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디플러 2기 차담회 당시, 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께서 해주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유럽에서 매우 널리 읽히며, 특히 바칼로레아를 준비하는 프랑스 학생들과 아비투어를 준비하는 독일 학생들의 필독서와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셨다. 아직 논술형 대입 시험이 도입되지 않은, 아니 논의도 되지 않은 국내 학생들에게는 생소한 것이 당연할 것이다. 다만, 발행인께서도 언급하셨듯, 로스쿨 입시 준비나 언론인을 꿈꾸는 대학생들에게 추천하는 잡지이다. 냉정히 말하자면 쉬운 시사지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제 이슈를 색다른 시각에서 분석하는 힘을 기르고 싶다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만한 잡지가 없을 것이다. 르몽드디플로마티크(한국어판) Le Monde Diplomatique(2025년 1월호)2025년 새해의 힘찬 시작을 알리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월호. 프랑스의 대표적인 일간지 신문 <르몽드>는 대부분 익히 들어보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1954년 창간된 <르몽드>의 자매지이자 국제관계 전문시사지로, 프랑스·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유명 필진들이 글을 기고해오고 있다. 한국어판은 프랑스 원판에서 엄선된 번역 기사와 한국판 편집진이 기획, 취재한 기사로 이뤄져 있으며 둘의 비율은 각각 8:2 정도로 추산된다. 불어를 전공했지만 한국어 번역 기사를 읽어도 어려운 내용을 불어로만 해독해야 했다면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나는 좌절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한국어로 만나볼 수 있음은 국내 독자들에게 큰 행운이 아닐까 생각한다. ![]() 표지에서 추측해볼 수 있듯, 1월호의 포커스는 '노동의 정치사회학'과 '오라! 민주주의여'에 맞춰져 있다. 두 주제 이외에도 베트남, 멕시코, 서아프리카, 이스라엘, 조지아와 몰도바 사회를 둘러싼 각종 이슈들을 다룬 Mondial, 즉 '세계' 주제도 비교적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사회 내에서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고찰한 필진들의 글을 읽으며 어느 사회에서나 공통되는, 우리의 생존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분야인 '노동'과 '직업'을 둘러싼 다양한, 밀도 있는 고민을 해볼 수 있었다. ![]()
팬데믹 이후, 직업과 직장 생활에 대한 고민이 많아진 이들이 부쩍 늘어난 것을 체감하곤 했다. 실제로 팬데믹은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직업과 직장 선택 기준도 바꿔놓았다. 부산연구원의 한 보고서는 팬데믹 이후 높아진 고용불안이 연봉과 복지보다 고용안정성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부산시민들의 인식에 변화를 가져왔음을 보여준다.
프랑스의 상황도 국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따분한 월급쟁이 생활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프랑스인들이 많아진 것이다. 이에 직업, 경력 전환을 희망하는 직장인들을 돕는 코칭 산업이 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력 전환은 당사자가 혼자서 결정할, 마냥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전문가의 지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랑스 정부는 연간 20억 유로의 공공지출 자금을 개인훈련계좌(CPF)에 배당하고 있을 정도로 국민들의 직업·경력 전환을 장려하고 있다. 정부 및 프랑스 고용센터에서 직접 나서서 경력 전환 프로젝트를 홍보하기까지 한다. 산업의 낙관적인 전망 때문에 많은 코치와 전문 스타트업들이 '경력 전환 코칭'에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안 주르댕 파리 도핀대학교 사회학 부교수가 밝혔듯, 이 산업에서도 살아남거나 성공하는 이들은 소수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에 직업 전환 코치로의 커리어 변경을 꿈꿨지만 SNS 홍보 활동과 클라이언트 찾기에 지친 이들은 다시 회사원이 되기로 결심하고 있다고 한다. 산업 또는 직업의 유망성만을 보고 커리어를 설계하기보다, '내가 진정으로 잘하고,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연봉과 복지, 그리고 고용안정성도 마찬가지로 '내가 진정으로 잘하고,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할때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흥미와 적성을 발견하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깨달았기 때문이다. 1월호 목차를 넘기면 브누아 브레빌 프랑스어판 발행인과 성일권 한국어판 발행인의 논설을 가장 먼저 만나게 된다. ![]() ![]() 트럼프가 복귀했다. 그리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모두 트럼프의 취임식에 초청받지 못했다. 점점 견고해져만 가는 미국 중심의 세상에서 유럽 지도자들이 트럼프의 복귀를 '허세와 복종이 뒤섞인 태도로 맞이했다'고 브누아 브레빌 발행인은 서술했다. 유럽연합은 '두 가지 이상의 사물이 서로 합동하여 하나의 조직체를 만듦. 또는 그렇게 만든 조직체'라는 의미의 '연합'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이들의 연합은 갈수록 연대와 단결의 의미가 축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유럽'은 온데간데 없고, 단일 목소리를 내지 못하며 잡음만 늘어날 뿐이다. EU는 트럼프의 '자국 이기주의'를 비난하지만 이들도 트럼프의 이러한 태도에 동화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타국 정치에 관여하고 싶지 않은 속내에 눈치만 보다가 난처한 상황에도 서로 솔직담백한 의견을 교환하지 못하는 유럽연합 소속 국가들의 모습에서 마치 곧 있으면 고장이 나 제 기능을 못해버릴 것만 같은 삐그덕거리는 수레바퀴가 연상된다. 과연 유럽연합은 이를 타파할 어려운 길을 택할 것인지, 트럼프에 굴복하고 그의 관심을 구애하는 쉬운 길을 택할 것인가? 성일권 발행인의 논설은 국내 현 시국에 초점을 맞춘 '시위'와 관련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발행인께서도 언급하셨듯, 아이돌 응원봉을 흔들며 다함께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 우리는 신선함을 느꼈다. 자유롭고, 유쾌하고, 다양한 시위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과거 시위는 정당이나 특정 단체, 연합 등 조직 단위로 참여하는 모습이었지만 이제 '나의 권리와 상식적인 사회를 지키겠다는 의지'만 가지고 있다면 개인들도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거창한 무언가 없이도 '경쾌한 춤과 노래', 그리고 '다양성과 다원성을 강조'하는 오늘날 한국의 시위에 전세계로부터 찬사가 이어졌다. ![]()
르디플러 2기 활동의 일환으로, 장문석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님께서 저술하신 '토리노 멜랑콜리'를 바탕으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기고글 '살 길 잃은 토리노의 자동차 노동자들'을 분석했고 이에 대한 칼럼을 작성했다. 이탈리아 도시 '토리노'에 막연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토리노 멜랑콜리'가 출간되고 바로 구입했던 기억이 있다. 이탈리아, 토리노, 그리고 피아트를 주제로 칼럼을 작성하며 토리노의 자동차 노동자들의 삶과 이들이 느꼈을 감정에 깊게 공감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 ![]() 국내 언론뿐만 아니라 해외 언론에서도 트럼프 2.0 시대를 앞두고 엄청난 양의 기사와 칼럼을 쏟아내고 있는 중이다. 역시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1월호에서도 'Focus 포커스' 기고글로 다시 백악관의 주인이 된 트럼프의 당선 이유에 대해 다루고 있다. 트럼프는 2016년과 비교해 새로운 1천 300만의 추가 표를 얻었다. 그리고 이 표들은 미국 민주당이 자신들의 지지기반이라고 여겼던 젊은층, 흑인과 히스패닉계 등 소수 인종으로 구성된 '새로운 미국' 유권자들로부터 나왔다. 이는 프랑스의 진보적 싱크탱크 테라 노바 재단의 인구통계학적 예측에 오류가 존재했음을 나타낸다. 이 예측은 여성, 젊은층, 고학력자, 소수자와 서민층 지역 유권자를 중심으로 한 인구변화가 자연스럽게 정치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발상에서 비롯되었다. MAGA를 외치며 다시 돌아온 트럼프의 사례는 해당 예측이 완전히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세르주 알리미는 '가짜 뉴스만 믿는 저학력층'의 모습과 '진보 언론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에 동의하는 충성 시청자들의 자부심을 확인시켜주는 방송'만 하는 모습을 대조하며 설명을 이어나간다. 어느 진영이든 각자 자신들이 원하는 달콤한 말에만 귀를 기울이는, 또 이를 동조하는 이들에게 편향되거나 그릇된 정보만을 주입시키는 행태를 비판하면서 말이다. 기고글을 읽으며 어느 국가나 사회이든 정책 성과의 가시화가 중요함을 깨달았다. 특히나 경제를 평가할 때 눈에 보이고, 피부에 직접 와닿는 것만 믿는 경향이 강해졌기에,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뚜렷한 정책 성과만이 정부의 향후 행보를 결정할 것이다. 현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고찰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IT기기와 SNS의 발전에 따라 자극적인 콘텐츠를 찾아 헤매는 일명 '도파민 콜렉터들'에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건강한 도파민'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이라 믿는다. 독자 여러분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접하기 이전과 이후, 발전된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지적인 충족감을 마음껏 느끼시길 바라며 서평을 마친다. *본 서평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서포터즈 '르디플러' 2기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르몽드디플로마티크 #르디플로 #르몽드 #르디플러 #르몽드디플로마티크서포터즈 #르디플러2기 #논술도서 #논술잡지 #국제시사 #국제시사지 |
![]() ?? Editorial 편집장 논설 이번 호 Editorial에서는 프랑스어판 편집장 브누아 브레빌이 “언제까지 미국을 기쁘게 할 것인가?” 라는 제목의 글로 유럽이 주권적인 미래를 그리려 하지만 냉정하게도 미국의 인프라, 생산 능력 등에 의존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작금의 불편한 현실을 지적한다. 유럽은 아일랜드에서 애플이 쫓겨났을 때도 마냥 기뻐할 수 없었고 (‘애플 떠나면 뭐가 있는데?’라는 지적),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대한 입장도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말하지 못한다. 미국을 대표하는 자가 트럼프와 같은 터무니없는 자라도, 자칭 민주주의의 보루이자 세계 경찰인 미국이 반인도적 범죄를 자행하는 국가를 두둔하더라도 그들은 미국을 기쁘게 하는 것과 국제 정의를 존중하는 것 사이 딜레마에서 허우적댄다. <르.디> 한국어판 편집장 성일권의 “그리고 혁명은 경쾌한 뮤직앤댄스로 시작되었다!” 는 12.3 쿠데타 이후 무겁고 심란한 일을 ‘즐겁게’ 해내고 있는 국민들에 대한 찬사를 담고 있다. 시위 현장에 늘상 등장하는 노조, 정당, 등의 식상한 깃발이 아닌 기상천외한 깃발들이 (“전국 집에 누워있기 연합”, “시위하다가 물 주는 일을 잊을까 걱정하는 ‘화분 안 죽이기 실천 시민연합” 등) 가득했을 때, 심란하고 한숨만 푹푹 나왔던 우리는 피식대며 웃음지을 수 있었던 순간을 선물받지 않았는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무정형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강력한 확장성과 파급성, 유연성을 지니는 이런 ‘무질서하기 그지없는’ 시위대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요체로서 그 다원성을 자랑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이슈: 3편 기고. 이번 호 “베이루트에서 자행되는 이스라엘의 도시 파괴 (에마뉘엘 아다드)”는 헤즈볼라 공격을 이유로 레바논 국민들의 거주지를 무지막지하게 파괴할 뿐만 아니라 내부 분열을 유도한 이스라엘의 잔인무도함을 고발하고 있다. 또한 “페북에서 활개치는 친이스라엘 검열관 (샘 비들)” 은 메타의 이스라엘 및 유대인 디아스포라 정책 담당 조다나 커틀러가 페이스북을 이용해 자국의 이익을 대변하며 이스라엘에 불리한 정보를 담은 콘텐츠를 삭제해온 정황을 드러낸다. 사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친이스라엘적이고 반팔레스타인적인 행보를 이어가며 무단으로 콘텐츠를 삭제하고 다닌다는 것은 몇 달 전에 알자지라 팟캐스트를 통해 접한 내용이었다. 다만 그 주체의 정체는 알지 못했는데, 그게 조다나 커틀러 이사와 그 상사/수행원이었다. 노골적으로 편파적이며 특정 국가 (그것도 거의 모든 국제기구가 반인도적 범죄를 자행한다고 규정한 국가의)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메타의 이중잣대는 우려라는 단어 사용만으로도 부족하다. 마지막으로 “‘노란 바람’에서 예견된 재앙 (엘라드 라피도트)”는 이스라엘 유명 작가 다비드 그로스만 (David Grossman)를 통해 자신들을 피해자 프레임에 가두지만 사실상 방관자 혹은 가해자와 다를 바 없는 이스라엘 좌파들의 한계를 다룬다. 그가 현재의 이 갈등을 바꿀 수 없는 운명, 피할 수 없는 저주처럼 인식하거나, 서구 열강들의 도움과 관여를 요청하는 일은 결국 본 분쟁의 책임 문제를 회피하고 대신 이를 비극적 상황으로만 그리며, 과거 식민제국들을 동맹자로 보는 식민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드러내는 자충수일 뿐이다. 결국 그로스만은 이스라엘의 잘못에 대해 침묵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팔레스타인의 행동이 더 잘못됐다라는 논조로까지 이르게 된다. “10월 7일의 사건으로 인한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과거의 홀로코스트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내면의 양심, 즉 생각하는 마음은 이러한 감정을 이성적으로 다스려야 하는 소명과 책임이 있다” 필자의 날카로운 이성적 분석은 가슴이 사무치기까지 하다. ????한국판에 매번 실리는 Coree - 한반도 “오라 민주주의여!” 12.3쿠데타와 그 이후를 논하는 글들이 등장한다. 조희연 전 서울시 교육감의 “어떻게 민주주의를 완성할 것인가”에서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탄핵은 이제 사법의 영역이니) 우리가 이제 집중해야 할 것은 정치’라는 것, 그리고 ‘우리의 분노의 저항이 허무주의적 정서로 끝나지 않게 전환이 일어나 희망이 완성되는 것’이다. ‘무엇을’에 ‘어떻게’가 붙는 순간 어려워진다는 걸 알아서인지 ‘무엇을’에 대한 담론만 가득했다는 게 좀 아쉽게 남는다. 양당정치가, 그리고 또 그래서 극단적 네거티브와 서로를 향한 악마화가 판치는 지금 민주주의 정상연합과 다원적인 정치체계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회의를 풀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두려움을 떨쳐내고 멋진 퍼포먼스를 하리라 (권윤지)”는 그냥…무조건 읽어야 한다! 그냥 감탄하면서, 폭풍 고개 끄덕끄덕거리며 페이지를 넘겼던..수려한 문장으로 담아내는 통찰이 흠잡을 곳 없다. 본 잡지는 프랑스 내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면 쉽지는 않다 (상당히 많은 수의 기사들이 프랑스를 중심으로 쓰여지기 때문에) 더군다나 번역가가 누구냐에 따라 글을 당최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그래도 세계가 이렇게 넓었음을, 내 시선은 너무나 협소함을 직면할 수 있게 해주며 배움의 갈망을 마구 자극한다. 멕시코의 정권 교체, 노동의 정치사회학, 카유보트 분석 등 그 어떤 기대도 가뿐히 초월하는 양질의 글들이 기고되어 있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너무나 애정하는 마음을 담아 근처 도서관에서라도 정독을 시도해보기를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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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르디플로에서는 작년 12월 3일에 발생한 계엄령과 그 여파에 대해 다룬다. 이번 계엄령은 한밤중에 시작되어 불과 몇 시간 만에 종료되었다. 누군가는 자고 일어나보니 계엄령이 시작되었다가 끝난 것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여파는 실로 엄청났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구속수사를 받았고, 전국 곳곳에서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시위에 기존의 정치적 중심층으로 여겨지던 4050세대뿐만 아니라 정치에 무관심할 것 같던 2030세대, 심지어 10대까지도 참여했다는 것이다. 계엄령이 “계엄령”이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과거에는 젊은 세대가 정치적 시위에 참여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정치적 의사가 없더라도, 단순히 모임이나 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체포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세대의 차이로 설명될 수 있을까? 아니면 정치와 사회에 대한 인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한 것일까? 이번 호에서는 계엄령이 촉발한 이러한 사회적 변화의 의미를 다각도로 분석한다. |
르몽드는 1944년에 창간된 프랑스의 대표적인 일간지로, 미국적인 관점을 벗어나 제3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진보언론이다. 르몽드의 자매지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국제 정세와 외교 문제를 다루는 전문지이며, 온라인 기사 구독 시스템을 통해 독립적인 저널리즘을 실현하고 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5년 1월호는 '노동'과 '민주주의'를 핵심적으로 다룬다. 특히 <그리고 혁명은 경쾌한 뮤직앤댄스로 시작되었다!>는 윤석열 탄핵 시위에서 목격된 다양한 사회적 움직임을 강조한다. 시위 현장에는 환경운동, 페미니즘, 소수자 권리,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 등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유권자들이 등장했다. 이런 현상들은 민주주의와 권리 확장을 위한 새로운 체제로의 진입이 필연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우리는 혼돈의 시기 속에서 실질적 민주주의를 수립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모든 개인의 삶이 공동체가 축적해 온 상식과 도덕의 기준에 모자람이 없을 때, 국가의 이익과 명분이 국민에 우선하지 않을 때, 우리는 새로운 사회를 향한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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