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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젖은 옷처럼 그에게 달라붙었다.’ 무심코 읽어내려가다 이 문장 앞에서 소스라치며 멈춘다. 어떤 사람에게는 사랑이 너무 쉽다. 너무 쉽기 때문에 그들은 사랑하기를 즐기지 않는다. 또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사랑이 너무 어렵다. 너무 어렵기 때문에 그들 또한 사랑하기를 즐기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사랑의 쉬움과 어려움에 스스로 공감하거나 반감을 드러내면서도 끊임없이 사랑한다. 사랑은 대부분 피할 사이도 없이 내리는 비와 같아 우리들은 일순간 젖어버리게 되는 것이고, 그저 멍하게 ‘젖은 옷처럼’ 누군가에게 달라붙어 버리게 되는 운명을 지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의 필연을 보여주는 표현으로 ‘그녀는 젖은 옷처럼 그에게 달라붙었다.’라는 문장은 심플하면서도 꽤 절절하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두 커플이 있는데 그 중 한 커플은 시연과 지환이다. 서른을 이제 막 돌파한 시연은 한번 결혼에 실패한 남자 지환을 만난다. 이들은 바로 그 날 원나잇스탠드, 예기치 않게(아니 예기치 않았던 것이 아니었음을 나중에 깨닫게 되는) 하룻밤을 보내지만 이들의 사랑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대개 사랑은 상대에게서 멋진 무언가를 보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것이 요지부동의 것이 되는 순간은 서로의 상처를 확인하면서부터다. 그렇다면 상처는, 사랑의 심장이다. 그건 곧 관능의 심장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상처 입은, 그러니까 상처를 보여주는 연인만큼 관능적인 존재도 없다. 더 이상 자신을 방어하지 않는, 자신을 상대에게 완전히 맡겨버리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두 가지밖에 없다. 혐오하거나 사랑해버리거나, 중간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꽤 오랜 기간 사귀었던 남자와 얼마 전 헤어짐의 아픔을 겪고 스스로 마음의 단속을 하고 있던 시연은 지환 앞에서 조금씩 허물어진다. 사랑은 결국 필연적이어서 그 시작의 엉성함에 상관없이, 예기치 않았던 것이라는 불필요한 변명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게 부여된 동력을 가지고 그 결과를 향해 치닫게 된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또다른 커플은 시연의 오빠이며 이미 결혼한 정연과 시연의 친구인 은재이다. 어린 시절 시연의 친구 자격으로 정연을 사모했던 은재는 성년이 되고 정연와 첫경험을 했지만 뒤돌아서는 그를 잡을 수 없었기에 그를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금 재회를 하게 된 정연과 은재... 은재는 단숨에 과거의 정염의 상태로 나아가고 이제 유부남이 된 정연에게 열정적으로 대시한다. 하지만 은재가 정연에게 울며 매달리던 관계는 어느 순간 역전되고 아내와 딸아이를 포기해버린 정연을 앞에 두고 은재는 다시금 돌아선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들은 적이 있다. 충분히 사랑한 사람은 오히려 그 사랑에서 빠져나오기가 쉽다고. 왜냐하면 그는 모든 에너지를 써버린 사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랑받았던 기억들이 너무 많은 사람이다. 그는 사랑이 떠나갔다는 사실에 적응하기 어렵고 또 그의 몸 속엔 써보지 못한 사랑의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래서 가끔 연인 관계에서 많이 사랑하는 사람과 덜 사랑하는 사람의 위치가 바뀌는 역전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사실 윤효의 이번 작품에 적잖이 실망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녀의 작품집 『베이커리 남자』를 읽은 이후 난 그녀가 전경린, 은희경, 신경숙과 같은 작가들과는 달리 대중의 요구와는 무관하게 자신이 풀어내는 거미줄 같은 삶의 편린에 독자들이 걸려들도록 만들어서 좋다는 의미의 글을 썼었다. 하지만 두 권짜리로 엮인 이번 소설은 마음의 끝자락을 건드리는 몇몇 문장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두 커플의 사랑과 욕망의 이야기를 진부하게 나열하는 것에서 멈추고 있다. 이렇게 저렇게 음의 끝자락을 휘어대는 얕은 재주가 리듬 앤 블루스의 정수를 드러내는 것은 아니듯, 절묘하게 치장된 몇몇 문장들만으로는 사랑의 지난한 내적 역사의 한 자락이나마 완성시킬 수 없는 것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