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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창녀와 다산의 처녀, 그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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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식동물, 그는 장미와 새들에게 늘 쫓기었다   입에서 별들을 쏟아 놓으려고 늘 하얀 벙어리였다 - 문정희 시집 <찔레> 중 ‘어느 시인’ 전문     초를 문지르고 팔이 빠져라 걸레질하면 반질반질해지는 교실 마룻바닥처럼 언어에 초칠을 하고 수없이 닦으면 반짝거리는 시가 탄생되는 줄 알았다. 닦아낼수록, 반짝일수록 추함이 있을 자리가 없어지니까.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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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식동물, 그는

장미와 새들에게

늘 쫓기었다

 

입에서 별들을

쏟아 놓으려고

늘 하얀 벙어리였다

- 문정희 시집 <찔레> 중 ‘어느 시인’ 전문

 

  초를 문지르고 팔이 빠져라 걸레질하면 반질반질해지는 교실 마룻바닥처럼 언어에 초칠을 하고 수없이 닦으면 반짝거리는 시가 탄생되는 줄 알았다. 닦아낼수록, 반짝일수록 추함이 있을 자리가 없어지니까. 문정희 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겠지 싶었다. 초식동물(시인)은 장미와 새들(아름다움을 생산하려는 욕구)에 시달린 끝에 하얀 벙어리가 되어 때때로 별(시)들을 쏟아내므로. ‘찔레’나 ‘한계령을 위한 연가’, ‘겨울 사랑’등의 널리 알려진 그의 시가 이렇게 세상의 문을 열고 나온 줄 알았다.

 

어느 땅에 늙은 꽃이 있으랴

꽃의 생애는 순간이다

- ‘늙은 꽃’

 

  그의 열한 번째 시집 <다산의 처녀>는 이런 나의 생각이 지레 짐작한 착오였음을 시인하게 한다. 꽃(시)은 순간에 피고 순간에 진다. 시인의 손끝에서 피었다 져버린 시는 독자의 손길에서 다시 피어나고 지기 마련이다. 오랜 시간 여러 독자의 손을 거치면서, 때로는 같은 독자의 손에 다시금 쥐어지면서 명멸하는 별무리가 된다. 그 찰나의 아름다움으로 영원에 버금가는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오래토록 닦아서 반짝이는 게 아니라 순간의 힘으로 찬란하게 빛을 내는 거다. 순간의 힘은 순간에서 온다.

 

내가 화살이라면

오직 과녁을 향해

허공을 날고 있는 화살이기를

- ‘내가 화살이라면’ 부분

 

  가령 허공을 가르는 화살 같은 시간에서 온다. 활시위를 떠난 활이 무서운 속도로 과녁을 향하는 번뜩임으로, 시는 온다. 어느 땅에도 늙은 꽃은 없듯이 늙은 시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늙은 시인도 있을 수 없다.

 

나 처음 시를 쓴다

그동안 몇 권의 시집을 낸 기억이 있지만

오늘 비로소 처음 시인이다

- ‘서로 비슷한 사랑’ 부분

 

  수백 편의 시를 세상에 발표했더라도 첫 시를 쓰는 설렘과 불안을 잊었다면 이미 시인이 아니다. 항용 두근거림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자가 시인이다.

 

일 년에 한두 번 사막에 비가 오면

그 자리에 얼른 뿌리를 내려

생명을 퍼뜨리는

텀블링플랜트

- ‘떠돌이 풀’ 부분

 

  허공을 떠돌다 물기를 감지하면 순식간에 뿌리를 뻗는 텀블링플랜트처럼 삶 언저리를 떠돌다 삶의 경이로움을 발견하면 무턱대고 파고드는 시인의 눈. ‘와락 나를 끌어안는 뜨거운 쓸쓸(‘쓸쓸’ 부분)’과 함께‘빈 하늘을 쪼개는 / 짧고 뜨거운 한 문장을(‘너를 보내고’ 부분)’을 토해낸다.

 

  한 권의 시집으로 엮어지기까지, 40여 년 시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자주 쓸쓸과 마주했을까. 쓸쓸이 짙어질수록 시에 대한 고민 또한 깊어진다는 것을 넌지시 말하고 있다.

 

일찍이 광기와 불운을 사랑한 죄로

나 시인이 되었지만

내가 당도해야 할 허공은 어디인가

- ‘사람에게’ 부분

 

  시는 과녁을 향해 날아가지만 허공에 존재해야 한다. 끝에 이르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이동해야 한다. 누군가 한 사람의 가슴에 스밀 때까지 부유하듯 날아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 시는 곧 시인이다. 내가, 내 시가 당도해야 할 허공은 어느 가슴일까, 허우적거리는 시간은 시인을 보다 시인답게 만든다.

 

지상에 왔다가 감히 그 문을

벼락처럼 연 일이 있다

뽀얀 생명이 흐르는 부푼 젖꼭지를

언어의 입에다 쪽쪽 물려 준 적이 있다

- ‘물의 처녀’ 부분

 

  여성의 음부를 클로즈업한 쿠르베의 작품 <세상의 근원>을 떠올리게 하는 시다. 자궁에 언어를 잉태하더니 순풍순풍 낳는 여자. 내민 젖꼭지를 옹골차게 빠는 작은 입이 입술선이 뚜렷해지고, 젖무덤을 움켜쥔 작은 손에 힘줄이 도드라지면 언어는 비로소 시가 된다. 다산한 여자는 여전히 처녀다. 매번 처음으로 낳기 때문이다. 첫 시를 쓰는 설렘과 불안을 여전히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다산의 처녀’는 바로 시인 자신을 일컫고 있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를 그리는 것이

시의 목표였고

정해진 위대한 실패를 향해 가는 길이

시인의 길이었다면

결국 나는 노(NO)시인이다

- ‘노시인’ 부분

 

  다산의 처녀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세계를 그리면서, 딱히 정해지지 않았으나 성공에 그럭저럭 성큼 다가온 자신을 창피해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을 터. 다산의 처녀는 노(老)시인도, 노(NO)시인도 아니라 활활 타오르다 못해 뜨겁게 반응하게 하는 노(爐)시인임을.

 

  노(爐)시인은 ‘나의 노래가 상처를 호호 불어 주는 입술이었으면(‘나의 시집은 약상자’ 부분)’, 하고 바란다. 자신이 ‘길을 잃은 자만이 찾을 수 있는 / 그 길을 지금 날고 있기를(‘내가 화살이라면’ 부분)’바란다.

 

나를 시인이라고 알지 마라

나는 글창녀니라

- 문정희 시집 <나는 문이다> 중 ‘초대받은 시인’ 부분

 

  닦아서 반들반들한 몸을 파는 몸창녀와 닦아서 반짝거리는 글을 파는 글창녀.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

“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 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 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 문정희 시집 <나는 문이다> 중 ‘“응”’ 부분

 

  글창녀라는 표현, 참 매력적으로 들렸던 과거의 나는 당시 시 한 편에 푹 빠졌더랬다. 글창녀라고 스스로를 낮출 수 있는 자만이 쓸 수 있을 것 같은 시를 다시금 암송하며 어렴풋이 깨닫는다. 언어를 닦고 닦는다고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태아를 자궁에서 키우듯, 신생아에게 젖 물리듯 언어의 씨앗을 품고 있어야 벼락처럼 세상의 문이 열려 해산할 수 있다는 것을.

 

  응, 짧으면서도 경쾌하게 시인은 대답한다.

 

천사이며 창녀인 눈부신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어느 때 치마를 벗을지를 몰라

- ‘창녀와 천사’ 부분

 

왜 자꾸 새 옷을 차려입고 싶은지

왜 자꾸 사운사운 시를 짓고 싶은지

- ‘새 옷 입는 법’ 부분

 

  새 옷을 차려입은 글창녀는 때때로 치맛자락을 풀어헤치고 다산의 처녀가 된다. 세상의 문이 되어 시를 내보낸다. ‘해가 지기도 전에 / 붉은 술을 마시기 시작하는 저녁 강물(‘겨울 프라하’ 부분)’처럼, 나는 붉게 달아오른다. 길을 잃은 망명 독자가 된다. 문정희 시에 다가가는 길이다.



YES마니아 : 골드 a*****4 2011.09.10. 신고 공감 6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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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기록장 천백사십이번째.- 다산의 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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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말해두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좋다고 볼만한 시가 없어서 이 시를 올린 것이다. 다시 말해 나에겐 이 시가 좋은 건 아니다. 간지럼 정도는 기발하다 보지만 애를 낳아본 적도 없고 M은 내 취향이 아니라서(...) 아이 다 키우고 50대 된 어머니들에겐 공감할 만한 요소가 많겠다. 아무튼 지팡이를 가져갈거면 그냥 개인 전용 비행기를 타던가 흠. 소설도 꼰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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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말해두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좋다고 볼만한 시가 없어서 이 시를 올린 것이다. 다시 말해 나에겐 이 시가 좋은 건 아니다. 간지럼 정도는 기발하다 보지만 애를 낳아본 적도 없고 M은 내 취향이 아니라서(...) 아이 다 키우고 50대 된 어머니들에겐 공감할 만한 요소가 많겠다.


아무튼 지팡이를 가져갈거면 그냥 개인 전용 비행기를 타던가 흠. 소설도 꼰대스러웠지만 이 정도면 혼모노네. 그나저나 저분 저거 땅콩갑질부린 거 아님?
검색해보니 노약자와 장애인의 보행용 지팡이는 허가된다고 한다. 문정희 시인이 그냥 비행기가 지체되는 게 짜증나서 썼을 수도 있고, 그 상황과 맥락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도 있긴 하겠다. 시가 대표하는 게 뭔진 알겠는데 이렇게 직접적으로 사람의 이름을 담아 시를 쓴 게 살짝 불편하다. 오랜만에 보니 전반적으로 맘에 안 드는 게 한두가지가 아니네.

 

 

 

 

단순히 살이 찌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공부를 할 때 좀 더 둔부가 커지고 땀 흘리는 일을 할 때 작아지는 건 있다. 요즘 공부라던가 글쓰기기법이 중요하네 어쩌네 하지만 중요한 건 앉아서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쓰는 것이다. 뭐라도 해야 결과물이 나온다. 그나저나 의자의 갈비뼈에서 시가 태어난다는 발상은 특이하네. 생각해보면 아무리 시인들이 뮤즈를 찬양했다고는 하지만, 현실을 보자면 그 뮤즈랑 놀았던 걸 의자에 앉아서 쓰게 되었고 결국 의자는 홀대되었던 게 아닌지. 

 

영감은 결국 노력에서 나온다는 걸 이 시집은 겸손하게 일깨우고 있다. 이제는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 같다. 세상이 워낙 어렵다보니 다들 열심히 살아야 해서. 왜 우리나라 청년들이 노오력하라는 말을 싫어하냐면, 일로 먹고사는 걸 전제하기 때문이다. 옛날엔 열심히 일해서 자식들을 먹여 살리는 게 일이기 때문에, 굉장히 그것을 숭고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가족이기주의라는 게 알려졌고, 청년들은 자신의 노후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 그들은 너무나 불안에 떤다. 걱정하는 자나 걱정하지 않는 자나 전부 노인이 된 자신에 대한 모습에 시선을 둔다. 현재 노인들은 청년들에게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으라 한다. 그러나 자신을 위해서 일을 하기엔 동기가 굉장히 낮아진다. 내가 이렇게 노후나 대비하기 위해 태어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는 의미가 없어진다. 그러다 불안에 싸여 투자하다 돈 날리고, 연금이나 보험에 돈 싸들고 가지만 결국 돌고 돌아 그것은 전부 그쪽 직원들 입속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함부로 노력해봐라, 열심히 일해라하는 말을 입에 올리면 안 되는 것이다. 자기 하고 싶은 걸 한다는 사람들도 노후의 공포를 잊으려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테니.

내 또래 여성들? 난 30대 되면 죽겠지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구 사람들과 부딪치며 살았는데 그래도 좀처럼 죽질 않는다. 여성은 크리스마스 케잌이고 팔리지 않으면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져 썩는 것이다. 아마 노인이 되면 연금도 떨어지고, 남성 노인들보다 훨씬 못하게 살겠지. 그런 사람들이 운동권을 하면 그때 참여해나갈 생각이다. 아무튼 이젠 이렇게 훌륭한 시도 옛말이 되어버렸다.

 

 


 

 

문정희의 다산의 처녀는 여성이 홀로 아이를 낳고 울고 있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고독 끝에 태어난 아이는 핏빛처럼 붉고, 여성은 기쁨과 슬픔에 싸여 감정에 복받쳐 타오르듯이 운다. 그 여성은 강해서 그 순간은 곧 지나가고 그녀는 울음을 그친 뒤 길을 잃은 채 길을 찾아갈 것이다. 다소 앞뒤 분별이 없는 그녀의 짧은 시들은 너무나 매력있다. 마치 마리아가 하늘의 질문에 "응"하고 대답하지 않았다면 역사를 깨뜨려 처음으로 만드는 그 모든 순간이 시작되지 않았듯이.

 

흰나비 중에서

줄타기에서 모처럼 땅으로 내려온 소녀를
북한강가 누구네 집 여름 별장에서 만났다
엘비라 마디간! 그녀는 흰나비처럼
포도주 잔 주위로 날아다녔다

속도가 전공인 카레이서가
그녀의 날개를 잡았다
엑셀을 힘껏 밟고 달려가 신호도 무시한 채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쥐더니
얇은 치마를 건드리며 호탕하게 웃었다 

 

 

엘비라 마디간은 영화이름이기도 하다. 후반부에 있는 시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 이 시집은 뒤로 갈수록 점점 재밌어진다.

v*******5 2018.12.07.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