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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가끔 내가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적인 삶, 해도, 해도 끝이 나지 않는 일들을 하면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마음으로 버텨내고 있지만, 그러다 보면 어김없이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라는 의문이 고개를 처 든다. 젊은 날, 살아오면서 거의 들지 않던 의문인데, 이제 와서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삶과 지금의 삶이 다르다는, 아니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에서 연유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지금의 삶이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일전에 셸리 케이건 교수의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이 있다. 그는 책에서 삶이란 죽음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완성되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목적이라며, 삶의 가치는 삶 그 자체가 아니라 삶 속에 채워지는 내용물, 즉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죽음이 없는 삶은 없으며, 또한 삶이 없는 죽음도 없다고 말한 케이건 교수의 책을 읽으면서, 지난 세월 동안 살아왔던 나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내가 죽을 때까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했었다. 결론은 하루하루에 충실하면서 내일 후회하는 오늘을 만들지는 말자라고 생각했으나,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았다고 하면서도 지금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과연 이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드는 것은 어찌 할 수가 없다. 그런 상태에서 이 책 [삶이란 무엇인가]는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저자인 수전 울프 교수가 강의한 내용과 그에 대한 철학자들의 논평, 그리고 그 논평에 대한 저자의 답변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저자는 삶의 의미가 무엇이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 어떤 것인지가 아닌, 어떤 요소들이 우리들의 삶을 그렇게 만드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흔히 삶의 의미에 대해서 철학자들은 자주 언급하지 않는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지만, 그 이유를 딱 꼬집어서 이야기 할 수 없을 때 많이 사용하는 표현이며, 그리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깊이와 관련이 있고, 죽음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은 철학적 개념일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다시 말해 삶의 의미는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기준이며, 행복이나 도덕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또 다른 가치를 가리키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사랑의 근거에 따라 행동하고, 사랑하는 대상이 가치가 있을 때, 비로소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주관적인 사랑이 객관적인 대상을 만나는 것으로, 마땅히 가치가 있는 대상을 사랑하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그 대상에 관여함으로써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주관적인 이끌림이 객관적인 매력을 만났을 때 비로소 삶이 의미 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어서 저자는 ‘의미’있는’ 이라는 표현을 해석하는데 있어, 일반적인 통념을 전제로 하나씩 살펴보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삶에 의미를 얻을 수 있는, 첫 번째 통념은 성취관점으로 ‘자신의 열정을 발견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주관적인 측면이다. 이렇게 해서 얻는 성취감은 분명 긍정적인 감정으로, 삶을 의미 있게 하는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고 한다. 그것은 성취감을 느끼더라도 추구해야 할 가치가 결핍되어 있을 때, 그것이 의미 있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따라서 두 번째 통념은 이를 보완한 ‘자신보다 큰 존재에 관여하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이라는 관점이라고 말한다. 이는 객관적인 측면으로 행위자 외부에 존재하는 가치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두 가지 통념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삶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며, 이를 수정된 성취관점이라 부른다. 다시 말해서 일반적인 성취감보다 적절한 대상이나 활동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구체적인 성취감이 더 완전하며,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대상이나 활동이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판단과 그 가치가 객관적이냐 하는 것은 여전히 의문 속에 남는다. 가치가 있고 없음, 또는 그 가치의 객관성을 판단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에 대해 네 명의 철학자들이 논평을 하고 있다. 철학자이자 시인인 존 쾨테는 객관적으로 가치 있는 과제나 활동에 주관적인 헌신이나 사랑이 더해지면서 삶의 의미는 모습을 드러낸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무모한 열정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가 라고 묻고 있다. 의미 있는 삶이 반드시 행복한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로버트 애덤스 교수 역시, 가치 있는 대상을 사랑하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관계를 맺을 때, 삶의 의미가 모습을 드러낸다는 저자의 주장이 의미 있다고 말하지만, 행복한 삶이란 도덕적으로 훌륭한 삶과는 다르다며, 꼭 뭔가를 성취해야만 삶이 의미가 있는가? 라고 반문한다. 그런가 하면 노미 아르팔리 교수는 객관적인 가치에 부합하는 성취가 없더라도, 스스로 만족한 삶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느냐고 말하며, 조너선 하이트 교수는 어떤 대상이나 활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즐겁게 빠져드는, 즉 몰입할 수 있다면 객관적 가치는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에 저자는 답변에서 삶이 의미 있으려면 가치에 대한 객관적 기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변한다. 객관적 기준이 있어야 우리는 어떤 대상이나 활동에 몰입해야 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자의 강의 내용을 읽으면서, 그리고 논평자들의 주장을 읽으면서, 과연 삶의 의미란 무엇이고, 내가 사는 삶 속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가치 있는 삶이란 저자의 주장과 무엇이 다른지를 반문해본다. 삶의 의미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이자 충만한 삶을 이루는 핵심요소라는 주장에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러나 논평자들의 말처럼 객관적 가치가 꼭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선뜻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똑 같은 일을 하고, 똑 같은 생활을 하면서도, 지난날 들지 않던 삶에 대한 의문이 지금에 와서 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은 우리의 욕망은 특정 감정을 느끼는 삶이 아니다. 단지 다른 사람에게서 긍정적으로 평가 받고, 존경 받으며, 나의 가치를 인정 받는 삶일 뿐이다. 그러한 삶은 성취에 관계없이, 자신이 옳다고 느끼는 어떠한 일에 열정적으로 몰입하는 그 자체가 아닌가 싶다. 요즘 들어 내가 왜 사는지에 대한 의문이 자주 드는 것은, 아마 어떠한 일에 대한 열정이 전과 같지 않기 때문 일 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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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이 책을 이어서 읽었다. 둘은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시리즈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 결국 삶을 이야기 했고, 이 책에서는 그 삶의 의미를 찾아갔다. 크게 3 파트로 구성 되어 있다. 저자의 강의, 지인들(?)의 논평, 저자의 답변으로 구성되 있는 짧은 내용의 책인데 생각할 내용은 많다. 관용과 포용, 이해과 균형, 그리고 몰입 등등등 생각할 내용들이 많다. 나중에 다시 읽어 보면 더 많은 깨달음을 얻을 것 같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굉장히 짧은 내용인데 글자 수를 키우고 줄 간격을 키워서 페이지 수를 엄청 늘렸다. 아마 이 두 가지를 수정했다면 최소 1/3의 페이지가 줄어들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가격이 좀 내려가지 않았을까? 처음 글자 크기와 줄 간격을 보고 놀랐다. 아마 죽음이란 무엇인가와 두께를 비슷하게 하려고 한 것 같은데 차라리 좀 얇았다면 얇은 대로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래도 오래간만에 글자가 큰 책을 읽어서 눈이 덜 피로했다. 요새 눈이 쉽게 피로해져서 글을 많이 못 읽는데 글자가 크니 좋은 점도 있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읽은 분이라면 한 번 이 책을 읽어 보는 것도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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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무엇인가(LIFE) 】는 예일대 셀리 케이건 교수의 명강의 『죽음이란 무엇인가(DEATH)』에 이은 ‘삶을 위한 인문학(Humanities for Life)’ 시리즈의 두 번째 기획에 해당한다. 삶의 유한함을 말해주는 죽음이 있기에 현재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는 세이건 교수의 마지막 다짐이 아니더라도 죽음이라는 시간의 유한성은 인간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해주는 유일한 가치이자 수단이다. 결국 철학자들이 말하듯이 죽음으로 인하여 삶은 새로운 빛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삶이란 무엇인가, 삶이 무엇이길래 우리는 그토록 삶에 집착하고 삶에 무한성을 찬양하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그리고 무엇이 삶을 가치있게 하는 것일까?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알고 싶은 것, 그 저변에는 삶에 부여하는 우리의 갈구와 소망을 이루고 있는 '삶의 의미'이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철학교수인 수전 울프는 우리의 삶에서 의미있는 삶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왜 중요한지 ‘이성적’으로 밝히는 목적으로 이 책을 집필하였다. 수전 울프 교수는 우리가 갈구하고 있는 ‘삶의 의미’라는 개념을 ‘가치 있는 삶을 구성하는 독립적인 요소’로 정의하며 설명하고 주장하는 과정을 거치며, 삶을 말해주고 있다. 저자는 기존의 철학자들이 삶을 규정하는 이분법이었던 이타주의나 이기주의로 해석되는 인간행동들에 대한 철학적 설명을 부정하며 논의를 시작한다. 인간을 행동하게 하는 심리적 저변에는 상대방을 향한 ‘사랑’이 동기이며, 바로 이것이 개인 외부에 존재하는 가치가 된다. 사랑의 근거에 따라 행동하고 선택하는 성향이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능력임에도 철학자들은 인간의 근원적인 '이기주의 or 이타주의'에 의한 행동으로만 판단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주장하는 ‘가치가 있는 대상을 사랑한다’는 말은 한편으로는 의미가 추상적이다. 누군가를 사랑할때 행하는 행위, 또는 무언가에 열중하는 행위는 주관적인 이끌림이 있어야 하고 객관적으로 매력이 있을 때에 드러낼 수 있는 부연성을 설명해 준다. 삶의 의미라는 개념은 주체 그리고 주체를 끌어당기는 객체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형성돼야 한다는 결과를 도출하게 된다. 삶의 의미에 대해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설명을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살아가면서 무엇을 원하고 추구해야 하는지 대한 논의 만으로도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이다. 저자는 삶의 의미라는 개념은 우리 자신의 외부에 존재하는 가치에 열린 마음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라고 우리를 자극하면서, 자신의 세계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기를 재촉한다. 그래서 역설이다. 그렇기때문에 삶의 의미를 원한다면 우리는 자신의 세계에만 고집스럽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또한 어떤 경우든 객관적인 가치의 개념을 인정하지 않으면, 도덕성과 자기이익과는 또 다른 가치 범주로서 ‘삶의 의미’라는 개념을 분명히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말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삶의 의미를 주관적으로 열정을 바칠 만하며 객관적으로 가치가 있는 의미에 몰입하는 것을 정확히 판단하라고 한다.
1부는 수전 울프의 '삶의 의미' 강의가 2부에는 네 명의 저명한 철학자가 수전 울프의 강의에 대한 논평이 실려있다. 읽으면서 역시 철학자들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은 일반적인 수준과는 비교도 안되게 현학적이다라는 생각을 하곤 하였는데 이들의 논쟁으로 삶의 의미가 더 단단해지는 이성적 토대를 마련해줌과 동시에 삶에서 깊이있는 철학 피드백을 제시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귀기울여 볼 강의다.
“객관적으로 가치 있는 과제나 활동에 주관적인 헌신이나 사랑이 더해지면서‘ 삶의 의미는 모습을 드러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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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 이야기 2014-188 『삶이란 무엇인가』 수전 울프 / 엘도라도 1. ‘삶이란 무엇인가?’ 써놓고 보니 참 막연하다. 밑도 끝도 없는 질문 같다. 그럼 반대로 가볼까? ‘죽음이란 무엇인가?’ 하긴 이 책은 나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를 화두로 한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 (엘도라도) 의 연장선상이다. 삶이 죽음이고, 죽음이 삶이다. 두 주제가 나아가는 길은 서로 다른 듯하지만 결국은 ‘삶’으로 만난다. 2. 이 책은 독특한 편집 형태를 취하고 있다. 수전 울프 교수의 ‘삶이란 무엇인가’, ‘삶은 왜 중요한가’ 라는 타이틀로 두 편의 강의가 시작된다. 그리고 이 강의에 대한 네 사람의 논평이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수전 울프가 논평에 대한 답변을 남겼다. 3. 수전 울프의 ‘삶’에 대한 관심은 삶에 담겨 있는 궁극적인 목적에 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왜 중요한지 ‘이성적’으로 밝히는데 관심이 있다. 사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에서 ‘의미’를 애타게 찾고 있다. 찾다 못 찾으면 무의미한 존재라는 섣부른 결론을 내리고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경우가 온다. 4. 그렇다면 좀 더 나아가서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고민하는 것은 어떤가. 그런데 과연 삶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은 가치가 있는 일인가? 울프 교수는 이 책에서 삶의 의미라는 개념을 ‘가치 있는 삶을 구성하는 독립적인 요소’로 정의하고, 설명하며, 주장하고 있다. 5. 아울러 행복, 건강한 삶, 도덕성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울프 교수는 삶의 의미는 행복 및 도덕성과는 다른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녀가 말하는 삶의 의미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이자 충만한 삶을 이루는 핵심요소로 귀결된다. 6. “삶의 의미는 가치 있는 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관여과정에서 그 존재를 드러낸다. 이런 차원에서 삶의 의미는 주관적인 이끌림이 객관적인 매력을 만났을 때 비로소 모습을 나타낸다.” 7. 아울러 울프는 “삶의 의미가 인간의 행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돼야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깊이 공감한다. 그 의미에 대한 정의는 개인별로 다를 것이다. 어쨌든 그 의미를 끝까지 붙잡고 있을 일이다. 8. 어떤 면에선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만족을 못 느끼는 경우가 될 것이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삶의 의미라는 개념을 ‘깊이(depth)’로 표현을 하고 있다. “삶의 의미를 향한 갈망은 자신의 삶이 피상적, 즉 ‘깊이가 얕다’는 인식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리고 삶의 의미에 대한 관심은 대개 임종의 순간에 직면하거나, 개인적으로 직면하게 되는 ‘죽음’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된다.” 9. 삶에 대한 ‘깊이’라는 것은 나와 남을 비교하는 잣대의 다른 표현이라 생각한다. 그 대상은 재물, 권력 또는 재능, 외모, 건강 등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몸에 붙은 액세서리가 주인 노릇을 하는 셈이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10.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나’라는 ‘인간’을 체험하는 것, 그것이 ‘삶’이다. 나를 제대로 체험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남의 삶만 열심히 들여다보고 내려다보고 올려다보는 관람객에 불과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깊이 생각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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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형식의 책이었다. 저자의 글이 두편이(두개의 강의) 이어지고 그 후 다른 교수 4명의 논평, 그리고 이에 대한 저자의 답변까지 총 3부로 이루어진 책이다. 이들이 삶의 의미에 대해 나눈 대화에 끼어들 능력도 의도도 없고 솔직히 전부를 이해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한가지 얻은 사실이라고 한다면 의미있는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책을 보면서 가장 인상깊게 보았던 문장은 이것이다. 의미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두개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것.
주관적인 이끌림(subjective attraction) + 객관적인 매력(objective attractiveness)
여기서의 '객관적'이라는 단어를 적용하는데 있어 과연 보편적인 기준이 있는가에 대해서도 논의가 되고 있긴 하지만 기본적인 프레임으로 삼는데는 크게 무리있어 보이진 않는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의미없는 행동을 반복하면서 재미를 느끼고 있다면(예를들어 쓰레기통을 뒤집어 어지럽혀놓고 다시 주워담는 행동 같은) 주관적인 이끌림은 만족하겠지만 객관적인 매력이 있다고는 할수 없을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어렵지 않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고. 이건 마치 직업을 찾는데 있어서 자신이 잘 할수 있는일인지 여부와 적성에 맞는 일인지를 따져보는 것과도 비슷해보인다.
살아생전 작품하나 제대로 팔지 못했고 평생을 어렵게 살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고흐의 인생은 가치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가 살아생전에 나의 작품은 내가 죽고나서야 인정받을꺼야라고 자기 위안을 했을리도 만무해보인다. 하지만 그는 평생 그림을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으니 자기가 그림을 그리는 행동에 대한 정신적인 보상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다른 경제활동은 등진채 자기멋에 취해 평생을 살다간 사람이라고 폄하할 수도 없는 노릇. 아마도 많은 예술가들이, 오늘날의 가수나 연기자 같은 연예인 지망생들을 이같은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을것 같다. 평생 무명연기자로 가난하게 살다가 사업을 시작해서 성공한 사람이라면, 혹은 안정된 직장 생활을 하다가(아니면 사업을 성공적으로 영위하다가) 갑작스럽게 신내림을 받아 무속인으로 전업한다면 이 사람의 전후반기 인생을 의미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복잡하다.
인간은 객관적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종교에 귀의하는 이유도마찬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신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신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자 함일테니까.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가, 나는 내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남들은 나의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던 책이었다. 의미없어 보이는 같은일을 반복하고있는 시시포스의 삶을 의미있게 만들어 주기 위해서는 바위가 굴러떨어지는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는 장치를 부착해주면 될일이다. 제대로 이해하진 못했지만 읽어보길 잘했다는 생각은 들었던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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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하다 보면 삶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물음을 한번쯤 자신에게 하게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답을 찾기란 쉽지 않고, 어쩌면 답이 없는것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이에대한 생각... 접근 방식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 바로 이 책 입니다. 물론 주제가 가볍지 많은 않기에, 약간 어렵고, 일부분은 조금 따분하게 느껴질수도 있짐나 다 읽고나면 책 한 구절 한 구절 머릿속에 기억에 남는 유용한 책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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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서 다루는 명제들은 정답을 찾을 수 없음에 한결 같이 난제라 할 수 있다. ‘삶이란 무엇인가’란 명제 또한 쉬이 정의 내릴 수 없는 명제로써 복잡하고 다양한 우리의 삶을 한 두 가지로 정의 내릴 수 없음에 다른 철학 주제들과 그 맥락이 같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수전 울프 교수가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했던 내용을 집필하고, 집필된 내용을 4명의 서로 다른(인문학의
큰 범주로 본다면 같다고 할 수 있지만) 분야의 교수들이 논평하고 그리고 수전 울프 교수가 각각의 논평에 대한 답변을 수록한 구성으로 되어 있는 책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 “무엇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가 ” “행복한 삶과 의미 있는 삶은 다른가 ” “모두가 행복해지는 객관적 가치란 존재하는가 ” “삶은 반드시 의미 있어야 하는가 ” 저자는 위의 물음들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필요한 기준을 제시고자 강의를 시작하고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저자
스스로 그에 대한 대답을 내놓는 것이 아닌 “삶” 자체에 대한 집단지성의 고찰을 요하는 화두를 이 책을 통해 던져 놓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저자는 삶의 의미에 관한 논의를 이끌어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용어와 개념을 정의하고자 했다. 저자는 삶의 의미에 대해 “자기이익이나 도덕성과는 다른 가치 있는 삶을 이루는 하나의
범주”이며, “열정적인 마음으로 객관적인 가치를 지닌 대상에 관여할 때 모습을 드러낸다”고 주장한다. 논평과 답변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객관적 가치”에 대한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객관적 가치판단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에서 논평을 하는 입장이나 답변을 하는 입장 어느 한편의 논리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 없다. 서울하늘아래 김서방 찾기처럼, 아니 애당초 김서방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처럼 복잡하고
난해한 명제를 파고들어 각자의 논리를 펼치는 철학 논제들은 꼭 답답함을 느끼게 하거나 혹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아주 먼 나라의 예기만이 아닌 우리에게 논리적 사고를 고찰하는 기회를 주고 또 스스로 좀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그 자체만으로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논평의 내용 중 “최고의 가치”에 대한 노미 아르팔미 교수의 아래와 같은
생각에 심히 공감이 간다. “최고의 가치란 없는 것이다. 도덕성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반드시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신중함의 관점에서 볼 때 항상 신중하게 움직여야 한다. 마찬 가지로 모든 가치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가치가 충돌할 때 사람들은 ‘각자 스스로’ 판단을 내린다. 이 말은 곧 각각의 모든 가치들을 초월해 우리에게 어떤 선택이 옳은지 분명하게 말해주는 상위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고를 발전시킨다는 것은 관점의 차이를 이해하고 수용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니 답이 없는 질문이라 해서, 끝이 보이지 않는 여정이라 해서 무의미하거나 무익하다고
할 수 없지 않을까 또한 무의미하거나 무익하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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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머릿속을 떠도는 질문이 있었다. ‘나는 왜 살까?’, ‘삶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따위의 것들이다. 당연히 정답은 없기 때문에 내가 스스로 답을 정하고 편하게 살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다. 이럴 때 보면 나는 질문에는 답이 짝지어져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좀 있는 편인 것 같다. 애초에 답을 얻고 싶은 마음은 없었고 조금이라도 답안을 작성하고 싶어서 알아보던 중 수전 울프 교수의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어려워 보였지만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읽기로 결심했다. 책은 울프 교수의 강의, 네 학자의 논평, 그리고 다시 울프 교수의 대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울프 교수의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삶의 의미란 도덕성과 자기이익과는 또 다른 가치 범주에서 ‘가치 있는 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관여 과정’에서 존재를 드러내며, ‘주관적인 이끌림’과 ‘객관적인 매력’이 만났을 때 비로소 모습을 보인다.
울프 교수는 ‘열정을 발견하라’는 관점과 ‘자신보다 더 큰 존재에 관여하라’는 관점을 옹호한다. 관점1은 성취 관점이다. 성취감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성취감은 고통과 좌절도 동반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감정들과 잠재적인 경쟁관계에 있다. 그럼에도 열정을 추구하기 위해 부정적인 감정들을 감내한다는 점에서 위대하고 분명한 가치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성취 관점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관점2에서 ‘더 큰 존재’라고 할 때 크기에 대한 조건을 느슨하게 잡아야 한다. 더 큰 존재란 다른 존재 즉 외부의 가치를 말하며, 가치 있는 활동에 관여한다고 느낄 때 좋은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울프 교수는 이 두 가지를 합친 연립 관점을 ‘수정된 성취 관점’이라고 부르면서, 어떤 일에서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긍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가치가 그 속에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을 강화했다. 관점 1은 주관적인 측면, 관점 2는 객관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관적인 이끌림’과 ‘객관적인 매력’에 대해서 덧붙이자면, ‘사랑’은 부분적으로 주관적인 요소로서 ‘태도’와 ‘느낌’을 수반한다. 그러나 사랑의 대상이 ‘사랑할 만한’ 가치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말할 때 삶과 의미라는 개념은 객관적인 요소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주관성과 객관성을 판단하는 것은 애매하고 어렵게 느껴지지만, 이론 자체는 꽤나 타당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떤 이론이든 한계점은 존재한다. 울프 교수가 스스로 지적한 두 가지 우려는 엘리트주의의 위험과 객관적 가치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심이다. 울프 교수는 어떤 활동에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그런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대답을 제시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다는 것과 가치 판단을 할 때 실수할 수 있으니 주체 독립적인 가치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했다.
울프 교수에 대한 논평도 이어진다. 4명 중 2명은 전체적으로 동의하고, 2명은 반대하는 양상을 보인다. 그들의 공감 및 지적을 참고하면서 울프 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검토하고 정리한다. 처음 강의 부분에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놓쳤던 부분이 정리되어 있어 명쾌했다. 조금 정리해보자면,
우리가 여러 다른 삶들을 엄밀하게 평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삶의 의미를 최대한 높이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어떤 사람이 분명하고 뚜렷하게 삶의 의미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는 분명히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반드시 삶의 의미를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고, 타당하지도 않다. p.196
“가치 있는 대상에 대한 열정적인 관여를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라고 말할 때 나는 암묵적으로 “그런 위험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일이 정말로 가치 있는 일인지 과감하게 질문 던져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p.220
삶의 의미가 우리의 인생에서 유일한 가치는 아니다. p.222
다양한 활동 속에 객관적인 가치가 있는지 의심을 한다고 해도 그런 활동을 포기하거나 허무함을 느낄 필요는 없다. 다채로운 현실적 삶을 구성하는 ‘모든’ 활동 및 과제가 삶의 의미에 기여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p.224
다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그동안 ‘삶의 의미’에 너무 집착했다는 것이었다. 울프 교수는 드물게 ‘삶의 의미’라는 주제에 대해 파고들었고 자신의 주장을 펼친 것뿐 ‘삶의 의미’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열정, 성취감, 사랑, 주관성, 객관성 등 여러 개념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또한 네 명의 학자의 논평까지 참고하여 자신의 주장에서 발견될 수 있는 한계점을 무시하지 않고 폭넓은 논의를 펼쳐서 그런지 계속 고개를 끄덕이게 된 것 같다. 아직은 읽은 내용을 당장 내 삶에 적용하기는 힘들지만, 내용을 곱씹다 보면 내가 삶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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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왜 살아가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인생에서 경험하는 여러 사건들이 어떤 의미인지 등 우리는 삶에서 무언가 의미를 찾고 싶어한다. 그리고 누구도 가치 없는 삶을 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매일 새로운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는 삶은 무엇이며, 어떠한 가치 혹은 의미가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더욱 풍성해지는 우리들의 삶을 위하여. 이 책은 삶의 의미에 대한 수전 울프 교수의 강의와 이 강의에 대한 4명의 저명한 학자들의 의견, 그리고 수전 울프 교수의 답변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강의를 듣고 그것에 대해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답을 하는 강의에 참석하고 있는 듯하다. 흥미를 돋우는 구성이 마음에 든다. 한편,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울프 교수의 강의에는 삶이 무엇이며, 그것이 왜 중요한 지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다. 저자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를 그 동안에는 너무 단순화했다고 문제를 제기하며 자신의 주장을 시작한다. 행복 추구와 도덕성을 갖추기 위함이라는 단순화된 이원론으로 어떤 행위의 동기를 설명할 수 없음을 울프 교수는 주장하고 있다. 사랑, 즉 어떤 대상에 대한/대상을 향한 사랑이라는 또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삶의 의미란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기준이자,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마땅히 추구해야 하는, 그러면서도 행복이나 도덕성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가치의 범주 또는 차원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삶이 의미 있다라고 할 때는 어떤 사람이 어떤 객관적으로 가치 있는 대상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 때, 뭔가에 빠져 있거나 열광하고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을 때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삶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판단은 각자가 가진 가치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기존에는 삶의 의미를 자신의 열정을 발견하고 추구하는 데에서 찾으라며 주관적 측면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성취감 만으로는 삶의 의미를 진정으로 정의할 수 없다. 때문에 저자는 이 주관적 요소에 객관적 측면을 더해 자신의 외부에 가치의 원천을 두고 어떤 대상에 관여하는 것이 최고의 삶이라는 관점을 유지한다. 울프 교수는 "삶의 의미는 가치 있는 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관여과정에서 그 존재를 드러낸다. 이런 차원에서 삶의 의미는 주관적인 이끌림이 객관적인 매력을 만날 때 비로소 모습을 나타낸다."라고 말한다. 저자가 말한 삶의 의미를 생각하면 객관적 측면도 중요한데, 이 때 문제가 되는 것은 가치를 어떤 근거로 그리고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이다. 울프 교수는 어떤 대상이 삶의 의미에 기여하려면 적절히 힘들고 어려우며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저자도 "다양한 교육과 경험 그리고 여러 문화적 영향력에 의해 직관적으로 이루어지곤 한다. 인간과 문화가 변화하므로 이것에 대한 판단 기준도 역시 계속 변화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객관적인 가치 기준을 정하는 것이 쉽지 않은 문제임을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객관적 가치는 존재하는 것일까? 울프 교수는 어떤 활동들이 삶의 의미에 기여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잠정적인 선택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다만 매우 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가치 있다고 인정한 활동들에는 가치가 있으리라고 기대한다고 자신의 기준을 말해주고 있다. 이 객관적 가치 부분에는 여전히 의견이 나뉜다. 강의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 학자들도 객관성 측면에서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저자도 인정하고 있듯이 삶의 의미에 대해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만한 설명을 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엇을 원하고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내는 것만으로도 이 강의가 의미가 있다라고 울프 교수는 쓰고 있다. 삶이 의미 있도록 하는 대상이나 활동은 우리가 세상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만드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삶이,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가고 싶은 이들에게 그리고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은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울프 교수가 말한 것처럼 나 역시 개인의 성취 혹은 만족만으로 삶의 의미를 찾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다. 타인의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에도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삶을 살아가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나 이외의 대상 혹은 존재에 가치를 더해 줄 수 있는 삶으로 나 자신뿐만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의 삶을 의미 있게 그리고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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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 교수는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왜 중요한지 이성적으로 밝히는 데 관심이 있다. 우리 모두는 삶에서 의미를 갈구한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단조롭고 소외되고 아무렇게나 흘러가는 삶 속에서는 어떤 의미도 발견할 수 없다. 울프 교수는 삶의 의미라는 개념을 가치 있는 삶을 구성하는 독립적인 요소로 정의하고 설명하며 주장하고 있다. 삶의 의미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이자 충만한 삶을 이루는 핵심요소이다. 산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 현실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도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