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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고위 관리인 남편 알렉산드로비치(랄프 리차드슨)과 아들 세르게이와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던 안나(비비안 리)는 행복한지를 못느끼는 여인이었다. 비록 나이 차이가 많고 일밖에는 모르는 남편이지만 안나에게 부족하게 해준것은 없다. 그저 한눈 팔지 않고 일과 가족만을 생각하는 전형적으로 가부장적인 한 남편일 뿐이었다. 그런것들이 그녀에게는 행복이 아니라 무료함을 주었는가 보다.
오빠의 외도 때문에 오빠부부를 중재하러 갔다가 브론스키(키에론 무어)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어 엇갈린 사랑에 빠지게 된다. 오빠의 처제인 키티는 농장주 레빈의 청혼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브론스키만을 고대하며 짝사랑를 해왔것만 한순간에 안나에게 빼앗겨 버린다. 이를 감지한 안나는 서둘러 페테스부르그로 돌아가려 열차를 탔지만 브론스키는 안나와의 사랑을 얻으려고 무모하게 그녀를 쫓는다. 급수를 위해 잠시 세운 글린역에서 브론스키의 사랑을 확인하기도 했지만 역무원의 기차바퀴를 때리는 소리와 그의 얼굴이 그녀의 뇌리에 박히고 만다.
이미 모스크바의 오페라에 찾아갔다가 안나와 브론스키의 밀담을 나누는 모습을 보고 석연치 안은 구석이 있었지만 모른채 해준다. 하지만 집에 온뒤로도 그들의 애정행각은 멈출줄 모르고 계속 된다. 경마장에서 브론스키가 말에서 떨어지자 보여준 안나의 지나친 반응으로 그녀의 마음을 충분히 읽을수 있었던 알렉산드로비치는 돌아오는 마차속에서 결국 안나에게서 브론스키를 사랑한다는 고백을 듣게 된다.
즉시 알렉산드로비치는 아들을 데리고 모스크바로 떠나고 이혼준비를 서두르게 된다. 안나는 남편이 떠난뒤 브론스키의 아이를 갖게 되지만 곧바로 사산하게되고 이런저런 마음고생으로 몸져 눕게 된다.거의 죽을지경이 되자 편지를 통해 남편을 불러 용서를 빈다. 남편은 브론스키에게 이혼을 준비중이었고 함편으로는 아내가 죽기를 바랬었지만 보는 순간 모든것을 용서하게 되었다고 전하자 브론스키는 크게 절망하여 권총자살을 기도 하지만 실패하게 된다. 하지만 병세가 호전되자 애정행각 마저 회복되는게 아닌가.남편이 아들을 데리고 키트와 레빈의 결혼식에 간사이에 결국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사랑의 도피여행을 떠나고 만다. 아~ 이것은 아닌데.. 남편이 기껏 용서해주고 살려주었더니만 이게 무슨 황당한 일인가...
실컷 사랑을 즐긴 두 사람은 페테르스부르크로 돌아오지만 주위의 시선은 이미 냉랭해졌고 입방아의 좋은 재료가 되었다. 알렉산드로비치는 아들에게는 엄마가 죽었다고 하고 절대 만나지도 못하게 한다. 그리고 이혼도 해주지 않으므로써 두사람이 결혼도 못하게 한다. 안나는 세간의 멸시와 브론스키와의 잦은 다툼으로 인해 괴로워한다. 거기에다가 브론스키의 어머니가 소로키나공부와 결혼시키려한다는 소식마저 듣게된다. 브론스키가 오지 말라는 오페라에 기어이 가서는 사람들에게 수모를 당하고 브론스키와 어머니, 소로키나공주가 함께 있는것을 보고는 결국 두 사람은 큰 싸움을 하고 돌아서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후 페테르스부르크에 며칠 다녀오겠다는 편지를 보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것이라는 망상에 빠져 서둘러 브론스키를 쫓아 기차역으로 달려간다. 달리던 기차가 지난번처럼 급수를 하기 위해 글린역에 도착하자 또 바람을 쐬러 나간다. 지난번 그 노인역무원을 만나게 되고 그의 쇠망치 소리를 듣는다. 여기까지 쫓아와 사랑을 고백하던 브론스키의 추억을 떠올리며 사랑의 부질없음을 한탄한다. 그리고 열차 앞으로 걸어 들어간다.
영혼의 불꽃은 그녀 자신도 예상치 못한 인생의 한켠을 환하게 밝혔다. 그 불꽃은 차츰 명멸해 가더니 급기야 영원한 암흑만을 남겼다.(엔딩 자막)
35년판과는 같은 원작이니만큼 거의 비슷하지만 중간에 안나가 남편이 없는 사이에 브론스키의 아이를 사산하고 남편에게 용서를 빌고도 다시 애정행각을 펼치는 모습은 이 작품에서만 나온다. 그런면에서 보면 전작이 불륜을 나누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아한 사랑으로 남았지만 이 작품은 두번이나 배신함으로써 안나를 더 추하고 저돌적인 여인으로 묘사하는것 같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작품을 비교할때 전작이 더 낫다고 평하면서도 톨스토이가 정작 그려낸 안나는 비비안리가 더 가깝다고도 한다. 그리고 어찌된일인지 같은 흑백이면서도 전작이 훨씬 화질이 뛰어나고 이 작품이 오히려 더 오래전에 만든듯한 느낌이 들정도로 전체적인 화질이 더 어둡고 비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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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1935년도 그레타 가르보 주연의 작품보다 화질이 떨어진다. 아마도 그것보다더 어둡고 비극적인 느낌이 강렬해서 일까?
작품은 그 유명한 첫문장 (가장 유명한 첫문장들)으로 시작한다. 책의 첫페이지를 보여주듯.
All happy families are alike; every unhappy family is unhappy in its own way. 모든 행복한 가정은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들은 다 다른 모습으로 불행하다.
그건 아마도 1935년도 작품보다 원작에 충실하고자 하는 바람의 표시였을까? 여하간, 그냥 지나가는 인물들로 전락한 레빈과 키티의 모습이 절절하다. 그리고 1938년도의 작품 속 의상이나 인물들, 배경들이 화사한것과 달리, 등장인물들은 매우 러시아적이고 좀 더 리얼한 느낌을 준다. 거기에 좀 못마땅한것은 넘 주연여배우에게 신경을 쓴게 티가 나는데. 의상부터 배경부터 비비안 리의 모든 것은, 비슷한 지위의 다른 인물들보다 훠얼씬 더 대단하다.
비비안 리의 안나는, 자꾸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에 가려져있다. 그녀의 입꼬리를 올리는 표정은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드려는 안나의 겸손이 아니라 스칼렛의 요염함으로 비춰지고, 아, 시대고증 완벽한 드레스이지만 [바람...]의 한장면처럼 너무 허리가 잘록해 자꾸만 시선을 끌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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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도엔 차갑고 체지방율이 0% 정도로 보이는 남편과 기름기많고 삐딱한 애인의 대조를 보여주었다면, 여기선 외모의 수준이 확연하다. 하지만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의 묘사는 원작에 더 가까운듯 마음에 든다. 그녀는 맨처음부터 블론스키에게 끌린다. 그건 나중에 코가 빨개서 글쎄, 개로 치자면 믹스견같은 (^^:;;;;) 남편을 보니 화악! 이해가 된다. 다정한듯 하나, 너무너무너무 무심한 남편에게 그녀는 자꾸만 자신을 다잡으려하지만 그는 너무 무심하고, 블론스키는 정말 듣기좋은 말로 그녀를 확 잡아버린다. 사랑도 제대로 못하고 결혼한 그녀인데.. 글쎄, 아들에게 애정있어 보이지 않는 비비안 리이지만, 이 연기는 매우 뛰어나다. 음, 아마도 사생활에서도 그래서 그런걸까? 그나저나, 친구인 모린 오설리반이 1935년에 키티로 잠깐 나왔지만 자기는 타이틀롤을 확 장악해서 기분이 어땠을까?
그건 그렇고, 난 원작부터 안나에게 대해 호감을 가지지 못했는데, 꼭 뭐, 조아라하는 비비안 리가 연기해서 그런건 아니지만, 뭐랄까 안나에 대해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사랑없는 결혼, 애인의 변심 등도 그렇지만, 일거수 일투속을 타인들의 입방아 위에 올라야하는 모습도 더욱 눈에 띄고. 다른 것을 다 벗어나 자기혼자만으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살아갈 수 없었던 운명의 손길이 느껴지는듯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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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성급히 안나에 대해 생각했나 하는 생각에, 다시 읽고싶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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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고전 중에서 유난히 자주 영화로 리메이크 된 작품이 있다. 최근에는 키이라 나이틀리가 타이틀 롤을 맡은 작품으로 개봉 중인 '안나 까레니나',이 작품이 이렇게 자주 영화화 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캐릭터나 갈등이 극적이고 대중들의 관심을 끌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시대를 초월한 사랑의 열정이나 사랑의 속성, 기혼자의 외도를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비난하는 사회의 시선을 담고 있다.
유력한 정치가 알렉세이의 아내인 안나는 오빠 부부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가는 길에 브론스키를 만난다. 브론스키는 한눈에 안나에게 반하고 그에게 열정적으로 접근해오고 안나도 그의 매력에 빠져들어간다. 하지만 이내 두 사람의 사랑은 사람들의 입에 올라, 안나의 남편은 그녀에게 이혼을 선언하게 되는데..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사랑에 불안을 느껴 그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이 둘의 사랑은 다시 불타오르고, 집을 떠나 베니스에서 동거하며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데.. 남편 알렉세이는 안나가 아들을 양육하게 해달라는 요청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아들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가 하면 이혼에도 응해주지 않았다. 자신의 명성에 금이 가게 만든 안나에 대한 괘씸한 마음과 배신감에 치를 떨며 그 나름으로 복수를 감행한 것이다. 요즘에는 외도하고 떠난 배우자를 쿨하게 행복을 빌어주는 작품도 더러 있다. 머리로는 배우자의 외도에 대해 그런 대응이 멋지다는 생각이 들지만, 마음으로는 꼭 그렇지가 않았다. 도덕적 잣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시선을 갖고 있다. "배신당한 남자에게 자존심은 없다"는 남편의 대사처럼 남편의 배신감에 충분히 공감이 됐다. 안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조여간 남편을 비난할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면 남편의 마음은 풀리겠지만 한동안은 남편의 분노가 폭발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안나도 그런 분노를 달게 수하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딱하게 된 것은 안나였다. 이혼이 되지 않으니 브론스키와 정식 결혼은 이루어질 수가 없었고, 브론스키와 함께 지낼수록 두 사람 사이도 전같지 않다. 삐그덕거리며 틈이 벌어지고, 그럴수록 안나는 불안한 마음에 브론스키에게 더 집착하게 된다. 가정과 아들, 정치가 아내로서의 명성을 모두 포기하고 선택한 사랑인데다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까지 겹치며 브론스키의 사랑밖에 남지않은 안나로서는 그에게 매달리게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안해 하는 안나를 브론스키는 안나에게 굳건한 믿음을 주지 못했다. 안나에 대한 뜨거운 열정도 사라지고 나니 이런 안나가 부담스러워졌던 것이다. 집안의 반대나, 사회적으로 나쁜 평판은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원하는 그를 압박해왔다. 그 역시 흔들리며 어머니가 소개해주는 여자를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알다시피 파국을 향해 치닫게 되는데..
불륜이라고 손가락질 받았던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은 비극적인 결말을 보여주고 있다. 한눈에 반해서 늪처럼 서로에게 빠져들어갔던 두 사람, 그들의 사랑은 세속적으로는 불륜이었기에 두사람은 사람들에게 수군거림의 대상이었고, 따돌림을 당했는데 안나에게는 더 심했다. 어느 사회든지 법적 제도적인 결혼으로 맺어진 배우자는 당당하고, 그렇지 않은 혼외의 사랑은 비난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안정적인 가정생활이 깨질 것도,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것도 알면서도 서로를 간절하게 원하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열정, 그 감정의 연소는 함께 하는 시간이 오래 되면서 무뎌져갔다. 그렇게 열정은 연소돼갔고 그들은 현실적인 반응들을 체감하게 된 것이다. 브론스키에게는 안나가 부담으로 다가왔고 사랑에 올인했던 안나는 그럴수록 브론스키의 사랑에 기댈 수 밖에 없었다. 이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해도 브론스키는 돌아갈 곳이 있었지만, 안나는 돌아갈 곳이 없이 낭떠러지로 몰린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토록 애지중지했던 아들도 만나지 못하게 됐고, 불륜녀 혹은 정부, 내연녀라는 주홍글씨를 평생 새기고 살아가게 될 안나, 궁지에 몰릴 대로 몰린 안나를 브론스키는 잡아주지 않았다. 안나를 두고 유산 문제를 처리하고 돌아오겠다면 집으로 가버리고 절망에 사로잡힌 안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마는데.. 과연 브론스키는 다시 돌아왔을까.
'안나 까레니나'는 사랑에 올인하면 모든 것이 행복해지는 해피 앤딩 드라마의 결말이 아닌 낭만적인 사랑의 비극을 보여준다. 사랑해서 행복했던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인해 불행으로 치닫는 삶도 있다는 것을, 아니 사회가 용인하지 않는 사랑이 얼마나 가혹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극중 대사에서도 나오듯 잠시 즐기는 가벼운 사랑은 관계없지만 깊이 빠져드는 사랑은 위험하다는 것, 안나가 사회관습을 거스르지 않는 범위에서 브론스키를 만났나면 그녀는 비극적 결말을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활활 타오르는 사랑의 열정과 차갑게 식어버리는 변심도 있다는 것, 그렇기에 올인한 사랑은 자칫하면 자신을 파괴하기도 한다는 것, '안나 까레니나'는 그렇게 행복하게 하고, 불행하게도 만드는 사랑의 열정과 속성을 파고 들어간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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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리는 비련의 여성을 연기할 때도 그 특유의 앙칼진 매력에서 오는 예민하고 섬세하고 곧 깨어질 것 같은 유리를 보는 듯한 불안한 아름다움이 있는 배우죠. 그녀의 매력이 가장 잘 표현된 영화로는 아마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꼽힐 테지만 제가 말한 그녀의 아름다움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영화는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일 겁니다. 그런데 이 두 편의 영화가 너무 강렬해서 그렇지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버릴 영화가 없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알려진 이름에 비해 편수가 매우 적은 배우입니다. 그녀의 전성기 때 한 평론가는 이러한 찬사를 바쳤다고 하죠. "비비안 리와 같은 외모를 지닌 배우라면 연기력은 필요 없을 것이며, 비비안 리와 같은 연기력을 지닌 배우라면 외모는 따지지 않을 것이다." 그녀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것은 영화였지만 정작 그녀는 연극에 더 큰 열정을 품고 있었고, (그녀의 필모가 적은 것은 그 영향이 크죠) 영국에서 셰익스피어극의 계승자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위치를 점유한 남편 로렌스 올리비에는 애증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원래도 조울증과 강박증이 있었지만 <시저와 클레오파트라>를 찍으면서 유산한 뒤로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고, 말년에는 남편과도 불화 끝에 이혼하고 쓸쓸하게 죽음을 맞았지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신데렐라처럼 할리우드 데뷔를 이룬 뒤로 40년대는 그녀에게 영화인생의 전성기가 되는데요, 그녀의 40년대 영화 중에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역시 <안나 카레니나>입니다. <애수>를 지배하는 그녀 특유의 연약한 아름다움이나, 카메라조차 그녀를 사모하는 듯한 <레이디 해밀턴>은 클로즈업 장면마다 한번씩 숨을 쉬는 것을 잊어버리게 되지만, 그래도 <안나 카레니나>의 아름다움에 비할 것은 못 됩니다. 안나 카레니나 하면 연관검색어처럼 떠올리게 되는 다른 이름, 27년에 무성영화에서 주역을 하고 나서 35년작에서 같은 인물을 연기하며 후대의 여배우들에게 넘을 수 없는 산처럼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 그레타 가르보가 있긴 하지만, 그리고 어떤 평자들은 그레타 가르보의 영화를 더 낫다고 평하기도 합니다만, 톨스토이가 그려낸 연약하면서도 저돌적인 안나를 가장 근접하게 표현한 배우는 비비안 리라고 생각합니다. 키라 나이틀리가 새로운 안나로 도전장을 내긴 했지만 아마 저의 이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 같아요. 영화 <안나 카레니나>의 주요 장면들을 편집한 뮤직비디오. 비비안 리의 주요 필모를 다 모아놓은 편집영상도 있군요. 상대적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애수가 많아 안나의 비중이 크지 않은 건 안타깝지만 장면 장면이 다 주옥 같습니다.
그레타 가르보의 35년작 첫 장면. 브론스키가 한눈에 넋을 잃고 마는 건 미모보다도 가르보의 포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가르보의 압도적인 장악력하에 있는 영화인데, 제가 생각하는 안나의 상과는 다르지만 가르보의 매력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영화인 건 틀림없지요. <러브>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던 27년 무성영화. 좀 더 젊고, 그런데도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신비함을 뿜어내고 있지만 (그녀의 실제 나이를 생각한다면 20대 초반의 신인 여배우에게 어떻게 이런 분위기가 가능한지!) 아직 프레데릭 마치를 매혹시킨 35년작의 매력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 같아요. 하지만 언제 이 작품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좋겠네요. 소피 마르소도 아름다웠지만 영화는 좀 평범한 멜로드라마였죠. 키라 나이틀리와 조 라이트의 재회 못지않게, 주드 로의 카레닌이 궁금한 신작은 어떤 모습일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