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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것' 혹은 동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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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글 쓰는 게 직업이라 떠벌린 덕에 이따금 뜻밖의 자리에서 원고청탁을 받곤 한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한가지다. '내가 과연 그런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얼마전 임 신부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 느닷없이 원고청탁을 받았다. "저희 나눔의 집에서 발행하는 '선한 마음의 창고' 소식지가 있는데 거기에 원고를 좀 써주시죠." 그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과연 나 같은 사람이
"'네가 그것' 혹은 동일시" 내용보기
평소 글 쓰는 게 직업이라 떠벌린 덕에 이따금 뜻밖의 자리에서 원고청탁을 받곤 한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한가지다. '내가 과연 그런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얼마전 임 신부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 느닷없이 원고청탁을 받았다. "저희 나눔의 집에서 발행하는 '선한 마음의 창고' 소식지가 있는데 거기에 원고를 좀 써주시죠." 그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과연 나 같은 사람이 그런 곳에 글을 올릴 자격이 되는 걸까?'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지만 글이 써지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이 엄청난 부담의 정체가 대체 뭘까?' 생뚱맞은 생각에 사로잡혀 고민하던 끝에 문득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 일단 부담을 터는 거야. 애초부터 좋은 일만 하며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앞으로 착하게 살면 되지. 대신 솔직 담백한 글을 쓰자." 나는 고등학교 과정을 야학(夜學)에서 보냈다. 야학이라 하면 으레 가난한 사람들을 떠올리게 마련일 터. 맞다. 그 시절 난 가난했다. 그렇다고 삶 자체가 가난했던 건 아니었다. 비록 야학 출신이었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검정고시도 합격하고, 괜찮다는 대학에도 들어갔고, 대학시절엔 야학 교사하느라 저녁시간을 죄다 바치기도 했다. 요즘 학생들은 잠시잠깐 뭔가 했다하면 으레 '봉사'라는 말을 붙이곤 한다. 부모님 도와드린 건 가사봉사, 동생 공부 봐주는 건 과외봉사, 심지어 아르바이트로 야경순찰 나선 것조차 치안봉사라는 말로 부른다고 한다. 내 생각에 그런 것들은 봉사와는 거리가 먼일이다. 하물며 진짜 봉사라 해도 거기엔 확실한 대가가 따르게 마련이니 대가 없는 봉사라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최소한 자기만족이라는 대가는 돌아올 테니 말이다. 최근 읽은 책 《네가 바로 그것이다》에 무척 흥미로운 구절이 있다. 20세기 최고의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유고문집인 이 책의 서문에 "Tat tvam asi"라는 산스크리트어가 나온다. 번역하면 "네가 그것이다"이고, 이게 캠벨의 세계관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라고 한다. 캠벨은 <도덕의 기초>에 나오는 쇼펜하우어의 질문을 좋아했다. "어떻게 나의 고통도, 내가 관심을 갖는 사람의 고통도 아닌 남의 고통을 보고 마치 그것이 나 자신의 고통인 양, 즉각 몸을 던져서 행동하는 것이 가능한가.(중략) 이는 참으로 신비스러운 일이며,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쇼펜하우어는 "네가 그것"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형이상학적 깨달음이 섬광처럼 지나간 결과라고 했고, 캠벨 역시 그것을 자신의 답으로 삼았다. 쇼펜하우어는 계속해서 이 근원적 통찰은 "나의 참된 내적 존재가 모든 살아있는 피조물들 안에 실제로 존재하며...[그리고]...그것이 자비(Compassion 함께 고통받음)의 근거로서 모든 참되고 이타적인 덕이 여기에 기초하고, 모든 선행에서 바로 이 자비가 표현된다"고 설명한다. 캠벨은 쇼펜하우어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그가 평생동안 연구했던 다양한 신화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영성의 상징으로서 이 영적 통찰인 "Tat tvam asi"를 들면서 이것을 곧 "네가 바로 그것이다"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나는 예수님의 역사가 여기서 출발하고 있다고 믿는다. 인류의 온갖 부조리를 알고 계시면서도 종래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 몸소 고난의 역경을 감내하신 그 자비의 정신 속에 깊이 들어있던 것은 다름 아닌 "네가 바로 그것이다"가 아니었을까. 'Tat tvam asi'. 나는 캠벨의 말을 통해 오랫동안 간직했던 화두 하나를 풀게 되었다. 사람들이 가난하고 헐벗은 이웃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순간적인 동정 때문이 아니며, 그것은 대상과의 동일시 때문이었던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 수영도 못하는 사람이 덮어놓고 물에 뛰어드는 건 이 말이 아니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동일시 혹은 '네가 그것'이야말로 인간 본연의 심성인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는 일, 그것을 굳이 봉사라는 말로 묶지 말자. 대신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의 일이요, 내 삶의 의미라는 마음으로 살아보자. 그게 바로 가장 인간답게 사는 삶이기 때문이다. 오늘 새벽에도 임 신부님은 노숙인들의 건강과 허기를 돌보고 그들의 절망감을 다독이기 위해 서울로 향하셨을 것이다. 추운 새벽 서울로 향하시는 임 신부님께 이 졸고를 보내는 마음 송연할 따름이다.
y****y 2005.03.29. 신고 공감 8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