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슨 까닭인지 급히 번역한 티가 역력합니다. '황금가지 '출판사라면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민음사'와 관계회사인데, 오자와 탈자, 그리고 문장이 중간에 끊어지는 등 번역이나 교정이 제대로 되지 않고, 아주 무책임하게 책을 내놨더군요. 장정이나 종이 등은 번드르한데... 심지어는 같은 인명조차 페이자마다 다르게 표기되어 잇으니... 평소 관심이 있던 등소평 평전이라 목차만 보고 샀는데, 다 읽고 난 뒤의 느낌은 환불하고 싶다는 것... 원전 자체도 '평전'이라는 이름에는 걸맞지 않게 등소평의 권력성취와 공식적인 면모만 부각되어 잇을 뿐,인간적인 면모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평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삭제되어 있는 것이죠. 책값 18,000원 무지 아깝습니다. 출판사에서 광고 엄청하고 언론 보도에만 신경 쓰는 것 같아 씁슬합니다. |
| 등소평(덩샤오핑은 아무래도 멀게 느껴진다)은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책을 들었다. 책을 읽고 난 지금, 내가 등소평을 개인적으로 알고 지냈다면 무척 싫어했을 것 같다. 그 자신의 신념보다 권력자의 비위 맞추기에 재능과 열정을 다하는 인물인 탓이다. 대장정에 참여해, 당시부터 중국 공산당의 중요 간부였다는 말은, 실상 뒤늦은 우상화의 일환이었을 뿐이다. 물론 대장정이 등소평 출세에 대단한 기회였던 것은 사실이다. 등소평이 모택동(역시나 마오쩌둥이라는 이름은 어색하다. 중국어를 배워야 이 버릇을 고치지 않을까 싶다)의 눈에 띄는 계기가 된 탓이다. 그 이후 등소평은 초고속 승진을 거듭한다. 그러나 그 승진은 모택동의 심중을 읽는 비상한 능력에서 비롯됐다. 즉 등소평은 전투에서 이겨서 유능한 것이 아니라, 모택동이 부대를 움직이고 싶은 방향으로 행군해서 유능했던 것이다. 모택동이 백화제방(百花齊放),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는 말로 사상 자유화를 표방한 적이 있다. 하지만 등소평은 여전히 눈치만 보고 특별한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등소평은 또한번 모택동의 속내를 제대로 읽었다. 바로 다음해에 모택동은 우익 척결에 나섰다. 사상 자유화 구호란 숨어있던 적들을 노출시키는 전략이었다. 대규모 숙청이 이어졌고, 한곳에 모아진 힘은 대기근을 야기한 대약진 운동의 추진력이 됐다. 3천만명이 3년만에 굶어 죽었다. 당시의 남한 인구가, 현재의 북한 인구보다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굶어 죽었다. 3년 만에. 대약진운동으로 모택동의 노선이 틀렸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을 때에도 등소평은 충성을 철회하지 않았다. 그 순간 권력에서 배제될 것이 분명해서였다."우리 당은 5 가지 좋은 점을 갖고 있다. 좋은 사상, 곧 마오쩌둥 사상, 좋은 당, 곧 마오 주석이 영도하는 본부, 좋은 지도자들, 좋은 전통과 양식 그리고 당에 충성하는 좋은 사람들이 그 다섯이다." 단 한 명의 지도자가 저지른 오판 때문에 3천만의 국민이 목숨을 잃은 1년 뒤에 입에 올릴 말은 아니지만, 등소평이 당시 공개석상에서 한 말이다. 그러나 마음이 확실히 돌아선 것은 분명했다. 바로 다섯 달 후에 등소평은 유명한 연설을 한다. "노란색이든 흰색이든 무슨 상관인가. 쥐를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다."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었다. 강청(장칭)에게 대든 것이었다. 모택동은 분명히 등소평을 아꼈지만, 아내의 등살에 시달리면서까지 등소평을 감싸줄 마음은 없었다. 더 중요한 사실은, 등소평의 심경 변화를 모택동이 이미 읽고 있었다는 점이다. "1959년부터 지금까지 덩은 어떤 문제에 관해서도 나를 찾아 상의한 적이 없다. 덩은 귀 먹은 벙어리다. 회의가 있을 때마다 그는 나에게서 멀리 떨어진 자리를 택했다. 그는 나를 존경하지만, 나와 거리를 두고 마치 죽은 조상님 대하듯 했다." 문화혁명이 한참이던 1966년 모택동이 직접 한 말이다. 등소평은 일단 살고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어떤 굴욕도 기꺼이 감내한다. 일말의 자존심도 남기지 않고, 후일 자기 말에 발목잡힐 일도 걱정하지 않는다. 문화혁명이 진행되던 당시, '자본주의자'냐는 홍위병의 질문에 등소평은 주저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정작 자본주의 노선을 이끌었던 유소기(류사오치)는 끝까지 부인한 것과 정반대다. 그러나 당장 목숨을 구걸했던 등소평은 살아남았고, 당당했던 유소기는 고문과 죽음을 당했다. 훗날 등소평이 권력을 잡은뒤에는, 혹시 발목을 잡을 수 있었던 발언과 행동은 모두 묻어버렸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권력을 향한 부나비. 경멸해 마지못할 인간이다. 게다가 무식하기까지 하다. 한평생 읽고 쓰기에는 관심이 없었다니 공부와는 어지간히 담 쌓았던 모양이다. 프랑스와 러시아에서 6년이나 살아놓고서도 불어와 노어 모두 한마디도 못했다니 말 다했다. 하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등소평은 그 어떤 중국 지도자보다도 당당하게 국제회의 연설에 임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150센티의 키라면, 웬만한 단상 위로 얼굴 내밀기도 버거웠을텐데 말이다. 한평생 중국 고전을 끼고 살았다는 모택동 역시도 말년에 문화혁명이라는 어이없는 짓거리를 펼친 대목을 생각해보면 공부와 통치(또는 정치)는 분명히 별개다. 하기야 권력이 없는 공부란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 4인방 가운데 주로 인민일보 사설을 통해 여론 조작에 앞장섰던 장춘차오(장춘교)과 야오원밍(요문원)은 모택동이 죽는 순간 몰락했다. "겉으로 보기에 전능한 것만 같은 그들의 붓끝도 언제나 마오의 살아있는 숨소리에 의존하고 있었"기에 "마오가 없으니 그들의 글도 힘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등소평은, 그러나, 역사에는 여전히 위대한 사람으로 남을듯 하다. 그 자신 최고권력자가 됐을 때, 한평생 숨겨온 신념을 남김없이 풀어낸 탓이다. 하긴 등소평에게 과연 신념이라는게 있기나 했는지도 의문이다. 실용주의란 원칙없는 원칙이라고 했던가. 젊은 날 등소평에게는 권력이 곧 신념이었다. 모택동이 진리였다. 막상 권력을 잡은 뒤에는 인민의 배를 불려주는 것이 지상과제였다. 그 결과 매년 두자릿수의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제국주의집단 미국에 물건을 팔아먹은 결과였다. 공산당 일당 독재를 하고 있으면서도 마르크스주의라는 원칙은 애당초 관심 밖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지난 세기의 사람들이다. 대단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다시 살아나서 오늘날 우리의 모든 문제를 풀어 줄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 역시 무식쟁이다운 말이지만, 옳은 말이다. 남한 땅에서는 아직 마르크스를 내놓고 공부할 수도 없었던 1983년, 등소평은 이미 마르크스주의를 버리고 있었다. 경제성장을 정치개혁과 더이상 분리할 수 없는 시점이 떠올랐을 때, 등소평의 당면과제는 체제수호였다. 그 결과가 천안문에서의 학살이었다. 타국의 비난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무엇이 급한 일인지 분명했다. "그들이 뭐라고 말하든, 어떻게 반응하든 상관 없었다. 어떤 제재를 가한 다 해도 겁나지 않았다. 이 상황을 타개하고 여전히 국가를 통제할 수만 있다면 그들은 내게 돌아오게 마련이니까." 그 결과는 확고했다. 그리고 그 자신도 예언할 수 있었다."마오 주석이 사망했다고 해서 하늘이 무너지지 않았고, 내가 죽어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그리고 세계가 나아갈 방향을 설정해 놓은 것이다. |
| 전에 몽고메리 원수의 '전쟁의 역사'란 책을 당시도 그랬지만 지금도 큰 돈인 36,000원을 주고 산 적이 있었는데, 영어를 번역한 냄새가 너무 나는데다, 역자가 군사부분에 지식이 별로 없었던지 문맥도 이상한 부분이 많았었다. 그 뒤로는 번역서는 거의 사보지 않았는데, 등소평은 아버지께서 관심을 갖고 계신 인물이라 추석 선물겸 해서 특별히 구입했다. 당연히 역자의 프로필을 먼저 살폈는데, 처음에는 홍콩의 언론에 칼럼을 기고하는 분이라고 해서 별로 기대를 안 했었다. 그런데 앞에 몇 장을 읽다보니 외국서적을 번역했다는 티가 전혀 안 나는 게 정말 글을 재미있게 옮겼다는 인상을 받게 됐다. 이 책은 원래 아버지께 드릴려고 샀는데, 아무래도 내가 먼저 읽어야 할 것 같다. |
| 덩샤오핑 평전!! 재미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근대사에 관한 일반적 지식이 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일본인이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읽을때 정치인들의 이름을 모르고 중요한 사건에 대해서 잘 모르면 '이게 무슨 소리야?'하듯이요... 중국의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투라던지 협약 등등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 백과사전이 좀 필요한 듯... 저자가 중국인들만 읽는다고 생각을 했던지 그런 부분을 잘 설명해 주지를 않았더군요.. 안그럼 중국 전문가들만 읽는다고 생각을 했던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 책에 정말이지 오타가 많습니다.. 제가 아직 다 읽지않았는데 찾아낸 오타만 20개 정도 됩니다. 교정에 신경을 좀 쓰시지.. |
| 많은 기대를 갖고 읽어본 책이지만, 생각보다는 별로라는 생각이 드는것은 왜일까? 아마도, 평전의 기본인 인간적인 면모에 대해서 그다지 언급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된다. 유년시절은 조금 박진감있게 그려져서 쉽게쉽게 읽히지만, 그 이후는, 그냥 순서대로 서술되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가 강변했듯이 지금까지 나온 덩샤오핑 평전중에서는 가장 정확한 내용인듯 하다.(그가 내놓은 자료를 보건데) 그러나, 그 이상은 아닌것 같다. 풍부하고 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했어도 연대표를 읽은 느낌이지 인간 덩샤오핑의 고뇌와 사상은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이 책을 다 읽은뒤, 갑자기 체게바라-매력적인 사람이라 각인된- 평전이 떠오르는것은 왜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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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책은 개혁 개방의 리더가 아닌 처세술의 달인 덩샤오핑을 잘 나타내 주고있는 내용 으로 구성되어있다.
덩샤오핑은 프랑스 유학 시절의 선배인 주은래와 교분을 가지고 있었으나 강력한 카리스마의 지도자 모태동을 만남으로 해서 부드러운 성격의 주은래 보다 강력한 모택동에게 자신의 미래를 걸고 모택동의 의견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 주지만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3천만의 인구가 굶어죽는 모습을 보고 모택동의 사상에 회의를 나타낸다.
그후 많은 위험속에서 살아온 덩은 모택동 사후 권력을 장악하고 모택동의 사상에서 한단계 진화한 자신만의 사상인 실용주의의 모습을 들어내고 중국 시장에 개혁 개방의물결을 가지고온다.
덩이 중국에 개혁 개방의 물결을 가지고 올수 있었던 이유를 저자는 공산주의자가 아닌 정치가이자 실용주의자인 덩샤오핑의 모습에서 찾고있다. [인상깊은구절] 사회주의 교육 이라고 ? 교육에 참여하는 인민들을 먼저 잘 먹여서 굶주리지 않게 해주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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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미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이었지만 2008년 12월 18일 중국의 개혁개방 30주년을 맞아 다시 한 번 펼쳐들었다. 위대한 거인 덩샤오핑의 업적을 홀로 기념하고자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이 소모적이고 낭비적인 당쟁에서 벗어나 그의 발자취를 더듬어 대한민국을 보다 생산성 높은 강소국으로 만들어 주기를 바라는 기원도 함께 했다.
이 책은 중국의 관변사가들의 사관과는 확실히 시각을 달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방 사가들의 무조건 적인 반중국/반공산당적인 시각과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역사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으로서 저자가 주장하는 일부 새로운 주장들이 얼마나 학계의 인정을 받는 부분인지, 혹은 얼마나 정확한지 여부는 판단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나, 중국 현대 공산당사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인 논리의 방향이 크게 틀리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중국공산당사를 총체적으로 훑고 있지만 그 시선을 절대로 덩샤오핑에서 떼지 않는다. 따라서 여러가지 중국 현대사의 사건들이 당시 덩샤오핑의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졌으며, 어떻게 처리되어갔는지를 날카롭게 짚어내고 있다.
본론으로 돌아가 덩샤오핑에 대해 논하자면, 그는 중국공산당의 총서기였지만 철저한 공산주의자라고 볼 수는 없다. 또한 그는 중국 인민해방군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지만, 그는 훌륭한 군인도, 훌륭한 전략가도 아니었다. 그는 도탄에 빠진 중국을 일으켜세워 백년 이백년을 구가할 번영의 길로 중국을 이끌었지만 그는 결코 세상이 말하는 것 처럼 그가 경제에 대한 이해가 깊어 중국의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시장경제 이론을 정립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지주 아들의 신분으로 보다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프랑스행 배에 몸을 실었고, 그곳에서 중국 공산당 청년조직인 중국청년동맹에서 잡지 편집일을 담당한다. 다분히 사상적 고무에서라기 보다는 중국청년동맹은 당시 프랑스에 있던 중국 유학생들 조직이었고, 덩샤오핑이 나이가 비교적 어렸으며, 현학적인 말투로 세상을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전형적인 운동권 학생 생활에 재미가 들렸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다가 조직은 프랑스 당국에 쫒기는 입장이되고, 소련으로 피신해서야 공산주의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공산당에 입당하게 된다.
프랑스에서의 인연으로 덩샤오핑은 항상 프랑스에서부터 인연을 맺은 쩌우언라이의 지원 아래서 본인의 능력보다는 다소 깊이있게 중국공산당의 활동에 개입하게 되고, 비록 이 과정에서 수많은 실수를 저지르게 되지만 저우언라이의 우산 아래서 비교적 안정되게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러던 중 덩샤오핑은 마오쩌뚱을 알게되고, 그의 카리스마에 감화를 받아 열심히 그의 생각을 읽고 그가 원하는 것을 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중국 개혁개방의 아버지인 덩샤오핑이 마오쩌둥이 주도해 수천만의 아사자를 양산하고 만 대약진운동의 선봉에 있었음은 무척 놀라운 일이다.
물론 대약진 이후 덩샤오핑의 마오쩌둥에 대한 절대적인 동경은 다소 빛이 바랬지만 그는 여전히 마오쩌둥을 두려워하고 또 존경했다.
덩샤오핑은 여러차례 정치적 고난을 겪었지만 신체적인 피해는 피해갔고, 이를 통해 그는 곧 다시 재기했으며, 결국 중국의 최고지도자 자리에까지 오른다. 이는 작가의 말대로 그가 좌파와 우파 중 늘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으나, 결코 한쪽으로 넘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책의 절정은 작가의 의도였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6.4. 천안문사태에 맞춰져 있다. 비록 승승장구하던 덩샤오핑의 중국 통치는 천안문사태로 찬물을 한 바탕 끼얹은 샘이 되어 버렸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덩샤오핑의 천안문사태 수습은 향후 중국의 미래를 더 힘찬 도약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 폭동이 끝나면 우리는 정말로 인민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하며, 우선 두가지를 처리해야 한다. 첫째로 지도부를 갈어 치워야 한다. 새 지도부는 인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일신된 면모를 보여야 한다. 둘째로 우리가 부패에 진정으로 반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저들의 신임을 다시 얻기 위해 건전하고도 단호한 모종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덩샤오핑의 이러한 다짐은 어쩌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이세상 그 어느 정부가 중국 정부만큼 조심스럽고 능숙하게 국가와 인민 전체의 이익을 목적으로 국정을 다루고 있는가?
그는 특별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기회를 즐길 줄 알고 위험을 피해갈 줄 아는 정치가였다. 대한민국에도 어서 이러한 정치가가 나와 주기를 기대한다.
http://blog.naver.com/zhupengli/50041380620 비상의 중국바라보기 - 비상서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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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꼭 읽어 보고 싶었던 책. 마오 쩌둥 -> 덩샤오핑 -> 장쩌민 -> 후진타오. 중국의 오늘을 만든 지도자들의 계보다. 내게 덩샤오핑이라는 인물은 일종의 경외이자 동경의 대상으로서 미스터리였다. 중국뿐아니라 기업의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2인자의 자리란, "호랑이 등에 올라탄 처지"에 다름 아닌데 그의 생존 능력은 상상을 초월했으니. 중국 공산혁명, 항일전쟁, 문화대혁명, 톈안먼 사건과 같은 중국의 역사를 관통하면서 가장 파란만장했던 거인의 모습을 명징하게 분석하는 저자의 힘이 느껴졌다. 특히 1920년 어린 나이에 프랑스 유학을 갔다가 공산이론에 몰두하고, 모스크바에서 공산이론을 재무장하는 상세한 과정이 흥미로웠다. 그런데 그런 그가 프랑스어와 러시아어를 거의 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의외였다. 중일전쟁 당시 "먹을 것을 가진 자가 결국 모든 것을 가진 자"라면서 "결국 먹을 것을 가진 자가 최후의 승자가 된다"는 대목에서는 시대를 통찰하는 거인의 풍모를 느낄 수 있었다. 냉혹한 정권 쟁탈전의 최후의 승자라서 그럴까, 아니면 공산주의 이론마저 거부하면서 오늘날 거대 중국을 만든 초석을 놓아서인가. 모든 중국인들이 '가장 고마워하는' 지도자 덩샤오핑의 그늘은 지금도 곳곳에서 그 잔영을 드리우고 있다. (아쉬운 점은 문장 곳곳에 오타가 너무 많다는 것. 어색한 번역투가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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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 아니 우리에게 익숙한 "등소평".. 내가 어릴적 중국의 최고지도자란 얘기와.. 공산주의 국가의 국가원수(?)란 기억만 가물가물한 이 사람
과연 그는 평전"을 남길만한 위대한 인물이었던 것일까.
수천년동안 우리나라의 운명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 중국이란 나라.. 세계 최대의 인구와 그에 걸맞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 그 나라의 최고 지도자라 함은 정말로 대단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나의 기억에 덩샤오핑이 등장한 것은 1989년 텐안먼 사태였었다. 그 끔찍한 사건을 난 매스컴을 통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또 그 배후에 있는 인물 덩샤오핑에 대해서도 약간은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이 발간된 2004년 한창 덩샤오핑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가지 언론/책자들을 보며 전혀 새로운 그의 모습을 새삼 깨닫게 되었었다.
중국 근대사에 빼 놓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꼽는다면..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를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이 사람 덩샤오핑 역시 주저없이 꼽을 수 있는 인물이다. 농촌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프랑스로 유학, 그리고 소련에서 정치적 투사가 되어 중국으로 돌아왔고, 이후 이런저런 중국 근대사 사건들을 겪으며 중국 정치의 중심에 우뚝 선 덩샤오핑..
그에 대해 가장 유명한 이야기를 꼽으라면 바로 흑묘백묘론이다. "좋은 고양이는 검은고양이도, 흰고양이도 아닌 쥐를 잘 잡는 고양이다." 많은이들이 알고 있는 이 이야기 역시 그가 최고지도자가 되기전에 이미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다. 중국 인민들이 잘 살게 해주는 것이야 말로 그가 추구한 가장 큰 이상이었고, 그가 생각하는 사회주의였다.
여러차례 위기를 넘겨준 그의 놀라운 정치력, 그리고 행운들.. 비록 그는 무엇하나 내세울 것이 없었지만, 진정한 정치가로서 중국을 오랜세월의 빈곤속에서 이제 미국을 위협하는 거대한 강대국의 위치까지 끌어올렸다. 그 누구도, 대나무 장막속에 숨은 팬더곰으로 보지 않으며, 세계 정치/경제 분야에서 중국의 위치는 점차 확고해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덩샤오핑의 업적은 아니겠지만, 그의 치세(?)동안 이루어진 여러 정책들에 의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책은 저자의 견해로는 되도록 객관적으로 쓰여진 책이다. 물론 나 역시 중국 근/현대사에 대해 정확한 지식이 부족하여 판단할 근거는 없지만, 적어도 덩샤오핑의 실책에 대해서는 되도록 자세히 언급하려 한 모습이 보인다. 또한, 전체적으로 덩샤오핑의 일생을 일목 요연하게 정리해준 듯 보인다.
다만, 나와 같은 배경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어느정도의 각주가 있었으면 이해가 더욱 쉽지 않았을까.. (얼마전까지만 해도 중국인들에 대해서 "덩샤오핑"보단 "등소평" 이라고, "마오쩌둥"보단 "모택동" 이라고 부르는게 더 자연스러웠으니..) 또, 실질적으로 "덩샤오핑"이 최고 권력자의 위치에 오른 뒤 벌어졌던 사실에 대해서는 약간 소홀하지 않았나 싶다. 그 시기의 내용은 많이 알려진 탓일까?
"덩샤오핑"의 일생은 93에 이른다. 이중 대부분의 일생동안은 76년 그가 최고 지위에 오르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혼란했던 중국 현대사의 한가운데에서, 중국이란 나라를 현재의 위치에 이르게 한 "21세기 중국의 위대한 설계자"의 모습을 이 책의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물론 그 이면에 정치가로서 그의 어두운 면도 보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에서 인간적인 그의 면모블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이미 이 세상에 있지 않고, 그가 세운 "장쩌민" 도 권좌에서 물러난 상태이다. 그만큼 세월이 흐른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아직도 그가 그려둔 계획대로 흘러가는 느낌이다. 실용적 사회주의.. 덩샤오핑주의 라고 불리는 그의 생각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그의 말대로 50년이 가도, 100년이 가도 안 변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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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워서 보기 귀찮아했는데, 읽기 시작하니 뜻밖에 서너 시간 만에 읽을 수 있었다. 대충 읽어서 그런가?ㅋ
최근 마오쩌둥 평전을 찾다가 몇 년 전부터 리스트에 담긴 채 묻혀가던 이 책부터 사보기로 한 것이다. '등소평 사망'이 올해의 10대 뉴스로 다뤄진 게 불과 엊그제 같은 만큼, 그의 사후 많은 세월이 흐르진 않았기 때문에 평전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언제부턴가 모택동이나 등소평 대신 원음 표기가 자연스러워진 걸 보면 분명 엊그제는 아니구나 싶다.ㅋ)
장(章) 구분이 잘 되어 있고, 무난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