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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삶에서 피어나는 한떨기 희망 《인문학은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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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철학자 고병권은  <철학자와 하녀>에서 참된 철학은 현실이 중단된 곳, 즉 누구도 뛰어들고 싶지 않아 하는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비정규직, 장애인, 불법 이주자, 재소자, 성매매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의 곁에서 철학을 고민해 왔기에 그를  현장 인문학자라 부르기도 한다.  혼자서만 설 수 없다하여 사람 인(人)이듯,  人文(인문)학 은 사람 人(인)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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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철학자 고병권은  <철학자와 하녀>에서 참된 철학은 현실이 중단된 곳, 즉 누구도 뛰어들고 싶지 않아 하는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비정규직, 장애인, 불법 이주자, 재소자, 성매매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의 곁에서 철학을 고민해 왔기에 그를  현장 인문학자라 부르기도 한다.  혼자서만 설 수 없다하여 사람 인(人)이듯,  人文(인문)학 은 사람 () 자처럼 한 다리로 설 수 없는 이들에게 필요한 학문이라 할 수 있다. 고병권이 말한 참된 철학이란, 척박한 삶의 틈새에서 열리는 삶의 珍景(진경)이야말로 진정한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바로 사람(人)과 학문(文)이 만나 열리는 참다운 길이 人文(인문)학의 길이다.

 

너나없이 힘든 삶을 보내고 있는 지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인문학이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얼 쇼리스를 두고  '인문학 전도사'라 부른다. 예로부터 '가난은 임금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도 있는데 얼 쇼리스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돈이나 음식과 같은 물질적인 구제가 아닌 '인문학'을 하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사회비평과 언론인으로 활동하던 얼 쇼리스는 중범죄자 교도소에서 만난 한 여성으로부터  부자와 빈자의 차이는 인문학 교육의 여부에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얼 쇼리스는 그녀와의 만남을 계기로 인문 교육과정의  '클레멘트 코스'를 창시한 후, 첫 학급으로   마약중독자, 재소자, 노약자등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들 대상으로 수업을 시작하였다.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과반수 이상이 사회복귀에 성공하였고 클레멘트 코스는 인문학의 효과를 입증하는 눈부신 교육법임을 확인하게 된다.

 

《인문학은 자유다》는 얼 쇼리스가 클레멘트 코스를 시작하고 준비하게 된 과정과 마약중독자와 제소자 또는 노숙자들이 인문학 수업을 받고 나서의 전과후를 실어놓았다. 사회에서 최하층에 있으며 가장 약자에 해당하는 이들은 인문학을 배우면서 처음으로 나'의 삶을 , 그리고  '너'를 이해하며  '우리'라는 공동의 삶을 깨달아가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라는 기본 프레임안에서 시작한다. 그 과정은 단순해 보이지만, 삶에서 의미를 발견하겠다는 간절함이 없다면 불가능한 과정이다. 수업을 받기 시작한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과 타인에게 배타적이었지만, 그들이 인문학 수업을 받은 후, 점차 자신을 사회라는 큰 틀의 공동체 안에서의 한 사람으로 깨달아가며 자유롭고 당당함을 지닌 개인으로 변화해 갔다. 마치  애벌레가 자신의 허물을 벗고 날아오르는 순간의 경이와 같다. 플라톤의 동굴 비유처럼,  일반인들은 동굴에 갇혀 사물을 어두운 그림자나 흐릿한 사물로 보지만,  철학자는  동굴 밖의 실존인 햇살을 마주할 수 있다.  '클레멘트 코스'는 쉽게 말해 동굴에 갇혀 실존을 못보는 이들에게 실존적 체험을 하게 해주고 철학자처럼 실존을 깨닫게 하는데에 목적이 있다.  쇼리스가 소크라테스적 방법을 강조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홉스와 흄, 칸트와 밀의 텍스트를 읽는 이유는 자신의 수건을 벗고(무지를 벗어나 )실존을 깨닫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홉스와 흄, 칸트와 밀의 텍스트를 사람들에게 읽히는 이유는 사람이 타인과 더불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스스로 생각하도록, 그리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자신과 타인에게 설득하도록 훈련시키기 위해서다. 클레멘트 코스에서는 개인과 공동체가 함꼐 시야에 들어와 있다. 자유로운 개인이 탄생하도록 돕는 일과 민주주의 정치 원리가 작동되는 공동체를 세우는 일은 동전의 양면이다.

 

인문학의 진수는 불완정성에 있다. 종교와 달리 인문학은 신이 아니라 인간의 작품이다. 인문학 비평에는 위대한 작품들을 엄선해 오랜 시간에 걸쳐 읽고 평생 동안 깊이 생각한다는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인문학은 개별적인 각 작품, 각 시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수정된다.-P212

 

인문학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책에 실린 고병헌 교수님의 글로 마무리를 해야겠다. 고병헌 교수님은 인문학을 아무리 많이 공부해도 삶이 바뀌지 않는다면, 오만함으로만 남는다고 한다. 인문학 공부에는 다른 공부와는 달리 '삶의 절실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의 강렬함, 다른 삶을 향한 강렬한 욕망이 있어야 매 삶에서 마주하는 실존적 어긋남을 이해하게 되고 받아들일 때 인문학을 통한 삶의 변화는 찾아올 것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문학을 딱딱한 학문이나 어려운 책 정도로 인식하고 있지만, 인문학은 이처럼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인문학은  자신의 세계를 깨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깨어나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실존의 고비를 넘어 선 우리라는 공동체의 삶을 만들어간다.  얼 쇼리스의 인문학 교육과정을 통해 무엇이 우리의 삶에서 가장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인지 같이 고민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진흙탕에 아름다운 연꽃이 피듯 척박한 우리의 삶에 피어나는 한떨기 희망은 바로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영혼의 깊이와 넓이에 놀라는 일 없이는, 그로부터 삶을 에워싼 현실과 타인을 돌아보는 일 없이는 제대로 구실을 할 수 없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2 2014.08.29. 신고 공감 8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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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 모두에게 자유를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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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소외된 자들. 마약과 폭력에 삶을 저당잡힌 자들. 이들을 어떻게 구제할 수 있을까. 선의를 가진 많은 단체와 개인이 다양한 각도로 접근하지만 항상 한계에 부딪힌다. 막대한 부의 대부분이 극히 일부분의 사람들에 의해 소비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곤을 구제하는 일은 어쩌면 한낮 몽상일 지도 모른다.  소외된 곳에 먹을 것을 나누어주는 일. 중독에서 벗어나도록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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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소외된 자들. 마약과 폭력에 삶을 저당잡힌 자들. 이들을 어떻게 구제할 수 있을까. 선의를 가진 많은 단체와 개인이 다양한 각도로 접근하지만 항상 한계에 부딪힌다. 막대한 부의 대부분이 극히 일부분의 사람들에 의해 소비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곤을 구제하는 일은 어쩌면 한낮 몽상일 지도 모른다.  소외된 곳에 먹을 것을 나누어주는 일. 중독에서 벗어나도록 심리적 상담소를 지원하는 일. 의료 봉사를 하는 일. 각종 방법으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펼치는 행사들. 가난하지 않은 우리는 그런것들에 무감각하게 노출되어 있고, 때로 약간의 기부금으로  혹은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세계에 대한 무심한 시선으로 대처하며 살아가고 있다.

 

얼 쇼리스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접근했다. 그가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교육이었다. 교육 프로그램은  한 끼 끼니나 금전을 제공해주는 것보다 빈곤의 근본적 구제를 위해 적절한 선택임에 누구나 동의한다.  흔한 갱생 교육은 자립할 수 있는 조건을 돕는 기술교육과 직업교육이 대부분이고 피상적으로는 그게 최상의 선택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교육은 다르다. 돈이 되지도 빵이 되지도 않는, 당장 그걸로 돈벌이가 될 수 있는 직접적 기술을 가르치는 것도 아닌,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어 보이는 철학을 필두로 한 인문학 교육이었다.

 

수료증 외에는 아무것도 보증하지 않는 수업이었다. 휘몰아치는 가난의 폭풍우를 뚫고 교실로 가는 길은 험난하기 짝이 없다. 당장 버스비도 없고, 밥 값도 없고, 아이를 맡길 곳도 없는 가난과 소외의 끝쪽에 서서 마약 중독과 폭력으로 스스로를 방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인문학을 배워보라고 학생을 모집한다. 때로 텅빈 교실에서 수업을 받기 위해 학생들 스스로가 자신이 앉을 의자를 이고 지고 등교해야만 했다. 희망이라고는 죽어 천국에 가는 것밖에 없는 사람들이 대상이다.  미국, 호주, 멕시코 등지에서,  한 때 문명을 탄생시킨 마야인의 후예였고, 한 때 자연과 교감하던 용감한 인디언이었고,  원주민들이 수천년동안 살아왔던 터전을 온몸으로 지키고 버티다 20세기의 마지막 바늘 구멍을 피와 멍에로 통과해 겨우 살아남은 한 줌도 되는 남겨진 사람들이 소외의 시간들을 지키던 자리였다.

 

인문학이 어떻게 가난을 구제한다는 거지?  책을 읽기 전에도, 책을 읽는 중에도, 그리고 책을 읽은 후에도 나는 의심한다. 태생적으로 부자이든 가난하든 학부모들의 높은 교육열이 신분(?) 상승의 계단을 이끄는 환경에서 자라고 살고 아이를 키우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는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책을 덮은 후에도, 그 교육, 클라멘트 코스에 대해 생각해본다.

 

우리 아이들에게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을 가르쳐 주세요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 그게 무엇이지? 철학? 그 어렵고 한심한 철학이 가난을 구제해준다고? 그의 생각은 옳았다. 미국 한 도시에서 시작한 클라멘트 코스는 세계 각국의 여러 도시로 퍼져나갔고, 졸업생의 상당수가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이 책은 얼 쇼리스가 함께 한 클라멘트 코스가 세계 각국 도시 도시의 그늘에서 맨땅에 헤딩하듯 한 사람씩 운영진을 모으고 기금을 모으고 학생을 모집하고 교수를 불러 자리를 잡는 과정, 그 과정에서 고수했던 원칙과 수용했던 변화들을 기록한 10년의 다큐멘터리이다.  

 

그가 방문하고 설립한 각 코스마다 환경적, 문화적 차이가 있었고, 학생들이 처한 상황과 종교적 관습, 생활방식들이 달랐다. 얼 쇼리스는 기본적으로 필요한 다섯 개 과목, 철학, 미술, 역사, 문학 등에 각 지역 운영진과 교수들이 요구하는 커리큘럼 사이에서 수많은 논쟁을 거쳐 그 곳 상황에 가장 적합한 학습과정을 결정했지만, 교수법에 있어서는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에서 유래된 토론식 수업을 고수하였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원칙이 있었는데,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는 최고 수준의 대학에서 풍부한 경험을 갖춘 교수를 채용하고, 조금이라도 보수를 지급하는 것이었다. 보수를 지급해야, 교수의 수업이 어긋날 때에 바꿀 수 있고, 학생과 운영진이 교수에 대해 마땅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교수들은 보고서를 썼다. 실제로 얼 쇼리스가 이 책 <인문학은 자유다>에 토론에서 누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와 같은 아주 세세콜콜한 이야기까지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교수에 대해, 학습 평가와 보고서를 요구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 각문화와 지역 특수성, 교수들에 따라 커리큘럼과 과정이 변형된다.

 

클레멘트 코스에서 교수들의 역할은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처럼, 자신의 생각을 끌어내도록 이끌어주는 것이지, 지식을 불어 넣어주는 것이 아니다. 길을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어둡고 컴컴한 골목에서 스스로 길을 찾아 앞으로 한걸음 디디고 또 디디어 나아갈 수 있도록 불을 밝혀 주는 것이다. 게다가 클레멘트 코스에서는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는다. 인문학을 공부한다고 빈곤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얼 쇼리스는 빈곤의 원인을 하루종일 일해도 생계비에도 못미치는 낮은 급여와 단순노동으로 보았다. 그래서 제소자나 중독자들을 그러한 단순 노동과 저임금으로 이끄는 단순 기술교육이 아닌, 인문학을 선택했다. 그의 고백에서처럼, 어쩌면 참으로 몽상가와 같은 아이디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발 뒤로 물러서서 바라봐 보자. 한 사람당 너무나도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절반 이상의 학생이 떨어져나간다. 게다가 학생 모집은 될 성 싶은 떡잎을 골라야 하는 딜레마에 처해있다. 서양 철학으로부터 모든 것을 시작하다 보니 가는 곳마다 문화적 제국주의라는 각국 지역의 클레멘트 코스를 담당하는 운동가들과 언쟁을 벌여야 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포위하고 있는 무력이 대처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서, 가난해지는 것 말고는 그 어떤 일을 할 시간도 힘도 남지 않게 되는 지점이 있다. 대개 그런 사람은 클레멘트 코스에 입학시킬 수 없었다. 입학시켜도 곧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노숙자, 제소자, 원주민, 매춘부, 중독자 등 빈곤과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지만, 어떤 아주 작은 희망의 끈이라도 붙잡을 의지가 있어야 했고, 기본적인 읽고 쓰기 능력을 가져야 했다. 이민자나 영어 구사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은 애초부터 열외였다. 코스는 4년제 대학과 제휴를 맺어 일정 부분을 만족시키는 학생에게 학점을 인정해주고 장학금을 주고 대학으로 끌어들였다. 중도 포기자가 절반이나 되었지만 그들 중 일부는 박사 과정을 이수했고, 대다수가 4년제 대학을 진입하였다. 

 

얼 쇼리스는 계속 이동하며 클레멘트 코스의 설립을 도왔다. 그가 가는 곳마다 지역의 특수성이 존재했고, 그는 맨땅에 헤딩했다. 한사람 한사람씩 코스를 지원할 사람들의 머리 수를 늘려가며 사람을 모으고, 기금을 모으고, 장소를 물색하고, 교수와 학생들을 모집하였다. 폭력과 적대감으로 가득한 가나의 피난민 수용소에서도, 마야 제국의 영광을 기억하는 멕시코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도, 한국의 산동네에서도 누군가가 그의 아이디어, 그의 몽상을 따라하려는 자들이 그를 불러들였고, 그렇게 해서 백여개곳에 클레멘트 코스가 생겼다.

 

첫 챕터를 읽을 때는, 얼 쇼리스가 여러 도시를 돌며 클레멘트 코스를 설립한 기록이려니, 쉽게 읽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별 재미도 없는 이 책에 나는 거의 일주일 동안 빠져 들었다. 세계 구석 구석에서 폭력의 역사 속에서 탄생한 수없이 많은 동류의 빈곤과 소외에 대해 그 다양성을 알게 되었고, 그것과 싸우기 위해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몽상가처럼 계획을 세우고, 도저히 안될 것 같은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가는 그 과정 속에서,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읽었다.

 

이 책은 얼 쇼리스가 자신의 치적을 알리기 위해 쓴 책이 절대로 아니다. 많이 알려진 것처럼 클레멘트 코스가 모든 가난한 사람의 희망의 등불이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게 아니다.  어쩌면 그 반대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알리는 것. 이렇게 많은 소외가 존재하지만, 우리가 최선을 다해 그 숱하게 많은 조직과 기금과 노력을 통해 구제할 수 있는 가난이 이렇게 조금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주려는 것 같다. 얼 쇼리스는 책을 통해 자신의 신념에 조금 동조하거나 비슷한 방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숱한 논쟁과 타협을 통해 실천해나가고 있는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준다.

 

클레멘트 코스는 별도 없는 어둡고  캄캄한 곳 군데 군데를 밝히는 아주 아주 작은 등불이다.  가난 속에서도 특별한 능력과 기회를 가진 사람들 중 지극히 일부는 이 코스를 통해 구제 되었다. 드넓은 사막 모래밭에서 한 줌의 모래를 건져올린 것 같은 숫자의 사람들에게 성찰을 통해 삶과 권리를 되찾게 해준 것에 들어간 기금과 노력을 생각해 보면 한숨이 나오지만, 책 속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의 삶이 아름다운 건 그렇게 매일 드라마같이 변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때문일까...

 

Review 09-01


g******1 2014.09.01. 신고 공감 6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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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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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고전과 문학작품을 읽히며 논리적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역사를 이해하고, 미술관이나 연주회를 관람하여 예술적 감수성을 갖도록 이끌어, 마침내 이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을 표현하며 타인을 이해하고 책임 있게 행동하도록 유도한다.(p.8) 강의만 듣고는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 스스로 생각하고 논증하고 그것을 자기 말로 표현하고 글로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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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고전과 문학작품을 읽히며 논리적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역사를 이해하고, 미술관이나 연주회를 관람하여 예술적 감수성을 갖도록 이끌어, 마침내 이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을 표현하며 타인을 이해하고 책임 있게 행동하도록 유도한다.(p.8) 강의만 듣고는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 스스로 생각하고 논증하고 그것을 자기 말로 표현하고 글로 담아내도록 훈련시키기에는 강의로 충분하지 않다. 쇼리스가 소크라테스적 방법을 강조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함께 생각하고 말하며, 함께 그것이 말이 되고 근거가 있는지, 모두에게 설득될 수 있는지를 따져보아야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울 수 있다. p.9

인문학은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영혼의 깊이와 넓이에 놀라는 일 없이는, 그로부터 삶을 에워싼 현실과 타인을 돌아보는 일 없이는 제대로 구실을 할 수 없다. 우리가 역사와 철학을 배우고, 문학을 읽으며, 예술을 접하는 까닭은 결국 나와 타인,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를 사람이 살 수 있는 공동체로 가꾸어 가기 위해서다. p.13

이달의 사락 k******4 2017.09.07. 신고 공감 4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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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프로젝트 - 인문학에서 희망의 빛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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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가장 크고 중요한 사회 트렌드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인문학이 새롭게 조명 받고 있는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어찌 보면 반가운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동안 인문학이 이처럼 찬밥 신세였나 싶어서 얼굴이 약간 화끈거리기도 한다. “인문학”이란 인간의 본질적 측면과 닿아 있는 학문 제 분야를 가리키는데, 대체로 우리에게 순수 학문으로 알려진 여러 분과들이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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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가장 크고 중요한 사회 트렌드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인문학이 새롭게 조명 받고 있는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어찌 보면 반가운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동안 인문학이 이처럼 찬밥 신세였나 싶어서 얼굴이 약간 화끈거리기도 한다. “인문학”이란 인간의 본질적 측면과 닿아 있는 학문 제 분야를 가리키는데, 대체로 우리에게 순수 학문으로 알려진 여러 분과들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의 과거를 조금 돌아보면, 1960~80년대만 해도 학문이라고 하면 대개 순수 학문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나 한다. 그래서 대학 교육에서도 문과의 비중이나 역할이 압도적이었다. 그것은 우리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이어서, 우리가 기본적으로 누려야 하는 인간적인 삶, 곧 정치적 측면에서의 자유가 억압받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를 주도하는 주류층 사람들 다수가 문과 출신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다가 1990~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인문 과학과 대비되는 자연 과학, 곧 순수 학문과 대비되는 실용 학문의 비중과 역할이 커지게 되었다. 이 역시 우리의 산업 여건과 사회 환경이 대량 생산과 수출 지향적 경제 체질에 맞춰서 관심의 방향을 바꾼 탓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실용 학문에만 치중해서 실적 내기에 급급했던 우리 사회가 그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여러 가지 사회 부작용들을 경험하면서 인문학에 새롭게 눈길을 주게 되어 여러 대기업들도 신입 사원을 뽑을 때 단순히 전문 분야에 특화된 인물만을 선발하지 않고 인문학적 소양도 고려하게 되었다.

 

그러면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겠다. 우리의 여건이 달라지면 인문학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태도도 바뀔 것인가?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춰보면 그렇다고 답할 수 있겠다. 그리고 만일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여전히 문제가 남아 있는 셈이다. 왜냐하면 인문학을 또 한 번 우리의 필요에 의한 도구로 전락시키게 될 테니 말이다.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문학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아울러, 인문학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전환이다. 인문학이 천대받을 때는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아무런 유익(주로 금전적인 것일 테지만)이 없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소위 ‘돈도 안 되는 학문’을 해서 무엇하느냐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인문학이 새롭게 조명 받고 있지만, 인간인 우리에게 기본이 되고 본질적 측면을 건드리는 인문학의 성격과 특성에 대한 인식을 확고히 하지 않으면 그런 조명도 곧 암전에 가리워질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인문학은 자유다』는 우리에게 인문학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대단히 현실적이면서도 시각적으로 제시한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가 소위 말하는 소외계층, 혹은 사회적 약자층에 인문학 교육을 시도함으로써, 인간인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확연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흔히 소외계층이나 사회적 약자들이 현실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어서 그들에게는 약간의 동정과 보조와 구호 활동이 필요한 것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식사나 주거지나 자녀들의 급식 등을 해결해주면 사정이 좀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처한 절대 빈곤의 상태는 계속 되물림될 뿐 결코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 어찌 보면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옛말이 진리처럼 여겨진다.

 

이 책의 저자도 처음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지닌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교도소를 방문해서 한 여자 죄수와 대화를 나누면서 정신적인 삶(또는 인문학)이 단순히 가진 자에게만 아니라 못 가진 자, 아니 인간인 우리 모두에게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임을 깨닫게 된다. 다시 말해, 인문학이 우리 인간의 뼈대를 구성하고 혈관을 구성하는, 말하자면 ‘쿼크’(quark)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저자가 시작한 것이 ‘클레멘트 코스’였다. ‘클레멘트 코스’는 사회의 절대 소외 계층에게 인간으로서 숨 쉴 수 있는 정신적인 호흡기를 제공하는 프로젝트였다. 그것은 가진 자들이 단순히 그들의 손에 빵과 돈 몇 푼을 쥐어주는 사소한 구호 행위가 아니라, 그들에게 인간으로 살 수 있도록 우리의 손을 겸허하게 내밀어서 구명정으로 끌어올리는 구명 활동이었다.

 

『인문학은 자유다』의 거의 전 부분은 이처럼 인문학이 이루어놓은 놀라운 결과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말 그대로 인문학은 우리가 인간으로 호흡할 수 있도록 하는 산소와 같은 존재다. 인문학이 고리타분하고 현실적으로 별 쓸모가 없다는 우리의 잘못된 편견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은 우리 자신을 ‘인간’으로 알고 이해하기 위해 길게는 수천 년 전부터, 짧게는 수십 년 전부터 고민해온 우리의 발자취이기도 하다. 인문학이 우리에게 어떤 놀라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한 힌트와 단서를 발견하고 싶은가? 그러면 『인문학은 자유다』를 읽어보라. 그 속에서 놀라운 변화와 희망의 여명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n******n 2014.08.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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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8. 희망의 인문학 수업 [인문학은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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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인문학 수업 [인문학은 자유다]   나는 분명 인문대학의 어느 학과를 졸업했으면서도 아직까지 "인문학"이라는 말에 서툴다. 사실 인문학도였다는 사실을 밝히기가 부끄럽기조차 하다. 학문에 있어 뭐 하나 제대로 깨우친 것은 없고 변죽만 울리다 나온 격이기 때문이다. 무늬만 인문학도라 책에 대한 관심만은 아직까지 놓치지 않고 있어서 부지런히 읽어대지만 어려운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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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인문학 수업 [인문학은 자유다]

 

나는 분명 인문대학의 어느 학과를 졸업했으면서도 아직까지 "인문학"이라는 말에 서툴다. 사실 인문학도였다는 사실을 밝히기가 부끄럽기조차 하다. 학문에 있어 뭐 하나 제대로 깨우친 것은 없고 변죽만 울리다 나온 격이기 때문이다. 무늬만 인문학도라 책에 대한 관심만은 아직까지 놓치지 않고 있어서 부지런히 읽어대지만 어려운 철학 이야기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만은 어쩔 수 없다. 인문학이란 과연 무엇인가? 무엇을 고민하는 학문인가? 그런 기본적인 질문조차 던져본 적 없는 학생이었기에 더더욱 고개를 떨구고만 싶어진다.

 

 인문학 강연이며 인문학 관련 책들이 쏟아져 나올 때 괜히 삐딱하게 생각하며 외면하게 되었다 .

'나도 한 때는 인문학부를 거닐며 사색하던 사람이야, 이거 왜 이래.' 하는 약간의 자만도 있었고

' 그 때의 지리멸렬한 수업들을 답습하는 형태들이 재탕되고 있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했다. 인문학 강연이며 책들이며...듣거나 읽어도 제대로 현실생활에 쓰이지도 못할 거...그러니까 인문학이 소용없는 학문이란 말을 듣지...나중에는 이렇게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스스로 인문학 열풍을 거스르며 구석으로 숨어들곤 했다.

 

보통 한 때의 광풍이 몰아치듯 유행이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그라드는 게 다반사라, 이번에도 또한 지나가리라 했는데, "인문학" 열풍은 웬만해선 수그러들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어라? 무엇이 맞아떨어진 거지? 사람들의 욕구와 빛나는 무대에서 날개를 펴고자 하는 강사들의 필요가 적절하게 만나 상승기류를 타고 있는 게 아닐까?

제도권 안에서는 인문학의 위기니, 대학에서 인문학부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느니 하더니, 대학 문 밖에서는 시민 강좌나 유료, 무료 를 통틀어 인문학 강의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분야가 되었다.

 

사람들은 물결에 휩쓸려 강의를 듣고 책을 사 보지만 이럴 때일수록 진지하게 인문학이 무엇이며, 왜 필요한지, 어떻게 가르치고 배울 것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얼 쇼리스의 유고가 된  [인문학은 자유다]는 어려운 인문고전을 강의하는 책이 아니다.

감옥에서 시작된 소설같은 이야기를 시작으로 얼 쇼리스가 직접 부딪쳐온 많은 이들과의 경험이 생생히 녹아들어 있는 경험담들이 담겨 있는 책이다.

쇼리스는 인문학을 운동 차원으로 발전시킨 사람이다.

'클레멘트 코스'를 개발하여 미국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으로 확산시켰다.

시카고 이주민들의 오디세이 코스, 위스콘신 주 매디슨의 '조금 다른 수업', 오클라호마에서의 인디언들의 노래, 아프리카와 가나와 수단, 독재의 땅 수단 다르푸르 난민촌에서 가르친 자유, 캐나다 핼리팩스에서 보낸 자기반성의 밤, 메사추세츠 매스휴머니티스의 수업 보고서, 알래스카 원주민들과 꿈의 세계, 멕시코의 마야와 아즈텍 코스, 대한민국 서울, 아시아의 첫 클레멘트 코스 등등.. 얼 쇼리스가 직접 만나고 변화를 일군 기적같은 순간에 대한 기록들이 이 책에 가득하다.

 

클레멘트 코스는 르네상스 인문학의 효시라 할 수 있는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가 중요하게 생각한 도덕철학, 역사, 문학, 예술, 논리학 이 다섯 분야가 교육과정의 틀이다.

 

클레멘트 코스 지부 관리자들이 교육과정을 어떻게 구성할지는 지역의 영향을 받는데, 대륙과 나라 뿐 아니라 주별, 도시별로도 차이가 있었다. 우리가 초기에 시카고로 코스를 확장할 때 에이미 토머스 엘더가 한 말이 옳았다.

"유능한 교수라면 쇼리스 선생님이 원하는 그대로 가르치는 데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203

 

 교육방법으로 내세운 '소크라테스적 방법' 또한 지극히 고대적이다. 우리의 인문학 강좌가 강의 중심인 것과 확연히 다르다. 함께 생각하고 말하며, 함께 그것이 말이 되고 근거가 있는지, 모두에게 설득이 될 수 있는지를 따져보아야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울 수 있다. 클레멘트 코스는 자립적 사고와 행동을 통해서 가난의 굴레에서 사람이 벗어날 수 있도록 도우려고 한다.

쿨레멘트 코스가 무엇보다도 사회적 약자를 겨냥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쇼리스의 운동은 또한 젊은이들이 인문학 교육의 대상이 된다.

 

나는 내가 틀렸지만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해야 할 일이 있었고 방법이 있었다.-56

 

1995년 클레멘스 코스 1기가 시작되고 학생들이 강의를 들었다. 미술관 견학을 기대하던 학생이 미술관으로 오는 도중에 지하철역에서 개찰구를 뛰어넘다 붙잡혀 브루클린 법원 구치소에 갇히기도 하고, 한 학생은 도중에 폐렴으로 사망하기도 했으며 마약 유통, 판매 혐의로 기소된 학생은 현대 철학에 대한 이해력이 뛰어났음에도 영장 기각을 얻어내지 못했다.

 

1년 뒤, 1회 졸업생 열여섯 명 중에서 열 명이 4년제 대학이나 간호학교를 다니고 있었고,그 중 네 명은 바드 칼리지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다른 졸업생들은 전문대학에 다니거나 풀타임으로 일했다. -89

 

앎의 과정을 통해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얼 쇼리스는 몸소 보여주었고 그의 클레멘트 코스에서 공부했던 학생들도 또한 직접 보여주었다. 삶은 책 몇 권 읽는 것으로, 중요한 인문학 고전을 읽는 것만으로는 변할 수 없다. 그동안 대학에서 고작 책 몇 권 읽고 강의 들은 것으로 충분히 인문학을 맛보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내 삶에서는 앎의 과정을 통한 변화라는 부분이 통째로 빠져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삶의 절실함'이라는 것이 전제 조건이 되어야 할 것이고, 그 이후에 필요한 것은 교사다.

가르치는 자의 궁극적 과제는 사람들이 자신의 "무지와 무의식의 혼수상태로부터 깨어날 수" 있게 돕는 일이라는 말이 새삼 사무친다.

 

앉아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죽은 강의가 아니라 스스로 질문하고 탐구하고 답을 찾는 과정을 겪을 수 있도록 하는 살아 있는 강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클레멘트 코스의 전 세계 수업 현장을 기록한 이 책을 보면서 처음으로 인문학도임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졌다. 인문학 강의를 들음으로써 자신을 변화시킨 위대한 사람들의 기록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인문학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 생성되는 교실이 그리워졌다.

얼 쇼리스의 클레멘트 과정은 희망의 인문학 수업이다.

 

YES마니아 : 골드 s*******e 2014.08.29.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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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사치스러운 학문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게도 꼭 필요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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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 쇼리스의 유작이라는 인문학은 자유다를 읽어봤어요! 참 두꺼운 책의 압박이었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드는 감동어린 경험들~ 너무 너무 좋은 책을 만드는 출판사구나 하고 새삼 현암사를 재조명 하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현암사가 내는 인문학책은 전공자들만 보는 그런 딱딱한 지식의 책도 아니고 얄팍한 상식을 많이 갖추고 싶은 그런 사람들이 찾는 책도 아니고 그 중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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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 쇼리스의 유작이라는 인문학은 자유다를 읽어봤어요!

참 두꺼운 책의 압박이었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드는 감동어린 경험들~

너무 너무 좋은 책을 만드는 출판사구나 하고 새삼 현암사를 재조명 하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현암사가 내는 인문학책은 전공자들만 보는 그런 딱딱한 지식의 책도 아니고

얄팍한 상식을 많이 갖추고 싶은 그런 사람들이 찾는 책도 아니고

그 중간에 선 책이라고 하네요.

 

사람들의 관심분야가 다양한데 그 관심분야의 갈증을 딱 채워주는 책을 찾기가 사실 어렵죠.

인문학에 대해 무지몽매하던 저도 이 책을 다 읽었으니

초보자를 위한 아주 쉬운 인문학 책도 아니고

전문가들만 보는 학자풍의 이론서도 아닌

실제와 이롬이 적절히 배치된 재밌는 책이었네요.

흠~! 재밌다는 표현 이건 앎에 대한 기쁨이 재미라고 표현된거 같기도 해요.

 

이 책 정말 궁금해지지 않으신가요??ㅋ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서평은 많으나 책의 내용을 궁금하게 만드는 서평은 많이 보지 못했기에

제가 그런 리뷰를 써보고 싶어서 이렇게 인문학은 자유다 책에 대해 주절 주절 이야기 하고 있네요.

 

얼 쇼리스가 대한민국을 편애했다는 거 살짝 엿볼 수 있었어요.

세계 곳곳에 인문학이 필요함을 설파하고 다니신 분으로

이론가이자 행동가이신 인문학자님으로

저는 존경심마저 들었답니다.

맨날 육아서보면서 아이에게 육아서의 이론대로 행하지 못해서 절망하는 날이 많은데요.

얼 쇼리스는 정말 그가 공부하고 지키고 싶은 인문학의 틀을 그대로

인문학을 접하지 못한 중산층이하의 사람들에게

어렵지 않게 인문학을 공부시켰다는 점이 참 대단하고 감탄스러운 부분이었답니다.

 

저도 인문학 철학 이런 쪽으로 관심은 있었지만 이런 인문학이 사치라고만 생각했거든요.

얼 쇼리스의 인문학은 희망이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나부터 먼저 인문학을 배우고

주위 사람들한테도 인문학이 필요함을 알려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네요.

 

 

o********5 2014.09.15. 신고 공감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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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으로부터 자유는 소크라테스적 인문학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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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가까운 전자 대리점만을 가 봐도 우리 생활에 편린을 주는 매우 다양한 제품들이 분기별로 쏟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가 봐도 생활의 풍요는 항상 우리 가까이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 정도의 소득만 있으면 지금까지의 어떤 인류보다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닫힌 공간의 생산량은 증가하고 경제규모는 커지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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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가까운 전자 대리점만을 가 봐도 우리 생활에 편린을 주는 매우 다양한 제품들이 분기별로 쏟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가 봐도 생활의 풍요는 항상 우리 가까이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 정도의 소득만 있으면 지금까지의 어떤 인류보다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닫힌 공간의 생산량은 증가하고 경제규모는 커지고 1인당 국민소득도 수치상으로는 분명히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살기 어렵다는 국민의 수도 늘어가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기술문명이 진보하고 있지만, 이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고 어떤 혜택도 누리지 못하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는 이분법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은 분명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쉬 남득하기 어렵다. 이 책은 저자 얼 쇼리스가 절망의 가장자리에 자리잡고 있는 억압적인 환경에서 용기 있게 벗어나 아름답고 명료한 반성적 사고의 세계로 옮아간 학생들을 만나 빈곤의 원인에 대한 이론과 그 해결에 시도하는 다큐멘터리이다. 그 해결책에 대한 하나의 방법으로써 실험적(?) 인문학 공부방법론을 전세계에 전파하려는 시도이다. 미국의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 간의 삶의 차이에서 탄생된 '클레멘트 코스(Clemente Course)'라는 교육과정은 소크라테스적 문답법과 산파술을 통해 가난이 인간 삶의 필요요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준다(p39).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가난, 지구상에 계층이 등장한 이후에 상존하고 있는 가난의 문제를 깨드리기 위해 소수 몇몇 지식인들이 인문학을 경제 영역의 십자로 한복판으로 끌고 들어왔다.

 

'클레멘트 코스(Clemente Course)는 미국적 개념으로 고대 그리스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다른 문화유형을 따르는 세계의 다른 지역에 미국보다 더 많은 학생이 있다(p403). 이 교육과정은 아프리카계, 라틴계 미국인, 인디언 등 가난한 사람( 경제적, 정치적, 교육적으로 혜택 받지 못한 사람 ; p169), 노숙자 등을 대상으로 사회 밑바닥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인문학을 대화를 통해서 그 밑바닥에서 탈출할 수 있는 자유를 가르치는 것이다. 학생들은 적극적이고 대담하고 명확해지는 법, 쉽게 굴복하지 않는 법, 논리적으로 토론하는 법을 배운다. 이 코스에서 다루고 있는 방법론으로써 소크라테스적 '대화'라는 방법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쉬운 교육방법은 결코 아니다. 대화는 대화에 참여하는 구성원 모두가 동등한 입장으로 서로가 소통하는 것이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상대방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논리가 설득력을 갖지 못하거나 상대방 설득을 위한 지식에 바닥을 드러낸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에게 인신공격을 하지 않을 인내력이 있어야 만 가능한 아주 최난도 수준의 교육 방법이다. 강의식 교육 풍토에서는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어른들에게는 정말로 가증스럽고 역겨운 교육방법이다. 따라서 이 방법이 성공한다면 학생과 교수는 한 가족이 된다(p195). 이 교육방법에서 교육자가 학생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고 경우에는 당사자들 사이가 악화되고, 최악의 경우에는 그 교육 시스템은 붕괴되고 조직 전체가 혼란에 휩싸이고 독재자가 나타나고 구성원의 인권은 박탈당한다. 아프리카의 수단이나 가나처럼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이 투옥되거나 고문, 강간, 살해되는 나라에서 민주주의 사상으로 이어지는 형태의 인문학(p164)을 '사고하는 두 가지 방식(p143)'으로 가르친다는 것은 목숨을 걸러야 하는 방식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것은 도덕적 행동이지만 인권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p183). 이처럼 가능성과 위험성이 공존하는 방법을 통해서 '인문학'을 빈곤 탈출의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은 정말로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래도 '인문학과 가난으로부터 자유는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는 계속해서 의문으로 남으며, '소크라테스적 방법에 의한 인문교육이 가난한 자들에게 자유를 줄 수 있는 것인가?'는 귀납적 연구의 대상으로 삼기에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흔히 도덕철학, 역사, 문학, 예술, 논리학을 범주로 하는 인문학이 '경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인문학은 배고픈 학문이라고 생각하여 인문학을 배우는 것을 꺼려한다. 특히 교도소의 죄수, 마약 중독자, 희귀병에 걸린 아이의 엄마나 빈곤에 허덕이며 하루 벌어 하루를 근근히 버티고 있는 이들은 깊은 생각에 잠길 사이도 없이 필요에 쫒겨 여기 저기에 금방 금방 옮겨 다니면서 무력에 포위된 환경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에게 14세기 이탈리아 회화나 진리표나 크리톤, 소크라테스의 죽음,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은 개발에 편자라는 생각밖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우리는 흔히 인문학이라는 것은 '삶의 여유'나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이는 인문학은 법학이나 경영학에 비해서 돈벌이나 의식주의를 해결해 주지 못하는 지극히 비현실적이고 고상한 학문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현실의 인문대 출신들의 삶이 배고프기 때문에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은 소수의 인문학 전문가들만이 할 수 있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인문학은 살아오는 내내 우리 주변에 있었다(p108). 굳이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고대 그리스 항아리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부치는 노래를 부를 수 있고(p212 참고), 하루가 깔딱거리며 내뿜는 빨간 저녁놀이 절정에 다다랐을 즈음에 소꼴을 지게 한 가득하고 뚝방길을 걸으면서 하루의 보람에서 생활인의 철학에 만족감을 느끼는 촌부에게서 가장 맛깔스러운 인문학적인 모습을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옴처럼 붙어서 끈덕지게 괴롭히는 것은 누가 뭐래도 가난이라는 경제문제이다. 하지만 빈곤은 오로지 경제영역만의 문제는 아니다. 거시적, 미시적 경제문제를 다루는 경제학이라는 학문의 관심사는 오랫동안 윤리학의 한 분야라고 여겨졌다. 19세기 중반에 독일의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 윤리'가 어떻게 합리적 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으로 밝혀 '자본주의 정신'의 윤리적 기반을 해명하고자 하였다. 현대 경제학의 시조로 불리는 영국의 애덤 스미스는 도덕철학과 교수였다. 그는 '도덕감정론'에서 인간의 강력한 이기심은 동감에서 파생되는 정의감에 의해서 제어된다고 보았다. 여기에서 도덕철학을 범주로 하는 인문학이 경제문제 해결과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작금에 우리가 접하고 있는 경제 문제에 대한 접근방법은 탈윤리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도 추로할 수 있다. 예전에 경제학의 바이블로 여겼던 조순의 경제학 원론이나 지금 시중에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 어느 하나 경제학의 윤리학적 기원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신자유주의는 철학적, 정치적으로 부의 무제한한 축적을 정당화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에서 태동한 작금의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의 '기본'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단초를 인문학이 제공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정치(선거에서 투표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가족부터 시작해 이웃, 더 넓은 공동체와 도시 국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활동)에서 소외되어 있으며, 삶에서 정치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p60). 가난한 사람은 교육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이는 직업의 자유가 제한되는 것으로 연결된다. 이는 설치는 소수 이외에는 오로지 먹고 사는 것만이 존재의 이유가 되어 버리고 정치영역에서는 outsider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장자크 루소는 사람들은 투표하는 하루만 국민이 되고 364일은 노예가 되어 버린다고 했다. 결국 한 번 가난했던 이들은 꾸준하게 가난이라는 굴레를 주홍글씨처럼 달고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인문학적 소양은 술집에 들어가 술꾼의 삶을 바꿀 수는 없다(p217)고 말 하는 이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저자는 왜?, 어떤 방식으로 인문학을 배워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인문학은 단지 삶의 무료함을 극복하기 위한 영적이고 사치스러운 생활이 아니다. 인문학은 여유가 있는 삶을 위한 기초이자 기본이다. 인문학은 개별적인 각 작품, 각 시대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수정된다(p212). 인문학은 '들리는 소리'다. 인문학을 사랑한다는 건 우리 자신이 틀렸을 때를 아는 것이며 세상에서의 긴 여정에서 인문학의 자기 비판적 특성이 우리를 이끌게 하는 것이다. 인문학은 세상에 살아가기 위해, 사고하기 위해, 여러분을 공격하는 무력에 단지 대응만 하는 게 아니라 세상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토대이다(p66). 인문학은 사람들이 더 잘 살고 삶을 더 즐길 수 있게 돕는다. 인문학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의미에서의 부자로 만들어 준다. 인문학은 지금보다 윤택한 삶을 여위하기 위한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일종의 현대인에게 운전면허증과 같은 것이다. 운전면허증은 일반 대중에게 광범위하게 소지되어 있으며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되는 것처럼 현대 민주복지국가의 시민에게는 필수적인 생활지식이다. 인문학을 공부할 때 우리가 희망을  품게 되고 삶이 실제로 바뀔 수 있다.

 

한국에는 혜택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까? 서양인들이 경제 기적이라고 부를 정도로 눈부신 성장을 한 한국의 한가운데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죠?(p384) 저자는 한국의 인문학자들에게 묻는다. 해방 이후 우리 역사는 성장 위주의 국가였다. 모든 것을 어떤 노력을 투자하여 어떤 성공을 할 것인가라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성공'이라는 결과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불법과 편법에 관대하였다. 능률성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공익과 형평, 정의에 민감하지 못했다.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는 소수 개인의 이익의 희생을 당연시했다. 이런 경향은 절름발이 경제성장으로, 한 쪽의 행복은 한 쪽의 불행을 불러오는 제로섬 상황을 잉태하고 말았다. 기본이 무시되고 결과만 좋으면 과정에서 일어난 기본 무시행위에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이런 관행은 결국 사회적 약자나 빈곤층에게만 일방적으로 생명을 담보하는 경우까지 초래하고 말았다. 이들의 자살같은 뭄부림은 오직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고 있다. 우리 헌법은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를 천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경제성장에 초점을 맞춰 대기업 위주의 정책으로 지니계수는 높아만 가고 있다. 다만 소수의 양심있는 지성인들은  '클레멘트 코스(Clemente Course)를 벤치마킹하여 다수의 곳에서 지부를 설립하여 인문학 운동을 전개하여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고 자유의 기술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플라톤의 비유에서 동굴 밖으로 나갔다가 햇빛 속에서 알게 된 많은 것을 다른 죄수들에게 알려 주고 싶어 다시 돌아간 죄수의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것처럼 보이는 저자의 노고에 노래를 부르고 싶다.

 

'클레멘트 코스(Clemente Course)'의 전파가 문화적 제국주의라는 비판이 있으나 가장 기초적인 수준의 민주적 사회가 다른 문화로 옮겨질 수 있다는 희망에서 시작된 얼 쇼리스의 인문학 운동은 지금까지는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산파술에 의한 인문학교육 운동은 일종의 배움의 때를 지난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야학이나 사설학원돠 비슷한 성격을 띄면서도 수업방식이나 교과 내용은 상당히 획기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일종의 어른용 대안 대학교로 볼 수도 있지만 온 종일수업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일반적인 대학교와도 동일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교과과정이나 교육 내용이 생소하게만 보이는 클레멘트 코스는 학생들의 자녀와 다른 가족, 교인들, 그리고 이웃과 인근에까지 인문학의 개념과 정확한 인식을 퍼뜨렸다(p216)고 소크라테스적 문답법에 의한 교육이 학생들은 더 이상 망망대해 한가운데 홀로 있는 섬 같은 피동적 존재가 아니라 민주사회의 능동적 참여자가 될 수 있게 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는 교육은 오로지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미덕'이나 '행복'이 아니라 '돈'이고, 배움의 가치가 돈벌이의 수단이 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존재 가치의 사회적 유의성을 평가하는 사회분위기와 학생과 교사 사이에 위계적 관계를 중시하는 사회에 서구적인 개념이 얼마나 순응적 효과로 우리 생활에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있다. 미국적 개념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치지 않고 성공적으로 연착륙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과제가 남기고 있다. 

k*******4 2014.09.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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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트 코스 10년 후 이야기들, 인문학은 자유다!
"클레멘트 코스 10년 후 이야기들, 인문학은 자유다!" 내용보기
1995년 시작된 클레멘트 코스. 이 책 《인문학은 자유다》는 강좌가 시작된 지 10년 뒤 수강생들에게 나타난 변화와 얼 쇼리스 자신이 내린 평가 등을 담고 있다. 《희망의 인문학》 이 남긴 소중한 자산과 그 뒷이야기에 대한 것들!"클레멘트 코스의 첫해 후반부에 미국에서 면허증 발급을 기다리던 한 정신과 의사가 비디오카메라로 수업을 기록했다. 이 의사는 나중에 대규모 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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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시작된 클레멘트 코스. 이 책 《인문학은 자유다》는 강좌가 시작된 지 10년 뒤 수강생들에게 나타난 변화와 얼 쇼리스 자신이 내린 평가 등을 담고 있다. 《희망의 인문학》 이 남긴 소중한 자산과 그 뒷이야기에 대한 것들!

"클레멘트 코스의 첫해 후반부에 미국에서 면허증 발급을 기다리던 한 정신과 의사가 비디오카메라로 수업을 기록했다. 이 의사는 나중에 대규모 참전용사 시설의 정신과 과장이 되었다. 그해 말에 면허증
이 나와 더는 촬영할 시간을 낼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는 그동안 관찰한 내용을 요약하면서 “오랫동안 내가 본 것 중 최고의 심리 치료였다”라고 말했다.

반응 위주의 삶에서 반성적 사고를 하는 삶으로 변화되는 것을 심리 치료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는 한, 심리 치료는 클레멘트 코스의 의도가 아니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심리적 저항점에 뚜렷한 변화가 생긴 사례는 있었다. 변화는 내가 정치적 삶이라고 표현하는 부분에서 주로 나타났는데, 이때의 정치란 페리클레스가 말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의를 따른다.

다시 말해 학생들은 가족, 이웃, 공동체, 그리고 국가 수준에서 다른 사람들과 좀 더 관계를 맺게 되었다."

 

 

 

 

YES마니아 : 로얄 h*******c 2014.08.2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살아있는 인문학이 주는 기회《인문학은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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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자유다 삶의 가장자리에서 만난 희망의 인문학 수업 저자 얼 쇼리스 | 역자 박우정 | 현암사 | 2014.07.31 | 페이지 464 | ISBN 9788932317007     인문학 열풍인 대한민국. 문학, 역사, 철학, 예술 등 인문학을 알아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왜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 체감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인문학을 배우는 까닭은 나와 타인, 공동체를 사람이 살 수 있는 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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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자유다

삶의 가장자리에서 만난 희망의 인문학 수업

저자 얼 쇼리스 | 역자 박우정 | 현암사 | 2014.07.31 | 페이지 464 | ISBN 9788932317007

 

 

인문학 열풍인 대한민국. 문학, 역사, 철학, 예술 등 인문학을 알아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왜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 체감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인문학을 배우는 까닭은 나와 타인, 공동체를 사람이 살 수 있는 공동체로 가꾸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CEO 인문학 강좌처럼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가는 강좌는 부자들만 접근가능하고, 일반적인 인문학 강좌 역시 강의 중심입니다. 이렇다보니 인문학 공부는 삶에 여유가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라는 오해가 생길 수밖에요. 이런 인문학적 지식 소유가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오히려 인문학 공부에는 삶의 '절실함'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 다른 삶을 향한 욕망 말입니다. 그렇기에 기존의 인문학 강좌는 스스로 생각하고 논증하고 그것을 자기 말로 표현하고 글로 담아내도록 훈련시키기에는 부족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단순한 지식 소유에서 벗어나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 고리를 끊고 자유와 민주주의 개념을 진정으로 깨닫게되는 실천의 인문학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 얼 쇼리스의 주장이며,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그는 클레멘트 코스를 탄생시켰습니다. 그의 전작 <희망의 인문학>에서 클레멘트 코스의 개념과 본질을 이야기했고 그의 유작이 된 이 책, 《인문학은 자유다》에서는 오대륙 곳곳에 클레멘트 코스를 실천하는 과정을 담아 이론을 현실로 바꾸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스스로의 힘이 생기지 않는 한 타인의 의견과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고, 그런 의존은 가난의 굴레에서도 벗어날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얼 쇼리스가 만든 클레멘트 코스는 사회적 약자, 소외계층, 젊은이를 겨냥해 자립적 사고와 행동을 키워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 학생 한 명이 클레멘트 코스에 다니는 데는 약 2천 달러가 든다. 실업, 복지, 혹은 수감 비용에 비하면 헐값인 셈이다. 하지만 일단 성찰 능력과 정치 기술을 얻게 되면 가난한 사람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며, 무엇을 택하든 좋은 의미로 위험할 수 있다. 이들은 불공평한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즉 무력에 포위된 생활에서 벗어나 좀 덜 거친 삶으로 옮아가기 위해 정치를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생활을 하며 투표권을 행사하고 아마 지역사회 활동에도 참여할 것이다. 또는 노동조합이나 정당 혹은 급진적인 변화를 위해 일하는 조직에 가입해 좀 더 공평한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쪽을 선택할 수도 있다. 』  p87-88

 

빈곤층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입구를 마련해 준 클레멘트 코스.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적절히 사용해 인문학을 가르치더군요. 그런데 인문학이 과연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요. 반응 위주의 삶에서 지적변화는 물론 관계를 바탕으로 반성적 사고를 하며 능동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삶으로 변화되었는지 말입니다. 각 나라에서 클레멘트 코스를 설립하는 작업을 진행하며 생긴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희망적인 결과를 보게 됩니다.

 

"이게 내 마지막 기회란 말입니다." - p91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간의 삶의 차이가 만든 클레멘트 코스.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 더 멋지고 나은 삶을 사는 것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클레멘트 코스가 있습니다. 미국적 개념을 한국식으로 변형하는 과정이나 IMF가 불러온 문제 해결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기도 합니다. 한 여성 재소자와의 대화를 계기로 탄생한 클레멘트 코스는 학문으로서만 접하는 인문학이 아닌 현실과의 연관성을 잘 짚어내 살아있는 인문학의 실천을 보여주고 있네요.

 

이달의 사락 l****5 2014.10.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