은 여자가 엄마의 유방 위에 붙은 젖꼭지의 모습을 한 멍게를 먹을 때 위안을 느끼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는 부분이다.
“푸른 정맥이 장미꽃처럼 보이는 너의 가슴. 작지만 동그란 가슴선과 젤리처럼 야들야들한 살, 그리고 톡 볼그라진 젖꼭지. 젖꽃판 가장자리에 난 자그마한 돌기를 넌 세 번째 유방이라고 불렀지.”
사실 천운영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탄생기 혹은 성장기에 저마다의 상처를 입고 그 상처로 인해 삶의 무게를 더욱 무겁게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의 의식 속에는 늘 죽음을 껴안으려는 극단의 갈구가 도사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삶이란 결국 죽음이라는 극단과 대비될 때만 비로소 그 소중함이 확인되는 것 - 적어도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 이기 때문이다. [인상깊은구절] 곱게 빠아진 그녀의 뼈는 꼭 힌 명랑 가루 같았다. (중략) 그녀의 발이 생각날 때마다... 손에 침을 묻혀 그녀의 뼛가루를 묻힌 다음 혓바닥으로 맛을 보곤 했다. (중략) 나는 내 속에 있는 그녀를 위해 명랑을 먹는다. 설탕처럼 하얗고 반짝이는 명랑 가루에서는 그녀의 냄새가 난다. (3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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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으로 눈에 익힌 작가가 천운영이다. 아쉽게도 아직 그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읽어보리라. 다짐중이다.
<명랑>이란 작품으로 작가를 처음 만난다.
1. 명랑 2. 늑대가 왔다 3. 멍게 뒷맛 4. 모퉁이 5. 세번째 유방 6. 아버지의 엉덩이 7. 입김 8. 그림자 상자
명랑은 8편의 단편소설로 묶여진 책이다. 전체적인 톤은 조금 회색빛이다. 제목을 보고 생기있고 발랄하고 그런 것 들을 상상했다면 보기좋게 틀렸다. 그런 것들과는 정 반대에 서 있는 작품이다. 물론 재미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재미가 있다, 없다 로 판단내리기 보다는 소재들이 독특했다.
등장인물들 나름대로 사연은 있지만,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서 조금 서툰 사람들이 나온다. 조금 이상하다 싶은... 혹은 별로 이해하고 싶지 않은, 때론 안타까울 수 있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캐릭터들이 주인공이며 화자로 등장한다.
툭~ 터놓고 서로간에 진솔한 얘기를 했다면... 얘기를 들어주고, 들려주고. 가식일지라도 좀 더 평범하고 평균적인... 인간 관계를 맺으려고 조금만 노력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뜬금없이 소설을 읽는 이유는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그려놓은 그림을 보며 그저 이해하는걸로 끝내는 건가? 동감하고 공감해야 하는건가? 가끔 소설을 읽으며 평범하디 평범한 나에 견주어 보며 이렇게 하지... 저렇게 하면 좋을걸... 하며 답을 내려고 애쓴다. 소설 속에 주인공을 평범한 쪽으로 이끌려고, 가이드 하려고 애쓰는 나를 발견하면 씁쓸하다. 상상속에 있는 인물을 가지고 뭐하고 있나 싶기도 하고.
이 책도 그랬다. 기준이 되는 선을 그어놓고 그 선에 못 미치는 주인공들을 끌어올리려고 이리저리 분석하며 머리를 굴려본다. 안 좋은 습관이겠지? 참 재미없는 인생을 사는 독자로, 책을 읽으면서도 그 성격이 어디 못 가나보다.
리뷰 쓰기에 유난히 힘든 책들이 있다. 내 경우엔 소설이 그에 속한다. 이 책은 그 소설들 중에서도 그 강도가 쎄다. 시작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며칠전에 완독을 해놓고 지금에서야 리뷰를 쓴다. ㅡ.ㅡ |
| <명랑>. 제목부터 발랄한게 내 마음에 쏙 든다. 게다가 책 표지는 살짝쿵 로맨틱. 유후~ 최근 문학비평가들에게 주목받고 있는 작가라기에 그 이름을 기억해두었던 작가 천운영의 책 <명랑>은 이렇게 그이름도 '명랑'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책 <명랑>은 결코 명랑하지 않다. 이 책에 묶인 여러 단편 가운데 하나인 단편 '명랑'은 약의 이름이다. 우리 엄마도 기억하고 있는 옛시절 거의 만병통치약의 능력을 발휘했던 약이 바로 '명랑'이라는 것이다. 거기서부터 시작해, 각각의 단편은 집요하게 사람의 몸, 사람의 욕망에 대해 탐구한다. '명랑'은 작고 보드라운 발을 가진 할머니와 삶에 찌들어 다 갈라져버린 발을 가진 어머니와 취업을 위해 발 관리사 자격증을 딴 주인공의 이야기다. 명랑가루를 수시로 입에 털어넣는 할머니. 집중호우가 덮치던 날, 어떤 직감에선지 며느리와 손녀를 먼 곳으로 보내버린 할머니는 그 호우탓에 죽음을 맞는다. 손녀는 할머니의 화장한 유골을 때때로 명랑처럼 입안에 넣는다. 그리고 자기 몸 안에 살아있는 할머니를 위해 명랑도 입안에 넣는다. 이 뿐만 아니라 다른 단편 각각도 다 독특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숯가마를 버리고 다방 여자랑 바람난 아빠와 숯가마촌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는 엄마를 둔 소녀의 현실과 판타지를 다룬 '늑대가 왔다'. 옆집의 아름다운 여인이 늘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것을 보며 쾌감을 느끼는 주인공에게, 옆집 여자는 한바탕의 난리후엔 늘 멍게 한 소쿠리 가져와 나누어먹곤 했는데, 결국 옆집 여자는 폭력 속에 죽음을 맞고 주인공은 쾌감이 없어져 고통받는다는 이야기의 '멍게 뒷맛'. 베란다가 있는 집을 원했던 여자와 다락방이 있는 집을 원했떤 남자가 만나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지만,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그러던 중 셋째 아이는 팔삭동이로 죽음을 맞이하는 '모퉁이'. 할머니의 젖꼭지를 통해 세상과 만났던 남자는 두 개의 유방 외에도 하나의 작은 돌기같은 것이 있어 세 개의 유방을 가진 여성 속옷점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데, 그 여인이 속옷점에서 일하다 알게된 세 개의 유방을 가진 또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지자 남자가 여인을 파괴하게 된다는 '세번째 유방'. 이 외에도 '아버지의 엉덩이', '입김', '그림자 상자'와 같은 모든 단편이 다들 나름의 개성이 있는 동시에 그 표현 또한 치밀하고 매력적이다. 단편은 호흡이 짧아 읽기는 좋지만, 그만큼 큰 감동을 받기 어려운데 천운영의 단편은 각각의 단편이 확실한 개성을 가진 것은 물론이고 생각할 거리들을 남겨주고 있다. 천운영. 내가 주목하는 여성작가 리스트에 추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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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할머니는 천식이 심해서 늘 천식약을 달고 사셨다. 그래서 조금만 숨이 차면 약을 드셨고, 약이 떨어지려고 하면 엄마에게 얼른 약을 지어오라고 성화셨다. 사실 그 약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할머니에게는 보험과 같은 게 아니였을까 싶다. 없으면 허전하고, 큰일이 날 거 같은 기분..
천운영 작가의 단편소설집 "명랑" 이 명랑은 우리가 아는 "명랑하다"의 명사형인 명랑이 아니라, 주인공의 할머니가 먹는 약 이름이였다. 명랑은 진통제로 그 겉면에는 두통, 관절통, 인후통 등 열여섯가지 통증과 오한 발열 시 해열효능까지 있다고 한다. 늘 습관처럼 명랑을 먹던 할머니. 전족을 한 것처럼 말이 작았던 할머니.. 비가 폭우처럼 내리던 날 밤. 할머니는 그렇게 며느리와 손녀를 찜질방으로 보내고 그렇게 떠나가셨다.
오징어로 결혼식때 쓰는 오징어꽃을 만들던 나는, 우연히 옆집에 이사온 여자를 보고 마음이 상한다. 너무나 곱상하고, 얼굴에 귀티가 흐르는 그녀를 보고 열등감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그 여자가 언니라고 부르고 친한 척을 해도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던 중, 여자가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는 소리를 듣고,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를 만난냥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여자가 맞는 날이 많아질수록, 폭행의 강도가 커질수록 그녀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폭행이 끝나고 나면 여자는 맛있는 멍게를 사서 와서 말없이 함께 먹는다. 자신을 찾아온 그녀를 모른 척 하다가, 그녀가 죽게 되자, 나는 점점 삶의 활기를 잊어가게 되고 조금씩 미쳐가기 시작한다. 그녀의 불행이 나에게는 삶의 활력소였고 전부였던 것이다. 그런 그녀는 멍게라도 먹으면 힘이 날까 하여 멍게를 사서 먹지만, 그녀처럼 깨끗하게 손질이 되지 않아 먹지도 못하게 된다. 멍게 뒷맛.. 뒷맛처럼 씁쓸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천운영 작가의 단편소설집을 읽다보면, 그녀만의 독특한 소재와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독특한 소재를 통하여 풀어나가는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면 뭐라고 한마디로 정의내릴 순 없지만.. 그 안에서 생명을 느낄 수 있는 거 같다.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그것도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호흡할 수 있다. 천운영 작가. 단편 소설을 통하여 함축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그녀의 이야기들.. 너무 신나고 재미있다. 물론 가끔은 너무 심오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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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 이 소설을 처음 만났다. 주황색 표지에 바람개비 모양이 들어간 애교스런 서체로 적혀진 '명랑'이란 글씨는 아주 가볍고 밝은 내용이 담겨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그리고 책을 펼쳤을 때, 외롭고 우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좌절스런 인생에 함께 우울해 하면서도, 그간 읽었던 글에서 느끼지 못했던 생생하고 날카로운 표현들, 그리고 낯선 문체에 서늘한 매력을 느꼈다. 책 표지에 쓰인 홍보문구처럼 '그로테스크한' 매혹을 느끼게 만드는 소설. 3년이 지난 어느 날, 그 그로테스크한 문체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다시 읽으니 3년전 느꼈던 낯설음이 뭐였는지 찾지 못하겠다. 뭐였을까? 독자에게 말을 거는 듯한 문체가 그랬던 것일까? 그냥 툭툭 내어던지는 듯한 문체가 그랬던 것일까? 문체에 대한 새로움은 느끼지 못한 채 다시 소설의 우울한 세계에 매혹되어 책장을 넘겼다.
[명랑]은 총 8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졌다.
거의 대부분의 작품에 죽음이 등장한다.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주변사람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 채외롭게 생활하거나 버림받는다. 그리고 사건이나 사물에 대한 묘사가 지나칠 정도로 상세하고 생생하다. 날카로운 칼에 베이는 듯한 느낌의 문체랄까. 소설속의 묘사들을 보노라면 직접 눈앞에서 시연되는 듯한 느낌이다. 그런 날선 문체로 말미암아 소설에서 펼쳐지는 우울한 내용에 책을 덮고 싶었던 욕망이 절로 사그러든다.
드디어 당신이 멍게를 먹기 시작했다. 당신은 멍게를 입에 넣고 오래 물고 있다가 물을 조금씩 마시곤 했다. 멍게를 삼키는 당신의 얼굴에 작은 파랑이 일었다. 멍게 돌기를 오독오독 씹을 때는 바위에 부딪치는 거친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입 안에는 바다가 들어왔다. 멍게를 한입 넣었다. 새곰한 맛이 콧구멍부터 목젖까지 아련하게 번져왔다. 나도 당신이 하는 것처럼 멍게를 삼킨 다음 물을 마셨다. 싸하고 신맛이 가시면서 단맛만 남았다. 열정적인 키스를 건네오는 연인의 혓바닥을 받아들이듯 나는 어느새 보드라운 멍게 살에 빠져들고 있었다.
멍게에 대한 표현도 그렇지만, 옆집 여자의 사연과 그로테스크한 결말까지 매혹적으로 소설에 빠져들게 만든다. 또한 오징어로 만든 폐백꽃이라니... 워낙 생소한 것이라 또한 호기심 자극... 하긴 새로운 것으로 말하자면, [세번째 유방]에 대한 전설을 소개하는 부분. 중세 마녀사냥의 표적이었다는 것도 그렇지만, 루브르 박물관의 비너스에 세번째 유방이 있다고 주장하니 역시 호기심 증폭이다.
마냥 로맨스 영화나 보고, 따뜻한 드라마나 읽는 내게는 낯선 소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소설이다. 작가의 전작 [바늘]도 읽다 말았는데 다시 찾아봐야겠다.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내용이지만, 생생하게 살아숨쉬는 듯한 날선 문체가 글읽기 욕망을 자극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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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책의 줄거리에 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으려 한다. 책읽는 즐거움을 뺏고 싶지는 않으니까.
제목과는 반대로 소설의 분위기는 어둡고 우울하다.(사실 제목은 약이름이다) 주인공들의 공통적 특징은, 무언가 상처를 가지고 있으며, 누군가의 죽음을 겪으며, 어느 한가지(특히 신체의 한 부분)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그 집착은 병적이고, 자신에게 부족한 무언가를 채우기 위한 발버둥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아무리 집착해도 그것은 채워지지 않고, 대부분 비극을 겪는다. 소설을 읽는 내내 물음들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사람들은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 왜 무언가에 집착하게 되는 것일까?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끊임없이 집착하는 것일까? 사람이란 원래 그런 것일까?
소설에 나타나 있는 다른 한가지는 ''냄새''다. ''향기''가 아닌 ''냄새''. 더럽고 썩은내 나는 악취들. 왜 세상에는 악취들이 가득할까? 악취란 뭘까? 아무도 사람들의 상처의 다른 모습이 아닌가 싶다. 더럽고, 냄새나는, 감추고 싶은, 절대 치유되지 않는 상처들.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들. 악취와 상처는 서로 같은 의미가 아닌가 한다.
상처는 죽음으로 결론을 맺는다. 그 상처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긴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일들, 해결하지 못하는 일들.
전작(바늘)과 마찬가리로 천운영의 소설에는 이런 아픔과 슬픔, 어둠과 악취, 그리고 치유할 수 없는 상처들이 가득하다. 이런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것도 분명 우리내 모습 일거다.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하는 모습이 분명하다. 조금은 두렵고, 무섭고, 더럽더라도, 알고 싶다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읽어봐야 할 소설이 아닌가 생각한다. [인상깊은구절] 눈물은 훔치는 것이 아니라 말리는 것이다. (모퉁이中) |
| ''명랑''은 내가 가지고 있던 천운영이라는 작가에 대해 괜찮은 작가구나라는 느낌을 준 책이다. 명랑에는 여덟 편의 단편이 담겨있었다. 명랑, 늑대가 왔다, 멍게 뒷맛, 모퉁이, 세번째 유방, 아버지의 엉덩이, 입김, 그림자 상자... 이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늑대가 왔다''이다.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작은 아이의 이야기. 아버지는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다방여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가고 엄마는 생계를 위해 식당에서 일을 하고 아이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자신을 표출하기 위해 사람들 일에 참견을 하지만 모두들 그 아이를 귀찮아 한다. 그 아이는 환상 속 하얀늑대만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늑대... 아이에게는 그 늑대만이 친구일 뿐이다. 달리 생각하면 그 아이는 자아를 사랑할 수 있도록 늑대라는 허상을 만든 것일수도 있겠지... 이 글을 읽으며 내가 생각한 그 대단치 않은 소설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시점에 무엇을 써야하는지 알고 있는걸까 라는 의문도 들었다. 다시 한번 그녀에게 감사한다. 기분 좋은 소설을 읽게 해주어서... |
| 처음에 책 제목의 명랑이 약이름인 줄 몰랐다. 명랑이라는 두통약(?)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노인들이나 먹던 약이란 걸 알았기 때문에 산뜻한 오렌지빛 책표지와 왠지 어울려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섬뜩할 정도로 치밀하게 현실을 묘사하는 작가로 알려진 천운영은 전작 바늘에서 도살장의 모습을 정확한 취재를 통해 섬세하게 묘사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번 작품집도 화사하고 발랄한 내용보다는 그의 작품 속에서 너무나도 많이 등장하는 냄새처럼 향내보다는 악취에 가까운 현실의 사건과 인물을 날것으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는 너무 얇은 작품집을 양장 단행본으로 산다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도 했지만 3년이라는 길다면 긴 세월을 산고의 고통의 겪으며 생산해 낸 소설집답게 한 편 한 편이 알차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외면하고 싶고, 내 속의 더러움을 보여주는 듯 싶어 피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인생이란 향기보다는 냄새나는, 그래서 음보다는 양을 추구하고자 바램으로 들끓는 용광로같은 것이 아닐지...비록 거칠고 씁쓸하지만 그 속에서 인생의 의미와 존재의 이유를 찾고자 했던 작가의 치열한 정신과 노력이 엿보이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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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이란 작가에 대한 말들이 많이 떠돌아 다니기도 하거니와 오래간만에 단편 한번 읽어보자는 심정으로 책장을 폈다.
개인적으로 단편보다는 장편을 선호한다. 나는 워낙 장편에서의 긴호흡에 익숙해있어서 단편의 스피디한 호흡을 맞추기가 좀 힘들다. 또한 기본적으로 단편은 함축이 잦기 마련인데 숨은 뜻을 캐치하기가 쉽지도 않고. 반면 말하려는 바가 간명하기에 구도만 파악하면 쉽게 다가올 수도 있지..
'명랑'은 내가 말한 양가성을 동시에 지닌 작품집이다.
'명랑'작품집의 첫번째 단편 '명랑'은 딸과 어머니의 양 시선을 교차로 보여주는 시점의 사용이 독특하다. 그리고 외할머니, 어머니, 딸로 이어지는 인생유전을 통해 세대를 이어가며 만만치 않은 세상을 얘기하고 비극적인 결말이 허무함을 느끼게 한다.
또한 '멍게 뒷맛'은 가히 반갑지 않은 내 안의 어떤 심리를 발가벗기고 있어 멍게 뒷맛이 과연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씁쓸함을 느낄 수 있다.
작가의 모든 작품의 기저에 깔리는 공통분모는 바로 '죽음'이다. 항상 주변으로 겉도는 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죽음으로 이끄는 못된 운명을 보여준다.
과연 운명이라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운명이라는 것이 중력처럼 이끌리는 막연한 힘에 나의 자유의지가 조응한 합작품이 아닐까?
앞서 언급한 두개를 포함해 세개 정도가 인상깊었다.
일관된 작품의 분위기를 통해 작가의 작풍을 우리에게 각인시키는데는 성공했으나 그렇기에 지겹다는 인상도 동시에 받을 수 있었다. |
| 바늘을 읽고 난 후 ...난 천운영이라는 여인에게 고민 절망 고통 등등등...괴롭고 복잡한 심경에 대해 나름대로의 철학을 높이 사고 싶어졌었다.. 그가 거침없이 휘갈기는 문체들이 책을 읽는 동안 내 가슴을 뛰게하고 긴장하게 하는.. 잔잔한 문학과는 너무나 다른 신선한 충격.... 조금 섬뜩하고 거북스러운 면도 있었으나 내가 충분히 걸러낼 수 있는 수준들이어서 적당한 적정선을 지킬 줄도 아는 그녀에게 많은 매력을 느껴 두번째 소설책에 대한 기대가 상당했었다.... 그런데... 내가 약해진 것인지...독서능력이 추락해버린 것인지..아님 전체를 볼 줄 모르는 사람인건지...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소설은 솔직히 실망적이었다. '다르지 않음....' 정말 다르지 않았다. 첫번째와 느낌이 다르지 않았고...숨이 가빴다. 바늘에서 느낀 긴장감은 없고..그녀가 소설을 쓰면서 너무 힘들어 했구나라는 생각만 들게하는 느낌이 가득했다. 읽기가 힘이 들었다고 해야하나...너무나 같은 내용들... 명랑''이라는 단편을 제외한 나머지에서는 새로움이라는 것을 찾을 수 없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내 머릿속을 뒤죽박죽이 되었다. 특별한 무엇을 가진 것이 없었다는 뜻이 될까? 어짜피 소설가들은 자신의 색깔을 가지고 일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지만.. 이건...리메이크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단지 같은 것.. 내가 너무 나쁘게 혹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 평가를 하는 듯 하지만.. 적어도 나에겐...기대만큼 실망이 너무 커버렸다. 바늘은 단 몇시간만에 읽어내면서도 긴장에 즐거워 했었는데.. 명랑은..........소설가의 의도대로(?) 정말 반대현상을 나에게 일으켰다... 암튼..........소설이란..그걸 써내기란 보통일은 아닐테니...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