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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소설 판매사에서 예약판매란 희한한 방식을 들고나온 책과 작품이 또 있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저자의 싸인이 들어간 책을 보내주는 예약판매와, 단독 사이트 운영, 게다가 <직지심경>과 <왕오천축국전> 반환 운동까지 함께 펼친다는 대단히 요란하고 획기적인 판매전략을 구축한 민음사와 작가의 기지와 아이디어에 박수를 보낸다. 그런 광고를 보면서 과연 어떤 작품을 선보이려고 이런 이벤트를 준비했는지, 기대와 함께 우려도 했었다. 책이 서점에 깔리자마자 구입해서 읽었다. 읽은 소감은 역시 실망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과 '驚天動地에 鼠一匹'이란 금언은 이 소설에 딱 알맞는 표현이라 하고 싶다. 사실 앞서 백탑파 소설보다는 나아졌다고 보긴 하지만, 거창한 식전 행사에 이은 작품이고, 작품 구성상 엉성함과 불교도 모르고 혜초도 모르고 고선지도 모르는 작가의 무모한 창작열을 생각하면 한심하다는 말밖에 나오지는 않는다. 이미 쓴 리뷰를 보니 찬송의 목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던데, 솔직히 작품을 제대로 읽고 냉철한 감식안을 가지고 썼는지 의심스럽다. 이젠 온라인 서적에서의 '알바 리뷰'는 거의 공해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홍보성 리뷰라지만 작품의 질을 담보하지 못하는 리뷰는 독자를 호도하고 작품에 대한 실망도를 높이는 결과밖에 가져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 리뷰에 낚이는 독자도 이젠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서 출판사들이나 작가나 자제해주었으며 좋겠다. 리뷰란 자신의 독서 체험과 감상, 앞으로 소설을 읽으려는 독자를 위한 조언과 안내 역할을 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소설은 모두 30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챕터마다 간지를 한 장씩 끼어넣어 두 권 해서 60쪽을 늘렸다. 또 가끔 챕터 사이에 백지면이 나와 이것까지 합하면 70여 쪽 정도가 불필요하게 추가되었다. 편집의 아름다움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말하면 그려려니 하겠지만, 솔직히 물자 낭비가 아닌가 여겨진다. 페이지 부풀리기 수법이란 혐의가 짙다. 이런 점 때문에 편집/구성에 별 하나를 붙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제목 그대로 혜초다. 그가 남긴 <왕오천축국전>의 여정과 기록을 바탕으로 작가가 상상력을 더해 혜초의 행적을 뒤쫓고, 아울러 동시대 비운의 고구려 유민 장수 고선지의 생애의 일부를 빌려왔다. 그리고 돈밖에 모르는 비열한 장사꾼 김란수와 정체 불명의 묘령의 무희 오름. 이 네 사람이 소설의 내용을 주도해 나간다. 실존인물의 이름을 걸고 소설을 쓸 때는 그만한 이유와 목적이 있다. 불굴의 의지라든가 파란만장한 생애, 숭고한 도전정신, 훌륭한 인격이나 업적, 자기 시대가 보여주는 정황에 대한 그 사람만의 대응 방식 등등. 위인전이 아니라면 구체적인 주제 의식을 가지고 소설을 쓸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혜초는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거듭 되씹어봐도 혜초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는 깊은 자기 성찰도 부족하고 소설의 흐름에 중심에 있지도 않고 오히려 고선지와 오름, 김란수의 의도에 끌려가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부처님이 활동한 성지에 가서 참된 부처의 생각을 깨닫겠다는 구도자의 모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그저 작가가 그렇다고 말했기 때문이지, 이 소설이 그런 점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기억력을 잃기 전에 기록한 양피지 다발과 기억을 잃고 고선지에 의해 발견되어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기 위해 분투하는 혜초의 모습은 나오지만 그것이 다다. 주인공의 삶에 대한 진지한 평가도, 적절한 비판도 없다. 그저 이야기만 존재한다. 이렇게밖에는 정녕 쓸 수 없었던 것일까? 또 고선지란 장수는 이 소설에 왜 등장시킨 것일까? 그는 소설에서 탐정같은 역할을 한다. 기억을 잃은 혜초의 여정을 재생하기 위해 애쓰면서 그렇게 된 이유와 사건의 뒤에 숨어있는 음모를 캐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추리보다는 직감에 많이 의존한다. 오름이 숨긴 음모에 대한 복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반전은 너무나 작위적이고 심하게 말해 작가의 일방적인 폭력일 뿐이다. 혜초는 왜 기억을 잃었을까 읽으면서 계속 궁금했다. 하지만 해답은 없다. 그냥 무덤 속에 자신을 묻고 기억도 함께 묻어버렸다는 식이다. 돌림병에 걸린 고선지가 같은 무덤에 들어감으로써 완치가 되다니, 이런 무책임한 구성이 있을 수 있는가! 물론 그 당시에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이라는 과학적 지식이 없는 시대니까 그렇게 얼버무릴 수도있겠지만, 작가나 독자는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이다. 주술의 힘으로 말기암 환자가 완치되었다면 그것이 있을 법한 일이라고 수긍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더구나 다른 감염된 군사들은 금방 발병하여 다 죽었는데, 고선지만 유일하게 병세의 진행도 더디고, 절명의 순간에는 오름과 성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병세가 호전된다. 아무리 재미를 위해서라고 그렇지 작가의 상상력 빈곤에 한숨이 나온다. 김란수가 악착같이 혜초가 적어놓은 양피지의 내용을 읽어달라는 이유가 뒷부분에 나오는데, 그 동기도 한심하다. 작품을 읽을 분들을 위해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그런 동기는 뼈속까지 장사꾼인 김란수가 추구할 목적은 아닐 듯하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않냐고 말하면 할 말은 없다. 소설의 전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이른 바 '공중 소리'라는 것이다.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지금 식으로 말하면 텔레파시 같은 것이겠다. 이런 장치가 없다면 소설 자체가 진행되지 못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아무리 무협지식 소설을 차용했다고 해도 좀 너무하지 않나 싶다. 처음에 소설은 햬초와 고선지, 그리고 오름 사이의 삼각 관계를 은근히 제시한다. 그리고 실제로 멜러 라인 때문에 독서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런데 막판 반전이라니! 오름의 음모가 전쟁 혐오에서 온 것도 아니고, 단순한 증오와 복수심에서 빚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오름이 그렇게 끔찍한 음모를 꾸며야 할 구체적인 정황이 이 소설에는 없다. 그냥 작가가 그렇다니까 그런 것이다. 물론 동생의 식인 살해가 큰 동기로 나오긴 하지만, 그것으로서는 너무 부족하다. 돈황에 고선지의 감염된 시체를 내동댕이쳐 복수를 하겠다는 설정도 전염병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을 가진 이라면 터무니 없음을 금방 알 것이다. 악인(?) 김란수의 최후도 어설프기는 마찬가지다. 요셉이나 야곱, 마리아 같은 경교 신자들의 숭고한 마음과 희생, 한없는 봉사 정신 따위도 이 소설에서 그게 왜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기독교의 위대함을 알리기 위한 장치라면 애초에 작가는 혜초를 택하지 말아야 했다. <법구경> 몇 구절을 인용함으로써 불교가 가진 사상의 깊이를 다 보여줬다고 작가는 생각한 것일까? 그런 일련의 구호가 이 소설을 어떻게 빛내게 하겠는가? 혜초가 결정적으로 기억을 되찾게 되는 계기도 이 소설에는 나오지 않는다. 혜초의 기억 상실은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가장 강력한 엔진이다. 그런데 그렇게 된 이유도 회복의 과정도 모호하다. 고구려 유민 출신 장수라 당나라에서 왕따를 당한다는 고선지의 처지는 물론 동정도 가고 화도 나지만, 고작 그것 때문에 고선지를 이 소설에 등장시킨 것일까? 작가는 이 소설에서 미문을 구사하고 있다. 역시 많은 소설을 써본 작가의 필력이 잘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문장이 미려하고 풍부하다고 해도 스토리나 플롯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래서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좋은 작품이라 말할 수 없다. 작가가 처음부터 탄탄한 구성을 짜서 집필을 한 것이 아니라 써 나가면서 스토리를 구성했다는 혐의를 뿌리치기 힘들다. 그러니까 계획된 짜여진 전개나 결말이 아니라 즉흥적인 전개고 결말 유도였다는 말이다. 결말이 가져온 우스광스런 파탄은 때문에 이미 예견된 것이다. 이 소설이 재미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런데 이야기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하고 조각조각 파편처럼 굴러다닌다고 여겨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중세의 기적담도 아니고, 2000매는 될 법한 소설을 억지춘향 식의 삽화 더미로 만든 것은 소설의 써서 그것이 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적으로 읽히기를 바라는 작가가 취해야 할 자세는 아닐 것이다. 작가의 명성을 빌리고 독자의 흥미를 끌만한 좋은 소재를 소설화하여 많은 판매량을 기록해보겠다는 풀판사를 탓할 수는 없다. 또 내 식대로 소설 쓰겠다는 데 무슨 상관이냐며 항변하는 작가에게도 뭐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렇게 급하게 쓴 소설은 결국 출판사에도 작가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최고 문학 전문 출판사라는 명예에 의혹을 그림자를 드리우게 될 것이고, 역시 헤프게 글 쓰는 작가라는 오명을 남기게 될 것이다. 소설을 다 읽고 정말 리뷰를 달아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그러나 예약판매를 보고 이미 사전 리뷰를 단 처지라 마무리는 해야 할 것 같아 다시 리뷰를 썼다. 분명 이런 나의 지적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분도 있고, 비난을 하실 분도 있으리라 여겨진다. 그러나 좋은 약은 입에 쓴 법이다. 이런 소리를 하는 나도 스스로 우습게 여겨지기는 하지만 큰 기대를 했던 작품에 너무 큰 실망을 했기 때문에 소감을 밝히지 않을 수 없었다. 부디 작가는 작품에 대해 좀더 많은 고민을 하고 충실하게 자료를 읽으며, 진지한 글쓰기에 대해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신이 뭘 쓰는지 분명한 주제 의식을 가진 다음 글쓰기에 임했으면 좋겠다. 잠시 동안 책은 팔릴지 몰라도, 제 살 베는 일인 것을 왜 모를까? 교수로 있으니 월급도 꼬박고박 받을 테고, 많은 작품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었으니 생활비가 궁해서 소설을 쓰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자신의 작품에 기대와 박수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는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소설 <혜초>가 가진 심각한 문제점들에 대해 진지하게 재고하기를 바란다.
주절주절 얘기가 길어져 혹시라도 읽는 분이 짜증이 날지도 모르겠다. 양해바란다. -아래 부분은 아직 책이 나오지 않았을 때 쓴 리뷰다. 지울까 하다가 그냥 두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둔다. 살펴보니 그가 마지막으로 쓴 작품은 <열하광인> 1, 2권. 작년 9월에 나왔으니 10개월만에 또 한 편의 전작 장편을 출간했다. 책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얘기란 아무것도 없다. 다만 놀랍기는 하다. 워낙 다작과 초인적 글쓰기 속도를 가진 작가니 빠르다고 하여 타박하거나 낮춰볼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예고편에 쓰인 광고 문안대로 1년여를 실크로드를 오가면서 혜초의 여정을 좇았다고 하는데, 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그렇게 긴 시간 동안 강의를 비울 수 있는지-혹시 휴식년이었나?-, 정말 좋은 소재로 대여행가의 삶과 생각을 담으려 했다면 좀더 시간을 두고 정보와 지식, 구상을 다듬으면 안 되었는지 염려는 된다. 뒤마나 도스토예프스키는 속기사를 두고서 글을 구술했다고는 하지만.... 그가 백탑파 이야기라 해서 내놓은 세 편의 작품을, 어떤 것은 다 읽고 어떤 것은 읽다 덮은 나로서는 그의 글쓰기 속도에 내심 의문 부호를 달아 놓고 있다. 그가 정비석에 이은, 아니 정비석을 넘어서는 다작의 작가로 우리 문학사에 자리매김하려는 어리석은 의욕을 가진 것이 아니라면, 조금 차분하고 진지하고 신중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번역을 해도 고작 100매 안팎인 원전 <왕오천축국전>은 단순히 의욕이나 아이디어, 재주만 가지고 접근하기에는 많은 공력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어쨌거나 책이 나오면 한 번 읽어봐야겠다. 그 뒤에 이 리뷰의 뒷부분을 채워야겠다. *상품평가는 꼭 올려야 한다니, 우선은 중간 점수인 별 세개로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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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오천축국전>이라고 하면 혜초였고 혜초라고하면 <왕오천축국전>이라는 연관 키워드를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도 말해야 살아남았던 그런 시기가 있었다. 대답을 하지 못하면 어디선가 날아오는 주먹을 피할 수 없었던 것 같은데 고등학교 국사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왕오천축국전>이 '다섯 천축국'에 갔다 왔다는 이야기인데 잘못 읽어서 <왕 오천 축국전> 오천개의 동물 나라 갔다 왔다로 해석했던 기억이 새록 새록하다. 그렇게 우리나라 최고의 여행기는 내 기억 속으로 들어왔다.
김탁환을 처음 만난 것은 <방각본 살인사건>이라는 추리물이었다. 처음 읽어보고 오 제법 신선한 걸 시대도 살아있고 문화도 두루 밝혀두었고 역사적인 인물을 제법 잘 데려왔던 글이었다. 그 이후 < 불멸의 이순신> <허균 최후의 19일> 등의 저자인 것을 알게되었다. 역사의 한 부분만 차용해오고 논리적 근거성이 부족해도 역사를 소설화 했기 때문에 팩션이라고 뭉텅그려서 말하던 시절 , 제법 읽으만한 팩션을 쓰는 사람을 찾았다고 했다.
김탁환의 진가는 개인적으로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이라는 작품과 <나 황진이>에서 진가를 발휘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에서는 김만중과 희빈 장씨의 대결이 볼만했고 그 사이에 소설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말했던 부부이 있어서 즐겨 읽었던 기억이 있다. <나 황진이>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는데 황진이라는 역사적 인물의 삶을 재구성할 때 여러곳의 시들을 가지고 사실과 허구의 실들을 씨줄과 날줄로 짜서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행간에 무수한 의미들이 녹아들었던 작품이다.
김탁환 작가가 <혜초>라는 책을 출간했다. 두 권 분량인데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기반으로 쓴 소설이라고 했다. 정수일 선생이 주해한 <왕오천축국전>을 저본으로 삼고 글을 쓰면서 혜초와 고선지 장군을 연결시키고 - 혜초가 중국에 돌아온 것과 고선지 장군의 생몰년대가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또한 존재하지 않았던 란수라는 인물과 오름과 내림이라는 인물들을 글 플롯 사이에 투입해서 이야기를 이끌어 갔다.
<왕오천축국전> 정수일 본을 보면 고선지와 혜초가 만난 기록이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혜초가 중국에 도착하고 안서도호부 관할 지역에서 장안까지 도착하는 사이에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는 설명이 나오는데 김탁환은 이 부분을 <혜초>의 이야기판으로 삼은듯 하다. 고선지는 그 당시 안서 도호부에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며 - 사실 고선지 평전을 읽지 않아 잘 모른다 - 고선지의 개략적인 내력을 봐서는 안서도호부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역사적 사실에서 허구가 개입하는 순간이다. 이렇게 <혜초>는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었다.
<혜초>는 한 편은 왕오천축국전의 한 부분이고 , 한 편은 소설의 일부이다. 하지만 <왕오천축국전>을 서술하는 부분에서도 <나 황진이>에서 서술하듯이 역사적으로 남은 사실 위에 소설가적 상상력이 더해졌다. 그러므로 <왕오천축국전> 즉 소설에서 혜초가 기록했다는 부분도 사실은 허구다. 그러므로 완벽한 소설이다. <왕오천축국전>에서 처음 시작은 몇 줄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 <혜초>에서 언술되는 첫부분은 실제 기록보다 유장하고 치밀하다. 이것이 소설가의 힘이라면 힘일터 ..................
이제 <혜초>를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을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다. 이 글의 주인공인 혜초와 고선지의 등장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소설의 사건을 이끌어가지 않고 주연 인물이 엑스트라보다 더 적은 존재감을 준다. 꼭 양반이 비루하고 물색없어서 자신의 양반 신분을 란수와 내림과 오름에게 팔아버린 것 같다. 이런 말 하면 조금 뭣 하지 모르겠지만 허접한 에스에프적 사건을 혜초와 고선지 그리고 왕오천축국전이라는 질좋은 고급 포장지로 포장한 듯하다. 결국 이런 것은 역사소설의 장르에 넣을 수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왜 있지 않는가 밖은 매우 풍성하고 먹을게 많은 것 같은 과일바구니를 막상 풀어보면 별로 먹을게 없다. 하긴 알려진게 없으니 그렇게라도 할 수 밖에 없다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역사에서 불러낼 수 없으면 그냥 그대로 두자. 죽은 사람이 다시 무덤 밖으로 불려 나오는 것이 얼마나 피곤할까 생각해보면 알텐데 ? 그들은 허리를 굽힐 힘도 없다.
김탁환씨가 김탁환 작가이길 바란다면 몇 문장 남지 않은 < 왕오천축국전>의 문장과 문장 사이를 소설가적 상상력으로 기워내서 해초의 외면적 사건이 아니라 해초의 내면을 추척하는 것이 더 김탁환스러운 글이 완성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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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하면 생각나는 것은 학창 시절의 국사 시간이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마치 '열려라 참깨' 주문을 외우듯 발음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아는 혜초는 지극히 피상적인 수준의 '정보'로만 존재하고 있다. 정보를 나의 '지식'으로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도대체 어떤 분이기에 그런 책을 쓰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호기심과 더불어 인물 서적에 대한 기대감이 공존한다. 일전에 정약용에 대한 황인경씨의 '소설 목민심서'란 책을 감명깊게 읽은 바 있다. 인물에 대해 다룬 서적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게 하기에 충분한 책이었다. 김탁환씨의 혜초는 어떠할까?
왕오천축국전은 한자 풀이 그대로 다섯 '천축국'을 갔다(往) 온 이야기이다. 요즘 나오는 여행기와 비견한다해도 내용면에서 전혀 뒤지지 않았다. 여행은 재미있기도 하지만 역시나 힘든 길이다. 더구나 '쾌락'을 위한 여행이 아닌, 소승으로서의 불도를 구하기 위한 여정은 발걸음에 더 큰 무게가 실려있다. 이런 점에서 여행기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비유일런지 모른다. 혜초의 여정은 그의 인생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양피지에 기록했던 여정의 내용들은 그의 일대기였기 때문이다.
1권 초반에는 낯선 지명과 불교의 느낌 때문에 조금은 지루했지만 1권 후반과 2권으로 넘어가면서 푹 빠져버렸다. 갈수록 고선지란 인물의 캐릭터가 확고히 잡혀지고 그의 용맹함과 남자다움이 부각되었다. 아울러 란수의 인물의 잔악함과 불교와는 다른 야곱이란 기독교계 인물이 나오면서 이야기는 점점 흡인력을 더해갔다.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선술집의 무희들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무희 중에 대표주자 오름과 내림이라는 두 쌍둥이 자매 이야기를 통해 소설은 묘한 '신기(神氣)'를 더해갔다.
가장 흥미롭게 본 부분은 돌궐과 맞닿아 있는 파밀 고원에서 겪은 이야기이다. 파밀 고원은 오늘날 중앙아시아 남동쪽에 있는 해발 5,000미터의 파미르 고원으로 '세계의 지붕'이라 일컬어지는 곳이다. 산이 가파르고 굽이굽이 병풍처럼 막아선 산자락을 넘어야 하며 거기에, 눈이 매섭게 내리고 설산으로 뒤덮힌 곳이기에 위험천만하다. 거기에 도적 떼까지 있어서 고통을 더해준다. 이 곳을 지나면서 벌어지는 살기위한 처절한 몸부림은 치열하고도 무헙다. 극한 상황에도 정도를 지키려 하는 불제자, 혜초의 모습을 보면 존경의 마음이 절로 생긴다.
이 책을 읽기 전 혜초는 그저 왕오천축국전이라는 기행 책을 쓴 사람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이제 그는 나의 마음 속에 생명력있는 존재로 되살아 있다. 마음의 욕정을 다스리려고 언제나 노력했던 노력가이며 성실하게 자신이 가고자 했던 여정을 묵묵히 밟아 나간 삶의 여행자이다. 읽으면서 훈훈했던 점은 불교 수행자의 입장이지만 타 종교에대해 관용적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야곱이란 인물은 비극으로 결말이 나지만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졌으며, 알라를 신봉하는 자들의 이야기도 동등한 눈으로 다뤄졌다.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싶어서 밑줄 쳐 놓은 부분을 옮겨 놓고자 한다. 1권 214쪽의 구절이다. 각림이 여행자의 어깨를 힘없이 밀며 웃습니다. 저는 압니다. 누구도 자신의 병을 대신 앓아 주지 않으며 고쳐 주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자신이 만든 악연과 거기서 독풀처럼 자란 상처를 치유할 이는 자신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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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모두 자신만의 눈으로 머물고 떠납니다.' 그래서 갑자기 무서워진다. 나의 눈은 어디에 어떻게 머물렀던 것일까? 내가 머물렀던 것은 지나치게 좁은 것인데도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보기라도 한 양 의기양양 살아왔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갑자기 내가 우스워진다. 혜초, 소설을 읽으며 그는 적어도 하나의 종교에 갇혀 세상을 재단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며 왕오천축국기를 한 번 읽어보고자 다짐한다. 히히. 엄두도 내지 못했었는데 이런 다짐까지 가능하게 하는 걸 보면^^ 김탁환 님의 힘을 느낀다. 역시 김탁환 님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혜초의 여행과 고선지와 오름의 이야기를 교묘하게 엮어내고 그들 사이의 숨겨진 관계를 추리하게 만드는 절묘함! 역시 이번에도 예상불가 반전이...숨어있었다. 그래서 김탁환 님의 글을 읽을 때에는 밤을 세운다. 작가와 내기 한 판. 언제나 패하는 즐거움이 있으니 그 또한 기쁘지 않은가?^^
"자신이 만든 악연과 거기서 독풀처럼 자란 상처를 치유하는 이는 자신뿐입니다." 혜초의 얘기에 귀를 기울인다. 내가 지금 독풀들을 키워내고 있는 건 아닌지, 어쩌면 키우고 또 죽이기 위해 농약을 뿌려대고 있는 건 아닌지...그래서 지금 나는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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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와 왕오천축국전은 학교 다닐 때 반드시 외워야 할 '족보'였다. 그러나 이름은 알아도 그 책을 읽었다는 사람은 내 주위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국사책에 나오는 많은 책들처럼 한글로 번역이 되어 있지 않았다.
머리 속에 쇄뇌 당한것처럼 박혀 있던 '혜초'라는 이름의 소설이 나와서 읽어 보기로 했다. 이른바 팩션 소설의 하나라고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다.
이 소설은 혜초의 여행기 전반을 다룬 책은 아니고 여행기의 일부분을 그린 것 같다. 그런데 하필이면 여행 중에 혜초가 기억을 잃은 시점을 그리고 있다.(소설 속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여행기란 원래 본인이 여행했던 곳을 기록해 놓은 책이다.인간의 기억이란 불안정해서 대부분의 것을 잊어 버리고 만다. 잊어 버리지 않고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 여행기나 일기를 적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혜초가 사고로 기억을 잃어 자신이 적어 놓은 여행기마저 기억하지 못한다. 여행기를 다시 잃으면서 기억을 되살리려고 노력하지만 깜깜할 뿐이다.
소설은 혜초가 기억을 잃어 버리기 전의 상황과 잃어 버린 후의 상황이 교차되어 진행한다. 참 특이한 구성을 가졌다는 생각을 했다. 대부분의 팩션 소설은 과거의 일을 찾아 가는 현재 시점이나 아니면 현재 시점과 과거의 시점이 병행해서 나오는 구성이 많은데 이 소설은 과거의 시점이 또 다른 과거의 시점과 병행하는 구성을 채택해서 처음에는 좀 헷갈렸다.
소설의 주인공은 혜초도 아니고 혜초가 다녀간 장소도 아닌 것 같다. 혜초는 본인이 가고 싶었던 곳에 도달해서도 계속 자신의 과거의 기억에 매달린다. 기억을 잃어 버린 상황에서는 계속 기억을 되 찾으려고 노력한다.
이 작가의 책을 처음 읽어서 이 작가의 문장에 익숙해 지지 않아서 인지 처음에는 좀 지루했지만 나름대로 재미있다. 팩션 소설이라기 보다는 기억에 관한 판타지소설인 것 같다. 내가 일반적으로 가진 팩션 소설과 좀 다르다.
그러나 어쨌든 그 시절에 신라를 넘어 당나라로, 다시 인도로 여행한 혜초라는 사람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의 여정이 종교적인 신념에서 시작되었던지 아니면 그저 '길 위의 사람'인지 잘 모르겠지만 요즘 떠드는 글로벌리제인션이란 단어가 요즘에 갑자기 튀어 나온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많은 나라와 풍습, 인종, 문화, 종교를 경험한 '세계인', 혜초를 기억하고 싶다. 또한 특이한 이력을 가진 정수일씨가 번역한 진짜 왕오천축국전을 읽어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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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가면 다양한 여행 관련 도서들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책이 주는 작은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주 오래전에 인도, 중앙아시아, 아랍을 여행하고 아름다운 여행기가 있었으니 바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다. 교통이라든가 외국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힘들었을 텐데 수많은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기록했던 혜초를 생각하면 무척 대단하게만 느껴진다. 신라의 스님이었던 혜초. 이 책《혜초》는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그의 여정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유격장군 고선지는 대유사에서 검은 모래 폭풍을 만났고 부하들은 실종된다. 그리고는 나무배 속 시신 아래 숨어있던 동이 말을 하는 벌거숭이를 만나게 되는데 이가 바로 혜초다. 혜초는 자신에 대해 다 기억하지 못했다. 그가 가지고 있던 걸낭의 양피지 기록만이 자신이 누구이며,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담고 있었기에 중요한 단서가 되지만 김란수가 먼저 양피지를 손에 넣게 된다. 신라와 대불림국을 오가며 비단과 옥을 사고파는 장사꾼 김란수. 혜초는 하룻밤에 한 장씩 양피지를 읽어주기로 하고 김란수와 함께 도망친다. 한편 고선지와 무희 오름은 고선지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혜초를 뒤쫓아 언기를 지나 돌궐 국경을 지나게 되고 결국 야곱의 마을에서 드디어 만나게 된다. 란수는 돌궐에 남고 혜초 일행은 돈황으로 향하게 된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오름에게 급습을 당한 혜초는 고선지와 함께 석굴에 갇히는 반전이 남아있다. 소설은 어느덧 25년 후의 고선지와 혜초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을 읽다보면 혜초 일행 외에도 신라에서 당나라로 같이 동행한 각림, 김란수의 꾐 때문에 만나 파밀 고원을 넘게 될 때까지 함께한 돌궐 사람 야곱, 청록색의 눈동자를 가진 쌍둥이 무희 오름과 내림이란 인물들에 대해서 애절하고도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혜초》에서 가장 통쾌했던 순간은 돌궐, 야곱이 살았던 마을에서 자신을 혜초라고 속였던 김란수의 속셈이 밝혀진 그 순간이다. 여기서 혜초의 양피지 기록은 자신이 진짜 혜초임을 증명하는 중요한 증거가 되어준다. 그러고보면 걸낭의 양피지는 단순한 여행 기록이 아니다. 마지막까지 혜초가 고선지를 살리기 위해 오름과 거래를 할 때도 모래 폭풍 후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양피지에 쓰인 기록 덕분이었으니 말이다.
소설에서 각 나라의 지명은 왕오천축국전에 따라 옛 명칭대로 표기되었다.
- 여행자도 서책도 같은 문장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둘은 쥐와 호랑이처럼 다릅니다. 문장이 같다 하여 만물이 같다면 모든 꽃도 하나요, 모든 길도 하나요, 같은 길이 없고 같은 짐승 새끼가 없습니다. 여행자는 발바닥으로 닫지 않은 깨달음은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중략) 사람은 모두 자신만의 눈으로 머물고 떠납니다. 혜초 1권 178p -
- 자기에게 익숙한 길이 아니라 낯선 건타라까지 들어왔다는 것만으로도, 진심으로 그들의 복을 빕니다.
여행자의 마음을 많이 담아냈던 소설 《혜초》. 비록 같은 문장을 얻었다고 하나 그것은 전혀 같지 않다는 그 말을 읽으며 여행의 느낌이라는 것은 사람에 따라 작고 큼을 비교 한다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혜초》를 읽어서일까? 아름다운 여행견문록이자 중요한 우리 문화유산인 『왕오천축국전』이 우리나라가 아닌 파리국립도서관에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루 빨리 우리나라로 반환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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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1,2는 김탁환님의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우리가 국사시간에 혜초-왕오천축국전 이라고 저자와 저서만 달달 외워서 시험을 보고, 그 왕오천축국전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관심조차 가지지 않고 지나쳤던 그 이야기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나의 얕은 지식이나 이해력에 대해서도 고민하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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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
'왕오천축국전'이라는 여행기의 작가이자 고승으로만 간단히 알려져 있는 혜초에 대한 발자국을 되짚어보는 소설이다. 김탁환작가의 뛰어난 글솜씨를 다시 한번 느껴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것 같다.
본 소설 '혜초'를 통하여 3가지의 느낌을 받았다.
첫째는 '왕오천축국전'의 깊은 가치를 알게 되었다.
기존에 단순히 신라시대의 여행기로만 알고 있었던 다시금 역사를 모르는것보다 어설프게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더욱 커져가는 '왕오천축국전' 그 속에는 동아시아의 전체적인 역사가 들어있는 한국가에 국한된 것이 아닌 국제적인 정세까지 파악가능한 위대한 문화유산이다. 중요한것은 현재 우리의 역사, 동아시아 역사가 프랑스 박물관에 있으며 그것도 사람들에게 전시되는곳이 아닌 한쪽 구석에 고이 모셔져있다는 것이다.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이다.
둘째는 꼭 과거로 돌아가서 생활하는듯한 생생한 묘사이다.
이부분은 작가의 글솜씨가 필요한 부분으로서 동일 소재와 동일한 정보를 가지고도 어떻게 쓰여지느냐에 따라서 단순한 내용전달로 끝날수도 있고 소설속에 빠져들어 헤어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본 소설에서는 시대적으로 역사적 자료가 미비한 때의 이야기를 사실처럼 그리고 현실처럼 나타내주고 있다.
아마도 작가가 직접 혜초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생생한 내용을 담았기에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또한 역사소설에서 만날수 있는 다소 긴장감 없는 내용전개가 아닌 판타지한 부분을 최대한 가미하여 꼭 외국소설에서 만날수 있을듯한 느낌. 즉 나의 상상력이 발휘될 수 있다.
이러한 부분의 단점은 다소 현실성이 떨어지는것에 대해서 걱정되는 것인데 과거 역사만에 의존하거나 실제적인 부분에 묘사에속에서는 강한 인상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때로는 이러한 부분이 다소 과장되게 표현되더라도 오히려 전체적인 소설 흐름을 읽는데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세째는 불교적인 측면에 너무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님의 일대기를 그리다보면 불교적인 측면이 부각될수밖에 없다. 이러한 색깔이 짙다보면 오히려 독자들로 하여금 부담을 느끼게 만들수도 있다. 하지만 본 소설은 스님의 여행기이자 수도내용이 담길법한 부분이 많지만 이러한 부분을 최대한 배제시키고 기본적인 불교적 교리만 살짝살짝 비추어주고 있다.
읽기 전에 혹시 너무 깊은 불교적 내용이 전체적인 흐름을 깨지 않을까 걱정을 했던 나의 생각이 빚나가 버리고 말았다.
다소 여윤이 남는 느낌은 왜 일지 모르겠다. 1,2권으로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모라르다는 허망함이 밀려온다. 불교적 지식이나 혹은 역사적 지식과 관련없이 부담없이 읽을수 있으며 읽다보면 오히려 나에게 재미와 감동 그리고 지식도 함께 전달해주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오랜만에 국내에도 좋은 역사소설이 나왔음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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