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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보이지 않던 이웃 아줌마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 보였다. 살이 빠지고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췌장암 3기 판정을 받고 집에서 주변 정리를 하면서 죽음을 예비하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덧없이 소멸하는 삶의 가운데에서 느끼는 불안이 증폭될 때마다 염세주의적 태도는 특정 종교에 매달릴 수 있는 여지가 많은 만큼 니체는 특정 종교와 정치적 이념에 사로잡히는 일은 자기소외이며 스스로 노예가 되는 길이라고 경고하였다. 자유로운 사고를 막는 확신의 노예에서 벗어나 확신에 굴복하지 않는 대신 자신을 주인으로 삼아 질적인 삶으로 고양하는 일을 예술에서 찾으려고 했다.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예술가들 역시 삶의 예술가가 될 때 생을 긍정하며 살아갈 수 있는 양분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물리학자 이기진 교수의 딴짓은 기억 속에 멀어져 가버린 애장품을 떠올리게 한다. 밋밋한 일상에 변화를 주면서 살고 싶은 마음이 강하여서인지 다르게 행동하며 좋아하는 일을 찾아 딴짓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강해진다. 쉽사리 벗어나기 힘든 일상 속에서 새로운 생활을 병행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적잖은 즐거움을 줄 때가 있음을 안다. 나이 들어도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기울일 수 있는 취미에 몰입할 수 있다면 소소한 기쁨으로 일상은 충만해질 것이다. 미답의 공간을 찾아 발품을 팔며 거리로 나서 현지인들의 생활을 알 수 있는 곳으로 시장만한 곳이 없다. 갖가지 볼거리로 이방인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시장 풍경은 언제 보아도 신기한 볼거리들로 가득하다. 정해진 궤도대로 살아지지 않는 인생에 도전하는 삶은 무모하여 보일지라도 새로운 일상을 살게 하는 토대가 된다. 파리로 공부하러 갔을 때 두 살배기 딸을 데리고 오기 전 정착 준비를 하느라 감기를 얻었을 때 레몬즙과 오렌지 즙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기구를 만나 함께 한 경험은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할 것이다.
공상하기를 즐기며 술 한 잔에 망가지기도 하는 비과학적인 행동들이 모여 한 사람의 차별화된 역사를 이뤄내는 듯하다. 과학적인 사고로 객관성과 논리성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물리학자가 일상에서 행복하고 낭만적으로 살아가는 법을 일러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물리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로 물리학 공부를 시작하였다는 저자는 병따개 하나에 담긴 물리적인 원리를 분석하며 자신의 존재 방식을 찾았다. 러시아로부터 독립하지 않은 아르메니아 연구소에서 일하던 시절은 어두웠지만 따스함을 나눴던 일들로 가득했고 이후 그곳의 학생들을 초청해 함께 연구하며 재충전하는 시간은 다른 빛깔로 향을 만들어가는 관계에 긴밀함이 깃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진정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고 대세를 따라가는 것은 자신의 개성을 없애고 획일화로 몰아넣고 만다. 상처가 난 백색의 도자기를 보고 다른 것과 차별화된 감성을 지닌 물건으로 간주하는 저자의 다른 생각은 볼품없어져 버렸다고 버리는데 급급했던 생활을 돌아보게 한다. 영혼을 갉아먹는 소리로 일본에서의 공부를 지탱하게 해 준 연필깎이를 선물해 준 이구치 교수의 정을 확인이라도 하듯 연필을 돌려서 깎고 싶은 마음이 동한다. 아르메니아, 몽골, 일본, 프랑스 등을 찾아 공부하였던 기간에 소장하게 된 물건들의 의미는 추억의 시간을 돌려주는 또 다른 타임머신처럼 여겨진다. 취미 중 하나가 설거지라고 밝히는 저자는 물기를 닦아내는 행주에 대한 단상을 적으며 프랑스에는 행주도 대물림된다니 다소 놀라웠다.
애정과 관심에 다라 취미의 깊이가 달라진다는 점을 살아오면서 절감할 때가 있다. 아르메니아에서 보드카를 마실 때 애용했던 유리잔은 한 번에 술잔을 비워내야 하는 만큼 중량감을 견딜 수 있는 잔으로 마련한 모양이다. 같은 술을 마시더라도 어떤 잔에 술을 따라 마시느냐에 따라 그 맛과 향은 달라진다. 저자는 자신이 가진 시간과 공간의 종횡 속에 제 빛깔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삶에 특별함을 준 계기를 알프스 프라리옹에서 찾았다. 사연이 있는 물건들을 소장하고 있다가도 생활에 무용하다는 점을 들어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버리지 않고 한곳에 모아두는 것도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며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골동품처럼 되어버린 다관에 녹차를 따라 마시며 25년 전의 시간을 불러내 그 시절 함께 했던 인연들을 불러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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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딴짓’이라 함은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학생에게는 공부 이외 다른 모든 행위가 ‘딴짓’으로 지칭되며, 직장인에게는 업무 이외 다른 모든 행위가 ‘딴짓’에 포함된다. 이는 사회 인식이 학생과 직장인의 의무는 공부와 업무라는 것으로 자리매김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이렇듯 방과 후에도, 퇴근시간이 지났어도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에 집중하고 열중하는 행위가 미덕이라 여길 때가 있었다.
현대에 와서는 학생과 직장인에게 씌운 굴레가 많이 느슨해지고 자유로워졌다. 여전히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지 못해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주위에 있고 정시 퇴근은 꿈도 못 꾸며 자신을 하숙생이라 지칭하는 직장인들이 곁에 있지만, 그럼에도 과거에 비해 자유로워졌다고 말하고 싶다. 사회에서 주어진 직무를 제대로 이행한 후에는 정신적‧육체적으로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허용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딴짓의 고수’로 등장하는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2014.07.25. 웅진서가)』의 저자 이기진은 ‘딴짓’을 즐기는 자신의 행태를 두고 ‘소속된 곳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 주류에서 비켜 서 있는 듯한 느낌, 소외(p.52)’와 같은 말로 설명한다. 이 표현은 물리학자라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았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흰 가운을 입은 체 실험실 혹은 연구실에서 두문불출하는 딱딱한 이미지로만 물리학자를 떠올리는 고정관념을 지녔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그러나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궁금했던 점은 밤새서 연구해야 할 때가 많았을 물리학자에게 ‘딴짓’을 허용할 여유 시간이 주어졌을지 그리고 그에게 ‘딴짓’이란 무엇인지였다.
물리학자 이기진에게 ‘딴짓’이란 골동품 수집을 가리킨다. 무작정 오래된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영감을 주는 물건(p.174)’들만 구입한다는 게 그의 철칙이다. 그의 골동품 수집 취미 덕분에 아르메니아공화국 시장에서 구입한 ‘녹색의 에마야주(p.146)’가 압록강 상표를 달고 있는 우연을 발견하기도 했으며, 동료 교수에게 ‘아니, 이 교수? 이제는 개집까지 모으냐?(p.211)’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가 소개한 보물 중 도자기 새에 꽂혀있는 오렌지 껍질 벗기는 칼과 오렌지나 레몬즙을 짜는 물건이 탐났고,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소설 「어린왕자」에 ‘생텍쥐페리와 그의 부인인 콘수엘로의 역사적이고 기적적인 사랑 이야기(p.191)’가 숨겨진 사실에 놀랐다.
‘취미 생활은 연애와 같다(p.87)’고 말한 이 책의 저자에겐 물리학자라는 본업을 제외하고도 동화책을 출간한 동화작가, 깡통로봇을 아트페어에 출품한 작가, 신문에 만화 연재를 했던 만화가 등 다양한 직함을 가졌다. 짐작하건데 그는 남다른 체력의 소유자이거나 남들보다 강한 열정의 소유자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독특한 이력에 대해 ‘뭔가 논리 정연하고 앞뒤가 딱딱 맞는 상황이 되도록 미리 준비했던 것은 아니라(p.236)’고 고백한다. 예상하지 못했던 발언 앞에서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현재의 상태에서 좀 더 재미있는 것들을 생각하며 열심히 즐겁게 사는 것(p.68)’이야말로 개인이 단조로운 일상에서 이루어낼 수 있는 ‘혁신의 시작(p.68)’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가 타인보다 특별하고 출중해서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다. 다만 하고 싶은 일을 실천에 옮겼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의 리뷰 제목을 ‘딴짓의 고수에게 삶의 방식을 배우다’로 정했다.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이런 저런 핑계로 시도하지 못했던 일들을 시작해 볼 결심이 섰기 때문이다. 지금, 바로, 나의 이 결심이 내게는 혁신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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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와 골동품 수집과의 상관관계, 교수와 동화 작가의 조합, 또는 물리학 교수와 만화 그리기의 연관성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러한 조합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굳이 하겠다는 데 말릴 까닭도 없지만 첨단 과학을 연구하는 물리학자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또는 50대 중반의 가장이 저지른(?) 일 치고는 왠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의 저자인 이기진 교수는 조금은 특이한 물리학자이다. 내가 상상하는 물리학자는 흰 가운을 걸친 깔끔한 차림새로 연구실은 늘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허튼 농담이나 실없는 말은 일체 입에 담지 않고, 집에서도 독서와 연구에 매진하는 그런 모습이다. 물리학자에 대한 편견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나의 생각은 이제껏 변한 적이 없었던 듯하다. 그러나 대개의 일반인이 가졌음직한 이러한 편견을 이기진 교수는 단번에 깨트린다.
연구실 한켠에 군데군데 서있는 깡통 로봇과 벽면에 붙은 엉뚱한 그림들과 이빨이 나간 백자며, 부엌에 있어야 할 조리기구며, 홍차를 거르는 기구며, 출처가 궁금한 호랑이 조각상이며, 심지어 낡고 허름한 개집까지. 이건 뭐 시골집 창고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그런 너저분한 연구실을 학기에 단 한 번 정리하고, 입는 옷도 1년에 한 번 몰아서 산다고 하니 그의 가족이나 지인들은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이 사람을 너그러이 용서하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그렇지 않은가. 웬만한 사람이면 대개 직장과 가족이 생기는 순간 자신이 몰입하던 취미와 결별하고, 새로운 환경을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게 일반적이지 않은가.
"취미 생활은 연애와 같다. 애정과 관심에 따라 취미의 깊이가 달라진다. 조금 눈길을 멀리하면 토라져 버리고, 만남이 뜸해지면 헤어짐의 아픔을 당하기도 한다. 물질적으로 투자를 하면 둘 사이는 럭셔리해지고 급격하게 친밀해지기도 한다. 가끔 삼각관계에 휘말리기도 한다. 둘 중 한 사람을 버려야 하는 불편한 상황처럼, 애지중지하던 취미를 멀리하고 새로운 관심사로 갈아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헤어진 애인의 편지와 선물을 처리하듯, 취미 생활에서 구입한 물건들이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폐기물처럼 방치되기도 한다." (p.87)
실험실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온갖 상상의 날개를 펴고 '딴짓'에 몰입할 수 있는 사람. 저자 이기진은 그런 사람이다. 내전중이던 아르메니아 공화국에서 보냈던 젊은 시절, 그곳에서 사귀었던 오래된 인연, 다락방 생활을 감행했던 프랑스 파리에서의 생활, 지도교수가 맘에 들어 7년을 보냈던 일본. 글을 못 읽어 학교까지 그만두어야 했던 초등학교 2학년의 어린 소년은 물리학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오래된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시간이 켜켜이 쌓인 물건에 탐닉하며, 추억의 장소를 찾는 어른이 되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어린 시절의 환경, 부모님, 친구들,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저자를 자극하고 부추겼으리라. 대학생 시절부터 다니던 술집을 몇 십 년째 드나들고, 매일 같은 시각에 들르는 커피점, 수없이 드나들던 고미술 상가와 벼룩시장, 그의 주변에는 온통 '오래된 것들'만 넘쳐나는 것이다. 창성동에 마련한 한옥을 혼자만 즐기는 게 아쉬워 현재는 갤러리로 쓰고 있다는 저자.
나는 저자의 삶이 은근 부러워진다. 매시간, 매분, 매초, 매순간마다 미끄러지듯 흘러 다시는 되돌릴 길 없는 추억의 지하동굴에 저장되는 삶의 나락에서 우리는 그 지하동굴에서 건져 올린 추억에 나른한 감상을, 명징한 느낌을, 때로는 상큼한 쾌감을 적당히 섞어 행복이라는 삶의 와인을 들이켜곤 한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제대로 즐기고 즐길 줄 아는 몇 안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세월을 거슬러 뭔가 상상하게 만드는 물건. 너무 많이 팔리는 바람에 벼룩시장에서조차 가장 싸게 구입할 수 있는 물건. 이런 물건을 오브제로 생각하며 사는 모습. 이런 풍경이 나는 좋다." (p.269)
삶이란 결국 다양한 경험을 첨가한 사유의 칵테일이 아닌가. 어떤 경험, 어떤 첨가물을 넣을지 결정하는 일은 순전히 본인에게 달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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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찾은 나의 이상형[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
"무모하게 살아도, 어떠한 삶도, 삶이 된다."-237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기진의 말이다.' 라고 하면 인생선배로서 후배들에게 교훈을 주는, 묵직한 울림을 가진 말처럼 여겨진다. 금과옥조로 삼으리라...
하지만 물리학과 교수가 아닌 '딴짓의 고수 이기진'이 던진 말이라 생각하면, 더불어 그의 딴짓 퍼레이드가 펼쳐지는 에세이를 읽고 나면 같은 말이라도 유쾌한 생명력을 가진 말로 재탄생하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평범함을 거부하는 물건들과 그에 얽힌 이기진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의 '딴짓'에 빠져든다. 아, 내 이상형은 바로 이런 사람이었어. 이제와서 땅을 치고 후회해 본들 무슨 소용 있으랴만... 평범한 일상에 매몰되어 같은 일만 반복하고 살던 내게 톡 쏘는 사이다같은 청량감을 안겨주는 독특한 일상을 구경하고 나니 내가 이제까지 누리던 일들이 시시하게 느껴졌다. 이미 내가 잡을 수 있는 기회는 날아가버렸으니 내 아들을 이런 '딴짓'하는 남자로 키워볼까나...하는 생각이다.
얼마 전 TV에서 <비정상회담>이라는 프로그램을 볼 기회가 있었다. 미국 출신 타일러가 취업 스펙 9종세트까지 등장했다며 한국의 높은 스펙 경쟁을 꼬집었다. 학벌, 학점, 영어점수에 추가해 어학연수, 자격증,공모전 입상, 인턴 경험, 자원 봉사, 성형수술까지 총 9종. 외국인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의 모습이 이런 모습이라 부끄럽기도 했고 한편으론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 입장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고 키워나가야 하나 고민도 됐다.
그러던 차에 이기진 교수의 '딴짓'이 잔뜩 실린 이 책은 내게 자녀교육의 길을 찾던 내게 새로운 길을 제시해 주었다. 물론 현재는 대학교수로 있기 때문에 이 모든 딴짓들을 누릴 수 있지 않느냐,며 비판의 촉을 세울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그의 삶은 스펙 쌓기에 모든 것을 집중하는 요즘 아이들과는 다른 과정을 거쳐 목적지에 도착한 점이 다르다. 그는 영어유치원에부터 생애 첫 공교육을 가장한 사교육을 시작하는 아이들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비뚤어진 길을 그려나갔다. 처음 학교에 들어가 글을 못 읽는다고 담임 선생님께 야단맞은 소심한 소년은 학교를 그만둔다. 그 뒤 전학 간 학교에서 3년간 야구만 한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건이 아닌, 자기만의 아주 사소한 계기로 방향이 틀어질 수 있다. 내가 그랬다. 꼰대 같은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사실 하루에도 몇 번씩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만한 일들이 내 앞으로 다가오고 지나간다. 문제는 내가 그 순간을 인식하느냐, 아니면 그냥 보내느냐 하는 것이다. -202
공부를 특별히 잘한 것도 아니고 자랑할 만한 특기도 없었고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평범한 학생이 지치도록 야구에 매진하는 전성기를 누린다. 중학교 때부터는 꽤 정신을 차린 모양인지 호기심이 샘솟은 탓인지 책을 읽어 대고, 천체와 우주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고등학교 때 물리 선생님이 툭 던진 칭찬 한 마디 "어? 너 물리 잘하는데?"를 들은 덕분에 물리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후로 그는 열정적으로 연구를 했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다녔다. 한 번 열정에 사로집히면 앞뒤를 못 가리는 일종의 '몰입' 상태에 빠져드는 것 또한 그의 훌륭한 장점 중의 하나다.
# 큰 돈 드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남겨두지 않는다.
로봇을 만들고 나서 다음엔 의자도 만들어 봤다. 아니, 뭔가 만들고 싶은 게 있으면 다 실행에 옮겼다. 뭘 만들었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건 아니지만, 안 만들고 있으면 그대로 하고 싶은 일로 평생 남을 것이 아닌가.-41
# 일과 가족을 우선순위로 둔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가족은 함께 붙어 사는 것이 좋았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있는 경우엔 더욱 그렇다.-46
# 남들과 다른 자유스러운 생각을 하면서 '소외'를 즐긴다.
남을 의식하고 남과의 차이를 좁히려고 들 때 삶은 개성을 잃고 만다. 진정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고 대세를 따라가는 것은 자신의 개성을 없애는 일이다. -52
# 알리바바의 보물창고를 간직하고 있다.
아르메니아 공화국의 시장에서 녹색 에마야주와 녹이 잔뜩 낀 저울의 추, 양털로 짠 카펫 수건에 둘둘 말아 가지고 다니는 전용 백자 술잔, 알프스 산장 카페에서 산 유리잔 채린이의 밥그릇으로 쓰던 쇼와 시대 청화 도자기, 에도 시대 이마리 도자기 오차잔, 원래 주인은 이태리 사람이지만 파리 15구에 있는 자전거 숍에서 구입한 롤리 자전거 월리스 그로밋 피겨 라디오, 최고의 컬렉션이라 꼽는 '창성동 실험실'이자 한옥 갤러리...
거기에다가 그림에 취미를 가진 그는 이 책의 모든 삽화를 직접 그렸고 동화책과 만화책을 이미 여러 권 낸 작가이기도 하다.
아~ 다른 건 몰라도 이 정도의 스펙이라면 충분히 나의 이상형이라 할 수 있겠다. 9종 스펙을 굳이 갖추지 않아도 언제든 원하는 것이 있을 때 몰입할 수 있는 열정을 가진 아이. 일과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아이. 자기만의 취미를 가지고 있는 아이.
지금 내가 혹시 변진섭의 <희망사항>에서 말하는 그런 이상형을 바라고 있는 건가? 아니, 아니, 아니다. 그 이상형은 존재하고 있고 이렇게 책도 펴냈으니 절대, 네버, 불가능한 이상형은 아닌 것이다. 다만, 이기진을 이렇게 자랄 수 있게 만든 제 2의 신사임당 같은 어머니가 되기에 내가 너무 부족할 뿐.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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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 교수가 자신이 애장하는 사물에 대해 물리적 관점으로, 아니 전혀 다른 물리적이지 않은 관점으로 딴짓거리를 하며 쓴 책이다.
이 교수. 괴짜인 듯 해보이다가 참으로 감성적인 사람으로도 보인다. 책에 소개한 애장품의 목록도 자못 특이하다. 25년 전, 아르메니아에서 가져 온 설탕 펜치를 이제는 두통약을 반 잘라 먹는데 쓰고 있으며, 벼룩시장에서 주워온 고릿적 설탕그릇과 도자기 컵, 주전자 등 하물며 개집까지 사가자고 와서 자신의 연구실을 꽉 차웠다. 연구실 사진을 보니 와~ 난 이렇게는 못살아. 완전 정신 하나도 없는 잡동사니 천국일세 하지만 나름대로의 원칙은 있는 듯 하다.
책상에서 일을 하다가 커피를 물처럼 마시는 것은 그냥 마시는 행위에 해당되지만, 에스프레소에 각설탕을 넣고 마시는 행위는 커피와 마주하는 의식이라고 하고 아프리카의 건조한 날씨, 모든 욕망을 없애주는 햇빛, 경계가 없이 훤히 뚫린 것 같은 북아프리카의 하늘을 보면 행복한 충만감을 느끼는 로맨티스트이다. 한 문과생이 자신의 물리학 서적을 읽고 써 놓은 서평을 보고 하루종일 ‘재수없다’라는 말을 떠올리면서도 세상은 항상 대칭적이라며 민감한 사항은 피해가자는 쿨한 사람이기도 하다. 하여튼 살면서 딴짓은 정말 필요하다. “하나만 하고 살기엔 인생은 너무나 짧고, 하나만 하다 죽기엔 인생은 너무나 길다”말처럼 인생이 어찌 한 방향만 있을 수 있으며, 그렇게 산들 무슨 재미일까 나도 자꾸만 딴짓이 하고만 싶네 이번에 어떤 딴짓을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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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서강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다. 이것이 저자의 본업이다. 하지만, 이 책 제목처럼, 저자는 ‘딴짓’을 많이 한다. 동화를 쓰기도 하고, 만화를 쓰기도 한다. 만화 케릭터인 ‘깡통 로봇’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그는 만화가라 할 수도 있고, 동화작가라 할 수도 있으며, 물리학자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를 더욱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있으니, 그건 바로 2NE1의 멤버 씨엘(이채린)의 아버지라는 타이틀이다.
어쩌면 자신의 생업(?)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고, 열정을 쏟을 수 있는 그 열정, 그 ‘딴짓’의 또 하나의 결과물이 이 책이다.
‘딴짓’의 고수인 저자에게 또 다른 ‘딴짓’이자 또 하나의 ‘본업’은 컬렉션이다. 거창한 것을 모으는 것이라기보다 자신이 여행하던 곳이나, 또는 살던 지방에서 모은 잡다한 물건들. 주로 벼룩시장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때론 상점이나 때론 백화점에서 구입한 것들도 있다.
이런 물건들 중에는 손잡이가 망가진 도자기 주전자가 있기도 하고, 또 어느 땐 아프리카 작은 상점에서 마치 우리네 정승처럼 그 상점을 지키고 있던 나무 호랑이 한 쌍을 구입하기도 한다. 물론 지인들에게 선물 받은 것들도 있다. 저자는 이러한 물건들을 모은다.
그리고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란 제목의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컬렉션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에세이집은 자신이 모은 여러 잡다한 것들에게 존재의미를 부여하는 에세이집이라 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그 물건들은 이미 각자의 존재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게 중에는 여전히 자신의 존재의미를 붙잡고 뭔가에 사용되어지는 물건들도 있을 수 있지만, 또 많은 것들은 이미 그 존재의미를 상실한 채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들도 있을 수 있다.
그 사물들이 자신의 존재목적에 맞게 사용되어지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이들 모두는 저자를 통해, 또 하나의 존재의미를 부여받는다. 그것은 바로 ‘추억’, ‘사연’이다. 이러한 ‘추억’회상으로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사물들은 또 하나의 존재의미를 부여 받게 된다.
멋지게 사용되어지면 또 어떻고, 사용되어지지 않는다면 또 어떻겠나. 각자 그 안에 아름다운 사연 한 조각씩 품고 있다면 그만인 것을. 단순한 사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스토리텔링작업, 참 멋지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러한 스토리텔링 작업이 모아져 이 책을 이루고 있다.
이기진 그의 글을 읽으며, 부럽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유롭게 뭔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본업에서도 행복을 느끼면서, 또 한편으로는 또 다른 뭔가에 열정을 가지고 몰입할 수 있다는 것, 얼마나 행복한 인생인가!
저자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물건들에 새로운 존재의미가 씌워질 때, 그 물건은 또 하나의 새로운 영성을 덧입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작은 사물조차 허투루 여기지 않으며 바라볼 수 있는 저자의 눈이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눈, 그 감수성이 자녀들에게도 이어졌기에, 씨엘과 같은 딸이 성장할 수 있었겠다 싶기도 하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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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읽고 있는 중입니다. 작가분의 독특한(?)삶과 인생을 즐기는 점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작가분이 두애니원 씨엘 아빠래네요 ㅎㅎㅎ 그래서 그런지 씨엘도 쫌 독특한것 같기도 하고 암튼, 인생은 정말 살아 봐야 알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사는냐에 따라 지루할수도 재밌을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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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
![]() "자연스러움의 끝판왕 육아예능 인기 언제까지?" 라는 제목의
온라인 신문기사에 익명의 독자가 덧글을 달았다. '연예인이니까 육아예능하지, 쳇바퀴 돌듯 일하는 직장인들에게 가능한가?'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를 푹 빠져 단숨에 읽고 난 후에,
살짝 삐딱한 마음이 들었다. '딴짓 아무나 하나? 문화 자본, 학력자본 갖춘 사람이나 즐기며 딴짓하지?' 아마도 부러워서 거는 딴지겠다.
부럽다. 이 엔티크스러운 에세이의 저자 이기진은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이자, 유럽 여러 국가에서 그림책을 출판한
작가이며 '깡통 로봇'을 파리의 아트페어에 진출시킨 아티스트이다. 아니, 그냥 '2NE1'의 가수 씨엘의 아버지라고 해두면 더 소개가
빠르겠다. 중년의 한국인 물리학자에게 품을 선입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그는, 조용히 딴짓을 해왔고, 딴짓에서조차 소소한 성취를 이뤄내는 딴짓의
달인, 팔방미인이다. 그러니 부러울 수밖에. ![]() 이기진은 초등학교 들어가서 글 못 읽는다고 담임선생님께 야단을
맞고 아예 학교에 나가지 않는다. 사남매를 두신 그의 부모님은 학교생활에 적응 못하는 아들을 사립학교에 전학시켰고, 졸라대는 아들에게 야구
글러브를 사주신다. 그렇지만 '손을 턴 도박꾼 같은 단호한 생각으로' 야구를 그만둔 그에게 천체와 우주에 대한 관심이 야구 사랑의 공백을
메워준다. 고등학교 시절 물리 선생님의 칭찬 한 마디에 진로를 정한 그는, 학회장에서 만난 아르메니아 학자의 제안을 받고 내전 중이던
아르메니아로 향한다. 그 후 파리에서 물리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다시 일본에서 7년간 지낸다. 한국의 서강대 교수로 부임하여 처음엔 달랑 책상
하나뿐이었던 연구실을 지난 10여 년간 책상 4개짜리 보물창고로 변모시켜 놓았다. 말이 좋아 '보물창고'이지, 혹자는 저장강박증
'호더(hoader)'의 사무실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 역시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에 신선한 자극받으며 다 읽고
책장을 덮으려다가, 맨 마지막 장에 실린 이서진 교수 연구실 사진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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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진 교수 연구실 사진 (출처: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 ![]() 얼핏 '카이오스의 물리학 공간'처럼 보일지라도, 이서진 교수는 6개월마다 정기적으로 연구실 대청소를 꼭 한다고 한다. 물론,
'청소시간'인 동시에 '대발견'의 시간인지라 청소가 지연되기는 한다지만. 그도 그럴 것이 작가는 좀체 물건을 버리지 못한다. 아니, 애당초
물건을 그냥 구하지도 않는다. 한눈에 바로 '필이 오는' 물건들을 구해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서진의 애용품으로 고이 길들인다. 튀니지에서
올리브 나무를 깎아 만든 사자 한 쌍 중 암사자 조각만 사 왔다가, 그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수사자를 사 왔다는 일화가 이서진 교수 특유의
애니미즘을 보여준다.
* ![]()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를 읽으며 이서진 교수의 연구실에
한 번 초대받아 보고 싶다는 상상을 했다. 그가 2000년도에 정영희 선생님께 선물 받았다는 마리아주 프레르 티를 '포루투갈
사나이 설탕그릇'에서 퍼낸 설탕을 곁들여, 모스크바에서 백화점에서 구입했다는 찻잔에 대접받아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귀국할 때, 이삿짐센터 아주머니에게 "혹시 식당 하셨어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정도로 그가 모으는 물건들은 먹고 마시는 것과 관련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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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한민국의 평균적 소시민에게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의 이기진처럼 "피로감이 물들 때면 아무도 몰래 프라리옹에" 가서 "과거를 잊고, 현재의 나를 찾으려 노력했고, 살아갈 날들에 대한 생각을 다시 다듬"을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사르딘 깡통에서 정어리를 꺼내먹는 프랑스 사람들의 곁눈질을 받아가면 한국서 공수해간 컵라면을 즐기며 알프스 등반할 중년의 한국 남자도 많지 않을 것이다. 서촌에 집을 사서 한옥을 수리하여 '창성동 실험실'이라는 실험적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기도 쉽지 않겠지? 그런데 이기진 교수는 다 해냈다. 조용조용, 차분차분 원하는 딴짓들을 하나씩 현실화 시켜왔다. 그렇다고 그가 경제력이 남다르거나 시간이 남아도는 것도 아닌 듯하다. 유명세나 돈을 바라고 딴짓하지도 않았고. 그는 단지 원하면 실천으로 옮기고, 남달리 엔티크한 감성으로 깊이 있게 생각해온 것 같다. 그래서 특별한 경제력이나, 시간의 무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는지도 모른다. 꿈꾸고 행동하면 가까워지리라! 무엇보다 남의 눈치 보지 말고! 교수 연구실에 개집을 들여놓으면 좀 어떠냐!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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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의 일상은 어떨까?" 철저한 과학적 사고로 무장한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라 !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인 이기진 교수의 연구실을 들여다 보면 온통 잡동사니로 꽉 차 있으니 여기가 물리학자의 연구실인지, 아니면 골동품상의 창고인지, 아니면 잡동사니 수집상의 방인지 모를 정도로 이상한 물건들로 들어차 있다.
손잡이가 깨진 하얀 도자기 포트, 목각인형, 연필깎기, 목각인형, 설탕 펜치, 개집, 여기저기 벗겨진 낡은 그릇, 실밥이 터진 야구공.... 이쯤 되면 '저장 강박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저분하게 널려 있는 물건들을 보면 정신이 없을 정도다. 그의 물건들은 그동안 국내외 벼룩시장 등에서 수집한 물건들인데, 그 물건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살펴보면 범상치 않은 물건들임을 알 수 있다.
오래된 물건들, 그 안에는 서로 다른 시간 여행의 축이 있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축이 만드는 타임캡슐 같은 공간이 존재한다. 25년 전, 아르메니아가 어떤 나라인지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때에 그곳의 연구소에서 일하게 되고,우연히 수집하게 된 설탕펜치. 일본에서 함께 일하던 교수가 준 연필깎기, 그가 쓴 동화책인 <박치기 깎까>...
그의 물건들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아르메니아의 씨앗가게에서 우연히 발견한 낡은 그릇이다. 여기 저기 벗겨져서 쓰레기통에나 들어갈 이 그릇의 바닥에는 '압록강', ' MADE IN D.P.R. OF KOREA'라고 씌여 있다. 이 물건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의미있은 그릇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여기에 맥주를 따라 마시면 적격이라고 하니?.... 맥주잔 보다는 막걸리잔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이 그릇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것부터가 그의 생각과 행동은 '딴짓' 고수라 아니할 수 없다. 세상을 살아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있겠지만 그의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자꾸만 딴짓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같다.
그는 그르노블에서 열린 학회에 갔다가 우연히 알프스의 프라리옹에 오르게 된다. 그를 계기로 '내 인생은 프라리옹에 오르기 전과 후로 나뉜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프라리옹에 가서 뜨거운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그 이후에 생각을 가다듬고 싶으면 그곳을 찾곤 한다. 과거를 잊고 현재의 나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고 싶을 때에,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고 싶을 때에. 학교 운동장에서 발견해 주워 온 실밥이 터진 야구공, 이건 왜 주워 왔을까?
그의 어린날에는 아픈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에 수업시간에 책을 읽게 되었는데 더듬더듬 읽다가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고 그 충격으로 학교를 그만둔다. 그것이 그에게 다른 사람들과 다른 길을 걷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후에 야구에 빠져 지낸 적이 있는데, 실밥이 터진 야구공은 그의 어린시절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할 수 있는 감정이입의 수단이라 할 수 있기에 그에게는 소중한 물건이다. 그의 연구실 한 편에 놓인 용마루가 있는 개집. 연구실에 왜 개집이 놓여 있을까? ![]() 이 책의 4장 할머니의 골동부엌에서는 주방용품이 소개된다. 야채 수프용 국자, 레몬 & 오렌지즙짜는 기구, 제빵 방망이, 도시락용 유리그릇, 도자기 냄비, 달걀 자르기용 도구, 샐러드 탈수기....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수집한 많은 물건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그것들에 대한 의미 부여에 집중해서 책을 읽게 되었지만 그의 생활 패턴도 범상치는 않다. 그에게는 두 딸이 있는데, 큰 딸인 채린은 투애니원의 '씨엘'이다. '씨엘'을 보면 그 아버지를 알 수 있다고 하니, 개성 넘치는 '씨엘'에 주목하라.
물리학자가 쓴 책 답게 책 속의 이곳 저곳에는 물리학 이론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학창시절 어렵게만 생각했던 물리학도 그의 글을 통해서 읽으니 이해하기 쉽고 흥미롭게 설명해 준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당당하게 하는 그의 모습을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은 만날 수 있다. 무엇엔가 몰입하면 거기에 집중하는 물리학자의 삶의 모습을 이 책을 통해서 마날 수 있다.
재미난 딴짓을 하는 물리학자 이기진은, " 하나만 하고 살기엔 인생은 너무나 짧다. 하나만 하다. 죽기엔 인생은 너무나 길다" ( 책 속의 글 중에서)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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