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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진실은 ‘작고 가벼운 이야기’에 있다 누군가는 SNS가 또 다른 세상이라고 한다. 내가 사는 세상 말고 다른 세상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말이겠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현실과 SNS를 구별하고자 하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과연 이 둘은 그렇게 구별하여야 할 만큼 다른 세상일까? 물론 익명이나 대면하지 않는 다는 점에서는 구별이 될 수도 있지만 페이스북과 같이 자신의 얼굴을 내걸고 소통하는 것으로 본다면 특별히 구별하는 것이 유용하지 않는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페이스북을 비롯한 카카오스토리와 같은 SNS 공간에서 서로의 삶을 보며 공감하고 소통하고 있다.
이러한 공간의 활용은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세계임이 분명하다. 일상과 SNS를 넘나들며 소통의 기회를 만들고 그 속에서 인간관계를 확장하며 그 깊이를 더해가는 것이 인간의 삶에 분명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사람들의 삶이 일상이 이뤄지는 시공간에 한정된 것을 무한으로 확장하고 있는 SNS 공간은 이제 우리들의 삶의 구체적인 현장인 셈이다.
페이스북의 내 페친으로는 시인, 소설가, 동화작가 등 대부분은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다.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올리다보니 조금은 부담스러운 만남이 있다. 이런 문학인이 내게 친구신청을 하게 되면 우선 내가 그 사람의 책을 페이스북에 올렸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솔직히 부담스럽다. 인문학 수프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는 ‘소가진설’의 소설가 양선규도 그런 만남이었다. 아직 구체적 소통은 없지만 그의 책에 대한 느낌을 올리려고 생각하니 생기는 부담감이다. 그렇지만 작가와 독자의 만남이 각기 자신의 시각으로 작품을 만나는 것이기에 독자의 몫을 다하면 될 것이다.
양선규의 ‘소가진설(小家珍設)(근황)’은 인문학 수프 시리즈 장졸우교(藏拙于巧)(소설), 용회이명(用晦而明)(영화), 이굴위신(以屈爲伸)(고전), 우청우탁(寓淸于濁)(문식), 감언이설(甘言利說)(시속)에 이은 여섯 번째 책이다. 소설을 구성하는 다양한 플릇에 대해 소설가인 작가가 자신의 일상을 통해 소설과 사람들의 삶의 연관성과 그에 대한 작가의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양선규는 소설 쓰기는‘작고 가벼운 이야기’로 ‘생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라고 했다. 이번 책 소가진설(小家珍設)은 지난 책에서 미흡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에 더하여 보다 내밀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자신의 성장과정, 아이들, 영화이야기, 이웃과의 사귐, 페이스북 활동에서 얻은 지혜 등을 통해 얻은 지극히 사소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삶, 인생, 사회적 관계 등으로 사고를 확장시켜가며 독자들을 자신의 내면의 성찰로 안내한다. 다소 사족같은 이야기가 불쑥불쑥 끼어들어 미소를 자아내게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겪게 되는 평범한 일상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으로 이끌어간다.
‘생의 진실’을 밝히는‘작고 가벼운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삶의 진실을 깨달아가는 과정에서 커다란 계기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덜 주목하게 되고 일상으로 겪다보니 지나치기 일쑤다. 하지만, 이런 ‘작고 가벼운 이야기’는 우리들의 삶을 보다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중요한 요소다. 이 ‘작고 가벼운 이야기’에 주목할 때 비로소 우리들의 삶은 훨씬 더 풍부해 질 것이다. 그동안 지나쳐온 자신의 삶에서 이제 이런 ‘작고 가벼운 이야기’에 주목해 보자. 반복되는 ‘작고 가벼운 이야기’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큰 힘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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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소재들에서 작가의 평소 생각들을 들으며 그의 인생에서 얻은 깨달음과 교훈들이 더해지는 이야기들이다. 자신도 소설가이지만 남의 소설은 오독하기도 하고 통독도 어렵다는 말과 소설가들이 사적으로 하는 말이 더 재미있다며 스스로를 아마추어 속성이라 말하는 겸손함이 독자로 하여금 편안함과 친근함을 느끼게 한다. 세상은 문안과 문밖으로 나뉜다는 천명관 작가의 할머니의 지론으로, 문안에 든 사람에게는 보호와 특혜가, ‘문밖 것’들에게는 차별과 박대가 있다는 것이 세상을 보는 유일한 관점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본디 글공부가 사람 되는 공부인데 글 자체에만 집착하는 이는 아는 것이 죽을병이 되어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그 죽을병이 위세를 떨치게 된다고 하다. 지식 만능, 사유 만능의 병적인 심리상태를 경계해야 한다. 몸 공부에선 책부터 보는 것은 절대 금물. 사람부터 보고 배워야 하고, 결국 사람 되는 공부라고 한다. 글쓰기도 그와 같아서 ‘쓰는 법’을 아는 것은 도움 되지 않고 결국 자기만의 류流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욕심에 관한 글에서, ‘욕심 없이’ 사는 것 같아도 결국은 ‘욕심 없이 사는’ 그 욕심으로 사는 것이니 욕심 없이 산다는 말도 모순이라는 논리가 맞는 것도 같다. 사랑도 욕심이고, 그 욕심에는 나만을 위한 것도 있지만 남을 위한 것도 있다고 말이다. 소설 쓰기는 작고 가벼운 이야기로 생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라는 말처럼 인생도 작고 소소한 일상에서 인문학적 발견을 하며 그 소중함을 발견하는 작업일 것이다.
('작가와 비평'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
![]() '소가진설'이란 무엇인가?궁금했다...
바로 서두에서 저자께서 친절히 설명해주신다... 소설의 어원을 이야기할때 자주 등장한다고하는데 소설쓰기는 작고 가벼운이야기로 생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라신다... 이책이 소설은 아니나 소설쓰기관점과 태도로 쓰인것이고 작고 가벼운이야기로 채워져있다했다.. 이책은 실제로 우리가 읽기도 수월하게 되어있다...그리고 작고 가벼운 내용으로 우리 생활속의 누구나 느끼거나 겪었을법한 일도 있고 또 그저 가벼운이야기만이 아니 그속의 깊은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특히나 많은 영화..특히 홍콩영화...소설과 각종 인문서적드로 그 예시를 들고 한 단락마다 사족이라하여 한마디의 부연적인 설명을 하시는데 나는 그 부분이 더 와닿았다... '사람의 욕심'의 부분에서 나오는 영화'검우강호'의 이야기는 참 신선했다.나역시 그 영화를 아주 오래전 보았었는데 스토리나 액션등 그저 보여주는 것만 보았지 그런 '채근담'속의 깊이는 잘 모르고 있었기에 나의 무지도 원망스러웠으나 또한 저자의 식견에 감탄하였다...저자께서 하시는 검도가 이런 영화의 이해에도 도움이 되셨으리라 생각한다...그래서 계속나오는 검도 이야기나 지식적인 머리 운돔보다 몸운동이 먼저여야함도 부각시켜주시는 가보다... 특히나 가면과 자화상의 부분에서는 내게 여러생각에 빠지게도 만들었다...우리들이 많이도 하고 있는 폐이스북이나 블로그 등 각종의 SNs들속의 나를 생각했다...과연 나는 어떠한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수 없게 만드시는 듯한다... 혹시 그저 남에게 비춰지는 내모습에 나는 더 신경을 쓰는건 아닌지?또 내모습을 나는 사랑하고 있는지?여러가지 생각을 하게하고 또한 내모습을 전혀 올리지 않은 블로그에는 왜 그런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기도 했다... 바뀌벌레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내얼굴이 일그러져있는것도 발견하면서도 저자에게 웃음을 짓지않을수 없게 만든 부분처럼 이런 작고 가벼운듯하지만 그속엔 또 나름의 깊이가 있는 재미난 책이다... '복숭아 나무를 찾아서'에서는 왜 소제목이 이럴까하며 읽어나가다 사족두마디에서의 '자나깨나 예쁜이'의 엄마를 위로하는 말에 내 가슴 마저 따뜻해지고 말았다... '장졸우교' 못난생각을 기교를 써서 감춘다. '우청우탁' 흐리고 맑음이 둘이 아닌다. '용희이명' 어둠속에서 빛은 빛난다. '이굴위신' 굽혀야 펼 수 있다. [모든 것은 제 욕심 안에서 스스로 만든 자신의 틀안에서 생명을 얻기도 하고 죽임을 당하기도 합니다]p106 소가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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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경험하는 일들을 통해 인생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 생각보다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껏 인생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행동을 하며 지금의 이모습이 된 것 인데, 그 안에서 무엇인가를 깨닫고 좀 더 나은 하루하루를 만드는 것은 분명 의미있고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가진설]은 일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수필형식으로 풀어내며, 그 안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인문학에 접목 시켜 덤덤히 이야기하는 중년남자의 고백으로 가득한 책처럼 느껴졌다. 나와 같은 사람은 세상에 존재 할 수 없기에 그의 생각과 의견이 나와 다른 점도 많았고, 이해가 되는 점도 무척이나 많았지만, 아직 인문학을 접해 본 적이 없는 얉은 책읽기를 하고 있어, 저자의 생각과 깨달음을 받아들이는 일이 조금 어려운 점 도 없지 않아 있었다.
소가진설이라는 말은 소설의 어원을 밝힐 때 자주 등장하는 말입니다. 소설 쓰기는 작고 '가벼운 이야기'로 '생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입니다. 인문학 수프 [소가진설]은 소설은 아니지만 그러한 '소설쓰기'의 관점과 태도에 의해 쓰인 글입니다.
저자가 밝힌 데로 소가진설의 의미는 위와 같다고 한다. 아마도 소설의 어원을 밝히 듯 자신의 일화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는 작업을 인문학을 통해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아이의 버릇에 관한 것이었는데, 교육환경을 바꾸기 위해 제안한 혼전 부모 교육실시, 가해 학생의 부모의 법적 처벌등 현실적으로 존재했으면 하는 이야기들도 많이 들어 있어 아직은 견문이 낮아 어려운 내용 투성이었지만 책을 읽는 것이 힘들지만은 않았다.
나중에 나이가 조금 더 들고 깊이 있는 책읽기가 가능해지면 다시 한번 책을 꺼내들어, 작가의 의중을 모두 파악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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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란 무엇인가? 학술적의미로 바라보면 인문학이란 인간의 내면과 가치관을 탐구하는
학문으로서, 인간을 연구하는 것이라 볼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많은 인문학 서적을 들 여다 보면, 인문이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라, 저자의 내면... 즉 '책을 쓴 사람의 자서적 내 용을 다루는 책이 아닌가?' 하는 감상이 드는데, 이 책 또한 그러한 감상의 영역에 머무르는 내 용을 담은 책으로서, 크게 저자 '양선규'의 인생관과 그가 삶을 통해서 깨달은 많은 교훈들이 내용가득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내용을 떠나) "인문이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라는 그 이유 떄문에, 인문학은 큰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특히 사람들은 "인문학은 어렵고 또 배울점도 적다?" 하는 의문점을 이유로, 인문학을 경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 이 책의 저자 '양선규'는 누구인가? 하는 의 문을 시작으로 생각하여 보면, 그 경시의 문화가 '실적주의'에 입각한 한국의 사회 그대로를 투 영하는 가장 큰 거울임을 알 수 있다. 분명 그는 유명 소설가처럼 이름을 날리지 못했고, 백 억대의 수익을 올리는 기적의 사업가도 아니고, 모두가 선망하는 성공신화를 이루지도 못 했다. 때문에 사람들은 '배울점이 없다.' 라는 이유로 인문학을 접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 연 인문학에서 배울점이 하나도 없을까? 그리고 책을 읽지도 않은 한국인에게 있어서, 과연 인문학 서적은 어떠한 위치에 있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분명 인문학은 '실용서' 와는 다른 철학적 의미의 영역에 다리를 담그고
있다. 특히 이 책은 저자가 어린이로서, 어른으로서 살아온 인생들, 그리고 그에게 있어 인간 성을 형성하게 해준 많은 사람들의 영향력, 그리고 저자가 수많은 이야기를 풀어 놓을 수 있었 던 배경에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은 사회의 교류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 다." 라는 대전제가 깔려있는데, 그렇기에 사람들은 흔히 '인문'을 단지 '착한 삶을 살게 하는
도적적 의미'로만 해석하는 일면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나는 적어도 인문학은 잡식 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고대의 현자가 말하길 "천하디 천한 노예에게도 배 울점은 반드지 있다" 라고 하였다. 성공한 사람, 실패한 사람, 그리고 사회를 성실하게 살아 가는 사람... 이처럼 모든 사람들 의 이야기를 듣고, 보고, 친해지고, 또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 게 하는것이 바로 인문학이란 것이 아닐까? 오히려 나는 수십억을 버는 주식의 비법이나, 직 장에서 살아남는 비법, 장사에서 큰 수익을 버는 노하우에 목숨을 거는 실용적인 사람 (자칭 스 마트한?)을 양산하는 지금의 사회가 더 딱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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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 『소가진설』은 소설의 어원을 밝힐 때 사용되는 말이라고 한다. 소설 쓰기는 작고 ‘가벼운 이야기’로 ‘생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란 의미로 이 제목이 사용되어진 듯하다.
그러니, 이 책은 삶 속의 ‘가벼운 이야기’들을 주제로 삼는다. 때론 tv 프로그램을 보다, 때론 잡지를 보다, 때론 책을 보다, 때론 영화를 보다가, 때론 가요를 듣다가, 때론 산책을 하다 떠오른 생각들을 주제로 삼는다. 말 그대로 일상의 ‘가벼운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이처럼 ‘가벼운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생의 진실’을 밝힌다. 그가 표현한 것처럼 거창하게 ‘생의 진실’을 밝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일상의 가벼운 주제에서 출발하여 연관된 추억을 회상하기도 하고,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도출해내기도 한다. 이러한 작업(생의 진실을 찾는 작업)을 저자는 “인문학 수프”라 표현하나보다. 그래서 이 책은 그의 작업인, “인문학 수프 시리즈” 여섯 번째 책이다.
에세이집이라 말할 수도 있고, 수필집, 산문집이라 말할 수도 있다. 왠지, 에세이집이란 표현보다는 수필집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성 싶다.
저자는 유독 사자성어를 좋아하는 듯싶다. 어떤 부분에서는 사자성어가 글을 필요이상으로 예스럽게 만들고, 때론 글의 무게를 가볍게 하기도 하며, 또 어떤 부분에서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느껴지게 하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사자성어 사용을 포기하지 않는다. 책 제목도, “소가진설” 아닌가!
저자에 대해 모르는 상태에서 솔직히 책 표지와 책 제목은 선뜻 이 책 집어 들기를 망설이게 하는 그런 디자인과 제목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후에는 디자인도, 제목도 왠지 어울리는 느낌을 받게 된다. 왠지 상업적인 호객행위는 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느껴지기도...
수필집이기에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주제가 뭘까 생각하진 않겠다. 단지 유독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이 저자의 글의 전체적인 느낌을 대변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글공부의 목적이란 사람 되는 공부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사람 되기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글 자체에만 집착하는 이가 있다면, 이런 이들을 “글자 병신”, “책 귀신”이라 부를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그가 끓이는 인문학 수프의 목적이 아닐까 여겨진다.
그렇다. 우리의 모든 글공부, 책읽기는 사람됨을 지향한다. 그럼에도 사람됨에는 관심 없이, 내가 책을 천권 읽었노라. 2천권 읽었노라 하는 것을 훈장처럼 여긴다면, 이 역시 책 귀신이 되는 모습 아닐까? 분량을 떠나 사람됨을 지향하는 책읽기를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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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작가들이 이처럼 깊이 있고 문장의 맛도 은근한 본격 수상록을 잘 내어 놓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냥 단편적인 주장만 내 놓거나, 독자의 편의를 위한다는 미명 아래 단문, 구호로만 채워진 글을 쓴다거나, 그도 아니면 정치색 강한 목적성 위주의 글을 쓰거나.... 자기 개성도 뚜렷이 나타내면서, 독자가 그를 통해 은근 곱씹고 배울 구석도 많고, 문학적 향취도 짙게 배어나는 글은 좀처럼 만나기 힘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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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진설]은 일단 길이가 짧고 소재가 가벼워 보이는 듯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소설은 아니지만 소설쓰기의 관점과 태도에 의해 쓰여진 글로서 무겁고 진중한 주제보다는 일상생활속에서 건져 올려지는 작은 주제나 대상을 소재로 하여 쓰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야기의 소재나 메세지는 절대 가볍지 않고 오히려 묵직하기 까지 하다. 사실 이러한 장르를 전에는 접해본 적이 거의 없어서 좀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장르가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아서 좀 혼란스럽지만 책을 읽고나서의 느낌은 수필의 그것과 비슷한 것도 같다. 물론 수필과는 다르다고 하지만 말이다. 저자가 체험하고 느꼈던 삶속에서의 깨달음들을 가벼운 이야기형식으로 들려주면서도 그 속의 메세지는 결코 가볍지가 않다. 사십여편의 작은 이야기들은 각 이야기마다 하나의 주제가 있고 그 주제와 곁들여 저자의 경험과 사회인문학적 지식을 풀어서 따끈하게 녹여내고 있는것 같다. 인문학분야를 많이 읽지 않은 탓에 조금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나의 인문학적 지식의 부족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겠다. 단어라든가 한자어가 섞여 있다보니 그 뜻을 알기가 헷갈리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아버지의 향기가 폴폴 나는 것 같다. 어릴 적 부터 자주 보아왔던 아버지의 책 읽으시는 모습과 아버지가 보고 계시는 책을 옆에서 힐끗 훔쳐보면 한자어가 제법 섞여 들어간 인문학 관련 서적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인가 보다. 그리고 아버지의 어깨에 관한 이야기가 유독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장으로서 늘 하고 싶은 일보다 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우리의 아버지들의 어깨는 참 고단하고 무거웠으리라... 그리고, 50대인 저자의 눈에 비친 세대간의 변화와 그 차이는 생각하는 세대와 만지는 세대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고 말한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그에 따라 인문학에서도 중요하게 거론되어 지는 것 중의 하나가 실재하는 물질, 물체, 관계에 대한 존중이라고 하는데 접촉에 대한 애착의 정도가 이전보다 훨씬 더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sns나 휴대폰으로 물리적 거리가 멀어도 원하면 지금 당장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sns로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것이 관계에 좀 더 접촉하기를 원하는 지금 젊은 세대들의 상징적인 모습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이 책은 묵직한 듯 보이는 소재를 갖고, 또는 주제를 가지고 가볍고 담백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 이야기속에는 인문학이 늘 기본 밑바탕에 깔려 있어서 인문학을 좀 더 쉽게 접하기 위해 읽어보면 괜찮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한자어도 그렇고 고서나 인문학적 상식이 그리 풍부하지 못했는데 이 책을 계기로, 앞으로는 인문학 지식을 좀 더 폭넓게 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