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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와트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캄보디아에 있는, 동남아시아 최대의 역사 유적 중 하나입니다. 유적은 톤레사프 호수에서 북쪽으로 약 2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앙코르 산(언덕) 정상에 자리 잡고 있고 주변에는 많은 사원 유적과 왕도였던 앙코르톰 유적도 있어서 이 지역 전체 유적을 앙코르 유적군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지칭되는 웅장하고 화려하면서도 신비스러운 앙코르 유적은 동아시아 서포터즈로 활동중에 자유도서로 신청해서 지원받은 책 메콩시리즈 중 <앙코르 와트>입니다.
밀림 속에서 잠들어 있는 동남아시아 최대 유적입니다.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은 동양학이 얼마나 정치적이었던가를 밝히는 것도 아니고, 정치가 곧 악이라는 것을 판단하는 것도 아니다. 학문과 정치를 분리시켜 편의에 따라 학문예찬을 하거나 정치비판을 하는 학문사를 극복하고, 두드러지게 정치적이었던 오리엔탈리즘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것이 목적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습니다. 그동안 몰랐던 앙코르와트는 고고학, 미술사, 역사, 정치 등 다방면에서 다루고 있어서 인문학과 학술적 차치를 배울 수 있는 훌륭한 교양서입니다.
프랑스인에 의한 앙코르 발견 이야기는 1863년 캄보디아를 방문해 유적군의 존재를 구미에 전한 식물학자 앙리 무오(1826-1861)로부터 시작됩니다. 들라포르트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발견자는 아니고 앙코르를 방문한 것은 무오보다 3년 후였고, 게다가 두다르 드 라그레 해군 대위가 이끄는 조사대의 일원에 지나지 않았고 <인도차이나 탐험여행>은 그 조사에 감차했던 프란시스 가르니에에 의해 1873년에 출간되었습니다.
1887년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앙코르 유적은 프랑스의 연구기관에 소속되어 있던 프랑스인 고고학자들이 거의 독점적으로 조사했고, 그로 인해 대량의 유물들이 프랑스로 이송되었습니다. 프랑스가 앙코르 유적을 재발견하고 학술조사를 하여 앙코르 고고학의 기초를 마련했고, 이러한 ‘공헌’이 없었다면 앙코르 유적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세계문화유산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하지만 대량의 유물들과 미술품이 유적지에서 반출되어 프랑스로 강제 이송되었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며 불법적인 유물이송을 법적으로 제한한 뒤에도, 교묘히 법망을 피해 ‘합법적’으로 유물들을 프랑스 본국으로 가져왔으며, 구미 국가나 일본의 미술관에 미술품을 교환하거나 매각하기도 했으며 이러한 행위는 20세기 중엽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귀중한 크메르의 미술품을 유적지에서 반출해 프랑스 본국으로 가져온 그 이면에는 심각한 정치적인 문제도 있었습니다.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은 동양학이 얼마나 정치적이었던가를 밝히는 것도 아니고, 정치가 곧 악이라는 것을 판단하는 것도 아니다. 학문과 정치를 분리시켜 편의에 따라 학문예찬을 하거나 정치비판을 하는 학문사를 극복하고, 두드러지게 정치적이었던 오리엔탈리즘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것이 목적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습니다. 그동안 몰랐던 앙코르와트는 고고학, 미술사, 역사, 정치 등 다방면에서 다루고 있어서 인문학과 학술적 차치를 배울 수 있는 훌륭한 교양서입니다.
동아시아 서포터즈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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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와트』라는 책 제목을 달고는 있지만(물론
한국어판의 제목일 뿐이긴 하지만), 앙코르와트 유적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아니 앙코르와트 유적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고
앙코르와트에 대해서 알 수는 없다. 아마 다른 책을 읽어봐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가가
궁금해질 수 밖에 없다. 후자하라 사다오는 '역사'를 쓰고 있다. 그런데 그 역사는 앙코르와트의 역사가 아니라 그 유적을
둘러싼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역사'이다. 그 유적을
둘러싼 정치와 학문의 유착 관계와 긴장 관계를 끈질기게 탐구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도 이 책을 "캄보디아의 앙코르 유적에 대해 쓴 책이라기보다는, 식민주의
시대의 프랑스의 역사책"(574쪽)이라고 하고 있다.)
후자하라 사다오가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은 캄보디아 현지에서 앙코르 유적을 발굴하고, 수복하고, 관리했던 현장 연구자들이다. 이는 원래 제목에서도 드러난다. '오리엔탈리스트의 우울'! (정말 일본인 저자다운 제목이다.)
후자하라 사다오는 그들이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었지만은(유물을 반출하였다든가, 팔아넘겼다든가 하는 것들부터 시작해서 제국주의의
최전선에서 원주민들에 대한 태도까지, 그리고 나중에는 일본에 대한 태도까지), 그들의 학문적인 공(功)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여져 있었으며,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쫓아가보고 있는 것이다. 비판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는 그
비판을 소개하고 있으며, 순순히 인정하고 있다(물론 나름대로의
답변을 하고는 있지만). 내가 놀란 것은 그런 비판이 한국에서만 나왔었다는 것이다. 정치와 학문을 별개의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자세가 이른바 제국주의의 위치에 서 있던 나라들에서는 별 무리가
없이 받아들여진다는 얘기다. 우리는 전혀 그럴 수 없는 상황인데 말이다.
그런 비판적 스탠스를 그대로 갖고 읽어야 한다는 것이, 다 읽고 난 후에도 갖고 있는 나의 생각이고, 많은 한국인들의 생각이라고
믿는다. 일단 그것을 전제로 하고 보면, 이 책은 나름대로
건질 거리가 많은 책이다. 우선은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에 대해 행해진 제국주의 수탈의 역사는 한반도에서도
거의 그대로 행해졌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 역사는
과연 누가 써야 할까? 여기서는 또 다른 제 3자 과거 제국주의
나라의 미술사학자가 썼다. 우리와 일본의 역사는 누가 쓸 수 있을까? 또한 후자하라의 전제를 일단 그렇다고 하였을 때도 식민주의 문화재 수탈의 역사가
비판받아야 한다는 걸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학문의 본래적 성질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는 것도
포함할 수 있다. "학문의 정치성은 결론이 아니라 전제이다. 굳이 이야기한다면, 정치적이었기 때문에 학술적 공헌도 있을 수 있었다고 정색을 하고 사실을 파내어, 오늘날 우리가 계승하고 있는 근대의 학문이, 이미 해체되었던 정치
체계와 마찬가지로 얼마나 위험스러운 존재였던가, 그리고 지금도 그러한가, 생각하고 싶었던 것이다." (572쪽) 학문이 정치적이었기 때문에 학술적 공헌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에게 참 익숙한 변명 같은 것이지만, 그런 관계를
인정하고 난 후에 현대의 학문과 정치를 다시 보자는 저자의 아이디어에는 쉽게 뒤돌아설 수는 없을 것 같다.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특히 캄보디아인은
거의 등장하고 있지 않다는 점, 학술서라서 그런지, 일반인들은
관심을 가지기 힘든 인물에 대한 지리한 설명과 식민지성의 그림과 부조에 대한 설명 등등. 그러나 그것들을
저자가 인정하고 있다는 점, 그런 모자란 점에 대해서는 자신도 어찌해 볼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을 쓰고
있어서 달리 뭐라 할 수도 없게 만들어 버린다.
정작 정말로 아쉬운 것은, 이 책의
문체다. 대학 시절 리포트 매수를 채우느라 늘려 쓰던 문체를 여기서 볼 수 있다. 혹은 나이 드신 학자 분들이 썼던 문체. '~하는 것이다.' 아무데다 펼쳐 놓고 보면, "유물을 위험한 여행의 동반자로 삼았던 것이다." (47쪽) "잃어버린 머리 부분을 상상으로 보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98쪽) "통설을 뒤엎는 이론서를 간행한 것이다." (228쪽) "전체적으로 유지되었던 것이다." (310쪽) 그리고, 여기저기에 등장하는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등등.
그냥 '삼았다', '없었다', '간행했다', '유지되었다', 그냥 그렇다, 이렇게 하면 더 매끈하고 우리말다울 것을... 자꾸 문체에 눈길이 가서 오히려 이 어렵지 않게 쓴 학술서가 고리타분한 느낌을
준다.
(2014. 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