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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유학의 양대 산맥은 정주의 리학과 육왕의 심학이다. 즉 정이와 주희가 견지한 성즉리로 대표되는 리학과 육구연과 왕양명이 주장한 심즉리로 대표되는 심학이다. 황갑연은 송대 주희와 육구연의 논쟁, 이른바 '주륙지변'를 다룬다. 또한 맹자와 순자를 리학과 심학 논쟁의 연원으로 삼고, 정주학과 육왕학을 리학과 심학 논쟁의 구체적인 전개로 규정한다.
저자는 심론의 측면에서 각각 맹자와 육왕을 자각주체 계통으로, 그리고 순자와 주희를 지성주체 계통으로 귀속시키고, 공자철학의 사思와 학學을 각각 맹자와 순자 도덕철학의 연원으로 귀속시킨다. 학은 주체와 대상을 이원화시켜 대상으로부터 사실적 지식을 취득하는 활동이고, 사는 대상으로부터 얻은 지식을 이성의 사유를 통하여 계통화하는 작업이다. 논어 위정편에 "배우고 깊이 사려하지 않으면 얻어지는 것이 없고, 사려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구절에 의거, 학과 사는 덕성과 지성을 포괄한 지식 추구 활동의 전반에 적용되는 공자의 원론적 입장이라고 해석한다. 학은 실증이고 사는 종합과 계통화 작업이다. 당시 송명유학의 주적은 불교였다. 송명유학자의 문제의식은 선학으로부터 학술의 주도권을 되찾는 일이었다. 저자는 송명리학에서 유불의 관계는 음석양유(유가의 옷을 입은 불가철학)보다는 원불입유(불가를 유학으로 끌어들였다)로 규정해야 옳다고 본다. 송명리학이 음석양유라고 규정하는 학자들은 그 근거로 화엄의 법계관과 정주의 리기론 및 육왕의 심성론을 든다. 이들은 주희의 리기론이 불교의 영향을 받았고, 특히 화엄의 사법계관의 영향을 받아 세워졌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저자는 주희의 리기론이 형식적 측면에서 본다면 화엄 법계관과 유사하지만, 그 내용물은 정작 유가의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현수법장에 의해 정립된 사법계四法界는 사법계事法界, 이법계理法界,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로 구성된다. 이런 화엄의 법계관에 영향을 받은 주희의 리기론 역시 기, 리, 리기불리부잡, 리일분수 네 가지로 구성된다. 화엄에서 리와 사를 구분한 것처럼, 주희 역시 리와 기를 본체론적으로 형이상자와 형이하자로 엄격하게 분리하면서 선후의 관계로 설정한다. 화엄의 이사무애법계는 주희의 리기불리에 해당한다. 화엄의 사사무애법계는 주희의 '만물 가운데 각각 태극이 있다'는 물물구유일태극物物具有一太極에 해당한다. 주희와 육구연이 직접 대면해 논쟁한 것은 두 차례다. 순희 2년(1175) 초여름, 육구연과 그의 형 육구령이 여조겸의 초정으로 신주 연산의 아호사에서 처음 대면했다. 아호사의 모임, 즉 아호지회에서는 교육방법을 논쟁하였는데, 주희는 육상산의 복기본심을 태간하다고 비판했고, 육상산은 주희의 격물궁리와 거경함양을 지리하다고 비판하여 의견 일치를 볼 수 없었다. 순희 8년(1181)에 남강의 백록동서원에서 두 번째로 만나 변지辯志와 의리지변에 관해 논의하였다. 육구연의 강의 소재는 『논어』 「이인」편의 "군자는 의로움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는 구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