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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목차만 보면 인터넷이나 성인잡지에 떠도는 내용을 모아놓은 잡서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볼 만한 내용이 많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책에서 읽은 것을 일부 실천에 옮겨서 꽤 효과를 봤기 때문에 내게는 반드시 필요한 책이 되었다. 다만 좀 믿기지 않거나 한 내용도 있으므로 좀 가려서 보아야 할 듯 하다. 그리고 아쉬운 점은 상세한 그림이 곁들여져 있었다면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인데 그게 없다는 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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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생활에 정말 필요한 내용인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런 내용을 드러내놓으면 안 되는 것이라는 인식 때문인지 여러 책을 검색해보아도 만족할 만한 내용들이 아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속 시원히 공부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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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을 맞이하면서...........
선조의 열화같던 그 3월의 함성을 되새기는 의미에서 ............ 롯시니 최후의 오페라 <윌리암 텔>의 작품중에서의 민중의 용기란 무엇인가? 라는 내용을 가지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작품은 독일의 문호 실러가 죽기 직전 완성시킨 희곡을 바탕으로 만들어 진 것입니다.
수많은 민중이 한두 사람의 독재자에게 순응하는 것은 우리에게 도 시대적으로 그다지 낯선 일이 아닙니다. 물론 민중은 내심 분노하고 당혹감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체념 하고 회피하며 하루하루를 무력하게 살아갑니다. 이때 느끼는 무력감은 분노의 또다른 형태지만 그 분노가 행동으 로 표출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시대적으로 용기있는 항거자가 나와 기폭제가 되어주기 전에는............ 또한 그 이면에는 아무리 조국이 적에 의해 지배당하고 냉혹무 도한 통치자에 의해 고통을 받아도 그것이 자기 피부에 와 닿지 않는 한, 자기와 자기 가족 문제가 되지 않는 그 현실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의 심리가 숨어 있습니다. 생존의 본능이 우선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인생의 역경을 이겨나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극복 아니면 회피하는 것입니다.
사람도 동물인지라 결국 궁극적인 인생문제의 해결 방법은 동물 과 다름이 없습니다. 동물들은 자기보다 큰 동물을 만나면 도망갑니다. 회피하는 것이죠. 자기보다 작은 동물은 잡아 먹습니다.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아무튼 나름대로 극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만만한 인생이란 거의 없으므로 우리 인간은 흔히 회피의 기전을 택합니다. 회피는 쉽지만 그대신 죄책감을 동반합니다. 이 죄책감은 다시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킨 상대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고 이 억압된 분노를 표출할 기회가 주어지면 그것은 걷잡을 수 없는 압력으로 터져나오기도 합니다. 독재에 순응하는 것 같던 민중이 봉기할 때 그 정도가 강해지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윌리암 텔 외에 다른 마을 사람들, 마을의 장로 멜크탈의 아들 아로놀도를 포함해, 그들은 처음에는 묵묵히 독재를 견뎌 나갑니다. 두렵기 때문입니다. 자칫 달려들었다가 그나마 가지고 있는 생존의 기본요소들을 잃 을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가장 나약한 인간의 상징인 양치기 로이롤드가 여기에 불을 당깁니다. 양치기라면 자연과 더불어 사는, 가장 순응하는 인간상의 상징 입니다. 그런 그가 딸이 폭군 게슬러의 부하에게 폭행을 당하자 그 범 인을 살해하고 맙니다. 상처입은 동물이 포효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를 추적한 게슬러의 부하들이 장로 멜크탈을 죽이고 마을에도 불을 지르자 그동안 두려움과 불안, 생존의 본능에 숨죽이고 있던 마을사람들이 마침내 분노합니다. 그리고 싸울 것을 맹세합니다. 그동안의 죄책감과 분노를 승화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폭발한 것입니다. 허약한 지식인의 상징으로 나오는 아로놀도, 그는 국가보다는 자 신의 사랑이 이루어지는가의 여부로 고민합니다. 사랑의 고민 앞에서는 아버지의 민중에 대한 고통, 나라의 존폐 여부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야 그는 사랑보다 국가를 택합니 다.자신과 관계있는 부분에 관해서만 행동하는 사람들의 전형을 보여준다 할까요. 멜크탈의 죽음은 아들뿐 아니라 민중들에게도 더불어 사는 삶으 로 나가는 용기의 기폭제가 되어 줍니다. 이때 그들이 보여주는 용기야 말로 분노의 승화였던 것입니다. 또다른 용기와 믿음을 볼수 있는데 그것이 우리가 흔히 알고있 는 내용인 <윌리암 텔>의 사과 이야기죠 스위스의 전설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윌리암 텔과 그의 아들 제미에 관한 부모 자식간의 용기와 믿음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 다. 그 당시 마을 사람들은 게슬러의 모자에 경배를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윌리암 텔과 제미는 모자에 경배를 하지 않고 지나가다 가 들켜 붙잡히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게슬러는 윌리암 텔에게 아들의 머리 위에 사과를 올려놓고 활 을 쏘아 맞히라고 명령합니다. 아무리 용기있는 윌리암 텔이지만 차마 사랑하는 아들의 목숨 을 담보로 용기를 시험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차라리 게슬러 앞에서 무릎을 꿇겠노라고 합니다. 자식을 위해서는 자신의 자존심도 버리는 아버지, 그러나 그를 격려하는 것은 바로 아들 제미입니다. 제미에게 아버지는 신과 같은 존재입니다. 너그러운 사랑과 더불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잇는 전지전능한 힘 을 가졌다고 믿는것입니다. 아버지를 믿어 의심치 않는 아들의 모습, 이것은 곧 아이들이 태어날 때 부모에게 가지는 절대적인 믿음에서 기인합니다. 그 믿음이 제대로 잘 자라주면 아이들은 부모에게서 점차 그 믿음을 넓혀 나가 다른 사람을 믿고 세상을 믿게 됩니다. 그러나 행여 부모 자식 사이에 그 믿음이 자라지 못하고 대신 불신이 자리잡게 되면 그는 세상과 타인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런 불신의 골을 심어준 부모를 미워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부모에 대한 미움과 분노의 감정은 다시 죄책감을 불러일 으키고, 그것이 자라나 인간과 세상에 대해 애증이라는 이중의 감정을 갖는 원인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미는 아버지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냄으로써 가장 바람직한 부모자녀 관계를 보여주고 잇습니다. 자식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받는 것보다 부모에게 더 큰 행복은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 자식 사이도 서로 상호적인 것이라 그것이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먼저 부모쪽에서 그런 신뢰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윌리암 텔은 용기와 더불어 부모로서의 현명함을 두루 갖추고 있는 인물입니다. 남편과 아들에 대해 전폭적인 믿음을 갖고 있기는 그의 아내 에드비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미가 결정적인 순간 현명하게 대처하고, 아버지의 특기가 무엇 인지 잘알고 활과 화살을 준비해 위험한 순간 아버지를 돕는것 도 그런 부모와 가정 속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가능했던것입니다. 윌리암 텔 부자가 보여주는 용기와 신뢰, 현명함이야말로 그 당시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후대에까지 널리 전해져 내려 와 전설이 되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 진정한 용기란 그리고 진정한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한번쯤 생각해 보며 이 어렵고 각박한 세상을 서로 인식하며 살아가지 않으시려는지요? 두서없는 소견을 올려 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